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시대는 회칠한 무덤이 판치는 세상입니다. 어제는 오늘보다 못한 날이고 오늘은 단지 내일을 위해 존재하는것이고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낫게 될것이라는 발전지향적인 사고와 믿음이 우리들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늘 신제품이 나오면 어제의 제품은 이미 낡은것으로 간주하고 버릴생각만 하다가 어느정도의 싫증과 보관공간이 없어지면 과감히 폐기처리하고 내일 또 새로운 신제품이 나오지는 않는지 항상 두리번거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자동차 경우만 하더라도 신모델이 나오기가 무섭게 바꾸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러한 생활속의 습성은 이미 우리들의 일상생활 깊숙이 중독된 생활문화의 모습입니다.늘 새로움에 대한 동경과 새로운 것이 좋을것이라는 믿음의 생활화인셈입니다.
외식산업도 이러한 수요의 원리에 따라 패션이 바뀌듯이 하루가 다르게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또한 공급자는 그러한 생리를 교묘히 이용하여 새로운 외식 메뉴를 개발하여 식도락가의 믿음을 충족시켜주므로 악어와 악어새의 공생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현시대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통에 외식체인업자와 인테리어 업자가 한 몫을 챙기지요. 한마디로 소비자들은 끝없이 허상을 쫓아가는 오늘과 내일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 마치 교양인으로 중산층으로 행세하며 이세상은 참으로 편리하고 먹고 살만하구나라는 만족감의 충족과 기대감의 놀이터가 되는것입니다.
우리들의 주거공간도 그렇습니다. 주거공간이 쾌적하고 살기 좋은 곳이 되려면우리몸의 이목구비의 감각적 요소가 우선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생태적인 주거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최근 아파트 분양경쟁과 고층화 재개발 열기에 도시에서는 무작정 최신시설을 뽐내며 고급 건축물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건축물이 주변 환경과 잘 어울리는가, 또 나와 내가족이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곳인가를 생각해보면 이는 별개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주거공간을 땅과 밀접하게 자연과 가까이 하고 자연의 소재로 집을 지어 사는 것을 원하시고 계십니다. 불과 몇십년전만 하더라도 이러한 원칙은 자연스럽게 지켜져 왔습니다. 그러나 경제개발계획과 급속한 선진화정책의 영향으로 도시화가 됨에따라 농촌의 인구가 도시로 집중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많은 인구를 도시가 수용할려면 평면주거공간보다는 수직입체공간의 주거공간형태가 필요하여 아파트의 개발로 그야말로 아파트밀림이 형성되었습니다.반자연적인 주거형태인 아파트의 개발로 하나님의 창조물인 자연은 급속도로 오염되기 시작했습니다.
생활폐수와 분뇨는 강물을 오염시키고 땅을 황폐케 하는 악순환을 가져 오기도 했습니다. 사회적 범죄는 말할것도 없구요. 여기에 또 빌붙어 횡재한 산업이 대형교회의 출현입니다. 아파트가 들어서면 당연히 상권이 형성됩니다. 무슨 장사든지 돈을 벌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종교장사도 똑같은 셈입니다. 천막교회가 급속히 대형교회로 성장한것입니다. 이문제는 이미 많은분들이 언급해왔기 때문에 생략하기로 하겠습니다.
주거공간의 편리성과 유용성을 따지기 전에 우리 인체의 유해관계를 언급해보고자 합니다. 엤날의 주거공간인 황토집은 그 자체가 자동 냉난방시스템입니다.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합니다. 그리고 우리 몸의 독소를 흡수하여 배출하기도 하고 황토가 뿜어내는 원적외선과 겨울의 뜨끈뜨끈한 구들장은 우리몸을 건강하게 합니다. 지금의 이중창 유리가 아닌 얇은 창호지 한 장이 추외와 더위를 막았습니다. 겨울에 윗목의 걸레가 어는가하면 아랫목은 장판지가 탈 정도로 따뜻한 구들장으로 겨울의 추위를 지낸 것이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의 주거공간의 일반적 모습입니다. 그래도 그때는 감기도 별로 없었고 지금과 같이 호흡기질환으로 병원을 찾는일이 없었습니다. 그때는 병원에 입원하는 사람을 부러워 하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병원에 입원하는 것이 드물었고 입원하면 평소에 먹어보지 못한 과자나 음식을 먹게되는 특별대접을 받았기 때문이지요. 그때는 이불도 변변치 못했습니다. 이불 하나가지고 서로 밀고 땡기고 하며 덮고 지냈는데도 모두 건강했습니다. 그때는 방안의 공기가 오염이 덜 되었습니다. 실내공기가 방안과 밖의 공기가 창호지의 미세한 구멍을 통하여 교환이 잘 되었고 윗목의 찬공기와 아랫목의 더운공기가 대류작용이 잘 되었기 때문입니다, 소위 말하는 우풍의 작용으로 항상 신선한 공기가 방안에 유입되었던것이지요.
지금 대부분 살고 있는 콘크리트 단독주택과 아파트의 주거공간은 어떻습니까? 냉난방의 효율성 증대로 단열재를 사용하고 개인생활의 프라버시 보호라는 명목으로 방음벽까지 만들어서 외부와는 완전히 차단된 밀폐공간이 되었습니다. 그런 공간에 우리들이 끔찍하게도 살고 있습니다. 그러한 실내공간은 공기가 오염되고 정체되어있기 마련입니다. 즉 대류작용이 있다고 하더라도 오염된 공기의 악순환인 대류작용만 있을뿐입니다. 그러니 호흡기질환은 당연히 찾아오기 마련인데도 근본원인은 고칠려고 하지는 않고 주사와 약으로만 고칠려고 하니 돈만 허비되고 몸만 고생하게 되는것입니다.
특히 새로 지은 건축물의 실내공기 오염은 건강에 위해요소가 많다고 합니다. 오는 5월 "실내공기질 관리법" 시행을 앞두고 정부가 의뢰한 조사에 의하면 새 아파트 실내공기 오염이 공식적으로 밝혀졌습니다. 입주를 앞두고 있는 경기도 의정부시 한 아파트 단지에 대한 조사에서 6개 세대가운데 4개 세대가 기준치 이상의 인체에 유해한 포름알데히드(접착제나 용매제에 포함) 오염도를 보였습니다. 가장 높은 오염도는 19층에 위치한 34평형 세대에서 기준치의 6배나 검출되었다고 합니다. 얼마전 신문에도 보도 되었습니다만 새집증훈군이라는 질병이 나타났습니다.
생태적 건축물이 지향하는 바는 새로 지은 건축물뿐 아니라 생활주변의 모든 병든 건물(sick building)을 개축하고, 우리의 삶의 공간을 자연친화적 공간으로 바꾸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생태적 건축은 거주자가 언제라도 자연과 접할 수 있도록 구조를 짜고, 외부의 신선한 공기가 늘 유입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실내에 사용된 건축 자재는 유해한 물질이 가급적 적게 나오도록 배려되어야 하구요. 그러므로 사무실이나 주택의 유리창이 밀폐식(密閉式)으로 되어 있다면 항시 창을 여닫을 수 있도록 개폐식으로 고쳐 신선한 공기가 잘 들어오게 해야 합니다. 또 실내에서 사용하는 헤어스프레이, 화학 청소제, 흡연 등도 실내 공기 오염의 주범임을 알아 사용도 하지 말아야 하구요. 이러한 병든 주택이나 오염된 공기 속에서 살다보면 각종 기관지염, 폐렴 같은 호흡기 질환이나 체질이 약화되어 알러지가 생기거나 감기를 달고 다니게 되지요. 인간의 건강은 하나님의 창조공간인 자연의 생명력과 보다 많이 접촉될수록 보다 건강하고 생태적인 삶이 영위되는 것을 알수 가있습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인간의 본래의 모습과 본래의 주거공간으로 회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피조물인 우리의 몸과 마음이 생태적으로 건강하게 접근하는 것이 아니가 하는 생각을 가져 봅니다. 현대의 모든 것이 그러하지만 지금의 주거공간은 말그대로 회칠한 무덤입니다. 겉은 화려하고 번드러하나 그속은 병든공간입니다. 사회가 구조가 다 그러하지만 특히 정도가 심한 건축의 부패사슬구조로 인해 건축비의 상당금액이 뇌물로 빠져나가 부실건물로 무너지고 다리가 내려 앉았는 사례와 같이 회칠한 무덤사회의 병리적모습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내장자재도 언뜻보면 나무무늬목 같은데 제히 보면 화학물질로 만든 자재입니다. 꽃도 분명 생화인 것 같은데 가까이가서 만져보면 조화인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의 생활공간에는 진짜는 사라지고 가짜인 회칠한 무덤이 판치는 세상입니다. 정말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이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교회안에서는 믿음의 동질성이라는 공감대를 가지고 희희낙낙거리기만 하고 (이런 표현이 귀에 거슬리기도 합니다만 강조어법으로 액센트를 주다보니 표현된것이니 앙해를 바랍니다.) 교회밖에서는 멸망의 자식들과 함께 같은 생활을 반복하면서 살아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회칠한 무덤의 사회 문화공간에서 동일하게 병들고 죽어가는 우리의 모습이 과연 하나님께서 택하신 거룩한 백성의 모습인지 성찰해봐야 할것입니다. 우리가 그들과 똑같이 훼칠한 무덤같은 병든공간에서 살고 방부제와 항생제와 농약으로 범벅된 음식을 먹어서 병으로 골골거리다가 같은 병원에 다니다가 죽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우리의 생활태도일까요? 때가 악하니라 깨어 있으라 하시는 말씀이 영적으로만 해당되는 말씀일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먹고 마시는것 입는 것 생각하는 것 그 어느것에라도 적용되어져야 할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세상문화는 결코 우리를 가만히 놔두려 하지않습니다. 물귀신작전같이 자꾸만 그들으 세계로 끌어드리려 합니다. 이러한 작전에 우리가 한가지는 성공한듯합니다. 뉴에이지같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사회 문화적 현상은 그래도 눈치를 채서 방어는 잘하고 있다고 생각은 합니다.때로는 과민반응을 보이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요.
그러나 우는 사자같이 삼킬자를 찾아 헤메는 사탄은 뉴에이지같이 노출된 특별한 전략을 쓰지 않습니다.아주 평범하게 일상적인 생활속에서 자연스럽게 우리들을 포섭합니다. 간첩들이 포섭하듯이 말합니다. 아주 자연스럽게 천천히 말입니다.개구리가 솥속에서 헤엄쳐 놀 때 솥 아래서는 장작불로 서서히 물이 데워지지만 그 속도가 너무도 느리기 때문에 개구리가 감지하지 못하는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일상생화문화가 바로 그런 조건을 갖추었다는것입니다. 문제는 뭐냐 하면 그러한 사탄의 전략을 알고 조금씩 지혜롭게 대처해나가면 됩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지요.
그럴러면 회칠한 무덤같은 인스턴트,가공음식을 줄여서 먹어야하겠지요. 씨맺는 곡식과 과일과 채소가 우리의 주식으로 되돌려놔야 하겠지요. 커피등의 인스턴트,가공 음료수보다는 생수가 더 좋겠지요. 그렇게 따지면 먹을게 뭐있느냐고 항변하시겠지만 어쩔 수 있습니까? 그렇다고 굶을수야 있겠습니까? 현실적인 도시생활에서 먹기는 먹되 살펴서 가능한 줄여서 먹자는것입니다. 요새 뭐? 웰빙족이라는 신종 패션족이 또 나타났습니다. 도시에서는 돈 들여가며 인위적이고 사치적인 웰빙을 하겠다고 난리인데 참으로 아니러니 한것은 농촌에서 더 좋은 여건이 갖추어져 있는데도 도시와는 반대되는 생활을 선호하더군요. 이것이 바로 인간의 한계이며 죄성을 갖춘 모순적인 모습이기도 합니다.
회칠한 무덤의 문화가 우리의 목숨과 건강을 노리고 있습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창조질서의 의도를 존중하고 환경을 보존하자는것입니다. 영적으로는 신학교와 교회의 숫자만 보더라도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만 육적으로는 너무 세상적으로 기울여져 거기에서 오는 부작용의 흙탕물속에서는 세상사람과 똑같이 허우적 대고 있는것이 현실 우리들의 솔직한 모습일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들이 한시도 깨어 있을수 없더냐 라는 주님의 책망이 우리의 실생활에서도 듣지 말아야 할것이라고 생각해봅니다.우리의 실생활에서 회칠한 무덤의 유형과 중독현상에 대해서는 이정도로도 충분할것으로 생각하고 아직 할말이 많습니다만 오늘은 이정도만 말하겠습니다. |
첫댓글 잘읽었습니다.
자연주의로 살면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