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단체 배낭을 다녀와서 (터어키, 그리스, 이집트) (2005.12 .30 ∼ 2006. 01. 20 )
(김기일,이영순 글)
짙푸른 에게해의 바다,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모스크, 사막 위에 우뚝 선 피라미드, 나일강의 기적, 터어키, 그리스, 이집트 등 지중해 연안 국가들은 정말 신비의 땅이다. 인류가 낳은 위대한 문명 앞에서 그저 경이롭고 신비 할 뿐이다. 친절하고 순수한 사람들, 어디서나 맛있고 풍성한 요리, 이국적인 풍물들, 무엇 보다 저렴한 물가는 여행자들을 유혹 하기에 충분하다. 그리스는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지중해 여행은 처음에는 개인 배낭을 하기 위해 계획을 했던 곳이다. 개인 배낭을 하기 위해 구선생님께서 수 개월 동안 자료를 수집하며 치밀한 계획을 세워 가던 중 나이(1947)도 있고 3대륙을 넘나들면서 여행을 한다는 것이 어려움이 많을 것으로 판단 되어 단체 배낭 여행으로 결정을 했다.
여행은 미지의 땅을 밟아 보고 그들의 생활 속에서 삶의 활력소를 찾아 아는 많큼 느끼는 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지중해 하면 쪽빛 바다와 겨울에 비가 내리는 지역이며 인류 문명의 발생지라는 어릴 때 부터 동경하든 여행지 였다. 나는 2003.1.18∼2003.1.25일까지 팩키지 프로그램으로 터어키를 여행한 적이 있다. 다시 찾은 터어키는 낯설지 않아 흥분과 기대는 없었지만 3대륙을 넘나들며 여행을 시작 한다는 마음이 나를 즐겁게 한다.
★. 2005. 12. 30(금) . 지중해 연안 3개국 여행 출발
몇 년 동안 기다렸던 여행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2005.12.29. 21:00에 미팅시간에 맞추어 집에서 16:30에 인천공항 가는 버스에 탑승하였다. 19:30분경에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미팅 장소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여행 안내자와 함께 여행 할 동료들과 만남의 시간을 갖고 두바이행 아랍 에밀레이트 항공(EK323)00:30에 출발하는 비행기다 아랍 에밀레이트의 두바이는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원유 수입이 사우디 다음으로 많은 곳이다. 10시간의 비행끝에 두바이 공항에 도착했다. 이 곳은 경유지로서 8시간의 대기 시간이 있어 시티투어를 하기로 하고 4시간 정도 투어를 했다. 두바이는 신흥도시로써 잘 정리되어있고 버즈알랍호텔(7성호텔 : 돛단배의 돛모양)이 있으며 쇼핑 천국의 도시라 매우 활기찬 도시이다. 유럽의 갑부들이 백화점 세일 기간이면 명품을 구입하기 위해 전세기를 내어 온다고 한다.
에밀레이트는 토후국이라는 뜻이다.(주변 7개국이 연합해서 만든 국가이다.) 인구는 150만정도 여러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고 얼마전 까지만 해도 삭막한 사막의 땅이였지만 오일 머니로 부자가 되어 폐르샤만(걸프만)을 중심으로 호텔, 쇼핑센터, 리조트, 실내 스키장까지 갖추고 유럽의 어느 도시와 비교 해도 손색 없는 현대화 된 도시이다. 대중교통도 택시가 주류를 이루고 기본요금이 3(1디르함 = 3.65달러)디르함이다. 미터기를 사용하고 있으며 환률을 따져 주면된다. 7성호텔, 리조트호텔, 쇼핑센터 등 도시 주변을 돌아보고 점심 식사를 쇼핑센터 식품점에서 누들을 맛있게 먹고 공항으로 돌아왔다. (우리나라보다 5시간 늦다)
두바이 시간으로 오후 2시 출발 이스탄불행 아랍에밀레이트항공(EK121)으로 5시간 비행 후 이스탄불 아타투르크 공항에 도착하였다. 오후 16:30 도착(우리보다 7시간 늦다)
공항에서 숙소까지는 돌무쇠로(우리 나라봉고) 이동 하였는데 공항에서 시내에 가까워지는지 많은 차량이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우리나라 압구정 정도로 보이는 이스탄불의 탁심 광장 부근의 호텔(메디슨)에 도착하여 여정을 풀고 피곤한 몸을 쉬게 되었다. 아랍국가라 이슬람 무슬림들은 하루에 5번씩(해뜰 무렵, 오전, 오후, 해질 무렵, 밤) 메카를 향해 기도를 한다. 그런데 확성기로 에잔 소리가 너무 커서 수면장애를 일으킨다. 내종교가 중요하면 남의 종교도 중요하니 어찌 합니까 참아야지요.
. 실내스키장
섭씨 40∼50도를 오르내리는 곳 두바이에 실내스키장이 눈에 보인다. 거리에는 스키광고탑이 눈길을 끈다. 사막의 도시 두바이에는 꿈같은 현실로 터번을 쓴 아랍인들이 스키를 즐기고 있다. 지난해 10월 1조 500억 원을 들여 실내스키장을 완공하고 12월에 개장하여 운영하며 길이는 400m이다. 세계 제일 높은 전망대 버즈두바이를 우리나라 기술로 건설중이다.(160층)
★. 2005. 12. 31 (토)
터어키(이스탄불) : 1YTL(리라) = 800원정도
날씨는 흐리고 지중해성 기후라지만 이상 기후로 우리나라와 같이 춥다. 이스탄불 지역은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곳으로 마르마라해의 짙푸른 바다와 보스포로해협과 흑해와 연결되는 축복 받은 자연 환경 ,13개 문명이 피고 진 수천년 역사 유적과 눈부신 문화 유산들이, 뒤섞이고 혼합된 동서양의 문화가 엄연히 공존하고 있는 고대와 현대가 함께 존재하는 곳이다.
나는 3년전에 찾았던 곳을 다시 찾아온 터어키에서의 여행이다. 호텔을 출발하여 탁심광장에서 버스(T-4)를 타고 슐탄아호메트 광장으로 갔다. 이곳은 이스탄불의 구시가지이며 수천년을 간직해온 문화들이 많이 있는 곳이다. 터키는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지점에 위치 하고 있어 오래전 부터 여러 민족이 거주하며 다양한 문화 접촉이 있었고 많은 국가가 흥망하였다. 이스탄불은 옛날에는 콘스탄티노풀이었다. 그러나 오스만 투르크가 점령하며 이슬람의 도시라는 뜻으로 이스탄불로 이름이 바뀌었다. 터키 남성들은 종교적인 이유로 술 담배 여자를 멀리하고 저녁이면 일찌감치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다니 이스탄불의 어두운 밤거리가 오히려 부러워진다.
. 아야 소피아(신성한 지혜)
아야 소피아는 세계 8대 불가사이 중 하나로 손꼽히는 건축 예술에 길이 남을 만큼 건축 양식이 독특하고 인상적인 건물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교회 건축물이다. 4세기경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만들어 졌다. 그후 여러 차례 보수를하며 지금도 당당하게 터키 중심부의 언덕 위에 우뚝서 있다. 세월 따라 기독교 본부 건물로 이후에는 그리스 정교 본산으로 또한 오스만 트르크 제국의 콘스탄티노풀 점령으로 회교 사원으로 개조되어 500년 가까이 모스코로 사용된 건물이며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지금도 2층에는 건물의 벽면에는 화려한 모자이크 벽화로 어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의 모자이크 벽화가 보인다. 1층 내부에는 둥근판에 아랍어로 “알라”, “마호메트“라고 쓴 현판이 정면 높은 곳에 매달려있다.
. 블루모스크
아야 소피아와 마주보고 있는 전통적인 터어키 양식의 모스크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6개의 첨탑(미나렛)이 있는 모스크다. 메카에 있는 모스크는 7개, 보통4개의 모스크를 갖고있다. 내부의 타일 장식이나 스테인글라스가 아주 화려하다. 기둥과 돔벽에 명암이 있는 99가지의 푸른색 타일만을 사용해서 만들어 블루모스크로 더 잘 알려져있다. 모스크를 들어 갈때는 신을 벗고 들어가야 하며 이곳은 메카를 향해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여자들은 뒤쪽 보이지 않는곳에서 기도를 하여야 한다. 바닥에 있는 양탄자는 세계에서 제일 큰 양탄자라고 한다. 이곳은 입장료는 없다. 아랍국가들의 여성들은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얼굴은 가리고 생활 해야하나 궁금하다. 그래도 터어키는 제일 개방된 이슬람국가라고 한다.
. 히포드롬
로마시대의 대 전차 경기장으로 말이 끄는 경기가 열렸던 곳이다. 지금은 옛날 흔적은 없고 시민의 공원으로 사용한다 이 곳에 있는 오벨리스크는 이집트 룩소르 신전에서 로마의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가져왔다고 하며, 중앙에 또 청동제 뱀기둥은 그리스 델피의 아폴로 신전에서 가져온 것이란다. 그 뒤에 미완성 오벨리스크는 콘스탄티누스 7세때 만들어진 것이란다.
. 지하 물 저장고
이 물 저장고는 비잔틴 제국의 유스디아누스 황제때 도시민의 식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만들어 졌다고 한다. 길이 140m, 폭 70m, 높이 9m의 거대한 저장고 중에 가장 인상적인 것은 안쪽으로 계속 들어가면 기둥을 받치고 있는 메두사 머리의 주춧돌은 그리스 신전에서 옮겨온 것이라고 합니다.(입장료 10YTL정도) 물고기도 살고 휴식을 할 수 있는 가페도 있다.
.올리브 언덕에 세운 톱카프 궁전
아야 소피아 오른쪽의 도로를 따라서 5분정도 걸어가면 정문(제국의 문)이 보인다. 약 400년 동안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궁전으로 사용되던 곳이다. 3대륙을 호령하든 제국의 힘으로 지금은 박물관으로 이슬람 세계의 귀중한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다 .정문에서 오른쪽은 왕궁의 부엌으로 사용 하던 곳이고 두 번째 정원 오른쪽은 술탄이 사용 하던 각종 무기, 장신구, 도자기, 의복, 세계 각국에서 보내온 선물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이중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곳은 보석관이다. 주먹만한 푸른 보석으로 치장한 칼자루, 스푼 다이몬드 등 역대 술탄들이 보석을 좋아하여 세계 각국에서 진상 받은 보석들이란다. 3년 전에는 정문티켓으로 관람을 했으나 지금은 또 관람료를 지불한다. 이번에는 스쳐 지나갔다. 반대편 전시실에는 선지자들의 유물들을 모아 전시하고 있는데, 이 곳에는 기독교 선지자들의 유물들도 많다. 회교도들에게 최고의 선지자는 ‘모하메드’지만 성경에 나오는 예수를 비롯하나 모든 인물들도 선지자로 섬기며 그 유물들을 수집 보관하고 있다. ‘다윗의 칼’과 ‘아브라함의 밥그릇’ ‘모세의 지팡이’들이 전시되어 있다. 모하메드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방에는 회교도 한 사람이 앉아 목청을 높여 코란을 낭송하고 있다. 에잔 소리 때문인지 유물 전시관 안은 엄숙한 분위기이고 유물 하나하나 더 귀해 보인다. 돌에 찍혀 있는 모하메드의 발자국이 신기하다. 국회 의사당으로 쓰이던 ‘정의 탑’이라는 건물은 외관부터 무척 화려하다. 외국 사신들을 접대하는 곳이라 가구며 실내장식에 더욱 신경을 쓴 것 같다. 한쪽에 ‘왕의 눈’이라부르는 작은 창문이 있다. 당시 술탄은 외국 사신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접견하지 않고 신하를 대신 내 보냈단다. 그리고 술탄 자신은 ‘왕의 눈’을 통하여 몰래 접견 상황을 지켜 보았다고 한다.
하렘은 톱카프 궁전 가장 깊숙한 곳에 있다. 별도의 티켓을 구입해서 입장해야 한다. 하렘은 술탄의 어머니와 왕비들이 세상과 격리 되어 생활 하던 구중궁궐이자 금남의 집이다. 술탄은 한 남자가 누릴 수 있는 온갖 욕망과 사치를 다 누리며 하렘의 여인들 위에 군림 했다. 금남의 집 하렘도 시간 관계로 그냥 지나쳤다. 그리고 보스포로 해협이 바라다 보인다. 이스탄불에서 최고 좋은 위치에 궁전을 지었다더니 탁트인 전망이 기가 막히다. 정원 끝자락에는 식사를 할 수 있는 레스토랑도 있다 보스포다리를 배경으로 사진 한장 남기고 톱카프궁전 관람을 마쳤다. 그 옛날에는 올리부나무로 무성했던 곳이며 군사적으로 아주 요새 지역이다. 1000년 세월을 견디어 온 데오도시우스 성벽과 마르마라 해협을 끼고 런던에서 출발한 기차가 달려 이곳 실케이지 종착역까지 온다.
. 국립 고고학 박물관
점심은 간단히 준비한 빵으로 해결하고 국립고고학 박물관으로 갔다. 톱카프궁전 바로 옆에 있다. 많은 유물이 전시 되어 있지만 그 중에서 알렉산더대왕의 대리석관은 원형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 4세기에 만들어진 이 석관은 레바논의 시돈에서 발굴되었다. 또한 1층에는 그리스,로마시대의 유물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2층에는 귀금속 세라믹, 유리 제품, 동전 등이 전시 되어있다.
. 고등어 케밥
하루 관광을 마치고 술탄아모메트광장에서 트램을 이용하여 에미뉴역까지 이동하고 칼라타교는 이중으로 된 다리이다. 다리위에서는 고등어낚시를 즐기는 시민들이 많이 보인다. 1층은 먹거리를 파는 곳으로 고등어 굽는 냄새를 맡으며 고등어 케밥 집을 찾아 저녁으로 고등어 케밥을 맛있게 먹었다.
. 이집션 바자르
칼라타 다리에서 지하도로를 건너면 예니 모스크 뒤편에 재래 시장이 있다. 과거에는 향신료를 많이 팔았지만 지금은 여러 가지 물건을 팔고 있다. 구선생님께서는 여러 가지 향신료 진열한 것을 보고 예술 이라고 표현하신다. 향신료의 색상 진열 방법이 정말 예술적이다. 사진 한 장 기념을 남기고 바자르를 나왔다.
. 칼라타 타워
이스탄불에서 가장 멋진 전망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이집션 바자르를 보고 칼라타 다리를 건너 타워를 걸어서 갔다. 중세, 근세, 현대가 함께 어우려져 있는 고대도시 이스탄불의 야경을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구시가 언덕에 모스크의 야간 조명은 환상적이다. 그러나 바람이 세게 불어 오래 볼 수는 없었다. 신시가지에서 구시가지의 야경을 볼 수 있어 정말 아름다웠다. 모스크 첨탑의 조명 수천년을 지나면서 7개의 언덕에 형성된 이스탄불 모스크들의 조명은 더욱 아름다웠다. 높이가 61m의 이 칼라타 타워는 처음에는 화재 및 적의 침략을 막기 위해 지었지만 지금을 전망대, 레스토랑으로 사용하고 있다.
. 젊음의 거리 ,탁심광장
터키의 지명에는 아주 독특한 이름들이 많아 잊혀 지지 않는 것들이 많다. 탁심, 파묵칼레, 쿠사다시, 차나갈레 등 현대적인 뉘앙스가 풍기는 독특한 이름이다.광장을 오가는 시내버스들 한해를 보내며 새해를 맞이하기 위하여 “해피 뉴이어”를 맞지 하기 위하여 대형 무대에서 사운드 뮤직소리, 불꽃놀이하는 소리들이 귀를 시끄럽게 한다 광장 중앙에는 “독립전쟁 기념비”가 서 있다. 이 곳을 거닐다보면 청바지 옷차림이 세련된 아가씨는 물론 맥도널드, KFC 등 패스트푸드점이 함께 존재 하며 이 곳이 이슬람국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 보스포러스 크루즈
숙소를 출발하여 탁심 광장에서 에미뉴 선착장에 도착(T4버스)하여 보스포로 크루즈를 하기 위해 걸어가는데 작은 선박을 운행하는 삐끼들이 달라 붙어 저렴한 가격으로 크르즈를 하자고 집요하게 달라 붙는다. 그러나 우리는 대형 페리를 이용하여 아시아와 유럽을 흐르는 포스포로 해협을 따라 흑해가 보이는 아시아쪽에 있는 아나둘루카베지성에 도착 하였다. (65km) 3시간 정도 소요된다 페리호는 선착장을 출발하여 돌마바체 궁전 - 보스포로제 1 교 - 루멜리성 - 보스포로 제 2교를 거쳐 아나둘루카베지성에 도착하였다. 12경에 도착하여 보스포로해가 바라보이는 2층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케밥으로 점심을 먹고 아나둘루카베지성을 향하여 마을 길을 따라 아나둘루카베지성을 향해 1시간30분정도 산책을 하며 정상에 올라 흑해를 바라보며 사진 한장 추억을 남기고 오후 3시에 돌아오는 페리를 타고 에미뉴 선착장에 6시경에 도착, 호텔에서 야간 이동을 하기 위해 아시아쪽 우스크달르로 택시로 이동 오토가르(저녁으로 되네르 케바브)에 도착하여 8:30 출발하는 카바도키아의 네브쉬힐로 가는 야간버스에 올라 12시간동안 선잠을 자며 이동 하였다. 차는 4시간에 한번 정도 쉬고 운행을 하며 아침(아침식사로 시미트 빵으로) 8시경에 네브쉬힐에 도착 호텔에 잠시 휴식 하였다
. 보스포러스 다리
이스탄불은 아름다운 보스포러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아시아쪽과 유럽쪽으로 나누어진다. 이 보스포러 해협에 터키 독립 50 주년 기념으로 영국과 독일의 합작 기술로 만든 다리가 놓여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다리는 하늘에 매달려 있는 듯한 날렵한 모습이다. 누구든지 보스포러 다리 한가운데 서서 팔을 벌리면 아시아 유럽을 양팔로 두 대륙을 껴안을 수 있다.
. 카바도키아
지하 도시가 있는 곳 화산 폭발 후 흘러 내린 화산재가 오랜 세월에 걸친 풍화작용으로 기이한 형태를 하고 있는 카바토키아의 기묘한 지형은 1985년 세계자연 유산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야간 이동으로 피곤한 몸도 돌보지 않고 11시경부터 돌무쇠로 14명은 함께 카바토키아 투어(10YTL)를 시작하였다. 카바도키아는 도시가 아니고 넓은 지역을 가리는 말이고 카파도키아의 중심 도시는 네브쉬힐에서 관광이 시작된다
. 우치사르 - 비들기용 굴이 많은데, 예전에는 비둘기의 배설물을 모아 포도나무 밭의 비료로 썼다고 한다. 기암 괴석과 바위를 파고 들어가 만든 벌집 형태의 주거지를 바라보며 기념 촬영하였다. 넓은 지역에 파노라마처럼 아름다운 기암괴석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 파샤바 - 3개의 버섯 모양을 한 바위로 유명한 곳으로 엽서에도 많이 나오는 곳이다. 옛날부터 수도사들이 살던 지역이라고 한다.
. 괴레메 야외 박물관 - 기암괴석 안에 만들어진 교회로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비잔틴 양식의 프레스코화가 유명하다 기독교인들은 한번쯤 성지 순례코스로 한번쯤 가볼만 한 곳이다. 모진 박해를 받으면서도 바위 굴을 파고 숨어들어 숭고한 믿음의 정신을 본받을 만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사과교회, 뱀 교회,
. 카란느크교회 : 괴레메 야외박물관내에있는 교회로 별도의 입장료를 내야한다. 밸리의 안쪽에 깊숙이 위치한 탓에 빛을 많이 받지 않아 비잔티 동굴벽화가 아주 잘 보존되어 있다. 돔 천장에 예수의 얼굴과 최후의 만찬 그가 십자가에 매달려 처형당하는 그림 등이 있는데 마치 방금 그린 것처럼 색채가 뚜렷하다.
. 프레스코화 : Fresco 프레스코화는 소석회에 모래를 섞은 모르타르를 벽면에 바르고 수분이 있는 동안 채색하여 완성하는 회화이다. 벽화 화법 중 대표적인 것으로 기원전 부터 로마인에 의해 그려져 왔다. 바디칸궁전에 있는 시스티나 성당의 벽화와 천장화는 미켈란젤로의 노년기의 대작이다.
. 아바노스 도자기 마을 - 오랜 역사를 자랑하며 지하 동굴속에 도자기 만드는 넓은 공간이 대대로 이어져 도자기 빚는 기술은 예술의 극치이다. 자기를 만드는 과정을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체험도 할 수 있는 시간도 주었다.
. 메불라나 페스티벌 - 터키의 민속 춤을 관람하기 위해 옵션(40YTL)으로 단체 관람을 신청하여 픽업온 차를 타고 지하 동굴속의 공연장으로 들어서는데 우리를 환영하기 위해 민속악기를 연주한다. 우리 일행이 제일 먼저 도착하고 일본, 중국, 등 여러나라 관광객들과 함께 오후 8;30분경 부터 2시간 정도 관람을 하는데 난방이 잘 되지 않아 실내가 춥어 관람하기에 신경이 쓰였다. 밸리댄스는 한명의 밸리댄서가 공중에서 리프트를 타고 내려와 유연한 몸 동작으로 춤을 추며 관광객을 상대로 체험 기회도 주어졌다. 참가한 관람객들은 열심히 따라 해 보지만 생각만큼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가 보다 모두 힘들어 한다.
메불라나는 이슬람 신비주의로 알려진 메불라나가 교단을 창시한 교주이다
신과의 합일을 뜻하는 춤이다 남자 수행자들은 수의를 상징하는 흰색의 치마를 입고, 자신의 무덤의 비석을 상징하는 빨간색 모자를 쓰며 무덤을 상징하는 비석으로 검은 조끼를 입고 의식을 거행 한다. 일정한 방향으로 빙빙 돌면서 춤을 춘다 춤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그들은 신과 접촉을 하고 마침내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오늘은 카바토키아 그린투어에 참가했다.
. 데린큐유(지하도시)
네브쉬힐 주변에는 많은 지하도시와 기암군이 있다. 그 중 데린큐유 지하도시는 1968년에 발견되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그 규모가 엄청나다 지하도시에는 최소한 2만명이 살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기독교인들이 이 곳에 석굴을 판 것은 5세기경으로 주변의 지역이 비옥해서 야채, 과일 등 이 풍부해 이 곳을 생활 공간으로 이용한 듯 하다. 지하 50m까지 파고 들어가 개미 처럼 종횡으로 파 내려간 동굴의 전체 길이는 수십 Km에 달한다. 지하도시 안에는 학교, 강당, 식당, 교회, 주거지,동물사육장, 통풍구 우물 등이 있으며 기독교인들이 신앙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처절하게 노력 했는지 알수 있다.(10YTL)
. 으흐라라 계곡
길이가 13Km에 달하고 절벽의 높이가 100m에 달하는 웅장한 계곡으로 곳곳에 인적인 드문 곳을 찾아 수도사들이 머물면서 수도 하던 석굴 교회가 여러곳 있다. 맑은 물이 흐르고 곳곳에 눈이 쌓여 걷기가 힘든 곳도 있다. 계곡을 따라 2∼3Km정도 트래킹을 하면서 베두인 부부가 양떼를 몰고 생활하는 모습도 보며 2시간 정도 걸어 늦은 점심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에 도착 하여 소고기 케밥과 콜라로 맛있는 식사를 하였다. 곳곳에 그 옛날 동방에서 서역까지 오가던 상인들이 머물고 장사를 하던 실크로드 건물 유적이 남아있다. 이 곳이 실크로드의 한 길목으로 그 옛날의 자취를 느낄수 있는 곳이다. 그린투어를 마치고 오늘 밤도 야간 이동을 해야 한다. 짐을 꾸려 네브쉬힐 오토가르 휴게소에 짐을 맡기고 우리 일행은 저녁을 먹기 위해 레스토랑을 찾아 네브쉬힐 시내로 가서 믹스케밥으로 맛있게 먹고 밤 8:30발 파묵칼레 야간버스에 몸을 싣고 10여시간의 장거리를 버스로 이동 6:30분경 파묵칼레 부근 오토가르에 도착했다.
이 곳에서 파묵칼레까지는 장거리 버스표를 이용하여 파묵칼레까지 돌무쇠로 이동할 수 있고 우리일행은 이동하였다.
. 네브쉬힐 : 카바도키아 관광의 출발지이며 숙소 여행 안내소 투어를 취급하는 랜드사가 오토가르(버스터미널) 건물 1층, 2층 여러곳이 있어 투어를 신청하면 편하게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 파묵칼레 석회봉
종류석이 흘러 내린 듯한 계단식 절벽으로 이뤼진 온천이 바로 이 곳이다. 계곡을 타고 흘러내려 각 층마다 종유석이 주렁주렁 걸려 있는 모습은 자연의 신비로움을 보여준다. 여기 저기 여행객이 온천물에 발을 담그고 즐기 지만 온천물은 미지근할 뿐이다. 파묵칼레는 아주 조그만 마을이라 돌아보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는다. 아침식사로 준비했던 빵으로 간단히 식사를 하고 마을 뒤쪽으로 걸어 올라갈 수 있는 길을 따라 올라가는 데 어찌된 일인지 3년 전에 보았던 파묵칼레가 아니다. 3년전에는 온천물이 많이 흘러 사진에서 보는 파란 계단식 웅덩이에 물이 있어 운치가 있었는데 오늘은 물이 없다. 언덕 아래는 여름철 야외 온천을 하기 위해 수영장을 만들고 있다. 옛날에 거닐었던 길을 오늘도 걸어보았다. 크레오파트라가 목욕했던 연못에서 그 옛날의 영화를 생각하며 한 바퀴 돌아 보고 추억의 사진 한장을 남기며.
. 히에라폴리스 유적
드넓은 지역에 펼쳐진 로마시대의 유적지에 원형극장이 잘 복원되었다. 여기서 우리나라 여행단을 만나 안내자의 설명을 들었다. 유적지를 돌아다니며 한가로이 풀을 뜯는 양떼를 감상하며 히에라 폴리스 유적을 돌아보았다. 이 곳에서 일몰을 감상하면 환상적이라는 데 시간이 없어 아쉬움을 남기고 점심을 먹기위해 파묵칼레 입구 식당에서 '닭고기 볶음밥'을 맛있게 먹었다. 주인 아저씨가 어찌나 원맨쇼(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대중,김영삼,김재규이름을 외우며)를 잘 하는지 많은 웃음을 추억으로 남기고 셜츄크로 이동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돌무쇠에 몸을 싣고 오토가르로 향했다. 12:30분에 출발하는 주간 이동버스에 짐을 싣고 터어키의 농촌 풍경을 바라보며 셜츄크로 향한다. 창밖으로 올리브나무, 오렌지가로수에 탐스럽게 익은 오렌지를 감상하며 3시간 정도 이동하여 셜츄크 오토가르에 도착하여 돌무쇠를 이용하여 에게해를 바라 볼 수 있는 휴양도시 쿠사다시로 향했다. 운전기사가 숙소를 찾지못하여 시내를 빙빙돌며 여러번 물어 찾아 갔다. 피곤한 몸으로 호텔(마리나)방에 도착했을 때는 에게해가 보이며 일몰시간이였다.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추억의 사진 한 장을 찍고 호텔 카페에서 1:30정도 휴식을 하며 좋아하는 노래 신청도하고 와인도 한잔 음미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어두운 밤 에게해 해변을 산책 해 보았다. 휴양철이 아니라 인적은 드물고 팬션에는 불이 모두 꺼져있다. 세계 곳곳에서 찾아온 요트는 선착장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 쿠사다시
남부 아나톨리아 지방의 대표적인 휴양지 쿠사다시는 항구 도시이다. 항구에는 터키는 물론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요트로 가득차있다. 쿠다다시는 특별히 볼거리가 없다. 그리스 사모스 섬으로 가는 관문일 뿐만 아니라 인근에 로마시대의 에페스 유적지가 있기 때문에 여행객들이 많이 몰려드는 곳이다.
.셀주크 에페스
숙소를 출발하여 셀주크 에페소로 가는 돌무쉬로 에페소 북문쪽에서 내려 걸어서 (택시들이 호객을 해요) 에페소에 입구에 도착하여 입장하려고 하니 터키 리라를 미리 환전하지 못하여 신용카드로(1인당 약12000원) 결재한 다음 고대도시 에페스를 관람을 시작했다.
. 에페스유적(입장료 15 YTL)
정문을 통과해 조금 걸어가면 부채 모양으로 넓게 퍼진 원형극장이 있다. 한국 여행단은 ‘고향의 봄’ 합창을 한다. 항구거리는 그 옛날에는 배가 이곳 에페스까지 들어왔지만 지금은 오랜 세월의 퇴적물로 넓은 들판으로 변하였다. 대리석이 깔린 마블스트리트를 따라 걸어가다보면 오른쪽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광고가 눈에 보인다. 대리석 거리 중앙에 상업 아고라 쪽 길 위에 창관으로 가는 '발 그림 안내도'가 있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창부는 고대에서부터 있었으며 세계에서 가장 오랜 된 직업이다. 세루시우스 도서관 정면 벽에는 지혜, 운명, 학문, 미덕을 상징하는 4개의 여신상이 세워져 있다. 창관은 2층 건물로 지금은 1층 터만 남아있고 벽에는 프레스코화가 있었다. 공중화장실은 칸막이도 없는 화장실이 늘어서 있다. 그러나 이화장실은 수세식이었단다 그 옛날에도 수세식을 운영했다는 흔적을 알수 있다.
하드리아누스 신전을 관람하려는데 비가 계속오고 있다. 지중해성 기후라 겨울에 비가 온단다. 한참을 비를 피하고 있으니 조금씩 비가 내려 하드리아누스신전을 돌아보았다. 한가운데 있는 2개의 상부에 아름다운 장식이 장시되어 있는 아치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아치 앞에 장식되어 있는 것은 운명의 여신 티케 뒤에는 메두사가 조각되어 있다. 2번째 보는 것이라 처음 보다는 느낌이 오지 않는다.
크레티아거리에느 트리아누스의 샘, 헤라크레스의 문, 메미우스의 비, 도미티안 신전, 폴리오의 샘, 폴리타네이온, 바슬리카, 국영 아고라, 오데온, 바리우스의 목욕탕을 돌아보고 남쪽출입구를 거쳐 셜쥬크를 향해 걸었다. 걸어가는 도중 오렌지 과수원이 있다 길 옆에서 오렌지 몇 개를 주워 맛있게 먹었다. 환전을 하기위해 은행을 찾았지만 점심시간(시에스타)이라 오랜 시간을 기다려 환전을 했다. 그사이 점심 식사를 했다.
. 에페스 박물관
에페스박물관은 유적을 보기전에 관람을 해야 하는데 쿠다사시에서 오는 관계로 북문으로 관람을 시작하여 유적을 보고 박물관을 찾았다. 에페스에서 발굴된 유물들이 많이 있다. 그 중에서 아르데미스상은 다산을 상징하는 수많은 가슴을 갖고 있는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다.
. 아르데미스 신전
아르데미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와 레토의 딸로 순결의 여신이다. 바로 그에게 바쳐졌던 고대 7대 불가사이로 꼽히던 건물이었다. 길이 115m 폭 55m 높이 19m 대리석 원주 127개가 지탱하고 있던 거대한 규모였으나 지진으로 무너져 지금은 1개의 기둥과 홀로 서서 그 옛날의 웅장함을 자랑하고 있다.
발견된 일부 유물을 영국의 대영박물관에 보관 되어 있단다.
. 성요한 교회
성 요한은 에페스에 와서 기독교를 전파하다가 이곳에서 죽었다. 요한의 사후 그의 제자들이 그의 무덤에 조그만 교회를 세웠다. 기독교가 인정된 후 데오도시우스 2세가 그의 무덤 위에 더 큰 규모로 교회를 세웠다. 지금은 부서진 채로 그형태가 일부분만 남아있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성 요한의 묘'가 남아있다.
돌무쉬를 이용하여 쿠다시로 이동하여 숙소근처까지 친절한 현지인 청년이 길을 안내 해주어 고생하지 않고 돌아왔다. 저녁을 먹기 위해 해변가 레스토랑을 찾아 음식문화에 어두운 우리는 현지식으로 저녁을 먹고 야간이동을 하기 위해 호텔로 돌아왔다. 이스탄불로 야간이동을 위해 돌무쉬를 이용하여 셜쥬크 오토가르로 이동 밤 9:30출발 야간버스에 몸을 싣고 힘든 이동을 시작했다. 주간 이동이며 터어키인들의 생활모습도 보고, 올리브 언덕을 돌아돌아 3년전에 지나갔던 트로이 근처 아름다운 풍경도 볼 수 있지만 어둠속이란 아무것도 볼 수 없다. 밀을 재배하는 넓은 평야를 지나 차나칼레 해변에 도착하였다.
. 차나칼레
에게해 연안에 위치한 차나칼레는 트로이로 가는 관문이자 1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과 터키군이 대규모 전투가 벌어졌던 장소이다. 좁은 해협으로 이스탄불로 가기위해서는 대형 페리에 차량을 싣고 건너야 한다. 1시간 정도 지나 차나칼레 해협을 건너 이스탄불로 향했다. 깜깜한 밤이라 밖의 풍경을 볼 수 없어 아쉽다. 3년전에 이곳을 지날 때에는 아름다운 마르마라 해협을 바라보며 갔었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이스탄불이 가까워지는지 버스의 속도는 느려지고 가다서다를 반복하며 아침 9:00경에 이스탄불 오토가르에 도착하였다.
돌무쉬(우리나라 봉고차)를 이용하여 탁심광장부근의 호텔로 이동하였다. 이스탄불은 구시가와 신시가를 골든혼으로 구분한다. 구시가에는 그 옛날 오스만 터키가 이슬람을 상징하는 모스크가 높은 언덕마다 첨탑들이 많이 솟아있다. 여러 문명이 피고 지던 이스탄불은 오늘이 마지막 밤이다. 내일 아침에는 세계문명의 꽃을 피운 그리스로 이동한다. 호텔에 도착하여 짐을 맡기고 자유여행을 한다.
. 돌마바체 궁전
프랑스의 베르사이유 궁전과 비슷하게 지은 건물이다. 36명의 술탄중에 톱가프궁전과 돌마바체 궁전에서 생활했으며 터어키의 아버지 아타 투르크도 이곳에서 집무하다 1938년에 숨진 곳이다. 돌바마체 궁전은 해변을 흙으로 메꾸고 세워진 궁전이다. 자연 경관이 뛰어나며 영화를 누리던 슐탄들의 생활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관람은 자유로이 할 수 없고 오랜 시간을 대기하다가, 10분 가격으로 35명정도의 입장이 허용되며 영어 가이드가 안내를 하는 방식으로 관람이 허용되며 입장시는 보안 검색대를 통과해야 한다. 사진 찰영시는 6YTL를 지불 해여 한다. 할렘은 또다시 입장권을 구입해야 구경 할 수 있다. 바닥에는 카페트가 깔려있고 내부 장식과 방을 꾸미기 위해 금 14톤과 은이 40 톤을 사용하여 휘황찬란하게 만들어 놓았다. 3층으로 된 궁전은 285개의 방과 43개의 홀,156개의 시계, 36개의 샹들리에, 58개의 크리스탈 촛대 등으로 하려하게 꾸며져 있다. 결국 이 궁전 건축에 소요된 막대한 재정으로 인해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몰락을 가속화 시켰다. 궁전 정문 앞에 있는 시계탑은 압둘하멧 2세 때 만들어진 것으로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형태로 4개 층으로 이루어 졌다. 자세히 보려면 많은 시간이 소요 된다. 우리는 2시간 정도 관람하였다. 정문에는 무장한 군인들이 경비를 하며 근무 교대식도 볼만하다. 터어키에서 입장료가 가장 비싼곳이다 (입장료20TYL) 관람을 마치고 탁심광장 부근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언덕길을 따라 힘들게 걸어 올라 저녁식사를 레스토랑에서 터어키 피자를 주문했는데 또 실패를 했다. 맛이 무척 없었다. 17:30경 숙소로 돌아와 이스탄불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있다. 이스탄불의 야경 정말로 모스크에 휘황찬란한 조명을 한다. 어둠속에 솟아오른 돔과 미나렛이 노란 조명을 받고 서 있고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 처럼 하늘 가운데 사원이 둥실 떠 있는 형상이다. 수시로 황금빛, 붉은빛 푸른빛으로 바뀐다. 천년 전에 쌓았다는 테오도시우스 성벽이 마르마라 해협을 따라 이어진다.
그리스 (아테네), 1(유로) = 1300정도
신의 나라 그리스 신에 대하여 많은 예비 지식이 필요 하지만 준비가 부족하다.
날씨는 비가내리고 있다. 7:00시에 그리스로 넘어가기 위해 아타투르크공항으로 이동하기 위해 택시로 탁심 광장을 뒤로하고 빠른 질주로 달려 간다. 공항에 도착하여 검색대를 통과하여 9:10분 211게이트를 거쳐 9:40분 이륙하여 11:00경 아테네 공항에 도착하여 호텔를 찾아 공항버스 X-94 버스를 타고 신타그마 광장으로 이동중 접촉 사고를 처리하는데 30분 정도 더 소요되었다. 시내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척박한 땅에 잘 자라는 올리브나무가 넓은 들녁에 많이 자라고 있다. 광장에서 숙소까지 택시로 이동(4유로) 11:40경 숙소에 도착하였다.
찬란한 고대문명이 싹튼 곳이자 민주주의와 올림픽의 발상지이다. 일찍이 에게문명을 꽃 피웠던 그리스 2004년에는 28회 올림픽을 개최하여 우리나라 애국가가 울려 펴졌던 올림픽 스타디움을 생각하며 13:00경 피곤한 몸을 추슬러 오모니아광장에서 메트로를 타고 신타그마 광장까지 이동하여 관광을 시작하였다.
. 신타그마광장
특별이 볼만한 곳이 있는 곳은 아니지만 아테네 도시의 중심지로 광장 주변에는 각종 편의 시설을 모두 갖추고 있다. ‘신타그마’는 그리스 말로 ‘헌법’이란 뜻이다. 이곳에서 그리스 최초의 헌법이 공포된 곳이라 유명하다. 광장 정면에는 국회의사당이 있고 주변에는 국립공원이 있고 그리스가 왕에 의해 통치할 때는 개인 정원으로 사용되었으나 지금은 개방되어 시민들이 이용하고 있다. 10분쯤 걸으며 제우스 신전터가 있고 북동쪽으로 이동(10분)하며 올림픽스타디움이 보인다.
. 제우스 신전
도리아식의 이 신전은 높이 17m 폭167m 의 기둥 104개로 이루어진 그리스최대의 신전이다. 지금은 폐허가 된채 16개의 기둥만 남아있다. 신전 뒤편으로는 아크로폴리스가 보이고 인근에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세운 아치형 문이 있다.
. 올림픽 스타디움
최초의 근대 올림픽 경기가 열렸던 곳이다. 운동장은 말굽처럼 생겼으며 좌석은 모두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있고 5만명을 수용할 수 있단다 그리스에 도착하여 처음으로 이곳을 찾았는데 정문은 닫혀 있어 들어갈수는 없지만 기념으로 사진한장 추억으로 남기고 아크로폴리스를 찾아 갔지만 관람 시간이 끝나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파로테논 신전을 배경으로 사진 한장 찍는 것으로 오늘 그리스 관광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날씨는 또 보슬비가 내리고 있다. 지중해성기후라 겨울에 비가 자주온다. 메테오라로 이동하기 위해 오모니아 광장에서 메트로를 타고 칼람바카로 가는 기차역으로 이동하였다. 기차는 그리스 내륙을 향해 넓은 들판 높은 산골짜기 터널을 지나 칼람바카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1:15경 이 열차는 하루에 아테네서 이곳 까지 매일 2회 여행객을 위해 운행한다고 한다. 숙소에 도착하여 함께 메테오라 택시투어를 시작하였다. (택시1대 20유로)
. 메테오라
메테오라는 ‘공중에 떠 있는 수도원’이라는 뜻이다. 일반인이 쉽게 접근 할 수 없는 깎아지른 듯 솟아 있는 바위산 정상에 터를 잡았다. 속세와의 차단을 위해 물자 보급과 사람들의 출입은 도르레를 이용해 끌어올리는 방법 뿐이었다. 메테오라의 수도원들은 천년의 세월을 보내고도 지금도 바위 산에 우뚝 솟아 있어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루사노 수도원
이 수도원은 아름다운 곳에 자리잡고 있어 계곡 아래로 메테오라의 경관을 내려다 보기에 그만인 곳이라 이 곳에서 추억의 사진 한장 남기고 다음 수도원으로 이동하였다. 날씨가 춥고 비가 내려 와이프가 무척 힘들어 한다 나로서는 도움을 줄 수 있는 길이 없어 안타깝기만 하다. 일행들에게 감기약을 얻어 먹으며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지만 기침이 멈추지를 않는다.
. 대메테오라 수도원(입장료 2유로)
메테오라의 첫번째 수도원으로 수도원 중 가장 크고 높고 멀리 떨어져 있으며 오래된 수도원이다. 그리스도의 탄생, 십자가에 못박힘과 부할, 그리고 참혹한 죽음을 묘사한 프레스코화가 장식되어 있다. 본당 맞은편 방에는 이곳에서 사망한 수도사들의 해골과 뼈로 가득차 있다. 투어를 맞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중에 그리스 농촌집들이 군데 군데 보이고 택시기사는 최선을 다해 안내를 하고 있다. 숙소에 도착하여 시내로 저녁을 먹기 위해 레스토랑을 찾아 갔지만 겨울철이라 손님이 없다. 메뉴판을 보고 마음에 드는 식사를 주문했지만 또 실패 한 것 같다 수블라키가(보통 6∼8유로 )비싼편이다. 적녁 식사를 하고 피곤한 몸을 따뜻함 목욕물로 샤워를 하고 잠을 청해 본다.
칼람바카에서 아테네로 일찍 출발하는 버스가 없어 트리칼라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기위해 택시로 20분 정도 이동하여 트리칼라 버스 터미널로가서 8:00 아테네행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넓은 들과 산골짜기를 돌아 어느 휴게소에서 잠시휴식 나는 커피를 먹기 위해 주문을 했던이 무슨 커피를 원하는냐는 그리스어를 듣지 못하여 yes 했던이 이상한 맛의 커피를 먹게 되었다. 다시 버스는 출발하여 높은 고개를 넘을 때는 흰눈으로 덮인 겨울 풍경 나뭇가지에 눈꽃이 피어있었다. 고개를 넘어 어느 작은 도시에 도착했을 때 하선생님은 델피로 가기위해 이곳에서 하차했다. 버스는 어느새 잘 닦인 고속도로를 진입(버스 진출입은 전자시스템인듯하다 카메라만 달여있다.)해서 달리기 시작한다. 아테네 시내에 들어서니 가다서다를 반복한다. 시내에 들어오자 어느 곳에는 기아차 쇼룸이 보이는 곳도있었다. 5시간 정도걸려 아테네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우리는 숙소를 가지 않고 짐을 안내자(기범씨)에게 맡기고 아크로폴리스유적을 관람하기위해 현지인을 따라 먼 거리를 걸어 메트로역을 찾아 모나스트라키 광장으로 이동했다.
. 아크로폴리스 유적
도시국가를 폴리스라고 한다. 높은 뜻이 아크로라는 형용사를 붙였다 아크로 폴리스는 전쟁 할 때 수비하기 알맞은 곳으로 선정 되고 거기에는 성벽을 쌓았으며 그 곳에 폴리스의 수호신을 모시는 여러신전이 세워져 도시국가 신앙의 중심지가 되었다. 고전 시대에는 파르테논 신전과 에렉테이온신전, 니케 신전과 같은 3개의 중요한 신전이 유적지에 세워졌다.(동서의 길이 270m 남북의 길이 150m)
. 파로테논신전
오후 2시30분에 도착하여 오후 3시에 문을 닫는다니 입장은 내일하기로 하고 주위를 돌아보고 멋진 기념 사진만 찍었다.
지금도 발굴과 복원이 진행되고 있다. 관람시간이 부족하여 내부는 들어갈수 없고 주위를 돌아보고 니케신전은 아크로폴리스 입구로 사용되고 있고 이곳도 발굴과 복원이 진행중이다. 아테네 신성한 바위언덕에 세워진 파로테논신전은 고대그리스의 문명과 특징을 지니고 있는 도리아식 신전의 극치를 나타내는 걸작이라 여행객들의 관심을 갖게 한다. 아테네 시내, 에게해, 리카비토스언덕을 바라보고 기념사진 한장 남기고 언덕을 내려와서 오모니아 광장을 가기위해 모나스트라기역으로 향했다.
리키비토스 언덕
도시 중심부에 우뚝 솟아 있는 높이 295m 의 돌산이며 이곳에 올라 아테네 시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다. 우리는 신전 언덕에서 리키비토스 언덕을 뒤로하여 사진한장 기념으로 남기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케이블카도 운행하기 때문에 편리하다 왕복 4유로 그리스에서도 음식 적응이 되지 않아 해결하기가 매우 힘이든다. 쿠사리를 먹고 싶은데 찾지를 못하여 모나스트리트광장에서 맥도날드 햄버거로 해결했다. 메트로를 이용하여 숙소로 돌아와 델피를 다녀온 일행의 여행담을 듣고 맛있는 라면을 끊여 먹고 휴식을 취했다. 델피는 고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신탁이 이루어지던 땅이다. 당시 델피는 그리스뿐만 아니라 멀리 로마 등 에서도 신탁을 받으려는 사람이 끊이지 않았다. 대지의 배꼽 즉 세계의 중심으로 불리우는 옴파로스는 델피의 상징으로 신탁이 행해졌던 돌이라고 한다.
★. 2006. 01, 10 (화)
(입장료 : 12유로 이티켓으로 고고학박물과, 아고라, 디오니소스극장,제우스신전 입장)
날씨는 흐리고 바람이 몹시 부는 지중해성 날씨이다. 고고학 국립 박물관을 찾아 도보로 이동중 와이프의 감기약을 사기위해 오모니아 광장 부근 약방에 들여 알약 감기약(5유로)을 10일분을 샀다. 가이드북에 소개된 데로 2000년전의 역사속으로 들어가 본다 50여개의 전시실을 찾아서 중요한 유물만 찾아 사진을 한장 찍는 정도로 한바퀴를 관람하는데 2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 국립 고고학 박물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고대 그리스의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다. 대리석 조각품, 청동제품, 도자기, 장신구, 벽화 등 그리스 전역에서 발굴된 유물 등이 전시되어 있다. 주로 미케네에서 헬레니즘 시대에 만들어진 유물들이 많이 소장되어 있다. 유럽 문화의 뿌리인 그리스 문명을 이해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관람 한 대표적 유물은 하프를 타는 인물상, 아가멤논의 황금가면, 크로스상, 포세이돈의 청동상, 말을 탄 소년상, 아프로디테와 판의 군상, 발가벗은 레슬러상, 어부, 화가의 암포라 등 관람)
. 파로테논 신전
아테네에서 제일 높은 언덕 신성한 바위로 3면이 절벽으로 되어 있는 곳에 아테나 파로테노스에 바친 신전이다. 바람이 얼마나 세차게 부는지 조금도 서있기가 힘들다 오스만 시대에는 이 신전을 화약고로 사용했다고 한다. 한바퀴를 돌아보고 박물관에서 잠시 유물을 관람하고 니케신전을 거쳐 우리는 아고라로 내려갔다.
. 아고라
아고라는 고대 아테네의 시장 터를 말한다. 당시의 아고라는 시장의 기능은 물론 정치와 행정, 상업, 종교 기타 사회 활동의 중심지이기도 했으며 소크라테스를 비롯한 많은 철학자들이 자신의 학문을 설파한 곳이다. 고대 아고라는 폐허가 된 채 남아 있다. 아고라 박물관도 꼼꼼히 살펴 볼만하다. 헤파이스토스신전은 원형대로 보존상태가 좋고 동쪽 박공에 켄타우로스족의 싸움이 서쪽 박공에 트로이의 함락 장면이 새겨져 있다. 아고라는 아크로폴리스 북서쪽 바로 아래에 위치하고 있어 모나스라키 광장에서 시장 골목으로 들어가면 바로 입구를 찾을 수 있다.
. 플라카
아크로폴리스와 고대 아고라 인근의 구시가 지역을 말한다. 플라카는 아테네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이지만 기념품, 토산품, 악세사리,가죽제품,골동품 등은 파는 가게들이 많아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않는다. 이곳 저곳을 다니며 구경하다 조그마한 골동품 상점에 들어가 사용했던 그리스 우표를 구입하고 늦은 점심을 먹기위해 모나스트라기 광장 부근 레스토랑에서 라이스가 섞였다는 메뉴를 주문 그러나 씨레기 죽같은 음식(8유로)이 나왔다. 이번에도 또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날씨가 비가내리고 바람이 불어 몹시 추워 신타그마광장 부근 백화점으로 추위를 피하기 위해 찾아지만 휴식을 할 곳이 맞당치 않아 메트로를 타고 숙소로 돌아오니 오후 4:00 숙소 프론트에서 휴식을 하고 5시 30분경 호텔 앞 스불라키(2유로)식당에서 스블라기, 와인도 한잔씩 맛있게 먹었다. 호텔에 맡긴 짐을 찾아 카이로로 이동할 준비를 하였다. 밤 8시 공항버스를 타기 위해 택시로 신타마광장 공항버스 주차장으로 갔다. 공항버스는 50분 정도 달려 공항에 도착 했다. 밤 1시에 이륙하는 카이로발 비행기에 탑승했다. 그리스는 유럽 대륙의 끝자락에서 과거의 영화를 간직한 채 말없는 발전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조용한 나라이다.
이집트(카이로) 1LE(파운드)= 200원정도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인 나일강 유역은 거대한 불모의 땅 아프리카 대륙에 찬란한 고대문명의 꽃을 피웠으며 오늘날 여행 천국으로 나날이 세계각국의 여행객이 늘어나는 이집트를 여행해 본다
지중해를 건너 여행하고 싶었던 아프리카 대륙 약 2시간 정도 비행후 새벽 3시경에 카이로 공항에 도착했다. 입국 비자용 인지(15달러)를 환전소에서 구입하고 여권에 붙여 스탬프 도장을 받으면 입국 심사가 끝난다. 공항을 나와 픽업을 하기 위해 기다리는데, 터어키에서는 눈썹 처럼 보였던 달이 카이로 공항 하늘에 둥근 달이 되어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이제 여행도 후반으로 향하고 있다. 호텔까지 픽업을 하기 위해 전문 택시 기사들이 삐끼로 쇼를 한다 어디로 전화를 하는지 큰 소리로 한참 전화를 하던이 안내자(기범)가 원하는 금액으로 이동하기로 하고 짐을 택시와 봉고지붕 위에 올려 놓고 묶지도 않고 빠른 질주를 하여 호텔에 4:00에 도착 1003호에 투숙하고 휴식에 들어갔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호텔 주변에서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는 택시 기사와 1일투어 계약을 했다.(다양한 금액 20LE, 30LE, 등으로 계약할 수 있다. 4∼5시간 기준)
. 기자 피라미드
카이로 근교 투어(기자 피라밋, 멤피스, 사카라) 택시투어 40LE
카이로 근교 기자피라밋, 사카라, 멤피스를 돌아보는 투어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택시 투어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집트하면 제일 먼저 연상되는 것이 피라미드다. 나도 학창 시절에 공부한 사막에 건설된 피라미드 및 스핑크스를 직접 보고 싶었던 것이다. 조금은 흥분도 되고 기대도 하였다. 택시를 타고 시내를 벗어나니 멀리 웅장한 피라미드가 가까이 다가왔다. 쿠프왕의 피라미드를 제일 먼저 찾았다. 입장권(80LE)구입하여 정문을 통과하니 낙타 몰이꾼들이 접근하여 호객을 하고 있다. 피라미드 벽면은 정확하게 동서 남북을 가리키고, 북쪽으로 나있는 쿠프왕 피라미드 내부 입구를 기어서 들어 가야하는 좁은 길을 어렵게 걸어 내부에 도착, 통로 끝에는 석관만 덩그러니 있다. 공기도 탁하고 미세 먼지가 많아 마스크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피라미드 기초는 암반으로 되어 있으며 그 많은 인력을 동원하여 한 사람의 무덤을 만들기 위해 거대한 석축을 여러겹 쌓아 올렸던 옛 사람들의 내세관을 이해하기가 신비롭다 옛날에는 제일 밖의 부분을 화강암으로 매끄럽게 쌓았으나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은 꼭지 부분만 일부 남아 있고 대부분의 면은 거칠은 돌로 되어있다 .주위에는 작은피라미드가 있는데 이는 왕비를 위한 것이다. 왕비가 피라미드를 갖게 된 것은 이것이 처음이라고 한다.
. 스핑크스
스핑크스는 이집트가 발상지로 이집트 최초의 스핑크스는 바로 카프라 왕의 피라미드 정면에 있는 스핑크스로 사람의 머리에 사자의 몸을 가진 형상으로 마치 피라미드를 수호하는 듯이 당당하게 서 있다. 수천년이 흐르는 동안 말없이 피라미드의 곁을 지켜온 동행자이다. 모래 바람에 땅속에 묻혀 있던 것을 발굴하여 지금의 형태로 보존하고 있다. 오스만 투르가 점령한 시기에는 이것을 원시대포를 발사하는 과녁으로 사용하여 코와 수염 떨어저 나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카라
사카라는 네크로폴리스(죽은자를 위한 묘)로 사용 되던 지역이다. 사카라가 유명하게 만든 것은 세계 최초의 피라미드로 알려진 제 3왕조 조세르 왕의 계단식 피라미드다 6개의 단층을 가진 이 피라미드는 기자의 피라미드에 비하면 규모는 작지만 형태가 독특하며 초기 피라미드의 흔적을 엿 볼 수 있다. 사카라는 넓은 지역으로 무덤군으로 볼거리가 많아서 돌아보는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나는 관심도가 낮아 일부만 돌아보는 것으로 관람을 마쳤다.
. 멤피스
고대 이집트 고왕국의 첫 번째 수도로 번성하던 곳이다. 당시 멤피스는 나일강 서안의 중요한 항구이자 이집트 최고의 도시로 수호신 프타의 신전과 왕궁, 요새 그리고 서쪽에 대규모 피라미드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폐허의 유적이 대추 야자나무에 둘러 쌓여 일부 남아 있을 뿐이다. 한쪽 다리와 팔이 떨어져 나간 람세스 2세의 석상이 말없이 누워있는 것이 전부이고 넓은 광장 중앙에는 스핑크스가 있고 일부 유물이 전시 되어있다. 택시를 타고 가는 동안에 이집션 어린이들이 능숙하게 조랑말을 타고 놀이하는 모습이 보이고 조랑말에 사탕수수를 수확하여 집으로 돌아가는 이집션들의 모습을 보며 카이로로 돌아왔다. 숙소 부근에서 피자헛으로 저녁을 먹고 휴식을 가졌다.
날씨는 우리나라 가을 날씨다. 이집트는 계절이 여름, 겨울 뿐이다. 9:00시에 아침 식사를 하고 10:00부터 투어를 시작했다.
. 타흐릴 광장
카이로 신시가지의 중심으로 이곳을 돌아보는 것으로 카이로 여행이 시작된다. 카이로는 길건너는 것 자체가 고역이다. 당장 이라도 멈추어설 것 같은 택시들이 잘도 간다. 우리나라에서는 찾아 보기 힘든 차들이 시내를 질주하고 있다. 광장 맞은편에 나일 힐튼 호텔이 있고 부근에는 고고학 박물관이 있다.
. 이집트 고고학 박물관(입장료 40LE)
이집트 5천년의 역사를 집대성한 고고학 박물관은 세계 어느 박물관과 비교해도 전시품은 떨어지지 않는다. 정문앞 연못에는 이집트의 상징인 파리루스와 로터스가 심어져 있다. 1층, 2층으로 전시되어있고 꼼꼼히 보려면 최소한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나는 2시간정도 돌아보았는데 2층 람세스 2세 미라실에 70LE 입장료를 내고 관람하였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영생을 원하였는지 죽은자의 모습을 미이라로 만들어 영구히 보전하는 지혜가 놀랍다. 가장 인기가 높은 투탄카문 묘에서 출토된 유물은 2층에 전시되어 있다.(황금 마스크=9Kg) (박물관 전시물 사진촬영 금지)
관람을 마치고 주변 힐튼호텔 가페에서 시원한 음료수(망고쥬스)를 먹으며 망중한을 즐기고 이슬람 시타텔로 이동하였다. (택시 5LE)
시타텔
12세기 중세 아랍의 전설적인 영웅 실라단이 십자군을 격파하기 위해 모카탐 언덕에 건설한 요새로 시타텔 내부에는 무하마드 알리 모스크와 군사박물관이 있다. 모스크 입구의 오른쪽에는 무하마드 알리의 무덤이 있고 사원의 안쪽 뜰에는 흥미로운 시계탑이 보인다. 이 시계는 무하마드 알리가 프랑스 루이; 황제에게 룩소르 신전의 오벨리스크를 선물한 댓가로 프랑스로 부터 받은 것이다. 오벨리스크는 프랑스 콩코드 광장에 서 있다. 모스크의 남쪽으로 돌아가면 이슬라믹카이로와 카이로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시타텔의 북쪽으로 돌아가면 중세에서 현대까지의 무기를 전시해 놓은 군사 박물관이 있으나 그리 인상적이지 않다. 숙소로 돌아올때 택시(15LE)로 돌아와서 슈퍼에서 맛있는 빵으로 저녁 식사을 호텔 9층 휴게소에서 맛있게 먹었다. 아스완으로 이동(10시간)하기 위해 람세스 역으로 이동(택시 10LE) 밤 8시출발 야간 침대 열차에 탑승했다. 처음타보는 2층 침대차였다. 생각보다 공간이 쾌적하였다. 1시간 후 저녁 식사가 나왔다. 그러나 저녁으로 빵을 먹었기 때문에 반갑지 않다. 빵을 먹지 않았으면 맛있는 저녁 식사였지만 배부른 다음에야 진수성찬이 무슨 소용있으랴 그래서 조금만 먹었다. 흔들리는 기차(와곤리츠 침대 특급열차 50달라)는 끝없이 펼쳐지는 사탕수수밭을 지나 아침 식사 시간을 알린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침대칸 서비스 맨이 팁을 요구하여 1칸에 10LE씩 주었다. 에집트의 최남단 아스완에 도착 바람이 서늘하게 불고 있고 나일강변에는 펠루카가 한가로이 떠다니고 있다.
. 아스완, 펠루카 투어
이집트 최남단의 관광도시 아스완은 일년내내 쾌적하고 따뜻한 날씨가 계속되는 휴양 도시이다. 거리를 거닐다 보면 사람들의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여유로움이 배어있다. 아랍인보다는 흑인에 가까운 얼굴이 더 많이 보인다. 고대 누비아의 땅이었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그들의 후손이 많이 살기 때문이다.
날씨는 구름 한점 없는 날씨지만 바람이 불고 있다. 어제 밤 9시부터 13시간을 달려온 야간 기차는 아스완 역에 도착하여 택시로 이동 호텔이 나일강 섬에 있어 호텔 전용선으로 이동 조금은 이국적이고 분위기 있는 호텔이다. 306호에 여정을 풀고 휴식후 11시부터 펠루카 투어를 하기 위해 개인당 20LE 지불하기로하고 펠루카투어를 시작했다. 펠루카는 고대 이집트의 전통적인 흰 돛단배로 나일강 주변에서는 아직도 이 지역의 중요한 교통수단이 되어 주고 있다. 4시간 정도 투어를 하였다. 기름 냄새 없이 바람을 이용하여 움직이는 펠루카 조금은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며 심신의 피로를 풀어보는시간인 듯하다 겨울철은 바람이 잘 불어 펠루카 투어에 좋은 조건이다. 여름에는 바람이 불지 않아 움직이기가 힘들다고 한다. 어린아이들이 쪽배를 타고 펠루카를 붙들고 민속 노래인지 부르며 돈을 요구한다. 내가 보기에는 애처러워 보이기도 했다. 저녁 식사를 하기위해 전용선을 타고 아스완 시내로 나갔다. 여러곳을 돌아다니다 강쪽으로 있는 레스토랑에서 무엇인지 몰라도 메뉴판을 보고 주문하니 우리나라 뚝배기 비슷한 그릇에 국물이 있는 음식이 나왔다. 오랜만에 마음에드는 음식인 것 같다. 모두들 야단이다. 빵만 먹다가 따뜻한 국물을 보니 눈이 크게 떠진다. 맛잇게 저녁을 먹고 내일 아부심벨로 이동할 때 먹을 빵을 구입하기 위해 시내를 돌아다니다 긴빵 1LE에 4개 짜리와 땅콩을 구입하여 숙소로 돌아왔다. 호텔방에서 둥근달을 바라보며 휴식을 한다.
. 아부심벨 신전
새벽 3시 버스로 아부심벨로 이동하기 위해 호텔에서 준비한 점심을 가지고 호텔 전용선을 타고 강을 건너 투어버스에 타고 조금 달리더니 멈추었다. 이유는 몇 년전에 카이로에서 테러가 나서 많은 외국인이 희생되어 이집트에서는 투어 경찰을 늘이고 많은 투어 폴리스가 거리나 관광지에 배치 되어 근무를 하고 있다. 현재 대통령 무바라크는 독재정치로 국내 정치는 혼란한 상황이다. 많은 투어 차량을 1시간정도 대기 한다음 투어 폴리스가 집단으로 인솔을 한다 이제 롱 트립(Long Trip)투어를 시작한다 끝없는 사막을 320Km 3시간이나 달려도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 없다. 아부심벨 신전은 람세스 2세에게 바친 신전이다. 하이댐 건설로 물에 잠기게 되어 50여개 국가에서 도움을 받아 원자리에서 지금의 자리로 이전한 인류가 구한 세계 문화유산이다. 아부심벨 신전은 이집트 피라미드와 함께 대표적인 이집트 유적이다. 사막 한가운데 푸르름을 뽐내는 나세르호수 그 옆에 조그만 모래 산에 세워진 신전 인간이 접근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이 외딴 곳에 이처럼 거대한 신전을 세운 람세스 2세의 건축에 대한 경의로움은 상상을 초월한다. 날씨는 매우 더웠다. 신전은 자신을 위한 대신전과 왕비를 위한 소신전으로 나누어 있으며 관람시에는 미세 먼지가 많아 마스크를 하고 관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벽화 내용은 잘 모르지만 일생동안 업적을 표현하였으며 신전 정면에는 람세스 2세 좌상 4개가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중앙에는 태양신 라하라크의 석상이 안치되어 있다. 입구에는 부활을 상징하는 영생의 열쇠인 잉크를 들고 있는 누비안이 있으며 사진을 함께 찍으면 성금을 받는다. 소신전은 내부 길이 20m로 대신전에 비해 규모가 작다 미와 음악 기쁨의 여신인 하토르가 네패르타리에게 축복을 내려주고 신들에게 경배하는 그림으로 채워져 있다. 소신전 우측으로 돌아 출구가 있다. 출구을 벗어나면 상점이 있는데 물건을 팔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나는 우표 몇장을 구입했다. 아스완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스완 하이댐을 보았다.
. 아스완 하이댐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긴 나일강 이집트의 모습을 한 순간에 바뀌버린 건축물이다. 고대문명이 발생 할 수 있게 비옥한 땅을 제공한 나일강 그러나 나일강 범람으로 강 인근에 사는 주민들은 수 천년 동안이나 괴롭혀 왔다. 독일과 소련이 합작으로 건설한 길이 3.6Km, 높이 101m 세계에서 3번째로 큰 댐이다. 자세히 돌아보기는 힘들고 뚝위에서 사진 한장 남기는 것으로 관광을 해야한다 바람이 심하게 불고 있네요 여기서 올드댐(아스완댐)이보이다. 12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필레신전(이시스 신전)
하이댐 완공으로 댐에서 방류하는 물에 잠기게 되어 1970년대 필레 섬에서 150m 떨어진 아글리카섬으로 이전한 신전이다. 이시스 여신을 위한 신전으로 수 백년에 걸쳐서 완성되었던 건축물이다. 로마시대에는 이 신전이 가장 중요한 순례지였다. 신전은 섬에 있기 때문에 보트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 미완성 오벨리스크
이 미완성 오벨리스크는 고대 이집트인들이 어떻게 거대한 암석을 매끄럽게 잘라 냈는지에 대한 의문을 풀어준다. 돌에 홈을 만들어 그 홈에 세 곳의 쐐기를 박아놓고 쐐기에 물을 계속 적셔주면 돌의 내부가 팽창하여 돌이 갈라진다는 것이다. 길이 41m의 미완성 오벨리스크는 완성이 되었다면 이집트에서 가장 높은 오벨리스크가 되었을 것이다. 이곳을 끝으로 롱 트립을 마치고 룩소르로 이동하기 위해 아스완 역으로 이동하였다. 이스완 역에 도착하여 모처럼 맛있는 10LE 짜리 저녁 식사(닭고기, 밥, 빵, 야채)를 했다. 정말 맛있게 먹었다. 오후6시에 출발한 기차는 3시간을 달려 룩소르에 도착 만도네(한국말을 잘하는 이집트인)를 만나 힘들게 갔으나 지정 호텔이 안이여 택시를 타고 우리가 예약한 메큐리호텔를 찾아갔다. 나일 강이 보이는 호텔방에서 룩소르 야경을 감상하고 단잠을 청해 본다.
. 룩소르, 왕가의 계곡
나일강의 중류에 자리잡은 룩소르는 고대 인류 문명이 숨쉬는 곳이다. 고대에는 ‘테베’라고 불리던 곳으로 이집트의 중흥기를 연 중왕국, 신왕국의 수도로 번성하였다. 지금은 작고 초라한 도시에 불과하지만 도시 곳곳에 당시의 유적이 영화롭던 옛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도시분위기는 한적하고 차분하며 카이로와 같은 복잡함은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동안의 카르나크신전, 룩소르 신전, 서안의 왕가의 계곡, 핫쳅수트 신전, 등 이집트 최대의 볼거리가 모두 이곳에 있다.
9:30 한국어를 잘 하는 만도와 영어 가이드와 함께 다른 투어팀과 함께 서안 투어를 시작했다. 차창밖으로 펼쳐진 사탕수수밭 작은 당나귀를 이용하여 물건을 나르는 이집션들의 삶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무 한 그릇, 풀 한포기 없는 네크로폴리스 바로 이곳에 파라오들의 무덤이 있다. 이곳을 자신들의 안식처로 택한 파라오들의 선택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왕가의 계곡에는 많은 왕의 무덤이 있지만 우리 일행은 람세스 4세, 6세, 1세 무덤을 관람. 투탄카문의묘는 정말 볼만하다는 데 시간관계상 다음기회로 미루고 지나쳤다.
.핫챕수트 신전
깍아지를 듯한 바위 산을 뒤로하고 서 있는 신전은 핫챕수트 여왕 신전이다. 3층 테라스식 신전은 그 옛날 만든 독창적이고 웅장한 신전으로 이곳 벽화는 통치기간중 여러 가지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다. 22개의 기둥에 지탱되고있는 1층 테라스 2층 테라스 벽면에는 그녀의 탄생과 어린시절에 대한 기록이 있고 3층 가운데는 아문신을 모시는 소전실이있다. 3천5백년이란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잘 복원되어 있는 신전이다. 신전에서 오른쪽의 돌산을 따라서 걸어가면 왕가의 계곡으로 넘어갈수 있으며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나일강변 풍요로운 풍경이 환상적이란다. 반드시 걸어 갈때는 물을 준비하고 먹을 것을 꼭 준비해야 한단다.
. 왕비의 계곡
이 계곡에서 왕비와 왕자의 묘로 판명된 이 무덤들은 BC1100년경에 만들어진 무덤들이다. 현재 모두 4개가 개방 되고 있다. 람세스 2세의 왕비인 네페리타리의 무덤이 가장 볼만하다 티켓 한장으로 3개의 무덤을 볼 수 있다. 아문허크페체프의 묘는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람세스 3세의 아들의 묘이다 우주를 상징하는 붉은 원반 람세스 3세의 아들의 영혼을 건네주는 벽화가 있다. 이 중 히토르 여신이 람세스 3세의 벽화는 흐르는 세월을 무시하듯이 완벽한 색채로 남아 있다.(돌관과 어린 미라가 있다.)
. 멤논의 거상
룩소르 서안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두 개의 웅장한 석상이다 높이 23m (1000톤)의 이 석상은 아메노피스 신전 입구에 있던 것이었으나 지금 신전은 사라지고 석상만 남아 있다. 사암으로 만든 이 석상은 파라오가 옥좌에 앉아 두 손을 무릎에 올려 놓은 모습을 하고 있다. 왼쪽에 위치한 석상은 조각조각 난 것을 모자이크처럼 붙여 놓아 만화영화에 등장하는 거인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해질녘에는 석상에 조명이 들어와 환상적인 모습을 연출한다. 서안투어를 마치고 우리는 만도네 레스토랑에서 한식으로 볶음밥, 닭도리탕으로 맛있게 점심을 먹고 마차(15LE)를 이용하여 시내를 느린 속도로 카르락신전까지 이동하였다
. 카르나크 신전
이집트 최대의 신전으로 그 규모가 엄청나다 가로 1.5Km 세로 0.8Km의 터에 거대한 열주, 다주식 홀, 석상, 제단, 오벨리스크 등이 상상을 초월한 정도로 엄청난 신전이다. 입구에는 양의 머리를 한 스핑크스가 20개씩 나열되어 있고 신전입구에 람세스 3세의 석상이 서 있고 람세스 2세의 석상의 발 아래에는 그의 부인인 네페르타리가 조각되어 있다. 카르나크 신전의 하이라이트인 대열주홀이다 세로 102m 세로 53m의 직사형인 이 홀은 134개의.대열주가 지붕을 떠받치고 있다. 이 거대한 원형의 열주에 정교한 파피루스 꽃 문양과 아문신을 숭배하는 왕의 치적이 새겨져 있다. 이 곳을 지나며 오벨리스크가 나타난다. 카르나크 신전에서는 매일 밤 영어, 독어, 아랍어로 설명되는 환상적인 빛과 소리의 쇼가 펼쳐진다.
룩소르 신전
카르나크 신전을 나와 우리는 룩소르 신전까지 올때 처럼 마차를 이용하여 이동했다. 우리가 이용할 마차에 올라 탄 어린 아들이 빵을 아버지에게 건네준다. 아빠는, 빵을 반으로 나누어 아들과 아버지가 맛있게 먹는다. 아랍어로 무슨말인지는 몰라도 우리에게 설명을 하며 룩소르 신전까지 왔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조명이 들어와 룩소르신전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많은 관광객이 이광경을 보기위해 모여들었다. 우리는 밖에서 사진 한장 남기는 추억과 걸어서 머큐리 호텔로 이동하면서 시장 구경도 하고 길거리에서 맛있는 과일을 구입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저녁 야간열차로 이동하는 날이다. 밤9시에 승차하면 저녁을 제공하기 때문에 저녁을 먹지 않고 호텔 로비에서 기다리다 룩소르역으로 이동하였다. 밤 9:30분발 카이로 야간 열차에 올랐다. 이번에는 처음보다 침대 열차가 깨끗하지않았다. 그래도 두번째여서 편안한 마음으로 잠시 쉬고 있는데 저녁 식사가 제공되어 맛있게 먹고 커피도 서비스하여 맛있게 먹었다. 공짜인줄 알고 먹었던이 저녁상을 치울때 커피값 4LE를 달라한다. 어쩐지 차에 올라 더운물을 요구 했던이 주지 않고 커피를 먹고 난다음에 더운 물을 서비스 받았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휴식후 흔들리는 2층 기차에 몸을 싣고 잠을 청해 본다.
처음 보다는 편히 잠을 자고 아침 6시에 카이로 람세스 역에 도착했다. 나일강의 게지라 섬 남쪽에 위치한 프라멩코호텔로 택시로 이동 6:00에 짐을 프론트에 맡기고 투어를 시작했다.
. 알렉산드리아
알렉산드리아 관광을 위해 택시(5LE)로 투르고만 버스터미널에서 (8:30분발) 웨스트 델타에서 운영하는 버스로 16LE 표를 구입하여 출발했다.(지금은 터미널 증축공사를 하여 주변 길거리에서 승차를 한다.) 우리는 정보가 없어 무슨 말인지 아랍어로 음료수와 빵을 먹겠는냐고 물었는데 우리는 서비스인 줄 알고 맛있게 먹었는데 승객들 중 우리만 먹었다. 먹고 난 다음 값을 요구하는데 1인분에 15LE를 지불 하란다. 어이가 없어 버스표 값과 같으냐고 물으면서 너무 값이 비싸다고 항의하고 나름대로 판단해서 4명의 간식대금 60LE을 20LE만 내고 알렉산드리아 까지 가는중 물건 판 아가씨와 우리는 논쟁이 벌어졌다. 물건을 판 아가씨는 외국인과 함께 통역을 하는데 이해가 않되어 더 이상 논쟁을 하지 않고 목적지까지 와서 우리는 하차를 했다. 알고보니 값은 정당한 값이였으며 우리가 잘못 이해하여 외국인이란 핑계로 돈을 내지 않고 내린 것이 해프닝이 되면서 재미있는 추억이 되었다. 알렉산드리아도시는 지중해를 따라 동서로 길게 뻗어 있고 서쪽 끝은 콰이트 베이 성채, 동쪽으로는 몬타나 궁전과 아부키르 마을이 있다.
터미널에 내려 환전소를 찾아 자그로울 광장 환전소에서 환전을 한다음 알렉산드리아 시절에 세웠다는 파로스 등대가 있던 곳으로 택시로 이동하였다. BC279년에 세워진 파로스 등대는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128m에 달했고 50Km 밖에서도 볼수 있었다고 한다. 이 등대는 14세기에 발생한 대지진으로 무너졌으며 오늘 날 까지 고대 알렉산드리아의 번영을 상징하고 있다. 5LE로 약속을 하고 콰이어성채입구에 내렸더니 택시기사가 먼저 투어폴리스를 향해 큰소리 아랍어로 이야기한다. 투어폴리스들이 모여들어 같은 주장을 한다. 택시요금을 10LE주고 해양박물관을 관람하였다. 다음에는 콰이베이 성채에 입장하여 내부를 돌아보고 성벽에 올라 추억의 사진 한장 남기고 고고학 박물관을 향해 택시를 탔다 어찌나 시끄럽게 택시 기사가 이야기를 하는지 귀가 아프다. ‘전쟁 무명용사 기념비’를 지나 그레코 로만 박물관에 도착하니 박물관 보수관계로 관람을 할 수 없다. 우리는 시간도 없고 해서 카이로로 돌아오는 중 아스완에서 가져온 핑크색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폼페이기 기둥을 보고 카이로행 버스터미널에서 수퍼제트 버스 27LE 티켓을 구입하여 카이로를 향해 출발 했다.(3시간 30분소요)
날씨가 지중해성기후여서 겨울에도 비가 자주 내린다. 시내 곳곳에는 빗물이 많이 고여 차량 및 시민들의 통행이 곤란하다. 알렉산드리아는 이집트의 제1의 무역 항이자 상업 금융 중심지이다. 도시의 이름은 이집트를 점령했던 알렉산드리아 대왕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다. 알렉산드리아로 가는 주변은 이집트의 젖줄인 듯 넓은 들판에 여러 가지 농산물 농장이 보이고 특히 바나나 농장이 넓게 펼쳐져 있다. 나일 삼각주 지역은 또다른 분위기이다 푸르름이 가득한 풍요의 나라 같다 도로 옆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광고판과 비둘기 집이 많이 보이는데 우리나라 양계장에서 닭을 사육하듯이 비둘기를 사육하여 식용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생각이 든다.
. 이집트 서부 사막 사파리
오랜 세월 동안 나일 강 서쪽의 이 광대한 사막은 세상과 고립되어 자연 그대로의 신비를 간직해 왔다. 최근 일부 모험가들이 이곳을 개발 하기 시작 하면서 이 미지의 세계를 탐험 할 수 있게 되었다. 서부 사막 지대에는 카르가 오아시스, 디클라 오아시스, 파라프라 오아시스, 바헤리아 오아시스가 있는데 오늘 우리는 바헤리아 오아시스로 가는 것이다.
이집트 여행의 하이라이트 사막투어(40달러)를 하기위해 투어 버스에 올랐다. 날씨가 맑고 바람도 불지 않고 쾌적한 날씨다. 우리는 맥주를 구입하기위해 여러곳을 다녀보았지만 이슬람 국가는 술을 파는 곳이 없다. 대형버스로 좁은 골목에 있는 쇼핑센터를 찾았지만 구입하지 못하고 카이로 시내를 벗어 났다. 외국인은 호텔이나 지정된 곳에서만 판매를 허용 한다고 한다. 시내를 벗어나니 모래와 끝없이 곧게 뻗은 철길 송전탑과 우리가 가고있는 도로가 인간의 흔적이 있는 곳이고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 없는 모래 사막이 펼쳐 진다. 1시간에 20여대의 차량을 만날 정도의 한가한 길이다. 2시간정도 달리든 버스는 사막속의 휴게소에 정차하여 이 곳에서 우리 일행은 맥주를 구입 하였다. 나는 차이를 한잔 먹고 잠시 휴식을 가졌다. 인간의 살수 있는 바헤리아 오아시스에 도착한 것은 4시간 정도 지난 후 사막 투어의 전진 기지인 바위트 마을 휴게소에서 한국식으로 준비된 점심을 맛있게 먹고 휴식 하면서 탁구 게임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달려온 거리가 360Km 아직도 160Km 정도 더 가야한단다. 이 곳에서 찝차로 갈아타고 곧게 포장된 도로를 달린다 모래 언덕이 있는 곳으로 지그 재그로 운전하며 우리를 즐겁게 하기 위해 베드인의 후예인 운전기사는 요리조리 잘도 달린다. 한참을 달리다 모래 언덕을 힘차게 달려 올라가던 차는 멈추고 우리 보고 멋진 사진 한장 추억으로 남기란다. 우리 일행은 기념 사진을 찍고, TV나 말로만 듣던 사막의 모래 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는 체험을 하고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도로는 거의 직선 도로이며 조금씩 커브길이 있지만 120Km속도로 잘도 달리다. 1시간 정도 달린이 주변이 검은 흑사막으로 변하였다. 사막하면 모래 사막만 생각했는데 실제로 보니 모래사막, 백 사막, 흑 사막, 돌사막, 바위사막 등 사막화가 지금도 진행 되고 있다. 인간의 힘으로 사막화를 막기 위해 기적 같은 일을 하고 있다. 사하라 사막의 관계수로 공사를 우리나라 동아건설이 1만 Km 건설하여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일도 있다. 사막화는 물이 없서 일어나는 자연 현상이다. 드넓은 모래 벌판에 물을 끌어와 농사를 짓고 필요한 나무를 심어 녹화사업을 지금도 끊임 없이 진행되고 있다. 흑사막을 지난이 백사막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석회암이 사막화가 되어 진귀한 형상을 하고 사막 곳곳에 서 있다. 석회암의 이상한 모양들이 우리들을 놀라게 한다. 해질 무렵에 캠핑 장소에 차는 도착 하였다 이 곳에는 현지 랜드사들이 관광객의 캠핑 천막을 여러 곳에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다. 우리도 현지 베두인의 후예 한사람이 반갑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현지 베두인은 저녁을 준비하며 우리가 도착하자 바로 모닥불을 피우기 시작해서 숯불 위에서 닭고기 바베큐를 준비 한다. 저녁으로 감자 찌개 비슷한 반찬과 닭고기 바베큐 한꼬치로 맛있게 먹고나니 해는 지평선 넘어로 숨어 버렸다. 사막에서 맞이 하는 일몰 광경은 가히 환상이라 할 만큼 아름다웠다. 어느 노래 가사에 있듯이 ‘별이 쏟아지는 밤’ 이란 말이 실감 날 정도로 구름 한점 없는 하늘, 어두운 밤 하늘에 밝은 별이 우리 머리 위에서 반기고 있다. 별자리 지식이 부족하여 실감은 나지 않았지만 오리온 자리와 카시오페아, 큰곰자리, 작은곰자리를 확인하는 정도이다. 정말로 고향 하늘에서 보는 밤 하늘과는 전혀 다른 밝고 고운 별자리가 우리들의 머리 위에 있다. 밤 하늘 별들 사이로 떠오르는 달 뜨는 광경도 또한 장관이다. 감정 지수가 높았다면 시 한구절이 떠 오르련만 좋은 시귀가 떠오르지 않는다. 밤 12시까지 우리 일행은 모닥불 주위에서 베두인들이 타악기를 연주하며 민속 노래도 부르고 부드러운 춤도 추면서 우리를 즐겁게 한다. 이웃에 사막투어를 온 외국인도 함께 참여하면서 밤이 깊어가는 줄 모르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우리가 베두인의 후예들과 하루 밤을 보낼 천막은 2동이다. 베두인들은 모래 위에서 하늘을 이불 삼아 침낭속에서 머리까지 담요를 덮고 잠을 잔다. 하선생님과 안내자는 체험을 하기 위해 모래 위에서 베두인들과 함께 침낭속에서 담요를 덮고 잠을 잔다. 사막의 밤이 깊어 갈수록 기온이 내려가 춥다 군생활 할 때는 눈위에서도 잠을 잤지만 지금은 침낭속에 옷도 입은 대로 잠(등걸잠)을 청해 보지만 잠이오지 않는다. 그래도 눈을 감고 사막에서의 하루 밤을 보내고 먼동이 트일 무렵 일어나 기지개를 켜며 몸을 움직여 본다. 와이프는 감기에 몹시 힘들어 한다. 그래도 강인한 정신력으로 이겨내고 있다.
백 사막의 날이 밝았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사막에서의 하루 밤을 선잠(등걸잠)으로 보냈다. 아침 공기는 산뜻하다. 끝없이 펼쳐진 백 사막 인간이 접근하지 않든 지역이 세계에서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사막은 몸살을 앓고 있다. 곳곳에는 인간의 배설물 모닥불 피운 흔적이 여기 저기 보인다. 때로는 밤중에 짐승의 울음 소리가 들린다는데 우리는 듣지 못 했다. 베두인들이 마련한 아침 식사로 빵(비떼)으로 간단히 하고 따뜻한 꿀 차를 한잔 먹고 아쉬운 백 사막의 등걸잠 자리를 뒤로하고 백 사막 투어를 다시 시작한다. 찝차 운전기사는 정말 행복 지수가 높은 젊은이다. 몸짓을 하며 즐거운 표정으로 우리를 조금이라도 흥미롭게 하기 위해 이리저리 백 사막 여러 곳을 돌아 돌아 질주를 시작 한다. 언덕을 넘고 위험한 백 사막의 질주는 계속 된다. 와이프는 얌전하게 운전하라고 잔소리 남선생님은 더 스릴 있는 질주를 요구하는 사이에 백 사막을 빠져 나와 흑 사막으로 접어 들었다. 오는 도중에 오르막 내리막 언덕 길을 달리다 경치 좋은 곳에서는 어김 없이 사진 촬영하는 시간을 주면서 크리스탈 마운틴에 도착하여 모래 속에 숨어 있는 크리스탈을 찾아 보지만 행운은 찾아 오지 않는다. 이 곳을 지난 찝차는 흑 사막으로 접어 들었다. 이리저리 가다 서다를 반복 하면서 스릴 있는 운전을 하며 경치 좋은 흑 사막 언덕에 정차 추억의 사진 한 장을 또 남기고 잠시 휴식을 가졌다. 흑 사막 돌은 철분 성분이 많이 섞여 있는 듯하다 서로 두들기면 쇠 소리가 난다. 정말로 비 한방울 내리지 않는 불모의 땅 지금도 이곳은 사막화가 진행중이다. 어찌하여 비 한방울 내리지 않는 땅이 되었을까 사막 곳곳에는 인간의 지혜로 풀과 나무가 살수 있는 물 길을 만들기에 지금 이 시간도 쉬지 않고 노력하고 있다. 이렇게 천박한 땅에서 생활하는 베두인의 후예들은 행복지수가 높다 밝은 표정으로 한결 같이 우리를 안내 하며 투어를 끝냈다. 어제 버스가 정차하고 있던 곳 바위트마을 휴게소에서 점심(밥, 콩조림스프, 빵)을 맛있게 먹고 카이로를 향해 출발했다. 사막의 길을 정신 없이 달리던 버스는 어제 갈 때 쉬었던 휴게소에 잠시 정차 하였다. 나는 홍차 한잔을 사먹고 이집션 사람들은 물 담배에 홍차를 먹으며 한가롭게 휴식을 보내는 모습이 너무나 여유로워 보인다. 이집션들의 척박한 자연 환경속의 생활 모습을 보면서 아직도 지구상에는 이렇게 힘들게 생활하는 사람이 많이 있음을 생각하는 사이 버스는 속도가 줄기 시작 한다. 카이로 근교는 잘 정리된 주택 지구 산업단지 등 구획 정리가 잘 되어 있고 외곽 순환도로가 우리나라 서울 외곽 순환도로 처럼 잘 정비되어 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든 버스는 플라밍코 호텔에 도착하였다. 슈퍼에서 밥, 누들, 야채 볶음, 과일을 저녁 식사를 구입하여 호텔 방에서 맛있게 먹고 휴식, 이제 길고 긴 단체 배낭 여행도 끝이 났다. 두려움과 흥분으로 시작한 3대륙을 넘나들며 여행 했던 일들이 주마등 같이 지나 간다. 빠르게 변해가는 카이로의 밤을 보내고 귀국 길에 오를 생각을 하니 잠이 올 것 같지 않다. 일행 중에는 아직도 아쉬움이 있어 나일강 크루즈를 하러 간다고 한다. 오늘 카이로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고 내일 일찍 알렉산드리아 공항으로 이동한다. 편한 마음으로 마지막 여행 일기를 정리해 본다.
호텔 조식후 알렉산드리아 공항으로 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버스에 짐을 싣고 나일강 게지라섬 프라밍코 호텔을 출발, 많은 관광객이 카이로 거리를 누비며 나날이 발전하는 나일강을 보면서 그 옛날의 문명을 꽃 피운 역사 유적을 뒤로하고. 알렉산드리아를 향해 달린다. 며칠 전에 다녀 간 길이라 눈에 낯설지 않다. 버스는 어느덧 공항에 도착했다. 알렉산드리아 공항은 내가 생각 했던 공항으로는 너무 초라 했다. 한쪽에는 메카를 향해 기도하는 이슬람 신도들의 모습이 어디를 가나 우리 눈에 들어왔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 출국 수속이 끝났다. 이곳도 급행 요금이 있단다. 우리를 인솔한 현지 랜드사 가이드는 정장을 하고 끝까지 불편 함이 없도록 신경을 쓰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검색대를 통과하고 손 한번 흔드는 것으로 작별 인사를 하고 우리는 두바이행 비행기에 탑승 했다. 이집트여 안녕 그 동안 좋은 유적 많이 보여주어서 행복했다.
오후 1:30분에 출발하는 비행기는 이륙 후 지중해 연안을 따라 수에즈 운하, 시나이반도, 사우드아라비아 유전지대와 사막을 지나 페르샤 만을 따라 두바이 공항에 도착했다. 내 눈으로 수에즈 운하를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는 느낌도 묘하고 시나이반도에 모세가 십계명을 받았다고 알려진 시나이 돌산이 있는 상공을 비행기는 지나가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유전이 공이 보인다. 유전 공이 수없이 많은 것을 보면서 우리나라에도 저 많은 유전 공 중에 일부분이라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4시간 정도 비행 후 경유지 두바이공항에 도착했다. 8시간의 시간 여유가 있어 시내 대형 백화점 구경을 택시(8달러)로 갔다. 쇼핑의 천국이라고 하는데 나는 관심이 없다. 간단히 저녁 식사를 하고 다시 공항으로 돌아왔다.
★. 2006. 01. 20(금)
두바이 공항은 24시간 움직이는 국제공항이다. 여러 나라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으며, 통로에서 잠을 자는 사람, 쇼핑하는 사람, 탑승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 모두가 활기 차게 움직이는 두바이 공항이다. 새벽 03:00에 인천공항으로 출발하는 에미레이트(322)항공을 탑승하기 위해 38번 게이트 부근에서 02:00시까지 휴식을 하다가 보딩패스 시간에 맞추어 게이트를 찾아 갔다. 와이프와 면세점에서 간단히 쇼핑을 하고 우표를 사려고 하니 시간이 끝났다고 한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고국으로 돌아가는 인천행 비행기에 탑승하였다. 창가에 자리를 잡고 기내식을 먹고 잠을 청해 본다. 3백명 이상 탑승한 승객들 대부분 우리나라 여행객이라는 것이 놀랍다. 성지 순례하는 여행객이 많고 대부분 배낭 여행객 그리고 패키지 여행객들이다. 기내에서 제공되는 기내식이 모두 우리 입맛에 맞는 음식이다. 김치, 고추장, 밥, 등 맛있는 기내식을 두 번 먹고 나니 어느새 오후 04: 20분경 인천 국제공항에 착륙 준비를 알리고 있다.(8시간 비행 후). 22번 창구에서 짐을 찾아 함께 했던 동료들과 인사를 나누고 오후 5:30분 청주행 우등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제일 먼저 삼겹살에 소주 한잔 하자는 구 선생님 이야기를 들으며 청주에 도착하니, 동호회 활동을 함께하는 황 박사가 마중을 나와 무거운 배낭을 차에 싣고 ‘옹기종기’에 도착하여 얼큰한 동태찌게와 돼지고기 두부 두르치기를 맛있게 먹고 황 박사 댁에가 통영서 올라온 신선한 굴과 와인도 한잔하며 편안하게 여행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도움을 준 하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세 가족이 11시에 헤어져 집으로 돌아와 긴긴 여행을 마무리 했다 그 동안 함께 동행 한 12명의 가족과 구 선생님 내외분께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오늘 밤은 집에서 편안 하게 잠을 잔다.
♣. 배낭 여행을 마치고
1. 여행지 숙소 도착하면 주위 건물 위치 파악을 꼭하고 숙소 명함을 준비하고 외출 한다
2. 배낭 여행객 여행경비 아끼시려면 어느 곳이든 수퍼마켓을 찾으세요 맛있는 음식이 준비되어 있다.
3. 터어키, 그리스, 이집트에서 택시이용 할 때 호텔측에 택시 불어 달라고 해서 이용하세요 바가지 요금 걱정 없고 편합니다.
4. 터어키 야간버스 이용때 물을 요구시 ‘수’플리즈 하면 물이 터어키어로‘수’ 입니다.(영어 잘 통하지 않음)
5. 여행 목적지 도착하면 투어 랜드사가 많이 있으니 차근차근히 상담하면서 마음에 들면 투어를 신청하고 서두르지 않는다.
6. 여행 환승 경유지에서는 대개 5∼8시간의 여유가 있으면 시티투어를 하면 효과적이다. 공항 나갈 때 짐 맡기는 곳이 어느 공항이든 있고 여권, 항공권을 꼭 몸에 소지할 것 공항에 들어 갈 때 필요하다.
7. 여행 현지 음식 사전지식 필요 자신 없으면 현지인들 식사 확인 후 손으로 가리키며 주문하면 실수 없다.
8. 인천 - 두바이(에미리트 항공) 기내식 우리음식 제공 맛있다, 두바이 면세점 세계 1위 아이 쇼핑 즐기기 좋다.
9. 단체배낭 여행 숙소 걱정 없고 재미있는 추억이 많다, 개인 배낭은 숙소 구하는 시간이 필요하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아서 여유롭다.
첫댓글 우와~대단히세요!!여행때일 거의 기억이 가물가물 했는데 다시 기억이 살아나요~~너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