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행복을 나르는 전철 여행
경사 허남석
“빨리 달려, 춘천역에서 출발했대!“
아내의 호령 소리에 놀라 남춘천역 2층 통과게이트를 달리듯 통과했다. 그런데 정강이 부분을 가로막는 막대 같은 무언가가 나를 저지했다. 하지만 순간 나는 돈키호테! 이를 무시하고 달리는 아내 뒤를 따라 3층 탑승장으로 달음질 쳐 올랐다. 숨이 턱에 차다는 말 이럴 때 쓰나보다. 과연 춘천역을 출발한 전철이 남춘천 역사로 들어오며 나처럼 숨을 몰아쉰다. 만일 이를 놓치면 2~30분을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에 체면이고 절차고 무시한 채 전철을 타고 나서 겸연쩍은 모습으로 아내를 바라보니 역시 멋쩍은지 빙긋 미소가 귀에 걸린다.
언제 전철을 탔었지? 생각해 보아도 잘 떠오르지 않는 걸 보니 정말 오랜만에 타는 건 맞는가 보다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지 탑승 후 전철은 움직이는데 아직 자리도 못 잡았다. 자연스럽게 두리번대는 시야에 이곳저곳
빈 좌석이 보였지만 나와 아내가 잠시 이별해야만 앉는 자리다 보니 선택을 못하다가 아내와 내 눈이 비어있는 경로 우대석을 향했다. 바로 “거긴 안 되잖아” 내 말에 “당신 65세 넘었잖아”하는 게 아닌가. “그렇지, 그러네”하면서도 그 자리에 내가 앉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나를 머뭇거리게 했다. “안되긴 뭐가 안돼, 되고도 남지” 떠미는
아내의 손길에 밀려 결국은 그 자리에 앉았다. "어흠" 잔기침을 하면서...
우리 내외에겐 도윤이라는 이름의 첫 손주가있다.
그 아기가 태어난 날이 지난 2021년 하지 날 이었으니 벌써 두 돌이 갓 지났다. 나를 보고 ‘하지’라고 부르는 천하에서 제일 예쁘고 귀여운 손주 도윤이. 그 도윤이 동생 출산이 임박하다는 급전을 받고 허겁지겁 나선 길이다.
어느새 전철이 장내 아나운서의 고운 목소리에 따라 김유정역에 닿았다. 창 너머 멀리 춘천의 명산 금병산이
보이고, 그 자락으로 김유정문학촌이 한 눈에 펼쳐진다. 구인회 후기 동인이기도 한 김유정은 1908년 이곳 실레마을에서 태어나 병마를 극복해 가며 각고의 노력 끝에 ‘한국문학의 대작가’로서 그 위상을 떨치며 쉼 없는 작품 활동을 하다가 1937년 초봄 그 숱한 병마와 약을 살 돈마저 구할 수 없는 극심한 가난을 이겨내지 못하고 삶을 마감했다. 그 회상에 순간 먹먹한 슬픔이 내 명치 끝에 와 탁 하고 걸린다. 강촌역을 향해 달리는 건너 창밖으로 북한강이 흐른다. 그 물줄기 따라 김유정 작가의 산골나그네, 총각과 맹꽁이, 소낙비, 노다지, 필승전 그리고 사후 발간된 동백꽃의 감동이 맑고 청정한 물줄기 되어 도란도란 흘러내린다.
6월의 산하는 푸르다 못해 아예 녹색물감으로 흩 뿌려놓았다고 해야 할 정도로 짙푸르다. “산모도 아기도 건강
하게 안전하게 잘 출산을 해야 할 텐데” 염려 반 걱정 반에 순간순간 두 손을 모아 기도를 하며 달리는 전철 여행 중에 끝없이 이어지는 신록의 향연을 바라보며 “지구상에 과연 춘천만큼 아름다운 곳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자신도 모르는 어깨 추임새로 이어진다. 김유정역을 출발하면서 흘러나온 안내멘트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강촌역에 스르륵 둥근 바퀴를 세로로 세워 놓는다.
7~80년대 대한민국 청년들과 대학생들의 휴양과 캠핑의 성지나 다름없던 강촌역은 옛 모습 그대로인데 왕래
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아 보였다. 낮 시간대라 그런지 발길 뜸한 강촌역을 지나고 아름다운 휴양지가 있는 백양리역을 거쳐 근래에 새로 생긴 굴봉산역에 잠시 머물다가 전철은 가평역을 향해 달려간다.
북한강을 아래위로 나누어 놓은 경춘대교를 건너면서 펼쳐진 북한강의 비경은 예나 지금이나 눈부신 와우!
하는 탄성을 터뜨리는 바로 그 모습 그대로다.
남도, 서도, 중도 등 여러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는 섬, 바로 자라섬의 환상적인 꽃 정원과 캠핑장 너머 멀리
남이섬도 보인다. 한국인이 꼭 가 봐야할 관광100선 중의 하나이자 동남아는 물론 세계적인 관광지로 그 위상을 뽐내고 있는 남이섬! 그 섬을 가로로 지나 상천과 청평역을 향해 미끄러진다.
경춘선 전철역은 춘천역에서 시작하여 청량리역까지 24절기를 닮은 총24개 역으로 되어있다. 그중 우리 큰
아들네가 사는 신내역은 춘천에서 열여덟 번째 역이다. 경기도에 속하는 가평, 대성리, 마석, 천마산, 평내호평, 금곡, 사릉, 퇴계원, 별내를 지나면, 서울시에 새로 편입되었다는 의미도 있는 신내, 바로 그 신내역 인근에 아이들이 산다. 사랑하는 큰아들과 큰며느리, 첫 손주 도윤이 그리고 오늘 내일 출산이 예정되어 있는 아기 그렇게 넷이다.
세상에서 가족, 특히 아이들, 그중에서 손주를 만나러 가는 일 만큼 기쁘고 행복한 일이 어디 있을까! 행복이
어디 다른데 있겠는가! 아내와 둘이 경로석에 멋쩍어 앉아 여행하는 이 전철여행, 워낙 에어컨이 빵빵해서 반팔입고 탑승한 게 후회스러울 정도의 난방시스템, 매순간 다른 모습으로 스쳐지나가는 역과 역의 모습과 풍경들. 비록 예외 없이 휴대폰을 보고 있는 바삐 사는 사람 사람들. 승하차를 거듭할 때마다 달라지는 우리 전철 칸의
남녀노소 아름다운 모습들. 이런저런 주머니 속의 행복을 음미하느라 경로석의 불편함도 덜어진 순간 전철은
고대하던 신내역에 도착했다.
부랴부랴 계단과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출구 게이트에 도착한 순간. 탈 때 뭔가 몰랐던 가로막대가 지금은 웬만한 군대 힘으로도 뚫기 힘든 장벽처럼 나를 턱 하니 막고 있다.
“여길 어떻게 지나가지?” “그냥 나와” 하는 아내 말에 마치 도둑이 담을 넘는 듯한 느낌이 들어 아내에게 아무도 보이지 않는 역무원 창구를 통해 “누구 안계세요” 서너 차례 요청을 하니 잠긴 문이 열리며 역무원 한 분이 나오셨다. 자초지종을 얘기하니 친절하게도 내 신분증을 요청했다. 65세 넘는 경로우대자! 사실과 다름없다는 사실에 힘입어 자신 있게 신분증을 쑥 내 밀었다. 자세히 살피더니 경로우대자의 전철탑승에 대해 안내를 한다.
그 분을 통해 알게 된 내용이지만, 경로우대자가 전철을 무료로 타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단다. 제일 좋은 방법은 거주지 주거래은행에 가서 ‘복지교통카드’를 발급받거나 또 하나는 동전 500원을 준비해서 게이트 앞에 비치된 경로우대 1일카드발급기에 신분확인 후 500원을 넣고 카드를 발급받아 사용하고 내릴 때 동전환불기에 교통카드를 넣으면 500원을 환급받는 방법이 있다는 안내를 받고 매우 기쁜 마음으로 신내역을 뒤로 두고 아들네 집을 향해 달리다 싶이 걸었다. 전철여행으로 가까워진 덕분에 아내와 손을 잡고.
점점 빨라지는 걸음 길에 갓 태어난 둘째 손주의 우렁찬 목소리가 벌써부터 들리는 듯 하다. 대한민국 출산율 0.78. 1도 한참 미달한 심각한 지경에 둘째 아이를 출산하게 될 큰 며느리의 결심과 아기와 가족 사랑이 너무도 고맙다. 내 전화번호에 세상에서 첫 번째라는 의미로 「ㄱ예쁜 나영이」로 올려놓은 우리 며느리!
엄마아빠가 엄청 사랑한다 며늘아가야!
첫댓글 먼저, 둘째 손자의 출산을 축하드립니다.
요즘 시집장가도 잘 안 가는 세태인데 두 자녀를 둔 학영이와 자부님에게
이 사회의 어르신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를 드려야겠습니다.
정말이지 늘 바쁘신 중에 언제 이렇게 좋은 글을 쓰셨는지 뚝딱 하면 한 편씩 쓰시는
경사 작가님의 필력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사모님과 아들 집을 찾아가는 기차 여정에서는, 들르시는 역마다 감상을 적으시니
예전에 읽은 민세 안재홍 선생의 명수필 춘풍천리를 연상케 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경사 났습니다.
둘째 손주까지 보시고 ~
전철을 타고 서울을 다녀오시면서 어쩌면 이렇게 표현을 작품으로 만들어 내실까?
가족에 대한 사랑은 할아버지. 할머니 한테서 나오는것 같습니다.
대중교통도 이용을 자주 안 하면 당황 할 때가 많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행복한 전철여행
그 종착지는 손주와의 만남이었네요.
둘째 손주 탄생을
거듭 축하드리며.
좋은글 탄생도 축하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