팜플로나 - 로그로뇨 : 자전거 97km
아침에 일어나 어제 저녁에 먹다 남은 밥을 죽처럼 끓이고 된장찌개를 데우고 계란 후라이로 도보팀과 아침식사를 같이 한 후, 8시에 자전거 팀은 로그로뇨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도보팀은 로그로뇨까지는 택시로 1시간 정도 걸리는데 로그로뇨에 너무 일찍 도착하여도 호스텔에서 체크인이 안될 수 있기에 12시쯤 이곳 팜플로나에서 출발하기로 하였다. 그때까지 시간이 남기에 도보팀은 팜플로나 번화가를 구경나가기로 하였다.
카톨릭 신자인 도보팀의 두 부인들은 성당에 들러 촛불도 밝히고 헌금도 하며 정성껏 기도를 한다. 종교가 없는 나는 그동안 성당 구경이나 하고 어김없이 성당 입구에 있는 걸인에게 적선을 하며 시간을 때운다.
오늘이 일요일이기에 시내 번화가에는 사람들의 통행이 많다.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외국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앉아 향기로운 커피를 여유있게 마시는 것은 해외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특히 자유여행만이 누릴 수 있는 비싸지 않은 사치이자 당연히 누려야 하는 특권이다.
시내 구경을 마치고 호스텔로 돌아와 로그로뇨행 택시를 부르기 위하여 호스텔 리셉션에 붙어 있는 전화번호의 택시 회사로 전화를 하였다. 그런데 직원이 전화를 받지 않고 이상한 기계음이 흘러 나오는데 스페인 말이라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여러번의 시행착오 끝에 다른 전화기로 구글번역기를 실행하여 이 말을 번역하여 보니, “지금은 근무 중이 아니므로 음성 메시지를 남겨 놓으면 확인하여 처리하겠다” 는 내용이다.
정신을 차려 생각해 보니 아뿔싸, 오늘이 일요일이라 직원들이 근무를 안하는 거다. 리셉션의 호스텔 관리인을 찾았으나 아직 출근 전이라 없다.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길거리에 다니는 택시를 잡아 보려고 호스텔 밖 거리로 나와 보니 일요일 아침이라 택시 비슷하게 생긴 것조차 보이지 않는다. 한낮에도 몇시간씩 시에스타를 즐기는 한가한 국민들이 일요일에, 그것도 오전에 택시 영업을 할 리가 없다. 순간 당황한 생각이 들었으나 이 정도의 당황스러운 경우는 이미 여러 번 겪었다.
한국에서의 경험을 살려, 근처 호텔로 찾아가 안내 데스크의 말쑥한 옷차림의 잘생긴 남자직원에게 이 호텔 투숙객은 아니지만 택시를 불러 줄 수 있느냐고 하니까 기분 좋게 “Of course" 를 외친다. 다만 짐을 가지고 이곳으로 오면 그때 택시를 불러 주겠단다.
로그로뇨로 갈 교통편이 확보되어 즐거운 마음으로 숙소로 돌아오니 그렇게 찾을 때는 없던 호스텔 직원이 출근하여 있다. 그간의 사정 얘기를 듣더니 자기가 택시를 불러 주겠단다. 무거운 짐을 들고 호텔까지 가는 것 보다는 이 방법이 좋을 것 같아 그렇게 하라 하였다. 직원은 여러 곳을 전화하는 것 같은데 눈치를 보아 하니 일요일이라 아무래도 택시 확보가 어려운가 보다. 일반 전화로 여기저기 계속 통화하다 안 되겠던지 핸드폰으로 바꾸어 통화하더니 표정이 밝아지면서 요금이 150 유로인데 이용할 거냐고 묻는다. 비싼 가격이지만 오늘이 일요일임을 감안하여 이용하겠다고 하였다.
조금 기다리니 택시가 왔다. 그런데 택시가 아닌 BMW 승용차였고, 호스텔 직원과 운전기사가 서로 허그를 하고 크게 떠드는 등 보통 가까운 사이가 아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호스텔 직원이 여기저기 택시가 수배가 되지 않으니까 친구에게 전화해서 택시 아르바이트를 해보지 않겠냐고 하여 급히 달려온 것으로 추정된다. 오늘 이 운전기사는 뜻하지 않게 일요일에 크게 한건 한것이 맞다. 아무튼 택시가 확보되었으니 로그로뇨로 출발이다.
팜프로나에서 로그로뇨로 가는 도중에는 아름다운 다리가 있는 프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 라고 하는 곳을 경유하게 되어 있다. 운전기사에게 그곳에 내려서 사진 한장 찍고 가자고 했더니 그렇게 하겠다고 한다. 이 다리는 중세 순례자들의 편안한 순례길을 위하여 당시의 왕비가 특별히 지시하여 만든 다리로서 아름답기로 이름이 난 곳이다.
그런데 이 운전기사는 영어가 매우 서툴다. 그래서 영어가 가능한 여자 친구에게 전화하더니 나를 바꾸어준다. 자동차 스피커폰으로 운전기사의 여자 친구와 통화를 하는데 통화음이 자동차 소음과 열어논 창문 밖에서 들리는 바람소리에 섞여 알아 듣기가 힘들다. 그러나 겨우 겨우 몇 토막씩 들리는 내용을 종합해 보면, 지금 거기 프엔테 라 레이나가 지방 행사 관계로 출입을 통제하여 그곳에 들어가 사진을 찍을 수 없단다.
피레네 산맥에서 이미 석연치 않은 바이패스를 경험한 터라 여자 친구의 얘기를 못 알아들은 채 하며, 계속 프엔테 라 레이나로 가자고 외쳐 댔다. 갈 수 없다는 운전기사와 가자고 외쳐대는 나 사이에 밀당(?)이 계속되었지만 그러나 어쩌랴? 우리가 탄 BMW는 멀리 보이는 프엔테 라 레이나를 속절없이 지나가고 있었다.
12시에 팜프로나를 출발한 승용차는 1시간 정도를 달려 오후 1시에 로그로뇨의 Albas hostel에 도착하였다. Albas 호스텔은 시내 한가운데의 주상복합 아파트에 자리를 잡고 있다. 주상복합이라고 하지만 한국의 고층을 생각할 필요는 없다. 호스텔 바로 옆에는 카페가 있어 아침부터 밤까지 아파트 주민들과 여행자들이 섞여 커피와 맥주를 마시는 장소로 이용하고 있다.
호스텔의 관리인은 50대 중반으로 보이는데 수염이 무성하고 대머리의 정말 선하고 착하게 생긴 분이다. 어떤 경우에도 웃음을 잃지 않고 친절하게 대하며 호스텔 청결을 위하여 분주히 여기저기를 왔다 갔다 하면서 최선을 다 하는 모습이 정말 성실하고 좋은 사람이란 느낌이 든다.
호스텔은 하나의 큰 방에 35명 정도의 인원이 남녀 구분없이 생활하는 형태이나 청결한 주방과 화장실, 각 개인에게 할당된 캐비넷, 그리고 야외의 커다란 빨랫줄 등 순례객이 생활하기에 불편이 없도록 준비되어 있기에, 호스텔을 이용하고 나서 숙소 평가 시에 최고의 평점과 더불어 칭찬 일색의 후기를 남겼다.
체크인이 끝난 후, 호스텔 지배인은 내가 렌트하여 이곳 호스텔로 탁송시킨 자전거가 도착하여 뒷마당에 보관되어 있다고 알려주며 내게 카카오톡의 아이디를 묻는다. 당신도 카카오톡을 쓰냐고 물으니, 물론 그렇다면서 호스텔의 생활수칙과 필요한 전달사항을 카카오톡으로 보내주겠단다. 그런데 카카오톡으로 전달된 생활규칙은 한글로 되어 있다. 놀랍다. 물론 한국인들이 이 호스텔을 많이 이용하기 때문이겠지만, 여기로 여행을 올 정도이면 영어 해독 능력이 가능한 사람들일 텐데 기꺼이 한국어 버전을 준비하여 카카오톡으로 전달하는 그 마음 씀씀이가 보통 고마운 일이 아니다. 내가 최고의 평점을 줄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여기에서 자전거 렌트에 대한 정보를 소개하고자 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산티아고 순례길을 자전거로 종주하고자 하면 한국에서 자전거를 가져오지 말고 자전거를 렌트하라고 권하고 싶다.
가장 큰 이유는 순례길이 한국의 자전거 전용도로처럼 얌전하지 않다는 점이다. 흙길은 기본이고 크고 작은 돌들이 날카롭게 촘촘히 박힌 너덜 길도 도처에 섞여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 얌전한 길을 타던 자전거로는 타이어 펑크를 감당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흙길 먼지로 인하여 체인이나 기어에 먼지가 쌓여 정상적인 작동을 방해하기 십상일 것이다.
아울러 울퉁불퉁한 길로 인하여 자전거 프레임에 오는 충격 등을 감안할 때, 고가의 좋은 자전거를 싸구려 중고 자전거로 망쳐버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가 라이딩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면 자전거의 프레임이나 체인에 먼지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쌓여 개울이 있는 곳이 나타나면 중간 중간 물로 씻어 가면서 타고 다녔다.
나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본사가 있는 Tournride 라는 자전거 렌트 회사를 이용하였는데, 이 회사 말고도 여러 자전거 렌트 회사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회사의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이용날자, 출발 장소와 도착장소를 입력하면 종류별로 자전거 사진과 제원이 디스플레이되고 이를 참고로 전기자전거든 사이클이던 자신이 원하는 형태의 자전거를 선택하면 바로 견적 가격을 제시해 준다.
렌트 비용은 MTB 자전거 기준으로 무동력은 19유로/1일, 전기자전거는 33유로/1일 정도 하는데, 자전거를 인수받는 장소와 반납하는 장소에 따라 탁송비를 별도로 청구한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본사를 둔 Tournride사는 국외인 프랑스의 생장으로 자전거를 보내는 데는 60유로, 나의 자전거가 탁송된 스페인의 로그로뇨까지는 국내인 관계로 30유로의 탁송료가 청구되었다.
우리가 렌트한 자전거는 타이어 폭 2.3인치, 지름이 27인치인 타이어에 기어와 브레이크는 XT Deore급으로 구성되었고 두꺼운 알루미늄의 몸체를 가진, 보기에도 투박해 보이는 MTB 전용 자전거다. 무게와 외관보다는 안정성과 견고성을 중시하여 제작한 자전거라 무겁고 투박해 보이기는 하였으나, 종주 기간 중 우리 일행 누구도 타이어 펑크나 부속 고장으로 고생을 하지 않았다.
탁송된 자전거는 앞뒤 바퀴가 분리된 채 박스에 잘 포장되어 있고 예비 튜브, 펑크 패치, 수리 공구, 패달 등이 기본적으로 포함되어 있으며, 자전거를 받은 후 페달을 조립하고 핸들을 정위치에 맞게 조이면 운행이 가능하게 된다.
자전거 렌트를 계약할 때 원하는 도시에서 자전거를 전달받으려면 자전거가 도착할 주소를 제시하여야 하는데, 이를 위하여 홈페이지에서 자전거를 수령할 도시를 입력하면 그 도시에서 자전거 렌트 회사와 탁송 계약을 맺은 호텔 또는 호스텔의 리스트가 나온다. 그중 숙박하기를 원하는 숙소를 선택하면 그 숙소의 주소로 자전거가 탁송되며, 당연히 여행자는 그 숙소를 숙박 장소로 예약하면 되는 것이다.
자전거 렌트 회사는 자신들이 탁송한 자전거를 받아 보관하였다가 사용자에게 전달할 믿고 맡길 숙소가 있으니 좋고, 숙소 측에서는 자전거를 보관해 주기에 여행자가 자신의 숙소를 이용하게 되어 좋은 것이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합리적인 win-win 관계가 성립하는 셈이다.
우리의 경우는 순례길 종주가 끝난 후 포르투갈과 프랑스를 자유여행 하여야 했기에 자전거를 가지고 자유여행을 다니는 것이 불편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또한 유럽의 항공사는 말할 것도 없고 버스 회사조차도 자전거를 수하물로 교통편에 싣고자 하면 별도의 요금을 청구하고 이 추가요금이 만만치 않았기에 과감하게 자전거 렌트를 선택하게 되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서,
로그로뇨의 호스텔에서 체크인을 마친 도보팀은 자전거팀이 도착할 때까지 시간이 있기에 시내 구경도 할 겸, 중국마트에 가서 장을 보기로 했다. 로그로뇨는 라리오하 지방의 주도다. 우리의 도청 소재지 정도가 되는 도시이지만 인구는 15만 안밖이다.
중국마트는 시내 번화가한 가운데 핀쵸스 거리에 위치해 있다. 중국에서 지구 반대편의 여기까지 와서 정착하여 조그만 중국 식재료 마트를 운영하는 중국인의 생존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중국인 마트는 앞으로 진행되는 여정의 대도시에서는 어김없이 만날 수 있었다. 누군가 쓴 산티아고 순례길 기행문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을 읽은 적이 있다.
언젠가 중국인들이 이 길에 나타나기 전에,
이 길을 와 보기를 권한다.
여러 의미가 있을 터이니 해석은 여러분들의 몫이다. 한국 소주와 라면을 사고 고추장을 샀다. 고추장은 한국 유사상표를 붙였지만 짝퉁임을 쉽게 알아 볼 수 있다. 첨가물에 얼마나 몸에 해로은 것이 들어갔는지는 모르지만 맛은 그런대로 괜찮다.
중국 마트에서 장을 보고 점심식사는 근처 식당에서 토르티야로 간단하게 해결하였다. 토르티야는 순례객들이 점심 때에 식당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메뉴인데, 옥수수나 밀가루로 얇게 구운 빵 속에 감자 또는 야채의 계란 스크램블을 넣어 만든 음식으로 간편하기도 하거니와 맛도 있어서 순례객들이 즐겨먹는 메뉴 중의 하나이다.
6시경에 자전거팀이 도착하였기에 낮에 보아 둔 중국식당에서 모두들 함께 저녁식사를 하였다. 맛은 당연히 현지화 되어 있는 것이겠지만 우리 입맛엔 별로다. 돌아오는 길에 몸이 무거움을 느낀다. 약간의 미열과 노곤함이 느껴진다. 출국한 이래 몇 일째 잠을 설치고 예상 밖의 돌발변수에 온 신경을 쓰면서 과로한 탓이다.
여행을 와서 나와 다른 모습의 사람들과 만나고 내가 살면서 늘 보던 풍경과는 다른 모습의 장소를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그것에는 대가가 지불되어야 한다는 교훈을 몸으로 체험하는 중이다.
자고 일어나면 괜찮을 것이라 믿어보며 잠자리에 든다.
무엇을 아무리 얇게 베어 낸다 하더라도
거기에는 양면이 있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 오마르 워싱턴의 ‘나는 배웠다’ 에서 -
첫댓글 자유여행의 설레임과 두려움의 두근거림이 할리데이비슨의 엔진소리처럼 두둥~두둥~두둥~ ㅎㅎ
그 오토바이 엔진소리는 뭔가 여유롭게 할리~ 할리~ 할리~ 하면서 달리잖아요~~~
동촌님의 여행길이 할리 바이크처럼,고급지면서도 여유롭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져도 할리~할리~ 여유롭게 해결해 가시면서 할리~할리~ ㅎㅎ
자유여행의 즐거움.... 저의 로망이기도 합니다~~~
귀한 정보, 경험해 보신 분만이 제공해 주실수 있는 현지의 살아 있는 정보~~ 감사드립니다 (^~^)
이렇게 여유롭게 글로 정리 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참 긴박하면서도 아슬아슬한 여행일기를 보니 자유 여행의 묘미를 느끼게 됩니다.
다 지난 일이지만 큰 경험으로 남아 삶이 좀 더 풍요로워지지 않았을까 싶네요.
아~ 글을 보며 많은 노고가 보이고 함께한 분들의 즐거움이 생생합니다~^*
늘 생생한 기록과 명언
감사드립니다.
모든일에는 양면성이 있다.
몇일? 분주하다보니 이제 읽습니다.
언제나 완벽한 여행기에 곁들여진 맛까지 정말 대단하십니다.
두 팀으로 나누어 다니시느라 고생은 2배 이상이었겠습니다.
로그로뇨로 가는 길과 로그로뇨로거리 풍경에서 스페인 추억이 새록새록합니다.
론다 거리의 하몽도 그립구요.
앞으로는 더 멋진 여행이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