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암빌딩 (외 1편)
함명춘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나 보니 팔다리는 나사못이 되어 박혀 있고 송두리째 혓바닥이 뽑혀 나간 아가리와 항문엔 굵은 로프가 매달려 있다 내장까지 말끔히 수거해간 뱃속엔 수십 개의 버튼이 달렸고 반 평 남짓한 공간이 전혀 다른 장기처럼 들어와 있다 누군가 버튼을 눌러줘야 움직일 수 있고 아무리 일탈의 꿈을 꾸어도 제자리다 하루 수십번 문이 열려도 몸도, 머릿속의 그 어떤 생각도 내리지 못한다 일 층에서 사십 층까지의 이륙과 착륙만이 있을 뿐이다 누가 이곳에 매달아놓은 걸까
옥비녀
살아온 길과 살아가야 할 길을 잠시 모자처럼 벗어놓고 텅 빈 하늘을 가슴에 들이는 일이 왜 이리도 힘든 것이었더냐 생각하며 산길 바위 위에 앉아 있는데 한복을 입고 곱게 쪽머리를 한 여인이 절벽으로 끊어진 외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풍경을 보기 위해 그런가 보다 하고 일어나려는 순간 그녀의 옥비녀가 떨어져 있어 얼른 주워들고 뒤쫓아 가보니 그녀는 없고 머리가 하얗게 센 노파가 절벽 끝에 서 있었다 삶은 찰나, 산길에서 절벽까지 걸어가는 동안 저렇게 한 생애가 저물 수 있고 크게만 보였던 내 마음속의 힘듦과 기쁨도 감쪽같이 사라지는 걸 보면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는 것이었구나 되뇌며 생시 같은 꿈인지 꿈 같은 생시인지 모를 산길을 한없이 걸어간 적이 있었다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24년 6월호 ------------------------ 함명춘 / 1966년 춘천 출생. 199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 『빛을 찾아나선 나뭇가지』 『무명시인』 『지하철엔 해녀가 산다』 『종』이 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