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기침을 토해내자 입 밖으로 주르르 핏물이 흘러내린다.
목울대를 지나 토해진 핏물이 반, 목 너머로 삼켜지는 피가 반이었다.
훅- 갑자기 정신이 들자, 아득하게 밀려오는 두통 속에 끔뻑끔뻑 두 눈을 껌뻑여 본다.
속눈썹 틈틈이 땀인지 눈물인지 피인지 모를 것들이 진득하게 엉켜들어 눈을 뜨기가 힘들었다.
온 머리를 축축하게 적신 땀과 또 눅눅한 바닥에서 느껴지는 한기가 목과 등을 휘돌아
흠뻑 젖은 몸을 으슬으슬 떨게 만들었다.
후우…
그리고 다시 한 번 한숨인지 심호흡인지 모를 깊은 숨을 토해내는 그.
‘뭐지‥?’
서서히 몸의 감각이 돌아오자 그는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 거린다.
잠시 기절했던 것인지 눈을 뜨자, 찌르륵 밀려오는 두통과 함께 하나의 스틸 컷처럼
눈앞을 스치는 그 끔찍한 위기 속의 단상들.
.....
엘리베이터 앞에서 붙들린 자신.
취조실로 끌려와 무자비한 폭행을 당하던 모습.
의자에 결박된 채로 정혁 일행에 대한 추궁을 당하던 모습.
끝까지 -매우 정의롭고 의리 있으며 멋지고 장렬하게(순전히 본인의 시점)- 음양사단원들을 엿 먹이자,
강제로 벌려진 입으로 막 날아들던 스패너의 그 공포스럽던 움직임.
“......!”
막 입으로 날아드는 것을 순간, 있는 힘껏 몸을 웅크리고 고개를 돌려, 가까스로 피해냈었다.
대신 스패너는 관자놀이 뒤쪽 머리를 강타했고, 온 몸이 요동치는 듯한 엄청난 고통과 함께
벽에 피가 튀고, 무릎이 꺾이고 그대로 눈을 감았던 기억.
그렇게 겨우 피해내자, 약이 오르는지 낮은 욕설과 함께 눈앞의 담당자가 그의 멱살을 단단히 움켜쥐고,
일으켜 세워 또 다시 강제로 입을 벌렸다. 준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도리질 쳤고,
곁에 서 있던 다른 이까지 가세해 우악스러운 손길로 준의 머리를 단단히 잡아 쥐었다.
“놔! 놔 이 새끼‥ 들아…!”
목이 쉬어 목소리가 제대로 세어 나오지 않았다.
온통 상처 난 입안엔 계속 피가 고였고, 땀에 절은 몸은 축축 늘어져 지쳐가고 있었다.
두어 번, 머리와 몸을 거세게 비틀던 준은 기운이 빠져 그대로 몸이 축 늘어졌다.
서늘한 눈으로 마지막 까지 발버둥 치던 준을 지켜보고 있던 남자는 스패너를 쥔 손에 단단히 힘을 주고,
이번엔 옴짝달싹 못 하는 준의 입을 향해 있는 힘껏 내려치려던 순간,
휘이익…
갑자기 어디선가 서늘한 바람의 줄기가 남자의 목덜미를 훑고 지나간다.
순간 흠칫 놀라 휙- 뒤를 돌아보는 남자.
깊은 지하 취조실, 환기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이 밀폐된 공간 안에 갑자기 스치는 바람 하나.
“.......?”
남자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곤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다시 한 번 뒤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에 이번엔 눈앞의 다른 일행의 앞머리를 휙 휘날린다.
“......”
“......”
순간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응시한 체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잠시 말이 없다. 그러다,
“자네도 느꼈지?”
남자가 물었고, 눈앞의 동료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긴장 된 표정으로 천천히 등을 돌려 바람이 불어온 쪽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그들.
컴컴한 어둠의 저편에서 차박차박 들려오는 차분한 걸음소리‥
탈진하여 몸이 축 늘어진 준이 억지로 힘겹게 떠올린 두 눈에 어른거리던 알 수 없는 작은 형체‥
“으‥ 머리야.”
그 후론 기억이 없다.
그렇게 억지로 억지로 다잡고 있던 의식의 끈을 놓아버리고 그는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다시 눈을 뜨고,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입 안의 혀를 세워 슥- 치열의 안쪽을 훑어보는 거였다.
혀끝으로 빈틈없는 고른 치열을 슥 훑어보고는 그런 제 꼴이 우스운지 피식 웃는다.
‘나 이준, 곧 죽어도 가오 떨어지는 건 못 참거든.’
그렇게 입 안을 훑어 강제로 뽑힌 이가 없는 것을 확인하자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무심코 주위를 훑어보던 그.
“……!!!”
그러다 소스라치게 놀라, 그대로 굳은 듯 미동조차 없다.
슥 눈을 내리자 눈앞에 바닥으로 툭툭… 핏물이 떨어지고 있다.
일정한 간격으로 툭‥ 툭‥ 떨어져 내리는 핏방울을 따라 다시 눈을 올리자,
방금 전까지 자신의 입안으로 스패너를 내려치려던 그가 온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눈두덩이 파랗게 부어오르고 광대 쪽의 상처가 벌어져 피가 턱 끝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입안에 고여 있던 피가 입술 사이를 비집고 세어 나와 바닥으로 진득하게 툭툭 떨어지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자신을 위협하던 남자가, 잠시 의식을 잃었다 깨어나자 엉망인 몰골로 부들부들 떨며
자신 앞에 서 있다. 더 의아스러운 것은 그의 손에 쥐어진 스패너에 피가 잔뜩 엉켜 있다는 것이다.
그 중 일부분은 자신의 피일 것이고, 손잡이 아래까지 잔뜩 엉켜있는 피는 아마 그의 얼굴을 보건데
스스로의 피인 것 같았다.
‘갑자기 무슨 일이지?’
준은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곤 슥 주위를 둘러본다.
“......”
주위에 있는 이들은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말끔한 얼굴로 그대로 서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어딘가 이상했다. 모두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땀을 뻘뻘 흘리며 그대로 멈춰 있었다.
마치 자신의 의지로 서 있다기 보다는 무언가에 의해 강제로 대기 속에 박제라도 당한 듯,
굳은 듯 멈춰서 하나같이 모두 겁에 질린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모두들 커다랗게 뜬 눈엔 어찌할 바를 모르는 당혹감이 가득 깃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때 다시 한 번 휙-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그가 손에 쥐고 있던 스패너가
하늘 위로 높이 쳐들어졌다, 마치 자신의 손이지만, 자신의 의지는 아닌 듯,
높이 쳐들어진 자신의 손을 공포스럽게 바라보는 남자.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그 너무나 괴기스러운 장면을 보다 못한 준이, 자신을 공격했던 남자에게 되려 걱정스러운 듯 묻는다.
남자는 겨우 입을 떼며 고개를 도리질 친다.
“내 의지가 아니다.”
“......”
“내 몸이… 스스로 움직이고 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 끝에 들려진 스패너로 자신의 얼굴을 겨눈 체 남자는 겁에 질려 말한다.
“그 쪽 몸이 스스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
“저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겁니다.”
순간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
작고 차분한, 다 자란 성인이 아닌 어린 아이의 목소리에 준은 순간 쭈뼛 소름이 돋는다.
그러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본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 자신이 앉아 있던 의자에 한 아이가 앉아 있다.
무표정하고 무심한 모습.
하얗고 보드라운 얼굴과 달리 차갑고 분위기를 읽을 수 없는 까만 흑빛의 눈동자.
아이가 준과 잠시 눈을 마주치다 이내 슥 무심하게 고개를 돌려 손에 든 종이 몇 장을 들여다 본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흐트러져있던 마라진호의 설계도면 중 몇 장이다.
그것들을 흥미롭게 바라보다 준을 향해 묻는다.
“이건 왜 가져가려고 했어요?”
준은 멍한 얼굴로 스패너를 쥔 남자를 본다.
“고문관이 바뀌었습니까? 저 어린애로?”
그러자 꼬마 아이가 피식 웃는다.
“무슨 고문관이 자기 부하를 고문해요? 머리 안 굴리시는 건 여전하셔.”
하고 고개를 도리질 치는 아이를 준은 빤히 바라본다.
잠깐, 저 아이‥ 저 아이를 내가‥
“너.”
저 아이‥를 어디서 봤더라?
순간 기억을 더듬으려는 듯 잔뜩 미간을 찌푸리는 준.
열 살 남짓 되어 보이는 저 작은 체구의 예쁘장한 아이를
분명히‥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뭐 믿고 이렇게 무모하세요?”
“너‥ 너…”
그래, 저 녀석 이름이…
“아무튼 사부 할아부지가 그곳 사람들은 다 비슷비슷 하댔어요.
지나치게 대책 없고 지나치게 당당하다고. 뭐, 역시…”
그래. 그 녀석 이다.
“너, …이준희.”
“정신 들었으면 그만 가죠?”
그래, 생각났다. …이준희.
처음 이 곳에 발을 들여놨을 때, 한 팀으로 꾸려졌던 아홉 살의 어떤 아이.
맹랑하고 총명하던 아이.
그러다 한 팀이 되고 채 닷새도 되기 전에 홀연히 수련을 하게 한다며
음양사단 내의 ‘누군가’가 ‘산으로’ 데려갔다 했는데‥
재주가 워낙 비상해, 신동 내지는 천재로 불렸다던데‥
그게 벌써 2년 전이던가.
그럼 그 산이...? 그 누군가가....
이 무모한 계획에 순순히 나를 보내신 이유가...
“하..”
암튼 사부라는 분은 참으로 소름 끼치시는 분이군.
“일어나요. 나 이분들 오래 못 붙들고 있어요. 이제 슬슬 풀리고 있다구요.”
“지금, 이 자들의 몸을 묶고 있는 게 너란 말이야?”
그러자 어깨를 으쓱해보이는 아이.
“그럼 누구겠어요?”
“저 수장은 왜 저렇게 두들겨 패놨어?”
“자승자박(自繩自縛). 남을 해하려는 의지를 가진 자는 그 해가 자신에게 돌아오지요.”
그러면서 뒤에 스패너를 든 남자를 보는 표정 없는 얼굴의 준희.
“아이 씹!! 열한살짜리도 할 줄 아는 게 있는데! 아이 씨! 아이 씨!”
그런 준희를 경악스러운 듯 잠시 보던 그가 역시나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열한 살짜리도 있는 능력이 왜 자신에겐 없냐며 고함과 함께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두고 봐, 내가 가서 꼭 따질거야. 이번엔 진짜 담판을 지을 거야!”
그렇게 준이 다리를 절뚝이며 앞으로 몇 걸음 걸어가 바닥에 흐트러진 것을 주우려 하자,
아이가 다가와 준이 주우려 하는 파일철을 발로 지그시 밟아 누른다.
“어쭈?”
순간 준이 눈썹 사이를 찡그리며 ‘까불래?’ 하는 눈으로 아이를 올려다보지만,
아이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다.
“됐으니까 그만 가자구요.”
아이의 발에서 서류를 싹 빼내며,
“내가 뭐 때문에 뺑일 치고 이 난리를 겪었는데, 다 이 빌어먹을 것 빼내려다 그런 거거든?”
그러자 준을 향해 상체를 숙여 눈을 똑바로 맞추고는,
“그러니까요, 됐다니까요.”
그러면서 손가락으로 제 머리 한쪽을 툭툭 친다. 마치, 그 안에 다 들어있다는 듯이.
대체 이 아이가 왜 이러나 싶어, 인상을 찌푸리던 준이 순간 놀란 얼굴로 눈을 휘둥그렇게 뜬다.
“너 뭐야? 머리까지 좋은 거냐!!”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며 준희를 힐끔 힐끔 보던 준이 잔뜩 심통 난 얼굴로 묻는다.
“너 아이큐가 몇 이냐.”
“형보단 높을 걸요.”
“이 쪼끄만 게! 그 때‥ 형들 구했다는 것도 너였냐.”
“......”
“엘리베이터 앞에서 음양사단 일행들 꼼짝 못하게 만들어서 탈출 했다던데.
민우 형은 끝까지 자기가 한 게 아니라고 하고. …너였구나?”
“그 염동력 쓰시던 분 이름이 민우군요. 교린지구 예비향주였던 분이죠?”
“쪼끄만 게 모르는 게 없구나.”
“쪼끄마니까요. 호기심이 많죠.”
“......”
준은 묘하다는 듯 아이를 본다. 정말 묘하다.
하얀 얼굴과 뜻을 알 수 없는 검은 눈동자는 마치,
아까 취조실에 불던 그 두려움과 잔인함이 깃든 바람의 움직임은 마치,
타인의 몸을 조종하던 그 무서운 능력은 마치..
“너 이선호라고 아냐?”
“음양사단 내에서 그 분 모르는 사람이 있나요.
저보고 늘 제 2의 이선호, 제 2의 이선호 소리를 귀에 딱지가 앉게들 하니까.”
뭐, 하긴 재주가 워낙 비상해, 신동 내지는 천재로 불렸던 건 이선호가 원조이긴 하지.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닮아 있을까. 그 두려운 재주를 닮았으니 그 모진 숙명도 닮아있으려나.
“걱정 마요. 나도 나름 뒷조사를 좀 해봤는데 그 분하고 난 피는 안 섞였어요.
능력이 비슷하긴 하지만 완전 남이예요.”
“헉!! 너! 독심술도 하냐!”
“그 정도는 표정만 봐도 대충은 짐작해요. 특히 형은 얼굴에 다 드러나요.”
“너… 신혜성이라고 아냐?”
“자꾸 저랑 장난 하세요? 그 분은 다른 의미로 제일 유명한 분이잖아요.”
이 녀석… 이럴 땐 꼭 신혜성 같다.
‘장난 하세요?’ 하고 거만하게 치뜬 저 눈과 표정, 슥 꼬고 있는 팔짱까지!
적당히 건방진 눈빛과 말투.
톡톡 쏘듯 요점만 찔러 사람 말문 막히게 하는 저 재주까지!
이래서 묘하다는 거다.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는 선호의 것을 닮아있고,
풍기는 분위기는 신혜성 특유의 오만불손함이 팍팍! 느껴지는 이 맹랑한 아이.
특히,
“형.. 차예요?”
주차장으로 내려와 준의 아담한 모닝을 보며 뜻 모를 미소를 한 번 작게 짓고
(마치 신혜성의 ‘풋! 그 등치에 요런 차 타는 거니?’ 하고 비웃던 모습과 겹치는)
나서는 막 운전석 쪽 문을 쥔 준에게 그런다.
“아, 형. 저기 약국 가서 저 귀여패 하나만 사다 주세요.”
“귀여패? 그게 뭔데.”
“귀 옆에 붙이는 어린이 멀미약이요. 사부 할아부지네 산으로 갈 거 잖아요.
저 자동차 오래 타면 멀미가 나서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준희 다시봐도 넘 귀여워요ㅠㅠㅠㅠㅠㅠㅠ
사유님.기다릴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