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를 통해 우리 것의 아름다움을 깨우쳐주셨던 혜곡 최순우 선생의 생생한 육성을 느낄 수 있는 산문집. 아름다움을 보는 눈은 마음에 있다고 생각하신 선생은, 달 그림자 노니는 영창, 먼 산 바라보는 굴뚝, 서리 찬 밤의 화로, 가냘픈 연두빛 무순, 가을비에 촉촉이 젖은 낙엽의 스산함 등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한 편 한 편의 글마다에 "자연이나 조형의 아름다움은 외롭고 호젓한 것이기에 공감 앞에서 비로소 빛난다"며 많은 사람들과 아름다움을 공감하기 위해 분투했던 선생의 '한국미 사랑'이 오롯이 담겨 있다. 아름다운 마음씨를 함께 나누는, '사색'의 계절에 어울리는 책.
1916년 4월 27일 개성에서 태어났다. 순우는 필명이고 본명은 희순(熙淳)이다. 1935년 개성 송도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할 무렵 미술사학자 고유섭에게 감화를 받아 한국 미술사 연구에 뜻을 세웠으며, '조선고적연구회'에서 활동하면서 개성의 여러 고고 유적지를 답사했고, 특히 고려 청자 연구에 관심을 기울였다. 고보 졸업 후 잠시 교편을 잡다가 1943년 개성 부립박물관에 들어가 한국 미술사 연구에 본격적으로 몸을 담기 시작했다.
1945년 서울의 국립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겨 학예연구관·미술과장·학예연구실장 등을 거쳐 1974년 국립중앙박물관장에 취임하였다. 작고하던 해인 1984년까지 40년 가까이 박물관에 봉직하며 당시 일반인에게 멀게만 느껴졌던 박물관을 가까이 느낄 수 있도록 애정을 기울였다.
1950년부터 서울대 · 고려대 · 홍익대 · 이화여대 등에서 미술사를 강의했으며, 1960년 여름 '고고미술동인회(한국미술사학회 전신)'를 발족하여 전국의 유적지를 누비고 <고고미술>을 발간하여 한국 미술사 연구의 기초를 닦았다. 한국미술평론가협회 대표·한국평론인회의 대표 등을 역임하기도 했다. 또한 1945년부터 5년간 문학지 <순수>의 주간을 맡았으며, 우리 문화재와 우리 강산의 아름다움을 밝힌 주옥같은 글을 열정적으로 발표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 문화의 참아름다움과 가치를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미술사 개설』『한국 공예사』『한국미 한국의 마음』 등이 있으며, 유고집으로 『최순우 전집』『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가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청사를 구(舊) 중앙청 건물로 이전하는 작업을 진두지휘하던 중 1984년 12월 16일 숙환으로 별세하였다. 유족으로는 딸 수정 씨가 있다.
모진 겨울바람이 불어닥쳐 오면 이 고운 용담꽃들은 그만 기진해서 눈 쌓인 산기슭에 갈색의 촉루를 남기고 죽어 가지만, 져 버린 삶이 아니라 불태워 버린 삶처럼 이 꽃의 마른 꽃가지마저 나는 좋아한다. 용담이나 억새 같은 마른 꽃가지를 길게 꺾어다가 백자 항아리에 꽂아 놓고 한겨우내 바라보면 싱싱하게 살아 있는 꽃가지보다 더 속삭임이 절실해서 마음이 늘 차분하게 가라앉는 까닭을 알 듯도 싶어진다.-- 본문 중에서
가벼운 여름 단장을 한 한 앳된 여인이 마치 사진이나 찍으려는 듯이 포즈를 취하고 서 있는 모습, 나긋나긋한 두 손으로는 가볍게 앞가슴에 달린 삼작노리개를 매만지고, 무거울 듯 머리 위에 큰 트레머리가 멋들어지게 얹혀 있으나 반듯한 맑은 이마 위에 선명한 가르마를 반쯤만 가린 풍경이 오히려 날아갈 듯만 싶게 경쾌하다.--- 본문 중에서
『무량수전…』이 우리가 미처 몰랐던 우리 것의 아름다움을 하나하나 속속들이 깨우쳐주는 글들로 이루어진 책이라면,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는 그러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마음씨를 엿보게 하는 책이다.
화사한 꽃을 피우는 봄보다는 이슬 머금은 붉은 열매를 단 가을 나무의 잔가지, 텅 빈 가지가 달빛을 받아 창호지 문에 그려주는 추상화, 가을비에 촉촉이 젖은 낙엽의 스산한 아름다움에 마음을 기울이는 선생의 모습은 어찌 보면 고독해 보이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중년의 남자들끼리 손목시계를 바꿔 차며 석별을 정을 나눈다든지, 당나라 때 서역에 산 것으로 보이는 여인의 미라가 전쟁통에 또다시 갈가리 부서진 데 분노하고 허탈해한다든지, 피난 가느라 남겨두고 갔던 개 바둑이와 해후하며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볼 때 우리는 선생의 깊은 속정에 반하게 된다.
돌에 물을 주며 바라보고 기르는 모습, 김장무를 잘라내 키운 무순이 피워낸 보랏빛 꽃에서 간절한 생명을 읽는 마음씨, 시든 가을 풀숲에서 피어나는 용담꽃을 못 견디게 그리워하는 모습, 스위스 목장에서 얻어온 소방울을 풍경 삼아 걸어두고 그 소리를 즐기는 모습에서 섬세한 감성을 읽게 된다.
선생은 우리 것은 "첫눈에 눈을 사로잡는 화려함이나 눈을 부릅뜨고 들여다봐야 하는 근시안적인 신경질이 없으며, 거칠고 성글어 보여도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보면 시원하고 대범하면서 담담하고 조촐하다"고 말한다. 선생이 고른 옛그림과 도자기의 해설을 보면 무엇보다 그것들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선생 자신이 참으로 소박하고 조촐한 것을 추구한 '선비'였음을 느끼게 된다. 선생이 골라잡은 조선시대 미남미녀에 관한 짤막한 글들을 읽을 때면, 익살스럽고도 구수한 표현에서 여유롭고 따뜻한 시선을 느끼게도 된다.
선생은 "함께 할 수 없는 아름다움은 때로 아픔이 된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연이나 조형의 아름다움은 늘 사랑보다는 외로움이고, 젊음보다는 호젓한 것이기 때문에 그 아름다움은 공감 앞에서 비로소 빛나며, 뛰어난 안목들은 서로 그 공감하는 반려를 아쉬워한다"라고 말한다. 그의 평생의 한국미 사랑은 우리 모두와 함께 나누는 아름다움이기를 호소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같이 앓고, 같이 나누기 위해 이 책을 엮었다.
40년 가까이 박물관에 몸담으며 평생 ‘한국미’를 찾고 키우고 퍼뜨린 저자는 아름다움에 살다 아름다움에 간 사람이다. 지난 1994년 나온 그의 유고 선집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 서서』가 우리 것의 아름다움을 하나하나 깨우쳐주는 글들로 엮였다면,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는 잔재주를 부리지 않은 조선자기를 “코앞에 다가가서 들여다보기보다는, 예사처럼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바라보는 마음가짐을 엿보게 한다.
달빛 노니는 창살, 추녀 끝의 소방울 소리, 북악산에 살고 있는 꾹꾹새, 서리 찬 밤의 화로와 연두빛 무순…. 예술품을 알아보는 그의 ‘안목’은 우리 곁을 둘러싼 하고많은 아름다움을 외면하지 않는다. 또 간송 전형필과 차 속에 나란히 앉아 서로 차고 있던 손목시계를 바꿔 차며 석별의 정을 나누고, 피난 가느라 남겨둔 개 바둑이와 해후하며 부끄러워 눈물을 흘린다.
자연이나 조형의 “아름다움은 공감 앞에서 비로소 빛나며, 뛰어난 안목들은 서로 그 공감하는 반려를 아쉬워한다.” 『나는 내 것이…』는 아름다움을 가려내고, 그것을 많은 이들과 공감하려 한 저자의 깊은 속정을 느끼게 한다.--- 한겨레신문 책과사람 02/08/31 임주환 기자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는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혜곡 최순우선생의 유고 산문집이다. 그는 40여년 동안 박물관에재직하면서 한국미의 본성을 속시원히 밝혀주는 글들을 발표해 '동양의 안목'으로 불리기도 했다. 1994년 나온 혜곡의 유고집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가 전통ㅎ건축물, 불상, 회화 등 대표적인 우리 문화유산을 전문적으로 해설한 것이라면, 이 책은 아름다움을 가려내는 안목, 우리 곁을 둘러싸고 있으나 미처 깨닫지 못했던 한국적 아름다움을 밝히는 짧은 에세이들을 모았다.
혜곡은 생전에 조선시대 백자 항아리의 아름다움을 가리켜 '잘생긴 며느리 같다'고 표현했다. 우리 문족은 '잘생겼다''의젓하다'하고 즐거움을 으뜸으로 삼았기 때문에 조선 자기는 코앞에 다가서서 들여다보기보다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바라볼 때 진정한 아름다움이 나타난다고 그는 설명한다. 그에게 한국미란 “한국 사람들의 성정과 생활양식에서 우러난 우리하지 않는 아름다움, 소박한 아름다움, 호젓한 아름다움, 그리움이 깃들인 아름다움, 수다스럽지 않은 아름다움 그리고 이러한 아름다움 속을 고요히 누비고 지나가는 익살의 아름다움”이었다.
그러나 혜곡은 우리 것만이 최고라고 여기거나 단순히 옛것에 집착하는 호고취미를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 책에는 달 그림자 노니는 영창, 추녀끝에 매달아 놓은 소방울, 서리 찬 밤의 화로 등 일상풍경에서 만날 수 있는 보편적인 아름다움에도 경탄하는 혜곡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장욱진 김환기 이상범 등 에술인과의 교우 뒷얘기를 담은 글도 실려 그의 인간미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한국일보 책과세상 02/08/24 김영화기자
평생 아름다움을 찾고, 키우고, 퍼뜨리다 아름다움을 안고 간 사람 최순우. 유고선집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가 우리 것의 아름다움에 대한 안목이라면 이 책은 그런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마음씨다. 달 그림자 노니는 영창이랄지, ‘먼 산 바라보는 굴뚝 등 하찮은 것에 눈길을 주고, 가까웠던 화가나 좀 모자라는 하인 등 생전 연분에 대해서도 속 깊은 정을 보여준다. 게다가 옛 그림이나 도자기를 한발짝 물러서서 관조하던 여유는 어떤가. 개중에는 ‘호고(好古)취미’라고 비아냥댄다지만, 40여년간 박물관에 몸담으면서 ‘한국미에 미쳐 살았던’ 저자의 멋이 흠뻑 묻어나는 산문집이다. 그에게 있어 아름다움의 ‘아름’은 알음이자, 앓음이라는데…. ‘혜곡 최순우 전집’에 실렸던 글.--- 경향신문 책마을 02/08/24 손현주 기자
혜곡(兮谷) 최순우 선생은 잘생긴 분이셨다. 사십 평생을 박물관에 몸담고서 청자니 백자니, 회화니 조각이니, 하는 우리의 문화유산에 묻어나는 잘 생긴 한국미를 찾아내셨으니 자신이 아예 사랑한 전통미의 멋과 맛을 닮아 버리셨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처럼 천연스럽게 ‘어리무던’한 한국적인 조형미와 닮은 얼굴을 예나 지금이나 찾기 힘들게다.
25년 전, 그러니까 내가 막 국립중앙박물관에 입사하여 미술사 공부를 하던 햇병아리 시절, 박물관의 유물들을 대하는 것과 동일하게 고(故) 최순우 관장의 매혹적인 자태를 마주할 수 있는 일은 큰 행복이었다. 출근하시면 곧바로 전시실을 한바퀴 돌고 관장실로 들어가시는 뒷모습을 보며, 우리 것에 대한 그분의 돈독한 애정을 흠모하곤 했다. 그때 나는 그분의 그늘 아래서 미술사에 빠져들게 되었다.
혜곡 선생은 멋쟁이셨다. 흔히 전통미하면 고루한 것으로 치부돼 사람조차 고루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허나 선생은 우리 전통미술의 간결미와 현대미의 동질성, 조화에 늘상 심취하셨던 분이다. 이는 김환기, 이중섭, 장욱진, 이상범 등 당대 화가들과의 교우와 그들 작품에 대한 평가에도 잘 드러나며 조선시대 선비의 갓끈에 담긴 멋의 풍류를 현대 정장의 넥타이에서 찾는 대목에서도 빛난다.
그는 집무실이나 생활공간도 언제나 정갈하고 세련된 꾸밈새를 갖추고 사셨다. 한국적인 아름다움, 더 나아가 인간의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몸소 삶의 일부로 체현하신 것이다. 그런 때문인지 선생의 우리 미술에 대한 글은 몸에 사무치는 표현으로 한국미의 생명력을 불러 일으킨다. 한국의 자연과 조형에 그토록 적절히 어우른 독특한 묘사방식은 우리말과 글의 아름다움을 뽐내게 한다. 당대의 어느 미술사가도 범접할 수 없고, 이루지 못한 독특한 위업을 남기셨다고 생각된다.
그는 한국미의 본바닥을 흐르는 선과 음률의 흥겨움, 그리고 익살을 찾아내어 우리 것의 건강하고 정직한 아름다움을 펼쳐 내셨다. 석굴암 본존의 장대하고 존엄한 원만미부터 풀꽃과 같은 우리 자연의 청순미에 이르기까지, 잘생긴 옛 선비의 담담한 품위와 지조의 아름다움부터 장터 촌부의 소탈미까지, 특히나 도자기와 목기 등 공예문화와 건축문화의 생활미까지 그 분의 눈길이 닿지 않은 것이 없었다.
‘백성들의 고혈’로 완공된 경복궁에서 ‘한가닥 불평도 불만도 비치지 않는 굴뚝의 쌓음새’를 보고 ‘참 우리백성은 좋은 백성이로구나’를 인식하는 따뜻한 마음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선생만의 혜안인 듯 싶다.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는 몇몇 도록이나 선생의 유고 선집인 ‘무량수전…’외에는 선생의 흔적을 찾기 힘든 상황에서 ‘한국미에 미쳐 살았던’ 선생의 인간미가 흠뻑 묻어나는 산문집이다. ‘무량수전…’이 미처 몰랐던 한국미의 아름다움을 속속 깨우쳐 주는 글이라면 ‘나는 …’은 그러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마음씨를 엿보게 하는 책이다.
돌에 물을 주며 바라보고 기르는 모습, 김장 무를 잘라 내 키운 무순이 피워 낸 보랏빛 꽃에서 간절한 생명을 읽는 마음씨, 시든 가을 풀숲에서 용담꽃을 못 견디게 그리워하는 모습에서 그의 섬세한 감성을 읽게 된다. 또 중년 남자들끼리 손목시계를 바꿔 차며 석별의 정을 나눈다든지, 당나라 때 서역에 산 것으로 보이는 여인의 미라가 전쟁통에 또다시 갈가리 부서진 데 분노하고 허탈해 한다든지, 피난 가느라 남겨두고 갔던 개 바둑이와 해후하며 눈물 흘리면서 자신을 부끄러워 하는 모습을 볼 때 선생의 속정에 반하게 된다. 이 책은 아름다운 인간 혜곡 선생을 통해 우리가 진정 아름답게 사는 길을 열어주고 있다.- 동아일보 책의향기 08/24 이태호 (전남대 교수)
평생을 "한국미에 미쳐 살았던" 혜곡 최순우 선생의 인간미가 흠뻑 묻어나는 산문집. 유고선집인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 서서'가 우리가 미처 몰랐던 우리 것의 아름다움을 하나하나 깨우쳐주는 글을 모았다면 이번 책은 그러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마음씨를 담았다.
40년 가까이 박물관에 몸담았던 선생이 남긴 옛그림과 도자기의 해설을 보면 무엇보다 그것들에게서 아름다음을 느끼는 선생 자신이 참으로 소박하고 조촐한 것을 추구한 '선비'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가 하면 피란가느라 남겨두고 갔던 개 바둑이와 해후하며 눈물 흘리는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모습, 김장무 토막의 무순에서 피어난 보라빛 꽃에서 간절한 생명을 읽는 마음씨 등에선 깊은 속정에 절로 반하게 된다.- 중앙일보 행복한 책읽기
아침 저녁으로 일렁이는 찬바람이 한여름의 기억을 갈무리할 때임을 알려준다. 사색의 심연으로 접어드는 가을의 들머리에서 우리의 멋과 아름다움에 흠뻑 취하게 하는 책은 그래서 반갑다. ‘동양의 안목’으로 불린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혜곡 최순우의 글과 마주하면 우리 것의 아름다움에 눈뜨게 된다. 한국의 멋과 아름다움에 반해, 죽는 그날까지 한평생 한국미를 예찬하며 살아온 그다. ‘20세기 마지막 선비정신’으로 불리는 혜곡의 혼이 담긴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는 그래서 사색의 계절을 한층 풍요롭게 할 진객이다.
해방후 급격한 서구화와 개발지상주의에 밀려 우리것, 우리 전통의 가치와 아름다움이 평가절하되는 시대를 살아온 우리다. ‘전통 한국미의 마지막 지킴이’를 자임하며, 한국미의 우수성을 가히 탐미적인 시각으로 천착하고 있는 그의 글에서는 애틋함까지 느껴진다. 한국미에 무지한 당시 사대주의 지식인들에 대한 그의 질타는, 오늘 한국 지식인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생활속에서 세련되어온 한국미의 가장 구체적인 결정체인, 조선시대 사랑방 목죽공예품의 단순·소박·건강한 아름다움은 근대적 공간에 더 어울려 시대를 초월한 아름다움으로 번져나갈 것’이라는 혜곡의 혜안은 오늘날 그대로 맞아떨어지고 있다. ‘현대 세계 도예미술의 양대산맥인 일본계 도예 디자인의 근저를 흐르는 아름다움의 방향은 조선도자의 아름다움이고, 일본계 도예 붐은 조선 도자의 앳된 아가씨 모습’이라는 혜곡의 표현은 한국 선비가 가졌음직한 풍류까지 느끼게한다. 혜곡 이후 문화답사형식의 우리문화재, 우리것 예찬론과 우리 전통의 우수성을 설파한 글들은 한국미에 심취한 그의 글과 혼에 일정한 빚을 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은 혜곡의 유고집 『최순우 전집』에서 좋은 산문만을 가려뽑아낸 모음집이다. 수험생의 논술 필독서이자 한국대표 명문으로 꼽히는 그의 대표작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우리 문화재, 우리것의 멋스러움과 우수성, 아름다움을 속속들이 깨우치는 미문이다. 그와 비교해 이 책은 그런 아름다움을 보는 혜곡의 안목과 한국미에 대한 철학, 속정깊은 마음씨, 인간적 체취가 두루 배어있어 살갑게 와닿는다. 국립박물관 학예연구실장 등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던 60년대부터 84년 작고하기까지 일간지와 잡지 등에 기고한 글이 주로 실려 있다. 혜곡의 평가대로 기교나 권위의 때가 묻지않은 ‘잘생긴’ 조선 백자처럼 그의 구수하고 아름다운 문장은 소박하고 단아한 선비정신이 잘 묻어난다.
혜곡은 ‘예쁜 것’보다 ‘잘생긴’ 것을 한국미의 본질로 파악한다. ‘잔재주나 수다스럽고 곰살궂은 수공을 들인 흔적이 없어 예쁘기보다 잘생겼다’는 조선자기는 그의 표현에 따르면 ‘잘생긴 며느리’다. 혜곡의 애석(愛石) 풍류는 또 어떤가. ‘모든 조형미의 원천같은 돌, 사색의 반려같은 돌의 침묵의 미학에서 동양적 노경, 원숙한 경지의 아름다움을 본다’고 혜곡은 말한다. ‘말이 없는 돌들이 말보다 진한 인간의 슬픔과 자연의 즐거움을 일깨워준다’고 고백하는 대목에서 도저한 동양정신에 천착하고 있는 조선 선비의 안목을 느낄 수 있다.
가을 달 그림자가 비치는 한국 창살 무늬를 그리워하고, 산에 피는 파리한 가을꽃을 좋아해, 오대산 상원사 산골에서 용담과 억새등 마른 꽃가지를 꺾어 백자항아리에 담고 한겨우내 바라봤다는 혜곡의 모습에서는 낭만적인 인문학자의 흥취도 느낄 수 있다. 좁은 집뜰에 돌배나무·개암나무·사시나무·자작나무·너도밤나무등 산나무를 심고, 늦가을 아침 영창을 열고 너도밤나무의 낙엽과 잔가지마다 무수히 열린 붉은 열매가 아침 햇살에 구슬처럼 영롱하게 반짝이는 풍경에 반해 슬픔인지 기쁨인지 모를 행복에 젖는다는 그의 글에서는 한국선비의 여유있는 일상이 가진 아름다움을 맛볼 수 있다.
그에게 한국미는 ‘무리하지 않은 아름다움, 자연스러운 아름다움, 소박한 아름다움, 호젓한 아름다움, 그리움이 깃든 아름다움, 수다스럽지 않은 아름다움, 그리고 이러한 아름다움 속을 고요히 누비고 지나가는 익살의 아름다움’이다.-- 문화일보 북리뷰 02/08/23 정충신 기자
‘아름다움이라 해도 그 갈피가 많아서 이루 헤아릴 수가 없지만 온 세 상에 가득차 있는 자연과 조형의 아름다움을 자기의 안목이 어느 만큼 가늠할 수 있고 또 그것을 어느 만큼 간절하게 느낄 수 있느냐에 따라서 인생의 즐거움이 크게 달라진다고 할 수 있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학고재)를 통해 우리 것의 아름다 움을 아프게 깨닫게 해 준 최순우 씨의 아름다움을 가려내는 눈은 바로 이렇다.
최근 학고재에서 펴낸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는 바로 그가 어떤 눈 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눈이 미치는 대상과 사물들 속에서 아름다운 속 살을 발견해 내는가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책이다.
내 고장 장작불의 마술이랄까, 어쨌든 내 고장 내 민족의 이름을 수다 스럽게 주워섬겨도 오히려 모자랄듯만 싶다는 조선 분청사기에 대한 진 한 사랑부터, 가을 호젓한 밤 달빛이 노니던 고향집 미닫이창에 대한 추 억, 대청 툇마루 추녀 끝에 매달린 소방울, 순정한 모양새로 따스함과 너그러움을 전해 주는 굴뚝 등에 미친 그의 마음을 따라 나서는 미의 산 책은 호젓하고 아름답다.
그런가 하면 중년남자들끼리 손목시계를 바꿔 차며 석별의 정을 나눈다 든지, 피난가느라 남겨 두고 갔던 바둑이와 해후하며 눈물을 흘리는 그 의 깊은 속정을 함께 나눌 수도 있다.
아름다움과 외로움을 한 짝으로 보는 그의 미의식은 공감을 불러일으킨 다. 그의 한국미 사랑은 우리의 탁한 눈을 밝혀 준다. “지금도 어쩌다가 시청광장에 서서 문득 북녘 하늘을 바라보면 북악과 먼 북한 연봉의 푸른 산용에 가슴이 뭉클하는 희열을 느낄 때가 있다.” 그래서 그는 ‘서울에 살고 싶다. 오래 오래 살고 싶다. 서울이 아름다 워서, 서울이 즐거워서’라고 했다.-- 내외경제 02/08/23 이윤미 기자
한국미에 취해 산 혜곡 최순우 선생의 산문집.혜곡은 40년 가까이 박물관에 몸담으며 우리것의 아름다움을 가려내고 그것을 전하는 데 분투해온 한국미 의 전도사다.하지만 그는 우리 옛 멋만을 숭상하는 호고(好古)주의자는 아니 었다.동서의 보편적인 아름다움에도 아낌없이 눈길을 준 ‘모던한’사람이었 다.한국인의 성정과 생활양식에서 우러난 무리없는 아름다움,호젓한 아름다 움,그리움이 깃든 아름다움이 그가 말하는 한국미의 전형.이런 한국적인 아름다움이 가장 신선하게 드 러난 것이 바로 조선초 분청사기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대한매일 08/23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쓴 명지대 유홍준 교수는 어떤 글에서 “나는 미술사를 전공한 이후 선생의 글에서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고백하건대 내가 한국미술의 특질과 자존심에 대하여 주장한 바의 대부분은 선생의 안목에 힘입은 것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고 최순우 선생(1916∼1984)을 두고 한 말이다.
40여년간 박물관에서 살다 떠난 최순우는 한국미술사학과 평론의 토대를 구축한 인물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미술품을 바라보는 미적 잣대와 구체적인 표현까지도 상당 부분 그의 말과 안목에 의지하고 있다. ‘스산스럽고 조촐한 산하-청전 이상범’ ‘익살과 해학의 화가 김홍도’ ‘담담하고 조촐한 청화백자’ 등 그가 우리 미술에 언급한 말이 지금은 해당 미술품을 통칭하는 보통명사가 된 형국이다. 그의 지대한 영향력으로 예술작품을 읽어내는 틀이 고착화된 측면이 있으나 그만큼 그가 우리 미술과 한국 미학의 정곡을 끄집어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 책은 그가 40여년간 한국미술을 접하면서 쓴 에세이를 모은 책이다. 그의 다른 저서인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가 전문적 평을 담은 책이라면 이 책에서는 한국적 미의 소중함과 자신이 걸어온 길,각 길목에서 만난 예인들과의 에피소드,미술계에 던지는 뼈담긴 말 등이 생생한 목소리처럼 들리는 듯하다.
그는 고답적 국수주의로까지 비칠 만큼 한국적 미,특히 옛것에 대한 자랑과 감탄이 대단했다. “요사이 한국의 미녀들은 새봄이 오면 파라솔의 유행에 신경을 쓰는 모양이지만 조선시대의 미녀들을 외출할 때 이렇게 멋진 삿갓을 비스듬히 비껴 쓰고 눈부신 양광 아래 알빛 같은 흰 이마를 가렸던 것이다” “여인들의 트레머리(머리굽이 크고 굵은 가발)는 오히려 요새 퍼머넌트 웨이브보다도 대담한 웨이브의 효과가 있어 이를 순전히 조선 여인들의 창의였다는 점에 다시금 흐뭇한 미소를 금할 수가 없다”
최순우가 미술계에서 두루 존경받고 역으로 그 자신이 예인들을 극진히 아꼈지만 우리 것을 제쳐두고 서양예술만 좇는 풍토에 대해서는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그는 “파리에 갔다오면 자기만이 하늘의 별이나 딴듯 큰소리를 늘어놓는 사람들”을 싫어했고,“안목이란 더할 나위 없이 올바라야 하고 참다움을 분명하게 꿰뚫어볼 수 있는 눈과 마치 가혹한 구실아치(엄한 관리)의 손길처럼 한 치의 허점도 용서하지 않는 준엄한 가치 판단의 자세가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고 믿어 무작정 작품에 대해 칭송만 늘어놓는 이들을 멀리했으며 한국 미술계의 부족을 언제라도 주저않고 끄집어냈다.
책에서는 나무 한 그루,소방울 소리,굴뚝 등 생활풍경에서 접한 사물들까지도 심미안으로 바라본 그의 높은 미적 감각을 엿볼 수 있고 장욱진 김환기 이상범 등 작가들과의 교우 뒷얘기도 들을 수 있다.
유홍준 교수의 말을 다시 인용한다. 그는 우리 미술과 문화재에 어떻게 눈을 뜰 수 있느냐는 질문에 “좋은 미술품을 좋은 선생과 함께 감상하며 그 선생의 눈을 빌려 내 눈을 여는 길”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 책은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와 함께 ‘좋은 선생’이 될 만한 책이다.
최순우가 남긴 다른 저서로 『한국공예사』 『한국미술사 개설』 『한국미 한국의 마음』 『한국청자도요지』 등이 있고 유고집으로 『최순우 전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