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집대허공장보살소문경 제5권
[보살이 대승을 성취하는 큰 갑옷]
보살이 만약 이 청정한 도에 머무르면 큰 갑옷를 입고 대승(大乘)을 성취하여서 이 대승으로 말미암아 보리의 도량에 나아가느니라.
그 큰 갑옷을 입는 것이란 어떤 것인가?
보살이 제도 받지 못한 자를 위해 제도의 큰 갑옷을 입는 것은 유정을 건너게 할 수 있는 큰 배[船]를 잘 운행하기 때문이고,
해탈하지 못한 자를 위해 해탈의 큰 갑옷을 입는 것은 번뇌에 속박된 모든 견해를 없애기 때문이고,
안락하지 못한 자를 위해 안락의 큰 갑옷을 입는 것은 공포에 사로잡힌 유정들을 다 거두어 주기 때문이고,
열반에 이르지 못한 자를 위해 열반에 이르게 하는 큰 갑옷을 입는 것은 전도된 자들로 하여금 바른 도를 얻게 하기 때문이고,
일체의 유정들을 해탈시키는 갑옷을 입는 것은 나라든가 유정이라든가 수명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게 하기 때문이고,
법을 받아 지니는 갑옷을 입는 것은 그 몸과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기 때문이고,
모든 불국토를 청정하게 하는 갑옷을 입는 것은 더욱 선근을 구족히 닦기 때문이고,
상호(相好)를 장엄하는 갑옷을 입는 것은 갖가지 복덕의 자량(資量)을 쌓기 때문이고,
모든 마군과 외도를 굴복시키는 갑옷을 입는 것은 신통의 힘을 얻기 때문이고,
일체의 유정으로 하여금 환희심을 내게 하는 갑옷을 입는 것은 4무애지(無礙智)를 얻기 때문이고,
모든 부처님의 바른 법을 구하는 갑옷을 입는 것은 다라니(陀羅尼)의 지혜를 얻기 때문이고,
일체 유정들의 마음을 관찰하는 갑옷을 입는 것은 신통의 지혜를 얻기 때문이고,
일체 유정들의 근기와 그 처음과 끝이 있는 지혜를 알기 위한 갑옷을 입는 것은 방편의 지혜를 얻기 때문이고,
10력(力)을 만족하는 갑옷을 입는 것은 지혜의 힘을 쌓기 때문이고,
두려움 없는 갑옷을 입는 것은 어떠한 처소에서라도 물러나지 않기 때문이고,
18불공법(不共法)을 만족하는 갑옷을 입는 것은 일체의 선한 법을 닦아서 선하지 않은 법을 끊기 때문이고,
일체의 법을 들어도 놀라거나 겁내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갑옷을 입는 것은 그 일체의 법이 허깨비와 꿈과 광명의 그림자와 산골의 메아리와 물 속의 달과 같은 것임을 알기 때문이고,
큰 자비의 갑옷을 입는 것은 모든 유정이 본래 다 열반을 성취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고,
뛰어난 방편의 갑옷을 입는 것은 공(空)하고 무상(無相)하고 무원(無願)하고 지음이 없는 법을 듣고서 생사에 머무는 방편을 나타내기 때문이고,
과거 부처님께서 가지(加持)하신 그 흔들리지 않는 갑옷을 입는 것은 결정된 계위를 벗어나 일체 법의 나지 않음과 일체 행의 사라지지 않음을 듣고서 과증(果證)을 취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이것이 바로 보살이 대승을 성취하는 갑옷이니,
보살이 이 스무 가지의 갑옷을 입어야만 대승에 올라 피안(彼岸)에 도달할 수 있느니라.
다시 말하면, 저 대승을 성취함에 있어서 4섭법(攝法)으로 법륜(法輪)을 삼는 것은 모든 유정들을 능히 잘 거두어들이기 때문이고,
청정한 10선업(善業)으로 법륜의 바큇살[輻]을 삼는 것은 모든 바른 행을 능히 잘 통달하기 때문이고,
청정한 마음과 선한 근기로 법륜의 굴대[軸]를 삼는 것은 깊고 깊은 행의 근본을 능히 잘 짓기 때문이고,
크나큰 인연으로 일어난 지혜로 법륜의 통[轂]을 삼는 것은 유정들의 선한 업을 능히 잘 싣기 때문이고,
큰 자비심으로 법륜의 바퀴테[輞]를 삼는 것은 법보(法寶)의 나머지를 거두어 장엄하기 때문이고,
견고한 힘으로 밧줄을 삼는 것은 가장 수승한 공덕을 잃지 않기 때문이고,
과거의 서원과 뛰어난 지혜로 법륜의 나아감을 삼는 것은 큰 자비심의 방편을 능히 잘 운행하기 때문이고,
사마타(奢摩他)로 법륜의 끌채[轅]를 삼는 것은 4성제(聖諦)를 두루 잘 알기 때문이니라.
또 한없는 보시로 자량(資糧)을 희사하기 때문이고,
뜻대로 다니는 신통으로 모든 불국토를 거닐기 때문이고,
바른 생각의 끈으로 보리심을 잡아매어 잃어버리지 않기 때문이니라.
[대승이란]
또한 대승이란 어떤 것인가?
일체의 유정들을 널리 포용하는 동시에 성문승(聲聞乘)ㆍ연각승(緣覺乘)을 끊고 온갖 외도를 제어하고 마군을 무찔러서 광명의 지혜를 밝히는 것은 일체의 보살들이 닦아야 할 구경(究竟)의 지위에 능히 이르게 하기 때문이고,
범천(梵天)ㆍ제석천(帝釋天)을 비롯한 모든 천인들로부터 찬탄과 존경을 받기 때문이고,
사자처럼 안온한 곳에 자리잡아 일체의 법을 설하기 때문이고,
그 미묘한 색상(色相)을 나타냄으로써 보는 이마다 싫증이 나지 않게 하기 때문이고,
금강의 쇠사슬처럼 뜻이 견고하여 파괴되지 않기 때문이고,
보리의 마음을 길잡이로 삼아 그 수행과 원력에 따라 공덕을 만족하게 하기 때문이고,
청정한 천안(天眼)으로 항상 관찰하기 때문이고,
청정한 광명으로 시방을 비추기 때문이고,
항상 청정한 각지화(覺支花)를 빗물처럼 내리게 하기 때문이고,
항상 걸림 없는 법음(法音)을 울리게 하기 때문이고,
바른 이치로 걸맞는 법을 잘 설하기 때문이고,
모든 종류의 유정들을 잘 교화하기 때문이고,
일체의 보살들을 권속으로 삼기 때문이고,
한량없는 공덕을 장엄하기 때문이고, 일체지(一切智)를 내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여, 이와 같이 보살이 저 스무 가지의 청정한 갑옷을 입어야만,
대승에 올라 세간을 벗어나는 보살의 도에 머무르고 많은 불사를 일으켜서 유정들을 편히 세울 수 있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대승의 큰 갑옷의 장엄에 대해 말씀하실 때에,
7만 2천의 천인과 사람들이 다 위없이 바르고 평등한 보리의 마음을 내었고,
3만 2천의 보살들은 세간을 벗어나는 그 청정한 도로 말미암아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