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관현악곡
1) 협주곡
2) 교향곡
3) 교향시
4) 관현악 모음곡
5) 관현악 소품
4. 관현악곡
1) 협주곡
① 협주곡의 원리
일반적으로 협주곡이란 독주악기와 오케스트라가 함께 연주하는 대규모의 관현악곡을 말하며, 음색과 음량, 스타일에 있어 대조되는 독주악기와 오케스트라가 서로 경쟁하면서도 협력하는 음악이다.
경쟁하면서 협력한다는 협주곡의 원어인 ‘콘체르토(concerto)'는 이중적인 어원에서 나타난다. 이탈리어로 ’concertare'는 ‘협력하다, 조화를 이루다’라는 뜻의 동사이며, 그 형용사형이 ‘콘체르타토’다.
음악적으로 해석하면 ‘함께 연주하다’로서 바로크 초기까지 콘체르타토는 기악 합주나 성악 합창곡을 의미했다.
기악음악이 음악사에 부각되기 시작한 이 시기에 다양한 음색의 악기들이 조화를 이뤄 한꺼번에 연주되는 것은 이전엔 상상도 할 수 없는 양식이었다.
이 ‘concertare’라는 이탈리아어 동사는 오늘날 연주회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영어의 ‘콘서트(concert)'의 어원이 되기도 한다. 또한 ‘concertare’라는 단어가 라틴어에도 있는데, 이 말은 ‘경쟁하다’ 또는 ‘서로 겨루다’라는 뜻이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콘체르토라는 말이 이렇게 서로 다른 두 단어 중 어느 것을 어원으로 하는지 확실치 않지만, 콘체르토라는 장르가 이 두 의미를 모두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굳이 구분하면 시대별로 18세기 전반까지의 협주곡은 함께 연주 한다는 의미가 강조되고, 18세기 후반부터는 독주악기와 오케스트라가 경쟁하는 형식이다. 그런데 화합이든 경쟁이든 여러 악기가 한꺼번에 연주된다는 것은 악기의 음색이 서로 명확히 구별될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으로, 협주곡의 탄생은 바로크 시대에 악기 제조 기술이 발달하게 된 것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이전에는 어떤 악기로 연주하든 상관하지 않던 작곡가들이 점차 연주할 악기를 지정하여 그 악기에 어울리는 양식을 개발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악기별로 연주기법이나 음색에 맞는 관용적인 서법의 탄생을 초래하였으며, 악기의 음색이나 그 연주효과에 관한 연구를 촉진시켜 관혁악법의 발전을 가져 온 계기가 되었다.
바로크 시대에 가장 각광을 받은 악기인 바이올린은 17세기에 이미 가장 이상적인 소리를 낼 수 있는 수준으로 개량된 상태여서 바로크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중심 역할을 담당하였을 뿐 아니라 협주곡의 독주악기로도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450여 개나 남아있는 비발디의 협주곡 중 대부분이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바이올린 외에 독주악기로 자주 사용된 악기는 오르간과 하프시코드, 그리고 트럼펫이었는데, 바로크 트럼펫은 아직 밸브가 없었지만 높은 음역의 복잡한 선율선을 빠르게 연주할 만큼 연주기법이 개발되었고, 특히 트럼펫은 전통적으로 왕을 상징하는 악기로 트럼펫 연주자 역시 그 연주가 어려운 만큼 바로크 오케스트라에서 특별한 대우를 받으며 협주곡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독주악기로 잘 어울렸다.
한편 고전주의 시대에 와서 피아노도 바이올린처럼 각광받는 협주곡의 독주악기가 되었다.
고전주의 협주곡의 대가인 모차르트와 베토벤이 가장 선호한 독주 악기는 피아노였는데, 이들의 피아노 협주곡 중에는 자신을 피아노 독주자로 염두하고 작곡된 곡들이 많다. 그 밖에 바이올린, 혼, 트럼펫, 클라리넷, 바순, 첼로 등이 고전주의 협주곡에 주로 사용한 독주악기다. 그러나 현대의 협주곡 작곡가들은 협주곡을 위해 정해진 악기가 없이 다양한 악기에 대한 실험정신을 바탕으로 색소폰, 피콜로, 튜바, 바순 같은 관악기는 물론 허디거디, 덜시머, 백파이프, 하모니카, 아코디언을 위한 협주곡까지 작곡하고 있다.
*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 Op.64 제1악장
멘델스존은 낭만주의 작곡가지만 지나치게 과장된 낭만적 정서를 배제하고 고전적 형식의 틀을 유지했다. 그는 적절한 품위를 지니면서 우아하며 감각적이었다. 또한 주제도 바그너나 리스트처럼 과장되거나 현란하지 않고 노래하듯 흐르며 아담하게 다듬어진 것이 특징이다.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는 그가 남긴 작품 중에 가장 널리 사랑받는 곡으로, 이 곡은 여러 차례의 구상과 수정을 거쳐 1844년 35세 때에 완성하였다. 그리고 멘델스존이 작곡하는 내내 조언을 아끼지 않던 친구 페르디난트 다비트와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관현악단에 의해 이듬해 초연되었다.
이 곡이 최고의 협주곡이었던 것은, 작곡하는 동안 바이올린 연주의 특수 기교 등 실제적 연주법에 관해 작곡가와 바이올리니스트가 상호 의견을 존중한 결과로 멘델스존은 다비트에게 이 협주곡을 헌정하였다.
협주곡 e단조는 명확히 3개의 악장으로 구분되지만 각 악장 사이를 쉬지 않고 이어 연주한다. 열정적 알레그로의 1악장으로 시작하여 신비스런 안단테의 2악장을 지나 활기찬 피날레인 마지막 악장에 이르는 연속 흐름으로 고전적 형식미와 함께 낭만적인 선율미를 느낄 수 있다.
제1악장은 알레그로 몰토 아파시오나토(appassionato) 즉, 정열적으로 연주하라는 악상기호가 있지만 실제 시작하는 주제는 우아하고 감미로운 노래 선율로 느껴진다.
e단조의 1주제는 서주 없이 오케스트라 반주가 시작되자마자 모습을 드러낸다.
2주제는 1주제와 나란한조인 G장조로, 플루트와 클라리넷으로 시작된다. 이 2주제는 1주제보다 더욱 서정적이다.
발전부 다음에는 독주 바이올린의 카덴차가 등장하는데, 일반적인 협주곡 형식에서 재현부 다음에 카덴차가 나오는 것과 다르게 재현부 전에 연주된다. 아마 1악장과 2악장을 쉬지 않고 연결하기 위한 의도인 듯하다. 재현부의 두 주제가 전통적 형식에서처럼 1주제의 원래 조인 e단조로 통일되지 않고 각각 e단조와 E장조로 되어있는 것도 이례적인 예라 하겠다.
재현부의 1주제는 종지화음으로 맺어지지 않고 단순한 조바꿈 처리로 부지불식간에 2악장의 안단테로 넘어간다.
② 바로크 협주곡
바로크 시대 협주곡은 작곡가들에게 음향과 악기 연주기교의 실험을 위한 중요한 매체가 되었다. 바로크 협주곡에는 독주 협주곡(solo concerto)과 협주 협주곡(concerto grosso)의 두 가지 유형이 있다.
독주 협주곡이란 하나의 독주 악기와 전체 관현악 음향을, 합주 협주곡이란 몇 개의 악기들로 구성된 독주악기들과 전체 관현악 음향을 대조시킨 것이다.
이 시대 관현악은 소규모 현악합주라 할 수 있는데, 대게 제1바이올린, 제2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비올로네, 그리고 지속저음 악기로 구성된다.
지속저음이란 베이스와 선율선을 포함하는 일종의 화성코드로 이어지는 반주로서 주로 하프시코드로 연주되었다. 비발디의 ‘사계’나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에서 배경에 깔리듯 울리는 하프시코드의 화음이 바로 그것이다.
경우에 따라 지속저음을 맡은 하프시코드 연주자들이 지휘자가 없는 소규모 오케스트라에서 박자를 끌어가는 지휘자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한편 악보에는 지속저음이 베이스 선율과 화음기호를 나타내는 숫자로 표시되어 연주자가 자유롭게 오른손으로 선율을 즉흥 연주할 수 있었기 때문에 숫자저음(figured bass)이라고도 한다.
지속저음은 베이스 성부는 물론 화음의 연속적 흐름을 중요하게 다루었다는 증거로 바로크 시대 실내악과 협주곡에는 지속저음이 필수적이었다. 각 성부의 개별적인 선율의 아름다움만을 중시하고 화성은 이 선율들이 동시에 진행함으로 부수적으로 간주하던 르네상스 시대와 비교하면 놀랄만한 사고의 전환이 이루어 졌다.
바로크 협주곡은 빠르기와 곡의 성격에 있어 대조를 이루는 3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악장은 빠르고 활력이 있으며, 두 번째 악장은 느리고 서정적이고, 세 번째 악장은 다시 빠르고 자유로운 분위기의 활달한 춤곡풍의 음악이다. 그리고 첫 악장과 마지막 악장은 리토르넬로 형식으로 되었다.
바로크 오페라에서 반복적인 간주 부분을 지칭하는 용어이기도 한 리토르넬로는 반복구, 즉 후렴을 뜻하는 말로 리토르넬로 형식이라 하면 이런 리토르넬로가 반복되는 사이사이 새로운 에피소드가 등장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리토르넬로는 전체 관현악이 함께 투티(tutti)로 연주하며, 새로운 에피소드는 독주악기가 연주한다.
종합하면 바로크 협주곡은 리토르넬로 주제가 관현악 투티로 제시된 후 독주 에피소드가 나타나고 다시 리토르넬로와 독주 에피소드와의 교대가 두 세 차례 일어난 후 리토르넬로로 끝을 맺는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리토르넬로가 여러 차례 등장하지만 처음과 끝만 으뜸조이고, 이 경우에만 완전한 형태로 제시될 뿐 중간의 리토르넬로는 다양한 조로 제시되며, 길이도 많이 줄여 단편적으로만 반복된다.
* 마르첼로 오보에 협주곡 d단조 제2악장
마르첼로의 오보에 협주곡 d단조는 한 파트를 한 명의 주자가 담당하는 전형적인 실내협주곡이다. 또한 대부분의 실내악곡들이 그렇듯 대중연주회를 위한 레퍼토리가 아니라 베네치아의 고상한 귀족들을 위해 작곡된 곡이다.
베네치아의 유명한 귀족 집안에 태어난 알레산드로 마르첼로( 1684~1750)는 원로원의 정치가이면서 문학가며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아버지로부터 직접 바이올린을 배웠다. 파두아 유학 시절 마르첼로는 철학과 수학뿐 아니라, 노래도 잘하고 이미 12개의 칸타타를 출판했다. 한 마디로 학문과 예술에서 다재다능한 인물이었으나, 오늘날 마르첼로의 작품은 거의 남겨져 있지 않아 이 오보에 협주곡이 없었다면 그를 작곡가로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은 귀족인 마르첼로가 주로 자신의 저택에서 열렸던 연주회를 위해 작곡을 했으며, 직업 음악가가 아니어서 작곡된 곡들을 출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다른 작곡가들은 귀족이나 교회의 후원으로 공식적인 창작활동을 했으며 그들 작품의 대부분을 출판하였던 것과 대조적이다. 사실 작곡가로 그의 이름을 남긴 유일한 곡인 이 오보에 협주곡조차 바흐가 쳄발로 독주곡으로 편곡한 것이 남아서 20세기 초 라우시만이 원작의 형태를 복원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도 원작의 조성과 작곡자에 대해 논란이 많았다. 몇 년 후인 1730년 암스테르담에서 출판된 원작의 악보가 발견되면서 의문이 풀리기는 했지만, 마르첼로가 소수의 작품을 출판했으며, 그나마 아르카디아 아카데미 멤버인 그가 본명 외에 아르카디아 식 이름인 에테리오 스틴팔리코라는 이름을 사용하여 작품의 복원은 더욱 어려웠다.
이 오보에 협주곡은 모두 3악장으로 이뤄지며, 1악장은 바이올린과 비올라 유니슨과 첼로의 반주 뒤에 흐르는 오보에가 선율을 주고받는다. 2악장에는 규칙적으로 현악기가 화성을 반주하는 동안 오보에가 애수에 찬 선율(악보)을 연주한다.
흔히 즉흥적으로 장식되어 연주되는 이 선율은 애조를 넘어 슬픔에 대한 일종의 비장함까지 느끼게 한 때문인지 2악장이 이 협주곡 중 가장 유명한데, 오래 전이지만 이탈리아 영화 ‘베니스의 사랑’의 주제곡으로 사용되면서 더욱 대중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3악장에는 오보에가 주도적 역할을 하며 현악기들의 호응을 끌어낸다.
③ 고전주의 협주곡
고전주의 시대엔 협주곡이 독주 악기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음악으로 굳어져, 협주곡은 독주자의 연주 기교와 해석 능력, 오케스트라의 다양한 음색과 극적인 구성력, 그리고 이 두 파트가 팽팽한 긴장과 대조 속에 엮어 내는 대화가 되었다. 여기서 둘의 균형은 매우 중요하다. 이들은 선율을 주고받기도 하고 같은 음악적 아이디어를 공유하면서도 긴밀히 대화한다. 때로 독주자가 선율을 연주하면 오케스트라가 반주를 하고, 독주자가 잔잔한 아르페지오를 깔면 오케스트라의 목관악기는 화려하게 주제를 펼쳐간다.
고전주의 협주곡은 외형상 독주악기와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소나타지만, 독주악기 소나타나 교향곡처럼 미뉴에트나 스케르초를 포함한 4악장으로 된 것이 아니라 빠름 - 느림 - 빠름의 순서인 3악장으로 구성되었다. 또한 1악장도 소나타 형식이긴 하지만 제시부가 오케스트라에서 한 번, 그리고 독주자에 의해 다시 한 번 연주되는 이중 제시부로 되어 있다.
오케스트라의 제시부는 악장 전체의 느낌을 예견하면서 독주자의 출현을 기대케 하는 역할을 하며, 독주자는 이런 분위기를 타고 화려하고 극적으로 등장한다. 그리고는 독주자와 오케스트라가 함께 제시된 주제를 탐닉하기도 하고 새로운 주제도 끌어내면서 제시부와 발전부를 거쳐 재현부까지 밀도 높은 대화를 끌어나간다. 그리고 재현부의 끝에 오면 긴 페르마타 음 위에서 진행이 멎어버리는데 이것이 독주자가 카덴차(cadenza)로 들어선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다.
카텐차는 오케스트라가 완전히 배제된 상태에서 독주자의 연주 기교를 과시할 수 있는 기회이다. 독주자는 화려하고 기교적인 악구와 어려운 아르페지오를 통해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뽐낼 수 있다. 여기는 이제까지의 주제와 다른 성격의 주제도 등장할 수 있으며, 조성도 자유롭게 변화될 수 있다.
고전주의 시대에 카덴차는 일반적으로 즉흥 연주되었는데, 이 시대엔 즉흥 연주가 흔했고 작곡가 자신이 독주자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18세기 이후 점차 이런 관습이 쇠퇴하며 작곡가들은 카덴차 악보를 넣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작곡가가 여러 개의 카덴차를 작곡하여 연주자가 선택케 하거나 이전에 작곡된 협주곡에 훗날 다른 작곡가가 새 카덴차를 작곡해 넣는 등 카덴차는 여전히 협주곡에서 가장 자유로운 부분으로 남았다. 이렇게 화려한 카덴차를 다 연주한 독주자는 긴 트릴을 통해 오케스트라를 깨워 자신의 연주가 끝남을 알리고 이 둘은 다시 자연스럽게 맞물려 장엄한 피날레를 준비한다.
④ 낭만주의 협주곡과 그 이후
낭만주의 시대의 협주곡도 외형상으론 고전주의 협주곡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악장의 길이는 점점 길어지는 추세였고 전체는 3악장 구조를 고수하며 1악장은 여전히 소나타 형식이지만 내용면에선 고전주의의 전통에서 많이 벗어났다.
예를 들어 악장과 악장의 주제가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경우가 많아 전체는 한 악장으로 된 자유로운 환상적 협주곡 형태가 된다. 선율이 가장 중요하게 부각되었으며, 화성도 전통적 진행에서 벗어나 다채롭게 발전된다. 반음계적 화성어법이 빈번하게 사용되며 조성의 변화도 심하다.
그러나 낭만주의 협주곡의 중요한 특징은 독주자의 기교가 크게 부각되어, 독주자의 테크닉을 드러내려고 몇 가지 전형적 기법이 등장하여 옥타브나 복잡한 화음을 연속적으로 사용한 것도 화려한 효과를 위해 자주 사용한 기법이다. 그 밖에도 낭만주의 협주곡엔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듯한 부분이나 동시에 여러 선율을 연주해야 하는 등 고난도의 기교를 요하는 부분이 자주 등장한다. 이러한 곡들은 비르투오소(연주 실력이 매우 뛰어난 사람)적인 테크닉이 없으면 연주가 불가능하지만, 낭만주의적인 개인주의에 잘 부합하는 것으로 낭만주의 협주곡은 점점 더 극단적 기교주의로 발전하였다. 특히, 카덴차에서 독주자가 어떤 기교를 보이느냐가 청중들의 가장 큰 관심거리로, 당연히 독주 부분이 많이 과장되었고, 이전엔 독주자와 힘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대등한 대화 상대의 역할을 담당하던 오케스트라는 외형적으로 편성이 확대되었음에도, 점차 독주자를 화려하게 보좌하는 반주 역할로 전락하였다.
예를 들어 멘델스존은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 작품 64의 1악장에서 관현악의 리토르넬로를 생략해 버리고 독주자를 먼저 등장시켜 독주자의 기교를 강조하는데, 이런 식의 도입은 낭만주의 협주곡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독주자의 기교에만 의존하면서 전체적 구조의 균형이 깨지고 음악적 내용이 허술한 협주곡들이 양산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런데 당시 청중들의 재미있는 눈요깃거리였던 이런 협주곡은 오늘날엔 대부분 외면당한다. 물론 이 시대에 작곡된 협주곡 중에 기교적 요소를 지니면서도 예술적 영감, 충실한 음악 기법, 극적 긴장감을 유지하는 걸작도 다수 있다.
쇼팽은 두 개의 피아노 협주곡(e단조아 f단조)을 썼으며, 슈만은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를 위한 협주곡을 각각 하나씩 썼다.
리스트는 세 곡의 피아노 협주곡을 썼는데, 그 중에 세 번째 곡인 ‘비창 협주곡’은 초기의 피아노곡을 편곡한 것이다.
브람스의 작품에는 두 개의 피아노 협주곡과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이중협주곡’,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등이 있는데, 특히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모든 협주곡 중에 가장 유명한 곡들 중 하나다.
다른 중요한 작품에는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 b플랫단조’, 라흐마니노프의 3곡의 피아노 협주곡 등이 있다. 또한 부르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은 낭만주의 협주곡 중에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만큼이나 자주 연주되는 협주곡이다.
20세기 들어서도 낭만주의 시대를 풍미한 독주 협주곡은 양식적으로 매우 다채로웠다 할 수 있다. 라흐마니노프처럼 20세기에 살면서 낭만주의 음악을 추구한 작가가 있는가 하면, 쇤베르크와 라벨, 바르토크, 스트라빈스키, 프로코피에프 등 많은 작곡가가 악기의 새로운 음향의 가능성을 탐험하며 협주곡이 갖는 오케스트라와의 균형에 노력을 기울였으며, 바로크 시대와 고전주의 시대 협주곡 양식의 부활을 느끼게 하는 흥미로운 작품도 남겼다. 근래 자주 연주되는 작품으로 라벨의 ‘왼손을 위한 협주곡’과 바르토크와 프로코피에프의 피아노 협주곡들, 시마노프스키와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스트라빈스키의 실내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덤바튼 오크스’등이 있다. 또한 글라주노프(1865~1936)의 ‘알토 색소폰과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과 본 윌리엄스의‘튜바 협주곡’, 스트라빈스키의 ‘에보니 협주곡’, 로드리고(1901~1999)의 ‘아란후에즈 협주곡’ 등은 색소폰과 튜바, 재즈 클라리넷, 기타 등 특수한 악기들과 협주를 시도한 수작이다
* 드보르작 첼로 협주곡 b단주 Op.104 제 3악장
첼로는 18세기 후반에 굽은 활이 곧은 활로 바뀌며 강하고 끈기 있는 음향을 얻으며, 19세기 들어서 역량 있는 연주자들이 등장하며 영웅과 같은 웅대함과 가슴 저리게 하는 애절함까지 폭넓게 표현하는 낭만적 악기가 되었다. 특히, 20세기 들어서 파블로 카잘스와 로스트로포비치 같은 거장이 첼로에 대한 인식을 바꿔 놓으며, 첼로라는 악기가 가진 가능성을 뛰어넘는 풍부한 음향과 음정의 정확성, 빠른 악구들을 능숙하게 연주해내는 운지법으로 많은 20세기 작곡가를 자극하였다.
‘첼로 음악의 황제’로 불리는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 b단조는 고난도의 독주와 다이내믹한 오케스트라 반주의 절묘한 조화가 일품으로, 수많은 첼로 연주자가 애착을 갖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곡이다.
브람스는 드보르작의 악보를 보고 “나는 왜 첼로로 이런 협주곡을 쓸 수 있다는 걸 몰랐을까? 내가 알았으면 시도해봤을 것을....”이라 했다는 일화가 있다. 물론 브람스는 첼로 독주를 위한 협주곡은 쓰지 않았지만 드보르작 보다 먼저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이중협주곡을 통해 첼로가 가진 잠재력을 실험한 바 있다.
카잘스는 거대한 형식과 교향악적 울림을 내는 이 곡을 두고 “영웅의 생애를 담은 한 편의 드라마”라고 했다. 이 곡은 ‘신세계 교향곡’을 비롯해 풍요로운 작품 생산을 한 미국 체류기인 1894~1895년에 작곡되었다.
낯선 세계에 대한 동경과 조국을 그리워하는 감성이 보헤미아의 민속 선율로 표출되는 이 곡은 어려운 연주기교를 수반하는 거장적인 효과를 염두에 두었다.
소나타 형식의 알레그로 1악장과 서정적 노래가 인상적인 2악장을 거쳐 자유로운 론도 형식으로 작곡된 3악장에는 더블베이스로부터 시작된 무거운 행진곡에서 금관과 목관, 현악기가 추가되며 축제의 분위기로 변한다. 이 3악장의 주제(악보)는 보헤미아 민속 춤곡의 리듬을 따온 것으로, 이전의 악장에 제시된 서사적이며 비극적 느낌과는 대조적인 즐겁고 환희에 찬 노래다.
악장의 끝으로 가면서 곡의 템포는 안단테로 변하여 2악장과 1악장의 주제 선율을 회상한다. 카잘스는 첼로의 독주가 사라지듯 앞의 악장 주제를 노래하는 이 부분을 가리켜 ‘영웅의 죽음’이라 묘사하였다. 이 부분 바로 뒤의 음악은 팀파니의 트레몰로와 함께 급격히 음량과 속도를 더하며 론도의 주제 선율을 다시 힘차게 연주하며 대서사시의 막을 내린다.
*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2번 c단조 제1악장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과 함께 러시아 작곡가가 쓴 협주곡 중에 가장 연주 빈도가 높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은 비록 20세기에 작곡되었으나 낭만주의 최고의 피아노 협주곡으로 평가받는다.
라흐마니노프는 다양한 연주활동으로 새롭고 혁신적 작품보다 대중의 정서에 어필하는 19세기 정서 즉, 우수와 멜랑콜리(우울한, 구슬픈, 감성적인), 고독과 달콤함을 그의 음악에 담았다.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인 라흐마니노프는 연주를 앞두고 항상 진지한 표정을 보였고, 무대에 서기 전엔 한 번도 웃음을 보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청교도적 피아니스트’라는 별명을 가졌다.
머리는 항상 짧게 깎고 단정한 차림새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릴 때도 몸을 거의 움직이지 않았으며, 페달 사용을 극도로 절제하면서 지극히 깔끔하고 정교한 터치로 피아노의 거장성을 추구한 그는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발표하면서 작곡가로서 재기했다.
신경쇠약과 우울증을 극복하고 1901년 작곡가 자신의 피아노와 모스크바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에 의해 초연된 이 곡은 라흐마니노프에게 세계적 명성을 안겨 주며, 감미롭고 서정이 풍부한 선율로 인해 악곡의 일부에 가사가 붙여져 노래로 만들어지거나 재즈 스타일로 편곡되어 자주 연주되는 등, 영화음악을 비롯한 대중음악의 소재로도 자주 인용되었다. 특히, 영화 ‘밀회(1946)’, ‘여수(1950)’, ‘7년만의 외출(1955)’에 삽입된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영화와 클래식 음악의 행복한 만남의 전형적인 예로 손꼽힌다.
피아노 협주곡 2번은 강렬한 정열과 섬세한 비애의 느낌을 담은 선율의 대조가 일품이다.
1악장은 소나타 형식으로 곡의 첫 부분에 독주 피아노가 종과 같은 울림의 어둡고 장중한 화음을 8마디에 걸쳐 인상적으로 연주한다. 이어서 피아노가 펼침 화음을 연주하는 가운데 등장하는 관현악의 1주제는 어딘지 모르게 가라앉는 것 같으면서도 힘이 느껴진다.
온건한 경과부와 격렬한 전체 관현악 부분의 1주제 부분을 마무리하면 비올라에 인도되어 피아노가 단독으로 연주하는 2주제 부분이 전개된다.
c단조의 1주제와 대조적인 E장조의 2주제는 달콤하고 감성적인 지극히 라흐마니노프적 선율의 하나다.
2) 교향곡
① 교향곡의 성립
서양음악에서 가장 중요하고 위대한 장르는 무엇일까? 그리고 수많은 음악 가운데 가장 위대한 곡 하나만을 꼽으라면 많은 사람이 베토벤의 ‘영웅 교향곡’, ‘운명 교향곡’, ‘전원 교향곡’, ‘합창 교향곡’, 차이코프스키의 ‘비창 교향곡’,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 드보르작의 ‘신세계 교향곡’ 같은 곡을 떠올릴 것이다.
왜냐하면 음악사에서 교향곡만큼 선율, 리듬, 화성, 음색 등과 같은 음악적 요소들을 하나의 음악으로 녹여낸, 포괄적이면서 표현력이 뛰어난 형식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향곡은 모든 작곡가들에게 한번은 도전해보고 싶은, 가장 규모가 크고 위대한 형식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일반적으로 교향곡이란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여러 개의 악장으로 이뤄진 관현악곡을 뜻한다. 약간의 예외를 제외하면, 그냥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소나타라 이해해도 될 것이다. 즉, 대부분의 교향곡 1악장은 소나타 형식, 2악장은 느린 빠르기의 3부 형식이나 주제와 변주, 3악장은 미뉴에트나 스케르초와 트리오, 그리고 4악장은 론도나 소나타 형식으로 되어 있다.
물론 이런 형식구조가 누군가에 의해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건 아니다. 흔히 하이든을 교향곡의 아버지라 하지만, 이는 하이든이 교향곡이란 장르를 창시했다는 의미가 아닌 ‘런던’, ‘군대’, ‘시계’, ‘놀람’ 등, 수많은 걸작을 포함하여 모두 107곡이라는 유례없이 많은 교향곡을 작곡했을 뿐 아니라, 교향곡의 예술적, 형식적 발달에 크게 기여했기 때문에 생겼으며, 사실 교향곡이란 형식은 하이든 이전에 거의 완성되었다.
18세기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교향곡은 바로크 시대의 여러 양식이 통합되어 이루어졌다 볼 수 있다. 우선 교향곡의 가장 직접적 조상으로 신포니아(sinfonia)를 들 수 있는데, 신포니아란 원래 기악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이탈리아 오페라 서곡이다. 그러나 18세기 후 오페라와는 상관없이 독립적 기악곡으로 연주되었는데, 초기 교향곡의 3악장 구조는 빠름 - 느림 - 빠름의 3부분으로 이뤄진 이 신포니아의 구조를 그대로 따른 것이다. 또한 교향곡이 여러 개의 개별적 악장으로 구성되는 점이나 3악장에 미뉴에트와 같은 춤음악을 포함하는 특징은 바로크 모음곡에서 유래되었다. 그 밖에도 바로크 시대의 여러 음악의 형식들이 교향곡, 특히 1악장 소나타 형식의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 하이든 교향곡 제101번 d단조 ‘시계’ 제2악장
하이든의 교향곡 대부분은 하이든이 섬기던 에스테르하지 후작을 위해 작곡되었지만, 후기 작품 중에는 개인적으로 위촉받은 것들이 있다. 특히, 1790년 요제프 에스테르하지 후작이 사망한 이후 작곡된 93번부터 104번까지의 교향곡은 런던 연주회를 위한 것들로, 이러한 기회를 주선한 바이올리니스트 잘로몬의 이름을 따서 잘로몬 교향곡으로 일컬어진다.
이 작품들은 이전 교향곡에 비해 규모도 크며, 형식적 구성이 뛰어나고 예술적 완성도도 높아 런던 초연 당시부터 큰 성공을 거두었다. 교향곡 제102번 ‘시계’ 역시 런던 음악회를 위해 작곡된 작품으로, 원숙기에 이른 하이든의 독창성과 예술성이 돋보이는 걸작이다.
이 교향곡은 1악장 소나타 형식, 2악장 주제와 변주, 3악장 미뉴에트, 그리고 4악장 소나타 형식이라는 가장 일반적인 하이든 후기 양식의 전형을 따르고 있다. 이들 중 특별히 2악장이 유명한데, ‘시계’라는 이름도 이 악장의 흥겨운 점 리듬의 주제(악보)가 연주되는 동안 나머지 악기들이 규칙적인 짧은 리듬으로 반주하는 것이 시계의 추가 왔다 갔다 하는 걸 연상시켜 붙여진 것이다.
이어지는 제1변주는 점 리듬과 32분음표의 음형으로 장식된 화려한 변주이고, 제2변주는 제1바이올린과 플루트, 오보에, 바순이 엮어나가는 아름다운 4중주이며, 제3변주는 마치 경과구처럼 주제의 앞부분만 변주하고 제4변주를 준비시킨다. 제4변주에는 전체 오케스트라가 합세하여 클라이맥스에 도달하였다가 짤막한 종결구를 지나 끝맺는다.
② 고전주의 교향곡
고전주의의 막이 열리기 시작한 18세기 중엽, 교향곡의 탄생과 발전에 높은 관심을 보였던 지역은 만하임과 베를린이었다.
만하임 악파의 창시자 슈타미츠(1717~1757)는 소나타 형식인 1악장 알레그로에서 제1주제와 대조인 성격을 이루는 제2주제를 처음 사용하였으며, 이전까지 3악장 구조로 된 교향곡에 미뉴에트를 첨가하여 교향곡을 4악장 구조로 확대시킨 최초의 작곡가다. 또한 당시 슈타미츠가 이끄는 만하임 관현악단은 폭넓고 다양한 음향을 자유롭게 다루는 기량을 과시하며 전 유럽을 놀라게 했다.
베를린에는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넷째 아들인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 바흐(1714~1788)가 지나치게 감정적인 양식의 영향을 받아 교향곡에 다양한 표현을 시도하였으며, 빈에서는 바겐자일(1715~1777)과 몬(1717~1750)등의 작곡가들이 빈 특유의 유쾌하고 서정적 양식을 발전시켜 18세기 후반 그들의 뒤를 잇는 빈 악파, 즉,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에게 계승되었다.
하이든, 모차르트, 그리고 베토벤에 이르러 교향곡은 비약적 발전을 이뤘다.
교향곡 역사에서 이들이 남긴 업적은 우열을 가릴 수 없지만, 교향곡 발전에 있어 제각기 다른 역할을 맡았으며 그들의 교향곡 역시 뚜렷이 다른 특징을 갖는다.
세 사람 중에 가장 선배인 하이든은 고전주의 교향곡의 형식적 발전에 크게 기여한 작곡가로, 그의 107개 교향곡은 단순한 스타일에서부터 길고 세련된 스타일까지 모든 고전주의 교향곡 양식을 순서대로 보여준 탁월한 예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초기 교향곡의 구조는 이탈리아 신포니아에서 유래한 3악장 구조로 되었으며, 양식적으로는 바로크 시대 콘체르탄테 양식을 따르지만, 후기 교향곡은 고전주의 시대의 표준인 4악장 구조를 갖는다. 특히, 하이든은 소나타 형식으로 된 1악장에 느린 서주부를 처음으로 도입시킨 작곡가이다. 한편, 하이든 교향곡의 가치는 그가 에스테르하지 궁정을 떠나 빈에 자유롭게 머물던 시절 작곡했던 12개의 ‘런던교향곡’에서 절정에 이른다. 이 중에 94번 G장조 ‘놀람’, 100번 G장조 ‘군대’, 101번 D장조 ‘시계’, 103번 E플랫 장조는 특히 유명하다.
모차르트의 교향곡은 41번까지 번호가 있지만 실제 모차르트는 50여 개의 교향곡을 작곡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차르트의 초기 교향곡은 하이든의 교향곡처럼 비교적 짧고 단순하며, 그가 흡수한 다양한 음악들의 영향이 아직 일정한 스타일로 정착되지 않아 매우 자유롭게 구성된 인상을 준다. 하지만 후기 교향곡은 초기 작품보다 길고 복잡해졌을 뿐 아니라, 전형적 고전주의 교향곡 양식을 따르면서도 하이든을 능가하는 독창성과 예술성을 나타낸다. 또한 모차르트는 제2주제에 서정적이고 우아한 선율을 처음으로 도입하여 덕분에 이후 소나타 형식에는 뚜렷한 개성을 갖는 완전한 두 개의 주제의 등장과 전개가 가능하였다.
모차르트 교향곡 중에 최대 걸작은 그의 최후의 교향곡인 제39번 E플랫장조 K.543, 제40번 g단조 K.550, 제41번 C장조 K.551 ‘주피터’인데, 이 대곡들이 전부 모차르트가 지독한 재정적 어려움에 처했던 1788년 여름에 불과 6주 만에 작곡된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이 교향곡들에는 낭만주의 음악에서 볼 수 있는 가혹한 숙명에 대한 비애나 승리의 환희와 같은 격렬한 감정들이 표출된다. 한편 베토벤은 지금까지 설명한 것처럼 하이든과 모차르트에 의해 이미 음악적으로 원숙해진 교향곡 양식에 자신만이 할 수 있었던 극적이면서도 치밀한 구성과 예술적 상상력을 더해 교향곡을 최고의 예술 장르로 승화시켰다.
그는 모두 9개의 교향곡을 작곡하였는데, 이들은 베토벤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작곡년도에 따라 3개의시기로 나뉜다.
제1기는 전통적 고전주의 소나타 양식을 습득하고 실험하던 1782~1802년까지로 교향곡 제1번과 제2번이 여기에 해당된다. 교향곡 제1번은 전형적인 고전주의 교향곡이며, 제2번은 고전주의 교향곡의 범주를 벗어나진 않지만 형식적인 면모를 최대한 확장시켰다.
제2기는 1803~1815년까지로 1803년은 바로 베토벤이 그 유명한 하일리겐슈타트 유서까지 쓰며 절망했던 청각장애로 인한 충격에서 벗어나 작곡에 대한 새로운 의욕을 펼치기 시작한 때다. 이 때 베토벤은 영웅적 성격의 대규모 작품을 작곡하였는데, 교향곡으로는 제3번부터 6번까지가 이 시기이다.
원래 나폴레옹에게 헌정하려 했던 제3번 교향곡 ‘영웅’은 ‘에로이카’라는 부제에 걸맞게 위대한 영웅의 이상을 잘 표현한다. 이 곡에서 베토벤은 충실하고 독창적이며 다양한 음악적 내용을 담기 위해 규모를 획기적으로 확대시켰다. 특히, 1악장은 당시엔 전대미문의 대곡으로 모두 691마디며, 연주시간이 16분이 넘는다. 2악장에는 느린 장송곡이 이어지고, 3악장은 질주하는 듯한 스케르초로 되었다. 이때부터 3악장은 기존의 미뉴에트 대신 스케르초로 굳어진다. 이로써 고전 교향곡에 남아 있던 바로크 춤 모음곡과의 연관성이 사라졌다. 변주곡과 소나타, 그리고 푸가형식이 혼합된 독특한 형식의 4악장은 마치 전쟁에서 승리한 영웅을 묘사한 듯 환희에 넘친다. 제5번 ‘운명’과 제6번 ‘전원’은 베토벤을 대표하는 최고 걸작으로 가장 인기 있는 교향곡이다.
제5번에서 베토벤은 전 악장에 걸쳐 끊임없이 나타나고 발전되는 유명한 운명의 동기를 통해 작품 전체에 통일성을 부여했다.
제6번은 19세기 표제 교향곡의 효시가 되는 작품으로 베토벤은 1악장 ‘시골에 도착하여 느끼는 유쾌한 기분’, 2악장 ‘시냇가의 정경’, 3악장 ‘농부들의 잔치’, 4악장 ‘폭풍’, 5악장 ‘폭풍 후에 목동이 부르는 감사의 노래’로 각 악장마다 문학적이고 회화적인 표제를 붙였다.
제3기는 1815년부터 그가 사망한 1827년까지인데, 이때 베토벤은 완전히 청각을 상실하여 명상적이고 추상적이며 초인적 특징을 나타내고 전통적인 형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음향을 추구하는 경향으로 발전했다.
교향곡 제7번과 제8번은 2기에서 3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제9번 ‘합창’은 베토벤의 또 하나의 걸작으로, 교향곡에 성악을 도입하고 혁신적 형식을 선택하는 등 교향곡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또한 쉴러의 ‘환희의 송가’를 토대로 작곡된 마지막 악장에서 베토벤은 특별히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 형제애를 강조하고 천상의 아버지의 영원한 사랑을 찬양하는 절들을 선택하여 음악을 붙였는데, 이것은 베토벤이 그의 위대한 음악을 모든 인류의 평화와 사랑을 위해 작곡했음을 말해주는 증거다.
* 베토벤 교향곡 제5번 c단조 Op.67 ‘운명’ 제1악장
베토벤의 교향곡 제5번은 교향곡 제9번과 함께 가장 많은 해석과 분석, 격찬을 불러일으킨 작품으로 무감각한 청중조차 이 곡을 대하면 강렬한 힘에 저항하지 못한다. 여기엔 흔히 ‘베토벤 적’이라 부르는 마음과 정신의 표현이 응축되어 있으며, 전곡을 통해 하나의 일관된 몸짓이 변화와 투쟁을 경험하며 그 속에서 인간 불굴의 의지와 인류에 대한 강한 애정을 보게 된다.
9개의 교향곡 중에도 제5번 c단조는 주제의 처리와 전개방식에서 베토벤의 개성을 가장 잘 드러낸다. 제1악장 첫머리에 등장하는 운명의 동기(악보)는 간결하고 단순한 음형으로, 하나의 재료로부터 무한히 샘솟듯 솟아나는 변화무쌍한 음악적 가능성을 내포하는 의미심장한 음형이다.
제1악장만 아니라 교향곡 전체를 지배하는 ‘3개의 짧은 음과 1의 긴 음’으로 이뤄진 4음 동기는 그 리듬과 외형을 유지한 채 반복되며 (악보) 음악적 추진력을 얻고, 그 후 이 모티브의 변형들이 이어짐으로 결국 주제 형태가 완성된다.
제1악장은 소나타 형식으로 이 도입 주제가 음높이와 악기를 바꿔가며 연주되는 동안 점차 긴장이 고조된다. 제2주제는 서정적 레가토 선율(악보)로 시작되지만, 여기도 4음 동기가 배경으로 들린다. 즉, 우리는 전체 악장 곳곳에 운명의 동기(혹은 승리의 동기)를 어떤 모습으로든 듣게 된다. 숨막히듯 반복되는 첫머리의 동기가 작품전체를 관통하며 절정에 도달할 때 우리는 여기서 운명과의 싸움에 승리하고 인생에 대해 자신에 찬 긍정적인 모습을 음악으로 구현하고 있는 베토벤의 정신과 만날 수 있다.
③ 낭만주의 교향곡
베토벤의 교향곡은 후배 낭만주의 작곡가들이 가야할 길을 분명히 보여주었으나 같은 베토벤 음악으로 낭만주의 작곡가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베토벤을 수용했다.
예를 들어 슈베르트나 브람스는 베토벤 음악의 보수적인 면을 계승하여 낭만주의적 화성법이나 선율을 사용하면서도 고전주의 형식을 중시하고 절대 음악적 입장을 견지한 대표적 작곡가들이며, 이에 반해 베를리오즈나 리스트는 음악에 표제 적 성격을 도입하고 고전주의 형식의 굴레로부터 벗어나려 노력하는 등 베토벤 음악의 진보적 측면을 계승한 작곡가들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절대 음악적 입장을 고수한 보수적 작곡가들의 출발점은 베토벤의 교향곡 제4,7,8번이며, 교향곡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택한 작곡가들은 교향곡 제 5,6,9번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슈베르트는 31년의 짧은 생애 동안 9개의 교향곡을 작곡하였는데, 이 중에 제8번 ‘미완성’과 제9번 ‘대교향곡’이 걸작이다. 제8번은 그의 유작은 아니지만 1,2악장 밖에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미완성’이라 불린다. 이 곡은 가곡에나 가능했던 아름다운 선율과 감각적 음색, 독특한 화성들로 이루어진 매력적 교향곡이다. 그러나 슈베르트는 이렇게 매혹적 교향곡을 작곡하려고 고전주의 교향곡의 구조적이고 유기적 형식미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낭만주의 교향곡 전반에 볼 수 있는 특징이다.
교향곡에 대한 멘델스존의 접근은 매우 고전적이지만, ‘이탈리아’, ‘스코틀랜드’ 같이 지명을 표제로 붙이고, 음악적 풍경 묘사에 천재적 재능을 발휘하거나 ‘스코틀랜드’ 교향곡에서 네 개의 악장을 중단 없이 연주하도록 지시하는 등 진보적인 낭만주의적 성향을 드러낸다.
슈만도 음악적 연속성에 강한 집착을 보인 작곡가인데, 그 역시 자신의 제4번 교향곡을 중단 없이 연주하도록 작곡하였다. 그의 4개의 교향곡엔 보수적 경향과 진보적 경향이 모두 나타나며, 이 둘의 균형을 잘 유지하려는 노력이 담겨 있다. 또한 슈만 교향곡의 몇몇 악장은 그의 절친했던 후배인 브람스의 교향곡을 암시하는 듯하다.
브람스는 4개의 교향곡을 작곡하였는데, 모두 기본적으로 고전적 교향곡 형식을 따르고 있다. 즉 전통적 4악장 구조로 되었으며, 악장과 악장 사이의 통일성을 꾀하려는 시도나 표제음악의 아이디어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화성법이나 관현악 음향은 확실히 낭만주의 쪽에 서 있다. 다만 브람스는 과장된 기교, 절제되지 않은 감정표현의 낭만주의 함정엔 빠지지 않았다. 덕분에 그의 4개의 교향곡은 고전 교향곡에 대한 낭만주의적 대안으로 높이 평가받는다.
브루크너의 9개의 교향곡은 모두 전통적 4악장으로 되어 있고 어떠한 표제도 없다는 점에서 고전적이라 할 수 있으나, 그 형식은 극도로 확장되어 전체 작품의 규모가 방대하다.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그의 교향곡들이 종교적 색채를 갖는다는 것이다.
미사나 테 데움과 같은 종교적 주제가 자주 사용되며, 전체적으로 진지하고 무거운 분위기가 심오한 종교적 정신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또 그의 교향곡은 소리의 셈여림이나 색채상의 대조가 매우 강한 것이 특징이다.
말러의 교향곡은 브루크너보다 더 거대한 편성과 길고 복잡한 형식으로 유명하다. 그의 교향곡을 연주하기 위해선 낭만주의의 기준에서 보더라도 파격적인 대규모의 오케스트라가 필요하다. 목관악기 주자도 많이 충원되어야 하지만 독창자와 합창단 등 성악가까지 합치면 다른 교향곡에 비해 몇 배의 인원이다. 극단적 예로 그의 교향곡 제8번이 ‘천인 교향곡’이라 불리는 것은 이 곡을 연주하려면 8명의 독창자, 2개의 합창단, 대편성 관현악단을 합쳐 모두 1000명이 무대 위에 서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바로크 이후 고전주의 시대부터 낭만주의 시대에 이르는 교향곡의 형성과 발전 과정을 살펴봤는데, 이런 교향곡의 발전사를 주도한 작곡가의 국적을 보면 모두 독일계라는 공통점이 있다. 음악사에서 독일은 교향곡이라는 이 거대한 음악형식을 가장 성공적으로 사용하고 발전시켰던 국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낭만주의 시대가 무르익으며 독일의 독점은 깨지고 다른 나라 출신의 작곡가가 교향곡의 역사에 뛰어 들었다.
프랑스 작곡가인 베를리오즈는 독일 출신이 아닌 가장 위대한 최초의 교향곡 작곡가다. 베를리오즈는 보수적 독일 낭만주의자들, 특히 브람스와는 정반대의 입장에서 교향곡에 대한 낭만주의적 대안을 문학의 극적 요소에서 찾았으며, 그 결과를 표제교향곡이라는 형태로 표현하였다. 즉 베를리오즈의 교향곡은 음악 형식에 내재되어 있는 힘의 원리에 따라 전개되는 게 아니라, 표제가 말하는 낭만주의적 환상에 의해 움직인다. 그의 가장 대표적 작품 ‘환상 교향곡’이 그 전형적 예로, 이 곡의 주제는 마치 극적인 등장인물처럼 일정한 성격을 갖고 있으며, 전 악장에 걸쳐 반복적으로 등장하여 극적 흐름을 유도할 뿐 아니라, 전체 악장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것은 주인공이 연인에 대해 갖고 있는 일종의 강박적 영상으로 베를리오즈는 이를 고정 악상(idee fixe)이라 불렀다. 한편 베를리오즈의 교향곡에서 가장 뛰어난 면모는 매우 역동적인 그의 관현악법이라 할 수 있다. 독창적 관현악법의 사용으로 대규모 편성, 독창적인 음색, 다양한 악기구성, 미묘한 리듬 효과를 창출해낸 베를리오즈는 진정한 근대 관현악법의 개척자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세자르 프랑크(1822~1890)는 베를리오즈 이후 또 한 명의 위대한 프랑스 교향곡 작곡가라 할 수 있다. 그는 단 하나의 교향곡을 남겼지만 반음계적 화성과 주제를 순환적으로 처리하는 등 양식상 매우 개성적 작품으로 이후 프랑스 작곡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차이코프스키는 러시아를 대표하는 교향곡 작곡가지만, 그렇다고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이 러시아의 민족양식을 대변하진 않는다. 오히려 그의 교향곡은 독일 고전주의 교향곡이나 이탈리아 오페라, 유럽 각국의 춤음악의 특성이 반영된 국제적 성격을 갖는다 할 수 있다. 물론 그의 교향곡들의 몇몇 부분에 러시아 민속 선율을 사용하긴 했지만 단순한 인용에 그칠 뿐이다. 차이코프스키 교향곡의 매력은 무엇보다 길고 아름답게 흐르는 선율이다. 특히 그의 6개의 교향곡 중 제4번, 5번, 6번은 매혹적 선율과 그에 어울리는 화려한 관현악법, 그리고 고전주의 교향곡의 화려한 피날레 대신 처절한 고통 속으로 빠져드는 듯한 피날레가 주는 비극성 때문에 많은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가장 대표적 민족주의 교향곡 작곡가로 체코의 드보르작(1841~1904)을 들 수 있다. 그는 모두 아홉 개의 교향곡을 작곡하였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제9번 ‘신세계 교향곡’이다. 그러나 체코의 스메타나(1824~1884), 그리그(1843~1907), 무소르그스키와 림스키-코르사코프를 포함하는 러시아의 일명 ‘막강한 5인조’는 드보르작처럼 민족주의 경향의 교향곡을 작곡하는데 만족하지 않고, 독일식 교향곡의 속박에서 완전히 벗어난 교향시라는 새로운 대안을 이용하였다.
이외에도 19세기 말 프랑스식 민족주의 음악이라 할 수 있는 인상주의 작곡가들 역시 교향곡을 외면하였다. 결국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교향곡은 하향 길로 접어드는 듯 했다.
그러나 20세기 초 쇤베르크에 의해 실내 교향곡이 작곡된 이후 또 다시 작곡가들은 교향곡을 가장 중요한 장르로 인식하였다.
대규모 오케스트라가 연주해야 하기 때문에 경제적 문제도 발생했고 새로운 세기의 정신을 반영할 새로운 음악 법을 찾기 위한 다채로운 실험을 하기에 기술적 어려움도 따랐지만 몇몇 작곡가들에 의해 교향곡은 과거 고전주의 시대의 그 영화를 되찾고 있었다.
핀란드의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던 시벨리우스(1865~1957)가 그 대표적 작곡가로, 그는 7개의 교향곡을 작곡하였다. 그의 교향곡은 독창적이면서 구조가 명확한 형식으로 쓰였으며 감정의 절제가 돋보인다. 또한 댕디(1851~1931)는 20세기 가장 대표적 프랑스 교향곡 작곡가다. 민요 주제를 사용하는 등 프랑스 민족음악에도 관심이 많던 댕디는 세자르 프랑크로부터 작곡을 배웠으며, 루셀(1869~1937)과 같은 제자들이 프랑스 음악의 전통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도왔다.
영국 출신의 작곡가 본 윌리엄즈(1872~1958)도 20세기 교향곡 역사에서 중요한 작곡가다. 그는 모두 9개의 교향곡을 작곡했다.
이 외에도 ‘시편 교향곡’의 작곡가 스트라빈스키와 아홉 개의 독주악기를 위한 소규모의 교향곡을 작곡한 베베른도 20세기의 중요한 교향곡 작곡가며, 누구보다 소련의 작곡가 쇼스타코비치는 현대 교향곡 작곡가 중에 꼭 기억해야 할 작곡가다. 쇼스타코비치는 모두 15개나 되는 교향곡을 작곡하였는데, 그것은 교향곡이 소수의 특권층이 아니라 대규모 청중을 위한 음악을 선호하는 소련의 사회주의적 이념에 부합하는 양식이기 때문이다.
* 베를리오즈 ‘환상 교향곡’ 중에 제2악장 ‘무도회’
‘환상 교향곡’은 작곡가 베를리오즈가 파리에 순회공연을 온 영국 세익스피어 극단의 여배우 헤리엇 스미드슨을 열렬히 사모하여 불타는 정열을 음악으로 표현한 자서전적 작품이다.
자살 소동까지 일으키며 헤리엇을 사랑한 베를리오즈는 결국 1832년 이 작품의 초연을 계기로 결혼에 성공하지만 둘의 결혼 생활은 오래지 않아 파국을 맞았다. 그 열정적 사랑은 ‘환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음악 역사상 모험가로 불리는 베를리오즈는 이 체험을 계기로 교향곡의 역사에도 큰 의의를 갖는 표제교향곡을 작곡할 수 있었다.
표제교향곡은 음악 이외의 요소, 즉 그림이나 풍경, 문학 작품 등에서 받은 인상을 음악으로 나타낸 형식으로 대부분 작품에 대한 청중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각 악장마다 작곡가가 쓴 설명이 붙는 경우가 많은데, 베를리오즈의 교향곡엔 작품의 유래를 설명하는 긴 문장이 첫 머리에 붙었고 다섯 개의 악장마다 지극히 문학적 표제와 긴 해설이 삽입되었다.
‘병적인 감수성과 풍부한 상상력을 가진 젊은 예술가가 희망 없는 사랑에 대한 절망으로 고민하다 아편 자살을 시도하지만 복용한 아편이 치사량에 이르지 못해 혼수상태에서 괴이하고 환상적인 꿈을 꾼다. 이 환상이 빚어낸 상상이 그의 마비된 뇌리를 스칠 때, 꿈속의 연인이 하나의 선율이 되어 고정 악상처럼 되풀이 되어 나타난다.’ 여기서 젊은 예술가는 베를리오즈 자신이고 연인은 헤리엇 스미드슨이다. 그리고 고정 악상인 중심 선율(악보)은 작품 전체를 통하는 주제 선율로 이 선율은 1악장부터 5악장에 이르기까지 주인공이 연인을 떠올릴 때 마다 되풀이해서 나타난다.
2악장 ‘무도회’는 왈츠 풍으로 전개되며 교향곡에 왈츠를 도입한 것은 당시로는 이례적이었다. 작곡가가 붙인 해설에는 ‘흥청거리는 축제처럼 떠들썩한 무도회에서 그는 춤을 추고 있는 연인을 본다.’고 적혀 있다.
곡의 첫머리는 현악기의 트레몰로(연주에서 음이나 화음을 빨리 규칙적으로 떨리는 듯이 되풀이하는 주법)와 하프의 장식적 음향에 의해 묘사되는 가람들의 웅성거림 속에서 즐거운 왈츠의 선율(악보)로 시작된다.
*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제6번 b단조 Op.74 ‘비창’ 제4악장
이 교향곡은 많은 전기 작가들과 대중에게 ‘자전적’인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전기 작가들은 차이코프스키가 평생 간직하고 살아온 동성애에 대한 심적 고통과 자신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 삶에 대한 체념을 이 교향곡 속에 담으려 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보다는 인간들이 공통으로 가질 수 있는 번민과 고뇌, 인생의 아픔과 감격, 절망과 체념 등의 정서를 차이코프스키 만의 독특한 음악 재료로 표현했다 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차이코프스키 자신이 “내 생애에서 가장 좋은 작품”이라고 편지에 쓰기도 했던 이 곡은 전편에 걸쳐 큰 원을 그리듯 전개되는 우아한 선율과, 친근하고 서정적인 말을 건네다가도 어느 순간 강렬한 외침소리로 돌변하는 주관적이고 열정적인 음악적 성격의 대조가 인상적이다. 무엇보다도 이 교향곡에서 제목에 가장 합당한 정서를 표출하는 것은 우울한 아다지오로 시작하는 제1악장과 ‘아다지오 라멘토소(탄식하듯이)’의 제4악장이다. 특히 제4악장은 일반적인 교향곡 제4악장이 가장 빠르고 경쾌한 느낌으로 피날레를 장식하는 그때까지의 관례를 깨고 비통하고 애절한 탄식으로 끝을 맺음으로써 청중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제4악장은 자유로운 3부 형식으로, 비통함을 담은 b단조의 주제(악보)가 탄식에서 절규로 고조되었다가 가라앉은 다음 애절한 탄식이 어느 정도 정화되어 속도감 있게 펼쳐지는 안단테 부분(악보)이 이어진다. 이 주제 역시 통곡하는 듯한 정점에 도달하고 다시 처음의 b단조 주제 부분이 속도를 바꿔(안단테 논 탄토) 전개되다가 마지막으로 체념과 비탄의 정서가 끝없는 공간 속으로 사라지는 듯한 후주부분에서 처음의 주제는 다시금 무겁고 어두운 고뇌를 강조한다.
3) 교향시
음악은 소리로 되어 있어서 우리 주변에 들리는 소리를 흉내 낼 능력이 있고, 바로 이 능력 때문에 음악이 아닌 다른 어떤 대상을 묘사할 수 있다는 믿음은 어떤 시대나 존재했다.
음악으로 폭풍우, 전투, 새들의 노래, 속삭이는 시냇물 등 무수한 비음악적 사건들을 소리로 표현하려는 작곡가들은 심지어 이야기나 시, 생각이나 그림까지도 음악으로 나타내고자 했다. 이러한 생각은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에 가장 활발하여, 이 시대 음악들 중 상당 부분이 문학적 영감에 빚지고 있음은 셰익스피어의 장면들과 괴테와 바이런의 시들, 각국의 고유한 신화나 전설을 소재로 한과 죽음을, 자연 현상과 민속 축제 등을 다양한 표정으로 담아냈으며, 문학적이거나 회화적인 소재를 다룬 작품에 표제를 붙임으로 감상자들의 이해를 돕고 음악 전체의 흐름을 설명하려 했다.
교향시란 낭만주의 시대에 유행했던 하나의 악장만으로 이뤄진 표제 교향곡을 말한다. 앞 장에서 살펴본 것처럼 고전주의 시대까지 소나타의 형식미를 추구하는 교향곡은 작곡가들이 가장 선망하던 장르지만 낭만주의 시대에 이르러 이런 교향곡의 전통적인 틀은 자유로운 감정 표현과 주관성과 독창성을 추구하게 된 작곡가들에게 부담스러운 속박이 되었다. 따라서 낭만주의 시대 교향곡 작곡가들은 악장의 수를 늘리거나, 교향곡의 전 악장을 같은 주제로 쓰기도 하고, 문학적 또는 회화적인 내용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표제를 도입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였다. 하지만 교향곡의 전통적 형식은 독창적이고 개성적인 낭만주의적 정서를 제대로 담아낼 수 있는 좋은 그릇이 될 수는 없었다. 그래서 탄생하게 된 것이 교향시이다. 거의 단일 악장으로 이뤄진 교향시는 낭만주의 음악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소품 선호 경향을 반영하고 있다. 또한 교향시는 낭만주의 양식의 특징인 음악과 문학의 결합을 성공적으로 이룩한 장르다. 한 마디로 교향시는 피아노 성격 소품, 예술 가곡과 함께 가장 낭만주의적인 장르라 할 수 있다.
교향시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한 작곡가는 리스트다. 그는 모두 13곡의 교향시를 작곡하였는데, 대표 작품으로 ‘전주곡’, ‘오르페우스’, ‘마제파’, ‘햄릿’, ‘훈족의 전쟁’을 꼽는다. 또한 그는 괴테의 ‘파우스트’와 단테의 ‘신곡’ 등에 영감을 받아 같은 제목의 교향시를 작곡하기도 하였다. 이 가운데 ‘전주곡’은 오늘날 가장 자주 연주되며, 외형적으론 리스트의 자전적 내용으로 추정되는 인간 삶의 역정을 네 개의 시기로 나누어 표현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소나타 형식을 따르고 있는 등 구조적 면에서 탁월한 균형미를 보인다. 또한 시원스러운 선율과 효과적인 관현악법도 이 교향시의 탁월한 장점이다. 그러나 리스트의 교향시가 보여주는 과장된 표현과 무절제한 감정의 폭발은 낭만주의 시대 청중을 열광시켰던 중요한 요인이지만 오늘날엔 어색하고 도가 지나친 것으로 보인다.
리스트로부터 시작된 교향시는 19세기 많은 작곡가들이 가장 선호하는 새로운 장르가 되었다. 특히, 독일 주도 하에 발전해온 교향곡이라는 형식의 규제로부터 벗어나 자기 민족 특성을 반영하는 독창적 작품을 쓰기 원했던 19세기 말 민족주의 음악가들은 독일식 교향곡의 대안으로 교향시를 택하였다.
민족주의 경향이 강하게 표출된 작품으로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 ‘시벨리우스(1865~1957)’의 ‘핀란디아’, 발라키레프(1837~1910)의 ‘타마라’, 체코 민족의 영혼을 노래한 시집 ‘꽃다발’에 영감을 받아 쓰여진 드보르작의 4편의 교향시를 들 수 있다.
그러나 특별히 민족주의 경향이 드러나지 않는 교향시들도 많이 작곡되었다. 예를 들어 19세기 말 가장 위대한 교향시 작곡가라 할 수 있는 생상스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특정 민족의 정서를 표현하려는 집착보다 문학적 내용에 대한 적절한 음악적 표현을 찾는 일에만 전념하였다.
생상스의 교향시 중 대표적 작품으로 ‘옹팔의 물레’, ‘죽음의 춤’ 등을 들 수 있으며,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대표적인 교향시로는 ‘죽음의 승화’, ‘차라투스트는 이렇게 말했다’, ‘돈키호테’, ‘영웅의 생애’등이 있다. 또한 오늘날 자주 연주되는 무소르그스키(1839~1881)의 ‘민둥산의 하룻밤’은 무소르그스키가 대표적 러시아 국민악파임에도 불구하고 민족주의적 경향이 노골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작품이다.
한편 교향시는 20세기 들어서도 꾸준히 작곡되었다. 20세기 초 가장 유명한 교향시로 뒤카(1865~1958)의 ‘마법사의 제자’가 있다. 그는 괴테의 시에 기초하여 앙리 브라치가 번역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마법사의 제자’를 작곡하였다.
마법사 선생이 자리를 비운 사이 주문을 외워 물통을 가득 채우려던 제자는 마법을 푸는 주문을 잊는 바람에 현관과 계단까지 집안이 온통 물바다가 되어 혼쭐이 나고, 선생이 돌아와 소동을 잠재운다는 재미있는 내용을 서곡과 스케르초, 코다로 구성한 이 작품은 다시 월트디즈니 애니메이션 ‘판타지아’의 음악으로 사용되며 일반에게 널리 알려졌다. 이 외에도 라흐마니노프의 ‘죽음의 섬’, 쇤베르크의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레스피기의 로마의 풍물에 관한 교향시 3부작 ‘로마의 분수’, ‘로마의 소나무’, ‘로마의 축제’ 등이 20세기에 작곡된 대표적 교향시다.
이처럼 교향시는 문학적 소재를 음악으로 표현하는 일종의 표제 음악이다. 그러나 교향시는 어떤 내용을 표현하는지에 따라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즉, 추상적인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과 구체적 사물이나 이야기를 서술하는 것으로 분류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리스트의 ‘전주곡’이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죽음의 승화’ 같이 철학적이며 추상적인 내용을 표현하는 것과 생상스의 ‘죽음의 춤’이나 무소르그스키의 ‘민둥산의 하룻밤’ 같이 사실적이고 묘사적인 내용을 나타내는 것으로 분류할 수 있다.
* 생상스 교향시 ‘죽음의 춤’
생상스는 베를리오즈와 리스트라는 가장 화려한 낭만주의자 두 사람을 이해하고 그들을 옹호했르며, 베를리오즈의 섬세한 관현악 기법과 리스트에게서 교향시의 이념과 기법을 이어받은 생상스는 4편의 교향시를 남겼다. 이 중에 가장 유명한 작품이 ‘죽음의 춤’이다. 이 작품은 프랑스 시인 앙리 카잘리스의 기괴한 시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으로 한밤중에 시계 소리가 울리면 해골이 나타나 새벽닭의 울음소리와 함께 묘지로 도망쳐 간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다음은 카잘리스 시의 일부이다.
‘또박, 또박, 또박, 발꿈치로 박자를 잡으면서, 죽음은 두드린다. 묘석을,
한밤중에 울리는 죽음의 춤의 가락, 또박, 또박, 또박하고 울리는 비올롱 소리,
겨울바람은 울부짖고 밤은 어둡다.
보리수에서 높아지는 신음 소리, 창백한 해골이 어둠을 가르고,
커다란 얇은 휘장을 통해 몸에 두르고 춤추며 달려간다.
...(중략)...
쉿! 갑자기 춤은 그치고, 그들은 서로 밀며 도망친다. 새벽닭이 운 것이다.’
곡은 모두 3부분으로 구성되며, 한밤중을 알리는 하프 소리(종소리)가 12회 반복되면서 해골을 묘사하는 바이올린이 왈츠 리듬을 연주한다. 여기서 독주 바이올린은 보통의 바이올린과 달리 G-D-A-E플랫 음으로 조율되었다. 바이올린이 개방현으로 연주하는 감5도의 음정은 해골의 기괴한 느낌을 잘 나타낸다. 다음으로 플루트가 제1주제를 연주하는데 이 선율은 중세 레퀴엠 중 ‘진노의 날’에서 유래한 것이다.
해골이 춤추는 왈츠를 묘사하는 제1주제에 이어 독주 바이올린이 밤의 묘지의 음산한 분위기를 나타내는 제2주제를 연주하는데, 곡 전체에 걸쳐 이 두 주제는 교대로 연주되면서 리듬의 형태를 바꾸거나 악기를 달리하는 등 다양하게 변화되어 점차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마지막에는 춤의 절정인 아니마토 부분에서 갑작스럽게 템포가 바뀌며 오보에가 연주하는 새벽닭의 울음소리와 함께 해골들은 무덤 속으로 사라지고 정적 속에서 곡이 끝난다.
4) 관현악 모음곡
오늘날 관현악으로 번역되는 오케스트라는 가장 규모가 큰 기악합주로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볼 수 있지만 본래 의미의 관현악은 17세기 이후 유럽 음악에서 발생하고 발전했다. 대개 현악기, 관악기, 타악기로 구성된 앙상블은 ‘오케스타라’라 하고, 관악기로만 구성된 기악 앙상블은 밴드(band)라고 한다.
시대에 따라 이런 오케스트라의 구성이 다르고 바로크 시대의 20명으로 구성된 그룹과 고전주의 시대의 40명가량의 악단에서 현대의 100명이 넘는 관현악단에 이르기까지 그 수나 결합 방법에 따라 음악 형태도 많은 변화를 보이지만, 관현악곡이 갖는 미학은 아마도 저마다 다른 기량과 개성을 가진 연주가들이 화합과 조화를 전제로 이상적 음향을 만들어내는데 있을 것이다.
관현악곡은 기악 작품 중에도 가장 강한 표현력과 폭넓은 음량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작곡가들은 자신의 악상이 독주나 소규모 앙상블로는 표현의 한계가 있다고 느낄 때 관현악곡을 선택하게 된다. 즉, 악상의 규모가 방대하거나 여러 가지 색채의 음을 필요로 하거나 중후하고 강약의 폭이 큰 어떤 것을 표현하고자 할 때 관현악곡은 그것을 담아내는 가장 적절한 그릇이 된다.
교향곡과 협주곡, 교향시를 제외하고 그 외의 관현악 작품들은 일반적으로 교향곡이나 협주곡과 달리 문학적 상상력이 담긴 표제를 가지거나 춤과 연관된 것들, 그리고 무대 예술과 결부된 표제음악들, 또는 특정한 행사나 용도를 위한 작품들이 대부분이며 낭만주의 시대로 갈수록 음악 외적인 풍부한 예술적 상상력의 결과물로 나타난다.
바로크 시대가 막을 내리며 기악음악의 모든 장르에 걸쳐 널리 사용되던 모음곡 형식이 차츰 위축되어 고전주의 시대에 와서는 다양한 춤곡을 엮은 모음곡 형식은 거의 사라지고 세레나데와 디베르티멘토, 고전주의 소나타의 미뉴에트 악장 등에서만이 옛날 바로크 모음곡의 흔적을 전하게 된다. 흔히 ‘세레나데’라고 하면 연인의 창가에서 기타반주에 맞춰 부르는 사랑 노래라고 생각하지만, 그러한 성악곡의 의미 외에 오랫동안 관현악을 위한 일종의 모음곡을 지칭하는 용어이기도 했다.
사랑하는 사람, 또는 귀족에 대한 인사의 의미가 강한 세레나데는 18세기 중엽에 발달하면서 현악기나 관악기, 또는 현악기와 관악기의 혼합 앙상블의 형태를 가지는 가벼운 분위기의 음악이 되었다. 형식은 자유로우며 어떤 것은 실내악 규모이기도 했고 때로는 교향곡이나 협주곡 같은 곡들도 있었다.
세레나데는 정해진 형식은 없지만 대개 행진곡풍의 음악으로 시작하고 끝을 맺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연주자들의 등장과 퇴장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
악장 수는 적게는 4악장에서 모차르트 작품과 같이 10악장인 경우도 있었다. 행진곡이 끝나면 소나타 형식의 알레그로 악장이 나온 후에 두 개의 느린 악장이 두세 개의 미뉴에트와 교대로 등장한다. 여기에 점점 빠른 템포의 악장들이 가미되어 흥을 돋우기도 한다.
* 드보르작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 Op.22중 ‘왈츠’
드보르작은 세레나데를 2곡 남겼다. 한 곡은 국제적 명성을 얻기 시작한 즈음인 1875년에 작곡한 ‘현을 위한 세레나데’며, 다른 하나는 3년 뒤에 작곡한 작은 규모의 관악 앙상블을 위한 작품이다. 이 중 ‘현을 위한 세레나데’는 같은 제목의 차이코프스키 작품과 더불어 현악 앙상블을 위한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 중 하나다.
현악 5부, 즉 오케스트라의 현악 파트를 구성하는 제1바이올린과 제2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로 구성된 현악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5악장의 세레나데 중에 가장 유명한 부분이 바로 2악장 ‘왈츠'다.
3부 형식으로 된, c#의 왈츠에는 A부분에 3개의 주제가 나오는데, 그 중에서 처음에 등장하는 주제(악보)는 쇼팽의 유명한 왈츠 c# 단조의 제2주제와 매우 흡사하다. 또한 트리오 부분도 쇼팽의 왈츠의 중간부분과 같은 조(Db장조)로 되어 있으며 선율의 움직임도 유사한 점이 흥미롭다.
이 트리오는 선율적 주제가 카논 풍으로 반복됨으로 마치 메아리가 울리듯 인상적인 악상이 전개된다. 전체를 통해 3박자 왈츠의 리듬을 타고 우아하고 부드러운 선율이 진행되는 동안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에서 느껴지는 화려한 분위기와는 다른 멜랑콜리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모차르트는 1770년대와 1780년대 초반 자신의 친구들과 후원자들의 결혼식이나 생일 축하 파티를 위해 다수의 세레나데와 디베르티멘토들을 작곡했다.
디베르티멘토는 세레나데와 유사한 다악장의 합주 음악으로 미뉴에트와 행진곡, 여러 개의 춤곡을 포함하였다. 이 외에도 노투르노나 카사치오네 등이 세레나데와 유사한 여흥 음악의 기능을 담당하였다.
이 음악들은 주로 밤에(관례적으로 세레나데는 9시에, 노투르노는 11시경에 연주되었다) 가든파티 등 야외에서 연주 되었다. 단지 배경음악에 불과했지만 모차르트는 심혈을 기울여 작곡했고 이 중에는 유명한 세레나데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와 ‘하프너 세레나데’, 디베르티멘토 ‘음악의 농담’ 등이 있다. 사실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는 주로 관현악 작품으로 연주되지만 고전주의 시대의 세레나데는 아담하고 아기자기한 성격을 갖는 앙상블이었으며 오늘날의 연주는 다소 과장된 것이라 할 수 있다.
18세기의 세레나데가 앙상블 수준이면 19세기 들어서면서 오케스트라용 세레나데가 유행하였다. 브람스와 차이코프스키, 드보르자크, 엘가 등은 대규모 편성의 모음곡 형태로 세레나데를 작곡했으며 이들 중엔 교향곡에 가까운 작품들도 있다. 20세기에도 이런 경향은 이어지지만 볼프의 ‘이탈리아 세레나데’같이 세레나데 원래의 의미를 지키고 있는 소규모 악단을 위한 작품도 있다.
바로크 시대의 춤 모음곡 형태에서 고전주의 시대의 세레나데를 거쳐 낭만주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프랑스를 중심으로 모음곡의 형태가 다시 유행하였다. 이것은 주로 문학 작품을 소재로 한 작품들과 오페라와 연극 음악, 춤곡 등에 집중된다.
낭만주의 모음곡 중 유명한 작품들로는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 비제의 ‘‘아를의 여인’, ‘카르멘 모음곡’, 포레의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마스크와 베르가마스크’,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등을 꼽을 수 있다.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는 닭, 당나귀, 거북이, 코끼리, 캥거루, 뻐꾸기, 백조 같은 동물들의 모습과 특징을 재치 있게 풍자한 실내 관현악을 위한 모음곡이다. 동물 틈에 ‘피아니스트’라는 제목의 11번째 곡을 넣어 초보 피아니스트의 서투른 연주를 흉내 내고 있는 생상스의 기지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제13곡 ‘백조’는 너무 유명하여 종종 모음곡에서 따로 독립되어 연주되고 있다.
‘동물의 사육제’ 14곡을 통틀어 춤을 소재로 한 작품은 찾아볼 수 없다. 비제의 ‘아를의 여인’은 미뉴에트, 파랑돌 등과 같은 춤곡을 포함하고는 있지만, 이 곡 역시 극작가 도데(1840~1897)의 희극 ‘아를의 여인’을 위한 극음악을 모음곡으로 묶은 경우로 바로크 시대 춤 모음곡과는 성격이 다르다. 또한 그의 ‘카르멘 모음곡’은 오페라 ‘카르멘’에 수록된 음악을 발췌하여 만든 관현악 모음곡으로 춤곡과의 연관성이 거의 사라진 모음곡이다. 이런 특징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생상스, 비제, 포레, 라벨, 샤르팡티에, 드뷔시, 사티, 미요 같은 이 시대 프랑스 작곡가들의 모음곡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특징이다. 물론 프랑스 외에 차이코프스키, 마스네, 시벨리우스, 레스피기, 바르토크, 스트라빈스키 등의 모음곡에도 같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솔베이그의 노래’ 덕분에 우리에게 잘 알려진 그리그의 ‘페르 귄트 모음곡’도 입센의 연극을 위해 사용되었던 음악을 모아 만든 경우로 춤음악이 삽입되어 있지만, 연극의 내용상 춤추는 장면을 반주하기 위한 음악일 뿐 바로크 시대 모음곡처럼 춤음악의 모음곡이라 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모음곡의 전통은 춤에서 출발했지만 낭만주의 시대에 들어서 사라지고 다양한 표제음악으로 변하였다.
* 그리그의 모음곡 ‘페르 귄트’ 중 ‘솔베이그의 노래’
노르웨이 작곡가 그리그(1843~1907)의 대표작 ‘페르 귄트’는 노르웨이의 대문호 입센(1828~1906)의 사극에 붙여진 극음악이다.
입센은 1867년 이 작품을 이탈리아에서 완성하였다. ‘인간 유형을 묘사했을 뿐 아니라 노르웨이 자체를 표현한 걸작’으로 평가받는 ‘페르 귄트’는 ‘노르웨이의 파우스트’로 불릴 만큼 문학사에 상징주의와 표현주의, 초현실주의를 망라하며 인간관계의 붕괴를 주요 테마로 하고 있다.
주인공 페르 귄트는 게으르고 과대망상이 심한 인물로 마을 사람들에게 따돌림 당하지만, 언제나 그의 곁엔 따뜻하게 맞아주는 어머니 오제와 연인 솔베이그가 있다.
페르는 마을 결혼식에서 다른 남자의 신부인 잉그리드를 약탈하여 산 속에 숨었지만 금방 싫증이나 산 속을 돌아다니다 마왕에게 잡혀 가까스로 도망친다. 다시 마을로 돌아온 페르는 어머니의 죽음을 맞게 되고 또다시 모험을 찾아 바다로 떠난다. 전 세계를 떠돌며 파란만장한 생활을 한 페르가 지친 몸을 이끌고 그리운 고향의 오두막집에 당도했을 때 그곳에는 백발이 성성한 연인 솔베이그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페르는 “당신의 사랑이 날 구원해 주었소”라고 말하고는 그녀의 무릎을 베고 누워 굴곡 많은 삶을 마감한다.
그리그는 입센의 시극에 26편의 음악을 붙여 초연한 뒤에 다시 이 음악들을 모음곡 1번과 2번으로 묶어서 출판했는데, 오늘날엔 이 관현악 모음곡이 주로 연주된다. 모음곡 속에 포함된 ‘솔베이그의 노래’, ‘아침 기분’, ‘아니트라의 춤’, ‘아라비아의 춤’등은 따로 독립돼서 연주될 만큼 유명한 선율이다. 이 중에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노래가 된 ‘솔베이그의 노래’는 모음곡에서 제3막의 간주곡으로도 연주되지만 가곡으로 연주되는 곡은 극중에서 19번째 곡으로, 페르의 꿈속에서 솔베이그가 베를 짜면서 그를 그리워하며 부르는 노래다. 요즘은 독일어로 노래하는 경우가 많지만 원래는 노르웨이어로 된 가사가 붙어 있었다.
찬 겨울 지나 봄 돌아오면 그 여름 시들어 세월 흐르네
그대는 돌아오리 내 그대여 약속대로 나 기다리겠네
아 -----
그대 항상 주님이 도우리라 무릎꿇고 기도하면 주님 축복하리
그대 올 때까지 나 기다리겠네, 저 천국에서 우리 다시 만나리
아 -----
세레나데가 음악 그 자체를 즐기기 위해서보다 귀족의 정원에서 배경음악으로 사용되었다면, 연극에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해 만들어진 부수음악 역시 효과 음향 또는 ‘실용음악’으로 분류해야 할 것이다.
부수음악은 연극에 수반하는 음악으로 연극음악, 극장음악, 무대음악 등 다양하게 불리고 있다. 종종 서곡을 부수음악에 포함시키는 경우도 있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극의 막간에 도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장면에서 쓰이는 음악만을 따로 가리키는 용어다. 연극의 역사가 오래된 만큼 부수음악의 역사도 오래됐고 헨리 퍼셀의 세미 오페라나 20세기 뮤지컬 코미디도 이 범주에 넣을 수 있으나 음악사적 의미에서 부수음악의 출현은 르네상스 시대로 보아야 한다. 특별히 부수음악 중에 가장 풍부한 레퍼토리는 영국의 문호 셰익스피어의 희비극에 붙여진 수많은 음악들이다.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연극을 위해 음악을 필요로 했다. 그의 극본에는 어느 장면에서 어떤 음악을 써야한다는 구체적 지시들이 들어있다. 가령 사랑의 노래나 전원의 노래, 장례식 또는 연회나 행진, 전쟁 장면의 적절한 음악을 넣을 것을 원했다. 이처럼 셰익스피어 자신이 생전에 연극을 보완하기 위해 음악의 효과에 관심을 기울였던 까닭에 그의 사후에도 공연 때마다 어떤 음악을 사용하는지가 관심사였다.
19세기에 셰익스피어와 관련된 음악을 연극 무대에서보다 일반 음악회에서 더 자주 접할 수 있었다. 오페라는 물론이고 가곡, 환상곡, 서곡 등 여러 장르에서 많은 작곡가들이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소재로 다루었다.
오늘날 결혼식장에서 신랑 신부가 퇴장할 때 자주 연주되는 ‘축혼 행진곡’이 멘델스존의 부수음악 ‘한여름 밤의 꿈’의 일부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 곡은 극 중에서 두 쌍의 연인이 결혼식을 올리는 제5막에의 간주곡이자 결혼행진곡으로 작곡된 것이다.
트럼펫의 장려한 도입부의 선율은 기쁨을 표현하며 중간 부분에서 우아한 트리오 부분을 가지는 음악이다. 그러나 셰익스피어 작품을 소재로 한 부수음악들은 멘델스존 작품 외에는 대중적 인기를 얻지는 못하였고 오히려 서곡의 형태로 많이 남아있다. 연주회장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부수음악들로는 괴테의 희곡을 바탕으로 한 베토벤의 ‘에그몬트’, 슈베르트의 ‘로자문데’, 포레의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등이 손꼽히며 이들처럼 대중적 인기와 작품의 완성도가 높았던 곡들은 모음곡의 형태로 자주 연주된다. 근대로 오면 이 부수음악의 전통은 영화음악과 TV 드라마의 배경 음악 등으로 이어진다.
* 멘델스존 극음악 ‘한여름 밤의 꿈’ 중 ‘스케르초’
셰익스피어의 희극 ‘한여름 밤의 꿈’에 매료된 예술가는 멘델스존뿐이 아니었다. 그러나 깃털처럼 가볍고 화사하면서 달콤한 선율을 담고 있는 멘델스존의 작품이야말로 환상과 유머로 가득하며 가장 음악적인 시를 추구했던 셰익스피어의 원작에 근접했다.
멘델스존은 1826년 불과 17세의 나이로 셰익스피어의 작품과 괴테의 ‘발푸르기스의 밤’에서 영감을 얻어 베를린에 있는 그의 가족의 아름다운 정원에서 이 작품의 서곡을 완성하였다. 이 곡은 멘델스존이 최초로 대성공을 거둔 작품이지만 그는 17년 동안 이 작품에서 멀어져 있다가 다시 1843년에 연극을 위한 12편의 음악을 썼다. 이 중에서 ‘서곡’과 ‘결혼행진곡’, ‘야상곡’ 못지않게 자주 연주되는 ‘스케르초’는 단지 경쾌한 곡조 이상의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멘델스존의 음악에는 작곡가 자신의 우아하고 모나지 않은 성품이 그대로 드러나는데 그의 음악이 다양한 느낌들을 포괄하면서도 과도한 감정을 분출시키는 일이 드물었다는 점은 ‘한여름 밤의 꿈’에서도 느낄 수 있다. 그의 작품들은 종종 빠른 움직임과 투명함으로 듣는 이로 하여금 깔끔한 수채화를 감상하는 것 같은 기분을 갖게 하여 마치 요정의 음악과도 같은 느낌을 주는데 이 작품에서 이러한 효과는 극대화된다. 극중 제2막 앞에서 연주되는 이 ‘스케르초’에서 목관악기가 연주하는 주제(악보)는 ‘산 넘고 골짜기를 지나 어디로든 자유롭게 쏘다니는’ 요정의 앙증맞고 사랑스러운 몸놀림을 완벽하게 재현한다.
5) 관현악 소품
많은 문학작품이 낭만주의 시대 음악가의 영감에 불을 지폈지만 이 시대에 와서 전성기를 맞게 된 오페라나 연극의 도입 역할을 하는 서곡들이 대중들의 인기를 누리게 된다. 베토벤의 서곡 ‘피델리오’, ‘레오노레’, ‘에그몬트’, 또는 비제의 ‘카르멘’ 전주곡과 로시니의 ‘빌헬름 텔’, ‘도둑까치’ 서곡, 주페의 ‘시인과 농부’, ‘경기병’ 서곡들은 연주회용 음악으로 독립되어 인기를 얻게 되고 여기에 자극 받아 바로크나 고전주의 시대에 오페라나 오라토리오, 발레 작품의 처음에 연주되었던 서곡과는 달리 19세기엔 오페라와는 관련 없는 새로운 유형의 서곡들이 나타났다.
이처럼 독립된 관현악곡으로 만들어진 서곡을 연주회용 서곡이라 하는데 이들 대부분은 문학작품을 소재로 한 것이 많다. 그 예로 앞서 언급한 셰익스피어의 극작품을 소재로 한 연주회용 서곡이 있는데, 베토벤의 ‘코리올란’ 서곡, 차이코프스키의 환상 서곡 ‘햄릿’, ‘로미오와 줄리엣’, ‘템페스트’, 베를리오즈의 ‘리어왕’ 서곡 등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 차이코프스키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두 원수 가문간의 싸움과 반목이 격앙된 음악으로 묘사되고 사랑은 부드러운 선율로 표현되며 비극적 운명은 장례 행진곡 리듬으로 암시되는 등 관현악의 다양한 효과를 통해 작품 전체의 내용이 압축된다. 이 외에도 바이런의 시극에 음악을 입힌 슈만의 ‘만프레드’ 서곡과 바그너의 ‘파우스트’ 서곡 등이 문학적인 영감과 음악을 결부시키고 있다.
* 비제 오페라 ‘카르멘’ 전주곡
19세기 오페라 중에 가장 ‘충격적으로 사실적인’ 오페라로 손꼽히는 ‘카르멘’은 집시 여인 카르멘과 그녀를 둘러싼 남자들 사이에 일어나는 사랑과 갈등, 운명과 죽음을 강렬한 스페인풍의 음악으로 그려낸다.
작곡가인 비제(1838~1875)의 이름을 역사에 남겼음은 물론 그의 음악적 재능을 여실히 보여주는 ‘카르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연 당시 실패로 막을 내렸다. 그 이유는 가벼운 터치의 오페라 코미크 극장에서 상연되기엔 소재가 너무 과격했기 때문이다. 즉, 여주인공이 얌전하지 않은 집시에다 끊임없이 상대를 바꾸는 불같은 성격의 담배공장 아가씨라는 점과 결국 복수심에 이성을 잃은 애인의 칼에 죽는다는 설정이 당시로는 이례적이었다. 그러나 비제의 고향에서 외면당한 이 작품은 유럽 전역에서 프랑스 낭만주의 오페라의 걸작이 되었고, 초연 후 10년도 안되어 파리에서만 1000회 공연을 할 정도로 현재까지도 가장 널리 공연되는 작품이 되었다.
‘카르멘’에는 매우 다양한 음악적 스타일이 공존한다. 쿠바의 민속춤곡인 ‘하바네라’와 스페인풍의 ‘세기디야’, 그리고 역동적이며 리듬감 넘치는 투우사의 행진과 합창곡, 오페라 전체를 관통하는 정열적이고 육감적인 색채와 대사 및 중창부분에서 느껴지는 가벼운 오페레타풍의 스타일 등 실로 다채롭고 풍부한 음악적 소재를 맛볼 수 있다. 더구나 원작이 갖는 대조적 인물의 성격으로 인해 이 오페라의 극적인 사실감이 돋보이는데,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는 자유분방한 집시 여인 카르멘과 그와는 대조적인 청순한 미카엘라, 그리고 평범하면서 명예를 앞세우던 군인인 호세가 카르멘으로 인해 타락하여 살인자가 되는 것 등은 결말 부분의 운명적 죽음을 향한 효과적인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오페라 ‘카르멘’의 서곡에 해당하는 ‘전주곡’은 다른 서곡들이 단순히 관객의 주의를 모으기 위한 것과 달리 작품 곳곳에 삽입된 선율을 미리 맛보게 함으로서 전체 작품 분위기를 암시하고 있으며, 이 서곡에 나왔던 선율들은 자주 작품 곳곳에 등장함으로써 주인공들의 심리상태와 극적인 내용을 음악으로 표현한다. 즉 바그너와 유사한 유도 동기 역할을 하는 것이다. 첫 시작부터 강렬한 인상으로 연주되는 전주곡은 이 작품이 지니고 있는 상이한 분위기와 인상을 세 가지 주제에 담아 결합시키고 있는데, 먼저 활기찬 2/4박자의 행진곡(악보)은 목관악기와, 현악기, 타악기가 연주한다.
이 행진곡은 4막에서 투우사들이 입장할 때의 음악으로 투우장의 화려하고 흥분된 분위기를 묘사한다. 이어서 곡의 템포가 양간 느려지며 금관악기의 반주로 현악기가 투우사의 노래(악보)를 담담하게 연주한다.
투우사의 노래가 끝난 뒤 다시 처음의 행진곡이 연주된 다음 갑자기 곡의 분위기가 변하여 단조로 바뀌며 음울한 3/4박자의 부분이 시작된다. 여기서 현악기의 트레몰로를 배경으로 첼로와 금관악기가 비극을 암시하는 어두운 운명의 주제(악보)를 연주한다.
비제는 이 동기가 극 중에 나올 때는 노래는 멈추고 관현악이 음산하게 연주하도록 하여 주의를 집중시키려 했으며 전주곡에서 전체 합주의 불협화음으로 끝나는 마지막 부분은 여주인공의 극적인 최후를 암시하듯 갑자기 멈춘다. 음악회의 서곡이나 앙코르곡으로도 애호 받는 이 전주곡은 밝음과 어둠의 대비효과를 통해 작품 전체의 인상을 압축하고 있다.
연주회용 서곡들은 대개 소나타 형식으로 작곡된 것과 자유로운 형식으로 작곡된 두 종류로 나뉜다. 스코틀랜드 지방을 여행하고 작곡한 멘델스존의 ‘히브리디즈(일명 핑갈의 동굴)’는 소나타 형식으로 되어 있으면서도 음의 풍경화라 할 수 있는 묘사적인 작품의 대표적 예다. 멘델스존은 이와 함께 연주회용 서곡으로 괴테의 시를 소재로 한 ‘고요한 바다와 행복한 항해’를 남겼는데, 이 작품은 2개의 상반된 시의 상념에 따라 자유로운 주제 전개 방식으로 작곡되어 있다. 또한 특정한 역사적 사건이나 기념할 만한 일들을 서곡으로 남긴 경우도 있는데 차이코프스키의 ‘1812년’ 서곡은 나폴레옹 전투에서 승리한 러시아인들의 긍지를 그렸으며 브람스의 ‘대학축전 서곡’은 브람스가 독일 브레슬라우 대학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은 답례로 작곡한 것이다. 이외에도 오늘날 오페라는 거의 상연되지 않지만 연주회용 서곡으로 자주 만날 수 있는 곡들은 베를리오즈의 서곡 ‘로마의 사육제’, 러시아 작곡가 글링카(1804~1857)의 오페라 ‘루슬란과 르드밀라’ 서곡, 번스타인의 ‘캉디드’ 서곡 등이다.
18세기의 세레나데는 처음과 끝 부분이 행진곡으로 연주되는 경우가 많지만 행진곡은 실제 행진할 때 사용되는 실용 음악적 기능과 그러한 정경을 묘사한 예술음악으로 구분할 수 있다.
행진곡은 절도 있는 행진을 위해 대부분 2/4박자나 4/4박자 리듬에 겹 세도막 형식이나 론도 형식으로 되어있는 경우가 많다.
행진곡이 예술음악에 들어온 것은 16세기경으로 전쟁 묘사음악인 ‘바탈리아’가 그 시초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다 17~18세기를 지나면서 관현악곡이나 독주곡에 군대나 의식적 성격을 갖는 행진곡이 등장한다.
행진곡은 그 사용 목적에 따라 군대 행진곡, 결혼 행진곡, 장송 행진곡, 개선 행진곡 등 여러 가지 명칭으로 불리는데 19세기에 이런 행진곡의 명작이 많이 만들어졌다.
베토벤과 말러의 교향곡 제3번과 5번에 각각 ‘장송 행진곡’이 포함되며, 베토벤의 극음악 ‘아테네의 폐허’에 등장하는 ‘터키 행진곡’과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의 라데츠키 행진곡’, 차이코프스키의 ‘슬라브 행진곡’,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에 등장하는 ‘개선 행진곡’등은 예술적으로 승화된 행진곡들의 대표적인 예다. 또한 19세기 후반, 관악 밴드 음악이 융성하면서 행진곡은 오직 밴드만을 위한 작품으로 인기를 모으게 되었다. 이러한 종류의 대가는 미국의 수자(1854~1932)로, ‘성조기여 영원하라’와 ‘워싱턴포스트’ 등 130여 편이 넘는 행진곡을 작곡하여 ‘행진곡의 왕’으로 불렸다.
낭만주의 시대에는 새롭고 개성적인 음악스타일이 많이 개발된 반면 이미 존재하는 음악 소재를 가지고 새로운 음향적인 가능성을 추구하는 일련의 작품들이 있었다. 바로 관현악 변주곡으로, 피아노 독주곡 외에는 관현악 작품을 별로 쓰지 않던 쇼팽은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에 나오는 2중창곡 ‘손을 잡고’를 관현악으로 변주시켰다. 또한 낭만주의 음악가로는 드물게 변주 양식에 탁월했던 브람스는 선배 하이든의 디베르티멘토 주제를 가지고 주제와 8개의 변주, 피날레로 구성된 ‘하이든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남기고 있다. 이처럼 선배 작곡가에 대한 경외심에서 비롯된 작품들로 브리튼(1913~1916)의 ‘모차르트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푸가’를 손꼽을 수 있다. 특히 브람스 이후에 최고의 관현악 변주 작가라는 호칭을 들었던 막스 레거는 모차르트의 유명한 피아노 소나타 A장조(K.331)의 제1악장 주제를 가지고 새로운 화성과 선적인 대위법을 통해 독특하고 개성 있는 변주곡의 세계를 열었으며 브리튼의 ‘청소년을 위한 관현악 입문’은 영국 바로크 음악의 정점이었던 헨리 퍼셀(1659~1695)의 선율을 변주시켜가면서 오케스트라의 모든 악기를 상세하게 안내하는 교육용 음악으로 유명하다.
관현악곡은 실로 다양한 표현 능력을 갖춘 매체다. 특히 낭만주의 시대 음악가들은 오래된 전설과 잊혀진 꿈들, 격동하는 감정과 애수에 찬 상념들을 다양한 악기의 음색과 표현력으로 드러내고자 하였으며 자연에 대한 예찬과 시적인 느낌을 담아내려 하였다. 그 결과 색다른 표제를 가진 소품들도 양산되었는데 그 제목들만 보아도 이 당시 음악이 음악 외적인 상상력에 얼마나 많이 의존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피아노를 위한 소품들과 마찬가지로 관현악을 위한 작품들에 어떤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제목들이 붙게 되어 청중들은 이국적 느낌과 다양한 정감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 예로 차이코프스키의 ‘이탈리아 기상곡(카프리치오)’, 에네스코(1881~1955)의 ‘루마니아 랩소디’, 본 윌리엄즈의 ‘그린슬리브스 주제에 의한 환상곡’, 베토벤의 ‘로망스’, 시벨리우스의 ‘4개의 전설곡’, 바그너의 ‘지그프리트의 목가’, 샤브리에(1841~1894)와 라벨이 각각 작곡한 ‘스페인 랩소디’, 드보르작의 ‘슬라브 랩소디’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관현악 소품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