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좋은 데로 가시네요.”
“네?”
“발리로 간다면서요?”
“발리가 아니라 말리에 가요.”
“아, 소말리아요?”
“소말리아가 아니라 서아프리카 말리예요.”
“어머, 세상에 그런 나라도 있어요?”
- 한비야와 압두라마.
서아프리카 말리를 아시나요?
그렇다. 세상에는 말리라는 나라가 있다. 지난 달 한국 국가 대표팀과의 축구 경기 덕분에 반짝 관심을 끌긴 했지만 말리는 우리에게 여전히 생소한 나라다. 하지만 사하라 사막 아래에 위치한 이 나라는 13세기부터 17세기까지 400년 이상 수많은 속국을 거느리고 이 지역을 다스리던 강력한 이슬람제국이었다.
사막을 관통하는 낙타 무역상의 독점 소금무역과 해안지방에서 캐내는 막대한 금 덕분에 만사 무사라는 황제는 인류역사상 가장 부유했던 사람으로 꼽히기도 한다. 얼마나 금이 많았냐 하면 만사 무사가 사우디아라비아로 성지순례를 오가며 쓴 금이 무려 2톤, 이 금을 나르는 낙타만 1백 마리였다는데 이 때문에 이집트를 비롯한 그 길에 걸쳐있던 나라들의 금값이 뚝 떨어져 수십 년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시달렸다는 얘기가 전해 내려온다.
이 제국의 창시자는 순디아타 케이타인데 지금도 말리에서는 ‘케이타’라는 성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내전이 끝나고 얼마 전 뽑힌 현 말리 대통령 이름도 이브라함 케이타인데 최근 있었던 취임사에서 자신이 말리제국의 직계후손이라고 힘주어 말할 정도다.
- 아프리카 말리
거기서부터 본격적인 사막여행이 시작되는데 그 옛날부터 사막을 누비며 장사를 하던 전설의 캐러번들과 낙타로 사막횡단을 했다는 프랑스 여행자의 얘기를 들었을 때는 침을 꼴깍 삼키며 언젠가는 꼭 가봐야지 했던 곳이다.
- 니제르강.
사막을 누비며 장사했던 캐러번들의 황금 루트가 내전 현장으로 돌변하다니
수십 년간 잊고 있었던 말리에 지난달 여행자가 아닌 구호팀장으로 오게 되었다. 인구 약 1천 5백만 명인 이 나라에 전쟁이 났기 때문이다. 작년 4월, 분리 독립을 요구하는 북쪽 반군이 외부 이슬람세력과 힘을 합해 정부군과 싸운지 불과 몇 달 만에 북쪽지방을 완전히 장악해버렸다. 이들이 곧바로 장악한 지역에 ‘샤리아’라는 강력한 이슬람법을 적용하여 여자들은 모두 베일을 써야 하고 성인 남자들에게는 술과 담배를, 젊은이들에게는 음악과 스포츠를 엄격히 금지시켰다. 이를 어길 시에는 채찍으로 때리는 건 물론 손발을 자르고 돌로 쳐서 죽이는 공개 처형도 공공연히 실시되었다.
- 싼 난민촌. 구호팀장 한비야는 난민들을 대상의 희망의 구호활동을 펼치고 있다.
북쪽 주민들은 전쟁과 전쟁만큼 무서운 샤리아를 피해 남쪽으로 혹은 옆 나라로 피신했다. 다행히 올 초, 말리정부의 요청으로 개입한 프랑스군의 맹활약과 얼마 전 성공적으로 끝난 대통령 선거 덕분으로 빠르게 안정을 되찾는 중이다.
내가 속한 단체는 내전으로 발생한 50만 명의 난민 중 국내 피란민 35만여 명을 말리 정부, UN, 적십자, 그리고 다른 국제 NGO들과 함께 식량, 피란처, 생필품 등을 지원하며 돕고 있다. 나는 그 중에서 다른 국제기구들과 각자의 역할, 활동지역, 분야 등을 조정하고 협력하는 일과 우리 단체의 국내 피란민 관련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우리 지원이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제대로 가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무작위로, 불시에 현장 방문하는 것도 내 일 중에 하나다.
반군 장악으로 쫓겨난 말리인 피란촌서 희망담은 구호활동
오늘 방문했던 집 사정도 딱하고 안타깝기 짝이 없다. 이번 내전 중에 아들을 잃은 할머니가 반군들이 마을에 불을 지르는 것을 보고는 그 즉시 손주 3명과 함께 이틀간 배와 트럭을 타고 먼 친척이 있는 남쪽도시 싼으로 피란을 나왔단다. 값나갈만한 집안 살림을 대충 감춰놓고 다음날 바로 뒤따라오겠다던 며느리는 피란길 행방불명되어 지금까지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른단다.
그렇게 싼으로 피란온 지 벌써 일 년. 고향에서 도망치듯 몸만 빠져나왔기 때문에 처음 몇 달은 할머니가 지니고 있던 금붙이를 팔아 생활했고 조금 지나서는 먼 친척이 식량을 보태주었지만 그 친척도 시장에서 남의 수레를 끌어주며 근근이 먹고사는 형편이라 더 이상 도움을 받을 수가 없었단다. 그래서 할머니는 남의 집 빨래를 해주고 음식을 얻어오고 14살, 10살, 8살 된 손주들은 남의 농사일을 거들어 돈을 벌어야한단다. 아이들이 해 뜰 때부터 해질 때까지 하루 종일 땡볕에서 일하고 받는 돈이 200세파, 우리 돈으로 400원, 옥수수 서 너개 혹은 콜라 한병을 살수 있는 돈이다. 그나마 반나절만 일하는 날에는 겨우 200원이다. 지금 사는 집은 가축 축사였던 곳을 슬레이트로 지붕만 겨우 얹은 단칸방인데 월세가 우리 돈으로 무려 1만 원이니 하루 400원 벌어서는 도저히 먹고살 수가 없는 거다.
8살짜리 압두라마, 아버지가 죽고 엄마가 행방불명된지도 모른 채 연신 생글생글
작년까지 엄마 아빠의 사랑을 듬뿍 받고 살았을 멀쩡한 집안의 아들들은 비록 지금 가축 축사 옆에서 이틀에 한 끼를 먹으며 근근히 살고 있지만 하나같이 잘 생기고 귀티가 줄줄 흐른다.
- 압두라마의 가족.
사춘기 소년의 쑥스러움을 타는 14살짜리 큰 손주 우막은 농사일을 하고 오면 온몸이 쑤시고 거머리도 잔뜩 붙어있어 너무 힘들지만 지금으로선 이 외에 돈 벌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이 일이라도 매일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반면 얼굴 가득 장난기가 흐르는 10살 알라우는 자기 또래 동네 친구들은 힘든 농사 일 대신 가게 앞이나 장 서는 날 시장에서 구걸하는데 자기보다 훨씬 많이 번다며 자기도 그걸 하고 싶은데 형이 못하게 한다고 투덜댔다. 8살짜리 막내 압두라마는 아버지가 죽고 엄마가 행방불명 된 게 무슨 의미인지도 모른 체 연신 생글생글 웃으며 응석받이 막내 특유의 붙임성으로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고향에서 학교에 다닐 때는 공부도 잘했다는데 그러고 보니 내 옆에서 작대기를 가지고 땅에다 뭔가를 계속 쓰면서 논다. 할머니는 저렇게 공부하기 좋아하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싶지만 교복이랑 공책 등을 사는 건 엄두도 못낼 일이라며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말라리아 감염돼 온몸이 난로처럼 달아올라도 진료비 1000원 없어 고통당해
그러나 지금 아이들에게 학교는 문제가 아니었다. 둘째 알라우와 막내 압두라마의 온몸이 난로처럼 뜨거웠다. 둘 다 하루 종일 토하고 춥다고 했단다. 말라리아에 걸린 게 틀림없다. 가축들과 한 울타리에서 살고 더러운 우물물을 먹으며 모기장도 없이 지내고 있으니 말라리아에 걸리기 딱 좋은 조건이다. 말라리아가 죽을병은 아니지만 이미 영양상태가 불량한 이 아이들에게는 치명적이다. 빨리 피검사를 하고 약을 먹어야 하지만 도저히 진료비 1천 원과 약값 8백 원을 낼 수 있는 형편이 아닌 거다.
- 한비야와 압두라마. 한비야는 이 아름다운 소년에게 강력한 희망을 전파하는 중이다.
아이들을 이대로 놔둘 수는 없는 일. 하필 그때가 토요일 늦은 오후라 작은 도시의 진료소는 이미 문을 닫은 후였다. 급한 김에 전날 방문했던 시골 보건소 소장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 얘기를 하고는 사무실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그 진료소로 데리고 갔다.
둘째는 차 안에서 무슨 나들이나 나가는 양 고열로 빨개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발까지 구르며 좋아했지만 막내는 힘이 없는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막내 압두라마를 꼭 안아 주었다. 막내의 조그만 몸은 펄펄 끓어 몹시 뜨거웠다. 허름한 티셔츠에서는 쉰내가 진동을 한다. 얼핏 본 앙상한 두 다리에는 군데군데 진물이 흐르는 상처가 나있다. 내가 어디를 잘못 만졌는지 아, 하며 짧게 비명을 지른다. 다음 순간 막내의 그 큰 눈에 눈물이 차 올랐다.
목동에게 양 냄새가 나듯 내 몸에서도 난민들과 같은 땀과 눈물과 고통의 냄새가 진동해야
“아, 미안해, 압두라마.”
아이는 내 표정을 읽고는 눈에 눈물방울을 매단 채 씩 웃어주었다.
그렇다. 꼬마 난민 압두라마에게는 땀 냄새가 난다, 눈물 냄새, 고통과 신음의 냄새가 난다. 말리의 35만 명 국내난민, 아니 세상의 모든 난민에게는 이런 냄새가 난다. 그 냄새는 전혀 향기롭지 않다. 코를 막으며 얼굴을 찡그리게도 하고 역겨워서 그 자리를 떠나고 싶게도 한다. 그러나 나는 코를 막지도, 현장을 떠나지도 않을 거다. 구호현장 요원들은 이들의 냄새를 잘 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 아예 이 냄새가 몸에 짙게 배어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진정한 프로는 자기가 뜨겁게 몰두하고 있는 일의 냄새가 나야 한다고 믿는다. 농부에게는 흙냄새가, 목동에게는 양 냄새가 나듯 구호팀장인 내 몸에서도 난민들의 땀과 눈물과 고통의 냄새가 진동해야 마땅하다. 동시에 수많은 압두라마에게 우리가 가져온 희망의 냄새를 옮겨 줘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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