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김바위
작성시간:2018.10.02 조회수: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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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왕조실록에서
신라는 BC57년 건국 ~ 935년, 신라는 박씨10, 석씨8, 김씨38명의 왕으로 56세 경순왕까지 992년 유지된 나라이다. 이때 중국은 주나라에 이어 진나라가 망하고 한나라 말기에서 서한 ~ 수나라, 당나라로 45개국이 흥망한다.
신라인들은 두 부류의 망명객들에 의하여 형성됐다. 첫째는 진시황의 중국 통일(BC221년)로 인해 고통 받던 연나라 망명객들이고, 둘째는 BC194년에 연의 망명자 위만에게 쫓겨난 고조선의 준왕이 이끌고 온 유민 세력이다. 이들은 마한의 배려로 한반도 동남부 지역에 터전을 잡았다. 이것이 신라와 가야의 모태인 진한, 변한 24개 부족국이다.
신라는 사로국을 중심으로 진한 6국이 탄생한 서라벌, 진흥왕 503년에 국호를 “新羅”로 지정하고<덕업이 나날이 새로워져 사방을 모두 덮는다.>는 뜻이다.
혁거새왕은 BC69년 출생하여 표주박의 박(朴)를 성씨로 삼아 BC57년 13살에 왕위에 올라 진한 6부를 장악하였다. 혁거세왕은 직위60년에 적자 남해왕의 반란으로 왕후 알영과 합장하지 못하고 시신은 다섯 동강이로 뒤에 다섯 능에 묻혀 사능원이라 했다.
3대 유라왕의 덕치로 6부의 성씨를 ‘이씨’ ‘최씨’ ‘손씨’ ‘정씨’ ‘배씨’ ‘설씨’로 하사하였고. 최초의 향가‘도솔가’ 서기34년에는 도성에 [지진]의 큰피해 기록도 있다.
4대 탈해왕은 왜국의 동북쪽 천리 밖의 [용성국]에서 태어났다.
가야국 김수로는 서기42년 변한의 9개국을 연합한 가야국의 왕이된다. 이때가 신라 3대 유리왕19년, 백제 다루왕15년이다.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는 마한의 마지막 왕의 직계 후손의 왕자로 탈해왕 때 왕위를 사양하고 ‘대보공’으로. 알지의 6대손인 13대 미추왕이 김씨로서 22년간 재위한다. 미추왕능의 “죽헌능”의 유례는 14대 유례왕 때 댓잎사귀를 귀에 꼿고 신라군을 도와주고는 미추왕능에 댓잎사귀를 모아 두고 사라진 졌다. 제사의 직위를 오능(혁거세)의 보다 높인 대묘라 일컬었다.“
미추왕 이후 김알지 대보공 7대손인 17대 내물왕부터~52대 효공왕 까지 김씨 왕족으로 이루어지고, 19대눌지왕~충절의 박재상, 20대자비왕~악성 백걸선생과 방아악, 22대지증왕~순장을 금지시키고 국호를<新羅>로 확정한 대단한 거구로 생식기가 1자5차로(45센티)였다. 23대법흥왕~불교를 공인‘박이차돈의 순교’ 인재양성 기관으로 ‘원화’와 ‘선화’의 제도가 화랑으로 발전함, 24대진흥왕 가야를 병합하고 영토를 북으로 확장하였으며, 남자화랑의 우두머리인‘풍월주’로 초대 풍월주의 본명이 위화랑 이었다. 중국은 618년 수나라가 망하고 당나라가 건국된다.
27대성덕여왕, 28대진성여왕을 끝으로 왕은 성골에서 진골 시대로 김춘추가 29대 태종무열왕으로 재위하면서 당나라 소정방의 3만 병력과 라당연합군은 백제와 고구려 무너뜨리고 668년 삼한을 통일하였으나. 30대문무왕은 백제의 반란군을 평정하고, 당나라의 소정방 부대와 해군 총관인 설인귀 부대를 4년간 백제 유민, 고구려 유민과 합세하여 당군을 몰아내고, 31대신문왕은 이들의 유민을 등용하면서 “한민족”의 기틀을 이룬다.
이후 통일신라로 안정된 국가로 문화의 극치를 이루면서 왕실의 흥망성쇄는 왕실의 근친상혼으로 왕실의 단명과 반란이 반복되면서 왕실이 나약해지니 민란세력의 견휜과 지방 호족인 궁예의 반란 부대로부터 56대 경순왕은 고려 왕건에게 신리를 넘기면서 신라의 1000년 역사를 마감한다.
경순왕은 3명의 부인에 9명의 아들을 본다. 첫왕비인 죽방부인 박씨의 소생인 태자는 삼베웃을 입고 개골산으로 입산하니 마의태자요, 둘째는 나주김씨, 셋째 명종(영분공)은 대보공29세며, 영분공1세인 경주김씨다. 둘째왕비인 왕씨는 5명의 군 중에 첫째 대안군도 경주김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