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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의 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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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지기 - 정리이론 스크랩 1-8. 정리후기: 3)밀폐용기와 양념통
정리정돈 추천 0 조회 29 13.08.08 14:4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3)밀폐용기와 양념통

수납상자 이야기를 하다보니 밀폐용기와 양념통에 관한 슬픈 기억이 떠오르는군요. 살림에 불이 붙은 어느날, 냉장고, 씽크대를 정리하는 블로그와 잡지를 찾아보면서 연구정진하기 시작했습니다. 결론은 내 살림과 이 잡지의 차이는 수납용기의 차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김태희와 나를 비교해보니 키도 대충 비슷하고 눈만 비교해보면 그렇게 큰 차이도 나지않고 코만 놓고 비교해봐도 그렇게 큰 차이도 안나네. 뭐 이런 식으로 따지다보니 결국 김태희와 나의 차이는 머리스타일 때문이라는 결론을 낸것과 같은 묘한 결론이 도출된 것이지요. 참으로 이상한 곳에서 이상한 답을 맘대로 만들어내는 능력, 제가 좀 타고 났습니다.

 

잡지나 블로그의 살림은 진열하자고 만들어놓은 것이고 가장 아름다운 순간의, 결혼사진과 같은 사진 한컷이고, 심지어 수십장 찍어서 제일 잘 잘 나온걸로 뽀샵질까지 한 것이고. 내 살림은 날마다 써야하고 늘어진 일상이라는 그런 근본적인 차이 따위, 그런 사소한(?) 차이 따위 꺼져버려!!!!!! 그렇게 두주먹 불끈 쥐고 벌떡 일어났습니다.

맞아. 아무리 깨끗이 닦고 넣어놔도 각종 비닐 너덜거려서는 폼이 안나는거야. 보기 좋아야 살림할 맛이 나지. 부엌이 아름답고 쾌적해야 요리도 하고 싶어지는거야!’ 잡지를 보니 콩이나 팥도 동그란 원통형 유리 밀폐용기에 넣으니 아주 보기가 좋더군요. 그 자체로 인테리어 소품이고 게다가 한참 장아찌며 피클이며 과일로 만든 잼이며 차 종류에 꽂히고 있을 때였습니다.

 

제가 그동안 잘 숨겨오고 아직도 치료하지 못한 오래된 지병이 있는데, 뭔가에 꽂히면 어떤 고난과 역경도 이겨내고 태산도 옮겨버리는 병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면 그게 옮기면 안되는 태산인 경우가 많고 옮기는게 아무 의미없는 태산이 대부분이라는 슬픈 진실이.... 그런 짓 오래하고 보니 그 태산을 옮기는 기준이, 그것이 얼마나 필요한 일인가가 아니라 나를 얼마나 인상깊게 자극시켰느냐로 움직였다는 결론이 나더군요. 모든 물건을 살 때도 그 모양이었으니, 저희 집에 옮겨진 쓸데없는 쓰레기 태산들이 얼마나 많았는지는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그날도 해야할 모든 일을 다 제끼고, 청소나 요리같은 사소한(?) 일따위 팽개치고 벌떡 일어나 장아찌와 과일 쨈, 차를 담기위한 유리용기들, 냉장고와 냉동실을 정리하기 위한 수납용기, 밀페용기를 사러 나섰습니다.

백화점에 도착해서 뿌듯하게 돌아보는데... 오마이갓! 뭐 이렇게 비쌉니까? 플라스틱 쪼가리, 유리병 따위가 이렇게 비쌀 수가 있다니, 백화점이 달리 백화점이 아닙니다. 눈물 쏙빠지게 비싸니까 백화점인거지요. 발길을 돌려 동네 수입상가를 돌아보는데 거기도 만만치가 않더군요. 남대문으로 갔습니다. 남대문에서도 그 유리 밀폐용기가 원목 뚜껑달리고 보기에 좋은 것은 5만원도 하더군요.

뭐여... 이게 이렇게 비싸면 이야기 진도가 못나가는데... 그 멋진 부엌이 돈으로 처발르고 서민코스프레를 한거였어? 이렇게 비싼줄 알았으면 언감생심 덤비지도 않았을텐데 내가 낚인건가? 뭔지 모를 배신감이 느껴졌지만 여기서 돌아설 수는 없으니 타협을 하기로 합니다. 마음에 좀 안들지만 좀 비슷하게 생긴 싼걸로 샀습니다. 양념통 셋트, 반찬그릇 셋트도 사고 온갖 허브도 다 샀습니다. 도저히 들고올 수가 없어서 퀵으로 보내고 돌아왔습니다.

 

짐을 기다리며 냉장고 청소를 시작합니다. 아. 힘들다. 이놈의 냉장고는 청소할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구석구석 뭐 이렇게 닦아야할 곳이 많습니까? 그래도 나는야 프로가 되려는 주부. 이 정도의 시련은 참아야해. 난 울지않아. 멋지게 수납해놓으면 앞으로는 청소가 이렇게 힘들지 않을거야. 수납을 거지같이 하니까 청소가 복잡한거야.

 

꿈과 희망에 부풀어 장하게 청소를 끝내고 도착한 짐을 풀어서 케이스에 맞게 채소를 정돈하고 파도 절반으로 잘라서 케이스에 맞췄습니다. 된장, 고추장이며 양념류도 정리하고 마른멸치, 고춧가루, 온갖 건어물들 냉동실에 멋지게 셋팅하고 반찬그릇도 깔별루다가 다 맞췄습니다. 가장 손이 가기 쉬운 선반에 쟁반을 넣고 그 쟁반에 자주 먹는 반찬을 보기좋게 정리합니다. 이렇게 해놓으면 여러번 손 갈거 없이 그 쟁반만 꺼내면 상이 차려진다는군요.

 

아이고... 아주 훤합니다. 우리집 냉장고 이제 선전 나가도 되게 생겼습니다. 이렇게 일한 보람이 있을 수가... 아주 뿌듯합니다. 냉장고 문이 투명이 아닌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걸 널리널리 보여야 하는디 이렇게 숨겨놓고 나만 보다니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뿌듯하고 자꾸만 보고 싶어서 몇 번을 열어보고 비뚤어진거 각 맞추고... 그때 알게 된 사실하나가,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냉장고가 조금씩 흔들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온갖 수납용기를 각맞춰서 넣어놓고 문을 닫았다가 열어보면 그게 조금씩 비뚤어져 있더군요. 안타까워서 자꾸 열어서 줄을 맞췄습니다.

 

그런데 2주일도 지나지않아 뭔가 이상해지기 시작합니다. 이게 뭐 담을려고 샀던거지? 파를 담았었나? 부추랑 오이담는건가? 뭐지? 다 섞인데다가 더 중요한 것은 설거지... 어무이.... 그 용기들 다 씻어줘야 합니다. 천지에 널린 비닐봉지, 지퍼백 다 놔두고 뭐 났다고 쓸데없이 설거지를 늘리고.... 냉장고는 다시 뒤죽박죽이 되고. 냉장고 문이 투명이 아닌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생각합니다. 역시 물건을 만드는 사람들은 우리가 모르는 진실을 다 알고 있음에 틀림이 없으며 그들의 현명함에 다시 한번 고마움을 느낍니다.

 

그리고 씽크대 위에도 한 살림을 차렸지요. 알라딘이 허리춤에 차고 다니게 생긴 긴 주둥이가 달린 멋진 양철로 만들어진 날씬한 용기에 식용류랑 액체로 된 양념을 담고 멋진 파스타 용기와 허브 양념들을 줄줄이 늘어놓으니.... 우왕 굿... 우리 부엌이 달라졌어요. 완전 뽀대납니다. 이렇게 보람찰 수가 없습니다. 우리집도 이제 잡지에 나온 집처럼 되었습니다. 마음에 드는 밀폐용기가 너무 비싸서 싼걸로 산게 좀 걸리고 완벽한 수준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민간인 부엌으로서는 아주 훌륭합니다.

 

흐뭇한 부엌 풍경에 한껏 고무되어 잼도 만들고 피클도 만들고 장아찌도 만들고 온갖 과일차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부엌은 장하게 어질러졌고 너무 많은 일을 해내느라 힘들어서 식사준비를 못했고 며칠동안 만두며 빵이며 치킨이며 시켜먹었습니다. 그리고 과다한 노동에 지쳐 쓰려져서 며칠 자리 보존하고 누워서 다시 피자며 짜장면이며 시켜먹고...

 

제가 그 물건들을 부엌에 벌려놓은 뒤 일하러 오신 도우미 아주머니의 표정,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그 복잡미묘한 표정, 아주머니는 그때 알고 계셨던거지요. 이것들이 얼마나 먼지가 꼬이는데.. 이거이 뭐여.. 그때는 해독하지 못했던 그 표정이 바로 그 표정이셨던거지요. 저희 아주머니가 별로 투덜거리거나 표현이 없으셔서 잘 몰랐습니다.

 

그 양념통을 쓰면서 보니, 제가 쓰는 양념은 고춧가루, 설탕, 소금. 깨, 장류 몇개에 식용유, 참기름, 가끔 특별 요리하면 물엿이나 식초, 미림, 굴소스 조금 쓰고 다른 것들은 한달에 한번도 쓰지 않더군요. 참기름 들기름 병은 얼마 쓰지도 않았는데 기름에 쩔어버려서 감당이 안되고 허브 종류는 바질 외에는 한 번도 안쓴 채로 1년이 넘게 그 자리에 있고 닭요리를 하거나 고기요리를 할때 타임이며 로즈마리며 넣어줘야하는데 잊어버리고... 잊어버려도 요리에 아무 지장이 없고... 휘시소스며 씨겨자며 치킨스톡이며 온갖 특이한 양념은 유통기한이 지난지 2년이 넘도록 냉장고에 처박혀 있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집 인간들이 차를 안마시더군요. 건강에 좋다는 과일차를 그렇게 만들어놨건만, 타서 코 앞에 대령해도 시큰둥하고 쨈은 쨈대로 하염없이 세월을 죽이고 있고.... 그 쨈이라는게 참 줄어들지 않는 음식이라는걸 그때 알았습니다. 장아찌며 피클은 상위에서 냉장고로 왔다갔다 하다가 결국 다 버렸습니다. 도대체 이 집구석은 뭘 먹고 사는 사람들인건지... 알고보니 이집에서 같은 성을 쓰는 저 세사람은 새콤한걸 안좋아하더군요. 사실 저도 새콤한거 좋아하지 않습니다. 식초 제일 작은거 한병 사도 일년 넘게 갑니다. 나머지 세명이 혹시나 좋아할까 싶어서 만들어본거지요. 그런데 요즘도 가끔 양파나 각종 피클 만드는거 보고 있으면 끌립니다. 이거 병일까요? 조상중에 누가 피클이나 마늘장아찌, 간장게장 만드는 무수리가 있었나봅니다. 피가 땅기는걸까요?

 

그놈의 곡식 담아놓은 용기는 크기도 애매해서 비닐포장으로 사온 것을 담고 나면 그게 조금씩 남더군요. 결국 비닐에 남은 것은 또 남은 것대로 바깥 씽크대 상자에 수납을 해야하고. 이거이 뭐여. 차라리 처음부터 그냥 비닐 통째로 바깥에 수납하면 되는데 두 군데로 나눠서 수납할 숫자만 늘리고.. 그 곡식은 조금 지나니까 온갖 벌레가 다 생기더군요. 근데 그렇게 벌레가 생긴걸 보고 나니 아무리 오래둬도 벌레가 생기지않는 밀가루, 튀김가루, 부침가루, 찹쌀가루는 ?미? 싶더군요.

그리고 스파게티 담는 통은 이게 참 멋스럽고 인테리어적으루다가 괜찮은디 우리집은 파스타를 안좋아하고,... 이거 스파게티 면을 약간 부족한듯 담아서 서로 휘어지게 빙 둘러서 담아야 멋진데, 두봉지 있던거 다 담으니까 꽉 찬것도 아닌 것이 어정쩡하게 멋도 없고 암튼 그것도 오래오래 있었고..

 

결국 다 먼지가 꼬였고 몇 개월 지나니까 뚜껑 위에 앉은 먼지가 그냥 닦는걸로 해결이 안된다는 무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엌의 기름공기와 먼지가 맞물려서 묘한 묵은 때를 만들더군요. 제가 그때서야 알았습니다. 부엌에는 기름기 낀 먼지와 기름기를 머금은 공기가 돌아다닌다는 것을... 부엌 살림은 그 기름기 머금은 먼지가 끼여서 깨끗하게 간수하기가 참 힘들더군요. 게다가 요리하면서 급한 마음에 양념 묻은 손으로 한번 잘못 만지면... 진심으로 ‘망연자실’입니다. 이 단어는 아마도 나물 무치다가 고춧가루와 참기름 묻은 손으로 소금통 만진 사람이 만들었을겁니다.

 

쓰면서 보니 밀폐용기와 수납용기는, 정말 부지런한 사람이 꼭 필요할 때 한 개씩 사서 아끼고 소중하게 써야하는 물건이더군요. 감기에 생강차가 즉방인 가족을 건사하느라 해마다 햇생강으로 가득가득 생강차를 만드는, 친구네 언니같은 사람이 사야할 재료와 용기를 제가 사들였으니 이건 등산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 에베레스트 등정하는 도구들 다 사들인 격이었지요. 나중에 보니 장아찌며 피클을 잘먹는 가족이 있고 과일차나 과일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그런 집에서 써야하는 용기들이었던거지요. 만들어 놓고서 그걸 만들었다는 것 자체를 잊어버리는 저같은 사람이 아니라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것을 깔끔하게 관리하는 것 자체가 큰일이더군요. 저런 용기 필요하면 천지에 널려있는 플라스틱 통, 유리병, 종이상자로 충분하고 쓰다가 더러워지면 버리는게 장땡입니다. 요즘은 모든 일회용 식품 용기가 아주 최고급으로 만들어져 나오더군요. 필요하면 그런거 잘 씻어서 쓰다가 묵은 때 끼면 닦든지 버리든지 하면 됩니다. 이렇게 편하고 좋은 세상을 두고 무슨 삽질을 그리도 하고 있었는지...

 

그거 다 치우고 지금은 슈퍼에서 사온 원래 용기 그대로, 제일 작은 용량으로, 옹기종기 키도 다 맞는 것들로 종이상자에 담아놓고 씁니다. 다 쓸 때쯤이면 버리고 싶게 용기도 더러워져있습니다. 가루 양념은 소스병 씻어서 쓰다가 묵은 때 끼면 미련없이 버립니다. 아주 신간 편하고 좋습니다. 무슨 양념통을 이고 지고 살 일 있습니까? 네... 제가 그러고 살았습니다.

 

그놈의 수납용기들이 그렇게나 많고 먼지 꼬이기 시작하니까 설거지를 다 하고 나도 개운하지가 않은겁니다. 저걸 한번 대대적으로다가 닦아줘야 하는데... 한달에 한번은 닦아야하지 않나? 한달은 금방 가더군요. 그래. 계절별로 한번 닦자. 계절도 순식간에 가더군요. 일년에 한번은 닦아야지.. 그렇게 늘 마음에 묵직한 짐으로 얹혀있었지요. 그렇지 않아도 작은 뇌 용량에 냉장고 청소 한자리, 밀폐용기 청소까지 딱 차지하고 있으니 늘 집안일을 생각하면 머리가 한짐인 겁니다. 그날 먹은 설거지도 미루고 산더미를 만드는 주제에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걸 그렇게 바리바리 사들여서 마음에 짐만 가득가득 늘렸는지... 사람이 참 모자르다 모자르다 이상한 방식으로 모자랄 수 있다는걸 보여주는 산 증인입니다. 그런데 4-5년마다 한번씩 살림병이 도지면 그런 짓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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