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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자료 스크랩 북경 체험 -십찰해-
혜운(재형맘) 추천 0 조회 87 11.04.14 20:3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오늘은 아침부터 자유가 주어지는 자율체험학습으로 시내 문화재 답사시간이다. 여럿이 머리를 짜내어 오늘 일정은 먼저 아침 천안문 광장 일대를 둘러보고 점심을 먹으러 지하철과 버스로 이동, 십찰해의 호수 풍광을 보기로 한다.

천안문 광장 북쪽에 있는 자금성은 다음주 탐방시간이 따로 있기에 후일로 미루고 시내를 가이드 없이 움직인다.

천안문 광장은 세계에서 가장 큰 광장이면서 중국 근현대사의 상징적인 곳이다.‘천하를 편안하게 하다’라는 뜻의 '천안문'으로 불리는 바로 이곳에서 1919년 5.4 운동이 일어났고, 모택동이 1949년 신중국의 성립을 선포했으며, 1989년 무력으로 진압된 민주화 운동, 천안문사태의 배경이기도 하다. 최대 100만명까지 운집 가능한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지만 주위를 돌아가면서 인민대회당, 인민영웅기념비, 혁명박물관, 역사박물관, 모택동 기념관 등의 명소가 있다.

 

 

천안문 광장은 세계에서 가장 큰 광장이면서 중국 근현대사의 상징적인 곳이다. '천하를 편안하게 하다'라는 뜻의 '천안문'으로 불리는 바로 이곳에서 1919년 5.4 운동이 일어났고, 모택동이 1949년 신중국의 성립을 선포했으며, 1989년 무력으로 진압된 민주화 운동, 천안문사태의 배경이기도 하다. 최대 100만명까지 운집 가능한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고 주위를 돌아가면서 인민대회당, 인민영웅기념비, 혁명박물관, 역사박물관, 모택동 기념관 등의 명소가 있다.

먼저 천안문 광장의 남쪽에 있는 모택동주석 기념관을 보기로 한다. 바로 앞 천안문 성벽에 걸려있는 모택동의 사진, 그는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중국 공산당의 기초를 다지고 국민당의 장개석을 몰아내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한 중국공산당의 아버지다. 사회주의 실현에 심혈을 기울인 마오쩌뚱이 최고의 자리에서 죽음을 맞이한 그 이듬해 1977년 9월에 지어진 건물이다.

기념관을 들어가려면 모든 소지품을 맡겨야 한단다. 가방검색을 일단 하고 건너편에 있는 물품보관소에다 모든 것을 다 맡긴다. 카메라가 몇 대냐 캠코더가 있냐는 등의 질문을 한 뒤 엉터리로 값을 부른다. 보는 사람이 임자라 한 번 말을 하면 그것이 곧 가격이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나 들어가는 입장료는 없지만 이런 행위로 돈을 버는, 돈에 눈이 먼 중국이다.

북청 입구로 들어가는데 또 한 번의 검색이다. 내외국인 할 것 없이 모두 소지품이 없는데도 검색이다. 바로 입구에 꽃을 파는지 그냥 주는지 모르지만 모주석 영전에 바칠 꽃을 준비할 만큼의 대단한 상징적인 인물의 전당, 모택동의 시신이 누워있는 청암정으로 들어간다. 몇 마디를 했다가 저지를 당하여 소리도 낼 수 없는 곳이니 그 어떤 소지품도 용서하지 않음이다. 계속 우리를 노려본다. 주눅이 들어 발걸음을 죽여가며 줄줄이 이어지는 추모행렬에 시신만 힐끗 바라보고 지나치는데 금방 살아 벌떡 일어날 것 같다는 말이 혹여 거짓일지라도 얼굴 부분의 붉은 조명은 차라리 안 보는 것이 낫다고 생각이된다.

무슨 일로 이런 일을 할까. 죽은 사람은 그저 죽은 사람이다. 한 세상을 풍미하다가 이승을 떠나면 편안한 마지막여정으로 죽은 사람에 대해서는 깨끗이 잊어주는 것이 낫다는 우리의 생각과 다른지, 공산권 내의 특유한 우상숭배이다. 모스크바의 레닌의 시신이나 특수방부처리를 위해 김일성 시신이 러시아에 다녀 온 일이나 참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우상숭배의 그들의 문화라고 넘어가기로 한다.

남청으로 돌아 나오면서 숨을 쉬며 그제서야 사람들은 넓은 광장을 배경으로 사진들을 찍고 있었다. 우리는 모든 소지품을 맡겼으니 그냥 털털거리면서 나올 수밖에 없었고. 다시 길을 건너 가방을 찾고 나니 허망한 마음이 든다. 겨우 몇 발자국을 걸어 그 시신을 한 번 보려고 몇 십원의 보관료를 내고 쫓기듯이 나와 이렇게 찬 바람을 맞고 있는 것이 화가 난다.

   

 

 

천안문 광장의 정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인민영웅기념탑은 1952년에 세워진 기념비로 높이 37.94미터의 중국 역사상 최대 기념비이다. 탑신은 튼튼한 화강암으로 만들어졌으며, 탑의 주변은 백옥 2층의 난간이 두르고 있다. 탑에는 모택동 주석의 친필로 쓴 " 인민영웅영수불후(人民英雄永垂不朽)' 8글자와 중국 현대사가 대형 부조로 새겨져 있다.

 

 

광장의 서쪽에 위치하는 인민대회당은 면적이 17만 평방미터에 달하는 웅장한 건물이다.남북으로 길게 지어진 건물의 길이만도 높이 46미터, 길이 336미터가 된다하니 그저 눈으로 보아서도 웅장함은 극치를 달린다. 앞으로 가보고 싶지만 바리케이트가 쳐져 있어 먼발치에서만 이를 보고 추운 바람을 견딜 수 없어 총총 자리를 뜬다. 사실은 인민 대회당까지 볼 예정이었으나 이미 기분이 잡쳐버려 생각을 바꾸고자 한다. 입장료를 받는데다가 자기네 일정이 짜여져 있으면 볼 수 없다는 말에 잽싸게 이를 실천한다. 그냥 가자는 말로- 우리네 국회와 다를 게 무언가.

천안문광장의 진수인 국기게양식을 보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지만 아침 일찍 이 자리에 와 있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저녁시간을 맞추는 것도 어려워 미련을 버린다. 국기 게양시간과 강하 시간은 매번 조금씩 다른데 그 이유는 넓은 중국 대륙에서 해가 뜨고 지는 자리와 천안문 광장의 지평선이 서로 일치할 때를 계산하여 정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바람 많은 날, 천안문 광장에 서 보라” - 온 몸으로 바람이 들어온다.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차가움이다. 온 몸 그대로 다 받으면서 작은 먼지에 지나지 않는 나를 꾸짖는다. 행여 오만함으로 남을 무시 하지 않았는지, 어쩌면 미움으로 뭉친 나를 산산조각 내려는 그 누구의 의도가 있어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지. 넓은 광장 피로 물들었던 그 날을 상상해보고 그 피의 대가가 지금 무엇을 이루었는지 그 젊음이 바쳐진 모습이 우리에게 어떻게 그려지는지.... 이렇게 많은 잡념을 생각하며 주춤대는 사이 일행은 벌써 광장 끝 지하도에 가 있다. 검색 또 검색이다. 거지같은 나라. 이런다고 테러가 없냐? 하지만 조심 또 조심인 것을-

  

일단 천안문광장의 동쪽 지하철 입구로 들어간다. 또 가방검색이다. 뭐 이런 경우가 있을까. 가는 곳곳마다 소지품을 검색한다. 이런다고 벌어질 일이 안 벌어지는지..... 투덜대면서 약속된 시간에 모두 집합이다.

지하철 바람 집채를 날릴만 하다. 찬 날씨 탓인지 생리현상이 일찍 찾아와 주변을 둘러보지만 마땅히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한다. 겨우 지하철에서 근심을 떨까 했는데 화장실이 없다. 아니 가동을 안 하는지 모른다. 구석에 간이화장실이 있는 것을 보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5각의 돈을 내고 용변을 보아야 한다니, 이게 올림픽을 치른 나라의 자부심이란 말인가. 그러나 여기에도 뭔가 빈틈이 있다. 문을 닫기 전에 다음 사람이 먼저 들어가면 계속 다른 사람들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5각씩 내야 한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을 돈 한 번 넣고 우리 모두 사용할 수 있었으니,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고, 기분이 묘하게 좋아진다. 자판기의 커피를 공짜로 먹었을 때처럼.

 

지하철 요금이 2위엔이다. 어디를 가나 몇 번을 갈아타나 구간내의 요금은 같다. 물론 13호선이라는 전철도 보이지만 실제 운영되는 지하철은 다섯 개의 노선이란다. 거기에다 버스는 1원이니 교통요금은 굉장히 싼 편이다. 건국문에서 내려 다시 갈아타고 고루대가에 내린다. 환승선은 제법 따뜻하고 사람들이 별로 없어 한 칸을 우리 모두가 앉아 서로를 마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도 잠시 지하철 찬 바람은 도저히 밖으로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한다. 그렇다고 지하철 역내에서만 있을 수 없는 일, 과감하게 나선다. 밖으로 나오니 오히려 따뜻하다. 햇살 덕을 톡톡히 본다고 할까. 식당을 찾아보았지만 딱히 먹을 곳이 마땅치 않아 시장 근처에서 야채호떡을 사 먹는다. 3위엔씩에 두 개를 사서 돌아가면서 허기를 때운다. 싱싱한 귤로 배를 채우고 다시 버스를 타고 이동하여 한 정거장가서 고루정류장에 내린다.

일단 조별로 행동하기로 하고 5시에 모이기로 한다. 우리 2조는 카페의 거리로 유명한 십찰해 호수근처를 맴돌다. 추운 겨울 쪽빛같은 호수물을 연상이나 했을까. 꽁공 얼어붙은 호수는 겨울스포츠의 꽃이 흐드러지게 핀 모습이다. 썰매에 스케이트에 남녀노소의 가림이 없이 모두 겨우 바람을 즐기고 있으니 이방인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라. 혹여 우리 중 누구라도 타자고 우겼으면 탔을까 모두 멍하게 바라보고 있으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쌩쌩한 바람맞이가 아니었으니 일단 배를 채우고자 움직이다.

 

호수 끝 쪽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다. 메뉴는 연밥에 소고기버섯탕, 닭뼈튀김, 만두 - 배 부르다. 점심으로 몸이 따뜻해져 행복한 마음이었는데 다시 몸을 다시 추위로 내몰아 얼음 꽁꽁 언 호수 바람으로 온 몸을 떨게 한다. 정말 얼음같이 차가운 날이다. 바람도 세다. 겨울의 카페거리는 을씨년스럽다. 양지쪽이 아닌 그늘의 음산함으로 인해 사람의 발걸음이 거의 없는 카페촌은 그냥 무미건조한 식당들이다. 여름에나 풍성한 모습일까. 아니면 겨울밤의 화려한 야경일까. 그저 아쉬운 마음으로 호수를 돌아 나오다

 

 

 

 

겨울의 카페거리는 을씨년스럽다. 양지쪽이 아닌 그늘의 음산함으로 인해 사람의 발걸음이 거의 없는 카페촌은 그냥 무미건조한 식당들이다. 여름에나 풍성한 모습일까. 아니면 겨울밤의 화려한 야경일까. 그저 아쉬운 마음으로 호수를 돌아 나오다 인력거꾼들의 성화에 못 이겨 마지막 탈 것까지 체험한다. 한 대당 30원으로 무지막지하게 깎아내는(처음에 80원에서 100원까지 부른다) 우리 아가씨의 매력에 넘어간다. 이리저리 참 바람을 맞고 다니지만 이 거리에 문외한인 우린 그저 돌돌 떨다가 이상한 골목으로 들어가 잠시 쉰다. 왜 쉬었냐고 하니 북경의 원래 참모습의 사람 사는 집들, 사합원을 보고 가자는 것인데 입장료가 20원이다. 우리들의 옛날 쪽방 같은, 함께 모여 사는 공동주택과 같은 것으로 이들의 모습이 개발에 밀려 사라져 가고 있는 문화재(가난의 증표?)라 하지만 별 관심 없고 그저 춥다는 것으로 움직이기 싫은 게으름이라, 그냥 패스한다. 그리고는 신나게 달리다가 막다른 길목에서 또 멈춘다. 이번에 입장료가 10원인 더 싼 곳으로 그들의 집을 또 보란다. 추위는 우리들의 볼거리를 완전히 가리고 만다.

 

 

 

 

제법 밝은 시간에 시내를 이동한다. 길은 끝이 없이 이어진다. 거리는 많은 사람들로 넘쳐나고 넓은 길은 땅 넓은 나라답게 편도 8차선이 넘는다. 그러나 무질서한 이곳 교통문화에 놀람을 금치 못한다. 도대체가 사람들이 차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차도 사람들도 신호를 무시한 채 마구 달리고 마구 뛴다. 파란 신호등에 움직이는 사람들은 거의 없고 붉은 신호등인데도 달리는 자동차와 사람들이 혼재하는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거의 곡예수준이다. 자전거 타던 습관들이 몸에 밴 사람들이라 그런가, 이제 이미 북경의 거리에서 자전거 행렬은 거의 볼 수가 없다. 자전거가 스쳐 지나가는 것과 자동차가 스쳐지나는 것의 두려움을 아직 모르는지 두려움 없이 차속에 뛰어든다. 교차로 한 복판에 서 있는 몇 명의 사람들이 존경(?)스러워지고~

 

2009. 1. 18 북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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