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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역사 스크랩 <한국교회사32> 염산교회 77인의 순교자와 기념탑 이야기
푸른세상 추천 0 조회 193 16.01.09 05:3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32. 염산교회 77인의 순교자와 기념탑 이야기

 

▲ 77인 순교기념비

 

 6월이 오면 나라를 지키다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들을 떠올리게 된다. 특히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는 일제강점기, 그리고 공산당과 맞서서 신앙을 지키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희생당한 많은 순교자들이 기억된다. 가슴 아픈 사건들이 너무 많아서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이다. 그 중에서도 오늘은 전라남도 영광군 염산면 염산교회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자 한다.

일제강점기였던 1939년에 세워진 염산교회는 전라남도 영광군 염산면 일대에서 복음의 등대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제 치하에서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예배당의 종을 빼앗기는 등 수난을 겪었으며 해방 후에는 6,25 전쟁을 겪으며 대표적인 순교지로 꼽혀오고 있다. 그런데 염산면은 야월교회와 염산교회 순교자들의 이야기로 듣는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바로 이 염산교회가 인민군의 급습으로 1950년 7월 23일 수많은 희생자를 낸 비극의 현장인 것이다.

 북한 공산당은 6.25 전쟁을 며칠 앞두고 야심한 밤중에 서해안으로 급습해 들어와서 지방의 고정 간첩들과 합세해 비극의 현장들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리고는 전쟁이 발발하자 교회가 미국의 앞잡이라고 매도하면서 먼저 폐쇄하러 달려들었다. 당시 염산교회에는 독립군 출신의 김방호 목사가 담임하고 있었다. 6.25 남침이후 영광일대가 인민군의 손에 넘어가고, 교회당이 인민군의 사무실로 징발되었다. 염산교회 김방호 목사는 교우들이 배를 준비해 놓고 우선 피신하라고 강권하였으나 사랑하는 양떼만 두고 목자가 피신 할 수 없다며 남아 초대교회 카타콤 같이 숨어 비밀리에 예배를 드리면서 믿음을 지켜나갔다.

그러던 중 인천상륙 작전에 성공한 유엔군이 9.28 서울을 탈환하고 중앙청에 태극기를 꽂았다는 소식이 염산면에도 전해졌고, 그래서 염산교회 청년회가 앞장서서 국군과 UN군을 환영하는 대대적인 환영대회를 열었다. 이때 미처 후퇴하지 못한 인민군과 좌익세력이 이에 대한 보복을 자행하면서 엄청난 살육이 벌어지게 되었다. 그들은 10월 7일 환영대회에 앞장섰던 기삼도 등 청년들을 처형하고, 예배당에 불을 질렀지만 이것은 이후 벌어질 대참극의 서막에 불과했다. 염산교회에 휘몰아친 참극은 바로 다음날부터 벌어졌는데 교인들은 가족단위로 학살을 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때 허 상 장로, 염산교회 제3대 교역자 김방호 목사 등도 가족과 함께 목숨을 잃고 말았다. 잔악무도한 공산당은 염산교회의 교인 3분의 2에 달하는 77명을 바닷물이 들어오는 새벽까지 줄줄이 엮어 부두가로 끌고 가서 수장시켰다. 손을 뒤로 묶인 채 바닷가 부두가로 끌려가던 교인들은 목에 돌을 매달은 채 바다를 향해 던져지면서도 “주여! 이 영혼을 받으소서. 저들의 잔악무도함을 불쌍히 여기소서.”하고 기도하며 죽는 순간까지 믿음을 잃지 않고 순교의 길을 걸어갔다고 한다.

 

 

 

▲ 염산교회 기독교순교체험관

 

염산교회의 살아남은 성도들은 교회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1951년 2월 24일 다시 모여 숨겨 놓았던 성경책과 찬송가를 꺼내 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1951년 4월 10일 홀로 살아남은 김방호 목사의 3남 김 익 전도사가 염산교회 제 4대 교역자로 부임하면서 교회의 명맥이 다시 이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김 익 전도사는 그 지역에 살며 학살에 가담했던 좌익분자들의 가족을 찾아다니며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의 마음을 전하고 그들을 포용하였다. 이처럼 폐허가 된 터전에서 다시 일어선 염산교회는 예배당을 다시 세우고,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돌보며, 성경구락부를 개설하여 교육 사업에 힘쓰는 등 재건에 매진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함 같이 염산교회 77인 순교자의 피는 결코 헛되지 않아 오늘에 와서 풍성한 열매를 맺고 있다. 1997년 영광군 기독교 순교자기념사업 추진위원회가 조직되면서 1998년 순교자공원을 조성하고 순교자기념비에는 77인의 명단을 새겨 넣었다. 그리고 온 교회와 영광군일대의 유지들이 참석한 가운데 숙연한 분위기 속에 제막식이 거행되었다. 한편 2009년에는 <염산교회 기독교순교체험관>을 350평 규모로 건립하였다. 여기에는 집회실 ? 전시실 ? 시청각실 ? 전망대 등 다양한 시설들이 갖춰졌으며 전시실에는 400여점의 순교역사자료 및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이 밖에도 숙소와 식당, 순교기념공원 조성, 자료전시관 개관, <77인의 순교사(殉敎史)> 발간, 영상물 DVD 제작 등 70주년을 기념하는 큼직큼직한 사업들을 이룩하였다.

한국교회 부흥 성장의 이면에는 순교자들의 희생의 피가 서려 있다. 6.25 한국전쟁 63돌을 맞이하며 염산교회 77명, 순교자들의 희생과 순교신앙을 돌아본다.

-소재지: 전남 영광군 염산면 봉남리 191 염산교회 (담임 김태균 목사)

 - 글 : 진흥홀리투어(주),한국기독교역사문화관 관장 박경진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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