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주 쇠라(Georges Seurat, 1859~1891, 프랑스의 新인상주의 화가), ‘그랑드 자트섬의 스케치’, 1884~1886년, 나무판에 유채, 1.55×2.43m, 시카고 아트인스티튜트 소장
형사조정제도를 활용해 보세요
지하철이나 택시에서 손전화기를 두고 내린 적 있죠? 전화기에는 중요 정보가 담겼고, 주로 사업에 활용하는 것이라 없으면 참 곤란합니다. 전화해 봐도 받지 않고, 좀 지나면 전원이 꺼져 있습니다. 며칠 동안 고생하여 폐쇄회로 영상을 뒤지고, 경로를 추적하여 겨우 범인(?)을 찾습니다. 남의 전화기를 가져간 것이 범죄일까요?
이런 사건은 자주 일어납니다. 전화기를 가져간 사람은 심각성을 몰랐을 수 있으나 본인은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을 형법 360조 점유이탈물 횡령죄라고 하며 ‘타인의 점유를 이탈한 재물을 횡령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 원 이하의 벌금 또는 과료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작년 11월 울릉도에 가는 배에서 보조전지를 충전하다가 하도 멀미를 심하게 하는 통에 잊고 내렸습니다. 해운사로 이리저리 전화해 봐도 찾을 길을 알 수 없었습니다. 다음날 되돌아 갈 때 직원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청소하면서 발견한 것은 없다’는 퉁명스러운 대답만 들었습니다. 나도 폐쇄회로에 기록된 영상을 찾아봐야 하나 고민하다가 접었습니다. 직원이 형사 범죄로 인식했다면 태도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만.
우리 일상생활에서 행동을 잘못할 때에는 대개 민사 책임을 집니다. 잘못했다는 것을 알고 뒤처리에 합의하면 좋겠지만 상대방이 오리발을 내밀 때에는 민사 절차로 풀려면 참 힘듭니다. 민사로 가면 소송제기, 변론, 판결, 강제집행에 비용과 시간이 들지만, 형사죄로 고소하면 경찰이나 검찰이 조사해서 결과를 알려주니 사건을 쉽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민사사건의 형사사건화입니다.
보기를 들면, 돈을 빌려주었는데, 갚을 능력이나 생각이 없었다고 주장하면서 사기죄로 고소하는 것이죠, 사기죄는 10년 아래의 징역이나 2천만 원 아래의 벌금을 규정하여 죄가 무겁습니다. 당사자로서는 심적 부담이 큽니다.
우리나라에는 형사 사건이 많습니다. 검찰청 통계를 보니 고소사건이 2019년에 65만여 건이 생겼습니다. 일본이랑 비교해 보면 몇 배가 된다는 둥 하면서 국민성을 탓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일부 악의를 가진 경우를 빼고는 사건을 즐기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사건이 생겼으니 빨리 해결하려는 욕심에서 나온 일이겠지요.
형사든 민사든 사건에 휘말리면 참 힘듭니다. 민사 사건에서 재판 날짜만 잡혀도 며칠 전부터 잠이 제대로 오지 않는데, 형사 사건이 생겨 경찰이나 검찰 조사를 받을 날이 오면 심적 부담이 많습니다. 형사 고소는 이런 압박감을 이용합니다.
자기 뜻과 상관없이 사고는 생길 수 있는데, 사고가 생긴다면 어떻게 수습할지가 중요합니다. 경찰 조사, 검찰 조사, 그리고 형사 재판으로 이어지면 보통 일이 아닙니다.
검찰청은 당사자끼리 서로 합의하도록 도와주는 제도를 운용합니다. 형사조정제도입니다. 저도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형사조정위원으로 2007년부터 참여하고 있습니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서로 연락하기 어렵고, 어렵사리 연결되더라도 본인들이 직접 풀기 어렵습니다. 이럴 때 중간에서 조정위원이 양쪽 의견을 존중하면서 타협점에 이르도록 도와주는 제도입니다. 피해자는 사건을 빨리 간편하게 해결할 수 있고, 가해자는 민사상 피해를 물어주지만 상대방에게 처벌을 바라지 않는다는 뜻으로 합의하는 것이므로 사건이 곧장 해결되거나, 후속 처리에서도 그 합의한 사정을 참작해 줍니다.
작년 해넘이 무렵에 문자 쪽지를 받았습니다. 형사조정 예산이 모자라 작년에 수당을 제대로 지급하지 못했는데, 올해에도 사정이 달라질 것 같지 않다. 그렇다고 형사조정제도를 없앨 수는 없으니, 3월부터는 조정 횟수를 줄여 운영하겠다고 알려온 것입니다. 조정 수당 예산이 없어서 횟수를 줄여서 운영하겠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조정 수당이 많고, 그렇게 예산이 많이 들어가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억 억 억하는 예산이 여기저기에서 낭비된다는 말을 자주 듣는데, 정작 돈을 어디에 써야 할지를 몰라서 그런 걸까요?
형사조정제도는 각 지방 검찰청에서 운영하고 있을 겁니다. 형사사건에 얽혀 사건이 검찰로 넘어가면 조정을 신청해 보십시오. 돈도 들지 않고, 빠르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사건 당사자에게 복지의 한 형태가 되지않을까 싶습니다.
[퍼온 글] / 출처; 2020.03.03에 받은 자유칼럼그룹의 e메일 / 필자소개; 고영회{진주고(1977), 서울대 건축학과 졸업(1981), 변리사, 기술사(건축시공, 건축기계설비). (전)대한기술사회 회장, (전)대한변리사회 회장, (전)과실연 공동대표, 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명자꽃
코로나 인사법
코로나19의 기세가 대단하다. 결혼식・돌잔치 등이 줄줄이 취소되는가 하면 각종 모임과 단체 활동은 아예 사라졌다. 일상을 마비시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 간 접촉이 감염 원인이다 보니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한다. 불특정 다수를 잠재적 감염자로 인식하고 자리를 같이하기를 꺼리게 된다.
급기야 코로나19가 인류의 인사법까지 바꿀 태세다. 악수는 세계 어디서나 통용되는 인사법이지만 요즘은 기피 1순위다. 몇해 전 영국 웨일스 애버리스트위스대학의 연구 결과 주먹인사보다 악수의 세균 전파력이 20배나 높게 나타난 것을 떠올리면 공포심은 배가된다. 주변에서 악수 대신 주먹이나 팔꿈치를 맞부딪치거나 목례, 눈인사로 대신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목격한다. 중국과 대만에서는 한 손은 주먹을 쥐고 다른 손으로 주먹쥔 손을 감싸는 공수를 권한다.
나라별로 내려오던 독특한 인사법도 위협받고 있다. 미국에서는 포옹을 하고, 아랍에서는 코를 맞대 문지르는 코인사인 ‘에스키모 키스’를 애용한다. 뉴질랜드 마오이족은 이마와 코를 맞대는 ‘홍이’를 한다. 모두 코로나19 사태에서는 금기시되는 행위다.
유럽에서는 서로 양 볼을 번갈아 맞대는 볼키스 인사법인 ‘비즈’로 유명하다. 코로나19 공포가 유럽으로 확산하면서 프랑스와 스위스가 비즈 자제를 권고하고 나섰다. 이탈리아 극우성향 인사는 오른팔을 높이 들자고 했다가 파시즘을 떠올린다는 이유로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악수는 상대방을 공격할 뜻이 없다는 의사표현이다. 나아가 잡은 손을 흔드는 것은 소매에 무기를 숨기지 않았다는 신호다. 형태만 다를 뿐 다른 인사법 역시 본래의 의미는 같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신종 바이러스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을 가까이하지 못하니 스트레스가 커진다. 마음의 병이 더 두렵다.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은 유권자들과의 스킨십이 어려워져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악수는커녕 명함을 건넬 유권자를 만나기도 힘들어졌다. 정치에 환멸을 느낀 유권자 입장에서는 억지 악수에서 벗어났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일상의 소소함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새삼 깨닫는 요즘이다.
[퍼온 글] / 출처; 세계일보 / 김기동(세계일보 논설위원) / 2020-03-02 23:24:40
산수유꽃
사회적 거리 두기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공동체 없이는 존재할 수 없으며 타인과의 끊임없는 관계 하에 존재한다는 깨우침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한발 더 나아가 인간이 사회를 형성하는 목적은 단지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니라 행복하게 살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사회 활동에 참여하고, 이를 위해 개개인이 사회성을 기르고 사회가 지향하는 목적에 맞출 수 있도록 노력하게 된다고 했다.
소통이 사회 활동의 최고 덕목인 시대이다. 모두가 마음의 장벽을 거두고 사회 대중과 소통하려 노력하고 있다. 인터넷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로막는 이념이나 빈부 격차, 지역과 나이, 지위와 성별 등과 상관없이 소통을 가능케 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5살 어린이부터 90세 노인에 이르기까지 소통의 소중함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제 어느 누구도 소통없이 21세기 최첨단 사회를 살아갈 수는 없다. 소통의 부재는 곧 사회로부터의 고립, 소외, 격리를 의미한다. 프랑스의 철학자 사르트르가 희곡 ‘닫힌 방’을 통해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메시지를 남긴 것은 사회성이 차단된 소통의 부재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일깨워 준 것이라고 한다.
‘사회적 거리’(social distance)라는 용어는 R E 파크, 보가더스 등 미국의 사회학자들이 주창한 이론으로 개인과 개인, 개인과 집단, 집단과 집단 사이의 친밀도를 말한다. 친밀한 사람끼리는 거리가 좁아지고, 공식적 관계는 거리가 멀어진다는 것이다. 연인들의 초밀착 거리와 회사에서 회의하는 큰 테이블의 거리를 상상하면 되겠다.
사회는 인간의 몸과 같아서 서로가 서로를 위해서 존재하는 공동체이다. 건강한 사회는 항상 소통하고 순환하고 생동해야 한다. 그러나 최근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우리 국민뿐 아니라 세계인들이 소통 부재를 요구받고 있다. 국내외 여행을 비롯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축제나 스포츠 경기, 단체 식사마저도 자제하라는 것이다. 타국민의 출입국 제한 조치도 늘고 있다. 개인들은 경조사를 비롯해 작은 친목모임조차 꺼리고 있다.
감염병 예방 전문가들은 당분간 사회관계망을 끊고 주변인들과의 접촉을 최소화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대인 접촉을 줄이는 게 가장 확실한 코로나19의 예방법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감염증 조기 퇴치를 위해 ‘사회적 거리’를 두라는 조언은 슬픈 처방이 아닐 수 없다. 대면할 때 침 튀는 거리 2m 이상을 유지하자는 것이니 말이다. 코로나19라는 신종 전염병이 개개인의 친밀한 거리마저 더 멀게 만들고 있으니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하루빨리 건강한 세상이 되길 기원한다.
[퍼온 글] / 출처: 서울신문 / 이동구(서울신문 수석논설위원) / 2020-03-03 02:18
고추나무
아프가니스탄 비사(悲史)
가장 위험하고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인 아프가니스탄이 또 한 번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미국과 아프간 무장조직 탈레반이 18년간의 무력충돌을 끝내는 평화협정을 맺은 것이다. 하지만 합의서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아프간 정부가 “협상에서 배제됐고 탈레반 죄수를 석방할 수 없다”고 반발해 산 넘어 산이다.
아프가니스탄은 ‘아프간인(파슈툰족)의 땅’이란 뜻으로, ‘복잡하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인구 3900만 명의 약 45%가 파슈툰족이지만 이란계 타지크족, 우즈베크족, 투르크멘족, 하자르족 등이 절반을 넘는다. 국민 90% 이상이 무슬림이지만 시크교, 유대교, 불교도 섞인 다민족・다언어・다종교 국가다.
동서남북의 교역로가 만나는 ‘문명의 교차로’여서 일찌감치 번성한 문화 유산의 보고(寶庫)다. 아이 하눔의 헬레니즘 유적, 바미안의 불교 유적과 다양한 이슬람 유적 등이 곳곳에 보석처럼 박혀 있다. 아프간에서 나는 청금석은 5000년 전부터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로 수출됐고, 이를 원료로 한 ‘울트라마린’ 안료는 색채가 영구적으로 유지돼 중세・르네상스 시대에 금값과 맞먹었다.
하지만 교통 요충이란 조건은 거꾸로 사방팔방에서 공격당하기 쉽다. 고대부터 페르시아, 마케도니아, 박트리아, 인도, 몽골, 티무르, 무굴, 이란 등의 지배를 받았다. 19~20세기 초 영국과 러시아의 ‘그레이트 게임(중앙아시아 패권 경쟁)’ 와중에 주도권을 잡으려던 영국과도 세 차례 전쟁을 벌였다. 하지만 국토의 절반 이상이 험준한 산악지대여서 당시 최강인 영국도 힘을 못 썼다.
1979년 소련이 10만 병력으로 침공했지만 10년 만에 두 손 들고 물러난 뒤 체제 붕괴로 이어졌다. 그래서 아프간이 얻은 별명이 ‘제국의 무덤’이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탈레반 정권이 오사마 빈 라덴에 대한 미국의 인도 요구를 거부해 일어난 미국과의 전쟁과 끝없는 내전이 이번 협정으로 종식될지 궁금하다.
역사가 간난신고(艱難辛苦)의 연속이었으니 나라가 온전할 리 없다. 이슬람 원리주의 집단인 탈레반의 반(反)문명적 폭력과 부패로 국민은 굶고 병들었다. 1인당 소득이 600달러도 안 돼 아프리카 밖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다. 세계 아편 거래량의 90%가 아프간에서 재배돼 탈레반의 자금줄 역할을 한다. 찬란한 문화유산, 수려한 자연경관에도 ‘못난 후손들’이 나라를 지옥으로 만든 것이다.
[퍼온 글] / 출처; 한경닷컴 / 오형규(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 2020.03.03 00:10
치병(治病)과 치국(治國)
편작(扁鵲, BC 407~BC 310)은 전국 시대의 명의(名醫)다. 지금의 하북성 출신으로 원래 성씨는 진(秦), 이름은 월인(越人)이다. 그는 한의학의 전통적 진단 방법이 되는 ‘사진법(四診法)’, 즉 망(望, 보다)ㆍ문(聞, 듣다)ㆍ문(問, 묻다)ㆍ절(切, 맥을 짚다)의 기초를 닦았다. 워낙 의술이 고명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황제(黃帝) 시대의 전설적 명의인 ‘편작’에 비유하여 그 이름을 그대로 따서 불렀다.
사마천은 ‘사기ㆍ편작창공열전(扁鵲倉公列傳)’을 지어 그 의술을 칭찬하며 “세상에 맥(脈)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은 편작 덕택이다”라고 하였다. 아울러 그에 관한 여러 가지 일화를 실었다. 다만 아쉽게도 한의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필자에게 어려운 감이 있었는데 ‘전국책(戰國策)’에 실린 이야기는 비교적 이해하기 쉬웠다.
편작이 진(秦)나라 무왕을 알현했는데 무왕이 병의 상태를 보여주자 그가 치료해 주겠다고 나섰다. 편작이 치료 준비를 위하여 자리를 비운 사이, 왕의 측근들이 말했다. “임금님의 병환은 귀의 앞쪽과 눈의 아래에 있어 치료한다고 해서 반드시 낫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귀가 안 들리고, 눈이 안보일 수가 있습니다.” 편작을 다시 만나자 무왕은 이런 정황을 말하며 치료를 꺼리는 기색을 보였다. 편작이 화를 내며 석침을 던져 버리고 말했다. “임금님은 의술을 아는 사람과 상의하고 나서 의술을 모르는 사람의 말을 들어 치료를 망쳐버렸습니다. 만일 진나라의 정치를 이렇게 한다면 일거에 나라를 망칠 것입니다.”
편작은 세상에 알려진 명의이다. 병을 치유하려면 당연히 마음을 비우고 그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 그러나 진나라 무왕은 편작의 말을 듣고 나서 다시 측근의 말을 듣자 우왕좌왕 하는 태도를 보였다. 나라를 다스리는 일도 병을 다스리는 이치와 마찬가지다. 정말 답을 찾을 생각이면 전문가와 상담하고 그 말을 따라야 한다. 편작은 병을 치료하지 못한 것도 화가 났지만 임금에게 정신 자세를 고치라고 충고한 것이다.
‘편작창공열전’을 보면 의술이 아무리 고명해도 고칠 수 없는 불치병으로 6가지를 열거하였다.
첫 번째는 ‘교만방자 하여 도리를 따지지 않는 것(驕恣不論於理)’. 두 번째는 ‘몸을 혹사시키고 재물을 소중히 여기는 것(輕身重財)’. 세 번째는 ‘먹고 입는 것을 적절하게 조절하지 못하는 것(衣食不能適)’. 네 번째는 ‘음과 양을 문란하게 하여 오장의 기운을 흩뜨리는 것(陰陽幷藏氣不定)’. 다섯 번째는 ‘몸이 극도로 쇠약해져 약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形羸不能服藥)’. 여섯 번째는 ‘무당의 말을 믿고 의원을 믿지 않는 것(信巫不信醫)’이다. 이 여섯 가지 불치병 중 하나라도 있다면 병을 치료하기가 어렵다.
6가지 불치병 가운데 첫 번째와 마지막이 의미심장하다. 섭생(攝生)과 관련 없어 보이기에 더욱 그렇다. 당시에 진나라 무왕과 같은 ‘불치병’ 환자가 많았던 모양이다. 불치병 이야기와 ‘전국책’ 일화를 겹쳐보면, 편작은 병을 치료받고자 하는 자의 태도를 강조하는 동시에 치국도 치병과 같은 이치라고 말한 셈이다.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명재상이었던 관중(管仲, BC 723~BC 645)은 부국강병을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 수공업과 국내외 교역 활성화에 진력했다. 요새말로 하면 경제 최우선 정책을 내건 사람이었다. 그래서 어떤 이는 관중을 중국 최초의 중상(重商)주의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후세에 그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관자(管子)라고 부르고 그의 언행이 담긴 책도 ‘관자’라고 했다.
당시 여타의 권력자와 비교해 볼 때 관중의 정책은 분명 탁월했지만, 지금 와서 보면 지극히 상식적인 것도 사실이다. 예컨대 세상의 어떤 지도자도 약한 군대, 가난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공언하는 사람은 이제껏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제력이 우선이라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다. 이렇게 보면 관중과 작금 정치인들의 생각이 그다지 다른 것은 아니다. 다만 한 지점에서 한국의 집권층과 관중의 잣대는 크게 달라 보인다.
‘관자’의 첫 대목인 목민(牧民)편에 이런 말이 있다. “나라는 예(禮), 의(義), 염(廉), 치(恥)라는 네 개의 벼리(四維)가 받치고 있다. ‘예’란 사람마다 절도(節度)를 지키는 것이며 ‘의’는 준칙을 따르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것이며 ‘염’이란 방정(方正)해서 자기 잘못을 감싸거나 숨기지 않는 것이며 ‘치’는 부끄러움을 알고 악행에 동참하지 않는 것이다. 그중 한 줄기가 끊어지면 나라가 기울고, 두 줄기가 끊어지면 나라가 위태롭게 되며, 세 줄기가 끊어지면 나라가 엎어지고, 네 줄기가 다 끊어지면 나라가 망한다.”
우리의 ‘벼리’는 지금 어떤 상태인지 궁금하다. 아니 그보다 현 정권이 네 개의 벼리를 잣대로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정권이 네 개의 벼리 역할을 해준다면 국민은 기꺼이 나라 일에 나설 것이다. 괴질의 기세가 점점 사나워지고 있다. 편작과 관중의 고사를 들춰보니 더욱 심란해진다.
[퍼온 글] / 출처; 한국일보 / 박성진(서울여대 중문과 교수) / 2020.03.02. 18:34
독버섯
도로표지판과 내비 거리가 왜 다르지?
[과학을 읽다]
요즘은 내비게이션 없이 목적지를 찾아가기 힘듭니다. 과거 내비게이션이 없던 시절에는 지도가 필수였습니다. 운전자들은 출발전에 지도를 살펴보고, 주행 중에는 도로안내 표지판을 보고 목적지를 찾았습니다.
그래서 도로안내 표지판에 표시된 숫자나 의미를 이해하고 있는 운전자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요즘 운전자들은 대부분 내비게이션에 의지하다보니 도로안내 표지판에 표시된 숫자의 개념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더군요.
특히 도로안내 표지판에 표기된 거리는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의 거리를 알려주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서울 30㎞'라고 표기돼 있으면 '여기부터 서울까지 30㎞ 남았구나'라고 생각하고 마는 것이지요. 그런데 서울은 엄청나게 넓은데 그 중 어디까지 30㎞가 남았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서울 광화문 동화면제점 인근에 위치한 '도로원표'. [사진=유튜브 화면캡처]
먼저 도로안내 표지판에 표기된 숫자 중 꼭 알아야 할 숫자의 의미부터 파악해야 합니다. 국도에서 흔히볼 수 있는 도로번호를 나타내는 숫자가 있습니다. 이 도로번호는 남-북 방향의 도로는 홀수, 동-서 방향의 도로는 짝수로 표기합니다.
예를 들어 세종시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연결된 '일반국도 43번'은 남-북 방향의 국도입니다. 또 전북 정읍에서 전남 순천까지를 연결하는 '일반국도 22번'은 서해안 방향에서 비스듬히 내려오는 동-서 방향의 도로지요.
동-서 방향의 도로는 서쪽이 시점(기점)이 되고, 동쪽이 종점이 됩니다. 남-북 방향의 도로는 남쪽이 시점이고, 북쪽이 종점이 됩니다. 통일을 대비해 남쪽을 시작점으로 만든 것입니다.
남은 거리를 표기할 때도 시점이 있고, 종점이 있습니다. 이 시점과 종점은 일반국도나 지방도의 경우 각각의 기준점, 즉 '도로원표(道路元標, Starting point of mile posts)'를 기준으로 남는 거리를 표기하고, 고속도로의 경우는 '나들목(IC)'을 기준으로 표기합니다. 그리고 유명한 관광지는 주차장이나 명소, 고속버스나 열차는 출발・도착하는 터미널이나 역이 기준이 됩니다.
고속도로 종점 표지. [사진=유튜브 화면캡처]
이런 기준은 도로법 시행령 제50조, 시행규칙 제23조 등에 명시돼 있습니다. 해당 법률에 따르면, 특별시와 광역시, 특별자치시와 시・군 등에는 각 1개의 도로원표를 설치해야 합니다. 그 기준은 '광역시청・특별자치시청・도청・시청・군청 등 행정의 중심지', '교통의 요충지', '그 밖의 역사적・문화적 중심지' 등으로 명시했습니다.
이 기준에 따라 서울에는 광화문 세종로변 동화면세점 옆에 도로원표가 있고, 부산에는 부산시청 정문 옆 화단, 대구에는 경상감영공원 내에 있습니다. 각 지역간 거리를 말할 때는 이 도로원표간의 거리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고속도로의 경우는 도로원표가 아닌, IC가 기준이 됩니다.
그래서 같은 구간이라도 고속도로를 이용하느냐, 국도를 이용하느냐, 어떤 대중교통을 이용하느냐에 따라 표기된 거리가 다를 수 있습니다. 가령, 서울-대구간 거리는 고속도로상으로는 시점인 양재IC~동대구IC간 거리인 294㎞이지만, 일반국도에서 서울~대구간 거리는 300㎞를 넘을 수 있습니다. 광화문 도로원표에서 대구 경상감영공원까지의 거리를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대구 '경상감영공원'에 위치한 '도로원표'. [사진=유튜브 화면캡처]
또 고속버스를 이용할 때도 도로안내 표지판에 표시된 거리와 차량 내부에서 안내하는 거리가 다를 수 있습니다. 차량 내부에서 안내하는 거리는 출발지 터미널에서 도착지 터미널까지의 거리이고, 도로안내 표지판의 거리는 IC까지의 거리이기 때문입니다. 고속열차의 경우는 역까지의 거리지요.
고속도로에서 '서울 30㎞'라는 도로안내 표지판은 표지판이 설치된 곳부터 서울 양재IC까지 30㎞가 남았다는 말입니다. 일반국도에서 '서울 30㎞'는 광화문 도로원표까지 30㎞가 남았다는 의미입니다.
이제 내비게이션에서 안내하는 남은 거리와 도로안내 표지판에 표기된 거리가 다른 이유를 아셨나요? 짝수도로와 홀수도로, 동서남북으로 이어진 도로의 시작점은 서남, 종점은 동북이라는 점, 고속도로는 IC 기준, 국도는 도로원표 기준이라는 점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퍼온 글] / 출처; 아시아경제 / 김종화(아시아경제신문 기자) / 2020.03.02 06:30
영원한 안식처를 찾아
[박희권의 호모글로벌리스]
프란시스코 프랑코 스페인 총통의 유해가 작년 10월 말 마드리드 시내 공동묘지로 이장됐다. 1939~1975년 36년간 스페인을 통치한 프랑코는 사망 후 마드리드 근교에 있는 ‘전몰자의 계곡’에 묻혔다. 프랑코의 지시에 따라 건설된 이 기념물에는 스페인 내전 중 사망한 4만여 명이 안치돼 있다. 국민 화합을 명분으로 건설됐으나, 스페인 민주화 이후 기념물 내 프랑코 무덤의 존재는 끊임없이 정치・사회적 논쟁 대상이 됐다. 2018년 페드로 산체스 총리의 사회당 정부는 ‘역사 청산’ 차원에서 이장을 결정했고, 대법원 판결을 거쳐 시행했다. 프랑코에 대한 평가는 ‘유럽 최후의 파시스트’부터 지금의 스페인을 있게 한 ‘국부(國父)’에 이르기까지 상반된 시각이 병존한다. 그러나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붓다의 말처럼 그도 정치권력의 부침과 시대정신의 변화를 피할 수는 없었다.
부관참시, 이장(移葬)보다 더 큰 모욕
사망 후에도 안식처를 찾지 못하고 묘지를 전전한 역사상 인물은 의외로 많다. 그중에서도 아르헨티나 에바 페론의 운명은 한 편의 드라마다. ‘페론주의’의 상징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에비타’는 33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군사 쿠데타로 정권이 바뀌자 그의 유해는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떠돌아야 했다. 이사벨 페론이 대통령이 된 뒤 약 2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와 대통령궁에 안치됐는데 그것도 잠시, 군사 쿠데타 후인 1976년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에 있는 레콜레타 공동묘지 내 가족묘지로 옮겨져 오늘에 이른다.
죽은 자에게 이장보다 더 큰 모욕은 부관참시(剖棺斬屍)다. 무덤을 파헤쳐 관을 부수고 유해를 토막 내 욕보이는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정적(政敵)에게 복수하는 수단으로 사용됐다. 올리버 크롬웰의 경우를 보자. 청교도 혁명을 일으켜 찰스 1세를 처형하고, 영국 최초로 공화정을 실시한 크롬웰은 사후(死後) 웨스트민스터 묘지에 안장됐다. 그러나 왕정복고로 즉위한 찰스 2세는 복수심에 불타 크롬웰을 부관참시했다. 무덤을 파서 관을 부수고 목을 잘랐다. 머리는 장대에 꽂아 웨스트민스터 성당에 걸었다. 그 후 머리는 무려 300년을 떠돌다가 1960년에야 케임브리지에 있는 시신 곁에 묻혔다. 모진 인생역정이었다.
사후 복수를 예견하고 미리 조치를 강구한 사례도 있다. 바빌론 여왕인 니토크리스의 무덤에는 다음과 같은 비문이 있었다. ‘바빌론 왕은 돈이 필요하면 무덤을 파서 원하는 만큼 가져가라. 단, 정말로 돈이 필요할 때만 무덤을 파라.’ 페르시아 제국의 설계자이자 전성기를 이끈 다리우스 1세가 바빌론을 정복한 뒤 비문을 읽었다. 황제로서 돈은 많았지만 금은보화가 무덤 안에서 썩는 것은 낭비라고 생각한 그가 무덤을 파헤쳤다. 그러나 돈은 없었고 여왕의 시신 옆에서 메모가 나왔다. ‘죽은 자의 무덤을 약탈할 생각을 할 정도로 당신은 탐욕스럽군.’ 산 자에 대한 죽은 자의 통쾌한 복수였다.
오늘날 독재국가가 아닌 한 부관참시를 보기는 어렵다. 근대문명은 잔혹한 형벌을 법으로 금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덤에 침을 뱉는 무례를 방지하기는 힘들다. 누군가가 무덤 위에서 춤을 추는 것도 좀처럼 막기 어렵다. 옛날 한 영국 귀족의 부인은 남편과 사이가 매우 나빴다. “당신이 죽으면 무덤 위에서 춤을 출 거야.” 그러나 꾀가 많은 남편은 그녀의 계획을 좌절시켰다. 바다에 묻어달라는 조항을 유언에 남겼기 때문이다.
선행(善行)으로 마음속에 묻혀야
그렇다고 중국 철학자 장자나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처럼 죽음을 초탈하지 않은 이상 자연장(自然葬)으로 장사를 지내 동물의 먹이가 되도록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누군가가 당신의 무덤에서 춤을 추거나 침 뱉는 것을 예방할 수 있을까? 먼저 선행을 베푸는 방법이 있다. 특히, 국가 지도자가 준엄한 역사의 평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선정(善政)을 펼쳐야 한다. 르완다에는 ‘사람은 죽어서 들에 묻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에 묻힌다’는 격언이 있다. 당신의 선행을 기리며 사람들은 슬픔의 눈물을 흘리거나 추모의 꽃다발을 놓을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은 우주에 묻히는 것이다. 사망 후 유골을 우주공간으로 보내는 우주 장례식은 1997년 처음 시작됐다. 그 후 상업용 로켓기술이 발달하면서 성업 중이다. 여러 우주장례 서비스 업체가 경쟁하고 있고, 비용도 낮아지고 있다. 작은 캡슐에 담긴 유해가 지구궤도를 수년간 돌다가 대기권에 진입하며 연소돼 소멸하거나, 유골함을 실은 인공위성이 240년간 지구궤도를 돌거나, 달에 매장하는 등 다양한 장례 방식이 실행 중이거나 실현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당신은 우주의 별이 돼 영원한 안식을 취하게 될 것이다.
[퍼온 글] / 출처; 한국경제신문 / 박희권(글로벌리스트・한국외국어대 석좌교수) / 2020.03.03 00:06
인류를 실망치 않게 하는 기술 진보
카메라만으로 혈당 측정 가능해지듯이 / 새 기술의 결합은 새로운 가능성 열 것
늘 있어온 인류의 문제 바로잡아 나가야
《사피엔스》를 쓴 이스라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2015년 저서 《호모데우스》에서 “이제 인류는 기근, 역병, 전쟁을 거의 정복했으며 불멸, 행복, 신성이라는 새로운 욕망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2020년 현재, 세계는 ‘대유행(pandemic)’의 공포 한가운데에 있고, 한반도엔 북한의 핵위협으로 인한 전쟁 위험이 여전히 도사리고 있다. 또 2019 글로벌 기아지수(GHI)에 따르면 북한 인구의 43%가 영양결핍 상태라고 하니, 하라리의 선언은 너무 성급했거나 아니면 세계와 사회의 진보 및 발전은 늘 예상만큼 빠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세계는 균일하지 않다. 2020년 같은 시기를 사는 지구상에는 수렵・채집, 농경, 봉건, 근대, 현대 사회가 지리적으로 공존하고 있다. 한국같이 크지 않은 나라에서도 한쪽에서는 4차 산업혁명과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외치지만, 다른 한쪽에는 사이비 종교가 사람들에게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정치적으로도 반(反)지성주의, 포퓰리즘, 파시즘의 징후가 한국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어 정부의 어처구니없는 정책 실수를 교정하는 데도 시간과 노력이 낭비되고 있다. 그래도 과학적 의사결정 절차가 정부에서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온 국민이 체감하게 된 것은 다행이다.
경제・기술인들도 예상치 못한 사회 현상과 바람직하지 못한 정치 현상으로 인해 주의가 흐트러지는 상황이다. 어떤 이는 이런 상황을 해결하는 것은 역시 기술이니, 기술・경제인에게는 기회라고 주장한다. 역병이 창궐하니 원격근무 관련 기술이 더 많이 퍼질 것이고, 전자상거래는 더 확대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2007년 출간된 《모빌리티》의 저자 존 어리는 “대면 만남은 에밀 뒤르켐이 말한 ‘흥분(effervescence)’이라는 것을 발생시키며, 사회 생활의 많은 부분과 여행에 대한 요구 및 의무는 대면 대화나 때로는 신체를 맞댄 대화가 갖는 즐거움과 매력에서 발생한다”고 갈파했다. 4차 산업혁명에 의해서 ‘이동성(mobility)’은 없어질까? 그렇지 않다. 인간의 이동성 자유는 계속적으로 커질 것이다. 이는 신(神)의 특성 중 하나인 무소부재(無所不在)를 의미하며, 이는 하라리가 말한 인간의 새로운 욕망 중 하나다.
지난 2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세계인공지능학회(AAAI)에서 중국 교육부와 베이징대, 베이징대병원은 환자에게서 수집한 시계열 데이터를 인공지능 딥러닝 기법으로 분석, 환자의 건강이 언제 급격히 나빠질지를 시간 단위로 예측하는 방법론에 대해 발표했다. 홍콩이공대(홍콩폴리테크닉대)는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동시에 기업의 데이터 처리 부담을 줄일 수 있도록 각종 에지컴퓨팅 장치에서 들어오는 최소한의 데이터로 기계학습하는 방법론을 발표했다.
지난 1월 삼성전자는 비침습식 혈당 측정법 논문을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발표했다. 가까운 미래에 스마트폰 카메라만으로도 혈당 수치를 측정할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이런 방법론들이 결합되면 인간의 수명은 비약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측정이 가능해지면 데이터가 되고, 데이터가 되면 통신으로 공유되고, 그 데이터는 인공지능에 의해 학습돼 새로운 정보와 판단을 목적에 맞게 생산할 수 있다. 불과 200년 전까지만 해도 인간은 시각을 데이터화하지 못했지만 카메라와 디지털 기술 발전으로 가능해졌고, 청각도 에디슨의 축음 기술과 디지털 기술로 데이터화됐다. 인공지능에 의한 새로운 측정 방법의 등장 그리고 측정을 통해 데이터화된 것이 통신으로 공유되고 다시 인공지능에 의해 분석돼 새로운 가치를 생산하는 것이 어쩌면 4차 산업혁명의 특징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인류는 여전히 역병과 기근,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불멸, 행복, 신성에 대한 새로운 꿈을 꾼다. 그런 진보와 발전의 꿈은 늘 좌절되고 생각보다 느리게 진행된다. 사회적으로도 이미 없어졌을 것 같은 봉건성, 비이성, 비과학성,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함이 반복된다. 이처럼 인류는 늘 문제를 갖고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오히려 그것이 우리가 절망하지 않고, 계속 잘못된 것을 비판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노력을 해야 하는 이유다.
[퍼온 글] / 출처; 한국경제신문 / 이경전(경희대 경영학과 교수) / 2020.03.03 00:04
현란한 불꽃나무(브라질) Flamboyant Tree, Brazil
침과 뜸은 어떻게 바뀌고 있을까
[이승훈의 과학을 품은 한의학]
사극 드라마에서 침 치료는 침통에서 꺼낸 두꺼운 바늘이 혈자리에 자입돼 주인공이 아파서 인상을 쓰는 이미지로 묘사되곤 한다. 뜸 치료도 으레 쑥이 타면서 연기가 나고 뜨거운 걸 억지로 참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렇다면 21세기 현재 한의원에서 이뤄지는 침이나 뜸 치료는 과학기술과 어떻게 접목돼 발전하고 있을까?
한의학에서 사용하는 비약물요법인 침, 뜸, 부항 치료는 일종의 체표 자극 요법의 하나로 이해할 수 있다. 침은 물리적인 통증 자극, 뜸은 온열 자극, 부항은 물리적인 음압 자극을 체표에 가해 인체의 반응을 통해 효과를 일으킨다. 최근에 다양한 기술이 침과 뜸의 자극을 가하는 방식에 적용돼 전통적인 침과 뜸의 단점을 보완하고 효과를 극대화하는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한의원에서 침 치료를 받을 때 침을 혈위에 자입한 상태에서 손으로 돌리는 자극법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는 침에 수기 자극을 가해 치료 효과를 높이려는 목적인데, 이때 전기를 이용해 사람의 손동작으로 할 수 없는 일정하고 다양한 빈도의 자극을 유도해 침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전기침은 전기 자극의 주파수에 따라서 다른 효과를 일으킨다. 예전에는 저빈도 자극을 위해 손으로 침을 돌리거나, 고빈도 자극을 주기 위해 침을 손가락으로 튕기기도 했지만 이제는 전기장치를 활용해 더 정확한 자극을 가할 수 있게 됐다. 바늘 공포증이 있는 환자들을 위해 저출력 레이저 광선으로 혈위를 자극해 침과 유사한 효과를 내는 레이저 침도 있다.
일반적으로 침 치료는 20~30분 동안 시행되고 병원 밖에서 오랫동안 자극을 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침 자극의 지속 시간을 늘리기 위해 침 바늘을 통해 의료용 실을 체내에 매입하는 매선 요법이 나왔다. 매선실은 3~5개월 동안 천천히 체내에서 융해되면서 무균성 염증반응을 일으켜 조직 재생과 치유 효과를 유도한다. 임상에서는 주로 안면의 표층근건막체계나 관절 주위 힘줄, 인대 부위에 자입하는 등 미용 분야나 통증 질환에 활발히 사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쑥을 태워 열 자극을 가하는 전통적인 뜸 치료법에서 나아가 초음파, 고주파, 전자기장 등 다양한 열원을 이용해 열의 강도나 열이 전달되는 조직의 깊이를 조절할 수 있다. 최근 한의원에서는 온열 자극은 온도에 따라 자극하는 말초수용기와 효과가 다르다는 점에 착안해 전자뜸으로 43~45도의 온도를 15분 이상 가해 온각수용기를 자극하는 온자극 방법이나 60~70도의 온도를 1초 이내로 가해 열통각수용기를 자극하는 열자극 방법을 활용한다.
이 밖에 침 표면에 나노 단위의 작은 구멍을 만들어 생체에 접촉되는 면적을 크게 늘리는 ‘나노 다공성 침’이나 침 바늘에 절연체를 코팅해 침 끝이 위치한 조직의 깊은 층에만 전기나 열 자극을 전달하는 특수 침 등과 같이 현대 기술을 접목시킨 더 안전하고 효과적인 치료 기술이 등장하고 있다.
[퍼온 글] / 출처: 서울신문 / 이승훈(경희대 한방병원 침구과 교수) / 2020-03-03 02:18
물리학과 바이러스 세계
[남순건의 과학의 눈]
요즘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가 우리 사회와 개인의 삶을 완전히 바꾸고 있다. 대학들은 개강을 미루고 모임들이 취소되고 있다. 매일 확산되는 전염병 소식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바이러스보다 빠르게 전파되고 있다.
생명체와 무생물의 경계에 있는 바이러스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 유전자를 감싸고 있는 ‘초(超)분자’로 만들어져 생명체의 기본 단위인 세포를 매우 효과적으로 공격하는 마이크로 로봇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DNA나 RNA로 이뤄진 단백질 껍질과 거기에 붙어 있는 여러 개의 다리, 하나의 꼬리를 가진 바이러스의 그림을 보면 마치 외계인의 비행체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바이러스는 공격 대상인 세포막에 붙어 공격할 곳을 찾아 다리로 고정한 후에 꼬리 속 관을 통해 유전자정보를 삽입하는데, 그때 가해지는 압력은 자동차 타이어 공기압의 수십 배에 달한다고 한다. 초고압으로 유전체를 발사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유전자가 모조리 숙주의 세포 속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는 콜로이드 속에서의 확산원리를 이용하는 것을 보면 생물학적이라기보다는 매우 기계적인 과정이다. 이런 기계적 효율성이 바이러스를 급속도로 확산시키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높은 압력을 견뎌 내는 구조는 매우 튼튼한 박스를 만드는 데 응용하기 위해 연구되기도 한다.
또 단백질 껍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펴보면 최근 공학 분야에서 많이 연구되는 스스로 조립되는 기계를 연상시킨다. 물론 자기 조립이 최적화돼 있는 환경은 따로 있을 것이다.
바이러스가 인간에 전파된 과정을 물리학적 모델로 설명하려는 시도들도 있다. 특히 질병이 전파되는 그림을 그려 보면 그물망처럼 연결돼 있는 모습이 나타난다. 전염이 확산될수록 더 복잡한 네트워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통계물리학에서 많이 연구되고 있는 네트워크 이론을 써서 이런 전염병의 확산과 소멸을 예측해 보려는 시도도 많이 있다. 외국의 사례이기는 하지만 빅뱅의 수수께끼를 연구하던 입자물리학자가 그 연구의 경험에서 나온 빅데이터와 이를 활용하는 프로그램 기술로 전염병 예방의학의 연구자로 변신한 사례가 있고 이를 빌게이츠 재단에서 지원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많은 기관이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노력이 헛되지 않으려면 매우 과학적인 사고방식에 기반한 정책이 필요하다. 조금이라도 정치적 이해득실, 또는 개인적・집단적 이익을 위해 판단을 하게 될 때는 숙주가 다 없어질 때까지 무참히 공격하는 마이크로 로봇 군단 같은 바이러스에 처참하게 질 것이다. 이런 공격에는 매우 조직적이면서 과학적인 도구와 사고방식만이 답이다. 막연한 기대감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기말적 패배감도 필요 없는 것이다.
인간 유전자의 수%가 바이러스에서 왔다는 연구 결과도 있는 것을 보면 생명체가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바이러스는 존재했을 것이다. 바이러스는 필연적으로 우리 곁에 있을 것이고 빠르게 진화할 때 더딘 진화를 하는 생명체들이 수세에 몰리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과학적 사고와 정보의 진화는 바이러스의 진화보다 빠르고 더 효과적일 것이다. 우리가 이 전쟁에서 궁극적 승리자가 되기 위해서는 과학의 무기를 잘 사용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이다.
[퍼온 글] / 출처: 서울신문 / 남순건(경희대 물리학과 교수) / 2020-03-03 02:18
피렌체 Arno 강
출판사의 팩트체커들
[이은혜의 책 사이로 달리다]
‘62학번, 기계공학과 졸업, 컴퓨터 프로그래머 경력, 영어・중국어 수준급’. 올해 77세인 우리 출판사 팩트체커의 이력이다. 역사적 사실이 많이 담긴 책은 인쇄 2~3주 전 그가 모든 사실관계를 최종 점검한다. 논조는 상관 않는다, 저자의 몫이므로. 문체도 괘념치 않는다, 미학은 그의 영역이 아니므로. 정치적 입장은 있지만 함구한다, 젊은 편집자와 부딪칠 수 있으므로. 그가 오로지 집중하는 건 오류를 골라내는 일이다.
작업은 어떤 식으로 하는가. 우선 모든 역사적 사실과 인명, 지명, 숫자 등을 재검토한다. 조선왕조실록,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 국립국어원 등 인터넷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더블 체크가 기본이다. 실록은 국사편찬위 사이트의 한글 번역본과 영인본을 대조해 잘못 입력된 한자・숫자를 고쳐 노트를 따로 만들었다. 인물 정보는 지방지와 실기(實記), 자전(自傳) 등을 확보해 교차 점검 후 확정본을 마련한다. 세계의 모든 지도를 확보해 지리와 지명의 방향과 거리 정보가 맞는지 점검한다. 몇몇 신문을 구독하며 어제 죽은 유명 인사를 메모해 놓는다. 그럼으로써 인쇄 직전의 책에 등장하는 누군가를 생존인물에서 고인으로 바꿔 표기한 적도 있다. 일단 모든 숫자는 의심하고, 번역물은 원서를 꼼꼼히 대조하는 가운데 원서조차 의심의 눈초리로 본다. 원서에 오류가 많으면 해외 출판사에 이메일을 쓴다. 잘못을 바로잡아 달라고.
이런 직업을 가진 사람이 많을까. 주위를 돌아보건대 거의 없다. 출판사 편집자들이 교정 교열 과정에서 팩트체커 역할을 맡지만, 까막눈이거나 혹은 사실관계를 끝까지 확인할 의지력이 박약한 경우가 많다. 하루 종일 검토해서 오류 한두 개 잡아내는 일에 희열을 느낄 사람은 많지 않다. 게다가 갖춰야 할 실력은 만만찮은데, 그런 전인적 지식인이 우리 사회엔 드물다. 참고로 미국 ‘뉴요커’의 팩트체커 지원자 자격을 보자.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러시아어를 말할 수 있고 고전 그리스어를 읽을 수 있으며… 오만의 술탄과 카타르의 에미르는 누구인지 곧바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고전학자 메리 비어드는 앤서니 애버릿의 ‘키케로’ 서평을 쓰면서 그 책의 편집자를 비판했다. “라틴어에 일부 황당한 오역이 있다. 편집자는 라틴어도 제대로 모르면서 왜 손을 댔는가.” 로마 관련 책을 내려면 편집자는 고전 그리스어와 라틴어쯤은 알아야 한다는 게 서평자의 주문으로, 저자의 오류는 최종적으로 편집자의 오류로 귀착된다.
이런 능력은 어떻게 갖춰지는가. 거의 광적인 결벽증, 효율성과는 담을 쌓고, 원고를 음미하면서 자기 감상을 끼적거릴 여유가 없다. 가장 근원이 되는 자료를 찾아 연어처럼 헤엄쳐야 하고, 내가 틀렸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24시간 마음속에 담아 둬야 한다(혹은 나만큼 정확한 사람은 없다는 자부심까지). 외국어 회화 실력이 꽝이라도 전 세계 외래어 표기법엔 달인이어야 한다. 가령 1400쪽짜리 ‘저먼 지니어스’를 편집하면서 담당 팩트체커는 “이 책이 서양의 저명인사를 국립국어원 자료보다 더 많이 아우르니 향후 교정의 전범으로 삼을 만하다”며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뉴요커’의 편집자 세라 리핀콧은 한 번의 오류가 낳는 어마어마한 악영향에 대해 지적한 바 있다. “일단 지면에 실린 오류는 도서관에서 계속 살아가며 정성스레 목록화되고, 연구자들은 최초의 오류에 의지해 새로운 오류를 거듭 생산한다.” 송곳으로, 펜으로 이것들을 도려내야 하는 게 팩트체커의 임무다.
지성, 전문성, 근면성, 인내심을 갖춘 팩트체커들은 실제 만나면 얼음처럼 차가울 것 같지만 오히려 유연하고 이해심이 많아 더욱 놀랍다. 왜 그럴까. 타인의 오류를 지적할 때 상대가 다치지 않게 부드러워야 하며, 또 인간이라면 언제나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오만할 수 없다. 오류를 인정하는 것과 외면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우리는 오늘도 그 일을 배우고 있다.
[퍼온 글] / 출처: 서울신문 / 이은혜(글항아리 편집장) / 2020-03-03 02:18
새로운 위협, 디지털세
[글로벌 포커스]
지난 1월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포괄적 이행체제(IF) 총회에서 137개 회원국은 디지털세에 대한 세 가지 원칙에 잠정 합의했다. 첫째, 시장소재국 정부는 글로벌 시장에서 다국적 기업이 벌어들이는 이익의 일부에 대해 과세권을 행사할 수 있다. 둘째, 글로벌 총매출액, 대상사업 총매출액, 이익률, 배분 대상 초과이익 합계액 등 4대 기준의 일정 규모 이상을 충족하는 다국적 기업에 한해 부과한다. 셋째, 디지털세 부과 업종은 정보기술(IT) 서비스업과 소비자 대상의 IT 제조업으로 한정한다.
TV, 스마트폰, 냉장고 등에는 디지털세가 과세되지만, 기업 간 거래(B2B)를 하는 반도체는 과세 대상에서 제외된다. 디지털세는 글로벌 IT 기업들이 수익을 얻는 시장소재국에서 납부해야 할 세금을 회피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법인세와 별도로 부과하는 세금이다. IT 산업은 시장소재국에 물리적인 사업장을 두지 않고도 네트워크를 통해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세 도입은 5년 전부터 OECD 중심으로 논의해 왔지만, 국가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해 왔다. 유럽연합(EU) 내에서도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등은 찬성하지만, 법인세가 낮은 덴마크, 스웨덴, 아일랜드 등은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 후 미국의 강력한 주장으로 디지털세 과세 대상에 IT 제조업까지 포함되면서 과세 범위가 크게 확대됐다.
디지털세를 집행하는 데 가장 큰 문제는 이중 과세와 세금 전가 가능성이다. 시장소재국 정부가 디지털세를 부과했는데, 본국 정부가 다시 세금을 과세한다면 이중 과세가 발생한다. 그래서 프랑스는 기업이 소득세 신고를 할 때 시장소재국 정부에 기납부한 디지털세는 전액 공제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또한 디지털세는 기업에 부과되는 세금이지만 제품가격 인상 등으로 궁극적으로 시장소재국의 소비자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높다. 딜로이트 분석에 따르면 프랑스에서 디지털세가 부과되면 소비자가 전체 세금의 57%를 부담하게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또 다른 문제는 디지털세를 누구에게 부과할지가 애매하다는 점이다. 디지털경제는 복잡한 구조여서 과세 대상이 되는 활동을 명확하게 정의하기 어렵고, 국가별 여건도 다르다.
프랑스는 전 세계 연간 매출액이 7억5000만유로 이상이면서 자국에서 2500만유로 이상 연간 매출을 올리는 IT 기업을 대상으로 자국 내 연 매출의 3%를 세금으로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작년 기준으로 부과 대상 27개 기업 중 17개가 구글・페이스북・애플・아마존 등 미국 기업이었다. 그러자 미국은 보복 조치로 프랑스산 63개 수입 품목(24억달러 규모)에 최대 10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고, 프랑스도 이에 맞서 미국이 제재할 경우 EU 차원의 보복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행히 프랑스가 디지털세 시행을 1년 유예하면서 미・EU 무역분쟁은 한고비를 넘겼다.
OECD는 올해 말까지 최종 합의문을 확정하고, 내년부터 규범화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연내 나머지 쟁점 사항이 모두 해결되더라도 양자조약과 각국 세법에 반영하려면 최소 2~3년이 더 소요될 전망이다.
디지털세의 기본 골격이 합의된 이상 우리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앞으로 정부는 디지털세 도입이라는 새로운 세제 환경에 맞춰 발 빠르게 대응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 수출기업의 세금 부담이 더 늘어나지 않도록 관련국들과 협상해야 할 것이다. 또한 최근 구성된 민관 태스크포스(TF)와 대응팀을 중심으로 우리 기업들이 받을 영향을 면밀히 분석하고 대응해 나가길 바란다.
[퍼온 글] / 출처; 매일경제신문 / 우태희(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전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 / 2020.03.03 00:07:01
철학자와 하녀
최초의 철학자 탈레스가 별을 관찰하다 우물에 빠졌다. 이 광경을 본 트라키아 출신의 총명한 하녀가 탈레스를 비웃는다. 발아래 일도 모르면서 어떻게 하늘의 일을 알려고 하느냐는 것이다. 철학의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일화 중 하나로 플라톤의 `테아이테토스`(이제이북스)에 나온다.
물론 실제로 벌어진 사건은 아니고 플라톤이 창작한 우화인 듯하다. 탈레스의 일화는 진리 탐구에는 온 힘을 다하지만 현실 문제에는 무신경한 `철학자의 존재론`을 상징한다고 풀이된다. 이상하다. 철인 정치를 꿈꾸는 플라톤이 일부러 이야기를 지어내면서까지 철학자의 무능을 조롱할 까닭이 전혀 없다. 이는 플라톤의 의도를 왜곡한 엉뚱한 해석에 가깝다. `우상의 동굴`에 갇힌 대중이 거꾸로 동굴의 어둠에 인식의 빛을 던지는 현자들을 조롱하는 것은 항상 인기 있는 일이니까 말이다.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받았고, 공자는 상갓집 개라고 불리지 않았던가.
`탈레스가 우물에 빠진 날`을 통해 플라톤이 말하려는 것은 전혀 다른 철학적 사건이다. `테아이테토스`는 `참된 앎이란 무엇인가`라는 인식의 문제를 다룬다. 한마디로, 이 일화에서 플라톤은 `철학자의 앎`과 `하녀의 앎`을 분별한다. 철학자는 하늘에 떠 있는 별, 즉 만물의 원인이 되는 궁극의 이데아를 탐구하는 일에만 이성을 사용하는 사람이다. 철학자의 앎은 결국 이데아에 대한 지식이다. 이에 비해 하녀는 발밑의 우물, 즉 살림의 고수다. 희랍인은 가족의 생계와 관련된 일을 오이코노미아(oikonomia)라고 불렀다. 이 말이 영어 이코노미(economy)의 어원임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녀의 앎은 주로 먹고사는 일과 관련된 지식이다.
현실의 탈레스는 유능한 투자자였다. 어느 해 탈레스는 별자리를 관측해 이듬해 올리브가 풍작을 이룰 것을 예측했다. 탈레스는 올리브유 흡착기를 모두 사들인 뒤, 추수가 끝나자 농부에게 이를 임대해 큰돈을 벌었다. 박지원의 허생과 마찬가지로, 플라톤의 탈레스 역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세속적 성공을 획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철학자는 이 일이 인생을 걸고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플라톤은 일상의 일은 철학자보다 하녀에게 더 적합하다고 말한다.
스승 소크라테스도 진리를 논하는 자신의 행동이 돈벌이와 무관하다는 것을 평생의 자부로 삼았다. 철학, 즉 참된 지식에 대한 사랑은 이성의 눈이 발끝이 아니라 하늘을 향할 때 생겨났다.
총선이 다가왔다. 눈앞의 이익에 매몰된 한심한 정치가 있을 뿐 국가의 앞날을 위한 큰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 한국 정치의 철학은 어디에 있는가.
[퍼온 글] / 출처; 매일경제신문 / 장은수(편집문화실험실 대표) / 2020.02.29 00:04:01
세월호와 코로나19, 세 가지가 닮았다
“곧 종식” 발언에 골든타임 놓쳐 / 세월호 닮은 코로나19 헛발질
진짜 신천지는 언제 오려나
2일 아침, TV를 보다가 잠시 착각에 빠졌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전국 확진자 현황을 알리는 특보가 전파를 타고 있었다. 우측 상단에 총 확진자 4212명(오후 6시 현재 4335명), 완치자 31명이 고정 표시된 채 전국 시・도의 각기 다른 확진자 숫자가 숨넘어가듯 휙휙 바뀌며 지나갔다. 세어 보니 서울・부산・경기・부산은 확진자가 70~90명대였다. 인천・제주・광주・전북・전남은 한 자릿수, 세종은 1명에 불과했다. 이에 비해 대구(3081명)와 경북(624명)은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 숫자들이 총선 개표 결과, 당선 의원 수 보도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유권자들이 표로 방역 실패에 책임 있는 사람들에게 국민적 심판을 내려주길 내심에서 바란듯하다.
대한민국이 ‘우울한 신천지(新天地)’가 됐다.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전염병 풍미’의 새 나라다. 변종 코로나19에 국가 권력이 신속하게 대처했다면 사태가 이 지경까지 확산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한의사협회 분석대로 코로나19는 “지금까지 인류가 알고 있던 어떤 바이러스보다도 영민한 바이러스이고 무증상 전파와 감염자를 통한 전파가 가능한 매우 상대하기 어려운 적”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방심했고 오만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13일 경제계 주요 인사들과 만나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라고 언급, 전체 공무원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보냈다. 20일엔 청와대에서 영화 ‘기생충’ 수상을 축하하는 ‘대파 짜파구리’ 오찬 파티를 강행했다. 첫 사망자가 나온 날이고 다음날 확진자가 100명을 넘어섰다. 마스크 대란도 현실화됐다. 무신경, 공감 능력 부재의 극점이 아니고 뭔가. 며칠 후 여권의 대구 봉쇄 망언은 대구 시민들의 심장을 후벼팠다.
이런 일련의 흐름은 마치 세월호 참사 때 정부 구조요원들의 “가만히 있으라”는 지시에 배 안에서 나가지 않고 질서를 지키다가 허무하게 숨진 어린 영혼들의 운명을 떠오르게 한다. 다른 게 있다면 총 사망자 26명의 대다수가 기저질병이 있는 대구・경북 지역의 70~80대 노인들이라는 점이다. ‘현대판 고려장’같이 섬뜩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유족들은 억울한 죽음이라고 하소연할 만하다.
세월호와 비슷한 점은 또 있다. 정부는 전문가들의 진언을 흘려듣다가 골든타임을 놓쳤다. 대한의사협회가 코로나19 발생 초기부터 7번이나 요청한 중국인 입국 금지 카드는 무시했다. 중국이 거꾸로 한국인들의 입국을 거부하는 상황이 발생하자 “애초에 했더라면 모를까, 이제 와서 입국 금지하는 건 오히려 우리 국민들의 피해가 더 크다”고 애먼 소리를 내놨다. 시진핑 주석 방한에 목매단 정부, 사대주의 정부 소릴 듣는다.
초기 방역에서 가장 중요한 게 감염원 차단이라는 건 상식이다. 바이러스의 월경을 막기 위해 한시적으로 입국을 금지하는 것은 자국 이기주의가 아니다. 헌법상 대통령의 책무다. 필요한 조치를 미적대는 사이, 바이러스는 대구・경북의 신천지 교인들을 중심으로 창궐했다. 현 정부 인사들이 야당 시절, 그토록 비난했던 ‘세월호 구조 골든타임 도과’의 잘못을 답습한 것이 아니라면 무언가.
권력의 운명과 관련한 전개 과정도 닮은 구석이 있다. 세월호 7시간 의혹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무능을 부각・증폭시켰다. 이후 최순실 사태가 터졌고 박 전 대통령은 침몰했다.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오고 열흘 뒤 ‘윤석열 검찰’은 송철호 울산시장 선거 개입 혐의로 문재인 대통령 측근 인사들을 재판에 넘겼다. 총선 이후 관련자 수사도 재개된다. 예단하긴 이르지만 문 대통령의 개입 여부도 조사 가능성이 높다.
상황이 이런데도 ‘모든 게 신천지 탓’이라며 신천지 프레임으로 몰아가는 건 아니다. 국가적 재난에 무방비한 대가는 혹독하다. “국민의 일상이 붕괴됐고 생활공동체가 파괴됐으며 지역경제는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다”는 ‘메르스 사태’ 때의 문 대통령(2015년 6월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주장과 일치한다.
원래 신천지는 좋은 뜻이다. 동학의 창시자인 수운 최제우가 내세운 ‘후천개벽’과도 맥이 통한다.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이 차용하면서 극혐 용어가 됐다. 그동안 원전 해체, 조국 수호에서부터 코로나19 방역 헛발질까지, 우울한 신천지 경험은 실컷 했다. 대통령이 취임 때 약속한 ‘기회 평등, 과정 공정, 결과 정의’의 신바람 나는 신천지, 진짜 신천지는 언제 볼 수 있을까.
[퍼온 글] / 출처: 중앙일보 / 조강수(사회에디터) / 2020.03.03 01:06
부직포
2009년 조지아 국립박물관 고생물학협회 엘리소 크바바제 박사와 미국 하버드대 인류학과 오퍼 바요세프 교수 연구팀은 카프카스 산맥의 줏주아나 동굴에서 구석기 지층 샘플을 채취했다. 샘플에서 야생 아마(린넨의 원료 식물) 섬유가 발견됐다. 방사성 동위원소를 이용해 연대를 측정했다. 3만4500년 전의 것으로 나타났다. 직물의 가장 오래된 고고학적 직접 증거다.
직물과 관련한 또 다른 고고학적 증거는 바늘이다. 서유럽・시베리아・중국 등지에서 구멍 뚫린 바늘이 발견됐다. 바늘은 실의 존재를 증명한다. 가장 오래된 바늘은 3만5000년 전 것으로, 발견지는 러시아다. 호모 사피엔스는 나뭇가지 등으로 바구니를 엮었다. 이를 돗자리・ 그물・밧줄 짜기로 발전시켰다.
직조는 실을 엮어 직물(천)을 만드는 작업이다. 직물은 가로 실(씨실)과 세로 실(날실)을 엮어 만든다. 동서양 모두 직조 관련 신화・설화가 있다. 그리스 신화는 아라크네다. 아테네 여신과 베 짜기 대결을 펼쳤다가 신을 욕보인 죄로 거미가 된 그 아라크네다. 중국 신화에는 천제의 딸로, 직물과 비단 짜는 일을 맡은 직녀가 나온다. 그는 결혼 후 직물 짜는 걸 멈췄다가, 벌로 남편(우랑 또는 견우)과 헤어져 매년 음력 칠월 칠석에만 만나게 됐다.
직조 외의 방법으로도 천을 만들 수 있다. 보통 뜨개질(knitting)로 부르는 편조가 대표적이다. 직조나 편조는 그래도 실로 천을 만든다. 실을 거치지 않고 섬유에서 곧바로 만드는 천이 있다. 부직포(不織布)다. 섬유를 합성수지로 결합한다. 종이 만드는 원리와 같다. 1950년대 미국에서 급속히 발전했다. 직조・편조와 달리 방향성이 없다. 올이 풀리지 않는다. 주로 공업용으로 사용했다.
부직포가 귀한 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마스크 품귀가 불러온 현상이다. 국세청이 마스크 내피의 핵심재료인 MB(melt blown) 부직포 필터 생산업체에 대해서 거래 명세 조사에 나섰다. MB 부직포는 고분자인 열가소성 수지를 녹인 뒤(melt), 고속으로 분사(blown)해 필터 성능을 갖게 한 제품이다. 인터넷 게시판에는 “MB 부직포를 구한다”는 글과 이를 이용한 마스크 만들기 소개 글이 수두룩하다. 일생 모르고 지났을 MB 부직포를 코로나19 때문에 또 배운다.
[퍼온 글] / 출처: 중앙일보 / 장혜수(중앙일보 스포츠팀장) / 2020.03.03 00:13
노숙자(盧淑子, 1943년생, 서울대학교 회화과 졸업) / ‘용담꽃’ / 60.5x50, 종이에 채색,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