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거실창 빗방울이 하나둘 내시선에 비쳐진다~
올여름 장마라고 하지만 비다운비 아직까진 그러하네~~
지금은 고향집 을 떠나왔지만 아직도 고향집 은 남들이 거주하고 안방은 어머니 가
가끔사용하기 때문에 아직도 끊을수없는 인연이다.
우리마을 은 퇴계원에서 가장높다는 마루턱 언덕이기에
왕숙천 물이 범람하면 물의 소용돌이가 한눈에보인다~
수년전 만에도 한양대 농장 제방이 약해 수해가 심할때면 왕숙천 제방이 무너져 한대농장이
큰호수로 변한 세월이 있었다
아마도 초등학교 시절인가보다.
광릉내 어느마을 에서 날개달린 뱀을 잡어먹어 하늘이노해 그해 엄청난 비가왔다
며칠을 하늘이 구멍나 물난리 를 치르더니 한양대 농장 둑방이 무너져 그곳은 큰호수로 변한다
구약성경 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처럼
광릉내 군인막사 를 휩쓴 그날의 참사는 한양대 농장 그곳에 표류해 젊은 군인 시체들이
농장안에 여기저기 서려있는 그날의 참혹한 광경이 눈에선하다~
지금은 뱅이서 비석거리 건너가는 하천이 스라브다리로 이어졋지만
얼마전만해도 외나무다리로 몇개만든 이음새다리
비만오면 떠내려가서 당시 주민들은 수영을해서 동과서 를 건너다녔다
그다리밑에는 메기가 많어 당시뱅이사는 규남이가 작살로 메기를 잘잡었다~~~
당시 우리는 풍경네<마른개울> 큰논이있었다
그곳도 침수가되어 할아버지 아버지 께서 물난리 끝내고 논에가보니 논안에 20대로 보이는 여자
시체가 만세를 부르고있엇다
얼마전만 해도 비만오면 범람하는 왕숙천
왕숙천 범람하면 울고 울고 살아야 했던 우리네민초들 지금은 제방시설 잘되어 왕숙천 범람은 전설의고향
첫댓글 그시절 의 아품이 녹아있는 글입니다.슬픈기억 속에 아련하게 떠오르는 고향생각 장마지는 여름 과거의 일이지만 가슴이 아파 오네요...!!!^^*
" 장마 " 하면 생각나는것이 있다 . 1974년 여름. 나는 문기, 혁흥, 광진이와 같이 왕숙천 한양대농장 뚝방에 텐트를 쳤다 . 밤이 깊어갈 무렵 별안간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지척을 분간할수 없는 칠흙같은 어둠속에서 철수도 할수 없는 진퇴양난에 빠지게 되었다 . 나와 광진이는 텐트가 날라갈것 같아 텐트를 꼭잡고 잠을 이루지 못했다 . 아침에 비는 멈추고 혁흥이와 문기는 식량조달 문제로 육탄전을 벌이고 말았다 . 혁흥이는 주특기인 박치기로 문기의 약점인 허리를 집중 공격했고 이에 문기는 반칙으로 응수했다 . 이사건은 혁흥이가 자기집 앞의 옥수수를 따와 식량조달을 하여 일단락 되었다 .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그때의 싸움꾼인 혁흥이와 문기가 7/15일 뱅이에서 모임을 주선 한다고 한다 . 매사에 적극적인 두사람이 합세하니 잘 진행될것으로 확신 한다 .
???
^^ 그런 일도 있었네. 어린 시절 물난리도 참 많았지. 빈양, 신하천등 물난리 소식이 이맘 때면 어김없이 들리고,,, 승천하려던 용의 이야기는 퇴계원에도 있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