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발자국 나의 길이 되다> - 한북4회차(청계산-강씨봉)
산행일
: 2017.2.5
(사진 출처 : 글쓴이 앨범)
기대만큼 많은 눈은 내리지 않았지만 겨울
설산산행의 묘미를 느끼기에는 그런대로 흡족했다. 2주 간격으로 보다가
3주 만에 대원들을 만나면 꽤 오랜만에 보는 듯 반가움이 더하다. 이번 산행코스에 난구간이
있다고 하지만 낯익은 얼굴들의 밝은 모습에 오늘도 자연으로부터 뭔가 새로운
기운을 받겠구나 라는 느낌에 마음 설레며 대열을 따라 여정을 시작한다. 지금이야 제조기술이 좋아 그런
일은 별로 없지만 예전에는 새 신발을 신으면 곧잘 발뒤꿈치에 물집이 생겨 고생을 하곤 했었다. 특히
어릴 때 고무신은 새로 신을 때마다 물집이 생겨 굳은살이 생긴 후에야 편하게 다녔던 기억이 난다. 등산화도
처음 사서 신을 때 항상 아킬레스 부근이 까져 부드러운 물건을 뒤축에 끼우기도 하고 심지어 여성 생리대가 가장 좋다는 말에 회사 산악회 여성에게
무심코 하나 달라고 했다가 서로 얼굴이 붉어진 일도 있었다.(요즘 그랬으면 성희롱 감인가? ㅋㅋㅋ)
미루다 미루다가 오늘 새로 장만한 등산화를
신고 출정했더니 주위에서 금방 알아보고선 “어느 브랜드냐? 얼마
주었냐?” 묻는다. 산행도 산행이지만 등산장비에 관한 정보도
취미생활의 중요한 부분이다. 브랜드,기능,가격 그리고 가성비(가격대비성능비율,
꼰대들도 이런 말 잘 알아들어야 아재로 등업됩니다요 ㅎㅎㅎ) 이런 요소들은 동호인들 간의
소통이나 잡담에 중요한 소재거리가 된다. 한때는 고가브랜드에 거부감을 느껴 스스로 국산 저가브랜드를
고집스레 고수하기도 했지만 글로벌 시대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각자 개성을 유지하는 삶이 행복이라는 생각에 브랜드나 가격에 대한
옹졸한 편견을 허문 지 오래되었다. 여성들의 패션에 대한 명품브랜드 취향에서도 그렇지만 유명 브랜드를
걸치는 게 남에게 보여주기보다는 자신의 고품격에 대한 만족감 내지는 자아실현(젠장,또 어려운 말 쓰려고 하네~ㅋ)이라는
심리학적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렇다고 이번에 구입한 C브랜드
등산화가 고가의 일류브랜드는 아니고 발이 편하고 내구성도 좋다고 잘 알려져 있어서 선택하게 되었다. 가성비가
좋다고 해야 하나.^^
등산에서 누가 뭐래도 가장 중요한 장비는
신발이라는 점에 대해 논란의 여지는 없을 듯하다. 디딤발은 산행에 있어 안전의 시작이고 끝이다. 산을 타는 실제 동작에 있어서 우선적으로 본인의 균형감각과 운동신경이지만 그 다음은 신발의 물리적 성능이 안전을
좌우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산을 타는 사람이라면 초보자든 베테랑이든 등산화에 대한 관리는 철저해야
한다고 여겨진다. 예전에는 닳고 헤진 등산화가 관록을 말해주는 것처럼 인식되어 오래 신고 했지만 사실
바닥 창이 닳으면 매 순간 위험에 노출되어 한 순간의 흔들림으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럼에도 난
성격 탓인지 웬만큼 닳아도 쉽게 교체하지 않는다. 내 몸의 무게로 짓누르며 졸라 굴리고 다녀도 떠날
줄 모르는 저 충직한 머슴을 내 어찌 쉬이 버릴까. 산행 중 다리를 뻗고 쉴 때 가끔 내 등산화의 헤진
몰골을 보며 말한다.”너도 참 주인 잘못 만나 고생 오라지게 하네 ㅉㅉㅉ.” 신체 일부분으로 인식되어 마치 혼이
서려 있는 듯하다. 믿기 힘들겠지만 30여년 등산하면서 여태껏
신은 등산화는 5켤레 정도로 기억된다. 큰 뜻(?)을 품고 리어카 좌판에서 장만한 나의 1호 등산화는 약 5년 신었고 이번에 벗은 외국 Z브랜드 신발은 6년, 그 앞에 국산 C브랜드는
창갈이 두 번 하면서 10년 정도 굴렸으니 이 정도면 가히 구두쇠 수준인데 창갈이 한 번 더 하려 했는데
발등의 가죽이 갈라져서 차마 못하고 눈물을 머금고 이별을 고했다.ㅎㅎㅎ
(사진 출처 : 글쓴이 앨범)
바닥면 엣지가 날카롭게 살아 있어 새
등산화의 위력을 실감한다. 마찰감이 뛰어나고 발자국도 선명하게 찍히기에 ‘에라~오늘은 無아이젠 산행이야!’ 라고
선언하고 스스로 고행의 여정을 밟는다. 험한 칼날 능선도 있었지만 다행히 바닥에 눈이 얼지 않아 큰
어려움은 없었고 혹시라도 넘어지면 뒤에 오는 사람이 “거 봐요, 아이젠을
차야지~.” 라고 핀잔을 줄까 싶어 걸음걸음 애를 쓴다. 산에서
넘어지면 왜 다들 ‘땅을 샀다’라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어쩌다가
쾅~!하고 땅을 샀을 때 뒤를 보니 전국 산하의 땅을 여기저기 사놓은 종환씨도 넘어지고 있었다. 이상하리만큼 많이 넘어지는 친구인데 다치지 않으면서 남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니 몸을 던져 선행하는 거라고 믿고
싶다. 새 신발에 대한 믿음을 확고히 하기 위해 미끄러져도 ‘신발이
문제가 아니고 내가 방심한 탓이야’ 라고 애써 신발의 무죄를 주장하는 내 자신이 미련스럽고 애처롭기까지
하다.
오늘따라 유난히 발걸음에 마음을 쓰다
보니 앞서 간 이들이 어지러이 남긴 발자국을 본다. 아~ 선두는
저 눈을 헤치며 뒤에 따르는 사람들에게 길을 만들어주며 가고 있구나. 무릎까지 차는 적설은 아니지만
맨 앞에 가는 사람은 백지 상태의 길을 안전하면서 지름길이 되는 선을 잡아 눈을 파헤쳐서 뒤에 오는 동료들의 힘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내가 지금 그 족적을 당연하다는 듯이 무심코 따라 밟고 간다. 물이나 공기가 널려 있으니 우리는 당연히 있는 걸로 알고 그 가치를 잊기 마련이지만 희박해지거나 고갈되면 비로소
그 존재감을 인식하듯이 다들 경험했겠지만 심설산행에서 럿셀이 안 된 처녀설을 헤쳐 간다는 게 얼마나 도전적인 일이던가. 등산의 매력이라면 산이라는 거대 자연의 품에 안겨본다는 것도 있지만 산이라는 장벽을 함께 넘어가는 과정에서
서로를 지탱하게 해주는 배려와 헌신이라는 가치를 쉽게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자, 식상한 질문이지만 또 묻는다. 왜 산에 오는가? 전에는 망설였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저 아래 세상에서는 먹고
사는 문제로 이기적인 인간이 될 수밖에 없지만 이곳에는 나눔과 배려가 계산 없이 절로 실현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고 그리고 순수한 인간관계를
맛볼 수 있어서 오게 된다고 말하고 싶다.(혹시라도 아직 ‘산이
거기 있으니까’라고 답하는 그런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하는 사람,
이제는 없겠지요? ㅠㅠㅠ)
(사진 출처 : 카라 앨범)
그까짓 등산화 하나 새로 샀다고 이렇게
장황하게 씨부렁대니 소인의 글을 읽으려면 아마도 인내심이 좀 필요할 것 같다. 이번 주 산에도 안 가고
집에 머물면서 일주일 전 산행을 머리에 떠올리며 비슷한 느낌을 가진 분들이 있으리라는 생각에 두서없이 글로 옮겨봤는데 행여나 방해가 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그날 귀경길에 노원지맥(산이 아니고 노원역 근처에서
뒷풀이)을 화끈하게 하고 지친 몸을 전철에 얹어놓고 소중했던 그날 산행의 의미를 되새기려 많이들 들어봤을
법한 한시 한 구절을 겨우 스마트폰으로 찾아 즐겨찾기에 저장해둔 게 있어 옮겨본다.
(4행시로 생략하는 앞 두 행 의미는 ‘눈
오는 벌판을 걸어갈 때 발걸음을 아무렇게나 하지 말라’)
금일아행적今日我行跡 지금 내가 남기는
발자국은
수작후인정遂作後人程 나중에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
<서산대사의 ‘답설야’에서>
2017. 2. 12
虎 山
첫댓글 산을 다니다보면 고브랜드의 편리함. 견고함 자신감? 내구성 . A/s까지 값어치 합니다
저도 이번 등산화. 창갈이 부탁했는데 손상된가죽 까지. 수리했더군요.
너무 편합니다.
일단 창갈이 하면 방수기능은 끝!
덕유산 시험 담그고 5분 아무이상 없음
제가 합류할 구간이 별로 안남았네요
어느 구간에서 함께 할려고요? ^^
고문님!
시작은 있지만 끝이 없는 무한도전
호산님 존경합니다.
평소 각자의 취향대로 산을 타고 넷째 주에 제2로 모이는 우리 모두가 존경스럽네요 ^^
제2는 저의 고향 같은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