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시간이 나서 어제 피버 피치를 보다 늦게 잠들었습니다.
피버 피치는 언제나 읽어도 질리지 않고 저의 열정을 되살려주는 책이죠.
피버 피치를 보다 보니 어떤 시사잡지에서 피버 피치를 이렇게 평한 것이 생각나더군요.
-혼비를 키운 것은 8할,아니 10할 이상이 아스날이었다.
피버 피치를 보다 보니 나에게도 아스날과 같은 존재를 가진 팀이 있었다.농구대잔치 시절,삼성전자 농구단이 그랬을 것이다.라이버 현대와 세 번을 하면 두 번을 지는 팀을,나는 사랑했다......
그 삼성전자의 에이스였던, 이제는 고인이 되어 버린 분이 갑자기 생각나더군요.
이야기는 꽤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제가 그를 알게 된 건 아주 어릴 적부터였습니다.
지금도 그러시지만 저의 아버지는 스포츠를 좋아했습니다.
그 피를 아들인 제가 물려받았다고나 할까요.
아버지는 야구,축구,농구,배구 가릴 것 없이 스포츠를 다 좋아하셨죠.
(지금도 외박 나가면 저와 메이저리그,프리미어,농구 이야기를 자주 하죠.)
그 당시 겨울에는 백구의 대제전과 점보시리즈가 대세였죠.
아버지는 농구 팀 중에서 삼성전자를 늘 응원했고 어린 저도 덩달아 삼성전자를 응원하게 되었죠.
그 중에서도 삼성전자의 에이스던 10번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그가 있던 삼성전자는 농구대잔치,실업선수권(당시 팀들은 다 실업팀이죠.) 가릴 것 없이 실력은 있으나 우승과는 지지리도 인연이 없던 팀이었습니다.
기아가 없던 시절에는 재계 라이벌 현대한테 치이고,기아가 생긴 이후에는 기아한테 치이고......
마치 메이저리그의 보스턴 레드삭스 같은 팀이었죠.(그러고 보니 삼성전자 유니폼도 빨간 색이었네요.)
그러니가 제가 농구대잔치를 보던 때는 삼성이 한 번도 우승을 못했다고 보시면 됩니다.(제가 86년 생이니 제대로 본 때는 한 5살때부터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가 있을 때 삼성은 농구대잔치를 딱 두 번 우승해보는데 한 번은 84년이고 한 번은 88년에 우승을 했죠.
그는 그렇게 비운의 명가이던 삼성의 에이스였습니다.
언제나 라이벌 현대와 슛도사 이충희에 비해 스포트라이트를 적게 받았지만 제가 본 때부터 그는 어린 저의 가슴에 농구가 무엇인가를 보여준 선수였죠.
그는 이충희처럼 클린 샷을 주로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허재같은 선수는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언제나 성실했고,자기 관리에 철저했으며,뱅크샷을 무기삼아 농구대잔치 최초로 5,000점,6,000점을 돌파한 최초의 선수였습니다.
단지 그의 팀이 늘 우승을 못해서,그의 라이벌들이 언제나 쟁쟁해서 2인자로 비쳣을 뿐이죠.
제가 코트에서 그가 마지막으로 뛰는 것을 본 것은 94-95시즌이었습니다.
당시 삼성전자는 김인건이라는 명장 아래(혹 이분을 아시는 분이 있을지.......)그를 중심으로 문경은,김승기,서동철,박상관,이창수,허영,윤호영 등의 멤버들이 있었죠.
그렇지만 정규시즌 삼성은 고전에 고전을 면치 못하다 8등으로 겨우 플옵에 턱걸이하죠.
플옵 상대는 13전 전승으로 당당히 1위에 오른 연대.
많은 사람들은 연대가 당연히 삼성을 이길 거라 생각했지만 결과는 마지막 불꽃을 불태운 그가 있던 삼성이 이겼죠.(뭐,그 당시 그 경기를 봤던 분들은 삼성이 깡패 농구를 해서 서장훈과 구본근을 묵사발내서 이길 수 있었다,연대의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던 고대전에서 이상민이 발목이 돌아가서 못 나와서 그랬다라고 하지만 그의 활약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삼성은 그 여세를 몰아 4강에서 SBS를 누르고 결승에 진출합니다.
결승 상대는 숙적 허재의 기아.
그는 우승을 위해 투혼을 발휘하지만 기아의 벽을 넘지 못하고 주저앉게 됩니다.
자신의 마지막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 채,그는 2년 후배 김진과 함께 은퇴를 하죠.
그리고 프로농구에서 지도자로서 우승을 하려 노력하다,그만 불의의 교통사고로 어이없게 떠나버리고 맙니다.
자신이 보고 싶어하던 명가 삼성의 모습과 우승 트로피를 들어 보지 못한 채.......
운명의 잉글리시 클래식을 앞두고 갑자기 그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요?
어쩌면 명가라고 하기엔 초라했던 팀에 충성을 다하고 자신만의 힘으로 그의 팀이 몰락하는 것을 막아냈기 때문일 겁니다.
그가 있었기에 삼성은 명가라는 자존심을 지킬 수 있었고,뒤늦게나마 2번의 우승으로 그가 바라던 모습을 그에게 보일 수 있었습니다.
이 카페 회원분들도 우리의 거너스가 이길 때나 질 때나 충성을 다 하고 격려를 아끼지 않는 그런 이상적인 팬의 모습을 가지신 것이 저의 눈에는 그와 비슷하게 보여서 그런 걸 겁니다.(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아집과 오만으로 가득 찬 상대팀의 팬보다 훨씬 우리가 낫죠.전 그들에게는 팬이라고 부르기 싫습니다.)
제가 글 초반에 읽다가 그때 그 연대와의 경기가 생각났는데 중반에 쓰셨네요;;(전 그 당시 연대의 광팬-_-이었습니다) 그 경기보면서 삼성 안티가 됐었는데;; 이상민, 서장훈 너무 아쉬웠죠.. 서장훈 부상와중에도 뛰겠다고 울면서 벤치에서 나갈라고 하던거 코치들이 말리던 기억이 생생합니다ㅠ 그러고 보니 김현준도 연대였던가요?
첫댓글 그린치님 글은 언제읽어도 감동입니다 ^^b 뒤늣게 삼가고인의명복을 빕니다.
글잘읽었습니다 ^^ 삼가고인의 명복을빕니다 ..
행복하시길...
정말 어이없게 돌아가신분...기아 자동차의 팬이었지만 호감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글 초반에 읽다가 그때 그 연대와의 경기가 생각났는데 중반에 쓰셨네요;;(전 그 당시 연대의 광팬-_-이었습니다) 그 경기보면서 삼성 안티가 됐었는데;; 이상민, 서장훈 너무 아쉬웠죠.. 서장훈 부상와중에도 뛰겠다고 울면서 벤치에서 나갈라고 하던거 코치들이 말리던 기억이 생생합니다ㅠ 그러고 보니 김현준도 연대였던가요?
네.김현준도 연대였죠.문경은이 김현준의 직속 후배입니다.참고로 그 때 저도 연대 팬이었죠.하지만 삼성과 붙을 때는 삼성을 응원했다는......
전자슈터 김현준^^ 저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학교 다닐때 김현준을 좋아하셨어요ㅋ 그래서 저의 이름도 김현준이라는ㅋㅋㅋ 어렸을때 많이 뵈었는데 농구장가서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