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 인간은 좋은 일이 일어났을 때 자신이 복이 있고 인덕이 있기 때문이라고 자만하는 경향이 있다. 보통 자만심이 넘치는 사람들일수록 이러한 좋은 일이 자신에게 일어난 것을 스스로가 잘나서 일어난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자만심이 넘치는 사람일수록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이러한 좋은 일에 정신을 집중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만심이 넘치는 사람도 좋지 않는 일이 일어나면 마음이 거기에 집중되어, 정말로 자신이 집중해야 할 좋은 것에 집중을 못한다.
좋지 않는 일이 일어나면 마음이 거기에 집중되는 것은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되는 특성이다.
집증은 긍정적인 것에 집중하는가 부정적인 것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일의 능률을 올리기도 하고 떨어뜨리기도 하는 이중 속성이 있다. 일의 능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좋지않는 생각을 차단할 필요가 있다.
열등감,좌절,분노,질투 등 좋지 않는 생각의 중심에는 반드시 대상이 있다. 이러한 대상이 마음 속에서 집증되어 떠나지 않는다.
이러한 대상이 떠오를 때는 빛이 거울에 반사되는 것처럼 이 대상을 빛 속에 넣어 반사시키면 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육체의 눈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눈이 있다. 이 마음은 3차원의 세계가 아니다. 마음은 4차원 이상의 고차원 세계이다. 4차원 이상의 고차원 세계에서는 3차원과 달리 우리의 의식에 의해 만물을 크게할 수도 있고, 적게 할 수도 있다.
가령 어떤 사람을 상상할 때, 그 사람의 키는 3차원세계에서는 고정되지만, 4차원 이상의 세계에서는 엄지보다 작게 만들 수도 있고, 공룡보다 더 크게 만들 수가 있다.
빛의 입자보다도 작게 만들 수도 있다.그것은 4차원 이상의 세계는 상념의 세계이기 때문에 자신의 상상대로 만들 수가 있다. 4차원 이상의 세계에서는 공간이나 크기가 의미가 없다.
정리하면, 4차원 이상의 세계에서는 공간을 언제나 창조할 수도 있고, 공간뿐만이 아니라, 만물의 크기와 모양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가 있다.
더 예를 든다면, 빛이 입자의 성질을 가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빛의 입자를 마음은 코끼리처럼 크게 상상할 수도 있다. 4차원 이상의 세계에서는 크기뿐만 아니라 모양도 마음대로 바꿀 수가 있다.
이러한 원리에 의해 당신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이 당신 마음에서 떠나지 않을 때, 그 대상을 빛의 입자보다 작게 만들어 그 안에 넣은 다음 당신의 마음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당신의 마음 속에서 거울을 든 당신을 상상하고, 당신은 그 거울로 빛 속에 갇힌 싫은 대상을 반사시키는 상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면 당신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싫은 사람은 빛에 갇혀, 빛의 속도로 우주로 사라져버린다. 열등감,좌절,분노,질투 등 좋지 않는 당신 생각의 중심에 있는 대상이 우주로 사라져 버리니까 당신의 부정적 생각이 해결되는 것이다.
보통 여기까지가 세상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범위이다. 그러나 우리 하느님의 친자녀들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야한다.
당신은 그들을 우주에 미아로 방치한다는 생각이 아니라 그들을 우주의 거대한 사랑 바다로 보낸다는 긍정적 생각을 해야한다.
당신은 그들이 우주의 거대한 사랑에 의해 옜사람의 품성이 녹아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하느님의 친자녀로 거듭난 선명한 이미지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한 당신의 선명한 이미지에 의해 이전에는 당신에게 열등감,좌절,분노,질투 등의 대상이 되었던 그들이 더이상 당신의 열등감,좌절,분노,질투 등의 대상이 아니라 하느님의 모성적 사랑 안에서의 형제자매라는 사실을 당신은 깨닫게 되고 그들도 당신에게 불가사의하게 우호적인 태도로 변한다.
물론 당신의 단 한번의 긍정적 이미지 훈련으로 그들이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이 꾸준히 이러한 긍정적 이미지 훈련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에 정말로 그들과 당신의 관계가 매우 친밀하고 우호적으로 변한다.
132. 학생 시대에 하기 싫은 공부지만 하지 않으면 안되는 과목이 있다. 어차피 해야할 과목이라면, 미래에 자신의 꿈을 이루는데에 이 과목은 꼭 필요한 과목이라는 긍정적 생각을 가지고 하는 것이 좋다. 의외로 신선감을 느낄 수 있고, 재미 있는 부분이 숨겨져 있는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싫은 일이지만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 있다. 어차피 해야할 일이라면, 미래에 자신의 꿈을 이루는데에 이 일은 꼭 필요한 일이라는 긍정적 생각을 가지고 하는 것이 좋다. 의외로 신선감을 느낄 수 있고, 재미 있는 부분이 숨겨져 있는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133.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생각한 이상으로 큰 능력을 발휘하고 살면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기적과 같은 일들을 경험하기도 한다. 자신이 홀로 생각하고 홀로 행동하는 것이 사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천상계의 생명체들의 협조에 의해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자신의 능력을 향상시키거나 기적과 같은 일들이 일어나게 하기 위해서는 천상계의 생명체들이 되도록 많이 협조할 수 있는 환경을 자신의 주위에 만들어야한다. 그러한 환경을 만드는 방법은 내적 방법과 외적 방법이 있을 수가 있다.
내적 방법으로서는 우선 마음이 항상 하느님의 모성적 사랑을 중심으로 감사의 마음 그리고 순수의 마음 등을 가져야한다. 그리고 외적 방법으로는 주위에 사랑을 실천하고 자신의 주위를 풍수학적으로 좋은 환경을 만드는 방법을 연구해, 활용하면 금상첨화이다.
새 시대에는 마음학과 풍수학은 실용적 인기있는 과학적 학문이 된다. 저자가 심리학, 뇌과학, 윤리학, 종교학 등의 용어를 쓰지않고 마음학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누리경에서 사용하는 것은 심리학과 뇌과학, 윤리학 등에서는 마음에 가장 중요한 하느님과 천상계의 생명체들, 영혼 등에 대한 공부가 빠져있기 때문이다.
종교학에서는 종교들마다 입체적으로 진리를 보지 못하고 종교들끼리 눈에 보이지 않는 벽들을 쌓고 있기 때문이다. 누리경에서 말하는 마음학이라는 것은 심리학, 뇌과학, 종교학, 윤리학 등을 다 수용하면서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인정한다.
그리고 누리경에서 말하는 마음학은 보이지 않는 세계와 보이는 세계가 연동해서 움직인다는 사실을 기본 철학으로 하고 있는 하느님의 모성적 사랑을 중심으로한 종합적 마음공부이다.
134. 세포도 의식을 가지고 있다. 세포 의식은 보통 수준이 아니다. 세포 의식은 한마디로 측정 불가능한 천재이다. 세포에서 일어나는 많은 활동은 인간의 과학능력으로는 이해 불능의 최첨단 과학 수준이다.
인간이 세포에 대한 이해는 세포 전체기능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천재 세포 약 60조개를 우리 각자는 가지고 있다. 천제세포가 약 60조개가 모여 하나의 몸을 형성한다면 우리의 몸도 사실은 천재적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 몸이 어떤 것을 학습해 익힌다면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는다. 일단 몸으로 자전거타는 기술을 익히면 평생 자전거를 탈 수가 있다. 일단 몸으로 수영을 익히면 평생 수영을 할 수가 있다.
직장에서도 기술공들에게 단지 머리로만 학습해서 익히지말고 몸으로 학습해서 익혀야한다는 것은 몸도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듯이 뇌세포만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몸의 모든 세포도 기억을 가지고있는 것이다.
단지 뇌세포와 몸의 다른세포들이 의식의 주파수 범위가 틀리기 때문에 뇌세포가 다른 몸세포의 의식을 이해못하는 것일 뿐이다. 마치 인간과 다른 동물들의 뇌세포 사이에는 뇌세포의 의식의 주파수 범위가 틀리기 때문에 서로의 의식을 이해못하는 것과 같다.
우리가 식물 세포의 의식을 이해못하는 것도 사람과 식물이 의식의 주파수의 범위가 틀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식물도 같은 식물끼리는 주파수의 범위가 맞아 의식이 통할 수가 있다. 동물도 같은 동물들 사이에는 주파수의 범위가 맞아 의식이 통할 수가 있다.
예를들어 사자는 사자끼리 의식이 통한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죽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자와 얼룩말은 의식의 주파수 범위가 틀리기 때문에 사자는 얼룩말을 공격해 죽여 잡아먹어도 얼륙말의 의식 속에 있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자가 얼륙말을 잡아먹을 수가 있는 것이다.
만일 사자가 얼룩말의 의식과 통한다면, 사자는 얼룩말이 피흘리며 죽을 때의 고통을 느껴 잡아먹을 수가 없는 것이다. 누리경에서는 마음의 크기라는 말을 종종 사용한다.
이 마음의 크기가 바로 의식 주파수의 범위인 것이다. 마음의 크기가 작은 사람들은 본인의 마음의 주파수 범위 이외의 마음은 이해를 못하는 것이다.
예를들어 횟집에서 회를 뜨는 사람은 물고기가 죽을 때의 마음을 이해 못한다. 마음의 주파수의 범위가 회뜨는 사람과 물고기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눈깜짝하지 않고 회를 뜰 수가 있는 것이다. 만일 부처님이 계신다고 가정하자. 부처님은 회를 뜰 수가 없다. 그 이유는 부처님은 마음의 그릇이 바다처럼 넓어 물고의의 마음과도 통하기 때문인 것이다.
부처님의 마음의 주파수 범위 안에는 물고기의 마음의 주파수의 범위가 포함되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마음의 주파수 범위를 전체집합이라고 한다면, 물고기 마음의 주파수 범위는 부분집합이라고 할 수가 있다.
마음의 주파수의 범위를 넓히는 것이 바로 마음의 그릇을 넓히는 것이다. 그러면, 많은 동물들, 식물들 더 나아가 광물들의 마음까지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래야 동물들, 식물들, 광물들 등과 같은 만물을 사랑할 수가 있는 것이다. 마음공부라는 것이 바로 마음의 그릇을 크게하는 것이다. 마음 그릇을 크게해야 만물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야 만물의 기쁨도 그대로 느낄 수 있고, 만물의 슬픔도 그대로 느낄 수가 있는 것이다. 마음의 그릇을 크게하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하느님의 모성적 사랑을 중심한 고운 마음을 갖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하느님의 모성적 사랑을 중심한 고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만물의 마음을 알고 만물과 대화를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마음의 그릇 크기와 지식량은 그다지 상관이 없다.
지구성에 과학문명이 발달해도 인류의 마음의 그릇이 작으면, 단지 경제적 이득을 위해 과학기술에 의한 첨단 무기로 상대국가를 침략해 수많은 사람들을 죽일 수가 있는 것이다.
지구성에 과학문명이 발달해도 인류의 마음의 그릇이 작으면 현대문명의 건설과 경제적 이득이라는 미명 아래 자연의 대량적 파괴를 서슴치않고 자행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모성적 사랑을 중심한 고운심성의 사람들만 모인 나라라면 아무리 과학문명이 발달해도. 상대방의 나라를 침략해 사람들을 죽이는 일을 못한다. 사람이 죽을 때의 고통과 그 가족들, 친지들, 국민들의 슬픔을 그대로 느끼기 때문인 것이다.
아무리 과학문명이 발달해도, 자연을 대량적 파괴를 하지 않는다. 자연이 파괴될 때 자연이 느끼는 고통과 슬픔을 그대로 느끼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모성적 사랑을 중심한 고운심성의 사람들만 모인 나라라면 모든 인류가 형제 자매에로서 더불어 행복하게 잘사는길을 선택하고 자연과 현대문명의 조화와 어울림을 추구하는 것이다.
누리경에서 하느님의 모성적 사랑을 중심한 고운심성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하느님의 모성적 사랑을 중심한 고운심성만이 마음의 주파수의 범위를 크게한다. 즉 마음의 그릇을 크게하는 것이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간절히 바라는 것은 지식량과 능력이 아니다. 그 보다도 인류 각자 각자의 마음의 그릇이 커지기를 절실히 바라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의 그릇이 하느님처럼 커져야 인간이 비로서 하느님의 자녀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고, 만물을 만물 아래에서 진정으로 사랑하는 우주의 중심 존재가 될 수가 있는 것이다.
135. 한 사람의 고객이라도 정성을 다해라. 정성을 다하는 가게는 번성한다. 번성의 뒤에는 천상계의 협조가 반드시 있다. 천상계에서는 정성을 다하면, 잘된다는 교훈을 세상 사람들에게 체험적으로 가르치기 위해, 정성을 다하는 가게를 번성하도록 협조한다.
136. 새시대는 양보다 질을 추구하는 시대이다. 질이 축이 되는 시대이다. 질을 높이면, 비례해서 양이 증가하는 시대이다. 질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정성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질을 높힌다.
생명말씀도 마찬가지이다. 생명말씀에 정성을 다하여 생명말씀의 질을 높이면, 생명말씀 주위에 한 두사람이 모이기 시작하다가 높은 질의 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모여드는 때가 있다.
생명말씀에 질을 높이지 않으면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였더라도 점점 생명말씀에 식상해져 한 두사람 떠나가다가 어느날 갑자기 다 떠나는 때가 있다.
137. 오늘 할 수 있는 능력의 범위에서 최선을 다하자. 그러면 내일은 할 수 있는 능력의 범위가 조금 늘어난다. 하루의 작은 최선이 세월과 함께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로 만든다.
138. 현명한 자는 어느 누가 말하더라도, 내용을 보고 진리라고 판단하면 받아들인다. 비진리라고 판단하면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는 내용을 보는 것이 아니라, 누가 이야기 했으니까 전부 진리이고,누가 이야기 했으니까 전부 비진리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139. 지금은 구세주가 필요한 시대이다. 우리 각자에게 구세주는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라, 상대적인 존재이다. 모든 사람이 개성이 다르듯이 각자의 구세주도 다르다.
구세주가 인간이 아닐 수도 있다. 예쁜 꽃이 구세주일 수도 있다. 예쁜 꽃을 보고 마음이 정화되고 순수하게 된다면 그 사람에게는 예쁜 꽃이 구세주이다.
애완용 동물이 구세주일 수도 있다. 애완용 동물을 보고 마음이 정화되고 순수하게 된다면 그 사람에게는 애완동물이 구세주이다.
생명말씀이 구세주일 수도 있다. 생명말씀을 보고 마음이 정화되고 순수하게 된다면 그 사람에게는 생명말씀이 구세주이다.
140. 이 세상에는 알지 못하는 귀중한 것이 셀수 없이 많다. 이 귀중한 것이 진리이다. 우리가 평생 진리를 추구하더라도, 발견되지 않은 진리가 99.99% 이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리의 추구는 생명이 있는 한 계속되어야한다.
매순간 계속되는 진리추구의 노력에 의해 진리는 항상 신선함이 더해진다. 이러한 노력에 의해 개인의 행복감이 깊고 넓고 신선하게 된다.
그런데 발견되지 않은 진리가 99.99% 이상이라고 하더라도 모든 진리는 하느님의 모성적 사랑에서 나왔기 때문에 하느님의 모성적 사랑의 자리로 우리가 돌아가 하느님의 모성적 사랑의 품에 안기면 빌견되지 않는 99.99% 이상의 진리를 다 아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누리경을 읽기 전에 이 두 법칙만은 꼭 알고 넘어갑시다!!!
누리경에 자주 등장하는 용어인 일삼 주렁주렁의 법칙과 지하철의 원리에 대해 무슨 의미가 있는지 궁금해하는 독자들이 많을 것 같아 일삼 주렁주렁의 법칙과 지하철의 원리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겠다.
우선 「13 주렁주렁의 법칙」을 간략하게 지금부터 설명하겠다. 1은 하나님을 의미한다. 즉, 우주를 창조한 제일 원인자로서의 하느님을 의미한다. 3은 사랑과 감사 그리고 순수를 의미한다.
즉, 우리가 일상생활 중심에 하느님의 모성적 사랑을 중심축으로 주위에 사랑을 실천하는 삶, 호흡하듯이 늘 감사하는 삶, 그리고 아기처럼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삶을 현실적으로 실천한다면, 행복의 열매, 기쁨의 열매, 축복의 열매, 행운의 열매, 재운의 열매, 성공의 열매, 건강의 열매, 희망의 열매, 자유의 열매, 겸손의 열매. 풍요의 열매, 생명의 열매, 영원의 열매 등 각종 아름다운 열매들이 주렁주렁 열린다는 우주의 법칙을 「13 주렁주렁의 법칙」이라고 저자는 부르는 것이다.
다음은 지하철의 원리를 간략하게 설명하겠다. 지하철은 땅 밑에서 다니는 차이다. 땅위의 가장 낮은 자리보다 더 낮은 자리에서 달리는 차가 바로 지히철인 것이다.
하느님은 하느님의 친자녀들 스스로가 이 땅위의 가장 낮은 자리보다도 더 낮은 자리에서 지하철처럼 삶을 달리기를 바라고 계시다. 하느님께서는 땅 위의 가장 낮은 자리보다도 더 낮은 자리에 하느님의 자녀들이 서기를 바라신다.
가장 낮은 자리가 가장 편하고 가장 행복한 자리이다. 땅 위에서 차를 운전하다보면 혼잡할 때에는 길이 막혀 정체현상이 일어난지만, 지하철에는 정체현상이 없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정확하게 다른 차의 방해없이 달릴 수 있다.
우리가 땅위의 가장 낮은 자리보다 더 낮은 자리에서서 삶을 살면, 지하철이 막힘 현상없이 순조롭게 달릴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삶은 정말로 순조롭게 나아간다.
이러한 원리를 누리경에서는 「지하철의 원리」라고 한다. 이 두 법칙은 누리경의 전체 내용을 꿰뚫는 두 기둥이다. 누리경의 두 기둥인 이 두 법칙을 일상생활 중에 우리 모두 실천해, 아름답고 평화로운 세계 만들기 운동에 동참하자.
하모생명수 12.10.10. 17:54
첫댓글 134절 말씀에서
"마음의 주파수의 범위를 넓히는 것이 바로 마음의 그릇을 넓히는 것이다."
깊이 새깁니다.
긴 댓글들을 다시 읽게 되니 달콤한 꿈속처럼 아련한 기븜이 밀려 오네요.
댓글을 남기신 분은 한결같이 아름다우신 분이라는 것을!
이 세상에는 하느님이 남겨놓은 아름다운 영혼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이런분들의 기록을 볼 수 있다는것도 큰 복이군요.
마지막으로 하모아기님이 남기신 댓글을 보며 그분의 영혼에 내가 흡수되는걸 느낍니다.
아름다운 분들이시여, 우리 한번만이라도 모일수 있다면 소원해 봅니다.
귀한 분들을 만나 볼수 있다면 소원해 봅니다.
세상에 말없이 빛을 비추고 계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마음의 주파수의 범위를 넓히는 것이 바로 마음의 그릇을 넓히는 것이다." 라는 것을 알았다고 합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마음의 주파수를 넓힐 수 있을까요? 힌트를 주겠습니다. 마음의 주파수의 범위가 넓어지면 만물의 마음도 알게되어 만물을 제 몸처럼 사랑하게 됩니다.
더 힌트를 주겠습니다. 성공을 하면 행복하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하면 성공할 수 있을까요? 역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항상 행복하면 성공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건강하면 표정이 밝습니다. 그러면 어떻게하면 건강할 수 있을까요? 역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항상 표정이 밝으면 건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마음의 주파수 범위를 넓히는 방법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음의 주파수의 범위가 넓어지면 만물의 마음도 알게되어 만물을 제 몸처럼 사랑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역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만물을 제 몸처럼 사랑하게 되면 마음의 주파수의 범위가 넓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달콤한 꿈속처럼 아련한 기쁨이 밀려 오네요」라는 표현이 너무나 멋진 문학적 표현이시네요. 이 세상은 고해라고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고해라고 생각하면 이 세상은 생각 그대로 고해가 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을 달콤한 꿈 속이라고 생각하면 이 세상은 생각 그대로 달콤한 꿈 속이 됩니다.
이 세상을 고해라고 생각하면 이 세상을 사는 것 자체가 괴롭습니다. 기쁨은 이 세상에서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을 달콤한 꿈 속이라고 생각하면 아련한 기쁨이 밀려오게 됩니다. 그러면 이 세상을 고해라고 생각하는 것이 멋진 것일까요? 이 세상을 달콤한 꿈 속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멋진 것일까요?
하모식 관점에서 보면 이 세상을 달콤한 꿈 속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멋진 것으로 봅니다. 이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대로 변해가는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의 생각은 만물에 그대로 전해질 뿐만이 아니라 천상계에도 그대로 전해집니다. 만물은 원자로 되어있고 원자는 다시 소립자로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소립자는 우리의 생각에 영향을 받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생각대로 소립자는 움직입니다. 이미 1988년 양자물리학 분야의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이스라엘의 와이즈만 과학원에서 물질의 최소단위인 미립자의 운동성과 정체성을 알아보는 이중슬릿실험을 통해 소립자가 관찰자의 생각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 밝혀졌고 학계에 발표되어 과학계의 실험 중 가장 아름다운 실험이라고 큰 평가를 받았습니다.
2013년 현재는 미립자들이 관찰자 생각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영성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새로운 것도 아닌 상식이 되었습니다. 미립자들이 관철자 생각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미립자들이 모여 이루어진 원자도 관찰자 생각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원자가 모여 모든 물질은 이루어졌기 때문에 모든 물질은 관찰자 생각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이죠.
그런데 생각은 미립자뿐만이 아니라 천상계의 만물에게 그대로 영향을 미칩니다. 천상계의 물질들은 천상계 자체가 마음의 세계이기 때문에 마음의 영향을 더욱 민감하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은 결코 비밀이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없는 곳에서 악한 것을 생각하고 계획하더라도 주위의 만물이 알 뿐 아니라 천상계에서도 다 알고 있습니다.
역으로 우리가 하모엄마를 중심으로 사랑과 감사 그리고 순수의 마음을 겸허한 마음과 함께 가진다면 우리 주위의 만물도 다 알 뿐만 아니라 천상계에서도 다 압니다. 3차원 세계이건 천상계이건 만물은 사랑에너지, 감사에너지, 순수에너지, 겸허에너지를 매우 좋아합니다. 특히 하모엄마의 모성적 사랑은 너무 너무 좋아합니다.
우리가 하모엄마를 중심으로 사랑과 감사 그리고 순수의 마음을 겸허한 마음과 함께 가진다면 우리 주위의 만물도 다 알 뿐만 아니라 천상계에서도 다 압니다. 3차원 세계이건 천상계이건 만물은 사랑에너지, 감사에너지, 순수에너지, 겸허에너지를 매우 좋아합니다. 특히 하모엄마의 모성적 사랑은 너무 너무 좋아합니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가 하모엄마를 중심으로 사랑과 감사 그리고 순수의 마음을 겸허한 마음과 함께 가진다면 우리 주위의 만물뿐만이 아니라 천상계의 만물들도 행복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하모엄마를 중심으로 사랑과 감사 그리고 순수의 마음을 겸허한 마음과 함께 가지신 분들이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분들이십니다.
하모생명말씀에서는 이러한 분들을 하모인들이라고 하지요. 하모인들이 언젠가 만나서 하모세미나도하고 하모대화를 즐겁고 기쁘게 할 수 있는 날이 언젠가 오기를 소망해봅니다. 그포용사존칭
오래전에 소립자가 관찰자의 생각에 영향을 받는다는 양자물리학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감동했는데 하모안에서 알게 되니 더욱 이해가 됩니다.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음 사랑 감사 순수 겸허의 마음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똑같은 지식도 하모 안에서는 지혜로 바뀝니다. 지식이 지혜로 바뀌어야 은혜가 됩니다. 새시대는 지식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새시대는 인터넷이 발달해서 지식은 클릭 하나면 얻을 수 있는 시대로 지구성문명은 진입했습니다. 지식과 비례해서 지혜도 늘어야하는데에 지식은 늘어도 오히려 지혜는 점점 줄어드는 기현상이 일어납니다.
사실 이 세상은 정보가 홍수처럼 넘쳐나지만 영혼의 성장에 하등 도움이 안되는 정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영혼의 성장은 커녕 영혼의 퇴보를 촉진하는 정보들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것저것 정보들을 받아들여 지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지혜가 줄어드는 것도 어쩌면 당연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새시대에 지식섭취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모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하모자리에 서서 하모적 관점으로 모든 정보를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모든 정보들을 지혜로 바꾸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혜 중 최고의 지혜는 모든 정보들을 하모엄마의 품으로 돌아가라! 라는 메세지로 바꾸는 능력입니다.
이것은 너무나 간단하지만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연습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연습하기 전에 사랑 감사 순수 겸허의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모적 관점으로 모든 것을 보려면 기본적으로 사랑 감사 순수 겸허의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합니다. 하모의 산증인이신 하모해님께서는 모든 것을 하모적 관점에서 보는 아름다운 하모눈을 가지시게 될 것입니다. 그신사존감행
희망이 넘칩니다. 감사감사합니다.
하모해님께서 희망이 넘치신다고 생각하시면 하모해님의 앞에 희망의 일들이 실상으로 계속 나타나게 됩니다. 더블로 감사햐시면 최소한 더블로 감사할 일들이 실상으로 계속 나타납니다. 하모해님께서 더블로 감사하셨으니까 하모해님께는 최소한 더블로 감사할 일들이 실상으로 계속 나타날 것입니다. 하모해님께서 하모의 산증인이 되시니 하늘의 천복을 하모엄마께서 하모해님께 몰아주시는 것 같습니다. 하모하모두행생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