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림읍 상명리의 새로운 도전
대문을 없앴으니 이젠 손님을 맞이해야죠
여름철 찌는 듯한 무더위를 참는 것만큼이나 상명리를 찾아가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서너 번을 차를 세우고, 위치를 물어본 후에야 도착할 수 있었다.
굽이굽이 나 있는 길하며, 돌담들이 전형적인 제주의 중산간 마을이다. 차를 타고 마을을 한바퀴 돌아보니 정말 대문이 없다. 방패를 내던져버린 집의 마당은 누구든 반갑게 맞이할 준비가 돼 있는 듯 하다.
상명리사무소에 차를 세워두고 두리번 거리고 있으니 “누게 찾아 왔수과”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마침 그 할머니집이 얼마전에 대문을 없애고 정낭으로 교체한 곳이다. 할머니의 등 뒤로 철재대문도 보인다.
(할머니 옆으로 예전에 있던 대문이 보인다)
김옥련 할머니께서는 “이장님이 영 대문을 ?z으민 관광객도 하영 왕, 돈 하영 벌게 된댄 허난 기대해 ?c수다”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면서도 연신 자신의 집을 쳐다보는 것이, 아직까진 대문이 없는 게 허전한가 보다.
밭에 비료를 가져가야 한다는 할머니를 도와 비료 한 푸대를 차에 싣고 콩밭으로 가는데, 가는 동안 내내 고맙다고 한다. 끈으로 짊어져서 가려고 했다는 것이다. “저 짝드래 가민 대문어신 집들 하영이서”라고 하셔서 가리켜 주신 곳으로 이동했다.
길을 따라 서 있는 집은 대문이 없다. 아직까지 공사가 마무리 되지 않아서인지 대문은 없고 기둥만 덩그렇게 남아 있는 집도 있다. 이 가운데 장석진 상명리장의 집도 있었다. 혹시나 하고 들어갔더니 마침 집에 있어서 여러 가지를 물어볼 수 있었다.
“처음엔 마을 전체를 다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예산도 많이 모자랐구요, 그래서 한 50가구 정도만 생각했었죠. 그런데 주위의 많은 관심과 도움이 있어서 상명리 120여 가구 전체를 대상으로 대문 없는 마을을 추진해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야 새롭게 대문을 만들었거나 제주도의 옛 풍습인 정낭에 대해 이해를 못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어려운 점도 많다고 했지만, 많은 주민들이 동참해줘서 큰 힘이 된다고 한다.
오면서 만났던 김옥련 할머니의 말씀을 전하자 장석진 이장은 “여기서 그칠 생각은 없습니다. 정말 생각지 못하게 전국적인 관심을 끌게 됐지만 앞으로 추진해야 할 일이 더 중요하고 힘들거라 생각합니다.”라며 무엇보다 주민소득향상과 직결되는 사업추진에 대해 깊이 고민한다고 했다.
(장석진 상명리장)
우선 내년에 마을 안길을 야생화로 덮으려고 한다는 말에, 주민소득과 어떤 관계가 있냐고 물었다. “마을주민이 들꽃을 재배하면, 전량을 구매할 계획입니다. 그 자금은 조건불리지역 직불제 수익금으로 할 생각입니다. 올해도 직불제 수익금은 농로청소를 하면서 지역주민 모두에게 혜택이 가도록 했습니다.”라고 했다. 무엇보다 직불제 수입을 마을주민에게 반드시 환원해야 한다는 이장의 말이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장석진 이장의 좌충우돌 마을발전을 위한 노력은 끝이 없어 보였다. 며칠 전엔 제주도에서 발간하는 관광안내지도에 상명리를 ‘대문 없는 마을’로 표기해 달라고 했단다. 오늘도 도청에 가서 청정에너지에 대한 팜플렛을 보고, 이러한 시설을 유치할 수 없을까하는 생각을 했단다. 출향인사들과의 인적네트워크도 준비 중이다.
(상명리장의 집 : 정낭과 맷돌문패, 태극기가 보인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됐느냐는 질문의 답이 재미있다. “예전에 어디에 가서 상명리장이라고 하면, 어느 읍에 속한지도 모르더군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상명을 알리기 위한 고심끝에 정낭, 맷돌문패, 태극기 게양을 마을의 상징으로 내세우기로 했습니다.”라고 한다. 대문없는 마을을 보기 위해 여기 저기서 찾아오고 있다니, 이제 절반의 성공은 거둔 셈인 것 같았다.
망오름 산책로의 조성이 끝나가고 있다고 했다. 애월에서 한경까지 해안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새로운 명소가 생기는 것이다.
아마도 다음에 상명리를 찾아갈 때는 야생화 향기 속을 거닐고 있는 관광객들과 함께 망오름에서 저무는 해를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