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JOY YOUR ESSAYLIFE
언양에세이포럼
22기-4차시
일시 : 2024년 3월 12일 (화) 3시 00분
목록
순서 | 제 목 | 작 가 | 편수 | 합평 담당 |
1 | 나는 몇 살 까지 살 수 있을까 | 김연희 | 1 | |
2 | 내게 말 걸어줘서 고맙소 | 배정순 | 3 | |
3 | 공포 | 김선애 | 2 | |
4 | 아이는 부모의 품에서 자라야 | 김인옥 | 1 | |
5 | 위장님 감사합니다 | 민창현 | 3 |
합평순서 / 권춘애 김순향 김선애 김연희 김인옥 민창현
박동조 박희자 배정순 예수백 이경자 이혜경
1. 나는 몇 살 까지 살 수 있을까 /김연희
1. 어린 시절 나는 사고로 인하여 큰 상처를 입은 후로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몇 살까지 살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었다. 무속인은 스무 살을 넘겨서 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믿었다. 내 몸이 주검이 되어 차가운 땅속에 묻어지는 상상을 밤마다 했다. 일찍 죽을 것이라는 불안은 건강을 더욱 악화시켰다.
2. 엄마의 등을 빌어 초등학교에 다니던 나는 운동도, 친구들과 뛰어노는 것도 할 수 없었다. 누워서 미래의 나를 상상해 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생명의 불꽃이 꺼져가고 있다고 생각했든 십대의 버킷리스트는 상상으로 회갑까지 살아보는 것이었다. 살아서는 이루지 못할 전 생애를 상상으로라도 멋지게 살아내는 것이 꿈이었다.
3. 내 상상 속에는 연령 별로 멋진 삶을 살아내는 여인이 있었다. 그 여인은 열정적인 삶을 살았고 그가 꿈꾼 버킷리스트는 모두 이루었다. 상상 속의 그 여인은 곱게 나이 들어 회갑 파티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반짝반짝 빛나는 자신의 삶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4. 다행히 스무 살을 넘기면서 건강은 회복이 되었다. 직업도 가지게 되었다. 장애재활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그때 봉사활동을 나온 인도 요가 선생을 만나 요가를 하게 되면서 건강에 대해 자신감도 가지게 되었다. 회갑까지는 건강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을 품게 되었다.
5. 병약했든 내가 이불속에서 꾼 꿈을 하나씩 이루고 있었다. 결혼도 하고 자녀들도 두었다. 상상 속의 내 삼십 대는 잔디 운동장이 있는 큰 유치원을 운영하는 것이었다. 삼십 대 중반에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짓기 위해 땅을 구입했다. 앞뜰은 큰 나무들을 옮겨 심어 정원을 조성하고 뒤뜰에는 잔디운동장을 만들었다. 내가 누워서 상상한 그대로의 건물을 지어 놓고 사람은 꿈의 크기대로 이루어 낼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게 되었다.
6. 친구나 지인들은 나를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사람이라고 놀라워했다. 동생들은 나를 ‘누워서 빌딩 짓는 사람’이라고 놀리기도 했지만 “상상을 현실로 만들었다”고 축하해 주었다. 사람의 수명도 간절히 원한다면 원하는 만큼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삼십 중반에 기대수명을 팔십으로 정했다.
7. 세월은 빠르게 흘러 2천 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새로운 밀레니엄 세상이 열린다고 떠들썩했다. 사람들은 모두 새로운 해를 맞이해야 한다고 산으로, 바다로 떠났다. 해맞이는 집에서 조용히 새해 목표들을 다듬으면서 보내는 것이라고 주장하든 나도 이때만큼은 해맞이하러 갔다.
8. 매스컴에서는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에 대한 소개가 줄 이었다. 가장 큰 화두는 인간의 수명 연장에 관한 것이었다. 백 세를 넘긴 사람들이 소개되고 일본에서는 기대수명이 백이십을 극복할 것이라고 소개되고 있었다.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는 해맞이에서 나의 기대수명은 다시 백 세가 되었다. 살아온 세월보다 더 긴 세월을 어떻게 보내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9. 나의 상상 속의 오십 대는 노인복지를 하는 것이었다. 그 꿈은 이천삼년에 이루어졌다. 계획보다 앞서 마흔세 살의 나이로 노인복지를 하게 된 것이다. 요양원의 입소 어르신 중에서 백 살을 넘긴 기념으로 백수 잔치를 해 드리게 되었다. 백수 잔치를 해 드리면서 사람이 백살을 넘겨 사는 것이 충분히 가능한 것임을 세삼 느꼈다.
10. 그 후 코로나가 발생하고 팔십을 갓 넘긴 나의 어머니는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백 살은 거뜬하게 넘길 것으로 생각했는데 내 나이 예순에 어머니와 이별했다. 어머니는 외할머니보다 짧게 살다 가셨다. 어쩌면 나도 어머니보다 더 짧게 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11. 갑자기 떠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집 안 구석구석을 정리하고 청소했다. 잘 사용하지 않는 세간과 옷을 버리고 또 버렸다. 귀히 여기든 소장품도 버리고 나눔했다. 남은 기족들을 위한 유언장도 작성 했다. 미래를 담보로 현재를 망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에 노년에 대한 계획을 접기로 했다. 행복한 노년을 위해 상상하고 계획했든 치밀하고 촘촘한 계획이 모두 부질없다는 생각에 불면증이 생겼다.
12. 어머니를 떠나보낸 지도 4여 년이 되어간다. 세월은 빠르게 흘러 묵은해를 보내고 또 다른 새해를 맞이한다. 매스컴은 연일 ‘사람들의 기대수명이 늘어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질병을 유발하는 원인도 밝혀지고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치매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보도하고 있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상상은 꿈이 되고 꿈은 현실이 된다.’라는 말을 다시 기억해 낸다. 일찍 죽을수도 있다는 상상을 접기로 했다.어머니가 가시고 기억해 낼 수 없었든 팔십 이후의 내 일상에 대한 상상을 다시 해 보기로 했다.
13. 오늘밤 내 상상의 나래는 어느 따스한 날을 생각한다. 백 살을 넘긴 내가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언덕을 천천히 오르고 있다. 새들과 인사하고 머리 위로 떨어지는 낙엽을 손으로 받아 본다. 곱게 단풍 든 나뭇잎 몇 개를 책갈피에 끼우면서 살아온 지난날을 회상하며 환한 웃음을 짓는다.
2. 내게 말 걸어줘서 고맙소/ 배정순3
1.우리 집은 재래시장 근처다. 집을 들고 날 때마다 시장을 거쳐 오는 게 오랜 습관이 되었다. 물론 과일이나 푸성귀를 사기 위한 걸음이지만, 그게 아니라도 그냥 들려온다. 굳이 이유를 들자면, 활기찬 삶의 현장에서 사람 냄새를 맡고 싶은 것이다.
2.한데, 시장에 나 같은 분이 한 분 더 있다. 지팡이와 한 몸이 되어야 겨우 운신하시는 할머니다. 할머니를 처음 눈여겨보게 된 건 시장 바로 옆 아파트 쉼터였다. 쉼터에서 주위에 사는 노인 서너 분이 한가로이 담소를 즐기시곤 하였다. 그 모습이 마치 시골 마을 정자나무 밑 어르신들 모습처럼 정겨웠다. 어느 날 아파트 관리소에서 외부인의 출입을 막아 그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어 아쉬움이 컸다.
3.며칠 지나지 않아 몸이 불편한 할머니가 시장에 나타났다. 할머니는 평생 해녀로 물질을 해 다섯 자식을 건사했지만, 어느 자식 하나 늙고 병든 어머니를 돌보는 자식이 없다고 했다. 놀 자리를 찾아 시장에 나온 것이리라. 오늘은 운 좋게 노점상 옆 빈 의자가 있어 앉아계시지만, 다음날은 어디에 가실지. 시장에 나와봐야 오가는 사람 쳐다볼 뿐, 말 붙일 벗 하나 없다. 그래도 시끄러운 시장 출입이 잦을 걸 보면 사람 소리가 좋은 것이다.
4.그 후, 시장 후미진 곳에 앉아 있거나 길에서 마주칠 때도 있었다. 어딜 가세요? 하고 물으면 갑갑해서 그냥 나왔다고 하였다. 안부 묻고 돌아서려 할 때 할머니가 잊지 않고 건네는 말이 있다. ‘내게 말 걸어줘서 고맙소.’ 이다.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건 그 말 한마디 때문이다. 경험이 없어 외로움의 깊이를 다 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 한마디말의 무게가 내 마음에 천근의 무개로 다가왔다.
5.설날, 성당 다니는 지름길을 두고 텅 빈 시장통을 걷고 싶어 시장에 들어섰다. 시장 중심길을 통과, 골목 어귀에서 할머니를 만났다. 오늘은 혼자가 아니었다. 후덕해 보이는 중년 부인이 차에서 내리는 할머니를 모시고 있었다. 설이라 가족이려니 싶었는데, 품에 꽃다발이 안겨 있었다. 의아해서 묻는 나에게 부인이, 오늘 할머니가 교회에 입교했어요,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부끄러웠다. 같은 신자이면서 나는 왜 성당으로 모실 생각을 못 했을까. 어느 때보다 할머니 표정이 밝았다.
6.그 뒤 일요일, 설 끝이라 시장상가는 더러 전을 펼쳐 놓은 집도 파리만 날릴 뿐, 오가는 사람은 없다. 한데 할머니가 문 닫은 상가 평상에 지팡이를 부여잡고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걱정스러웠다. 교회에 입교 해 다행이라 여겼는데 그새 마음이 바뀌신 건가. 이 시간이면 교회에 있어야 할 분이 왜 여기 계실까?
7.가까이 다가가 연유를 물었더니 교회 다녀와서 집에 들어가기가 싫어 곧장 이곳으로 왔다고 하셨다. 집이 싫으세요? 하니, 집이 싫은 게 아니라 아무도 없는 빈집이 싫다는 것이다. 내 집 따듯한 방보다 찬바람 속 시장통에 나와야 숨통이 트인다는 할머니, 하긴 넓은 바다가 삶의 터전이었으니 갑갑하기도 하시리라. 시장 바닥을 바다로 착각하신 건 아닐지.... 나와 친분이 쌓인 것도 아닌데 평생 함께한 지기처럼 끝없는 하소연이 이어진다.
“자식들이 일요일엔 빠지지 않고 오는데 오늘은 안 왔다. 아이들과 먹고살라니 안 그렇겄나. 지어버지어버 몬 살겠다. 귀신은 왜 나 같은 늙은이를 안 잡아가노….” 노인의 차진 넉두리가 나를 따라오는 듯 뇌리에서 맴돈다.
8.할머니는 그 와중에도 돌보지 않는 자식들이 욕 들어 먹을까 봐 포장하기에 바쁘다. 그 자식들은 명절이라도 함께 보내면 좋으련만, 오지 않은 것 같다. 말이 길어질 것 같아 주춤주춤 돌아서자 잊지 않고 ‘나에게 말 걸어줘서 고맙소.’ 하신다.
9. 노년의 외로움 . 드러나지 않아 그렇지, 외로움에 내몰린 노인들이 많을 것이다. 피할 수 없는 그 간극을 어떻데 극복할 것인가. 젊은이들은 디지털 기술만으로도 삶의 행간을 심심하지 않게 풀어낼 수 있다. 노인 세대는 다르다. 기기 활용에 어두우니 사람과의 만남, 소통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 더군다나 편마비로 행동이 여의치 않은 노인이면 사람 만나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최소한의 호구지책은 국가가 해결해 준다지만, 인생 살이가 먹고 사는 게 다가 아니다. 가슴 밑 바닥에서 소 리 없이 일어나는 공허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10. 누구를 믿지도 의지하지도 말고 스스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할 것 같다. 그게 안 될 때는 노후의 삶에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다. 할머니가 그 본보기다. 몸이 병들면 가장 가까운 사람, 하물며 내 속에서 나온 자식들마저 멀어진다는 사실을 새겨 볼 일이다.
3. 공포/김선애2
1. 뭉크의 ‘절규’ 작품을 보면 공포에 휩싸인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어서 나도 모르게 그림 속으로 빠져든다. 뭉크가 남긴 글에서 ‘해 질 녘 친구 둘과 길을 걸다가 갑자기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 멈춰서 죽을 것 같은 느낌에 난간에 기대어 섰는데 커다란 비명 소리까지 들었다.’라고 했다. 얼마나 무섭고 두려움에 떨었을까 짐작이 간다.
2. 얼마 전 처음으로 코피를 흘리고 두려움과 공포에 빠졌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코가 꽉 막혀있어서 답답했다. 코를 한쪽씩 막고 풀어도 시원하지가 않아 코를 비비기도 하고 코딱지도 떼어냈다. 그래도 시원하지 않아서 답답했다.
3. 점심에 떡국을 먹는데 코피가 갑자기 주르륵 흘러내리더니 떡국 속으로 ‘풍덩’ 빠져 버렸다. 놀라서 고개를 숙이면서 코에 휴지를 넣고 콧방울을 꽉 눌렀다. 차분하게 기다렸더니 피가 멈췄다. 피곤하다고 느낀 적이 없는데 왜 그랬을까하는 의구심은 가졌으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4. 하지만, 바로 이비인후과에 가서 상태가 어떤지 확인을 받아야 했다. 이틀 후에 또 코피가 났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콧방울을 막아서 지혈을 했다. 이번에는 만만하지가 않았다. 15분, 30분이 지나도 지혈이 되질 않았다. 순간 뭉크가 경험했던 공포가 떠올랐다. 다급하게 119에 전화를 했다. 기다리다가 얼굴에 흘러내린 피를 닦으려고 화장실로 갔다가 거울을 보고 기절을 할 뻔했다. 피가 입으로도 나오고 눈으로도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5. 이젠 공포와 두려움을 넘어 절망이었다. 다시 119에 전화를 해서 빨리 오라고 재촉을 했다. 그랬더니 의식이 있으면 1층으로 내려오라고 했다. 내려가는 동안에도 코피가 펑펑 쏟아져 복도와 엘리베이터에 흔적을 남겼다. 도착한 119응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가면서 혈압을 재보더니 190까지 올라갔다고 했다. 그 소리를 듣고 심장이 더욱 가파르게 뛰었다. 뭐가 단단히 잘못 되었다고 생각이 드니 빨리 병원에 도착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6. 응급실에 도착해 응급처치를 받아도 피가 금방 멈추지 않아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병원이라는 장소여서 그런지 놀라서 급하게 요동쳤던 심장이 안정되는 것을 느꼈다. 드디어 피가 멈춰서 이비인후과로 가서 진찰을 받아보니까 콧속 큰 혈관이 터져서 시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마취를 하고 혈관을 지지는 시술을 받았다. 다행히 전방 출혈이니 안심하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도 난 또 걱정이 앞섰다. 거의 한 시간 반 이상을 코피를 흘렸는데 괜찮을까 하는 염려였다. 평소에도 빈혈인데 제대로 서 있을 수나 있겠는가 싶었다. 예전에도 빈혈이 심해서 수혈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7. 소동이 끝난 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입고 있는 옷이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한쪽 손으로 코를 막고 있으니 옷을 갈아입을 수도 없고 시간도 없었다. 집에서 입던 얇은 옷만 입고 있어서 갑자기 한기가 몰려와 덜덜 떨었다. 병원비를 계산하고도 한참을 기다려 대구에 볼일을 보러갔던 남편이 도착해서야 집에 돌아오게 되었다. 드디어 몇 시간의 공포상태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8. 코피를 흘리고 나서 공포를 느낀 경험은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코피가 흘러내리는 순간, 갑작스러운 공포에 사로잡히게 된다. 당황스럽고 놀라서 고개를 뒤로 젖히면 피가 목으로 넘어가 페로 들어갈 수 있다. 잘못하면 패혈증으로 죽을 수도 있다. 다행히도 얼마 전에 안전교육을 받은 덕분에 대처는 제대로 한 것 같았다.
9. 두 번째 코피가 났을 때, 당황스럽고 놀란 마음이 몰려왔다. 왜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났는지 이해할 수 없고, 내 몸이 왜 이렇게 반응하는지 알 수 없었다. 코피가 멈추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과 함께 내 안에 잠재되어 있던 공포가 떠올랐다. 코피가 흘러내리는 것이 내 건강에 대한 신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내부 출혈이나 다른 건강 문제를 나타낼 수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공포를 느끼게 된다.
10. 코피가 흘러내릴 때는 당황하지 말고, 차분하게 대처해야 한다. 머리를 앞으로 숙이고, 코를 가볍게 막고, 몇 분 동안 콧방울을 누르고 있으면 코피가 멈출 수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코피가 멈추지 않을 때는 즉시 병원으로 가서 치료를 해야 한다.
11. 코피를 흘릴 때 공포를 느끼는 순간,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마음은 불안과 불확실성에 혼란스럽다. 그렇더라도 공포를 극복하고, 차분하게 대처하며, 자신의 몸과 건강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12. 몇 년 전부터 응급상황이 오면 공포에 휩싸여서 응급실에 가는 일이 몇 번 있었다. 의사가 검사와 치료를 끝내고 하는 말이 ‘공황장애 증상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사람은 누구나 공포에 휩싸이면 순간적으로 공황장애가 온다면서 사람에 따라 강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13. 뭉크는 벌건 핏빛 노을에 공포를 느껴 ‘절규’라는 작품을 그렸다. 뭉크처럼 사람들은 핏빛을 보면 당황하고 두려움에 떨고 공포를 느낀다. 붉은색은 정열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흥분과 공포의 대상이 된다는 이중성이 있다. 이번 경험으로 건강관리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지만, 노화로 인해 여러 가지 질병이 자꾸 발병한다는 사실에 인생이 무상함을 느낀다.
4. 아이는 부모의 품에서 자라야/김인옥1
1. 집 부근의 초등학교에서 입학식이 있었다. 아침 산책길에 교문 앞에서 처음 등교하는 어린이들을 만났다. 입학을 축하하는 현수막 아래로 엄마나 할머니의 손을 잡은 어린이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제 몸집보다 큰 가방을 거북이 등처럼 등에 붙인 모습이 하나같이 귀여웠다.
“우리 OO 사랑해!”
아이를 꼭 끌어안고 속삭여주고, 교실로 들어가는 아이를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 배웅하는 엄마의 모습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2. 나도 그렇게 해보고 싶었다. 어느 새 자라 입학하는 아들이 너무나 예쁘고 대견스러워서 첫날만이라도 아들 손잡고 학교 앞까지 가고, 손 흔들어 배웅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아참 일찍 출근을 해야만 했다. 학교에 갔다 온 아이를 따뜻이 맞이해준 적도 없었다. 하교를 하면 엄마가 퇴근해 올 때까지 유치원 갔다 온 동생과 둘이서 저희끼리 놀아야 했다. 아이들은 정작 말이 없었지만, 내 마음은 늘 미안하고 불안하고 아팠다.
3. 취업 주부 비율이 높아짐에 따라 내 아이처럼 하교 후 반겨 줄 엄마가 없는 어린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에 정부에서는 방과후학교와 돌봄교실을 합친 개념인 늘봄학교를 개설한다고 밝혔다. 아침 7시부터 최장 저녁 8시까지 아이를 학교에 맡길 수 있다. 맞벌이 가정 어린이의 돌봄 공백을 해결하고 사교육비도 줄여줌으로써 출산율을 높이고자 하는 의도가 깔려있다. 올해 1학기 동안 전국 2,700여 학교에서 1학년에 한해 시범운영하고, 2학기부터는 전국 초등학교에 개설할 것이라고 한다. 연차적으로 학년을 확대해나가서 2026학년도에는 전 학년에 걸쳐 실시할 계획이다. 이는 분명 맞벌이 부부의 입장에서는 편리한 제도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어린이 입장에서 봐도 그러할까. 부모의 마음도 마냥 편하기만 할까.
4. 모든 학년의 어린이가 다 마찬가지지만, 1학년 어린이에게 3월은 특히 힘든 달이다. 학교라는 새 환경과 새 교육과정에 적응해야 하고 낯선 선생님과 새 친구도 사겨야 한다. 몇 시간을 긴장감 속에서 보내다보면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면역력이 떨어져 3월엔 거의 모든 어린이가 감기를 앓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저녁 여덟시까지 학교에 머물러야 한다면 너무 무리다. 날이 저물었는데도 집에 가지 못하는 아이는 가엽기만 하다. 신체적인 발육이나 정서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
5. 늘봄학교가 시행 면에서 많은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기도 하다. 시행을 1년 앞당기면서 미처 준비할 겨를도 없이 입학 첫날부터 시행하도록 밀어붙인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프로그램에 맞는 강사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학교가 많다고 한다. 결국 모자라는 인력을 교사로 대체할 경우, 업무 과중으로 정규수업의 질을 떨어뜨릴 수도 있지 않을까.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적절한 계획을 세워 공간과 인력을 확보한 후에 시행한다고 하더라도 전 학교, 전 학년으로 확대할 경우, 농어촌 학교의 강사를 쉽게 구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
6. 아이는 가능한 한 부모의 품에서 자라야 한다. 나이가 어릴수록 부모의 사랑은 절대적이다.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아이가 따뜻한 부모의 품에 안기는 순간 모든 스트레스가 날아가고 행복감을 느끼며 원기를 회복할 것이다. 이 때 최인철 교수의 말처럼 이렇게 물어야 한다.
“오늘 어떤 좋은 일을 했어? 몇 번을 웃었어?”*
7.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아무리 늦어도 어둡기 전에 부모의 품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낮에 잘 뛰어놀던 아이도 날이 저물었는데 엄마 또는 아빠가 곁에 없으면 심한 정서적 불안을 느낀다. 늘봄교실을 운영할 예산으로 어린아이가 있는 엄마 혹은 아빠에게 육아조기퇴근 등 근무시간을 유연하게 조정해주거나, 유급 육아휴직 정책을 더 강화하면 어떨까. 어린이는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자라고 부모의 마음도 편안하지 않을까. 아이를 마음 놓고 양육할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이 조성될 때 출산율도 자연스레 높아질 것이다.
8. 모든 어린이는 한 명 한 명 다 귀하다. 이 귀한 어린이들을 돌봐야 할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 이제는 정부와 사회가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가 되었다. ‘무엇이 어린이에게 가장 좋을까’에 초점을 두고 양육과 교육 정책을 펴 나가길 기대해본다.
* 박웅현, ‘다시, 책은 도끼다’ 중에서
5. "위장님, 감사합니다" - 민창현 3
1. 자식들에 대한 고른 사랑을 이야기할 때 '깨물어서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어디 있느냐'라고들 말한다. 어느 것 하나 귀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말이다.
2 우리 몸도 매한가지다. 평소에는, 늘 마시는 공기의 귀함을 모르듯이 그 소중함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잊고 지낸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문제가 생겨 고통을 느끼게 되면 비로소 그 존재 가치를 새삼 생각하게 된다.
3. 어릴 적에는 병치레를 자주 하는 편이어서 병원 신세를 종종 졌다. 그때마다 고장 난 신체 부위의 고통과 불편함을 느끼면서 그 소중함을 함께 인식하게 되었다. 편안한 삶을 살게 해 주는 몸의 어느 한 부분도 허투루 생각하지 않게 된 것은 그러한 연유도 있었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4. 동화사 말사인 파계사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학교 대 선배이기도 한, 고승 한 분을 만나 뵈러 가는 길이었다. 고승이라고 하니 어떤 분일까 궁금도 하고 어떤 좋은 법문을 들을 수 있을지 기대가 되었다.
5. 여러 대화가 한참 동안 오고 간 후 갑자기 스님이 무어라 말하면서 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마음공부한다는 사람들이 신체의 건강에 대해서는 자칫 소홀하기 쉬운데, 몸이 건강해야 마음도 정갈해진다면서 건강 비법을 하나 소개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6. 몸의 장기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그 부위를 손으로 두드리면서 고맙다고 말했다. 위장을 부를 때는 "위장님, 고맙습니다"를 외치며 양 손바닥으로 단전을 쳤다.
7. 머리부터 시작해서 발끝까지 차례차례 내려왔다. 처음에는 별 느낌 없이 시작했는데 한참을 하고 나니 몸에 열기가 도는 것이 느껴졌다. 신체와 장기 하나하나에 대해 같은 방법으로 고마움에 대해 감사하며 소중함을 생각하라고 했다.
8. 식물의 씨를 두 개의 화분에 각각 심고 매일 물을 주면서, 하나는 '사랑한다 예쁘다'라는 좋은 말을 해 준다. 다른 하나는 '증오한다, 밉다'라는 나쁜 말을 한다. 시간이 지난 후 그 생장 상태를 보면 확연히 달라져 있다는 것이다.
9. 이처럼 세상 만물은 서로 통해 있다고 했다. 몸의 장기에 대해서도 물리적인 자극뿐만 아니라 좋은 생각의 교감이 그것을 더욱 건강하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돌아와서 한동안 신체 감사 운동을 열심히 했는데 중년의 깊은 삶에 묻히고 나서 손을 놓고 말았다.
10. 요즘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스님의 말씀이 다시 절절하게 다가온다. 고장이 슬슬 나기 시작한 탓이다. 가지고 태어난 몸의 어느 한 부위든 소중하지 않은 게 없다는 걸 느끼며 살아간다.
11. 병원에서도 해결이 안 되어 졸도 직전의 상태까지 갔던 배변 기능의 극심한 고장을 경험했다. 어른들이 늘 이야기하던 '잘 먹고, 잘 내보내고, 잘 자는 것'이 건강의 비결이란 의미를 깨달았다.
12. 걷기와 자전거 타기로 좋아졌지만 한때 허리와 어깨 통증은 한때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는 상황까지 가면서 그 귀중함을 새삼 절감했다.
13. 한데, 가만히 둘러보면 소중하지 않은 게 어디 몸뿐이겠는가. 모든 것이 고마운 존재다.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주위의 모두들 덕분이다. 잠깐만 생각해 보면 먹고, 자고, 일하고, 쉬는 것 어느 하나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걸 쉽게 알게 된다.
14. 스마트폰 가게에서 사 온 폰의 알람 소리에 눈을 뜬다. 마트에서 장 봐 온 재료로 아침을 해 먹는다. 경비 아저씨가 출·퇴근 시간에 교통정리를 해 준다. 주유소에서 차에 기름을 넣는다. 은행에 들러 돈을 찾고, 병원에서 검진을 받고, 카페에서 친구를 만나 향기 좋은 커피를 마신다. 어느 것 하나도 타인의 수고와 관계없이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15. 직장 생활 때의 일이었다. 회사의 빠른 출근 시간 때문에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섰다. 제일 먼저 만나는 사람이 청소부였다. 한때 청소업체의 파업으로 거리 청소가 올 스톱 되고 거리는 쓰레기로 넘쳐 난 때가 있었다. 청소부가 그렇게 귀한 분인 줄 몰랐다.
16. 이제부터는 몸과 마음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스님께 배운 감사 운동을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내가 존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많은 고마운 분들의 이름도 함께 부르면서 힘차게 두드릴 참이다. 아침에 맨 먼저 만나는 경비와 청소부부터 시작해야겠다.
17. "경비 아저씨, 주차 관리 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청소부 아저씨, 깨끗한 거리 만들어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