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52년 4월, 어느 미국 시민이 북아프리카에 있는 튀니지라는 나라에서 생을 마쳤습니다. 그가 죽은 지 31년 만에 미국 정부는 그의 유해를 본국으로 송환해 갔습니다. 도대체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그가 남긴 노래 가사 하나 때문에 전 미국 시민의 사랑을 받았던 존 하워드 페인 이었습니다. 홈 스위트 홈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그의 노래는 우리나라에서도 “즐거운 나의 집”으로 번역하여 불러졌습니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이리” 그런데 참 모순인 것은 전 세계인의 심금을 울린 이 가사를 쓴 페인에게는 그렇게 행복하고 소중한 가정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그는 평생 고국을 떠나 혼자 살아갔습니다. 이 노래를 지을 때는 프랑스에서 살았고, 나중에 북아프리카 튀니지에 미국의 외교관으로 부임한지 10년 후, 60세를 일기로 별세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이 없었던 그는 더욱 가정의 소중함을 노래에 담았던 것입니다. 죽을 때 고향에 있는 공동묘지에라도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지만, 31년이 지난 후에야 미국 워싱턴에 있는 교회의 묘지에 안장이 되었습니다. 생전에는 가족이 없었지만, 죽은 후에야 그를 추모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소중한 가족이 된 것입니다.
살면서 가정의 소중함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얼마나 되겠습니까? 함께 읽은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도 우리들에게 가정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말씀해 주십니다. 오늘 본문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할 목적으로 질문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 질문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무엇이든지 이유만 있으면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이르되 사람이 어떤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3절) 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는 질문 속에는 “아내는 살다가 얼마든지 버릴 수 있는 존재”라는 잘못된 마음이 있었습니다. 또한 오늘날에는 그 반대의 일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가정은 무엇보다도 소중한 공동체라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소중한 공동체에도 위기는 존재합니다. 사회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의 가정이 재산 때문에, 배우자의 외도나, 성격이나 가치관의 차이로 파괴가 되는 것은 거의 날마다 매스컴의 단골 소재가 되고 있습니다. 더구나 이런 사례들은 가정이 소중하게 지켜져야 하는 공동체라는 경각심을 심어주기보다는 우리들도 언제든지 이렇게 할 수 있다는 정당성을 심어주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더 큰 문제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우리의 가정과 가족들이 참으로 소중한 것이며 우리는 이 소중한 것을 잘 지키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교훈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1) 각 사람을 귀하게 창조하신 하나님
먼저, 가정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소중한 공동체라는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가정이 왜 소중한가 하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의 시작을 이야기 해주는 창세기를 보면, 가정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신 것에서 비롯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4절) 여기에서 가정을 이루는 가장 소중한 원리는 무엇인가 하면, 가정의 구성원이 누구든지 우리들의 가족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먼저 부모가 있기 때문에 그 사이에서 태어나는 자녀가 있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이 가족들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생명이라는 것이 더 우선적이라는 것입니다.
생명은 우리가 성별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거나, 생긴 모양도 우리의 뜻대로 설계해서 낳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에 의해서 세상 속에 탄생되었으며, 하나님의 손길로 만들어진 개별적이며 특별한 존재들입니다. 외모나 성격, 마음과 생각, 경험까지 어느 누구라도 나와 똑 같은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자녀에게 원하거나 바라는 모습의 삶이 있다고 하더라도 자기 자녀를 자기의 뜻대로 되게 만들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녀들은 물론이고, 남자와 여자 남편과 아내는 더욱 자기의 뜻대로 주장할 수가 없고, 가족 외에 다른 사람들은 더더욱 나와 똑 같은 생각을 하고 똑 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이 되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다른 모습들을 존중하고 받아들일 때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서로 조화롭고, 평화롭게 지낼 수 있는 것입니다.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 – 존 그레이,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서로 다 다르지만 특히 남자와 여자는 더 다르다는 것입니다. 존 그레이라는 사람이 오죽하면,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제목으로 책을 썼겠습니까? 우리는 각자 다른 별에서 왔지만, 오랫동안 같이 살다가보니까 서로 말을 하는 방식이나 생각하는 방식이 똑 같을 것이라는 착각을 하게 되었고, 그래서 갈등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이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각자가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생기는 것입니다.
가장 귀한 것은 단 하나 뿐이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에게 유명한 작가가 단 두 점만 만든 도자기가 있었습니다. 워낙 잘 만든 작품이라 매우 값비싼 도자기였습니다. 어느 날 그는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한 개의 도자기를 주저 없이 깨트려버렸습니다. 이것을 지켜본 사람들은 깜짝 놀라며 말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이 귀한 물건을 깨트려버렸습니까?”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은 단 하나뿐이어야 합니다.” 이후 남은 한 개의 도자기는 이전에 두 개의 값을 더한 것보다 더 비싼 물건이 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이 이야기에서 두 개의 도자기 중에 한 개를 깨트려야 한다면, 나를 깨뜨려야 하며, 우리는 자기를 깨트릴 때 남은 한 개가 더욱 귀한 보배가 된다는 교훈을 얻습니다.
하나님이 한 분이신 것처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하나 뿐 입니다. 우리는 나와 함께 하는 다른 사람이 더욱 값진 존재가 될 수 있도록, “나와 같은 말, 같은 생각을 하라고”만 요구하기보다, 나를 깨트려서라도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가정, 나의 소중함을 알아달라고만 요구하는 가정이 아니라 상대의 소중함을 알아주는 소중한 가정을 이루어 나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 둘이 하나가 되게 하신 하나님
다음에, 예수님은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로 창조된 사람이 둘이 아니라 한 몸이 되게 하셨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5,6절)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가정을 이루는 원리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정의 원리 1. 부모를 떠나서, 2. 서로 합하여, 3. 하나님이 짝지어 주심 - 첫 번째는 “부모를 떠나서”입니다. 창세기를 보면, 창조 때에 가정은 아담과 하와로 짝 지어진 한 개의 가정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세계에는 수십억 개의 가정이 존재합니다. 이와 같이 가정은 계속해서 확장이 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사람이 부모를 떠나서 새로운 가정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부모를 떠난다는 것은 꼭 분가를 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누구든지 심리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그 부모를 떠나서 독립할 때 새로운 가정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아내와 합하여”입니다. 가정은 남자와 여자로 창조된 두 사람의 완전한 일치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이 완전한 일치를 비유하는 말로써 “한 몸이라”고 말씀합니다. 한 몸이 된다는 것은 한 마음, 한 믿음이 된다는 것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밀가루반죽 두 덩어리가 하나가 되려면 한 덩어리를 다른 한 덩어리 옆에 갖다 놓아서 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짓이기고 반죽이 되어야 하나가 됩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각자 다른 몸을 가졌지만, 서로에게 자기를 내어 줌으로써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가정뿐만 아니라 어떤 공동체든지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은 서로를 위하여 희생하고 헌신할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창 2:18절을 읽어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시고 아담의 갈비뼈로 하와를 만들어 주실 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창세기 18:2)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짝지어 주신 목적은 서로 돕는 존재가 되도록 하시려는 뜻입니다. 또한 이것은 꼭 결혼을 교훈으로 하시는 말씀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모든 관계가 이런 원리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가족뿐만 아니라 직장의 동료, 교회의 성도들, 이웃들, 이 모두가 하나님이 만나게 해 주신 관계로 받아들이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우리들이 서로 만나서 교회를 이루게 하신 목적은 서로를 돕기 위해서입니다.
특히 하나님이 창조하신 공동체 가운데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되는 가족들이 서로를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부부사이에 외조와 내조도 서로를 돕는데 중요한 도움이 됩니다. 또한 이보다 더 귀하고 중요한 것은 서로에게 영적인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히브리어의 배필이라는 의미는 “구원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구원하시려고 하와를 짝지어 주시고, 하와를 구원하시려고 아담을 짝지어 주신 것입니다. 만약 아담과 하와가 서로의 구원을 위해서 좋은 역할을 했다면 뱀의 유혹에 넘어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담과 하와는 서로의 구원을 위해서 좋은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는 두 사람이 분열되고 고통을 겪게 된 것입니다.
특히, 교회는 예수님과의 영적인 결혼을 이룬 가정으로 비유합니다. 우리는 이 영적인 가정 안에서 서로를 돕는 가족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서로의 구원을 돕는 가족들이 되시기 원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을 잘 하도록 서로를 도우시고, 한 사람이 지치면 한 사람이 돕는 기도를 하고, 한 사람이 넘어지면 한 사람이 잘 일으켜 주어서 구원의 복된 길을 가는 영적인 가족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삶
예수님께서 우리들이 가정을 이루고 사는 것이 이렇게 소중하며, 책임과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실 때 제자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자들이 이르되 만일 사람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진대 장가들지 않는 것이 좋겠나이다”(10절) 가정을 이루는 것이 이렇게 책임과 부담이 따르는 일이라면, 차라리 장가를 들지 않고 혼자 사는 것이 낫겠습니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여자를 물건처럼 생각하였던 반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남자들과 동등하게 창조하신 존재로써 자신과 같이 대우하고 존중하며, 소중히 대해야 한다고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당시 남자들에게 상당한 부담이 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차라리 혼자 사는 것이 낫겠다고 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12절)
예수님은, 사람이 가정을 이루어 사는 것도, 혼자 사는 것도 이것이 자기에게 어떤 유익이 따르는지를 떠나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하는 것이다 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의 삶은 혼자 사느냐 둘이 사느냐? 무엇을 먹느냐? 무엇을 입느냐?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로 탄생되는 그 순간부터,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사명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결혼해서 가정을 이룬 사람이든, 배우자와의 사별이나 다른 이유 등으로 가정으로부터 자유하게 되었거나, 아직 가정을 이루지 않은 사람들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고 말씀 했습니다. 가정을 이루는 것도, 혼자 사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목적 안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가정의 네 가지 교훈 - 1. 아내들이여 남편에게 복종하라. 2. 남편들이여 아내를 사랑하라. 3. 부모들이여 자녀를 노하게 하지 말라 4. 자녀들아 부모를 공경하라.
신약 성경은 가정을 향한 네 가지의 중요한 원리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 아내들이여 남편에게 복종하라. 2. 남편들이여 아내를 사랑하라. 3. 부모들이여 자녀를 노하게 하지 말라 4. 자녀들아 부모를 공경하라. 이것은 단순히 가정을 행복하게 유지하는 원리로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와 같은 교훈을 통해서 행복한 가정이 이루어지면, 이 관계가 세상 속으로 확장이 되어서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고 사랑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받는 우리들은 가정 안에,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목적과 영광을 생각하면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모두가 그런 목적을 가진 존재들이기에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이웃과 동료들,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형제자매들, 그리고 가장 소중한 가족들을 더욱 귀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지금 우리는 어느 때보다도 가정의 위기, 관계의 위기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대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가정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목적 안에서 더욱 행복하게 세워져서 생명을 경시하고, 가정이 무너지는 세상 속에서 세상의 희망이 되는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