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 1등 삼촌과 전교 꼴찌 삼촌(나이순)
삶에 전교 1등과 꼴찌는 아무 의미 없다.
남편이 말했다. 적당히 술도 마시고 바람도 피우고 그냥 행복하라고!
이렇게 슬픈 말은 처음이었다.
어린 시절 삼대 독자인 남동생의 귀한 물건을 할머니들께서 예쁘다고 주물럭거리셨다. 그토록 사랑스럽다고 호들갑들을 하시니 너무나 궁금해서 잠깐 들여다보았다. 삼대 독자의 귀하디 귀한 꽈추를 손톱으로 살짝 꼬집었다. 지금 와서 고백하건대 사실 있는 힘껏 할퀴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 쌍방울을 단 말도 못 하는 바보 이방인이 그렇게 큰소리로 울지 예상 못 했다. 엄마한테 등짝 맞고 바로 분리수거 당했다. 외할머니 손에 끌려 머나먼 고행의 길을 택했다. 내 나름대로 난 신념의 사람이었다. 고집이 워낙 세서 젊은 엄마도 더 이상 못 키우겠다고 했다. 엄마도 엄마 앞에선 엄살꾸러기 딸일 뿐이었다.
나 또한 출처 불분명의 못생긴 떡두꺼비랑 도저히 같이 살 수가 없다고 판단했다. 나의 순간 판단력은 상당히 뛰어났다. 두 살인 나이에 집을 떠났다. 빨간 오뚝이랑 못난이 인형을 보자기에 제일 먼저 쌌다. 그 후로 3년을 넘게 외할머니 댁에서 보냈다. 고산 윤선도보다 다산 정약용보다 더 어린 나이에 귀향길에 올랐다.
나에겐 총 여섯 명의 외삼촌이 있었다. 1번과 5번 삼촌이 돌아가시고 이제 4분만 남았다. 가장 흥미로운 인생을 살고 있는 두 명의 삼촌으로 나름 삶의 법칙을 발견하고자 한다.
평생 남자복이 넘치는 내게는 그날도 그러했다. 계룡시 군부대 통역을 하러 갔다. 고속버스 한대에 남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대령이 상급의 장군들까지 미군들을 인수하고 부여 낙화암까지 다녀왔다. 여자는 나 한 명이었다. 버스 안 한국인은 단 세명뿐이었다. 운전사, 안내 군인, 그리고 나!
잊히지 않는 그날, 가이드 군인이 고향이 어디냐고 물었다. 고향이라고 하기엔 애매해서 어린 시절, 귀향을 간 적이 있는 안동 하회 마을을 얘기했다. 그의 말투를 읽고 난 바로 눈치챘다. 나에겐 남들이 못 가진 재능이 있으니 눈 감고도 외국 유명 배우 목소리를 구분하거나 백인과 흑인의 음색도 잘 맞춘다. 그가 우리 동네 출신일 거라는 직감은 통했다.
갑자기 깜짝 놀라더니 자신도 하회가 고향이라고 했다. 지금도 외삼촌이 하회에 살고 있다고 했다. 그 유명한 류성룡의 후손인 순자 엄마가 자랑하는 버들 류 씨이다. 이름을 물어봐서 3번 삼촌 ㄹㄱㅇ라고 했더니 갑자기 막 웃으시더니
"니 진짜가? 그 꼴통 내 친구인데 전교 꼴찌 아이가!"
삼촌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우리 가문의 자랑이다.
그래서 히든카드인 2번ㄹㅊㅇ 삼촌 얘기를 했다. 공부, 운동, 싸움 전교 1등이라고 했다. 인생이 불공평한 건 2번 삼촌은 얼굴도 잘생겼고 목소리도 멋진 중저음에 세련된 매너와 품격 있는 행동들, 모든 최상의 유전자는 2번 삼촌이 다 가져갔다.
3번 삼촌은 그저 그런 외모에! 사실 삼촌이지만 개그맨 하기에 적당히 좋은 희화된 코믹한 얼굴이다. 코는 아프리카 대륙 어딘가에서 멸종 위기에 처한 부시맨을 닮았다. 검은 대륙 우간다에 가면 바로 귀빈 대접을 받을 상이다. 추장의 관상을 타고났다. 피부도 검고 목소리도 허스키하고 말투도 촌스러움 그 자체이다.
인생이 공평하니 2번 삼촌은 외숙모가 상당히 못생겼다. 대구 유명 고등학교 체육 선생님으로 정년 퇴임해서 그냥 풍족한 여생을 세계 일주와 외국어 배우기에 열을 쏟고 있다. 방 가득 책이랑 겨울에도 졸음이 올까 봐 난방을 하지 않는다. 세상이 불공평하니 아내가 유명 병원장 따님이어서 유산을 많이 받았다.
3번 삼촌은 장가를 못 갈 줄 알았는데 스무 살의 끝을 잡고(그 당시에는 스물아홉 살은 결혼을 포기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노총각 대접을 받았다.) 겨우 결혼을 했다. 결혼식 날 본 숙모는 어리고 절세미인이었다. 화장품 모델을 닮았다. 결혼식 날 세상에 그렇게 예쁜 여자가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당시 하회 마을에 처음 전기가 들어와서 잔치를 했고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일대기를 그린 "젊은 그들"이라는 드라마를 찍기 위해 배우 안소영이 하회에 한동안 머물렀다. 외숙모가 훨씬 더 예뻤다.
인생이 공평하니 전교 1등 삼촌의 아이들은 공부를 못했다. 전교 꼴찌 삼촌의 아이들은 명문 대학에 쑥쑥 들어갔다. 평행이론을 깨는 순간이었다. 유전자의 법칙도 통하지 않았다. 세상이 불공평하니 3번 삼촌은 공부를 못해서 과수원이랑 논농사 밭농사를 해야 했다. 외할아버지께서 싸구려 시골 땅을 3번 삼촌에게 하사하셨다.
세상이 요지경이니 갑자기 경북 안동 하회가 엘리자 베스 2세 여왕의 방문으로 관광지가 되면서 벼락부자가 되었다. 하회 마을에 가면 우리 가족은 일단 주차료를 안 낸다. 주차장이 3번 삼촌 소유이다. 차를 몰고 종갓집 마당까지 들어가는 특권 대접을 받는다. 동네 모든 사람들이 아지매와 아재라는 호칭으로 통한다. 경북 도청이 들어서면서 다시 한번 더 삼촌은 대박에서 777 잭팟을 터뜨린다. 정부가 토지 보상을 해주는 바람에 거부가 되었다.
인생이 불공평하니 전교 1등 삼촌의 잘생긴 얼굴을 피해 아이들은 숙모를 닮아 외모가 하위 1%이다. 아들이랑 딸이 다 엄마를 닮았다. 공부를 못하지만 화려한 언변과 타고난 상냥함으로 아들은 체육 선생을 하다 연애를 잘해 명문학교 출신의 수학선생 아내를 얻었다.
인생이 불공평하니 전교 꼴찌 삼촌의 아들들은 얼굴이 상당히 잘 생겼다. 둘 다 숙모를 닮아 키도 크고 외모도 출중했다.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아내를 만나 자폐아들 한 명을 키우고 있다. 공식도 법칙도 없는 삶을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샤를의 법칙도 보일의 법칙도 인생에는 적용이 안된다.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신께 더 이상 나의 오장육부와 소뇌 간뇌 해마가 쉬고 싶으니 장기 파업하고 싶다고 노조라도 결성해 시위하고 싶다. 며칠이고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숨쉬기조차 쉬고 싶다.
난 오늘도 세상의 칼날을 맞았다. 그래 어디까지일까? 가보자. 지구가 평평해서 벼랑으로 떨어진다 하더라도 덤벼 보자.
몸이 안 좋아 막춤이라도 배워보려고 개막춤꾼(가명)이라는 곳에 전화를 했더니 나이가 많다고 거절했다. 인생이 쓰다. 인종차별보다 더 나쁜 나이 차별 당한 날이다. 면접도 못 봤다. 혹시나 갓 탤런트에 나갈지도 모르는 인재를 그들은 날린 것이다. 국민학교 때 전교에서 가장 예쁜 어린이로 뽑혀 놋다리밟기에서 빨간 한복을 입고 6학년 여자아이들의 등을 밟았다. 가을 운동회의 꽃이었다. 아! 이젠 정말 옛날이다. 세상이 공평하니 나이가 드니 예쁨도 못생김도 의미 없다. 호랑이가 대마초 피우다 잡혀간 시절 이야기이다.
유튜버가 추천한 3권의 책을 읽었다. 두 권은 환불받고 싶다. 하나는 그냥 시간 때우기에 좋았다. 책은 함부로 추천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오늘 또 배웠다.
1번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바람난 여자로 살기
2번 술 끊기
3번 그냥 걷기
4번 살기 위해 쓰기! 그냥 쓴다. 역겨워도 누가 뭐라 해도 그냥 쓸 것! 퇴고는 후퇴이다. 신경 쓰지 말고 전진할지어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공부가 되는 새벽, 진정한 학문이란 삶에 대한 바른 이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