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외px의 애환.. 김형준.(충남 아산시 권곡)
저는 남들처럼 1년 12달 군복을 입고 근무한 것도 아니고, 빡새게 유격훈련 제대로 받은 적도 없습니다.
하지만, 나름대로 힘들었던 px방위의 애환을 소개할까 합니다.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px방위는 군부대내에서 근무하는 것으로 알지만, 군부대 밖에서 근무하는 px방위도
있습니다.
영외px라고 하여 영관급들이 거주하는 군인아파트 근처에 있는 복지회관에서 근무하는 군인입니다.
이곳에는 목욕탕, 이발소, 식당, 예식장, 가전제품을 면세가에 판매하는 총판장등이 있고 마지막으로 슈
퍼가 있습니다.
이곳이 바로 제가 군생활을 한곳입니다.
훈련소에서 4주간의 짧은 교육을 마치고 월요일 아침에 집에서 조금 떨어진 px로 사복을 입고 첫 출근
(?)을 했습니다.
군인이 왜 사복이냐고 하시겠지만, 그곳은 부대밖이라서 1년 6개월 동안 사복차림으로 근무를 했답니다.
길을 몰라서 주위 분들에게 물어봐서 어렵게 복지회관이라는 곳을 찾아가니 주택가 옆에 4층짜리 건물이
하나 보였습니다. 건물 정문에는 커다란 간판에 '복지회관' 이라고 써져 있었습니다.
긴장된 마음으로 입구로 들어가니 1층 오른쪽에 작은 슈퍼가 있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아 여기가 내가 1년 6개월 동안 근무할 곳이구나...’ 라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가니 머리를 짧게 깍은 사람이 보이길래 무턱대고 신고를 하였습니다.
(나) - “충성! 오늘부로 복지회관으로 배치 받은 이병 OOO 입니다.”
듣고 있던 고참들은 신병이 온 사실에 무척이나 반가운지 웃으면서 저를 맞이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저의
첫 군생활은 시작되었습니다.
출근하여 제일 먼저 맡은 일은 고참이 건네 준 가격표를 외우는 일이었습니다. 얼핏 보아도 500개가 넘을
것 같은 단가가 적혀 있었습니다.
‘퐁퐁 560원, 슈퍼타이1KG 1250원, 참치 870원, 초코파이 80원 등등..’
저는 속으로 웃으면서 중얼거렸습니다.
‘현역들은 군가, 암구호를 외운다고 하는데 px방위는 단가표를 외우는 것이 일이구나.’
그 단가표를 주면서 선배는 씨~익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선임) - “오늘 중으로 그 단가표를 다 외워.. 내일 출근해서 물어봤는데 틀리면 10원에 1대씩이야!”
저는 또 마음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니가 무슨 동네 거지깡패냐?? 으이그..’
그날은 하루 종일 앉아서 단가표를 외우고 청소를 하는 것으로 일과를 마쳤습니다. 다음날은 박스표를 저
에게 주면서 외우라고 했습니다.
각 물품별로 몇 개가 1박스인지 들어가 있는 도표였습니다.
예를 들면 퐁퐁은 1박스에 20개, 참치는 1박스에 40개... 등...
이번에도 어김없이 선배가 하는 말은
(선임) -“10원에 1대씩이야.. ㅎㅎ..가스렌지,테니스라켓 같이 비싼 물건은 틀리면 몇대인지 알지?”
이러면서 겁을 줬습니다.
그날 저는 비싼 물건은 안 틀리려고 정말 열심히도 외웠습니다.
하지만, 지나고 안 일이지만 단가표, 박스표를 외우게 하는 것은 그 PX의 오랜 전통이었습니다.
처음 온 신병의 군기를 잡기위한 행사이기도 하고, 일종의 환영식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저의 px생활은 별탈 없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저의 하루일과를 소개하자면 아침에 출근하여 청소하고, 전날 많이 팔린 물건은 창고에서 물건을 꺼내서
진열하고, 잠깐 앉아 쉬면서 진열된 과자 한 개씩 꺼내서 고참들과 같이 먹고, 물론 돈은 안내고 그냥 먹
는 편이었습니다. 오후가 되면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이 됩니다.
저녁꺼리를 마련하기 위하여 동네 아줌마들이 몰려오기 때문입니다.
원칙은 군인가족을 위하여 마련된 PX지만 물건이 싸다고 소문이 나서 이웃동네 아주머니들까지 몰려 왔습
니다.
그렇게 한바탕 전쟁을 치루고 나면 판매일지를 작성하고 출입문을 봉인하고 퇴근을 합니다. 그렇게 저의
군생활은 편하게 흘러가는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드디어 터질 것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한 달에 한번씩 재물조사를 하였는데, 제가 근무한지 3개월쯤 되었을 때 재물조사를 한 결과를 가지고 회
의를 하자고 최고 고참께서 저와 저의 바로 위 고참을 불렀습니다.
(선임) - “어제 재물조사를 한 결과 30만원 정도가 부족하다.
사실 신참한테는 애기 안했지만 그 전부터 약간 적자는 있었고 갈수록 적자가 커져가고 있어.
지금까지는 장부에 재고가 있는 것으로 기입을 하고 보고했지만 이제는 빨리 돈을 구해서 메워
야겠다.”
보통 때와는 달리 무게 있는 목소리로 애기하는 최고참의 애기는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방위가 무슨 돈이
있다고 거금 30만원을 구해라는 것인지...
아마도 지금의 가치로 따지면 100만원은 족히 될 것입니다.
그 당시의 적자의 원인을 분석해보면, 사실 저희들이 심심할때 px내에서 공짜로 먹은 과자, 음료수, 초코
파이도 무시 못하고, 식당, 예식장, 목욕탕에서 근무하는 고참들이 먹고 갚지 않은 외상값도 있고, 일반
슈퍼처럼 운영하다보니 물건의 분실도 많았습니다. 특히, 바쁜 시간대에는 워낙 많은 사람들이 오기 때문
에 물건이 없어져도 잘 체크가 되질 않습니다.
결국, 저희들은 궁리 끝에 소집 해제된 고참들이 즐겨 사용했다던 비법을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총 작전
은 3단계로 진행되었습니다.
첫번째 작전은 손님들이 잘 모르는 물품에 대하여는 판매단가보다 높은 가격에 판매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일반슈퍼보다 가격이 20-30%정도가 싼 편이고, 시중에 유통되지 않는 물품은 손님
들이 가격을 잘 모르기에 가능했었습니다.
대표적인 상품이 '에이원화장지' 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일반슈퍼에서는 판매하지 않고 거의 군부대납품용 화장지였고 판매량도 많은 물품이었습니다.
여자손님 - “총각.. 에이원화장지 가격이 올랐어?”
작전에 돌입한 다음날, 자주오시는 아주머니들이 가격이 올란 상품을 보고 질문을 하셨습니다.
(나) -“아~~ 그 상품이 이번 달부터 올랐습니다. 사모님.”
저는 큰소리로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또한, 이런 상품을 많이 팔기위하여 일부러 물건배치에도 신경을 썼고 상품이 좋다고 권유도 했었습니다.
두 번째 작전으로 물건을 많이 사는 손님들에게 가격을 더 받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계산대에서 계산을 하고 금액만 알려주고 돈을 받았습니다.
가끔 아줌마들이 영수증을 달라고 했지만 없다고 무시를 했습니다.
이 작전에 주의해야 할 사항은 아주머니들을 조심해야 했습니다.
가격에 민감하신 분들이기 때문이죠.
한번은 얼굴이 상기된 얼굴로 아주머니 한 분이 사갖던 물건을 들고 px를 찾아 왔습니다.
(여손2) -“총각... 오늘 사가지고 간 물건인데... 계산이 많이 잘못된 것 같아... 확인 좀 해줘..”
순간, 저는 조금 전에 물건 값을 더 받은 아주머니라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어떻게 애기를 해야할지 모르고 있을 때, 저의 고참께서 어디선가 나타나셨습니
다.
(선임) - “아~~ 죄송합니다. 신참이라서 물건값을 잘 몰라서 그랬을 겁니다. 제가 다시 계산해드리죠.”
그렇게 위기를 넘기고 나서 그 아주머니는 저희들에게는 요주의 인물로 찍혔습니다.
세 번째 작전은 파지(빈박스)를 모아서 지구대에 보내야 하는 것을 고물상에 팔아서 돈을 마련하는 것입
니다.
이런 일은 주로 최고참이 담당을 하며 저녁시간대를 이용하여 진행이 됩니다.
(최고선임) - “아저씨, 여기 xxPX 인대요.. 파지가 많이 모였거든요. 1톤 트럭 1대 보내주세요.”
그러면 고물상아저씨가 차를 몰고 오고 저희들과 같이 파지를 실어서 고물상으로 갑니다. 고물상아저씨와
같이 파지를 저울에 올리고 kg을 확인한 후에 파지값을 받아서 px로 돌아옵니다.
이런 날은 어김없이 저의 고참은 호떡이나 떡볶이를 사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돈을 모았지만 목표한 30만원은 모을 수 없었고, 각자 집에서 돈을 구해오는 것으로 사건
을 마무리 짓기로 했습니다.
현역들은 M16 사야 된다고 집에서 돈을 받고, 탱크를 수리해야 한다고 돈을 받아 낸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희 px방위들은 부모님들께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PX에서 물건 팔다가 적자가 나서 메꿔야 하는데 돈 좀 주세요.’ ㅠㅠ
그렇게 하여 저희들의 작전은 끝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것으로 저의 특이했던 군생활 애기를 마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20년전 저희들의 작전(?)에 희생되신 손님, 아주머니들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또한, 국방부관계자 분들께도 용서를 빌겠습니다.
20여년이나 흘렀으니 공소시효는 지난 것이 맞겠죠... ^^*
돌이켜 생각하면 참으로 즐겁고 행복한 군생활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에 같이 근무했던 마음씨 좋았던 고참들, 후배들도 많이 보고 싶구요..
‘고참님, 지금도 슈퍼에서 물건팔고 있지는 않으시겠지요? 보고 싶습니다.’
참고로 이 사연이 공개되면 저의 이름을 가명(비공개)으로 처리해 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