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로운 전통마을, 밀양(密陽)
밀양(密陽市)은 경남 동북부, 낙동강 동쪽 내륙에 위치하고 있다. 북쪽에 심산준령이 위치해 있고 서남쪽으로 낙동강이 흐르고 있다. 밀양의 진산인 화악산이 북쪽에 옹립하여 있고, 동쪽에는 재약산(載藥山, 1,108m)을 중심으로 주산인 가지산(加智山, 1,240m), 영취산(靈鷲山, 737m), 신불산, 문복산이 산맥으로 이어져 있다.서남으로는 열왕산, 도리산, 종남산(終南山, 664m), 덕대산으로 연결되어 낙동강으로 이어진다. 이들 높은 산지에서 발원하는 하천들이 동북쪽에서 서남으로 흘러 낙동강으로 유입하면서 그 유역에 비옥한 농토를 형성하고 있다.
낙동강유역에 위치하여 일찍부터 비옥한 하천유역과 구릉지대를 따라 인간의 정착이 이루어져 문화가 발달하였으며, 선사시대부터 농경문화의 중심지를 이루었다. 부산과 대구의 중간에 위치한 교통의 요충지로 다른 지역과의 교역이 활발하여 근대화 과정이 빠르게 이루어졌다. 일찍부터 지역문화가 발달하여 많은 인재를 배출한 고장이다. 조선시대에는 향교와 서원에서 많은 인재를 배출하여 안동과 더불어 영남의 2대 유향을 이루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경제개발에서 소외되어 많은 지역인구가 이촌향도로 유출되었다. 최근에도 부산, 대구, 울산, 창원 등의 인근 대도시의 영향으로 지역성장력이 계속 유출되고 있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720979&cid=43723&categoryId=43726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056763&categoryId=42844&cid=42840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574339&cid=58929&categoryId=58929
밀양을 여행할 때, 수려한 산지와 하천풍경은 물론 전통적인 유교문화재, 전통마을, 사명대사와 관련된 문화재에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이다.
밀양8경과 3대 신비 http://tour.miryang.go.kr/sub/01_01.php
시내 명소 영남루(嶺南樓) 내일동 밀양강가의 절벽위에 있는 조선시대의 누각건축으로 보물 제147호이다. 조선시대 후기의 대표적인 목조 건축물로 신라 경덕왕(742~765년)때 신라의 5대 명사 중에 하나였던 영남사의 부속 누각에서 유래가 되었다. 고려 공민왕 때(1365) 밀양부사 김주(金湊)가 규모를 크게 중수하였으며, 현재의 누각은 이인재(李寅在)부사가 1844년에 중건한 것이다. 진주 촉석루, 평양의 부벽루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누각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화려한 단청과 다양한 문양조각이 한데 어우러진 누각에는 퇴계 이황, 목은 이색, 문익점 선생 등 당대의 명필가들의 시문현판이 즐비하다. 그 중에서 1843년 당시 이인재부사의 아들 이증석(11세)과 이현석(7세) 형제가 쓴 영남 제일루(嶺南第一樓)와 영남루(嶺南樓) 현판은 관광객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할 뿐만 아니라 수많은 서예가 들로부터 불가사의한 필력으로 지칭되고 있다. 영남루 일원에는 단군을 비롯한 창국 8왕조의 위패를 모신 천진궁과 아랑낭자의 전설을 간직한 아랑사당이 있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056767&cid=42840&categoryId=42844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948539&cid=42865&categoryId=42865 http://place.map.daum.net/8375158
영남루 경내에 있는 천진궁은 조선시대의 건축물로 공진관(拱振館)이라고도 한다. 경남유형문화재 제117호이다. 1652년(효종 3) 창건되었는데, 이 자리에는 원래 1665년(현종 6)에 부사 홍성구가 창건한 격선관이 있었다. 내부에는 단군 이래 역대 8왕조 시조의 위패(位牌)를 봉안하고 있다. 중앙 맨 윗자리에는 단군의 영정, 동쪽 벽에는 부여·고구려·가야·고려의 시조, 서쪽 벽에는 신라·백제·발해·조선 시조 들의 위패가 있다. 매년 음력 3월 15일에는 어천대제(御天大祭), 음력 10월 3일에는 개천대제(開天大祭)를 봉행한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056882&cid=42840&categoryId=42844 영남루 아래쪽 절벽에 있는 아랑사는 사당으로 아랑의 전설이 얽혀 있는 곳이다. 조선시대에 지역민들이 명종 때 밀양부사의 딸이었던 아랑(본명은 윤동옥)의 정절을 기리고 원한을 풀기 위하여 제사 지내던 곳이다. 지금의 건물은 1965년 주민과 이곳 출신 인사들이 모은 성금과 밀양시의 보조로 중건한 것이다. 영정은 1972년 박정희 대통령 부인 육영수(陸英修)의 의뢰로 김은호가 제작하였고, 현판은 구한말 때의 명필 하동주가 1910년 쓴 것이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056769&cid=42840&categoryId=42844
무봉사 영남루(嶺南樓) 옆에 있는 사찰로 통도사의 말사이다. 지금의 영남루 자리는 예전에 영남사(嶺南寺)라는 절이 있던 곳이고, 무봉사는 773년(신라 혜공왕 9) 법조(法照)가 이 영남사의 부속 암자로 세운 사찰이다. 1359년(고려 공민왕 8) 영남사가 불에 타 없어지자, 무봉암을 무봉사로 승격시켰다고 한다. 이후 1592년(조선 선조 25) 임진왜란으로 불에 탄 것을 1605년(선조 38) 혜징(慧澄)이 중창하면서 법당과 칠성각·수월루를 새로 지었다. 1628년(인조 6) 경의(敬儀)가 중창하였으며, 1899년(광무 3) 경봉(慶蓬)이 중건하고, 1942년에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삼성각·종루·요사 등이 있고, 유물로는 대웅전에 있는 무봉사석조여래좌상이 유명하다. 보물 제493호로 지정된 이 불상은 약사불로 연화대좌 위에 올라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본래 이 절에 있던 것이 아니라 옛 영남사 터에 전해 오던 것을 옮겨온 것이다. 조각 솜씨가 뛰어난 광배는 불상과 함께 있던 것은 아니다. 복잡하면서도 화려한 유물로 9세기경 제작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010646&cid=42856&categoryId=42856 http://place.map.daum.net/9003907
밀양읍성 내일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석축읍성으로 경남기념물 제167호이다. 1479년(성종 10)에 축조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둘레가 1425m, 높이 2.8m, 성내 우물이 넷, 못이 하나 있다고 한다. 1902년 경부선 철도부설공사 때 4대문과 성벽의 석재가 모두 헐리어 철도부설공사에 이용되었으며, 아동산과 아북산을 잇는 산등성이에 퇴뫼성이 남아 있다. 1590년(선조 23) 부사(府使) 신잡(申磼)이 성 둘레에 물을 끌어 들여 해자(垓字)를 파고 물로서 성을 지키려 하였다. 뒤에 못 1, 우물 8, 동서야문을 늘려서 못 3개, 우물 8개, 4대문, 야문이 되었다. 동문은 1칸, 서문은 2층 3칸, 북문은 1칸이며 남문은 공해루라고 하였는데 3층 3칸이었다. 성안에서 죽은 상여나 시신은 모두 동서야문을 통과하게 하였다. 한편 이 읍성이 파괴된 것은 1902년경부철도가 통과하게 되던 때와 1934년밀양에 교량이 놓여질 때이며 아동산과 아북산 주능선을 감아 돌던 성돌은 6·25동란 때 방어진지(方魚津址) 구축으로 모두 쓰였다. 성의 해자(垓字)는 ‘해천’이란 이름으로 내일동과 내이동을 경계짓는 하수도로 변하였고 지금은 무봉사(無鳳寺) 뒤에서 아동산 정상까지 성의 흔적만 남아 있다. http://place.map.daum.net/12740341
밀양향교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335317&cid=42856&categoryId=42856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056887&cid=42840&categoryId=42844 http://place.map.daum.net/7888281 밀양관아지 http://tour.miryang.go.kr/program/tour/tourinfo/out_tourinfo.php?pT_idx=52&sT_part=1&d3=17 http://place.map.daum.net/12740269
월연정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056888&cid=42840&categoryId=42844 http://place.map.daum.net/8036054 오연정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95091&cid=40942&categoryId=33383 http://place.map.daum.net/12772499 밀양 교동 손씨고가 교동에 있는 만석꾼집으로 불린 99칸 주택으로 경남문화재자료 제161호이다. 조선 후기에 창건한 건물로 노후와 화재 등으로 여러 차례 보수하였고 없어진 건물도 있다. 택지가 1,000평 이상이고 건물배치도 마당을 중심으로 안채, 사랑채 등의 공간으로 구분되어 있다. 안채를 중심으로 전면과 측면에 창고·행랑방·찬간 등이 있는 별채가 ㅁ자로 배치되어 있다. 안채 왼쪽 뒤 높은 곳에 사당이 있다. 큰 사랑채 뒤꼍과 작은 사랑채 앞뜰에 널찍한 정원을 꾸며놓았고 안채 뒤꼍에 장독대 시설을 특이하게 해놓았다. 정침은 숙종 때 학자인 손성증(孫聖曾)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며 큰 사랑채는 손영돈(孫永暾)이 1900년경에 근대공법을 원용하여 내화벽돌과 춘양목을 써서 익실(翼室)을 둔 팔작지붕의 특색 있는 건물로 지었다. 1935년 불이 나 정침과 사랑채를 제외한 모든 건물이 불에 탔으며 여러 해를 두고 지금과 같이 재건하였다. 후방에 작은 구릉을 사이에 두고 밀양향교가 자리잡고 있으며 마을 전방으로 아동산(衙東山)을 바라보는 남향집이다. http://place.map.daum.net/12772263
밀양시립박물관
http://tour.miryang.go.kr/program/tour/tourinfo/out_tourinfo.php?pT_idx=37&sT_part=2&d3=1 http://place.map.daum.net/11070568
해천항일운동테마거리 http://tour.miryang.go.kr/program/tour/tourinfo/out_tourinfo.php?pT_idx=85&sT_part=2&d3=8 http://place.map.daum.net/93709434
교외 명소
영남알프스 밀양시 산내면, 청도군 운문면, 울주군 상북면 등에 걸쳐있는 높이 1,000m 이상 되는 7개의 산지(가지산, 운문산, 천황산, 신불산, 영축산, 고헌산, 간월산)지대로 유럽의 알프스처럼 아름답다는 의미에서 이름이 붙여졌다. 전체 종주에는 2박 3일 정도 걸리며, 등억온천, 사자평, 밀양 남명리의 얼음골, 대곡리암각화, 밀양 농암대, 통도사, 석남사, 운문사, 표충사 등의 명소와 사찰 등을 볼 수 있다. 신불산과 취서산 사이의 신불평원 60여만 평과 간월산 밑 간월재의 10만여 평, 고헌산 정상 부근의 20만여 평에 억새군락지가 있다. 등산은 울주군 상북면 석남사 뒤 배내골 울산대학교 연수원에서 서쪽으로 할 수도 있고, 밀양시 단장면 표충사 매표소 뒤에서 시작할 수도 있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115499&cid=50392&categoryId=50392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115973&cid=50392&categoryId=50392 http://place.map.daum.net/14541211
위량지(位良池, 양야제 陽也堤) 부북면 위양리에 있는 수리(水利) 구역의 제방으로 경남문화재자료 제167호이다. 신라-고려 시대 때 축조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축조 연대는 알 수 없다. 《밀주구지(密州舊誌)》 <위량동(位良洞)조>에 의하면 임진왜란 이전부터 존재하였고 왜란으로 무너진 것을 1634년(인조 12) 부사 이유달(李惟達)이 수축(修築)하였다고 한다. 안동권씨의 완재정(宛在亭)이 있는 저수지 제방이었으나 원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지금은 수리제방으로 바뀌었다. 이곳은 옛날에 양량부곡(陽良部曲)으로 양량제(陽良堤)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이만도(李晩燾)의 완재정기(宛在亭記)에 의하면 완재정의 못은 양야지(陽也池) 또는 양량지(陽良池)라 하였고, 둘레는 4, 5리가 되고 못에는 5개의 작은 섬이 있어 들판에 물을 대고 사방의 제방에 나무와 꽃을 심어 생민이택(生民利澤)의 근원으로 삼고 은자(隱者)들이 소요하는 곳이었다고 적혀 있다. 조선 후기에는 둘레가 1,066척에 깊이 22척으로 축소되었고, 근대의 기록에는 길이 547척에 너비 68척으로 변경되었다. 이팝나무 등 진귀한 나무들을 심어 사시사철 아름다운 운치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선비와 문인학자들이 즐겨 찾았던 명소이다. 매년 이팝나무 꽃이 만발하는 시기가 되면 그 아름다운 절경이 절정을 이룬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410284&cid=51704&categoryId=51712 http://place.map.daum.net/8482507
기회송림 산외면 남기리에 밀산교 중심으로 좌우 국도변을 따라 길게 뻗어있는 유원지로, 긴늪유원지라고도 한다. 100여년 전 남기리 기회마을에 매년 밀양강이 범람하여 가옥과 전답에 피해가 심하자 주민들이 마을과 농토를 보호하기 위해 소나무를 방수림으로 심은 데서 기원하였다. 송림의 너비가 200m, 길이가 1,500m이다. 밀양강 북천수를 따라 수령 150년이 넘은 소나무 수천 그루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숲에서는 삼림욕을 즐길 수 있고, 강물에서는 수영과 뱃놀이를 즐길 수 있어 야외행사와 야영, 휴양 등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특히 여름철에는 산외면에서 유원지 안에 야외극장을 개설하여 공연한다. http://place.map.daum.net/17652685
밀양댐 단장면 고례리에 있는 다목적댐으로 밀양시 단장면 고례리, 양산시 원동면 선리, 울주군 상북면 이천리에 걸쳐 있다. 양산시, 밀양시, 창녕군 등 3개 지역에 수돗물과 전력을 공급하고 홍수를 조절하기 위해 2001년 11월에 완공되었다. 높이 89m, 길이 535m, 총저수량 7360만t, 유역면적 104.4㎢이다. 콘크리트 표면차수벽형 석괴댐이며, 용수공급능력 7300만t, 홍수조절능력 600만t에 연간 700만kW/h의 발전능력을 갖추고 있다. 40만 명의 주민들에게 연간 5080만t의 생활용수와 연간 1310만t의 농업용수를 공급한다. 상류쪽 단장천 3㎞ 일대를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해놓고 모든 오염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2002년 9월에 수변구역(면적 228.77㎢)으로 지정되었지만 기존 댐과는 달리 수몰지역에서 키운 수목으로 자연생태공원을 조성하는 등 환경친화적으로 건설되었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537648&cid=42856&categoryId=42856 http://place.map.daum.net/21503134
삼랑진양수발전소 삼랑진읍 안태리에 있는 양수식 발전소로 청평양수발전소에 이어 두 번째로 건설된 한국 최대의 양수식 지하 발전소이다. 우리 기술로 1979년 10월에 착공하여 1986년 4월에 준공되었다. 지하에 시설용량 30만kW급 발전기 1, 2호기를 보유하여 총 시설용량은 60만kW에 이른다. 상부 저수지는 높이 88m, 하부 저수지는 높이 78m의 사력댐으로 축조되었으며 담수량 646만 4000m³, 수심 27.7m로 6시간 발전이 가능하다. 지하발전소에는 펌프 터빈과 발전전동기, 변압기 등의 보조기기들이 설치되어 있다. 모든 기기는 자동화되어 중앙제어실에서 컴퓨터로 원격제어된다. 양수식 발전은 전기를 일으킨 후 방류하는 물을 하부의 보조댐에 담아두었다가 밤에 남은 전력을 이용해 상부 저수지로 보낸 다음 전력 소비가 많은 낮에 다시 물을 흘려보내 발전하는 방식이다. 발전소 안에는 종합전시관이 설치되어 에너지 발달사를 비롯해 전기 에너지의 이용 실태, 전기가 인간 생활에 미치는 영향 등을 알려준다. 발전소를 건설하면서 함께 조성된 삼랑진 안태공원은 하부 저수지 위쪽에 2개 지역으로 나뉘어 넓은 광장과 소나무 숲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안태공원을 기점으로 상부 저수지에 이르는 6km의 도로는 주변 경관이 뛰어나 드라이브 코스로도 유명하다. 겨울에는 상하부 저수지에 각종 철새들이 찾아들고, 봄에는 안태공원에 이르는 진입로 양편에 벚꽃, 개나리꽃이 만개해 관광객들이 즐겨찾는 명소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삼랑진양수발전소 하부댐 남쪽의 유휴지를 활용하여 만들어진 태양광발전소도 새로운 관광명소이다. 삼랑진태양광발전소는 2007년 5월 착공한 후, 9월 1단계 2,000kWp 규모의 설비를 완공하여 상업운전에 착수하였다. 2단계 1,000kWp 규모의 설비는 2008년 5월 준공하였다. 한국서부발전(주)가 2005년 7월 정부와 체결한 '신재생에너지 자발적 개발공급협약(RPA)' 사업의 일환으로 건설하였다. 실리콘태양전지 모듈 1만 7,154장이 설치되었으며, 모듈 1장당 175W의 최대전기를 생산한다. 부지면적 4만 2,500㎡이며, 총 설비용량 3,000kWp로 태양광발전 부문에서는 국내 최대 용량이다. 살수 설비를 설치하여 모듈을 세정 및 냉각하여 효율을 높이고, 다기능의 인버터를 사용하여 소비전력을 최소화하는 것이 특징이다. 연간 발전량은 369만kWh이며, 연간 800㎘의 유류(油類)를 대체하는 효과와 2,300t의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999846&cid=42856&categoryId=42856 http://tour.miryang.go.kr/program/tour/tourinfo/out_tourinfo.php?pT_idx=17&sT_part=0&d3=28 http://place.map.daum.net/7927283
남명리 얼음골 산내면(山內面) 남명리에 있는 면적 11만 9700㎡규모의 골짜기로 천연기념물 제224호이다. 천황산(天皇山:1,189m) 중턱 해발고도 600m에 위치하며, 동·서·남쪽의 3면이 수십 m의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 절벽을 이루는 암석은 중생대 말엽에 분출한 안산암(安山岩)이다. 이 암석의 틈서리에서는 3-4월부터 얼음이 맺히기 시작하여 7월 말-8월 초에 가장 많은 얼음이 생긴다. 가을로 접어들면 얼음이 녹기 시작하고, 날씨가 서늘해지면 얼음이 다 녹아 바위틈에서 따뜻한 공기가 나온다. 이 현상은 겨우내 지속되며 계곡의 물도 얼지 않는다. 이와 같이 결빙현상이 계절과 정반대인 것은, 암석 속에 틈이 많이 생겨서 일어나는 것이다. 최근에는 이상기후로 인해 결빙기간이 예전에 비해 길지 않다. 주변에는 계곡을 중심으로 3면에 기암절벽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948540&cid=42865&categoryId=42865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056772&cid=42840&categoryId=42844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997541&cid=42856&categoryId=42856 http://place.map.daum.net/11110103
시례 호박소 산내면 삼양리에 있는 못이다. 물줄기가 폭포로 돌에 떨어져 움푹 파인 것이 못이 되었다. 못의 모양이 방앗간에서 쓰던 절구(臼)의 일종인 호박을 닮았다 하여 호박소라 불린다. 둘레 30m 규모이며, 위쪽에 형제소(兄弟沼)가 있다. 이무기가 글을 읽고 용이 되어 호박소에 잠겼다는 전설이 있으며, 밀양의 기우처였다. http://tour.miryang.go.kr/program/tour/tourinfo/out_tourinfo.php?pT_idx=19&sT_part=0&d3=17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997539&cid=42856&categoryId=42856 http://place.map.daum.net/25040655
상동빈지소유원지 상동면 금산리 상동역 맞은편에 있는 유원지로 유천빈지소유원지 또는 빈지소라고도 부른다. 빈지소는 응천강 상류인 북천수(北川水)의 급한 물줄기가 이곳 옥교산 기슭에 부딪치며 자연적으로 형성된 소(沼)로서 강변에 넓은 빈터가 펼쳐져 있다. 너비 150m, 길이 1,500m이다. 산과 강물이 이루는 경치가 빼어나고 교통이 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낚시나 양영을 즐긴다. http://korean.visitkorea.or.kr/kor/bz15/where/where_tour.jsp?cid=126599 http://place.map.daum.net/8390036 표충사(表忠寺) 단장면 구천리 재약산(載藥山)에 있는 사찰로 경남기념물 제17호이다. 654년(태종무열왕 1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죽림사(竹林寺)라 하였다. 829년(흥덕왕 4년) 인도의 승려 황면선사(黃面禪師)가 현재의 자리에 중창하여 영정사(靈井寺)라 이름을 고치고 3층석탑을 세워 부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봉안한 것으로 전한다. 신라 진성여왕 때에는 보우국사(普佑國師)가 한국 제일의 선수행(禪修行) 사찰로 만들었으며, 1286년(충렬왕 12년)에 《삼국유사》의 저자인 일연(一然) 국사가 1,000여 명의 승려를 모아 불법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1839년(헌종 3년) 사명대사의 법손(法孫)인 월파선사(月坡禪師)가 사명대사의 고향인 무안면(武安面)에 그의 충혼을 기리기 위해 세워져 있던 표충사(表忠祠)를 이 절로 옮기면서 절 이름도 표충사라 고치게 되었다. 주요 문화재 및 건물로는 국보 제75호인 청동함은향완(靑銅含銀香垸)을 비롯하여 보물 제467호의 삼층석탑이 있으며, 석등(石燈) ·표충서원(表忠書院) ·대광전(大光殿) 등의 지방문화재와 25동의 건물, 사명대사의 유물 300여 점이 보존되어 있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056771&cid=42840&categoryId=42844 http://www.pyochungsa.or.kr/index1.html http://place.map.daum.net/8129523 표충비각(表忠碑刻) 무안면 무안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비석으로 일명 사명대사비라 부른다. 경남유형문화재 제15호이다. 높이 약 4m, 너비 약 1m, 두께 54.5cm이다. 임진왜란 당시 승병을 이끌어 왜병을 크게 무찌르고 일본에 전쟁포로로 끌려간 조선인 3,000명을 환국시킨 유정(惟政, 泗溟大師)의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옛 표충사(表忠寺) 터, 즉 표충사(表忠祠)의 동쪽인 이곳에 1742년(영조 18년)에 대사의 5대 법손(法孫) 남붕(南鵬)이 경산에서 갖고 온 돌로 건립하였다. 비신(碑身)과 화강암의 비개(碑蓋)를 갖추었고, 경주석재인 빗돌은 까만 대리석이며 좌대석(座臺石)과 이수는 화강암으로 되어 있다. 뒷면에는 휴정(休靜의 행장(行狀)이 새겨져 있고 측면에는 밀양 표충사에 대한 내력, 그리고 기허(驥虛)대사의 비명이 명시되어 있다. 비문의 내용은 영중추부사 이의현이, 글씨는 홍문관 부제학 김진상이 쓰고 판중추부사 유척기가 전서하였다. 이 비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국가적으로 큰 사건이 있을 때를 전후하여 비석면에 땀방울이 맺히기 때문이다. 마치 구슬처럼 흐르는데 이것을 두고 밀양 시민들은 나라와 겨레를 존중하고 근심하는 사명대사의 영검이라 하여 신성시한다. 그래서 ‘땀흘리는 표충비’로 널리 알려져 있다. 때로는 비석의 4면에서 여름날 농부의 이마에서 흐르는 구슬땀처럼 맺혀 몇 시간씩 계속해서 흐르다가 그치기도 하는데, 이상한 것은 글자의 획 안이나 머릿돌, 조대에서는 물기가 전혀 비치지 않는다. 이 신기한 현상을 기후 변화에 따른 외기 현상이나 비석 자체의 결로현상으로 보는 등 과학적인 해명을 하고 있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056764&cid=42840&categoryId=42844 http://place.map.daum.net/10869286
사명대사생가지(四溟大師生家址) 무안면 고라리에 있는 사명대사의 생가지로 경남기념물 제116호이다. 조선 후기의 승려 유정(惟政:사명대사)이 태어난 곳으로 조부 때부터 살았다. 그는 1544년(중종 30)에 진사 임수성(任守成)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13세 때 가출하여 직지사 신묵(信默)에게 가서 승려가 될 때까지 어린시절을 이곳에서 보냈다. 사명대사의 어린시절에 얽힌 많은 일화가 전해오며, 고향으로 돌아올 때 쉬던 바위가 아직도 있다.
사명대사유적기념관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011182&cid=42856&categoryId=42856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056881&cid=42840&categoryId=42844 http://place.map.daum.net/8382264 만어사(萬魚寺) 밀양시 만어산(萬魚山)에 있는 통도사(通度寺)의 말사(末寺)이다. 46년(수로왕 5년)에 가락국 수로왕이 창건하였다는 기록이 삼국유사에 전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고대 불교의 남방 전래설을 뒷받침해주는 전통사찰로 많은 전설과 신비한 현상들을 간직하고 있다 신라시대에는 왕이 불공을 드리는 장소로서 이용되었다고 하며, 1180년(명종 10년)에 중창되었고, 1879년에 중건되었다. 대웅전 ·미륵전 ·삼성각(三聖閣) ·요사채 ·객사(客舍)가 있으며, 보물 제466호로 지정된 3층석탑(보물 제466호)이 있다. 미륵전 밑에는 고기들이 변하여 돌이 되었다는 만어석(萬魚石)이 첩첩이 깔려 있는데, 두드릴 때마다 맑은 소리가 나기 때문에 종석(鐘石)이라고도 한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056770&cid=42840&categoryId=42844 http://place.map.daum.net/14974317 석골사(石骨寺) 산내면 원서리 운문산에 있는 사찰로 통도사의 말사이다. 한때 석굴사(石窟寺) 또는 노전사(老澱寺)라고도 불렀다. 560년(진흥왕 12년) 비허(備虛)가 창건했다고도 하고 773년(혜공왕 9)에 법조(法照)가 창건했다고도 한다. 비허가 작은 암자를 짓고 보양(寶壤)과 서로 왕래하며 수도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하므로, 비허가 절을 창건하고 법조는 중창한 인물로 추정된다. 태조 왕건(王建)이 고려를 건국할 때 경제적인 도움을 많이 주어, 고려 건국 후에는 암자를 9개나 거느릴 정도로 발전하였다. 1592년(조선 선조 25) 임진왜란 때 의병들이 활약하던 곳이었으며, 1753년(영조 11) 함화(含花)가 중창한 뒤 오랫동안 명맥을 이어오다가 1950년에 불에 탔고, 1980년대에 복원하여 오늘에 이른다. 건물로는 대광전과 칠성각·산신각·요사채 2동이 있고, 유물로는 석조아미타삼존불과 절구·석탑 재료 등이 전한다. 이 중 석조아미타삼존불은 대광전에 있으며, 석탑 재료는 기단과 보주 등만 발굴되었다. 북쪽에는 운문산, 동쪽에는 가지산, 서쪽은 억산등이 연봉을 이루어 기암절벽과 깊은 계곡의 경관이매우 아름답다. 이 석골사 바로 아래에는 사철 물이마르지 않는 석골사 폭포와 싱그러운 계곡이 있어 사시사철 관광객과 등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010759&cid=42856&categoryId=42856 http://place.map.daum.net/8267839
작원관지(鵲院關址)
삼랑진읍 검세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건물터로 경남문화재자료 제73호 이다. 영남(嶺南)지방의 동서와 남북을 잇는 요로(要路)의 역원(驛院)인 작원관의 옛터로 까치원터라고도 한다. 작원관은 고려시대부터 왜적의 침공을 방비하던 요새지로 고려 고종(高宗) 때 창건했다. 관원들의 숙박소 기능과 함께, 출입하는 사람과 화물을 검문하는 작원진(鵲院津)이라는 나루터 구실도 하는 등 원(院)·관(關)·진(津)의 역할을 겸했다. 임진왜란 당시 밀양부사 박진(朴晉)이 밀려드는 왜적을 맞아 결사적으로 항전을 펼친 곳이다. 일제강점기에 철도를 부설하면서 다른 곳에 이전·복원했으나 낙동강 대홍수로 유실되었고, 1939년에 밀양군에서 비(碑)만 설치했으며, 1995년 이곳에 작원관지를 복원했다. http://tour.miryang.go.kr/program/tour/tourinfo/out_tourinfo.php?pT_idx=54&sT_part=1&d3=19 http://place.map.daum.net/10742756
수산제 수문(守山提 水門) 하남읍 수산리에 있는 삼한시대의 농경 유적으로 경남기념물 제102호 수산제는 삼한시대 이래 오랜 역사를 지닌 농경 유적으로 벽골제, 의림지와 함께 3대 저수지로 꼽힌다. 벼농사를 위하여 만들어진 관개용저수지로 제방의 길이는 728보(步)이고 둘레가 20여 리이며 면적은 4,468㎡이다. 황토흙으로 된 제방이 1928년까지 수산리에서 양동리에 걸쳐 1,040m 정도 남아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지고 논으로 바뀌었다. 이 제방은 낙동강의 지류인 용진강(龍津江)이 범람해오는 것을 막기 위하여 쌓은 것으로 배수를 위하여 수산리 산524-1번지 부근 자연암반 밑으로 수문을 내었는데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58891&cid=46631&categoryId=46631 http://place.map.daum.net/11641270 http://blog.naver.com/alfdideoa1?Redirect=Log&logNo=110187359342 남전리 지석묘군(南田里 支石墓群) 하남읍 남전리에 있는 고인돌군으로 경남기념물 제48호이다. 지석묘는 한국 선사시대에 해당하는 청동기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무덤으로, 고인돌 또는 돌멘(Dolmen)이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큰 뚜껑돌 밑에 시체를 안치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으며 그 형태에 따라 크게 남방식과 북방식으로 분류된다. 출토된 유물로는 마제석검(磨製石劍:돌칼)·마제석족(磨製石鏃:돌화살촉)·민무늬토기[無文土器] 등이 있으며 당시의 생활상 및 무덤에 넣어 주는 부장품의 종류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또한 이 일대가 한국 청동기시대의 생활 무대였음을 알게 하는 중요한 유적이라고 할 수 있다. 남전리 일대에는 30기의 지석묘가 분포하고 있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33038&cid=46619&categoryId=46619 http://place.map.daum.net/10184838
대법사 신라시대 의상대사에 의해 창건된 후 900년이 지난 어느날 부터 사명대사가 10여년간 머물렀던 곳이다. 열반 후 그 영정을 모신 곳이라 해서 조정에서 표충사(表忠詞)라는 이름을 하사하며 표충비를 세우고 사당을 세웠다가 후에 영정이 단장면의 현 표충사로 모셔지는 바람에 원래의 이름을 뺏기고 말았다. 초창 당시 학 3마리가 날아와 앉았다 해서 백하암(白霞庵)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 사명대사의 위상 덕에 오랜 세월 국가의 관심 속에서 중건을 거듭해 왔느나 국난의 영향과 조선조의 억불숭유 정책 등으로 인해 폐사되었다가 1968년 현 조실 지혜스님이 주지로 부임하면서 시작된 대대적인 중창불사를 통해 오늘날의 사격을 갖게 되었다. http://tour.miryang.go.kr/program/tour/tourinfo/out_tourinfo.php?pT_idx=27&sT_part=1&d3=6 http://place.map.daum.net/10250434
영산정사 http://tour.miryang.go.kr/program/tour/tourinfo/out_tourinfo.php?pT_idx=28&sT_part=1&d3=7 http://place.map.daum.net/8009913
예림서원 거연정(居然亭, 경남 유형문화재 제433호)은 조선중기 화림재 전시서(全時敍)가 이 곳에 은거하여 지내면서 억새로 만든 정자를 그의 7대손인 전재학 등이 1872년 재건한 것으로, 거연(居然)은 주자의 시 정사잡영(精舍雜詠)12수 중에 ‘거연아천석(居然我泉石)’에서 딴 것으로 물 과 돌이 어울린 자연에 편안하게 사는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거연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중층 누각 건물이 주변의 기묘한 모양의 화강암 반석, 흐르는 계곡 물 등과 조화를 이루는 등 동천경관을 대표할 만한 명승지이다. 임헌회(任憲晦1811-1876)는 “영남의 명승 중에서 안의삼동(安義三洞)이 가장 빼어나고, 그 중에서도 화림동(花林洞)이 최고이고, 화림동의 명승 중에서 거연정(居然亭)이 단연 으뜸”이라고 거연정 기문에 적고 있다. http://place.map.daum.net/8006285
혜산서원 산외면 다죽리 죽서(竹西)마을에 세거(世居)하는 일직(一直) 손씨(孫氏)의 5현(賢)을 받드는 서원으로 본래는 1753년(영조 29)에 창건한 손조서(孫肇瑞)의 서산서원(西山書院)이 있던 자리이다. 손조서는 조선 초기 단종의 왕위를 찬탈(簒奪)한 세조의 횡포에 분개하여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충의와 탁절(卓節)로서 두문불출(杜門不出)하며 오직 도학에만 전념한 학자인데 후일에 사림(士林)들의 추앙을 받아 이곳에 서원을 세웠으나 1868년(고종 5) 서원철폐령(書院撤廢令)으로 훼철(毁撤)된 후 그 집을 “서산고택(西山古宅)” 또는 철운재(徹雲齋)로 편액(扁額) 하였다. 1971년에 서원의 경역을 확장 정비하고 각지에 분산 봉안되었던 일직 손씨 명현 다섯 분의 서원(書院)인 정평공 손홍량(靖平公 孫洪亮)의 안동 타양서원(陀陽書院), 격재 손조서(格齋 孫肇瑞)의 밀양 서산서원(西山書院), 모당 손처눌(慕堂 孫處訥)의 대구 청호서원(靑湖書院), 문탄 손린(聞灘 孫燐)의 대구 봉산서원(鳳山書院), 윤암 손우남(綸菴 孫宇男)의 영천 입암서원(立巖書院)등을 후손들의 세거지인 이곳으로 옮겨복설(復設)하고 혜산서원(惠山書院)으로 중건한 것이다. http://place.map.daum.net/8162046
칠탄서원 임진왜란 때 밀양 석동산(石洞山)에서 의병을 일으켜 충위(忠義)를 펼친 선조 때 울산판관(蔚山判官)과 영천군수(永川郡守)를 지낸 오한 손기양(孫起陽)을 봉안(奉安)하던 사당(祠堂)이었다.1844년(헌종 10) 고을 사림(士林)들의 주장으로 오한(聱漢)이 만년을 보내던 별업(別嶪) 경내에다 청절사(淸節祠)를 세웠다가 그 후 칠탄서원으로 편액(扁額)하였는데 이때 봉안문(奉安文)과 상향축문(常享祝文)은 정재 유치명(定齋 柳致明)이 지었다. 1868년(고종 5) 서원철폐령에 따라 훼철(毁撤)되고 후손들에 의하여 서원을 정(亭)으로 편액하였으며, 1914년에 청절사가 있던 자리에 <칠탄서원유허비(七灘書院遺墟碑)>를 세워 기념하고 있다. http://place.map.daum.net/25026807
표충서원 표충서원(表忠書院)은 본래 표충사(表忠祠)라고 불렀는데, 임진왜란 때 의승장(義僧將)으로서 구국(救國)의 대공(大功)을 세운 서산(西山), 송운(松雲), 기허(騎虛) 등 대사(大師)를 향사(享祀)하는 곳으로서 본래는 1610년(광해군 2)에 창건하였다. 1669년(현종 10)에는 조정에서 사액하였다. 무안면 중산리 웅동(熊洞 : 현, 대법사(大法寺)자리)에 있던 것을 1839년(헌종 5)정월에 송운대사(松雲大師)의 8세(世) 법손(法孫)인 월파당(月坡堂) 천유(天有)가 당시 영정사(靈井寺 : 현재 표충사) 주지(住持)로 있을 때 밀양부사(密陽府使) 심의복(沈宜復)과 그의 아들인 순상(巡相) 심경택(沈敬澤)의 힘을 빌리고 예조(禮曹)의 승인을 얻어, 현 위치인 단장면 구천리 영정사(靈井寺) 경내로 옮기고 편액을 표충서원(表忠書院)이라 고쳐 걸고, 절의 이름도 표충사(表忠寺)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1871년(고종 8년)에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에 의한 서원철폐령(書院撤廢令)에 따라 이 서원도 훼철(毁撤) 되었다가 1883년(고종 20년) 사림(士林)의 요청으로 복원(復院) 되었으며 근년에 현재의 자리로 옮겨지었다. http://place.map.daum.net/8123751 남계서원 청도면 두곡리 쌍수당(雙修堂) 경내에 있는 서원으로 고려 중기에 평장사(平章事)를 지낸 영헌공(英憲公) 김지대(金之岱)의 충효쌍수(忠孝雙修)의 위업을 숭상하기 위해 1704년(숙종 30)에 청도고을 사림(士林)의 중론으로 창건하였다. 처음 사당의 이름을 충효사(忠孝祠)라 하였고 강당을 쌍수당이라 하였는데, 이는 김지대가 그 아버지를 대신하여 종군(從軍)하면서 지은 시(詩)에 “국환신지환친우자소우대친여보국충효가쌍수(國患臣之患 親憂子所憂 代親如報國 忠孝可雙修)”라 한데 서 따온 이름이다. 1868년(고종 5)에 서원철폐령에 따라 남계서원도 훼철(毁撤)되어 폐허(廢墟)가 되었으나 그 후 자손들에 의해서 강당을 보수 또는 중창하면서 지내오다가 1907년(순종 1)에 낡은 강당을 철거하고 새로 지었으며, 1954년에도 후손들의 출연(出捐)으로 재차 강당을 철거하고 지금과 같이 쌍수당으로 확장 중건(重建) 하였다. http://place.map.daum.net/11019332 반계정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95093&ref=y&cid=40942&categoryId=33682
박연정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95150&ref=y&cid=40942&categoryId=33383 http://place.map.daum.net/7890881
남산 봉수대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213386&ref=y&cid=40942&categoryId=33383
다죽리 손씨고가(茶竹里 孫氏古家) 산외면 다죽리에 있는 손병사(孫兵使) 고택(故宅)으로 경남문화재자료 제111호이다. 조선시대 영조 연간에 병마절도사 손진민(孫鎭民)이 창건하였다고 하며 아들 상룡(相龍)이 택지를 확장하고 건물을 증축하여 지금의 주택이 조성되었다. 1910년 일제의 압박을 받은 후손 손기학(孫基學)이 이 집을 팔았는데 1960년대 초 손기혁이 다시 사들여 현재의 소유자가 되었다. 영남지방 상류고가의 특징을 보이며 안채와 사랑채로 구분하여 담장과 중문으로 경계를 지었다. 안채는 넓은 안마당을 중심으로 북쪽에 남향으로 정침(正寢)이 있고 좌우에 곳간과 행랑방을 둔 별채가 있다. 정침 맞은편에 별동(別棟)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 정침은 7칸 2열의 팔작지붕으로 고격(古格)이 풍기는 양반가옥으로 가운데 2칸 대청과 2칸 큰방이 있다. 왼쪽에 부엌이, 오른쪽에 건넌방이 있다. 부엌은 기명대(器皿臺), 찬간 등의 특이한 구조로 되어 있다. 안채 오른쪽에 자리잡은 사랑채는 북쪽으로 팔작지붕 4칸 2열 정당(正堂)이 남향으로 앉았고 건넌편 입구에 행랑방이 좌우에 붙은 대문채가 있고 사랑 마당은 수석이 조화를 이룬 정원이다. 집터가 죽서(竹西) 제일의 명당이라는 평판이 있어서인지 손진민 부자 외에도 손수원(孫綏遠)·손량석(孫亮錫)·손규헌(孫珪憲) 등 조선 후기에 이르기까지 장수를 배출한 명가였다. http://place.map.daum.net/12772084
단장면 허씨고가(丹場面 許氏古家) 단장면 단장리에 있는 분성허씨(盆城許氏)의 제택(第宅)으로 경남문화재자료 제110호이다. 1890년(고종 27)경 허채(許埰:1859-1935)가 김해에서 이거하여 지은 목조 기와집으로 허채의 아들 허석, 손자 허섭(許涉) 등 근대 유학자를 배출한 집이다. 대곡산(大谷山)을 배경으로 경주산(競珠山)을 바라보도록 지은 서향집으로 내정에 정침(正寢)·별당·내고(內庫)·중문사(中門舍)가 있고 외정에 중사랑·큰사랑·창고·대문 겸 행랑채와 사당 공간으로 구성된 큰 제택이었다. 지금은 정침·중사랑·고사(庫舍)와 사당 등 4동만 남아 있다. 정침은 팔작지붕에 정면 6칸, 측면 2칸이며 중사랑은 정면 5칸, 측면 2칸, 가묘는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우진각지붕이다. 창고는 정면 3칸, 측면 2칸에 맞배지붕이다. http://place.map.daum.net/12772087
청운리 안씨고가(靑雲里 安氏古家) 부북면 청운리에 있는 광주안씨 고가로 조선 후기의 가옥으로 경남문화재자료 제113호이다. 1840년대에 안붕원(安鵬遠)이 부북면 전사포리에서 이곳으로 전거한 뒤 1870년대에 아들 종문(鍾文)이 대문과 정침(正寢), 별채 2동을 창건하였다. 그뒤 1890년경에 종문의 아들 동수(東洙)가 사랑채·창고·바깥대문 등을 지었다. 정침은 내정(內庭) 중앙에 남향으로 지어져 가운데 2칸 마루와 좌우에 1칸씩의 방이 딸려 있고 동쪽에 부엌이 있는 5칸 2열의 팔작형 골기와지붕으로 각주 위에 들보와 도리를 걸쳤다. 사랑채는 5칸 2열의 팔작지붕으로 오른쪽에 대청, 왼쪽에 방이 있다. 마루 뒤쪽에 판자벽을 두고 창문과 툇마루를 두어 내정과 연결하였다. 내정을 중심으로 내당과 좌우 별채, 사랑채, 좌측 별채에 연접한 중문채 등이 ㅁ자집으로 배치되어 있다. 외정에는 대문채와 사랑채 사이에 조산(造山)을 중심으로 정원을 꾸몄다. 이 고택을 중심으로 자손들이 분가해 와가(瓦家)의 마을을 이루고 있는데 가옥 사이에는 격장(隔墻)과 협문(夾門)을 설치하여 출입과 왕래가 편하게 꾸민 것이 특징이다. http://place.map.daum.net/12772161 퇴로리 여주이씨고가(退老里 李氏古家) 부북면 퇴로리에 있는 여주이씨(驪州李氏)의 종택(宗宅)으로 경남문화재자료 제112호이다. 1890년 이익구(李翊九)가 건립한 이래 5대에 걸쳐 100년이 넘도록 보존된 전통적인 지방 고가이다. 기와를 얹은 토석장(土石墻)으로 구획된 넓은 대지에 남향으로 지은 목조 와가로 지금은 정침(正寢)과 중사랑(中舍廊)·별채만 남아 있다. 정침은 정면 6칸, 측면 2칸, 홑처마에 팔작지붕으로 <청덕고가(淸德古家)>라는 당호가 있다. 중사랑은 정면 5칸, 측면 2칸, 우진각지붕집으로, 이익구의 아들 이병희(李炳熹)가 거처하던 곳이다. 별채는 내당(內堂)과 외당(外堂)이 있는데 내당은 정면 8칸, 측면 1칸이며 외당은 자제들의 독서실로 썼다. 동서 익랑은 맞배지붕으로 정면 4칸, 측면 1칸이며 후원(後園)에는 가묘(家廟)가 있고 정원이 꾸며져 있다. http://place.map.daum.net/12772175
미리벌민속박물관 http://tour.miryang.go.kr/program/tour/tourinfo/out_tourinfo.php?pT_idx=38&sT_part=2&d3=2 http://place.map.daum.net/7882782
한천박물관 http://tour.miryang.go.kr/program/tour/tourinfo/out_tourinfo.php?pT_idx=83&sT_part=2&d3=6 http://place.map.daum.net/718941861
얼음골축음기소리박물관 http://tour.miryang.go.kr/program/tour/tourinfo/out_tourinfo.php?pT_idx=84&sT_part=2&d3=7 http://place.map.daum.net/657260471
밀양연극촌 http://tour.miryang.go.kr/sub/04_03_02.php http://place.map.daum.net/15736911
밀양영화학교 http://tour.miryang.go.kr/sub/04_03_03.php http://place.map.daum.net/7880973
경상남도민물고기전시관
http://tour.miryang.go.kr/program/tour/tourinfo/out_tourinfo.php?pT_idx=48&sT_part=4&d3=2 http://place.map.daum.net/11480574
트윈터널 http://place.map.daum.net/1556398305
밀양꽃새미마을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031109&cid=42856&categoryId=42856 http://place.map.daum.net/8384897
밀양연꽃단지 http://tour.miryang.go.kr/program/tour/tourinfo/out_tourinfo.php?pT_idx=46&sT_part=4&d3=1 http://place.map.daum.net/11521290 연꽃세상 연화도 http://tour.miryang.go.kr/program/tour/tourinfo/out_tourinfo.php?pT_idx=47&sT_part=4&d3=4 http://place.map.daum.net/14581817 영화드라마촬영지 http://tour.miryang.go.kr/program/tour/tourinfo/lst_tourinfo.php?sT_part=3 http://place.map.daum.net/10401314
축제와 민속놀이 http://tour.miryang.go.kr/sub/04_02.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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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밀양 朴가의 흔적도 좀 찾아 주시지 않으시고요.ㅎㅎㅎ
에고~~어사 박문수 집안을 놓쳤네요 ㅎㅎ 당연히~~
와우! 정말 대단한 자료입니다...
고향이지만 이렇게 세세히 알기는 쉽지 않은데...
고마움 전합니다.
앞으로 더 보충해야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