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다로운 이름 한자
우리 선조들은 왜 이름에 까다로운 한자를 많이 썼을까. 쓰고 싶어서가 아니라 쓰지 않을 수 없어서였다. 그 한 이유가 기휘(忌諱)다. 원시인의 사고방식으로 이름은 그 사람의 생명의 본질로 여겼기에 그 이름자를 다른 사람이 쓰면 그 사람의 생명을 훼손하는 위해 행위로 알았던 것이다. 특히 임금이나 아버지 등 조상의 이름자를 침휘(侵諱)하는 것은 신성침해 행위로서 법적인 제재를 받았던 것이다.
이를테면 진시황(秦始皇)의 이름인 정(政)을 기휘하여 음이 같은 정(正)자마저도 쓰지 못하게 하여 그 무렵 문헌에 정월(正月)을 단월(端月)로 쓰고 있다.
고려 광종(光宗) 때의 기록을 보면 문무양반(文武兩班)을 용호양반(龍虎兩班)으로 쓰고 있는데 광종의 할아버지인 혜종의 이름인 무(武)자를 기휘해서 였다.
고려 때는 충목왕의 이름인 흔(昕)자를 기휘, 예천흔씨(昕氏)의 성을 바꾸어 예천권(權)씨로 개성(改姓)토록 하고 있다. 송나라의 유온수는 아버지의 이름이 악(嶽)이라 하여 평생 악(樂)을 듣지 않았다 하며 서적(徐積)은 그의 아버지 이름이 석(石)이라 하여 평생 돌다리를 건너지 않았다고 한다. 세종 때의 재상 유관(柳寬)의 아들 유계문(柳季聞)은 경기관찰사(觀察使)로 배임 받았을 때 관직 이름 가운데 관(觀)자가 아버지 이름을 침휘했다 하여 부임을 거부하고 사의를 표하고 있다. 이 말을 들은 아버지는 이름 때문에 아들의 벼슬길을 막을 수 없다. 하여 이름을 유관(柳寬)으로 개명하기까지 했다.
조선조 임금들의 이름이 사전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까다로운 벽자(僻字)를 애써 찾아썼던 것은 기휘 때문에 백성들이 곤란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가문이 넓고 양반 가문에서도 후손들의 불편을 덜어 주는 뜻에서 까다로운 이름자를 찾아 짓는 경향이 없지 않았고...
우리 조상들은 족보에 올리는 정식 이름말고도 아명, 자(子), 호(號)등의 많은 이름을 가졌으며 자손에게 이름을 지울 때 그 많은 조상들의 각종 이름들과 겹쳐서는 침휘가 되기에 겹치지 않는 이름자를 찾다 보니 까다로운 한자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또 가문이 넓은 집안에서는 항렬에 맞추어 이름을 짓다 보니 선취득한 이름자는 택할 수가 없게 된다. 같은 항렬에 같은 이름이 두 개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부르기 좋고 쓰기 쉬운 이름자는 선취득당해 버리고 까다로운 벽자들만이 남게 마련이기에 어려운 이름이 되고 만다.
법원 행정처에서는 호적 업무 전산화에 지장이 많다 하여 이름짓는 데 어려운 한자를 제한하는 호적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한다. 사무 능률화라는 시대의 흐름으로 보면 이해가 가는 법개정이긴 하나 기계의 틀 속에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구겨놓는 것만 같아 뒷맛이 개운치가 않다. 침대의 크기에 맞추어 다리를 자르는 격이니 말이다.
9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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