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구정 !
명절로 치면 구정인 어제가 새로운 한해의 시작이다.
새해를 맞이하여 회원 여러분과 뭔가 함께 해야 한다는 마음에서 몇 자 적어본다.
향후 DPI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과 회원들이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사실이기에.......
2008년 5월 1일은 사)강원DPI의 창립일이다.
하지만 사실 강원DPI의 역사는 이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 1998년 10월에 첫걸음을 시작하였다.
당시 회장님은 작고하신 강릉영동대학교 물리치료과 김영수 교수님이셨다.
강원지역의 장애인계에는 크게 알려져 있지 않았지만 강릉지역에선 장애인계에 작지 않은 족적을 남기신 분이다.
그 예전 1980년대 말, 당시 '반딧불'로 불리던 강릉지역 장애 청년 단체(임의단체)외 매년 정기 교류(물리치료과 학술대회)
를 통해 장애인들의 사회통합의 유도를 시작하셨고, 간호학과 황옥남 교수님과 함께 지역 초증증 와상장애인을 대상으로
물리치료 및 간호서비스를 제공해 주셨다. 또한 1996년으로 기억되는데 강릉시 장애인 생활체육동호회가 결성되고 활동장소가
마땅치 않자 학교에 건의하여 현 영동대학교 구관 로비에서 탁구 등을 칠 수 있도록 학교 측과 협의하여 해결해 주었다.
1998년 중앙에서 한국DPI(회장 : 송영욱)과 전국장애인한가족협회(회징 : 이석형)와의 통합을 통해 전국 규모의 모양을 갖춘
DPI가 임의단체로 출범했다. 이를 계기로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서울 DPI, 제주DPI, 강원DPI가 차례로 출범하였다.
당시 강원DPI의 초대 회장님이 바로 고) 김영수 교수님이셨다. 1년여 년간의 짧은 재임기간 중, 심장마비로 안타깝게 영면하셨다.
당시 주요 활동 멤버들이 정선교, 장인선, 권영래 등이다. 강릉시 관내 공공기관 121개소 편의시설실태조사, 강릉시 왕산면 왕산리에 자립생활 체험홈 형, 작은 농장 개설, 새날도서방 운영 등의 사업을 추진하였다.
이상은 현재 DPI를 구성하고 있는 회원들 대다수가 모르는 강원지역의 DPI의 역사이다. 현재 정확하게 이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정선교와 현)강릉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인 장인선 등 소수이다.
이후, 강원DPI는 쇠락의 길을 걷다가 2003년 경, 전혀 활동이 없자 중앙으로부터 사고연맹으로 처리되었다. 그 사이에 DPI 멤버였던 장인선과 권영래 등 뇌병변 회원 10여명이 강릉장애인뇌성마비연합과 강릉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조직하여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정선교는 잠시 함께 활동하다가 술로 인한 지병으로 활동을 중단한다. 2008년 김미랑 현 강릉시 의원이 그 옛날, 전국장애인한가족협회 강원지부 및 반딧불 회원 일부와 정선교와 인연이 있던 현 회장 이정근, 박준선, 김택명이 주축이 되어 현재의 DPI를 2008년 5월 1일에 창립총회를 갖고 사)강원DPI 초대회장에 김미랑이 되었다.
어느덧 재창립 한지도 13년이 다 되어 간다.
이후 이야기는 다음에 이어가기로 하자.
정선교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