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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킴이요? 인생 최고의 기회예요 |
김민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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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경이 4년 만에 〈미스 사이공>의 ‘킴’으로 돌아왔다. 미군 크리스와의 짧고도 강렬한 하룻밤 사랑이 삶의 유일한 의미인 여인, 그 결실로 태어난 아이의 미래를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련의 여주인공. 김보경은 앳되고 보드라운 음성으로 킴을 노래한다. 그 음성이 하도 곱고 구슬퍼서 가슴이 녹아내리는 듯하다. 작고 가냘픈 몸집으로 무대를 뛰어다니며 킴을 연기하는 김보경을 보면 킴의 화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4년 전보다 그는 한층 깊고 원숙해졌다. 목소리는 그대로지만 감정 연기의 폭이 확 넓어졌다.
“4년 전에는 연출자의 지시대로만 했다면, 지금은 장면마다 더 깊이 들어갈 수 있어요. 예전에는 단순히 슬프기만 했는데, 지금은 복합적인 감정이 다 느껴져요.” 뮤지컬 여배우에게 〈미스 사이공〉의 ‘킴’은 꿈의 배역이다. 한 배우가 거의 매 장면에 출연하면서 이렇게 많은 아리아를 부르는 작품은 드물다. 김보경은 “여자 주인공 중에서 킴이 ‘짱 먹는 것’ 같아요”라며 장난스레 말한다. “두 시간 반 공연을 끝내면 완전히 탈진해요. 킴은 슬픈 배역이잖아요. 4년 전에는 킴의 감정이 일상에까지 전이됐어요. 우울하고 슬펐죠. 몸 관리를 위해 사람도 안 만나고 전화도 안 받았는데, 혼자 있다 보니 점점 더 우울해졌어요. 지금은 킴과 저를 분리하려고 애써요. 킴에 젖어 있기보다 거리감을 두려고 하죠. 그래야 감정 표현이 제대로 되니까요.” 4년 전, 세계 5대 뮤지컬 중 하나인 〈미스 사이공〉이 한국어 버전 초연을 앞둔 때였다. 1100여 명이 응시한 오디션이 진행 중이었고, 오리지널 제작팀은 배우를 섭외하기 위해 현장을 뛰어다녔다. 당시 김보경은 〈인어공주〉 〈유린타운〉 〈노트르담의 곱추〉 〈아이다〉 등에서 단역을 맡던 이름 없는 배우였다. 뮤지컬 <아이다>에 출연한 김보경을 보고 오리지널 팀은 “저 여자다” 했다 한다. 그것도 딱 한 소절을 듣고서. 오리지널 팀으로부터 오디션에 응시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김보경은 심사위원단 앞에서 킴의 아리아를 세 곡 넘게 불렀다. 그렇게 얼떨결에 거머쥔 ‘킴’ 역으로 그는 뮤지컬계의 신데렐라가 됐다. 4년 후 〈미스 사이공〉을 다시 개막한다고 했을 때 그는 망설였다. 주위 사람들은 “넌 오디션에 응시만 하면 되는 거 아냐?” 식으로 말했지만, 그는 달랐다. 초연 때 평가가 좋았던 만큼 부담감이 컸다. 초연 오디션 때에는 담담했지만, 이번 오디션을 앞두고는 잠을 설치기도 하고 많이 떨었다고 한다. 꼼꼼히 준비한 그는 또다시 ‘킴’ 역에 낙점됐다. 그에게 “당신에게 킴은 무엇인가?” 물었다. “아~ 질문 어렵다(1분간 침묵). 사람마다 평생 기회가 세 번 온다잖아요. 저에게 킴은 그 첫 번째 기회였어요. 나머지 두 번의 기회요? 〈위키드〉의 하얀 마녀, 〈레미제라블〉의 에포닌 역을 꼭 해보고 싶어요. 밝은 역할을 좋아하거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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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배역 모두 ‘킴’의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미스 사이공〉 오리지널 팀의 킴 역으로 유명한 레아 살롱가도 에포닌 배역에 기막히게 어울렸다. 킴과 에포닌, 하얀 마녀 모두 여리고 순수하지만 자기 주관이 뚜렷한, 강단 있는 배역들이다. 그는 자신의 실제 성격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평소에는 부탁도 잘 들어주고 양보도 잘하지만, 하고자 하는 바가 있으면 고집이 세다고. 6남매 중 막내인 그는 배려 깊은 성격 때문에 장녀 같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어릴 적 그는 남들 앞에서 발표도 못 할 정도로 내성적인 아이였다. 그러나 아버지를 닮아서 노래를 잘했다. 엄한 아버지는 노래 부를 때만큼은 부드럽고 자상했다. 아버지 영향으로 그는 네 살 때부터 설운도, 황금심 등의 트로트를 부르고 다녔다. 중학교 때에는 발레를 배웠고, 고등학교 2학년 때 뮤지컬 배우가 되기로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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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크리스 역은 마이클 리가 맡았다. 마이클 리는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주가를 올리고 있는 뮤지컬 스타로, 스탠퍼드 의대 재학 중 뮤지컬 배우가 되기 위해 학교를 그만둔 교포 2세다. 주로 마이클 리와 호흡을 맞추지만 간혹 크리스 역으로 더블 캐스팅된 이건명 씨와 할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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