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거 불발의 추억
1992년 9월 28일 밤 8시경, "따르릉~!" 교구 집사님 한 분으로 부터 전화가 왔다. 시한부 종말론에 미혹되어서 몇 달 전 부터 부천의 어느 교회당에 가서 살다시피 하는 집사님이었다.
"목사님, 마지막 인사를 드리려고 전화 드립니다."
".......?"
"오늘이 바로 그날이쟎아요. 이 밤이 저희들에게는 이 땅위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 될 것입니다."
"아니 정말 그렇게 믿으시는 거예요?"
"그럼요, 틀림없어요. 목사님은 저희 말을 그렇게 믿지 않으시고 ...휴~ (한숨 쉬는 소리) 아쉽습니다. 같이 들림 받으셨으면 했는데... 하는 수 없지요. 그러나 믿음으로 잘 (환난을) 견디세요. 그 동안 기도해 주셔서 감사하고, 저와 저희 가족을 많이 염려해 주신 것 감사합니다."
"참나..., 집사님..."
"아무튼요...오늘밤. 마지막으로 인사드립니다. 사모님, 또 모든 식구들, 또 뵈올 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집사님, 지금 어디 계세요.?"
"부천이죠. 여기서 오늘 밤 12시가 되면 휴거될 거예요."
이렇게 <타임투세이 굳바이>를 강조하면서 그 집사님은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나도 괜히 마음이 뒤숭숭하고 걱정스러워서 "만일에 있을지도 모르는 휴거"가 일어나면 나와 우리 가족도 외면치 말아 달라고 기도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이 밝아왔다.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해서 티뷔를 켰다. 티뷔에서는 어젯밤 부천에서 있었던 휴거대망하던 신도들이 교회당을 나와 부끄러운 듯 얼굴을 성경책으로 가리고 카메라를 피하여 종종 걸음으로 골목길을 빠져 나가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혹시도 모를 자살소동 등을 방지하기 위해 교회당 주변으론 많은 전경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세상에~! 교회가 대 망신을 당하게 됐구나..."
그러리라고 생각은 했지만 막상 휴거가 불발이 되고 나니까 한편 잘됐다 싶으면서도 세상 사람들 바라보기가 부끄러워졌다. 세상 사람들에게 뭐라고 말해야 하나?
"저 사람들이 잘못 알고 그런 거예요. 저 사람들 원래 이단이거든요."라고 말한다고 해서 나는 조소의 대상에서 제외가 될까? 그 사람들이 보기엔 <그 나물에 그 밥>이지 않겠는가? 그날 교인들 가정을 심방하면서 온 종일 휴거불발에 대해 생각하였다.
(참나, 하나님도 너무 하시지. 그렇게 하늘을 목마르게 쳐다보는 사람들인데, 천둥 번개라도 한 번 번쩍 보여주시지 않고, 오히려 다른 날 보다도 더 하늘은 명랑하고 별빛이 총총하게 해 주시다니...)
너무 야속하신 것 같기도 했다. 몇 날 동안 그 집사님한테서는 아무 말도 없었다. 나도 얼마 동안 가만히 있다가 일주일 쯤 지낸 뒤에 먼저 전화를 했다. "집사님, 별고 없으시죠? "시치미를 떼고 말했다. 그랬더니 많이 지쳐있고, 기가 죽은 목소리다.
"네, ...전화 주셔서 감사합니다."
"궁금하기도 하고...그래서."
"..사실 이번에 무슨 착오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그렇게 열심히 매달려보고, 기도해 본 것에 대해서는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덕분에 회개도 많이 했고, 준비도 많이 했으니까요. 이래저래 합력하여 선을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기는 여전히 살았구나!)
"음, 그렇게 생각하시면 됐네요. 건강하시고 평안하세요."
내가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위로해 줄려고 전화했다가 또 설교를 듣고 나니 말문이 막혀서다. ㅎ 20년이 다 되어가는 데도 그 날의 해프닝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 날의 미스터리는 파헤쳐져야 하는데, 아직도 그 일에 발 벗고 나서는 사람은 없는 모양이다. 선량한 신도들을 공포와 불안과 미신에 사로잡히게 해 놓고도 그 사람들은 지금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듣기에는 이름을 바꾸고 여전히 목회를 한다는 말도 있던데... 그 때 너무도 속은 탓인지 나는 휴거 운운하면 우선 경계심마저 든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 때 쯤에 어느 짓궂은 성도 한분은 그 설을 퍼뜨리고 있던 목사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목사님 말씀처럼 금년 9월 28일에 휴거가 온다면, 지금 가지고 있는 재산 다 무엇에 쓰겠습니까? 저에게 다 주실 수는 없는가요? 마지막으로 좋은 일 한번 하십시오." 그런데 그 말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분은 시한부 종말론이 뻥이라는 것을 진작 알았노라고 의기양양하게 말하고 다닌다.ㅎ
글쎄 왜 묵묵부답이었을까? 정말, 자신은 실제로 시한부종말론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아니면 혹시나 휴거되지 못하면 피난이라도 가서 살아야 하니까 그 때를 위하여 재산을 아껴야 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재산을 다 못쓰게 되는 한이 있어도 "너 같은 작자에게는 못줘!"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정답은 알 수가 없다. 그 사람만 아는 것이리라. 그런데 추론하건데 만일 정답이 첫 번째라면 문제가 크다. 실상은 자기도 확신하지 않으면서 추정하고 과장하고 부풀려서 사람들을 혹세무민하여 치부의 수단으로 삼았다면 악질범죄요, 사회악인 것이다. 우리는 종말에 관해 이야기 하면서 조심해야 한다. 정말 자신은 확신을 하는지, 그래서 그렇게 말한다면야 누가 뭐라 하겠는가?
그러나 만일 사람들 얼을 빼놓고 호주머니를 털려는 강도 같은 마음으로 그런다든지, 괜히 사람들 가지고 장난치려는 마음으로 <양치기의 거짓말>을 한다면 당장 그만 두어야 할 것이다. 그로인해 교회는 더더욱 사회로 부터 불신을 받게 되고, 진짜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날 모두 잠들어 버리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기엔 그리스도께서는 오신다. 머지않아 분명히 오신다. 공중휴거가 될 것인지, 비밀히 모임이 될 것인지, 홀연한 변화가 될 것인지,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지만, 주님은 분명히 오신다. 그러므로 교회는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그 준비는 벌벌 떠는 것이 아니다. 우왕좌왕하는 것이 아니다. 이상한 예언과 신비한 현상에 빠져드는 것이 아니다. 세상일에서 손을 떼는 것도 아니며 세상을 등지는 일도 아니다.
주어진 가족들을 사랑하고, 십자가의 주님을 사랑하고, 그 분을 본받기 위해 애쓰며, 탐심과 허영을 버리고, 더 온유하고, 겸손하며, 사람들에게 정직하고 신실하며, 불쌍한 자들을 은밀히 구제하며, 이웃에게 선을 행하는 것이다. 이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성도가 가져야 될 진정한 재림대망의 자세인 것이다.펌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그것이라."(살전 2:7)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