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곡리는 자연 부락 신기와 괴정, 마동이란 3개 마을로 이루어 져고
동대산(파군산=함월산=박음산)의 자락에 크게는 흔히 신기골짜기와
괴정골짜기, 마동골짜기로 제법 큰 하천(큰그랑)을 사이에 두고 건너건너
있으며 주로 마을은 하천 부지의 삼각주에 해당 된다고나 할까?
흔히들 자갈밭이라고 멸시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가장 빨리 돈 되는 땅이 되어
그 자리 그 곳에 굳굳이 지키던 사람들은 대게 돈벼락을 좀 맞았나 싶다ㅎㅎ
개인적으로 매곡리를 알게 된 것은 작은 고모댁이 괴정에 약수댁이라 하여 사셨고
불행한 야그지만 우리 할베는 5대 주손이면서 넘 빨리 가장이되고 여러 정황상 거의
알거지가 되다시피 하여 괴정마을의 김녕 김씨들 집안에 넘기다 시피 하셨다 한다..
고종 형님들과는 나이 차가 많지만 그나마 고모댁 다닌다고 어릴적 부터 심부름으로
왕래하면서 잘 알고 있었고 재내 장등만디를 해서 마동천을 건너면 하천부지 작은 솔밭이
있었고 그기엔 곰이 외가집이 있었다, 그리고 좀더 마을 초입에 들어서면 과거 해열이네
그리고 방았간 또 마을 안길의 작은 개울의 다리를 건너가면 갱환네, 정숙이네 또 반대편
좀 높다란 자갈밭 뒤편에 옥희네..또 생각나는 것은 초등 친구 유만이란 칭구의 집도
아마도 갱환네와는 가까운 곳이였나 싶다.
그렇게 50여m를 걸어가믄 괴정 당수나무 느티나무가 엄청크게 버티고
있었고 이곳은 마을 안길의 작은 사거리 였다, 그리고 직진하면 고모댁과
또 초등동기 김연옥이네(두열형) 하지만 지금은 월드메르디앙의 대단지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다 마을 전체가 사라지고ㅠㅠ
또 우측으로 가믄 채근네 그리고 명숙이 마을 마동으로 올라가는 길이고..
좌로 가믄 신기로 가는 보리밭, 자갈밭이 길양편에 있었고
그리고 그 인근엔 경열이 형과 또 김?준 형의 집과 반대측엔 또
약수서 시집온 내겐 재재종 할머니(약수의 채맥, 채흥 고모)가 사시었고
그러다 그 분들은(전화국 다니셨음) 시내로 나가 살았었고..
나의 고모님만 90년대 초반까지 사시다가 유일하게 대를 이은 손주에게
그나마 계시다 거의 90이라는 수를 하시고 포항에서 돌아 가셨다..
나의 고모님은 불행하게도 3남 2녀를 두셨지만 장남을 일찍 보내고 며느리 마져
재혼하여 나간지라 어린 손주를 아들처럼 우리 수야 하시면서 어렵게 키우셨고
남은 두 아들 마져 고달픈 삶을 살아 고모님껜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셨다.
그리고 그렇게 아끼고 아끼던 금쪽같은 수야란 넘은 나와 같이 포항 살다
내가 울산으로 이주 후 여러 무성한 소문만 나고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아직도 노총각으로 살것인데 알 길이 없다, 이러듯 괴정의 김녕김씨 집안에
시집가신 고모님을 생각하믄 아직도 안타까운 맘 이루 말 할 수없다........
각설하고 이렇게 괴정이란 마을은 내게도 상당한 추억이 깊은 곳이고
또한 제내란 마을은 작고 거의 빈촌이였다고나 할까 대체로 좀 빈곤했었고
동천강이 옆에 있고 마동 마을이 뒤에 위치하고 있어 어릴적은
흔희 밥만 먹고 나믄 동천강 아니믄 마동골짜기 어딘가에 놀고있었다..
제내 마을 또래들이 나무하러 동대산에 오를때 같이 놀려고 따라 다녔고
물론 곰이도 있었어 산불난 곳의 소나무를 베러 다닐때 같이 어울려 놀았던
기억이 나며 여름엔 마동골짜기 소풀미기러 또는 당시에 전쟁때 사용되었던
이름이 생각안나네..아마도 추정컨데 다이나 마이트 심지가 천은 삮아 없어지고
검정색 불 잘붙는 것만 남아 마동 골짜기의 소나무 밭에 주우러 다니던 기억고
특히 마동 골짜기는 가재와 칡이 많아 많이 잡고 캐러 다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최근 몇일전에 가보고 넘 많은 실망을 했다, 무슨 이유인지
하천정지, 정리 작업 일환인지 모르지만 골짜기 입구부터 깊은 곳까지 자연석과
시멘트벽으로 3면을("ㄷ"자형) 송두리체 한 덩어리로 만들어 자연미란 없어졌다..
가재는 고사하고 지하로 스며드는 지하수 량도 많은 영향이 있을것 같다,
또한 문제는 그 지형 전체의 모양이나 골짜기를 이루고 있는 자갈과 흙의 성향을 파악
해서 향후 추가적인 사태나 흙의 유실이 일어나지 않는 다면 그럴수도 있겠지만
잘 알다시피 그 곳은 골이 깊다 쑥 들어 가다가 막판엔 거의 급경사로 되어 있고
산비탈이 모두 자갈과 흙으로 되어 계속적인 자연사태가 나게되어 있다.
물길과 풍선은 한 쪽을 막으면 분명 다른 한 곳으로 또 새게된다, 설령
그 골짜기에 어떤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과거 처럼 아래에 농사나 아님 식수를 못해
큰 피해를 주는 상황도 발생 않을 텐데 비싼 돈 들여 어설푸게 막아 요즘같이
이상 기후로 집중호우 한 번와 버리면 새로운 곳으로 물길이 또 날것인데
어떻게 그때마나 비싼돈 들여 공사 할것인지 차암~~
제내 마을엔 마을이 작고 유실수가 거의 없었기에(포도와 배밭은 70년대 이후 생김)
해서 이웃마을로 설이 또는 주우러 다녔는데 마동 입구의 하천가의 논둑옆
큰 살구나무가 많아서 살구 주우러 다녔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신기는 어릴적에는 말로만 들었고 사실 어딘지 몰랐으나 그의 다 커서 중학교 졸업
전후쯤 될려나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유영이네와 남준이네 그리고 또 누군지 기억은
없지만 또 어떤 여자 친구집에 간적이 어렴풋이 나고 특히 유영이네는 정숙이와
더불어 여러번 갔었던강 싶다..
당시만 해도 유영이 집어귀엔 담배 말리는 흙벽으로 된 담배 건조장이 서 있었고
또 신기, 괴정, 마동 마을 입구 하천부지에 닥나무로 문종이를 만들었던 곳도 있었지?
지금 기억은 대체로 괴정의 김녕김씨 집안이 비교적 좀 살았나 싶고
그 밖엔 모두가 어렵게 산 흔적들이...자갈밭 일궈 들께 담배, 삼베, 뽕나무 누에, 콩,
그리고 고구마 등이 주생 산 품목 이였던것 같다,
그러다 새마을 운동과 산업화가 되면서 마동천, 괴정천, 신기천과 합류한 신천천에
골재 채취와 돌 망태기 체우는 부업으로 돈을 벌기도 하였고 누구나 모래체를 준비하여
모래를 쌓아 팔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신기마을 회관이 현대식으로 번듯하고~~~~>
<마을 앞의 고층 아파트에서 내려다 신기와 괴정~~
그나마 과거의 유영이네는 아직도 옛 모습 간직하지만
남준이네 집은 현대식 뭔가 건물이 들어 선듯 그자리인가 싶은데..>
<이 집이 유영이네 집이였던가 싶은데 맞나~~
소시적 담넘어 염탐하던 기억으로 살짜기 넘어다 보았네 그려..>
<마을 안 체전밭엔 언저리엔 아직도 닥나무가
자라고 있어 옛날 모습이 생각나서....>
<뉘 집인강 신기에서 가장 멋있는 집인듯~~
이쁘게 잘 가꾸어 놓았다 >
<저 건물자리가 남준이네 집터 같은데~~
어지된 영문인지 모르겠네요 허 사장 우째된겨
어렴풋한 기억으로 분명히 맞는 것 같은데....
하긴 가대 명환네도 내가 잘못 알았었더라..>
<신기마을은 유별서리 이 넘의 엄게 나무가 많다
배수가 잘되고 하니 나무가 잘 자라는가 보다~~>
<이 나무에는 올라가서 따기 쉬워라고 나무를
얼기설기 역어놓았다~~>
<이 엄개나무는 넘 잘 생겨서~~>
<이 어린이집은 운영한지가 그리 오래안되었는데
문을 닫았는듯 하여 안타깝다~~>
<허 사장과 점심 한끼하고 신기를 돌아 괴정으로 넘어 왔는데
좀 이상한 괴정마을은 없어졌나 매곡마을 회관 입구란 버스정류장이
좀 낫설어 보인다, 괴정이 매곡으로 바뀌었나, 아님 마동과 합치믄서
매곡마을 회관이란 이름으로...누가 좀 설명을 해 주믄..>
<괴정마을 사거리엔 제당나무는 흔적도 없고 월드메르디앙
아파트 신축공사장만 요란하게 보이고 모든 것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ㅠㅠ>
<사거리 남으로는 정숙이네 갱환네가 나란히..
현대식으로 다 바뀌었고 과거 기와 지붕은 흔적고 없다..
또한 옥희네가 있던 자리는 무슨 아파트가 보이네...>
<채근네도 다 현대식으로 바뀌었고ㅠㅠ>
<한바뀌 돌아 나오면서 괴정입구에서..
과거 해열이네와 방앗간이 서 있을 자리가 흔적도 없다..>
<제내 마을에서 괴정으로 넘어가는 마동천 괴정다리 앞에서
과거엔 작은 소나무 밭과 곰이 외가 집이 있던 곳...
이리저리 모텔까지 들어 서 있고..>
<여기서 부터는 마동입니다..
마동에는 우리 동기는 거의 없고 심맹수기만 있지?.
한 해 선배나 후배들은 많은 편인데.....>
<마동의 제당나무는 특이 하게 소태나가 제당나무이다..
내 어릴적 엄마 젖을 몬떼가 엄마가 소태나무 액을 젖꼭지에 묻쳤던
어렴푸이 기억난다,, 옛날 생각에 작은 줄기 하나를 꺽어 물어 보니
과연 소태다 얼마나 오래가는지ㅎㅎ>
<마동에서 심맹수기 집, 또 조정희 시댁으로 갈라믄 이 다리를 건야함
오래전까지는 다리 앞에 연자방아 돌틀이 큰게 있었는데 골동품이라고
누군가 가졌나 보네...>
<2005년 4월 16일 채욱이와 우연히 마동골짜기 답사 산행
갔다가 잡은 가재들을 참고로 같이 올려 봅니다...>
첫댓글 호야,사진 잘 보았네, 참고로, 농소어린이집은 도로확장구간에 들어있어 청룡암입구쪽 정일품식당옆으로 이전개원하였네,2007년초인가에, 고향의 추억거리 사진으로 남겨줘서 고맙네,
음 그렇구나,,,어쩐지 의심스럽두만~~
촉촉하게 봄비 내리는 주말 아침 그리운 내고향 소식과 사진을 접하니 가슴이 찡하고 눈물마저 핑 도는구나.. 우리집 맞고요.. 담장이 다 무너진 모습이지만 엄마 생각에 목이 메이는구나... ㅠㅠ 수고 많았고.. 고마워~
글체 담장이 요즘은 와 그래 낫노,,,들여다 보믄서 함 불러보고 싶었다아ㅎㅎ
아 참, 괴정은 진짜 골목골목 구석구석까지 상세하게 기억해 냈구나. 어렴풋이 떠오르는 내 기억속의 추억들을 스멀스멀 기어 나오게 하는... 추억여행 잘 하고 간다. 주말 잘 보내고, 항상 건강해라. 고향에 몽이 네가 있어 참 좋다^^
고모댁이라 자주 갔었지...해서 이웃 행님들도 왠만하믄 알지~~
부지런한 몽님이여 앞만보고 달린 시간속에서 잠시의 휴식시간이 지나온 세월을 회상하네요. 감~~~~~사
나는 옛날에 이동네 입구만 봐서 기억이 전혀 없다...글치만 옛날과 현대가 공존하여 격세지감이 느껴지네...그 꼴짝 가재 아직 있는강...된장찌게 맛있게 끓여 먹었는데..
중간에 글씨 함 읽어바라 가재는 멸종되었었다,,,계곡을 없어버리고 인공 수로를 맹글어서...안타깝다..
아~ 글쿠나...아까버라...
또 보고 간다 추억이 많은 당수나무도 무성하게 잘 자라고 있고... 우리집 대문옆에 엄나무 있었는데 안보이네.. 엄나무 잎 따면 택배로 보내주시곤 했었는데...... 그리워라
영아 부모님이 그립겠구나! 나두 고향마을 보면서 부모님 생각에 가슴이 찡 하더라 고향에 몽이란 칭구가 있어 추억의 사진들을 볼수있어서 고맙지....
자주 다니지만 사진으로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이날 백일몽이 사무실에 와서 커피한잔에 돼지국밥 한그릇씩 하고 매곡마을 촬영을 한다길래 같이 동행을 할려고 했는디 바쁜일정 관계로 못해 미안코 세세히 잘 올려 노았네 허준 고향집이 맛고요 소유주는 형님 2년전에 매각해서 경주에 대토했다네 그냥두었으면 대박인데 아쉽다.유영이 집에 이찌꾸 많이 따 먹었는데 옛 추억이 그립구나.....
그렇제?... 아주아주 어릴때 여름이면 당수나무 아래가 놀이터였잖아.. 그 곳에 가면 친구들이 많이 있었잖아 그자?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도 하고... 그 친구들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고 보고싶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