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28일 (목) 촬영.
네 번째 고백
"그림은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툭툭 튀어나온다. 마음속으로부터...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이 밝은 거울이나 맑은 바다처럼 순수하게 비어 있어야 한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잡다한 얼룩과 찌꺼기들이 많다. 기쁨, 슬픔, 욕심, 집념들이 엉겨서 열병(熱病)처럼 끓고 있다.
그것을 하나하나 지워 간다. 다 지워 내고 나면 조그만 마음만 남는다. 어린이의 그것처럼 조그만...
이런 텅 비워진 마음에는 모든 사물이 순수하게 비친다. 그런 마음이 돼야 붓을 든다. 장욱진, 경향화랑,<주간경향> 1979.10.7.
내 마음으로서 그리는 그림
장욱진의 네 번째 고백, 여기서는 그의 1970년대 이후 곧 노년기를 살펴본다.
흔히 이야기하는 수안보 시기부터 용인(신갈) 시기까지의 작품들이다. 장욱진은 평생 730여 점의 유화를 남겼다.
그 가운데 80%에 달하는 580여 점이 이 마지막 15년 동안 그려진 것이다.
실제 1973년 전후로 그의 작품에서는 1960년대까지 주를 이루던 강한 마티에르가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그림의 색층은 더욱 얇아지고, 수묵화나 수채화처럼 묽은 물감이 스며드는 듯한 담담한 효과를 유지한다.
마치 먹으로 그린 동양화를 캔버스에 옮겨 놓는 듯한 느낌을 자아내는 것이다.
또 민담이나 고사 같은 이야기나 조선시대 문인화에서 보았던 소재들도 새로이 등장하며,
고구려 고분벽화나 민화를 연상시키는 화법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처럼 동양의 정신과 형태를 일체화시킨 유화는
결국 <금강경>의 핵심 사상인 '무상(無相)'으로 집약된다.
하늘로 둥둥 떠다니며 공중 부양하는 사람들, 시공간을 초월한 그의 말년 작들은 모든 사물은 공(空)이라 일정한 형태나 양상이
없다는 '응무소주(應無所住)', 즉 "응당 머무르는 바 없이" 모든 집착을 떠나 초연한 지경인 '무상(無相)'을 여실히 드러낸다.
평면성과 압축성을 보이는 그의 초기작들이 서구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아 사물의 속성을 추출하여 본뜬 '추상(抽象)'의
작업이었다면, 말년으로 갈수록 깊어진 그의 성찰과 내면세계는
'무상(無相)'의 작업으로 이어져 생략과 압축, 시공간의 초월을 통해 진정한 한국적 모더니즘을 창출해냈다.
호도, 虎圖 / 1975, 캔버스에 유화 물감,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호랑이가 아이에게 젖을 물렸다는 민담을 형상화한 이 작품은 1975년부터 장욱진의 그림에 반복적으로 표현되는 주제 중 하나이다.
자신의 그림 속 호랑이를 가리키며 "옛날 호랑이는 아이를 재웠어."라고 말했다는 일화처럼,
장욱진은 민담으로부터 호랑이에 대한 모티브를 얻어 사람과 자연의 존재론적 동등성과 조화로운 삶의 모습을 지향했다.
호랑이를 맹수가 아닌 인간과 함께 있는 친밀한 대상으로 묘사하는데,
이를 통해 인간과 동물(자연)의 융화와 공존을 소망하는 사유를 확인할 수 있다.
산과 호랑이 / 1981, 캔버스에 유화 물감,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장욱진의 작품에 등장하는 호랑이는 사납고 공격적인 이미지가 아닌 사람을 지켜주고 보호해 주며, 사람과 가까운 존재로 그려진다.
장욱진의 호랑이는 마치 사람처럼 콧수염과 턱수염이 있거나 때로는 고양이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이렇게 친근하고 익살스러운 표현은 민화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호랑이와 아이 뒤에는 까치와 산, 해와 달이 보인다.
까치는 화면의 정중앙에 위치해있고 세 개의 산봉우리와 해와 달은 일월오봉도를 연상케 한다.
해와 달과 호랑이 / 1987, 캔버스에 유화 물감,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호랑이와 아이의 주제가 크게 부각되었고
산의 표현과 해와 달이 매우 평면적이고 도식적으로 그려져 있어 민화와의 친연성이 강하게 돋보이는 작품이다.
호랑이와 아이 / 1988,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 소장.
화면 옆에서 평면적인 나무 도상이 불쑥 튀어나오고, 그 아래로는 호랑이와 아이를 매우 크게, 클로즈업 시켜 그렸다.
구도가 특이할 뿐 아니라 호랑이와 아이의 표현 역시 매우 평면적이면서도 구불구불한 형태를 띠고 있다.
호랑이의 발톱이 유난히 날카로워 아이를 위협하는 듯하지만, 표정만큼은 여전히 순박하다.
산 / 1981,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 소장.
도인 / 1978,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 소장.
화면 가운데 두 노인이 앉아 있다. 왼쪽 노인은 다리를 모으고, 오른쪽 노인은 다리를 벌리고 앉아 있어 화면에 재미를 자아낸다.
화면 하단의 나무와 새는 한 쌍의 범주로 표현되어 상반된 속성이 대칭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는 반대되는 속성을 지닌 자연 정물들의 조화로움과 균형을 말하는 음양론적 관점을 확인할 수 있다.
유화 물감을 칠하고 테레빈유로 지우는 과정을 통해
얇게 물들인 듯한 배경과 화면 상단에 멀리 보이는 문은 관념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한다.
풍경 / 1978,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 소장.
명륜동 시기에 그린 작품이다. 중앙에 둥근 나무가 우뚝 서 있고, 그 옆에 팔작지붕의 누정이 좌우 대칭을 이루며 배치되었다.
상단에는 원경의 산세가 두 개의 단층으로 분리되어 길게 펼쳐지고, 그 위로 새들이 띠를 이루며 날고 있다.
장욱진은 산세를 그릴 때 붉은 기운이 감도는 고동색을 진하고 편편하게 바른 다음, 초록색의 가로줄로 구불구불한 산줄기를
표현했다. 이러한 율동감 넘치는 산등성이 표현은 고구려의 무용총에 그려진 수렵도 벽화와의 관련성이 엿보인다.
산수 / 1986, 캔버스에 유화 물감, 양주시립 장욱진미술관.
나무 / 1985,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 소장.
화면 아래쪽 녹색의 둔덕 위에 난을 심은 화분이 놓여 있고,
잘 그려지던 소재가 아닌 여치가 한 마리 풀숲에 들어와 있는 장면을 그렸다. 중앙의 나무는 마치 소용돌이처럼 휘어지고 있는데,
까치 한 마리가 그러한 움직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위에 앉아있다.
리듬감 있는 형태와 밝은 색감, 그리고 시원한 여백의 활용으로 시정이 넘치는 그림이다.
풍경 / 1983,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 소장.
풍경 / 1987, 캔버스에 유화 물감,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배경과 바닥을 다 생략하고 대상만을 간략하게 그려낸 작품으로 동양화의 기법적 특징을 유화에 적용한 작품으로 주목된다.
캔버스에 유화 물감으로 그린 서양화지만 동양화의 몰골기법 즉, 대상을 선으로 묘사하고 채색을 가하는 방식이 아닌
붓질 만으로 형태를 묘사하여 보다 내밀하고 정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가로수 / 1978,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 소장.
장욱진의 고향 인근의 국도의 풍경을 그린 그림으로 알려져 있다.
가로로 길게 뻗은 국도와 세로로 우뚝 솟은 포플러 나무 세 그루가 수평과 수직의 대조를 이루며 화면에 긴장감을 부여한다.
가로수 아래에는 엄마, 아빠, 아들로 추정되는 가족이 서 있고, 그 뒤를 강아지와 소가 따르고 있다.
가로수 위에 엉뚱하게 표현된 가옥과 누정은 멀리 보이는 마을 같기도 하고,
3인 가족이 머물고 싶은 상상의 집 같기도 하다. 이러한 독특한 구성과 표현 때문인지 이 작품을 소장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무척 많아
유족이 이 그림을 일부러 숨겨 둘 정도였다고 한다.
"나는 심플하다."
이 말은 내가 항상 되풀이 내세우고 있는 나의 단골말 가운데 한 마디지만
또 한 번 이 말을 큰 소리로 외쳐 보고 싶다. "나는 깨끗이 살려고 고집하고 있노라."
가로수 / 1986,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 소장.
들 / 1986,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 소장.
1986년 용인의 집과 주변의 풍경을 그린 그림이다.
당시 주변의 경작지인 다랑논과 일하는 사람들, 나무 아래 쉬고 있는 사람들, 소, 나무와 까치, 아이, 닭과 개 등이 묘사되어 있고,
집 안에는 화가와 그의 부인이 표현되어 있다. 장욱진의 작가 정신 중 하나는 자족(自足)의 태도이다.
그는 짐승과 인간,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평화로운 모습을 일관적으로 추구했다.
주변에 실재하는 대상과 자연을 중심으로 자족하며 살아가려 한 화가의 태도는 삶의 방식에서도 나타나며,
장욱진의 작품은 '그의 삶 자체'임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강 풍경 / 1988,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 소장.
강가의 정경을 물고기 두 마리와 배 한 척으로 표현한 해학적인 작품이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강물은 여백을 주고 산과 강의 경계가 없는 공간으로 처리했다.
화면 가장자리를 황토색으로 구획하여 마치 창문 너머로 보이는 강가를 포착한 것 같은 시각적인 효과를 첨가했다.
두꺼운 윤곽선과 패턴으로 표현된 두 마리의 물고기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유영하고 있어 그림에 활력을 부여한다.
반면 나머지 경물에는 번짐을 활용한 몰골법을 구사하여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수안보 풍경 / 1986,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 소장.
장욱진은 1986년 초 잠시 넷째 딸이 살고 있는 부산의 해운대에서 머문 적이 있다. 이 작품은 이 시기에 그려진 그림이다.
탁 트인 넓은 동해를 바라보며 첩첩이 산으로 둘러싸인 벽지의 작은 화실을 떠올린 듯,
제목은 '수안보 풍경'으로 붙였으나 화폭에 담겨진 것은 해운대 앞바다의 풍경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동양화 모필의 '일필휘지'를 응용한 푸른 물결과
오륙도를 연상시키는 큰 섬은 장욱진의 다른 강 그림에서 보기 드문 요소들이다.
새 / 1988,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 소장.
기도하는 여인 / 1988,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 소장.
위로 오르는 여인과 아래로 내려가는 까치의 대비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흰옷을 입고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모은 여인은 장욱진의 작품에서 불공을 드리는 인물 도상에서 변형된 것이다.
공양과 기도 무엇인가를 갈구하는 마음의 표현이다. 하늘로 날아오르는 여인과 지상으로 빠르게 내려오는 까치의 모습이 교차되는데,
여기에 기울어진 세 그루의 나무가 속도감을 더한다. 오르고 내린 두 존재는 지상의 작은 집 안에서 만난다.
황톳길 / 1989,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 소장.
1951년 <자화상>에서 보았던 황톳길이 다시금 등장한 작품으로 산을 가로질러 길을 낸 작품은 한국회화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러한 붉은 길 혹은 땅의 요소는 장욱진 작품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요소 중 하나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황톳길이 더욱 선명하게, 또한 직선으로 뻗어있어 더욱 주목된다.
황톳길은 뒤편 산꼭대기의 천상(天上)의 마을로 가는 통로처럼 표현되어 그 길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한다.
길에서 / 1987, 캔버스에 유화 물감, 양주시립 장욱진미술관.
안뜰 / 1990,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 소장.
장욱진이 세상을 뜨기 전 두 달 전인 10월에 그린 마지막 두 점의 유화 작품 중 하나이다.
뼈대처럼 집과 인물을 그린 것은 1973년작 <부엌과 방>을 연상시킨다.
말년에 지금까지 본인이 시도했던 여러 방식들을 다시 한번 회고하는 측면에서 그려진 작품으로 보인다.
집과 울타리 등은 추상적인 평면성을 띠지만, 공간감을 암시하고 있으며,
정면이 아닌 측면으로 그려진 화면의 구도는 장욱진의 뛰어난 조형 감각을 다시금 확인시켜준다.
닭과 아이 / 1990, 캔버스에 유화 물감, 양주시립 장욱진미술관.
민화의 특성으로 꼽히는 단순성, 해학성, 상징성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화면의 정가운데 위치한 수탉은 이 그림의 주인공답게 당당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데,
동일한 굵기의 노란 윤곽선과 주황, 초록, 하양의 채색이 다양하게 배합되어 매우 장식적으로 보인다.
이러한 수탉의 모습은 윤곽선 없이 단색으로 깨끗하게 선염된 나무, 집과 대비된다.
여기에 상단에 달과 함께 배치된 인물이 하늘을 날며 하강하는 모습은 그림의 해학성을 더욱 고조시킨다.
기도 / 1990,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 소장.
길 / 1983, 캔버스에 유화 물감,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언덕 풍경 / 1986,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 소장.
세 그루 나무 / 1987, 캔버스에 유화 물감,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밤과 노인 / 1990,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 소장.
<밤과 노인>은 장욱진이 세상을 떠나기 두 달 전 그린 그림이다.
왼쪽 상단에는 흰 도포를 입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노인 혹은 도인으로 보이는 인물이 있는데, 자신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 같다.
화면 오른쪽에는 화가가 사랑했던, 그리고 그의 일부로 표현되던 집, 까치, 나무, 아이가 있다.
노인의 표정은 세속에 초탈한 듯하고 만사를 관조하는 모습이다.
수안보 풍경 / 1980, 캔버스에 유화 물감,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장욱진이 수안보로 막 이사한 직후인 1980년에 완성된 작품으로, 화면은 하단에 누워 있는 사람,
그 위에 지구를 연상시키는 둥근 지평선, 상단에 아스라한 산등성이와 해 등을 배치한 삼단 구도로 구성되었다.
하단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상은 장욱진의 딸로 알려져 있다.
누워 있는 딸은 마치 중국의 위 진 남북조 시대에 종병(宗炳)이 <화산수서,畵山水序>에서 언급한 "와이유지(臥以遊之)",
즉 누워서 산수를 감상하며 노니는 상태를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누워 있는 아이 / 1974,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 소장.
화가가 덕소 화실에 걸어 놓고 감상하던 그림이다.
유화임에도 수묵 담채적 표현이 돋보이며, 대칭을 이루는 나무, 새, 집, 해, 아이, 개, 언덕 위의 희미한 능선이 조화를 이룬다.
왼편 나무 위의 새는 어딘가를 응시하며 누군가 기다리는 것처럼 보이는데,
새가 앉아 있는 나무가 휘어져 있어 그 기다림의 무게가 느껴진다.
아이는 태평스럽게 누워 있고 아이 옆의 강아지도 동요함이 없다. 언덕에 누워 자연과 일상의 대상을 바라보고 있는 아이의 시선은
관조의 미학을 담아내고 있으며, 감정의 긴장에서 해방을 느끼는 듯하다.
무제 / 1974,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 소장.
올이 굵은 마대천 위에 엷게 바탕칠을 한 후 바로 그려내어 캔버스의 결이 그대로 드러난 작품이다.
폭포가 흐르는 심산유곡과 자연의 한 가운데 들어와 있는 도인의 모습에서 탈속적 경지가 느껴진다. 이 작품은 장욱진과 함께
목판화선집 Zen: Wisdom of Asia를 제작했던 소호 김철순이 소장했던 작품이다.
"세상이 어지러우면 은둔하여 발이나 닦으리라"는 염원을 담아냈던 조선시대 <탁족도,濯足圖>를 연상케 하는 작품이다.
전통적인 문인화 주제에 민화의 채색법이 혼용된 장욱진의 독창성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정자 / 1981,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 소장.
정자에 앉아 있는 장욱진에게 화가의 부인이 강아지와 함께 찾아오는 듯한 정겨운 장면이다.
하늘의 광활함과 시원한 해가 녹색으로 한 붓에 그려짐으로써 드넓은 자연 속의 한가로운 일상을 묘사하고 있다.
캔버스에 유화 물감으로 그린 그림이란 사실이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동양화와 서양화의 경계를 넘어선 장욱진의 독자적 예술세계를 보여준다.
초당 / 1975,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 소장.
낚시 / 1981,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 소장.
깊은 산골 풍경을 엷은 유화 물감으로 흐릿하게 포착한 산수화이다.
강물과 언덕의 지평선을 지그재그로 구획하며 뒤편의 둥근 산세를 겹치게 그려 넣어 산수의 깊이를 부여했다.
낚시를 하거나 언덕을 산책하는 전경 인물상과 지평선에 걸쳐진 후경 인물상의 크기를 다르게 해 원근감을 나타냈고,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과 멀리서 바라보는 시점을 혼용하여 공간감을 표현했다.
동아시아 전통회화에서 쉽게 목격할 수 있는 경물의 경계가 겹치도록 하여 삼단 구도를 이루며
수직 상승하는 산수화의 구도가 유사하다. 화면 곳곳에는 묽은 물감이 뭉쳐서 그대로 남아 얼룩이 남아있고,
캔버스 바탕의 올이 그대로 드러난 부분은 동양화의 담채 기법과도 닮아 있다.
시골 풍경 / 1986,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 소장.
장욱진이 고미술의 도상 및 함의에 대한 인식이 깊을 뿐 아니라 옛 그림의 형식에 대한 이해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하늘에 뜬 붉은 해, 가지만 뻗어 있는 나무, 그 위에 앉은 새의 조합은 고구려 고분 벽화인 각저총의 씨름 장면에서 발견되는
소재들이다. 동양 고전에서는 동쪽 바다의 해가 뜨는 곳에 신성한 나무인 부상수(扶桑樹)가 자란다고 한다.
또한 장욱진은 '張旭鎭'이라고 새긴 주문방인(朱文方印, 양각으로 새겨 글씨 부분이 붉게 나오는 네모난 도장)의 인장을 찍었다.
이 도장은 전각의 명인인 청사(晴斯) 안광석(安光碩, 1917~2004)이 새긴 것이다.
장욱진은 청사의 도장을 받고 찍어보고 싶은 마음에 이 그림을 빠르게 완성해 찍었다고 전한다.
차 달이는 아이 / 1981,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 소장.
둥근 나무 한 그루를 중심으로 주변 소품을 그려 넣었다.
중앙에 우뚝 서 있는 둥근 나무 위에 집과 인물상이 나란히 배치되어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지구를 보는 듯하다.
나무 아래에서 차를 끓이고 있는 소년은 동아시아 전통 회화의 고사인물도에 자주 등장하는 전다(煎茶)의 동자를 연상시킨다.
윤필로 나무, 길, 집 등을 옅게 그리되 윤곽선을 생략했으며,
대신 유분 많은 채색이 번질 때 생기는 얼룩을 그대로 활용하여 각 사물의 형태를 완성했다.
달맞이 / 1981,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 소장.
화면 양쪽으로 겹쳐진 언덕 위로 둥근달이 아련하게 떠 있고,
언덕 위에는 벌거벗은 아이들이 자연 속으로 환원된 듯 자유롭게 뛰놀고 있다.
언덕에 거꾸로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 두 명은 실제 동산에 누워 달을 바라보고 있으며,
그 사이로 동산을 오르는 강아지 한 마리가 화면에 재미를 더한다.
화면 양쪽으로 겹쳐진 언덕 위로 둥근달이 아련하게 떠 있고,
언덕 위에는 벌거벗은 아이들이 자연 속으로 환원된 듯 자유롭게 뛰놀고 있다.
언덕에 거꾸로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 두 명은 실제 동산에 누워 달을 바라보고 있으며,
그 사이로 동산을 오르는 강아지 한 마리가 화면에 재미를 더한다.
가족과 나무 / 1983,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 소장.
나무는 마치 먹으로 그린 듯 일필휘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실제 짙은 녹색으로 그려져 나무의 강렬한 생명력이 유난히 강조된 그림이다.
나무 아래에는 초막에서 신발을 벗고 낮잠을 즐기는 이와 차를 다리는 동자가 묘사되어 한가로운 이상적인 풍경을 그리고 있다.
무제 / 1984, 캔버스에 유화 물감, 한솔 문화 재단.
기도 / 1988,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 소장.
산수 / 1987,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 소장.
하단 언덕의 집과 정원, 중간의 나무 세 그루, 상단의 안개 낀 산 등 다양한 경물을 삼단으로 배치했다.
이 그림에 등장하는 구도나 소품들은 문인들이 향유하던 분재, 수석, 학을 소재로 삼았는데, 단순한 문인화의 제재라기보다
오랜 기간 한반도에 전승된 기억과 추억의 '고전물'에 가깝다.
이것은 국립 박물관에 근무하는 동안 가까이하며 수용한 고미술의 모티브가 자연스럽게 드러나면서 한국성으로 표현된 것으로 보인다.
산하 초가 / 1988,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 소장.
온통 안개로 둘러싸인 산속의 초가집을 짓고 사는 가족의 모습을 담아냈다.
유난히 산속의 안개가 강조된 모습으로 장욱진은 안개를 아무것도 칠하지 않은 여백으로 둔 것이 아니라
흰색 물감을 사용하여 질감이 느껴질 정도로 채색하였다.
묘사된 나무 역시 건장한 청년의 나무라기보다는 구부정한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어 작품에 운치를 더한다.
노인 / 1988, 캔버스에 유화 물감, 양주시립 장욱진미술관.
도인 / 1988,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 소장.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는 도인의 모습과 문인화의 소재인 학, 수석, 난 화분들이 정경(情景)을 이룬다.
자연에 둘러싸인 집 안에 있는 인물의 모습 또한 문인화적 요소이며, 안에서 밖을 보고 있는 도인은 자연을 동경하고
자연 속에서 살고자 한 화가 자신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장욱진 회화에서 감상하면서 즐거워하는 대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몸소 그 안에서 생활하는 가거(可居)의 장소이다.
이처럼 화가는 자연을 따르고 자연에 동화되려 한 자신의 심미관을 회화에 드러내고 있다.
풍경 / 1988,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 소장.
전형적인 문인 산수화의 소재와 모티브를 취한 작품이다.
나무와 집, 학의 배치를 모두 사선 방향으로 설정한 구도가 재치 있다. 까치와 학의 다리가 수직으로 뻗어 있고,
산이 수평적으로 놓여 사선으로 그려진 사물들의 동세에 균형을 잡아주고 있다.
집 / 1989,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 소장.
한 울타리 안에 모여 있는 전통적인 주거 공간을 포착한 작품이다.
화면 하단의 대문에는 여인과 강아지가 서 있고, 그 옆으로 돌담이 있다.
담벼락의 곡선과 상단 양옆에 그려진 나무가 연결되어 둥근 원을 형성한다.
집 안쪽에는 팔작지붕, 맞배지붕의 건물 세 채가, 마당 한가운데에는 마주 보고 서 있는 닭 두 마리가 보인다.
장욱진은 검은색 물감과 테레핀유를 넉넉하게 섞은 다음 윤필의 빠른 붓놀림으로 담벼락, 건물, 나무의 형상을 그려 냈다.
동양의 모필 끝에 먹을 묻혀 휘호할 때 나타나는 농담, 태세, 비수를 활용했다.
나무와 산 / 1983, 캔버스에 유화 물감,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옅은 바탕에 바람 속에 있는 듯한 나무와 그 곁의 검둥개, 나무 위 새 한 마리, 세 개의 산봉우리와 붉은 해를 그렸다.
작은 태양과 산의 부분을 제외하면 모두 검은색으로 그려져 있다.
캔버스에 그린 유화이지만 마치 종이 위에 먹으로 그린 그림처럼 느껴진다.
장욱진은 1980년부터 바람에 나부끼는 듯한 나무를 그렸는데,
이 작품은 특히 붓질의 빠른 속도와 즉흥성으로 인해 나무의 생동감이 두드러져 인상적이다.
불교 주제의 그림은 아니지만 깨달음의 순간을 상징하듯 빠르게 몇 개의 선으로 그려 내는 선종 화풍이 감지된다.
나무 / 1983,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 소장.
집 / 1984,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 소장.
간결한 화면 구성에서도 마치 캔버스에 먹의 농담을 조절하듯 가운데 나무의 표현을 진한 먹빛으로 강하게 그려내어
화면의 힘을 실어주고 있다. 집의 묘사 역시 여타 다른 채색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집안 인물들의 포즈를 다양하게 그려 넣음으로써 이야깃 거리를 던져주며 시선을 머무르게 한다.
나무와 가족 / 1982, 캔버스에 유화 물감,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화면 중앙 언덕에 서 있는 나무 한 그루와 그 아래 아빠, 엄마, 아들로 보이는 가족 세 명을 그려 넣었는데,
전통적인 동아시아 회화의 산수인물화 형식의 구도를 취했다.
기법적으로는 붓끝을 여러 갈래로 갈라지게 해서 긋는 파필(破筆)을 사용하기도 하고,
인물 표현에서도 획의 굵기와 가늘기의 변화나 짙음과 옅음을 서로 달리했다.
붓이 멈춘 자리에는 물감이 엉켜 붙은 독특한 얼룩이,
붓질이 빠르게 지나간 자리에는 붓끝의 갈라짐과 삐침이 생겨, 그 결과로 예상치 못한 여백이 연출되기도 했다.
강 / 1982, 캔버스에 유화 물감, 개인 소장.
언덕, 상, 절벽, 나무를 다양한 시점으로 포착한 산수풍경화이다.
양옆 절벽과 그 위 정자와 소나무는 붓 자국 없이 두껍게 바른 진채(眞彩)로,
언덕과 배 위에 탄 어부는 번짐이 풍부한 선염(渲染)으로, 원경의 산은 옅은 호분과 가벼운 윤곽선으로 구사했다.
마치 한 폭의 문인 산수화를 보는 듯한 이 작품의 실제 주제는 흐릿한 선과 채색으로 표현된 작품의 정중앙에 위치한 인물들이다.
비스듬한 배 한 척과 그 위에서 노를 젓거나 앉아 있는 인물상을 그려 넣어 여백으로 남겨진 부분이 넓은 강임을 암시한다.
첫댓글 대단원의 1~4부를 마치셨나요
존경과 감사의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언제든지 편안하게 다시 감상할 수 있으니
얼마나 기쁜지요
애많이 쓰셨습니다~~
옙..장욱진 회고전은 몇 번을 봐야
잼있는 즐거움을 느낄꺼 같아요
새로운 그림이 많으니까요
늘 응원해 주셔서 고맙습다. 건승하세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