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번시간은 소리나래 국아이론강의 3강으로써 '제례악'에 대해 설명해 드리겠어요.^^
음악은 물론 귀로 감상하는 예술이지만
귀에서 눈으로 그리고 가슴으로 이렇게 이동하는 예술입니다.
귀로만 들으면 매우 듣기 힘든 음악이 바로 제례악입니다.
보통 웅장한 국가홍보용 CF같은 곳에서 보실 수 있는 대표적인 음악입니다.
제례악은 한마디로 궁중에서 제사를 지낼때 사용하던 음악인데, 하루이틀도 아닌 500여년이라는 세월동안 전해져온 우리의 음악입니다.그러니 그 음악을 단지 템포(속도)만으로 지루하다 아니다를 운운할것이 아니라 그 음악속에 담겨져 있는 역사와 의미를 되뇌이면 실로 엄청난 음악이라고 하겠습니다.
아주 예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제례악의 시작을 살펴보면...
부여시대의 '영고'라하여 해마다 12월에 하늘에 제사를 지냈고, 고구려시대에는 농사가 끝나는 10월 온 백성들이 모여 제사를 즐기고 놀았던 '동맹'이 있었습니다. 신라와 백제에도 고유한 제사의식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후 고려에서는 중국의 제도를 받아 원구,방택,사직,종묘,문묘,선농단,선잠단등을 세우고 예절을 갖추어 제사를 지냈습니다. 조선시대에도 제사의 형태는 이어졌구요. 그러나 일본제국주의를 거치면서 종묘제와 문묘제만 남기고 모두 사라졌답니다.
그렇다면 종묘제례악에 대해 먼저 알아보지요.
현제 전해오는 종묘제례악을 만들 사람은 다름아닌 세종대왕님이십니다. 한글만 만든 위대하신 분인줄 아시지만 사실 세종대왕의 우리음악에 대한 업적은 정말 많습니다. 한마디로 문화임금님이신 셈이지요. 세종대왕의 전까지는 중국음악인 당악을 매우 귀중하게 여기고 우리땅에서 자라난 향악을 멀리하는 신하들이 많아서 많은 국가행사때에 당악을 위주로 연주했다고 합니다.
세종대왕은 우리의 향악으로 보태평11곡과 정대업15곡을 손수 만드셨습니다. 보태평과 정대업은 선대임금들의 공덕을 기리고 개국창업의 어려움을 기념하는 음악이었지만 세조때 제례악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 종묘제례악은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습니다. (무형문화재라 다행이지요. 노숙자가 불낼일 없으니..^^)
다음은 문묘제례악입니다.
문묘는 문선왕묘를 줄여서 한말로 문선왕은 공자를 뜻한다. 따라서 문묘는 공자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문묘에는 그의 제자인 안자,증자,맹자등과 설총,최치원등 유교학문이 높은 분들도 함께 모시고 있습니다. 물론 공자에게 올리는 제사이니 중국음악인 것은 당연하지요. 현재 연주되고 있는 문묘악은 중국에서 직수한 음악이 아니라는 설이 팽배한데요. 주나라시대음악에 가장가깝도록 여러문헌을 참고하여 박연이 만든 음악이라는 설이 압도적입니다.
모두 15곡으로 구성된 문묘악은 중국에서 들어온 까닭에 우리음악과 달리 7음음계로 되어있습니다. ( 우리음악은 몇음음계일까요? 궁상각치우??ㅋ 이어질 4강의 예고편입니다.) 문묘악은 중국에서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그만큼 남의 조상도 우리음악으로 지켜내고 있는 분들이 대단하신게 아닌가 싶어요.
이처럼 제례악은 많은 역사적 의미와 이야기를 지닌 음악입니다.
음악을 듣다가 주무실 수도 있어요. 그치만 마음으로 한번쯤은 꼭 느껴보셔야 하는 음악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럼...제례악을 들을 수 있는 방법
*5월 첫째주 일요일 종묘로 가시면~ 이씨 왕가의 직계 후손들과 친척들 그리고 국립국악원 악사들이 의복을 갖추어 입고 격식에 따라 엄숙하게 제를 올립니다. 일년중 이때를 놓치지 마세요.
* 성균관에서 봄,가을 두차례식 문묘제례를 올립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https://t1.daumcdn.net/cafefile/pds90/3_cafe_2008_09_08_18_43_48c4f3a7b9700)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https://t1.daumcdn.net/cafefile/pds90/2_cafe_2008_09_08_18_43_48c4f3a80f00f)
종묘제례악 [宗廟祭禮樂]
종류 제례악
지정번호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지정연도 1964년 12월 7일
1964년 12월 7일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었으며, 2001년 5월 18일 유네스코에 의해 종묘제례와 함께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으로 선정되어 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종묘의 향사(享祀)는 역대 음력으로 4맹삭(四孟朔) 즉, 1·4·7·10월과 납향일(臘享日) 등 모두 5회에 걸쳐 받들어 왔으나 근년에는 전주이씨(全州李氏) 대동종약원 주관으로 5월 첫 일요일에 한번 받들고 있다.
문묘제례악 [文廟祭禮樂]
석전악(釋奠樂), 즉 응안지악(凝安之樂)이라고도 하며, 줄여서 문묘악(文廟樂)이라고도 한다.
한국의 문묘제례악은 1116년(예종 11) 하례사(賀禮使)로 중국 송(宋)나라에 갔던 왕자지(王字之)·문공미(文公美)가 돌아오는 길에, 휘종(徽宗)이 보내준 대성아악(大晟雅樂)에서 비롯된다. 이 대성아악은 환구(圜丘)·사직(社稷)·태묘(太廟)의 제향과 더불어 문묘제례에 썼다. 그러나 고려 말·조선 전기를 지나는 동안 점차 고식(古式)이 어그러져 제례절차·악기·악장 등이 지극히 혼란스럽고 무질서해졌다.
그러다가 조선 세종 때에 이르러 박연(朴堧)을 중심으로 한 여러 신하가 《주례(周禮)》 《통전(通典)》 《율려신서(律呂新書)》 등 중국의 옛 전적을 참고하여, 아악의 정비작업을 벌였다. 그 결과 8음(八音)의 구비, 아악보 찬정(撰定), 새로운 아악의 제정 등 옛 주나라 때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그 뒤 임진왜란으로 산일(散逸)되어 광해군 때 《악학궤범(樂學軌範)》에 준하여 복구하였으나, 연이은 병자호란으로 다시 중단되었다.
그 뒤 여러 차례 아악 복구사업을 펴다가, 영조 때 비로소 제모습을 갖추었다. 그러나 이는 성종 때보다 규모가 축소된 것이며, 이것이 현재에 이르렀다. 이러한 수난 속에 이어진 문묘제례는, 중국 본고장에서는 없어진지 오래고, 유일하게 한국에만 남아 있다.
첫댓글 예전 학교 다닐 때 공부하던 역사를 다시 읽어보네요~~~ㅎ
제례악에 대해 궁금했던 것을 이렇게 알게 되었네요.
고맙습니다. ^^*
도움되셨다니...
다행입니다.
이론도 실기만큼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우리의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