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사진의 추억
성 대림
여기저기 이사 다니다 보니 집에 보관해두었던 앨범이 소실되어 난감하던 차에 일본에서 살고계신 어머님 집을 방문하였을 때 어머님께서 앨범 몇 권을 건네주셨다. 까맣게 잊고 있던 추억의 콘텐츠를 깜짝 선물로 받은 것과 다르지 않아 무척이나 기뻤다. 대학 입학 때 합격자 발표 날에 대학교를 둘러보며 아버지와 둘이서 찍었던 장면과 발표장인 대운동장에서의 흥분되었던 순간들이 어제 일처럼 다시 살아났다. 그리고 눈에 들어왔던 것은 앨범 뒤쪽에 구멍을 내서 정성스럽게 철해둔 한 장의 내 사진전 팸플릿이었다. 다시 들여다보니 1979년 1월이었고, 아마도 의대 본과 2년을 마친 겨울방학에 고향에 내려와서 작품 전시회를 가져서 초대한다는 내용의 A4 한 장짜리를 접어서 만든 것이었다. 제목은 ‘제1회 S 사진전’으로 되어 있었다. 잠시 더 생각을 더듬으니 디자인은 당시 미대생이던 내 친한 대학 동창의 여자 친구가 그려주었고, 사진 작품들은 나름 의대 사진반에 들어가 찍은 것들이었다. 전시회를 연다는 것이 비용 때문에 부모님께 죄송하다고 여겼었지만, 돈이 거의 안 드는 다방에서 하는 전시회라 과감하게 시도하였었다. 세월이 흘러서 나는 다 잊어버렸는데 정작 일본에 사시는 아버지는 그것을 앨범에 끼워 넣어 보관함으로써 일종의 기억 저장 장치에 보관해 둔 것이고, 그렇다면 아버지는 내 전시회가 마음에 들었다는 간접증거가 아니겠냐고도 억지로 좋게 생각하게도 하였다. 물론 단순히 아들이 보내준 팸플릿이라서 정성스럽게 보관했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대학 시절 사진반 활동을 하면서 사진 작업의 기본은 사진을 촬영하고, 암실작업을 통해서 필름을 인화(development)한 다음, 확대기로 사진을 확대(enlargement)하고는 현상(printing)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진을 찍어온 다음 암실에 들어가서 사진 현상을 하면서 흰색 화면에 검은색 사진 음영이 서서히 나타나는 것도 대단히 신기하였다. 그러다가 디지털카메라가 등장하면서 사진 촬영이 너무나 쉽게 이루어졌고 필름이 안 들어가니 사진 촬영이 신중해지지 못하고 남발하게 되었다. 불량 작품은 그저 삭제하면 그만이었고, 비싼 필름 비용이 안 들어서 함부로 찍는 일도 많아졌다. 그렇지만 그 이전에는 잘 된 사진은 골라서 사진가게(DPE점)에 가서 현상하고는 앨범에 남기곤 하였다. 흔해지면 소중함도 같이 줄어드는 건지 사진에 대한 열정이 시들해지고 보관도 대충 하게 되었다. 영상이 컴퓨터에 보관되어 있어서 언제든지 필요하면 꺼내 볼 수 있는 편리함은 있지만 콘텐츠가 많다 보니 그 작업마저도 소홀해져 버렸다. 그러다가 컴퓨터가 고장이 나거나 오작동으로 한꺼번에 기록이 없어지면 그것으로 끝이 되어버리는 일이 흔해졌고 과거로 치면 사진 앨범 몇 권이 한꺼번에 날아가 버리는 안타까운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이런 부작용들은 사진이 흔해짐으로써 발생한 결과라고 여겨진다. 물질이 흔해지면 그 가치가 낮아지고 그래서 소홀히 대함으로써 발생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더욱이 요즈음은 스마트폰의 카메라 기능이 좋아져서 과거에 일반 사진기나 디지털카메라를 능가하고 있다. 사진 작업이 엄청나게 편해진 것은 사실이다. 호주머니에 스마트폰을 가지고 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풍경이나 장소가 있으면 그냥 구도를 잡고 찰칵한 다음 컴퓨터에 연결하면 바로 영상이 올라오고 필요한 장면만 남기고 나머지는 지우고 보관하면 된다. 날짜별로 잘 정리까지 되어서 언제든 불러올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좋은 점에도 불구하고 단점도 있다. 저장된 사진의 양이 방대하여 자신의 머릿속에 기억되지 않은 사진은 쉽게 잊어버리고 활용하지 못하는 점도 있는가 하면 기억되는 사진이 있어도 따로 자료가 없으면 일일이 뒤져보아야 하는 문제점도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과거와 달리 사진 촬영이 흔해지다 보니 사진 촬영조차도 덜 하게 된다는 점이다. 언제든 찍을 수 있다는 자만심과 너무 자주 찍어서 흔하다는 생각이 겹치면서 생겨난 결과일 것이다.
IT산업이 급속하게 발전하면서 새로 뜨는 직업도 생기고 소멸하는 직업도 생겨났다. 소멸하는 직업 중 하나가 사진점이라고 생각한다. 직업을 담당하던 사람들도 전업해야 하는 실질적인 문제도 생기지만 길거리에서 사진점이 사라지는 점이 과거의 앨범문화를 누렸던 나로서는 섭섭하기 그지없다. 돌아가려고 해도 돌이킬 수 없는 시대적인 추세여서 마음만 동동 구를 뿐이다. 그래서인지 전에는 길거리에서 사진 가게를 흔히 볼 수 있었지만, 요즘에는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아마도 사진 인화에 대한 수요가 현저히 줄었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에는 사진을 찍고 찍히는 것조차도 설렜었고 사진가게에 맡기고 난 후에는 어떻게 인화되어 나올 것인지 궁금하였고, 그 인화된 사진은 정성스럽게 앨범에다 한 장 한 장 끼워 넣으면서 흐뭇한 기분이 들기도 하였었다.
사람의 기억이라는 것은 상당히 제한적이다. 처음에는 사실을 생생하게 기억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 기억이 점차 희미해지게 된다. 그나마 사진으로 찍어서 앨범에 남겨두면 상당히 오랜 기간을 기억을 저장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사진에 관련된 사람들이 앨범 자체를 분실하거나 본인이 사망해버리면 역시 무용지물이 되어버리는 안타까운 일도 생기게 마련이다. 새롭게 등장한 스마트폰 촬영 시대 역시 마찬가지기는 해도, 아직은 과도기라서 어떻게 정착될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지만, 추억도 대용량으로 저장하면서도 쉽게 추억을 불러올 수 있는 시스템으로 가지 않을까 하고 긍정적으로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