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백과 레오파르트 1 전차 독일 전차군단의 명맥을 부활시킨 날렵하고 강력한 표범 2015년에 촬영된 독일연방군의 레오파르트 1A5. (출처: Rainer Lippert/Wikimedia Commons)
개발의 역사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냉전이 시작되자 기존의 동맹과 적대 관계는 재편됐으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중심으로 한 자유 진영과 바르샤바조약기구(WTO)를 중심으로 한 공산 진영의 소리 없는 전쟁이 시작됐다. 이에 새로 창설된 NATO의 주축인 서독과 프랑스, 이탈리아 3국은 1950년대부터 공동 개발 형태로 새로운 시대에 맞는 신형 전차 설계에 착수했다. 독일연방군(Bundeswehr)은 2차 세계대전 직후 국내 업체의 방위 산업 참여 금지 때문에 미제 M47 및 M48 패튼(Patton) 전차를 도입하여 주력전차로 활용했다. 하지만 독일 정부는 곧 M48로는 소련 기갑전력을 상대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림에 따라 신규 전차 개발 및 도입을 추진했고, 국내 업체의 방위 산업 참여가 가능해지자 곧 요구도를 작성했다. 독일군이 작성한 요구도로는 전차 중량이 30톤 이하일 것, 출력 대비 중량은 30마력/톤일 것, 전차 전 부분의 장갑이 20mm 속사포를 견딜 수 있고, 화학 무기나 방사능 낙진으로부터 승무원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을 잡았다. 이는 사실 대부분 실전 배치된 당대의 바르샤바조약기구 측 전차 성능에 기반한 요구도였다. 독일은 차기 전차의 주무장은 105mm 이상 구경을 갖춰야 하고, 기본적으로 탑재 가능한 예비 포탄은 미군 전차와 유사한 수준이 되어야 한다고 정했다. 독일군은 가급적 기동성에 중점을 두고 화력은 그다음 순위로 보았으며, 방어력은 가장 마지막 순위로 놓았다. 이는 어차피 당대의 장갑 능력으로는 성형화약탄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판단에 따라 내린 결정이었다. 게다가 향후 벌어질 전쟁은 핵전쟁 양상이 될 것이라고 본 점도 장갑을 후 순위로 놓은 이유였는데, 어차피 핵무기에 대해서는 전차 장갑으로 버틸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속도에 중점을 둔 이유는 1955년 미국으로부터 공여 받아 운용 중인 3,000대 이상의 M48 A2C 패튼 전차가 독일 연방군의 작전 요구 성능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포르쉐가 제안한 레오파르트 시제A형 전차 <출처: Public Domain> 독일 국방기술획득국(BWB)는 서독이 최대한 빨리 자체 제작 전차 개발을 실현시킬 수 있도록 사업을 강하게 추진했으나, 정작 독일 내 기업들은 다시 바닥부터 시작해야 하는 독일의 환경을 생각할 때 사업이 지나치게 강행되는 경향이 있어 시간이 부족할 것으로 보았다. 결국 독일 국방기술획득국은 사업 기간을 2년가량 연장했다. 하지만 계획을 넘겨 받은 독일 재무부는 시제 차량 개발 예산으로 단 5천만 마르크라는 애매한 액수를 할당했다. 기업들은 시제 차량 개발로는 이윤이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계산했으나, 양산이 진행된다면 채산성이 맞을 것으로 보았다. 한편 독일이 자체 전차 개발 사업을 발주하자 프랑스가 관심을 보였다. 프랑스는 중(重)전차 개념으로 AMX-50을 개발하려 했지만 결국 실패했기 때문에 차기 전차 개발이 필요했고, 마침 독일이 전차 개발에 착수하려는 찰나였으므로 공동 개발에 돌입하면 개발비를 낮출 수 있을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이에 따라 1957년 서독과 프랑스 정부는 사업명을 유로파 판처(Europa-Panzer)로 정했으며, 총 3개 독일 업체와 1개 프랑스 업체가 각각 2대의 시제 차량을 만들어 납품한 뒤 입찰 경쟁을 통해 승자를 선정하기로 했다.
라인메탈-헨셸의 레오파르트 시제B형 전차 <출처: Public Domain> 이에 독일에서는 총 3개 컨소시엄이 형성됐으며, 우선 포르셰와 MaK(現 라인메탈 지상사업부)-베그만(Wegmann, 現 KMW)이 한 팀으로 들어갔고, 두 번째 팀은 차량 제조업체인 루르스탈(Ruhrstahl)을 주축으로 하여 하노마그(Hanomag)-헨셸(Henschel)로 구성됐으며, 세 번째는 보그바르트(Borgward)사가 단독으로 입찰에 들어갔다. 한편 독일 정부가 최초 사업 참여를 요청했던 라인메탈사는 최초 사업의 수익성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참여 여부에 부정적이었으나, 독일 정부가 별도 계약 체결을 요청하자 따로 105mm 강선포를 장착한 포탑을 별도 개발해 컨소시엄 승자의 차량과 결합하기로 했다. 하지만 독일 정부는 라인메탈이 105mm 포를 새로 개발할 경우 전차 가격을 올릴 것으로 봤기 때문에 이미 영국에서 개발하여 센추리언(Centurion) 전차와 미제 M60 전차에 채택한 강선포를 채택해 면허 생산하기로 결정했다. 사실 이 시도는 단순히 개발비 뿐 아니라 유럽 공동체 국가 간 전차 탄약을 일원화하고 군수체계를 단순화하려는 계산이 깔려있었다.
포르쉐의 레오파르트 시제2A형. 최종적으로 포르쉐 모델이 선정되었다. <출처: Public Domain> 1961년 1월과 9월, 각 입찰 참여 업체는 두 대의 시제 차량을 제출했으며, 독일 국방부는 그중 포르쉐-MaK 설계를 최종 채택했다. 국방부의 결정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었는데, 포르쉐 설계안이 독일 국방부에서 발행한 요구도 대부분을 충족시켰기 때문이다. 중량은 42톤으로 요구도보다 다소 높았지만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Joseph Stalin) 3 전차보다 가벼웠고, 최고 속도는 65km/h까지 도달해 소련 측 전차보다 훨씬 기동성이 높고 빨랐다. 이후 독일국방기술획득국(BWB)은 양산 및 복합무기체계 공급 계약을 체결했고, 크라우스-마파이(Krauss-Maffei, 現 KMW)가 하부 체계 조립과 양산을 맡게 되었다.
라인메탈-헨셸의 레오파르트 시제2B형은 최종적으로 탈락했다. <출처: Public Domain> 탱크 포탑의 개발은 라인메탈사가 베그만과 협업으로 1964년부터 개시했으며, 최종 조립은 크라우스-마파이가 뮌헨에 공장을 설립하고 실시하게 됐다. 물론 전차의 다른 구성품은 워크셰어를 나눈 업체별로 생산했기 때문에 모두 열차를 통해 뒤셀도르프로 수송되어 왔다. 최초로 조립된 양산 형상의 “레오파르트(Leopard)” 전차는 1965년 크라우스-마파이 공장에서 완성됐으며, 공개 시연에서 전문가들은 레오파르트의 기동성은 우수하게 평가했지만 장갑은 다소 빈약한 것으로 보았다. 1965년 9월 초도 전차가 독일연방군에게 인도됐으며, 당시 M48 A2C 전차에서 레오파르트로 갈아탄 어느 전차병은 “마치 기병이 홀슈타인산 노역마(勞役馬)에서 동프로이센 서러브레드종 명마로 갈아탄 느낌이었다"라고 평가했다.
라인메탈-헨셸의 레오파르트 시제2B형은 최종적으로 탈락했다. <출처: Public Domain> 레오파르트 1 전차는 독일 외에 NATO 가맹국 및 기타 협력국에서 다수 도입했다. 도입 순서는 독일 이후 벨기에(1968), 네덜란드(1969), 노르웨이(1970), 이탈리아(1971), 덴마크(1976), 오스트레일리아(1976), 캐나다(1978), 터키(1980), 그리스(1981) 순서였으며, 이후 형상이 바뀌면서 브라질, 칠레, 에콰도르, 레바논, 에스토니아, 핀란드, 인도네시아 등이 레오파르트를 운용했다. 레오파르트 전차는 1963년 첫 양산이 개시된 이후 6,000대 이상이 양산됐다.
특징레오파르트 1 전차는 동시대 소련 측 T-62에 대응하는 전차로, 방어력보다는 기동성에 중점을 두고 개발했다. 레오파르트의 차체와 포탑은 강철판으로 제작했는데, 두께가 얇은 편에 속했으므로 독일 측도 T-62와 정면으로 붙는다면 1,800m 거리에서 정면 장갑이 관통될 수 있다고 보았고, 이후에 등장한 T-72는 3km 거리에서도 레오파르트 1의 정면 장갑을 관통이 가능할 것으로 평가했다. 반면 화력은 준수한 편에 속해 이미 M60 패튼이나 AMX-30를 통해 검증된 레오파르트 1의 L7A3 105mm 강선포는 소련 T-62를 400m 거리에서 APDS탄으로 격파가 가능하고, 날개안정분리철갑탄(APFSDS)이면 1,500m로도 격파가 가능할 것으로 보았다. T-72를 상대로도 800m 거리에서 APFSDS탄으로 전면부 장갑을 충분히 관통할 것으로 평가받는다. 부무장으로는 7.62mm 공축기관총과 전차장석에 설치한 7.62mm 대공기관총이 있으며, 약 5,500발의 탄약을 적재하여 다닌다.
서독군의 레오파르트 1A3 전차가 도로 견부에 매복 중인 모습. 1984년 11월에 촬영됐다. (출처: US Army) 엔진은 독일 MTU사의 MB838 CA M500 다종연료 디젤 엔진을 장착했으며, 최대 830 마력까지 낼 수 있다. 엔진과 변속장치를 묶은 파워팩은 교체가 용이하게 설계되어 있어 야전에서도 20분 정도면 교체가 가능하다. 토션 바(Torsion Bar) 현가장치는 일곱 개의 보기륜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뒤쪽에 드라이브 스프로켓(Drive sprocket)을 두고 아이들러(idler)를 앞 부분에 설치했다. 레오파르트 1은 필터 공기유통 장치가 설치되어 있으며, 만약의 화생방 공격이 있을 경우를 대비해 차량 내부가 완벽하게 밀봉될 수 있게끔 설계됐다. 레오파르트는 도하도 가능하여 아무 준비 없이 2.25m 깊이의 개울이나 하천을 건널 수 있으며, 도하 장비를 장착할 경우에는 최대 4m 수심의 강을 건널 수 있다.
레오파르트 1 ARV의 내부 모습. (출처: AlfvanBeem/Wikimedia Commons) 레오파르트 1 전차는 개발 당시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 전차, 통칭 IS-3가 현대화 됨에 따라 이를 상대할 목적으로 개발됐다. 당시 IS-3는 122mm 주포를 장착했고, 중량은 48톤 정도였으며, 주행 속도는 최고 40km/h를 자랑했다. 서방 국가들은 소련이 2차 세계대전 말에 가서야 IS-3 전차를 투입했으므로 뒤늦게 그 존재를 알았으며, 이를 격파하기 위해서는 주포 사거리가 IS-3보다 더 길고, 더 빠르며, 더 생존성이 높고, 더 화력이 강력해야 한다는 기본 조건으로 개발했다. 레오파르트 1의 장갑은 압연 강판 방식의 강철판이고, 포탑은 주물 형태로 주조했다.
레오파르트 1 ARV의 내부 모습. (출처: AlfvanBeem/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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