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이가 몇 등을 했는지 희미하게 보여주는 장면에서 볼 수 있듯이, 영화는 결코 인간 승리의 드라마로 빠지지 않는다. <말아톤>은 놀랍게도 이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를 나누지 않고)을 어루만지며 현실로 안착한다.
- 말아톤 영화를 보고나서
말아톤을 우리가족 모두가 일요일 저녁 늦은 시간에 영화관에서 보았다.
집사람은 영화 상영 내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자폐아 자녀에 대하여 끝없이 투입하는 엄마의 마음" 에 안타까워 가슴까지 아파왔다고 한다.
장녀는 너무 너무 화가 난다고 한다. 왜 하나님은 초원이를 자폐아로 태어나게 하였는지 그리고 일곱살 막내 딸은 슬프다고 하면서 엄마 자폐아가 뭐냐고 자꾸 물어본다.
1,000명중 한명이 자폐아라는 현실을 우리는 정확하게 직시하면서 세상을 보는 자세를 고쳐야 할 것 같다.
말아톤 영화를 통하여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될 것이다.
가족보다 더 큰 사랑은 이 세상에 없으며,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절대적 사랑을 다시 한번 확인 할 수 있을 것이다.
말아톤 영화를 보고 난 후 우리 가족은 사랑의 강도가 달라졌다. 우리 가족은 영원히 하나임을 ......
말아톤은 400만이 보았다고 합니다. 말아톤에서 살펴보는 가족의 역동은 우리에게 도움이 됩니다.
말아톤은 엄마가 환자아이를 돌보면서 생기는 가족의 역기능이 있습니다. 환자인 아들을 돌보느라 다른 아들과 아빠는 어디로 가고 없는 그림자가 되고 맙니다. 엄마는 아이를 돌보다가 아이에게 매이고, 아이를 통해 자신의 뜻을 실현시켜가는 과정에서 밀착된 엄마와 아이의 모습, 상호의존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뒤늦게 자신과 아이가 너무 밀착되었음을 깨닫고, 내뜻으로 한 마라톤이니 마라톤을 하지 말라며 강요하는 어머니는 그때까지도 어떻게 자녀와 자신을 분리해야 하는지를 모릅니다. 결국은 자폐아 아들이 자신이 선택한 마라톤이었음을 말하면서 스스로 엄마의 손길을 뒤로하고 마라톤을 하는 것입니다. 엄마와 아들이 동등한 인격으로 자신의 의견이 엄마와 다를 수 있음을 표현한 것이고, 그렇게 다녀오는 아들을 기쁘게 안아주는 모습에서 분리되는 엄마와 아들의 모습을 봅니다.
하지만 영화에서 보여지지 않는 것은 엄마와 아들의 밀착에서 오는 아빠의 고통과 소외는 아마도 너무 크기에 지방에서의 근무를 선택하고, 엄마와 아들의 상호의존적 관계에 끼어들을 틈이 없어서 떠나있는 모습이 되게 되었답니다.
둘째아들의 고통과 소외, 고통, 역기능적 행동의 모습을 보면서 둘째로 태어나 사랑받지 못하고, 고통당하였던 많은 사람들이 떠오르는군요. 더군다나 엄마가 아픈 사람만을 챙기니까 자연히 소외된 아빠와 하나될 수 밖에 없는 관계를 보게 되고..... 많은 아픔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엄마가 마라톤 경기에 나가지 말라면서 손을 붙잡고 못하게 하는데 그 손을 빼서 마라톤을 시작하는 그 순간... 손을 빼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러 가는 순간이 분리와 주체적 인간임을 드러내는 순간이었지요
마라톤 경기에 출전하는 주체적 결단을 하는 것으로 분리와 독립을 선언하는 아들이 되고, 그 아들의 분리와 독립을 허락하는 어머니가 되는 행복한 결말을 보았지요.
마라톤을 통하여 엄마와 아들이 상호의존과 밀착의 관계에서 벗어나게 된다면 아빠와의 관계, 둘째 아들과의 관계도 개선될 수 있겠지요. 보다 행복하고 다정한 관계를 회복하는 기능적인 가족이 되었을 것이라고 믿어보네요...
<줄거리>
얼룩말과 초코파이를 좋아하는, 겉보기엔 또래 아이들과 다른 것 하나 없는 귀엽고 사랑스럽기만 한 초원. 어느날 초원이는 자폐증이라는 청천벽력같은 진단을 받게 되고, 엄마 경숙은 감당할 수 없는 현실 앞에 좌절한다. 그러나 경숙은 초원이가 달리기에만큼은 정상인보다도 월등한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하고, 달릴 때만큼은 남들과 다르지 않은 아들의 모습에 희망을 갖고 꾸준히 훈련시킨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20살 청년이 된 초원. 그러나 지능은 여전히 5살 수준에 머물고 있다. 모르는 사람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방귀를 뀌어대고, 동생에겐 마치 선생님 대하듯 깍듯이 존댓말을 쓰고, 음악만 나오면 아무데서나 특유의 막춤을 선보이기 일쑤이니, 어딜 가든 초원이가 있는 곳은 시끄러워지기 마련이다. 하는 짓이나 말투는 영락없는 5살 어린애이지만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해온 달리기 실력만큼은 여전히 최고인 초원. 경숙은 자신의 목표를 ‘초원의 마라톤 서브쓰리 달성’으로 정하고 아들의 훈련에만 매달린다.
어느 날 세계대회에서 1등을 한 전력도 있는 전직 유명 마라토너 정욱이 음주운전으로 사회봉사 명령을 받고 초원의 학교로 오게 된다. 경숙은 애원하다시피 해서 기어이 정욱에게 아들의 코치 역할을 떠맡긴다.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초원을 성가시게만 생각했던 정욱. 하지만 초원과 함께 시간을 보낼수록 그는 아이같이 순수하고 솔직한 초원에게 조금씩 동화되어 가고, 초원도 정욱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정욱은 매번 속도조절에 실패해 지쳐 쓰러지기는 하지만 지구력이 남다른 초원에게서 마라톤 서브쓰리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본격적으로 훈련에 들어간다.
한 편 불성실하게만 보이는 정욱이 도통 미덥지 않은 경숙은 어느날 정욱과 말다툼을 벌이게 된다. “‘자식 사랑과 집착을 착각하지 말라”는 정욱의 말에 아무 대꾸도 할 수 없는 경숙. 경숙은 정욱의 말대로 이제껏 ’좋다’, ‘싫다’는 의사 표현도 할 줄 모르는 아이를 자신의 욕심 때문에 혹사시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이제껏 쌓아온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듯한 기분의 경숙. 그녀는 이제 마라톤도, 서브쓰리도 모두 포기하기로 마음먹는데...
희생보다 아름다운 자립의 순간
<말아톤> 속의 엄마 경숙. 그녀는 이미 자신을 위한 삶은 포기한지 오래다. 자폐증 아들에 대한 경멸적인 시선, 독하고 극성스러운 여자라는 주변의 따가운 눈길, 신경써주지 못한 사이 자꾸만 비뚤어지는 둘째 아들, 주위의 모든 것이 그녀를 힘들게 하지만 그녀는 그런 것들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다. 그녀의 목표는 오로지 자폐아 아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렇게 그녀는 희생을 감수하며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집착으로까지 보이는 그녀의 행동들은 우리가 짐이라고 느꼈었던 우리들 부모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엄마는 수십년간 잡고 있었던 아들의 손을 마지막 순간까지 선뜻 놓지 못하지만 아들은 끝내 그 손을 놓고 달려나간다.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남을 수 있음을 그렇게 증명해 보이는 것이다. 그 모습을 목격하며 우리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은 제 스스로 온전히 설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음을. 또한 그토록 진저리쳐지고, 족쇄로만 느껴졌던 부모란 존재가 없었다면 그러한 순간은 오지 못했을 것임을.
말아톤, 영화속 인물 이라기 보다는 말아톤의 소재를 제공했던 실제 인물, 자신을 희생하여 자폐아를 마라톤 완주를 시킨 그 어머니가 텔레비전에 소개 되었던데, 6유형의 어머니 더라구요.
6유형의 성실함, 지치지 않는 끈기, 교육열, 다른 유형은 흉내내기 힘든 모습입니다. 좋은어머니 아버지의 소질이 다분한 사람들이예요.
다른 유형의 부모님들도 교육열이 높으신 분이 많지만, '희생적' 이란 표현이 6유형의 부모처럼 잘 어울리지는 않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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