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의 대를 잇는 계당(溪堂)
글 사진 김란기(한국역사문화정책연구원)
정철의 후손들이 대를 이어 사는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담양 남면 지곡리, 지실마을이라 부르는 계곡 안쪽에 송강의 4남 기암 정홍명(69세,畸庵 鄭弘溟1582-1650)이 아버지 송강의 발자취를 따라 아버지의 추억과 함께 시가 남겨진 지실마을 만수동(萬壽洞)에 인가(隣家)를 구입하고 자신의 거처로 삼았다(1616년 始建, 光海 8年 丙辰). 곧 계당(溪堂)이다. 기암은 여기에서 69세까지 살았는데(1650년 10월 타계), 그의 아들 위(同福縣監)때에 잠시 양경지(梁敬之)의 소유가 되기도 했다. 송강의 종5대손인 지촌 정즙(智村 鄭濈, 1646- 1697)의 2남인 소은 정민하(簫隱 鄭敏河, 1671-1754)가 19세 때(1689)에 중부(仲父)인 수환 정흡(守環 鄭潝1648-1709)에게 양자(養子)되면서 이 계당을 다시 매입한 후 지금껏 그 장자들로 내려오고 있다.
이 계곡 안쪽에서 <자미원>이란 이름으로 - 근년에 <바람소리>란 이름으로 바꾸었다 - 부부가 음식점을 경영한다. 송강의 12대손 정구선선생이다. 선생이 말하는 이 건물의 이력은 근년에 와서 더욱 세태에 찌들고 있다고 한다. 계당은 헌종(憲宗) 8년(壬寅 1842年)에 중수(重修)했는데 현재 남아 있는 계당 건물은 1902년(壬寅) 정근(鄭根)의 6세손인 정운오(鄭雲五) 때에 화재를 당하여 소실된 것을 그해 겨울 옛 건물대로 다시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던 이 건물은 6.25전란 때인 지난 1951년 가을에 경찰들과 전투하던 빨치산들의 방화에 의해 안채 등 5동이 불타고 현존하는 사랑채만 남았다.
그 후 1986년에 송강의 15대손 하용(雨田, 鄭夏溶)이 원모습을 그대로 두고 지붕만을 고친상태로 지금에 이른다고 했다.
이 건물은 지실마을을 지나 계곡을 향해 오르면서 개울이 휘는 부분에서 그 입구와 만나는데 현존하는 계당은 남동향(남남동)하고 있다. 이 유적을 지키는 정구선 선생의 거처가 좌측에 북동향하고 있고, 계당 앞마당 우측에는 이전부터 일궈온 화단이 대문까지 이어져 있다. 이 화단은 뒤쪽에 개울과 접하고 비교적 풍부한 물이 명쾌한 소리를 내며 흐른다.
사랑채인 계당의 좌측에 안채의 터가 잔존하는 기단으로 남아 있고 그 끝 쪽 앞에 우물이 옛 모습을 그대로 보이며 뒷 정원이나 텃밭에는 소채가 자라고 있다. 이 터의 남쪽에는 옛 돌담의 흔적이 남아 있고 과거의 수목이 자라고 있다. 대문 옆 가건물과 임시 주차장 터는 옛 행랑채 자리이다. 선생은 불타 없어지기 전의 모습을 회상하며 일러준다. 안채는 계당(사랑채)와 약간 뒤로 물려 평행하게 배치되어 있었으며 5간 건물로 각 방은 좌측으로부터 부엌, 안방, 큰 대청, 건너방, 아궁이 등으로 구성되었다고 하며, 지금도 남아 있는 우물은 부엌 앞에 있었다고 덧붙인다.
곡간 건물도 있었는데 3-4간정도의 건물로 계당과 직교하여 좌측에 수직방향으로 배치되어 안마당과 사랑마당을 나누어주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대문채는 5간 정도의 건물로 곡간채의 남쪽에 안채와 평행하여 배치되었으며 각 실은 좌측으로부터 방앗간, 헛간, 마굿간, 대문간, 방으로 구성되었고, 행랑채는 전채 3칸으로 좌측에서부터 차례로 부엌, 방, 방과 부엌으로 구성되었다고 뚜렷하게 기억한다. 이들 모든 건물은 초가였으며, 1951년에 소실되었다고 하니 안타까운 것은 선생만이 아니다. 더불어 언젠가는 본래의 모습으로 복원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계당 앞에는 이 건축물의 연륜을 말해주는 수목이 화단을 채우고 있다. 이미 꽤나 알려진 ‘계당매’는 수령 300년 이상의 매화나무로 사진작가들이 자주 찾는 수목이다. 봄철에 매화가 만개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특히 ‘호남 5매’의 하나로 알려질 만큼 아름다운 자태를 유지하고 있다. 대문 안 바로 안 화계에 서 있고, 그 아래로 개천이 흐른다. 거의 같은 수령의 영산홍이 ‘계당’ 바로 앞에 위치하며 광주전남지역에서 유명하여 봄철 꽃이 피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일면 ‘계당연산홍’이라 부른단다. 그 밖에도 자목련, 모과나무, 측백나무, 등이 300-400년의 수령으로 화단을 장식하고 있고, 그 뒤로 흐르는 실개천은 이 건물을 계당으로 부르게 된 근거가 되었다. 이런 경치를 10가지로 읊은 계당 10영이 계당 현판에 기록되어 보존되고 있으니 계당을 방문하거든 눈여겨 볼 일이다.
담양의 시가문화권은 광주광역시의 경계를 넘나든다. 말하자면 행정구역으로 나누어 시가문화권을 논하기에는 적절치 않다는 말이 된다. 권역으로 나누어 말을 이어가자면 행정구역보다는 문화권, 혹은 역사권을 기준으로 살펴보는 것이 타당하리라는 이야기이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435744D4EFABBE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