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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 이 땅의 언니들은 물설고 말설은 독일 땅으로 떠났다. 가난한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답답한 한국의 현실에서 도망가기 위해 그리고 생계를 위해.
그때에 비해 너무나 잘 살게 된 2004년. 이젠 미국으로 간호사가 되어 떠나려는 주부들이 있다. 물론 생계가 걱정이라서가 아니다. 첫 번째 이유는 자녀 유학이다. 미국에 유학 보낸 자녀, 홀로 두자니 못내 마음이 안 놓여 함께 가기 위해, 이왕이면 미국에서 취업도 하기위해 미국 간호사 자격증을 따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40여년 전 20대 처녀들이 주축이던 파독 간호사와는 달리 미국 간호사 면허시험에 도전하는 여성들은 40대 주부가 대부분이다. 서울 국립의료원 간호대학에서 미국 간호사 면허시험(NCLEX-RN/CAT)을 준비하는 4명의 ‘열혈 아줌마’들의 미국 간호사 시험 도전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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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도, 이유도 다양하지만 목표는 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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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85년 결혼과 동시에 2년 6개월간의 간호사 생활을 접은 차영숙씨(45)가 20년만에 부활의 날갯짓을 퍼덕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 1월 초. “아이 둘이 미국 유학중이거든요. 지난해 12월 어떻게 지내나 보려고 다녀왔는데 심란하더군요. 기숙사 식당이 엉망이어서 주식이 라면이에요. 현지 교포 한 분이 간호사 얘기를 꺼내는 거예요. 간호사를 했었다니까 미국 간호사 인력난을 말하는 거예요. 힘들겠지만 자격증만 있으면 취업과 아이들 유학에 따른 불안감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겠더라고요.” ‘너무 늦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도 잠시, 미국 간호사 평균 나이가 자신과 비슷하다는 이야기에 고무된 차씨는 바로 학원을 찾았다. 취업 시 받을 수 있는 대우도 큰 매력이었다. 미국에서는 2~3년 정도의 경력이 있으면 5만2천불(6천 만원)~8만불(9천만원)이라는 만만찮은 보수를 받을 수 있다. 국내 병원에 비해 3~4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전직 간호사 출신만 있는 것은 아니다. 김연희씨(45)는 의상디자인을 전공자. 그가 ‘미국 간호사’ 도전을 결심한 것은 몇 년간의 호주생활을 경험하고 난 후였다. “남편은 ‘지켜야 할 산과 들이 있어 못 간다’더군요. 그래서 아이 데리고 혼자 갔죠(웃음). 그런데 가서 보니 할 수 있는 게 미싱 일이나 청소밖에 없어요.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던지 원형탈모증까지 걸렸어요. 그러다 눈에 들어온 직종이 간호사였어요. 외국인이 중산층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더군요.”
전인숙씨(42)의 경우도 남다르다. 현재 미얀마에서 남편과 함께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한국대학 진학을 원하는 큰아들이 검정고시를 보기 위해 서울을 방문한 동안 틈을 냈다. “간호학을 전공하고 3년 정도 병원에서 근무하다 결혼하면서 외국으로 갔어요. 친구에게 미국 간호사 면허시험 얘기는 들었지만 내 나이에 쉬운 결정인가요? 마침 서울에 오게 돼 문을 두드리긴 했지만, 그 후 직접 방문하기까지 또 일주일이 걸렸어요(웃음).” 전씨가 ‘나이’를 언급하자 나머지 세 명이 동시에 터트린 말. “내가 마흔 둘이면 날아다니겠어요. 하하하.”
이은화씨(44)는 조산사로 20년 가까이 일해 온 경우. 2년 전부터 관심은 갖고 있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했는데, 쉰다섯 살에 시험에 도전, 결국 자격증을 따낸 주위 분에게 자극 받아 뛰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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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아홉 시간 공부 강행군, 몸은 녹초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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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출발 초기, 주위의 반응은 기운 빠지는 것들 뿐이었다. 간호대학의 문을 두드리기까지 김씨는 남편과 3년이나 실랑이를 벌였고, 차씨의 친구들은 “지금까지 놀다가 무슨 취업이냐”며 심드렁해 했다. 하지만 일단 시동이 걸리자 ‘아줌마의 힘’은 제어 불능. 이론반 4개월, 문제풀이반 2개월, 자기학습 2개월 등 총 8개월 동안 오전 9시부터 12시, 오후 2시부터 5시, 다시 오후 6시부터 9시까지 이어지는 NCLEX-RN과정을 거침없이 이어나갔다. 주부의 일도 병행하면서 말이다. 다른 이에 비해 관련 분야 경험이 전혀 없는 김씨는 그야말로 고군분투.
“집이 청주거든요. 9시까지 오려면 새벽 4시 30분에는 일어나야 해요. 시부모님 계시니까 반찬 한두 가지라도 준비해놓고 6시에 나와 6시 30분에 출발하는 서울행 버스를 타요. 내리면 8시 20분. 가까스로 9시에 도착하죠. 그리고 3시 30분까지 공부하고 다시 집에 가요. 자습은 집에서 하고요. 가족들은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고 그러죠. 하지만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미래가 더 불안하잖아요. 아이들에게는 어차피 고생할 거, 왕창 해야 빨리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며 설득했어요.”
조산사 일을 병행하는 이씨는 밤 근무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라 집안일은 거의 포기했다. 그래도 이런 육체적인 고통은 감내할 만하다. 정작 이들을 괴롭히는 것은 불쑥불쑥 찾아드는 막막함이다. 차씨의 얘기다.
“오늘 배운 내용인데도 책 덮으면 하나도 기억이 안나요. 힘들어도 나오는, 아니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가 집에 있으면 자꾸 ‘그만할까’ ‘안되면 어쩌나’ 초조하고 좌절하게 되거든요. 그래도 여기서 비슷한 연배 분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 보면 진정도 되고 자극도 받을 수 있어요. 그리고 한동안 지겹게 놀아 봤잖아요. 시간 많다는 거 결코 자랑이 아닌 거 아니까 마음을 다잡는 거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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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때문에 시작했지만 지금은 ‘나와의 약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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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는 8개월, 짧은 이는 2개월을 넘긴 요즘. 막막함 사이로 살짝살짝 비치는 ‘희열’도 전력투구를 해 온 이들의 몫이다. 스스로 대견하다는 자랑이 듬뿍 배어나오는 김씨의 이야기. “동시에 간호대학에 들어갔거든요. 지금 방학이니까 여기 나오는 거죠. 처음엔 영어 때문에 많이 당황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어떤지 아세요? 제일 뒷자리에 앉던 제가 요즘은 교수님 코 앞에 앉아요(웃음). 병리학은 A+를 받아 우리 과에서 ‘영웅’이 됐지요. 요즘엔 떨어지면 어쩔 거냐며 놀리는 남편과 아이들에게 그래요. 엄마가 안 되면 누가 되겠냐고요. 하하.” 예정대로라면 이들은 오는 11월 말, 미국령 괌이나 사이판에 가서 미 간호사 면허시험을 치를 것이다. 평균 합격률은 70% 선.
미국 간호사 면허시험을 주관하는 미간호사협의회(NCSBN)가 집계한 지난해 한국간호사 응시자는 1천58명. 올해는 3월까지만 411명이 응시, 최소 1천500명은 무난히 넘어설 전망이다. 2000년 이후 응시자는 매년 50%씩 증가하고 있는 상황. 이를 종합하면 올해 미 간호사 면허를 따는 이는 줄잡아도 1천여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미국 간호사는 자격증과 2년 이상 국내 임상경험이 있으면 지원을 할 수 있다. 현지 영어라는 또 하나의 장벽이 가로놓여 있긴 하지만 이들은 도전을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차씨의 말이다. “이번에 붙지 않을 수도 있겠죠. 그래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주위에 소문을 너무 많이 내 놨거든요. 살림하던 친구들도 이제는 슬슬 부러워해요. 미국서 자리 잡으면 아이들 보내라고 큰 소리 쳐놨는데 어떻게 포기를 해요. 아이들 때문에 시작했지만 지금은 저와의 약속이 됐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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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유치의 주역 국립의료원 간호대학 송지호 학장 _“제대로 교육시켜 당당하게 미국 보낼 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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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월 1일부터는 국내에서 미 간호사 면허시험(NCLEX-RN)을 치를 수 있다. 지금까지 이 시험은 미국령인 괌이나 하와이 등지서 실시돼 왔다. 국내 응시생들이 경제적·시간적·심리적으로 적잖은 부담을 느껴 온 것이 사실. 그간 응시료·항공료·미션 등을 포함, 1만불 가까운 비용이 들었다.
그러다 지난 6월 1일 미국 간호사시험주관기관협의회(NCSBN)가 전격적으로 서울에서도 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방향을 선회했다. 이 같은 성과 뒤에는 3년 동안 유치를 위해 노력해 온 국립의료원 간호대학 송지호 학장(56)이 있다.
“한국 간호사의 업무 능력은 이미 국제적 공인을 받은 상태다. 여기에 최근에는 탄탄한 영어실력까지 갖춘 인력들이 양성된다. 심각한 간호사난에 빠져 있는 미국 현지에서 눈독 들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결정이어서 정말 기뻤다.”
실제로 세계 수 십 개국에서 유치 경쟁을 벌였지만 최종 선정된 곳은 런던·홍콩·서울 등 3개 도시.
국립의료원 간호대학은 내년부터 무료 온라인 강의를 진행할 계획이다. 대학 재학시절부터 아예 미 간호사 면허시험을 함께 대비하도록 한다는 복안. 나아가 재학중에 미국 연수 및 인턴십 과정도 가능하도록 심의중이다. 송 학장은 최근 미국 취업 희망자들에게 직접 연수 기회까지 마련하는 대형 프로젝트까지 성사시켰다.
“지난 8월 초 55명이 출국했고 20여명이 영주권을 기다리는 상황이다. 올해 안으로 약 200명 정도 규모의 연수를 진행할 예정이다. 연수를 통해 현지 적응을 위해 가장 큰 난관인 영어능력을 집중적으로 키운다는 방침이다. 제대로 교육시켜 당당히 가게 할 것이다.” 교육과정을 체계화해 시험 브로커가 개입할 여지도 줄고 있다. 송 학장은 국내 취업난을 타개하는 동시에 장기적으로 동남아 국가 수험생까지 유치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오늘도 분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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