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책장 정리를 했다. 서가에 꽂혀있는 빛바랜 책들, 거기 있는지조차 몰랐던 낡은 책들을 과감하게 솎아내어 손수레에 가득 실었다. 수레 바퀴가 잘 나가지 않을 정도로 넘치게 담아서 흔들흔들 힘겹게 아파트 현관문을 빠져나왔다. 분리수거장 폐휴지 통에 책을 한 묶음씩 들어 버리는데 한 권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이건 버릴 수 없지, 얼른 주워들었다.
<10,000원으로 행복해지는 101가지 웰빙마사지>
2004년도에 출판된 책이다. 출판사는 영진닷컴. 책 값은 제목에 나와있는 1만원이다.
내가 구입하여 한 대상자를 위해 사용했는데, 그 대상자는 질풍노도와 같은 중학생 시절의 내 딸이다.
지난 시절 우리 둘 간의 불화를 전적으로 내 탓이라고 하기에는 억울하여 책임을 50대 50이라 말하면 딸아이는 뭔가 말하려하다가 입을 다문다. 지나간 일이고 지금 다퉈봐야 의미 없는 일이기에 귀찮은듯 패스하려는 눈치이다.
딸은 나와 맞지 않았다. 기질이 서로 달라서 이방인처럼 상대가 답답하고 이해할 수 없었다. 거의 매일 다툼이 있었다. 한국 사회에서 부모 자식 간, 연장자 연소자 간의 차이가 엄존하므로 나의 잔소리가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는 듯했지만, 감정의 골이 깊어갔다.
교육학의 이론도 유명 강사의 강의도 실효가 없었다. 왜 그랬을까? 나도 심했고 저도 심했다.
그런 날들이 반복되니 견고하던 부모 자식간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상처입은 듯한 아이는 점점 무표정하게 되고 나와 거리가 멀어졌다. 이런 저런 말로 관계를 회복하려 했지만 더 엉켜버리고 풀기가 쉽지 않았다. 그때 생각난 것이 '스킨십'이었다. 이미 감정적으로 미운 엄마가 되어버렸는데 억지로 팔짱을 끼거나 포옹을 하려하면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가 좋아할 리 없었다.
마사지 책을 한권 구입해서 살펴본 다음에 나는 성장판을 자극하여 키를 더 크게 해준다는 구실로 잠자기 전 침대에 누워있는 딸아이에게로 다가갔다. 하루 동안 학교 생활로 지친 아이의 어깨, 팔다리를 지압하고 주물렀다. 처음에는 나도 어색하여 말은 하지 않았다. 거의 매일 저녁에 마사지 스킨십을 하였더니 아이는 긴장을 이완하며 안정을 찾는 듯 했다. 서로 자존심이 있어서 대화는 크게 나누지 않았다. 그러나 엄마의 마사지에 익숙해진 딸아이는 살며시 방에서 나가려는 내 손을 잡곤 했다. 나에게도 변화가 왔다. 내가 낳은 내 아이지만, 그 당시의 미운 모습에 가려 잊고 있었던 갓난 아기였을 때의 예쁜 모습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귀하게 안고 귀하게 키운 장면들이 생각났다.
그로부터 모녀간의 다툼이 극적으로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우리는 툭탁거렸으며 서로 불만을 표출했다. 그러나 아무리 싸웠어도 엄마의 마사지 타임은 어김없이 실행되었고, 그러는 사이에 우리는 나이가 들어가서 싸울 힘이 줄어들었다.
질풍노도 사춘기의 딸과 가까워질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책이다. 그 딸이 잘 자라서 내 곁을 떠났고, 이제 옆에는 남편만 남았다. 몇 페이지 다시 읽어보고 남편을 대상으로 마사지 타임을 가져볼까? 두피를 자극하고 얼굴 압점을 찾아 지압해주면 노안이 좀 젊어지려나 모르겠다. 내 악력이 좋다는 칭찬에 넘어가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조금씩 조금씩...
첫댓글 못하시는게 없네요. 마사지, 참 좋은 접근 방법이셨네요. 정말 자식 키우는 것이 쉽지않네요.
스물여섯살의 사춘기, 이건 더 힘드네요 사춘기는 시절도 없는지, 부모는 애가 타는데 말이죠
예. 동의합니다. 자식 키우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것 같습니다.
우리의 최은영 선생님은 진정한 워킹맘, 아이고 존경스러워라~
아닙니다. 돌이켜보면 후회할 일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