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대상작가 양재헌의 소견을 올립니다. 금번 한사전을 치루면서, 기독교 신자로서 하늘에 맹세코, 제 주머니에서 한 푼도 나간일 없으며 앞으로도 나갈 일 없는 떳떳한 사람이기에 감히 이글을 씁니다. 부디 오해 없이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사진의 종류는 흔히 분류하기를, 예술사진 (Fine Art: 과거의 선배님들이 일본식으로 잘못 직역으로 해석하여 ‘순수사진’이라고 불렀음--이 잘못된 단어의 적용으로 인하여 수많은 후배들이 오늘날 까지도 이러한 논쟁을 해야하게 되었으며 한국의 사진가들이 상상력을 발휘하여 세계로 진출하는 데 큰 방해요소가 되고 있음), 광고사진, 보도사진(Photo Journalism 사진), 인상사진으로 나눠집니다. 이중 소위 말하는 스트레이트 순수성을 가장 지켜야하는 보도사진 세계를 대표하는 ‘내셔날 지오그래픽’에서도 80년대 초에 피라미드를 포토샵한 사진을 표지사진으로 실었다가 편집장이 물러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위 그림 참조). 그 후 과연 보도사진 세계에서 포토샵 조작을 하여야 하는가에 대한 논란이 수십 년간 있어 왔습니다. 물론 반대로 원래 예술사진에서는 그 한계가 당연히 없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원래 세계 최초의 예술사진은 오스카 레일란더의 합성사진이었으니까 말입니다. (영국 사진가 오스카 레일란더(Oscar G. Railander)는 「인생의 갈림길」(1857)이라는 우화적인 작품을 약 30개의 음화를 조합하여 만들었다.)
이점 가장 순수성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 되는 보도사진 세계에서 조차도 오늘날 누구보다도 100%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있고, 뉴스 중에서'스폿뉴스, 일반뉴스' 분야에서 순수성을 유지하고, 피처사진(Feature)에서는 포토샵이 용인 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인 것입니다. 하물며 예술사진에서 합성사진 운운 하는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야기 거리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특히 과거 수십 년 전부터 한사전(필름시대를 포함하여) 특선사진 분석을 해보면, 수많은 사진들이 이미 필름 합성, 포토샵 조작을 하여 온 것은 명약관화한 사실입니다. 다만 스트레이트인양 위장을 하였을 따름이지요. 그래도 이번에는 양심껏 신고를 하라고 하여 합성이라고 신고를 하였을 따름입니다.
나. 뉴스사진에서 포토샵으로 조정할 수 있는 한계에 대한 소고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1. 들어가며
포토저널리즘에서 사진의 조작문제는 일찍부터 많은 논란이 되어 왔으며, 특히 완벽한 디지털기술을 빌어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해진 오늘날에 와서는 더욱 동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기에 이르렀다. 이에 포토저널리즘 사진조작의 역사와 각종의견과 그 용인한계에 대해 살펴보고자한다.
2. 사진조작의 역사
1920년대에 사진조작은 표준적인 과정일 뿐만 아니라 고도의 예술로 여겨졌다. 포토저널리즘 초기에는 미술부가 사진을 담당했다. 미술가들은 사진을 재배치하고 페인팅이나 그림으로 사건들을 창의적으로 해석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런 생각은 사진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왔다. 왜냐하면 이들에게 사진이란 또 하나의 미술매체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포토저널리즘이 발전해감에 따라 사진기자들이 사진의 사용을 주도하기 시작했으며, 뉴스 사진의 취급에 있어 보다 높은 표준들이 발전되어 왔다. 1920년대에는 사진들은 신문의 부속물에 지나지 않았으며, 출판매체들은 언제 어떻게 사진을 사용할 것인가에 대해 확립된 지침을 갖고 있지 않았다.
1990년대에 이르러서도 잡지와 신문들은 사진을 디지털로 조작하기 시작하면서 역시 진지한 어떤 지침도 확립해 놓지 않았다. 새로운 기법이 있기만 하면 아트디렉터들은 실험을 했다. 독자들을 유혹하고 그들의 호기심을 부추길만한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는 와중에, 편집자들은 80여 년 전 그들과 같은 위치에 있던 사람들이 열광적으로 사진을 자르고 붙였던 것처럼 이제 사진 조작에 열을 올리고 있다.
3. 사진조작의 용인한도 문제에 관한 각종의견
뉴스기관들이 디지털로 사진을 조작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며 문제는 어느 정도까지 용인할 것인가의 문제만 남았을 뿐이다.
암실에서 네거티브를 다징하거나 버닝한다고 해서 반대할 사진기자는 없지만, 대부분의사진기자들은 디지털 방식으로 사람을 넣거나 빼는 것에 대하여 분노한다. 디지털 방식에 의한 이러한 리터칭은 도대체 어느 정도여야 하는가? --사람의 머리 뒤에 있어서 주위를 분산시키는 나뭇가지를 제거해야 하는가? --하늘 색깔을 좀 더 짙은 푸른색으로 해야 하는가? --스타의 얼굴의 주름살을 지워야 하는가? --만일 조작하는 것이 좀 더 내용을 풍부하게 한다면 뉴스사진을 변경해야하는가? 는 등등의 문제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 조작은 포토저널리즘 분야에서 합의된 표준을 만들어 낼만큼 오래되지 않았다. 이 주제는 1982년에 내셔날 지오그래픽이 표지사진의 피라미드를 옮긴 사건 이후 줄곧 논의되어 왔다.
절대주의를 고수하는 사진기자들은 편집자가 사진에 대해 절대로 다시 손을 보거나 조작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원본이 진실이며 그로부터의 어떠한 변화도 분명히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피라미드가 옮겨질 당시의 내셔날 지오그래픽의 사진부장이었던 밥 킬카는 후에 “ 제한적인 디지털 조작은 제한적인 핵전쟁과 같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라고 단언했다.
또 다른 사람들의 편집자는 오직 전체적인 변화만을 시도해야 한다. 즉 현장의 사진가들이 카메라의 필터를 바꾸는 것과 같이 전체적인 것에 대해서만 변경해야한다라고 주장한다. 이 집단들은 말하기를 , 촬영자와 편집자는 사진이 촬영된 후에는 디지털 방식으로 사진의 부분들을 조작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사진기자들은 현장에서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보다 온건한 입장에서는 편집자들은 사진 조작을 전통적으로 암실에서 행하는 기법에 국한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테면 다징, 버닝, 밝게 하기, 어둡게 하기, 혹은 콘트라스트 변경, 오점이나 먼지 긁어내기 등은 좋으나 화소를 증식하거나 사진요소들을 이동시키거나 다른 네거티브를 합성 혹은 이미지를 제거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편집자들은 사진을 “깨끗하게”하기 위해, 즉 주위를 산만하게 만드는 전화선이나 대상 뒤에 삐죽 나와 있는 전화박스 등을 제거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끝으로 어떤 편집자들은 만일 사진기자가 다른 렌즈로 혹은 다른 앵글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면, 그때는 같은 결과를 얻기 위해 디지털이미지 조작은 허용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4. 나가며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다양한 의견이 있으며 나름대로의 일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기준을 찾아야 할 것이며 이러한 기준은 ‘디지털 방식으로 사진을 변경함으로써 누가 이익을 보는가?’ 하는 문제를 숙고하여 그것이 사진기자나 편집자의 편의를 위한 것이 아니고 독자에게 이익이 되는 한도 내에서 하여야 할 것이다.
내셔날 지오그래픽이 피라미드를 옮기고 콜린스 출판사가 카우보이와 달을 옮긴 상황을 보면, 편집자는 수직으로 된 표지에 수평적인 사진을 맞추려고 고심하였다. 다른 사진으로도 충분할 수 없었을까? 표지 디자인을 사진모양에 맞추도록 바꿀 수는 없었을까? 누가 이익을 보는가? 편집자와 디자이너들이며 독자는 아닌 것이다.
디지털방식으로 희생자의 부상을 “상상”하거나, 사람들을 한 이미지에 모으는 것은 단순히 일을 쉽게 한다는 것 그 이상을 넘어 독자들을 우롱하는 것이다.
한편 독자들은 암실에서 닷징이나 버닝을 하거나, 노출을 더 주거나 혹은 컴퓨터로 인화를 밝게 혹은 어둡게 하는 작업을 통해,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놓칠 수도 있었을 사물들을 좀 더 분명하게 볼 수 있게 된다. 이것은 독자에게 이로운 일이다. 같은식으로 사진을 선명하게하거나 배경을 흐릿하게해서 대상을 좀 더 뚜렷하게 알아볼 수 있도록 하는 컴퓨터의 능력 역시 독자에게 이익을 준다. 아마도 일반적인 윤리적 이정표라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분명히 독자들에게 이익이 된다면 디지털 방식으로 사진을 변경하라. 그렇지 않다면 피하라” 이와 같은 기준에 따라 매체사진의 종류별로 할 수 없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대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사료된다.
*** 사진종류별 할 수 있는 것 (o)과 할 수 없는 것 (x) ***
사진수정종류 버닝 다징 색도조절 오점제거 배경정리 이미지의 위치 변경, 첨삭 사진종류 스포츠사진 o o o o x x 하드뉴스 o o o o x x 피처 o o o o o x 포트레이트 o o o o o o 포토 o o o o o o 일러스트레이션
결론적으로, 사진종류별로 유연하게 대처하여 디지털조작의 결과 이익이 독자에게 돌아가도록 하는 기준으로 생각하되, 스포츠사진이나 하드뉴스 등의 사실의 기록성이 중요한 경우에는 보수적으로 대처하고, 피처 , 포트레이트, 포토일러스트레이션등 예술가로서의 역할이 필요한 경우에는 원본취지를 최대한 유지하는 범위 내에서 허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겠다.
다. 예술가로서의 사진기자와 기록자로서의 사진기자 차이에 대한 소고
1. 들어가며
신문이나 잡지등 저널리즘매체의 탄생기에는 주로 뉴스사진 위주의 사건취재가 주가 되었기 때문에 사진기자의 역활은 충실한 기록자로서의 역할만 하면 되었다. 그러나 매체의 내용이 다양화됨에 따라서 피처사진 포트레이트 포토일러스트레이션등의 사진들의 필요성이 증가됨에 따라서 사진기자의 역활은 단순한 기록자로서의역할 뿐만 아니라 예술가로서의 역할까지도 수행해야하는 시대가 되었다.
사진기자의 기본적인 본분은 사실의 충실한 기록에 있다. 그러나 사진을 찍다보면 본능적으로 구도를 맞추고 촬영 시 배경을 보게 되고 가능하면 배경이 정돈된 상태에서 찍고자 노력하는 등 보기 좋게 사진을 만들고자 하게 된다. 나아가 불필요한 물건을 치우거나 또는 연출을 하는 등 결과적으로는 보기 좋은 사진을 만들려 노력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예술 사진가들이 좋은 작품사진을 만들려는 행위와 근본적으로 같은 면을 지니게 된다. 이러한 면에서 사진기자의 역할을 사실기록에만 충실하기위해서 있는 그대로의 장면과 순간을 찍는데 국한하여야 할 것인가 아니면 촬영환경의 일부변화 내지는 촬영 후 인화물 조정을 어디까지 허용하여야 할 것인가 하는 등의 문제가 생기게 된다.
즉 사진기자가 기록자로서 그칠것인가 예술가의 역할까지 하여야 할 것인가의 문제는 사진기자가 해당장면에 얼마만큼 개입 할 수 있는 가에 따라 구별되어지며 이러한 문제를 사진기자의 통제의 연속선 문제로 보고 살펴보고자한다.
2. 통제의 연속선
촬영에 방해가 되는 콜라병을 치우는 일과 십대 매춘부를 가장하기 위해 모델을 고용하는 행위 사이에는 윤리적 간극이 존재한다. 엄격하게 하나도 손대지 않고 그대로 촬영하는 것부터 모든 것을 완전히 조작하는 것까지 다양한 것이다.
중동의 전쟁에서부터 시내중심가의 유행에 이르기까지 사진기자들이 다루는 주제는 광범위하다. 즉 사진기자들이 자신의 의지로 통제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상황 등의 다양한 주제가 있는 것이다. 패션촬영 등의 어떤 사진들은 완전한 통제가 가능하며 또 필요한가 하면, 사건이나 체포현장과 같은 또 다른 상황들은 거의통제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사진기자는 “언제 어떤 장면에서 가급적이면 멀리 떨어져 관찰자로 남아 있어야 하는가? 그리고 언제 개입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끊임없이 자문을 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통제의 연속선문제는 사진기자가 접근법을 예술가적 관점에서 할 것인가 단순한 기록자로서 할 것인가에 따라서 달라져야하며, 결국에는 포토저널리즘 사진의 종류별로 대처가 달라야 하기에 사진 종류별로 살펴보고자한다.
3. 사진 종류별 통제의 연속선 문제
--스포츠사진 : 통제불가능한 연속선의 가장 다른 한 끝에 있다. 예를 들면 스포츠 사진기자는 트랙에서경기를 하고 있는 선수에게 “오른쪽으로 뛰어달라”는 등의 요청을 할 수가 없다. 따라서 사진기자는 기록자로서의 역할에 만족할 수밖에 없다. --하드뉴스 : 폭동을 취재하는 사진기자는 시위 참가자에게 지시를 하거나 경찰에게 한쪽으로 비켜서 있으라고 말하지는 못한다. 따라서 사진기자는 기록자로서의 역할에 만족할 수밖에 없다. --피처 : 피처사진에서는 이 통제의 연속선이 약간 불안정해진다. 언제 개입할 것인지 단순히 관망할 것인지에 대해 사진기자마다 그 지점이 달라진다. 예를들면 동작은 괜챦은데 조명이 좋지않아서 몇 미터만 움직이라고 한다면 완벽한 조명이 가능할 수 있다. 어떤 사진기자는 대상에게 주저없이 움직여달라고 요청할 것이고 또 다른 사진기자는 그 순간을 절대 방해하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그 상황을 그대로 두면 절대로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없더라도 그렇게 할 것이다. 여기에서 전자의 경우에는 예술가로서의 사진 기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후자는 기록자로서의 역할에 만족하고 있는 것이다. --포트레이트 : 포트레이트는 보통 사진기자가 약간의 지시를 할 필요가 있다. 대상에게 손은 아래에 두고 눈은 어디를 보라는 등의 요청을 함으로써 보다 좋은 포트레이트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예술가로서의 역할이 매우 필요한 것이다. --포토 일러스트레이션 : 포토 일러스트레이션의 경우는 또 다른 극단의 통제선상 위에 있다. 즉 촬영부터 인화까지 사진기자의 완전한 통제가 이루어지는 상황이다. 개념사진, 음식사진, 스튜디오, 패션사진 등을 포함해서 사진기자는 소도구를 배열하고 무대를 세우고 모델을 고용하고 의상에 관여한다. 예술가로서의 역할이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4. 나가며
사진기자에게 있어서 조작의 문제는 종종 기자로서의 역할 대 카메라를 다루는 예술가로서의 역할에 초점이 맞추어진다고 말한다. 개인으로서의 편집자와 일반적인 직업인으로서의 편집자는 이중적인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 그 메시지란 “진실한 동시에 예술적인 재능을 증명하는 사진의 생산”이다. 즉 사건을 발견하는 동시에 창의적이고 창조적인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때때로 이 두 가지의 역할은 갈등을 불러 일으킨다. 윤리적인 결정을 내리는데 있어 관건은, 주어진 상황에서 어느쪽의 전문적 역할이 필요한지 깨닫는 것이다. 요리 잡지의 편집자로부터 핫도그를 포토일러스트레이션 해 달라는 어사인먼트를 받았다면 사진가의 창의적인 감각이 필요하다. 사진가는 스튜디오의 배경지 앞에서 여러 가지 재미있는 구성을 통해 예술가적 기질을 마음껏 발휘해야 하는 것이다.
반면 살인사건 등의 경우에는 오로지 단순한 기록자로서의 관찰기술만이 개입되어야 할 것이다. 사진기자에게는 어떠한 창의력도 필요하지 않다. 소품이나, 명령이나 지시도 있을 수 없다.
사진기자들은 여러 가지 업무로 옮겨가면서 그때마다 자신들이 통제연속선 상의 다른 지점에 놓인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일반적으로 연속선의 극단을 다루기는 쉽다. 사진기자가 스포츠 경기나 화재현장에 접근하는 방법은 패션과 포트레이트를 처리하는 방식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어떤 사진은 연출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거나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 사진들도 있다. 문제는 “통제 연속선 상의 어디에 위치해야 하는가?”이다. 자신이 처한 시간에서 “연속선의 어느 지점을 선택해야하는가? 이 업무에 적합한 지점은 어디일까?”가 중요한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 본바와 같이 예술가로서의 사진기자와 기록자로서의 사진기자의 차이를 확실하게 이해하고 닥쳐오는 어사인먼트의 종류별로 순간순간에 현명히 대처하여야 할 것이다.
라. 소견 개진을 마치며
제발 우리 사진계가 여러 가지를 공부하고 서로 정보를 제대로 주고받는 세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학계의 교수님들도 반성을 해야 하고, 물론 프로 및 아마추어 대가님들도 반성을 해야 하겠지요. 그러나 그 밑에 있던 우리들은 과연 무엇을 했는가 저 자신부터 반성을 해봅니다.
어쨌든 금년도 대상을 탈 필요조차 없었던 제가 대상을 타서 여러 사람들에게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저는 이번에 소위 말하는 ‘한사전 졸업’을 했습니다. 물론 대상을 탈 필요는 전혀 없었다는 사실은 아시는 분들은 아는 사실이지요. 저를 개인적으로 욕하는 것은 참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발 더 이상 ‘합성 사진- 순수사진’ 같은 소모적인 논쟁은, 더 이상 예술 사진을 하는 우리들로서는 안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여 감히 이 글을 올려 봅니다.
감사합니다. 그동안 저를 아껴주셨던 모든 선배님들께 그동안의 지도에 대해서 다시한번 감사의 말씀을 올리면서 이만 그치고자 합니다. 언젠가 뵈올 날이 있으면 인사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07년 6월 9일 새벽 양재헌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