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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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06월14일 | 부정축재 처리법 공포 |
1961년07월03일 | 반공법 공포 |
1963년01월10일 | 외자도입 강력 추진 |
1963년01월21일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발족 |
1963년03월21일 | 감사원 개원 |
1964년12월06일 | 서독방문(유럽 국가 첫 방문), 8일 뤼프케 대통령, 9일 에르하르트 수상과 정상회담 |
1965년06월22일 | 한일협정 정식 조인(동경), 8월14일 국회비준(야당불참), 12월18일 비준서 교환(서울) 즉시 발효, 국교정상화 |
1966년03월03일 | 국세청 발족 |
1968년07월24일 | 해양주권선언 발표(대륙붕 자원확보 및 개발) |
1970년03월07일 | 비적성공산권에 문호개방 |
1970년08월15일 | 8.15기념식에 서 북한이 무력포기하면 남북간의 인위적 장벽 단계적 제거 선언 |
1971년06월12일 |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 제의, 북한측 거부 |
1971년08월12일 | 한국적십자연 맹, 남북가족찾기회담을 북측에 제의 |
1972년07월04일 | 7.4 남북공동 성명 발표 |
1973년06월23일 | 평화통일외교 정책 7개항 발표(6.23선언) |
1973년07월05일 | 한일대륙붕 협 상 완전 타결 |
1973년08월15일 | 남북 UN 동시가입촉구 |
1973년12월15일 | 이스라엘의 점령지 철수 등 4개항의 친 아랍성명 발표 |
1974년01월18일 | 남북한 불가침 협정 체결 제의 |
1975년09월01일 | 국회의사당 준공 |
1975년09월13일 | 북한조총련계 모국방문허용 |
1976년05월21일 | 이태원 이슬람사원 준공 |
1977년01월12일 | 대북식량원조 제의, 남북한 불가침 협정 체결되면 주한미군 철수를 반대하지 않는다고 밝힘 |
1977년01월28일 | 국방부 순시에서 핵무기와 전투기를 제외한 모든 무기를 국산화하고 있음을 천명 |
1978년06월23일 |
남북간의 교역, 기술, 자본 협력 위한 민간 경협기구 구성을 북한에 제의 |
국방
1962년04월30일 | 해양경비대창설 |
1962년05월12일 | 반공센터창설 |
1965년03월19일 | 방공 포병대대 창설 |
1965년11월23일 | 민방위법 제정 (민방위대창설:1975.9.22) |
1966년06월22일 | 한군군장비현대화계획발표 |
1968년01월22일 | 대간첩작전본 부발족 |
1968년02월11일 | 병기공장(M16소총)건설착수 |
1968년04월01일 | 예비군 창설 |
1968년06월13일 | 「레이다」기지 준공 |
1968년07월05일 | 방위산업육성3 개년계획확정 |
1969년03월01일 | 국토통일원 개 원 |
1970년08월04일 | 국방과학연구소(ADD)창설 |
1970년09월16일 | 공군 전천후 해상소형공격기 S2A배치 |
1971년11월14일 | 각종 무기 생 산 개시 |
1975년05월20일 | 학도호국단 창설 |
1975년11월07일 | 함대함 미사일 개발 |
1977년05월25일 | 미군철수 정책 저지(선보완, 후저지) |
1978년01월18일 | 군수산업의 육 성(헬기, 대포, 탄약, 장갑차, 함정, 레이다, 미사일을 생산하고 있으며, 항공기 산업과 특수전차 개발에 착수) |
1978년09월26일 | 국산 장거리 지대지 유도탄, 중거리 유도탄, 다연발 로케트, 대전차 로케트 시험발사에 성공, 세계 7번쨰 개발 보유국 됨. |
산업/경제
1961년06월30일 | 능의선 개통 |
1961년07월22일 | 경제기획원신 설 |
1961년08월03일 | 김포가도 포장 기공 |
1961년08월08일 | 황지지선 기공 (1961.6.13~1962.12.10) |
1961년08월19일 | 섬진강 수력발 전소 건설 |
1961년09월21일 | 춘천수력발전 소 기공 |
1961년09월23일 | 대한 중선창연(蒼鉛)자가제련공장 준공 |
1962년01월13일 | 제1차경제개발 5개년계획 발표 |
1962년01월20일 | 상법제정공포 |
1962년02월01일 | 국민은행 발족 |
1962년02월03일 | 울산공업지구 설정 및 기공 |
1962년02월10일 | 국토건설단 창 단 |
1962년06월01일 | 무역진흥공사 발족 |
1962년06월18일 | 건설부 신설 |
1962년10월20일 | 해운센터기공식 |
1962년10월23일 | 한국케이블공 업주식회사 송배전신 및 케이블공장 기공 |
1962년11월04일 | 광주디젤발전소 준공 |
1962년11월06일 | 동해북부선(옥 계-경포대간)개통 |
1962년11월20일 | 제4시멘트공장건설 |
1962년11월25일 | 부정거래단속법을 제정 |
1962년11월28일 | 난민정착사업장 제방준공 |
1962년12월01일 | 마포아파트준공 |
1962년12월15일 | 김포,강화간 대교건설(~1970.1.26) |
1962년12월28일 | 호남 비료 나 주 공장 준공 |
1963년03월15일 | 동진강지역 종합개발공사 기공, 김해, 진도(63~69) |
1963년04월02일 | 무제한송전실시 |
1963년05월14일 | 남대문중수공사 준공 |
1963년08월08일 | 한국나이론 공 장 건설(대구) |
1963년09월01일 | 철도청 발족 |
1963년09월01일 | 노동청 발족 |
1963년09월06일 | 국토종합개발계획조사착수 |
1963년09월26일 | PVC 제조공장 기공 |
1963년12월22일 | 서독광부·간 호원파견(1963.12.22~1966.1.30) |
1964년05월07일 | 울산 정유공장 건설 |
1964년08월20일 | 감천화력발전 소건설(부산) |
1964년11월29일 | 울산 제3비료 공장 기공식-매암동, 충주비료와 미국 스위프트 투자단의 공동투자 |
1964년12월05일 | 제1회 수출의 날 제정, 1억불 달성/70년 10억불/77년 100억불/82년 200억불/85년 300억불/88년 500억불 달 |
1965년02월24일 | 한국원양어선단 결단(원양어업추진) |
1965년06월01일 | 김해간척공사 기공 |
1965년09월15일 | 제2 영월 화력 발전소 준공 |
1965년12월03일 | 서울·춘천간 도로포장공사 준공 |
1965년12월07일 | 진삼선 개통( 사천~삼천포) |
1966년01월19일 | 정선선 개통( 예미, 증산, 고한 간) |
1966년01월27일 | 경북선 개통( 점촌~예천 간) |
1966년03월03일 | 수산청 발족 |
1966년04월09일 | 인천제철공장 기공 |
1966년04월29일 | 경인공업단지 건설 |
1966년05월03일 | 울릉도 추산 수력발전소 준공 |
1966년06월09일 | 팔당수력발전 소 기공 |
1966년11월09일 | 김삼선 기공 |
1966년11월09일 | 충남선 기공 |
1966년12월17일 | 아시아 개발은 행 건설 |
1967년01월24일 | 청평·의암 ·화천 수력발전소 건설 |
1967년03월04일 | 영남화력발전소 제2호기 기공 |
1967년04월01일 | 구로동 수출 공업단지 준공 |
1967년04월13일 | 서해안 철도건설 |
1967년09월19일 | 구미전자공업단지건설 |
1967년09월23일 | 제1한강대교, 강변도로건설 |
1967년10월03일 | 포항종합제철 공업단지기공(1973. 7. 3 완공) |
1967년11월23일 | 한국수자원개발공사발족 |
1967년12월20일 | 성산포 어업전진기지 준공 |
1968년00월 0일 | 포항항 건설(~1973) |
1968년02월07일 | 경전선개통 |
1968년03월22일 | 석유화학계열 공업 기공 |
1968년07월22일 | 중앙선,태백선전철화(~1974.6.20) |
1968년07월23일 | 동해안공업도시개발착수(묵호,북평, 삼척) |
1968년08월30일 | 영남화력발전소(울산가스터빈)건설 |
1968년09월09일 | 제1회 한국 무 역 박람회 |
1968년02월01일 | 경부고속도로( 대구-부산간)기공식 |
1968년11월01일 | 제주도 포도당 공장준공 |
1968년11월08일 | 동양화학공업 주식회사준공 |
1968년12월16일 | 한국 투자개발 공사 설립 |
1968년12월21일 | 경인·경수고 속도로준공 |
1969년02월15일 | 지하수개발공 사발족 |
1969년02월15일 | 한국도로공사 발족 |
1969년06월04일 | 부산 화력발전 소 준공(21만Kw) |
1969년06월17일 | 마산수출자유 지역공업단지조성 |
1969년07월03일 | 울산 알미늄 공장준공 |
1969년07월29일 | 서울신도시건설착수(한강이남.여의도.한강개발) |
1969년10월07일 | 남강「댐」준 공 |
1969년12월26일 | 제3한강대교 건설 |
1970년01월01일 | 해저광물자원개발법 공포 |
1970년04월15일 | 남해고속도로 기공(~1973.11.14) |
1970년05월16일 | 서울대교 건설 |
1970년05월29일 | 인천 화력발전 소 준공 |
1970년07월04일 | 배창 방직 기 계 준공식 참석(충북 옥천군 옥천읍 양수리) |
1970년07월05일 | 직기 공장 준공-유사시엔 총포 생산도 |
1970년07월07일 | 경부고속도로 전면 개통 |
1970년10월22일 | 수도권(경인, 경수,경원)고속전철화(~1974.8.15) |
1970년12월17일 | 4대강유역 종 합개발계획 확정(한강,낙동강,금강,영산강) |
1971년01월31일 | 제주도 일주 도로 준공 |
1971년03월19일 | 원자력발전소 기공 |
1971년04월08일 | 거제대교 건설 |
1971년04월12일 | 서울 지하철 기공 |
1971년09월08일 | 국토종합개발 계획 확정 |
1971년09월10일 | 서울 북악 터 널 개통 |
1972년01월04일 | 전국 10대 관광권 개발 확정 |
1972년01월05일 | 군산항 개발 착수 |
1972년00월00일 | 제주관광개발사업추진(~1977년) |
1972년03월23일 | 현대 울산 조 선소 기공 |
1970년05월29일 | 인천 화력발전 소 준공 |
1972년06월26일 | 전국702개섬 개발계획확정 |
1972년09월30일 | 영동화력발전 소 건설 |
1972년10월31일 | 석유화학공장 합동 준공, 울산 석유화학8개공장 건설 |
1972년11월24일 | 부산항 대단위종합개발 추진(~1978.9.29) |
1972년11월25일 | 소양강 다목적 댐 담수 |
1973년00월00일 | 이리 수출 자유 지역 |
1973년01월12일 | 공업진흥청 신설 |
1973년02월16일 | 제주도 종합개발 착수 |
1973년05월04일 | 8개 공업장려 지구지정 공업개발(춘천,청주,원주,대전, 전주, 이리, 목포, 군산) |
1973년05월11일 | 해운항만청 신설 |
1973년05월24일 | 중화학공업건설발표 |
1973년06월20일 | 중앙선(청량리 -제천)전철 개통 |
1973년06월22일 | 남해대교 건설 |
1973년07월03일 | 포항 종합 제철 준공 |
1973년07월20일 | 여천 석유화학 공업단지 건설 |
1973년10월11일 | 옥포 조선소 기공 |
1973년06월06일 | 창원 기계 공업 단지 조성 |
1973년11월10일 | 죽도조선소 건설 |
1974년01월24일 | 최대임해공업 벨트개발(제2제철-조력발전소 건설) |
1974년03월28일 | 영동.동해고속 도로기공 |
1974년05월22일 | 아산·남양방 조제 준공 |
1975년01월10일 | 구미대교 건설 |
1975년03월27일 | 대청 다목적댐 건설 |
1976년03월17일 | 모산 저마 공장 준공-충남 아산군 배방면 공순리 |
1976년06월24일 | 구마고속도로 착공 |
1976년07월16일 | 잠수교 개통식 참석 |
1976년10월02일 | 반월공업도시 건설 |
1977년02월17일 | 증권감독원 개원 |
1977년06월15일 | 월성 원자력발전소 건설(1977.6.15 ~1982.3.10) |
1977년07월10일 | 자동차공업 육 성책 발표 |
1976년11월03일 | 안동 다목적댐 건설 |
1977년10월25일 | 군산화력발전소 |
1977년10월25일 | 부평화력발전소 |
1977년11월04일 | 아산화력발전소건설 |
1977년12월07일 | 전주권 광역도시개발 및 공업단지 조성 |
1977년12월22일 | 1백억불 수출 달성 기념 |
1978년01월01일 | 동력자원부 신설 |
1978년01월09일 | 충주 다목적댐 건설 |
1978년03월30일 | 호남선 복선 개통 |
1978년05월22일 | 부마고속도로 건설(1978.5.22 ~ 1980.10.5) |
1978년06월12일 | 경북 울진 원자력 발전소 기공 |
1978년12월01일 | 한국석유개발공사법 공포 |
1979년03월14일 | 한국석유공사 설립 |
1979년03월27일 | 토지개발공사 설립 |
1979년06월12일 | 경북 울진 원자력 발전소 기공 |
1979년06월13일 | 수도권 광역수 도사업 추진(팔당) |
1979년07월05일 | 천호대로 준공 |
1979년10월26일 | 삽교천 방조제 준공 |
과학기술/정보
1961년07월14일 | 원자력개원 |
1962년02월02일 | 기술진흥 5개 년계획 발표 |
1962년03월19일 | 핵분열 연쇄반 응 일으키는 원자로의 임계도달 시험-양주군 노해면 |
1962년09월10일 | 남양송신소 준 공 |
1962년11월18일 | 과학자 우대정 책 발표 |
1963년03월30일 | 원자로 가동식 |
1965년12월16일 | 국내(텔레스)개통 |
1966년01월27일 | 한국과학기술원 설립 |
1966년02월04일 | 한국과학기술 연구소(KIST)발족 |
1967년03월30일 | 원자력청 발족 |
1967년03월30일 | 과학기술처 신 설 |
1967년04월29일 | 천체과학관 준공 |
1967년05월01일 | 국립광업연구소 설립 |
1969년11월29일 | 관악산 기상레이더 건설 |
1970년06월02일 | 금산 위성통신 지구국 개통 |
1970년08월04일 | 국방과학연구소(ADD)창설 |
1971년02월14일 | 한국과학기술원(KAIST)발족 |
1973년06월26일 | 대덕연구단지 건설(10개연구소) |
1974년09월11일 | 국립천문대발족 소백산 천체관측소설치 |
1976년12월30일 |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창설 |
1977년04월30일 | 초고압송변전시설 완공 |
1978년02월20일 | 행정전산화 10개년 계획 확정 |
1978년06월05일 | 태양에너지 연구소 발족 |
1978년12월30일 | 장거리 자동 공중전화 시대 개막 |
사회문화
1961년06월11일 | 재건국민운동 전개(국민의식개혁) |
1962년01월01일 | 연호를 서력으 로 변경(연호에 관한 법률 제정) |
1962년03월01일 | 공문서의 한글전용실시(70년1월1일 관계법 제정) |
1962년07월19일 | 국립소년직업 훈련소 낙성 |
1962년12월24일 | 생활보호법제정 |
1963년01월18일 | 원호센터 준공 |
1963년02월01일 | 장충체육관 건 립 |
1963년02월04일 | 지방문화재육 성 |
1963년04월10일 | 부녀회관 건립 기공 |
1963년09월06일 | 동대문 개축준공 |
1963년09월10일 | 문화재 보수 5 개년계획확정 |
1963년09월17일 | 가족계획사업추진 |
1963년09월25일 | 직업재활원 개 원 |
1963년10월03일 | 갑오동학혁명기념탑 제막 |
1963년10월10일 | 가정법원 개원 |
1964년01월01일 | 미터제 실시 |
1964년05월07일 | 국립 중앙 의 료원 설립 |
1964년07월01일 | 경주석굴암복 원준공 |
1965년01월25일 | 제2한강교 개 통 |
1965년08월31일 | 해인사 경판고 보수 |
1965년10월15일 | 율곡사 및 율 곡기념관 낙성 |
1966년11월28일 | 서울 분묘 보수 |
1966년11월30일 | 밀양 영남루 보수 |
1966년11월30일 | 서울 종각 보 수 |
1966년12월06일 | 부여 정림사지 정비 |
1966년12월18일 | 법주사 대웅전 보수 |
1967년04월25일 | 종합민족문화 센터 준공 |
1967년04월26일 | 안중근의사 동 상 이안 |
1967년10월01일 | 국립묘지정화, 현충탑건립 |
1968년12월02일 | 소수서원 해체 복원 |
1968년12월07일 | 지리산 등 9개 지역국립공원지정 |
1968년12월11일 | 광화문복원 |
1969년03월01일 | 가정 의례 준 칙 공포 |
1969년04월28일 | 현충사 중건 준공식 |
1969년04월28일 | 불국사 복원 정화작업(1969~1973) |
1969년08월19일 | 범어사 대웅전 보수 |
1970년02월29일 | 금산사대적광릉 해체 복원 |
1970년07월01일 | 우편번호제 실 시 |
1970년07월25일 | 남산 어린이회 관 건립 |
1970년11월10일 | 행주산성 복원 준공 |
1970년11월19일 | 세종대왕기념관 준공 |
1970년12월08일 | 도산 서원 보 수 정화 공사 준공 |
1970년12월25일 | 화엄사 대웅전 보수 |
1970년12월31일 | 남원 광한루 보수 |
1971년04월13일 | 칠백의총 보수 정화 준공 |
1971년08월30일 | 속리산 법주사 의 사천왕문 복원 |
1971년09월25일 | 태릉 국제사격 장 준공 |
1971년09월29일 | 여의도 5·16 광장 준공 |
1972년03월10일 | 경주 고도개발 10개년획확정 |
1972년07월04일 | 한국 개발연구원 설립 |
1972년11월04일 | 육산리 고분군 정화 |
1972년11월13일 | 시외전화 자동화 |
1972년12월11일 | 지리산,설악산,낙동강 하류철새보호지역 지정 |
1973년03월03일 | 한국방송공사 설립 |
1973년05월05일 | 어린이대공원 개원 |
1973년10월17일 | 국립극장 개관 |
1973년10월19일 | 문예중흥5개년계획추진 |
1973년11월07일 | 국민연금복지법 제정 |
1974년06월10일 | 낙성대 정화 사업 준공 |
1974년12월10일 | 금산사 미륵전 해체 복원 |
1974년12월27일 | 이경관문 해체 복원 |
1975년04월11일 | 중앙민속박물관 개관 |
1975년10월10일 | 서울 어린이회관 이전 개관 |
1975년10월28일 | 전국 성곽 보수 사업 추진 |
1975년10월30일 | 정립회관 건립 (장애인보호육성) |
1976년01월20일 | 옥산서원보수 |
1976년01월20일 | 강화 지역 유 적 개발 |
1976년01월20일 | 신안 해저 문 화재 발굴 |
1976년04월10일 | 밀양 포충사 정화사업 |
1976년04월10일 | 유관순 유적지 정화사업 |
1976년04월17일 | 국어 정화, 순 화 운동 전개 |
1976년05월10일 | 강릉 오죽헌 정화사업 |
1976년06월24일 | 유적지전적지 개발을 위한 특별법제정 |
1976년10월30일 | 한산성 충무공 유적 정화사업 준공식 참석 |
1977년00월00일 | 남서울대공원 건설 |
1978년07월01일 | 부가가치세, 의료보험 실시 |
1977년07월30일 | 경주통일전조 성 |
1977년09월22일 | 소비자보호기본법제정 |
1977년10월09일 | 여주 영육 성역화 사업 |
1977년10월09일 | 부석사 정화 작업(1977~1979) |
1978년04월01일 | 국민체조보급 |
1978년04월14일 | 세종문화회관 개관 |
1978년05월03일 | 월정사복원 |
1978년05월10일 | 김덕령장군 유 적지 정화사업(광주) |
1978년05월10일 | 임경업장군 유 적지 정화사업(충주) |
1978년06월30일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개원 |
1978년08월15일 | 해남 표충사 보수 |
1978년10월20일 | 서해안 일부지역 국립 해안 공원 지정 |
1978년10월30일 | 직지사 정화사 업 |
1978년11월08일 | 관광산업진흥책 발표 |
1978년12월22일 | 곽재우장군유 적지 조성 정화사업 |
1978년12월06일 | 광주박물관 개관 |
1979년04월06일 | 경주 보문 관 광단지 개장 |
1979년04월18일 | 잠실체육관 건 립 |
1979년05월30일 | 상주 정기룡장군 유적지 정화 사업 |
1979년10월12일 | 국제 올림픽대 회 서울 유치 언명 |
교육
1961년12월22일 | 첫 학사자격 국가고시 |
1962년07월13일 | 국민 의무교육 실시 |
1963년01월01일 | 교육자치제 실시 |
1963년08월08일 | 국사교육통일방안 확정 |
1965년03월23일 | 청소년 선도 국민 궐기 대회 |
1966년04월27일 | 백산학회창립 간도프로젝트지원 |
1968년04월13일 | 서울대학교 이 전 건설 |
1968년12월05일 | 국민교육헌장 선포 |
1969년00월00일 | 교육제도개혁(중학 교무시험, 고교평준화, 대학입시예비고사제) |
1970년03월22일 | 정부장기종합 교육계획시안마련-86년까지 단계적으로 실시(의무교육9년으로로연장,교육제신설,교원에게병역 |
1972년06월07일 | 교육용 한자1,781자 선정 발표 |
1973년07월10일 | 전국91개 공업고등학교 신설, 확충계획발표 |
1973년07월18일 | 정수직업훈련 원 개관 |
1976년05월18일 | 한국 인력 검정공단 법안 확정(기술인력관리,자격,검정의 일원화) |
1977년02월15일 | 산업체부설학교 및 특별학급설치 |
1977년00월00일 | 전국 도서관 확충 |
환경
1965년04월01일 | 치산녹화 10개년 계획 확정 |
1966년08월03일 | 산림청 신설 |
1967년02월10일 | 대도시 그린벨트설정(서울, 부산 등) |
1972년04월05일 | 산림보호, 육성, 산지개발(입산,수렵금지) |
1977년10월07일 | 육림의 날 선포 |
1978년10월05일 | 자연보호헌장 선포 |
1979년10월02일 | 환경청 신설 |
농업
1961년06월10일 | 농어촌 고리채 정리법 공포 |
1962년04월02일 | 농촌진흥청 발 족 |
1963년07월20일 | 제대군인 개간 농장 입주 |
1965년11월13일 | 경호천 종합개발 준공식-칠곡군 북삼면 |
1965년12월02일 | 식량증산 5개 년계획 확정 |
1966년06월08일 | 충청남도 부여 군 남면 지구 전천후 농업용 수원개발사업 준공 |
1967년12월01일 | 농어촌개발공 사발족 |
1968년07월29일 | 축산개발 4개 년계획 확정 |
1969년02월05일 | 농업진흥공사 발족 |
1969년02월22일 | 농업기계화 8 개년계획확정 |
1969년11월01일 | 농어촌근대화 촉진법발표 |
1970년04월22일 | 새마을운동 제 창 |
1970년08월02일 | 낙동, 영산강 종합개발안 영구수해방지 위해 다목적댐 건설 수운 개설 |
1971년03월23일 | 금강·평택 지 구 다목적 농업 개발 사업 기공 |
1972년02월09일 | 녹색혁명추진(통일벼 개발) |
1972년04월21일 | 새마을 운동 노래 작사, 작곡 |
1975년01월21일 | 농어촌지역의 상수도 시설5개년계획추진 |
1975년02월01일 | 대단위농업개발사업추진(금강,평택,광주, 삽교천,계화도) |
1976년10월12일 | 쌀의 완전 자급자족 달성 |
1976년10월14일 | 영산강 유역 농업개발 제1단계사업준공 |
그 당시 소위 지식층, 전문가층 인사들중 일본의 교육기관을 안거친 사람이 있읍니까? 해외로 떠난 극소수의 사람들 뿐입니다. 그는 남노당에 가입하고 활동했읍니다. 그러나 그는 전향서를 쓰고 전향을 하였고 그 후의 행적에서도 그 전향이 진심임을 보여주었읍니다.
학생 데모대에 끼여서 돌을 던지고 학생회에 가입학 여름방학때 집단교육을 받은 넘들은 모두 지금도 한총련입니까? 그럼 저도 반체재 한총련 입니다. 한총련 출신이니 열우당에서 한자리 할 수 있겠군여..허허허허....
쿠데타 부문은 뭐라 할 말이 없읍니다. 역시 역사적 사실에 대한 가치관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조언을 한다면 이성계는 어떤지? 연개소문은 어떤지? 그럼에도 깨끗한 과거가 있는 사람이 좋다면 뭐...할말이 없읍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불행하고 복잡한 시대에 태어나 자신의 일은 한 좋은 지도자라는 제 평갑니다.
항아리님 ..그럼 그당시에 독립운동하신 분들은 ...뭐가 되는거지요? 일제시대에는 일본에 충성하고... 그리고 전향서를 쓴 이유가 뭔지 아시나요? 당시 박정희를 취조한 인물이 거물친일파 출신의 김창렬이였습니다. 박정희가 살기 위해 배신때리고 그 덕분에 남로당원 일망타진 하자 이 거물 친일파가 구명해준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 5.16으로 정권잡은 다음에 반공법을 발표한 것은 미군이 박정희의 출신을 알고 의심의 눈을 보냈기에 혁명공약 제1조로 ‘반공’을 내걸어 자신의 과거를 불식시키려 한거죠. 그리고 데모하면 다 반체제인가요? 독재 싫어서 데모한것이 반체제라고 생각하나요? 보수집회 데모는 어떤가요?
그리고 쿠데타... 쿠데타.. 연개소문하고 이성계하고 박정희가 같다고 보십니까? 그때는 왕조시대고 지금 현대는 민주주의시대입니다. 즉 국민이 투표로 지도자를 결정하는거죠. 그걸 어떻게 동일한 선상에 놓고 보죠? 지금이 17세기 중세입니까? 아니면 조선시대인가요?
그는 만주군 출신입니다. 우리 민족에게 나쁜일을 한 경우는 제가 알기론 없읍니다. 단지 어려서 군대가 좋아 군대를 갔고 가보니 이건 아니다 싶어 도망쳤읍니다. 독립운동은 독립운동 그나름 대로 평가를 받을 만 합니다. 또 그 대죽같은 의지에 경의를 표합니다. 남로당원중 전향 한다면 살려줬읍니다. 무슨문제인지?
역쉬 쿠데타 인가여...헐.... 그럼.. 그당시 무능력했던 이들이 정권을 잡도록 놔둬야 합니까.. 바로 위쪽에 강력한 적이 있었는데여... 그들은 잠시나마 정권을 잡았읍니다... 하지만 그들의 능력부족이 들어나고 사회혼란이 심해지자 박정희가 등장한겁니다. 주변에 문제가 없다면 저도 님과같이 형식적 민주주의를
지지합니다. 하지만 그당시는 국가 목숨이 백척간두 였읍니다. 제가 구지 고대 중세 예를 든 이유가 그것입니다. 내정과 힘에의한 지도자의 선택은 그 당시가 그나마 비슷합니다.
지금 열우당이나 노사모쪽은 반체제 집회라고 하지 않던가여.... 나보고 하도 보안법에 걸려 들어갈 놈 이라 그래서 그렇게 아는데여...
항아리님 장면정부 6개월입니다. 무능하고 뭐고간에 행정부꾸리고 경제개발계획잡고 있다가 당했어요. 무능하고 타락할 시간이나 줘봤습니까?
박통은 평가를 받을 기본준비조차 안되어있습니다. 그간 군사정권기간동안의 우상화과정을 통해 업적은 하늘을 찔렀지만 반대로 비리나 악행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알기론 없습니다'이렇게 말씀하시는거구요.
지금 북한애들도 똑같이 말합니다. 김일성김정일의 비리나 악행에 대해서 제가 알기론 없습니다라구요. 그럴때 님은 뭐라고 말하시겠습니까? 아마 저와 똑같은 말을 하시겠지요.
피식.... 분명히 장면정부는 무엇을 할 시간조차 없었읍니다..하지만... 국정을 안정시키지도 못했읍니다. 매일같은 정치적 소요, 데모, 경제혼란으로인한 물가 폭등, 6개월을 장기적인 계획을 하기는 분명히 짧은 시간입니다. 하지만 셋중 하나를 안정시키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김일성이가 자잘히 치른 개인적이 만행은 저도 모릅니다....어디가서 언넘을 죽였는지 알아야 그 사람에게 말을하져.... 그런거 외우고 있을 정도로 멍청한 녀석도 아닙니다. 그에 대한 평가 한다면.. 왜 애꿇은 친척들을 갑자기 내려와 죽이는지 이해가 안됨니다.(한국전쟁), 또다른 한국전쟁을 준비하는 통에 경제 말아
먹은 바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전문가 얘기를 귓등으로 들어 온 산을 계단식 논밭으로 만들어놓고 자랑하다가 온 인민을 굶주리기 만든 똘아이라고 말할 겁니다. 제 평가는 그게 답니다. 실패한 지도자... 다른분들이 자꾸 지엽적인 문제로 흡집있는 사람이 아닌 죽일놈으로 박 전 대통령을 만드니 반발한 것 뿐입니다
장면정부가 무능하다면 비판받아 마땅하겠지요. 그렇다고 지극히 주관적인 잣대로 군대를 사유화하여 헌법을 부수고 권력을 탈취하는 행위가 그런식으로 정당화 된다면 한총련의 국가전복도 정당화됩니다. 님은 쿠테타를 정당화하는 역사관으로만 장면정부를 보고 있습니다. 그럼 권력이 갖고 싶어서 쿠테타했다고 하겠습니
까? 핑계거리는 많지요. 현정부도 나라가 혼란하고 친북세력이 국정을 장악하고 있다고 주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쿠테타가 일어날수 있지요. 님은 그것을 찬성하시는 겁니까?
항아리님 님의 말 대로입니다. 어디가서 언넘을 죽였는지 알아야 그사람에게 말을 하지요. 먼저 알아야 평가를 한다는 겁니다. 그 '알기' 위해선 '지엽적인 문제'들이 자꾸 까발겨지고 조사되어야 하는게 우선이구요.
항아리/그래서 우익 쿠테타 세력이나, 독재정권이라고 체제전복하자는 주사파나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는 겁니다. 주관적인 착각을 객관적이라고 우겨서 사회시스템을 부시지요. 예전에 그분이 그랬던 것처럼요.
bjr18 당신 존나 우끼는 사람이군!! 그러는 당신은 뭐하는 사람인가? 그러는 당신이 먼저 맨날 고기먹고 인권없는 독재나라에 가보시지? 그라고 당신이 뭔데 별소리를 다듣네 마네 찌랄이야? 씹떼기야... 너한테 한소리냐? 씨발라마~!
그저 그시대가 사람을 그렇게 만들고 요구한거라 생각하고싶습니다..과거는 어짜피 돌이킬수없는것..
과거를 보고 반성해서 현재를 고쳐나가야지요. 들이킬수는 없지만 되풀이 하면 안되니까요.
NIDA <= 당신의 욕에 웃음밖에 안나오는군! 가소러워서 말야^^ 애기야! 까불지마라 응!
저나나 주사파나 같다고 해도 할말이 없읍니다. 맞다고 느끼니까요.... 단, 제가 말한것은 한국이 살아남는 '확실한'길이기에 선택한 겁니다. 박통 정권하에서 부모님과 살아왔읍니다. 일하고 돈벌고 살만 피둥피둥 쪘읍니다. 청년시절에 고민한적도 있지만 '사치'라는 결론을 내리고 의견을 올리는 겁니다.
bjr18, 항아리2/ 독립군 잡아죽이던 일본군 장교에 국군에서 남로당 프락치하다 들통나니까 동료를 정보 팔아서 목숨 부지한 그런 놈이 그리도 좋소? 그래도 좋다면 할 말 없지.....
지니샘 / 근거 없이 말하지 마시오!!!
지니샘, 특무대 김창룡에게 남로당 자료를 넘겨준 것은 박정희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입니다. 이름이 누구인지.. 잘 기억은 안남, 그리고 박정희가 일본군에 복무했던 1944~1945년사이에 만주에 독립군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박정희는 전투부대가 아닌, 포로수용소 책임자로 있었습니다.
그리고 해방후, 박정희는 한국광복군의 지대장이 되어 국내로 돌아오게 됩니다. 박정희가 독립군 때려 잡을 저도면, 광북군에서 받아들여 주엇을까요?
bjr18/ 바로 위의 글이 그 근거요!!! 당신 읽고서도 헛소리를 써놓았더군요! 제대로 읽었소?
다른 대통령과 비교하려면 5년단위로 끈어야죠...
bjr18 이 씨발새끼야! 시비건건 너야... 씹새끼야! 상황판단 제대로 못하나? 이새끼 완전 또라이네... 시발라마~! 애기? 호모새끼가? 씹자슥아~! 까불고 있는건 너지 씨발라마~! 눈까리 있으믄 니가 쓴글 함봐라~! 주댕이쳐날리뿔라마~!
-_-;;; 위엣분들 어이가 없음..
NIDA <= 허참! 님의 입이 참 아름다우십니다 그려!!! 내가 졌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