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10장32절-52절
눈으로 사람들은 세상을 봅니다. 사람들을 봅니다. 사물을 봅니다. 눈으로 하늘을 보고 오늘 비가 올지, 땅을 보고 땅에 씨를 뿌릴 때가 되었는지 살핍니다. 추운 겨울을 지내고 피어나는 나무의 새움을 눈으로 확인합니다. 오늘 내가 걸어가는 한 발자욱 앞을 눈으로 헤아립니다. 모든 사물과 사건, 사람 그리고 세상이 눈에 담깁니다. 그러나 눈으로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너무 작은 것은 우리 눈으로 볼수 없습니다. 또한 우리 인생에는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존재합니다. 계절의 변화는 눈에 띄게 달라지지만 불어오는 봄 바람의 방향은 눈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마음도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어머니의 사랑도, 고된 삶의 깊이도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사실 우리 눈이 사물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은 빛이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아주 희미한 불빛이라도 있어야지 그것 마저 사라져 버리면, 칠흑같은 어둠속에서는 눈을 뜨고 있어도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 빛이 없는 어둠속에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당연하듯이 모든 것을 눈으로 바라 보지만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도 무수히 많이 존재하고 빛이 없는 공간에서는 보이던 것 마저 전혀 보이지 않게 됩니다.
눈 먼 사람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33-34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겠고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
이제 곧 당하시게 될 십자가의 길을 바라보시며 이어지는 죽음과 부활의 길을 이미 알고 계셨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미 두차례 그 길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무도 심각하고 중요한 얘기였기 때문에 세번째 또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에게는 십자가의 길, 죽음의 길이 보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따랐던 두 제자, 형제지간이었던 야고보와 요한이 이렇게 예수님에게 반응합니다.
37 "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모셨던 야고보와 요한, 그리고 심지어 그의 어머니까지도(마20:20) 예수님의 십자가 길은 전혀 안중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왕좌에 앉을 때에 자신들을 그 좌우에 앉게 해달라는 요청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그 길이 영광의 길, 권세의 길, 출세의 길로 보였습니다. 그들이 눈이 없어서도 아니었습니다. 시력이 약해서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두 눈을 가지고 있지만 전혀 보지 못했습니다. 눈을 뜨고 있었지만 보지 못하는 사람은 두사람만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두사람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41절에 의하면 두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다른 열제자가 화를 내었다라고 증언합니다. 두 사람이 먼저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 했다는데 화가 난 나머지 10명의 제자들도 한사람도 예외없이 예수님이 바라보시는 십자가 죽음의 길을 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예수가 가셨던 그 길을 영광과 권세의 길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공과 권력의 길로 보고 있습니다. 출세의 길로 봅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눈을 뜨고 있으나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눈은 분명히 뜨고 있는데 캄캄한 암흑에 묻혀 십자가의 길 , 죽음과 희생의 길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욕심이 우리의 눈을 가렸습니다. 욕망이 우리의 눈을 가렸습니다. 출세와 성공이 우리 눈을 가렸습니다. 유행과 세상의 흐름이 우리의 눈을 멀게 했습니다. 우리는 이 욕망의 세상속에서 눈 먼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욕망과 욕심이 우리의 눈을 가렸습니다.
눈을 뜨고 있던 12명의 제자들이 모두 십자가의 길을 출세의 길로 바라보고 있는 사이, 눈을 감고 있는 아니 눈을 뜨지 못하는 , 장애 때문에 보지 못하고 살아가던 사람, 그 장애 때문에 구걸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거지 바디매오가 주님께 나아옵니다. 시각 장애인인 그가 그를 부르시는 예수의 음성앞에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옵니다. 앞 못보는 그가 그이 유일한 재산인 겉옷도 팽겨쳐두고 예수님께 달려 갑니다. 마치 눈뜬 12명의 제자들에게 시위하듯이 앞을 못보는 그가, 일부러 이름까지 밝혀놓은 바디메오가, 눈을 뜨고도 보지 못하는 제자들을 지나 예수님께 나아옵니다. 그리고 52절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시각장애자요, 걸인이였던 그는 이미 믿음으로 예수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보지 못하다가 보게 된 자가 아니라, 이미 믿음으로 예수를 보고 있었습니다. 눈은 감겨 있었으나 이미 믿음의 눈을 뜨고 있던 그를 예수님이 육신의 장애까지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는 이미 믿음으로 예수를 보았고 육신의 눈으로도 그 예수를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믿음으로 바라보았던 십자가 예수를 따라 그는 참된 제자의 길을 걸어 가게 되었습니다.
십자가 죽음의 길을 바라보며 앞서 가시는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어쩌면 우리는 세상과 욕망, 거짓과 죄악으로 채색된 우리의 두 눈을 질끈 감아야 할 지 모릅니다. 권세의 자리, 권력의 자리, 만족과 쾌락의 자리에 앉으려고 발버둥치며 살아가는 컬러풀한 시대상속에서 섬김과 희생의 삶, 자기 부인과 자기절제의 길을 걸으려면 우리는 이 욕망의 세상에 대해 용감하게 두 눈을 감아야 합니다. 욕망의 허상에, 성공의 환상에 취하기 전에 질끈 눈을 감아야 합니다. 그제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눈을 감아야 비로소 중요한 것들이 우리 눈에 들어옵니다. 죄악에 대하여, 욕망과 거짓에 대하여, 단호하게 눈을 감고 있어야 비로소 주님의 길이 우리에게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마치 바디매오에게 들렸던 예수님의 음성처럼, 예수님의 길이 우리 눈에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쾌락과 물질의 눈을 감아야, 인정과 쾌락의 눈을 감아야 비로소 우리를 섬기기 위하여 종으로 오신 예수 십자가의 길이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주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 죽음의 길이 그제서야 우리 눈에 인식되기 시작할 것입니다. 오늘 하루, 욕심으로 충혈된 우리의 두 눈을 감으십시다. 그제서야 우리를 향한 주님의 십자가의 길, 죽음의 길을 분명하게 직시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이라는 도화지위에 욕망을 투영하는 일을 멈추고 조용히 우리의 두 눈을 감을 때 그제서야 주님이 걸으신 십자가가 내 삶위에 밑그림으로 그려질 것입니다.
삼일만에 살아나리라
예수를 따라 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에게 고난과 역경이 있을 것입니다. 손가락질과 멸시 천대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걸어야할 너무도 분명한 길이 바로 예수님이 걸으셨던 길입니다. 모욕과 고생, 어려움과 역경이 있을지라도 예수를 따르려는 참된 제자들을 위해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34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십자가 길을 걸으신 주님에게는 부활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곧 주를 따르는 제자의 길에도 부활의 영광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삼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주의 길을 걷는 주의 백성들, 곧 오늘 세상속에서 십자가의 길을 걸으려는 우리들에게 부활의 영광을 주실 것입니다. 오늘 묵묵히 자기가 처한 자리에서 십자가 죽음의 길, 섬김과 희생의 길을 걷고 있는 주의 백성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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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하나님 아버지, 이 시대속에서 주님을 보지 못하게 하는 모든 거짓된 것을 내려놓고 참된 예수의 길을 걷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욕망과 욕심으로 눈 먼 우리들의 어둠을 걷어주셔서 참 예수의 길을 따르게 하옵소서.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자신을 주시려고 십자가로 향하신 예수를 따라 자기 부인, 자기희생, 섬김의 길을 걷게 하시고 이로인해 생기는 고난과 역경, 어려움도 묵묵히 견디게 하여주옵소서. 그리하여 우리 가운데 임하시는 부활의 예수와 함께 동행하는 임마누엘의 하루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위한 질문
1. 예수님이 예고하신 십자가죽음은 진정 누구를 위한 죽음입니까?
2. 오늘 우리가 예수님에게 요청하는 간구제목은 무엇입니까?
3. 세상속의 크리스찬 리더가 갖춰야할 덕목은 무엇입니까? (43-44절)
4. 참된 예수의 길을 보지 못하게 하는 내면의 장애물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