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무위자연이란 어떠한 인위적인 것을 하지 않고 세상이 저절로 그렇게 돌아가는 상태를 말하는 노자의 핵심 개념이다. 이러한 무위자연 사상은 보통의 20대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대학, 취직, 취업준비, 전문직 준비 등)에서도 의미가 있는 사상인가?
→ 기본적인 의견으로는 무위자연의 사상은 보통 20대의 현실에서도 의미가 있는 사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사회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무위자연'의 현대에 맞는 재해석이 필요하다. 우선 세상은 저절로 그렇게 돌아가게 두기에는 사회의 시스템이 경쟁을 부추기고, 억압하여 '저절로' 돌아갈 수 없고 인위적일 수밖에 없다. 현재를 이루고 있는 시스템 자체가 '자연적'이지 않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무위자연을 지향해야한다. 우리의 현실은 대학, 취직, 취업 준비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모른채 기계화되어 맞추며 살아간다. 이것 자체가 인위적인 것이기 때문에, 내가 인위적이지 않은 상태에서의 나의 '자연'스러운 삶이 어떤 것인지 묻는 것 자체가 현재의 무위자연을 지향하기 위한 선결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물음에서 도출되는 답과 그것을 위한 실천이 현대의 무위자연이라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나는 지금 20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서도 의미가 있고, 추구해야하는 사상이라 생각한다.
② 노자는 ‘욕심이 많은 자는 본성이 기틀이 얕다’, ‘욕망을 버리고 무위로써 살아야 한다’ 등 ‘욕심’에 대해서 상당히 부정적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최근 <차세대 중국학 대학생 논문대회>에 참여한 조선대학교 철학과 학생들은 논문대회에서 잘 하고 싶다는 ‘욕심’으로 ‘우수상’이라는 쾌거를 이루고, 공부하는 데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경우에도 과연 노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배움의 욕심을 버려야 할까?
→ 나는 배움의 욕심을 버리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장 기본적으로 인간은 욕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리고 삶에서 욕망의 추구는 토론에서도 언급된 것처럼 하나의 터닝포인트가 되거나 동기부여의 요소이다. 토론주제의 예시처럼 공부를 잘 하고 싶다는 욕심이 좋은 결과를 도출해냈다. 그러나 이 욕망에서 분명 공부 자체에 대한 욕망인지, 수상에 대한 욕망인지 구분해야 한다. 수상에 대한 욕망도 분명 동기부여를 주는 좋은 요소이지만, 선취가 되어야 하는 공부에 대한 욕망이 결여된 것이라면 노자가 말하는 '기틀'이 얇아지고, 실질적으로는 질적인 발전이 더 이상 불가능해진다.
따라서 이 욕망을 잘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욕망을 버리고 가지는 문제보다 더 우선이다. 배움의 욕심을 가지되 이로부터 파생되는 욕망이 가져오는 폐해를 충분히 확인하고, 스스로 이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③ 노자는 “마음을 맑고 깨끗이 닦기를 지극히 하고 사사로운 욕망을 극복하고 외물에 흔들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제16장)라고 하며 허정(虛靜)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과도한 명품이나 값비싼 차를 구매하는 것이나 부와 명예를 중시하는 것과 같이 외물에 흔들리는 예시들이 많다. 이처럼 허정을 지키려는 노자의 관점에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
→ 허정을 지키려는 노자의 관점에 찬성한다. 이는 토론주제 1과 2에 최종적인 답변이다. 부와 명예의 중시는 결국 '겉보기'를 중시하는 태도이며, 끊임없이 새로운 제품과 아이디어가 만들어지는 현대에서는 '겉보기'에 대한 욕망이 과속화되고 과중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내가 아닌 나를 이루는 요소들에 집중하는 삶을 살다보면 정작 '나'에 대한 '앎'은 결여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부와 명예, 겉보기에 치중되어 계속 비교하는 삶은 현재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는 무기력증, 우울증등이 현상황을 설명해준다. 토론에서 언급되었던 것처럼 세계행복지수가 가장 높았던 부탄이 SNS가 도입되고 나서 최하위로 떨어졌다는 점에서 이러한 겉보기를 중요시하고 비교하는 세태가 가져온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때문에 노자의 말처럼 허정을 지키면서 사사로운 욕망인지, 실제 자신의 취향이나 필요인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