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4월 17일 일요일, 맑음.
*걷기- 일곱째 날
*로스 아르꼬스(Los Arcos)에서 로그로뇨(Logrono)까지.
*이동거리 : 28.5km.
*누적거리 : 166.5km.
아침은 주먹밥으로 먹었다. 아주머니들이 만들어 준 주먹밥이다. 달콤하고 맛있다. 아침 6시 45분에 숙소에서 나왔다. 아직 동이 트지 않아 날이 어둡다. 코 끝에 느껴지는 공기는 상큼하다.
새벽의 여명이 밝아오는 동쪽에 비행기 운항 구름이 직선으로 뻗어간다. 서쪽에는 아직 보름달이 버티고 있다. 금방 마을 골목길을 빠져나와 시골길을 간다. 동쪽에 동이 터온다. 강낭콩 밭의 콩 꽃이 하얗게 핀다.
언덕을 올라가는 부부가 앞서 간다. 태양이 떠오르는 동쪽을 뒤돌아보니 역광으로 나타나는 검은 형태의 순례자가 해를 등지고 언덕을 넘어온다. 묘지를 지난다.
묘지 입구에 새겨진 엄숙한 비문, ‘당신은 나의 옛 모습이고, 또한 나의 현재의 모습이 되리라’의 의미를 되 새겨 본다. 돌무덤 유적을 끼고 오른쪽 길로 접어든다. 조용한 길이다. 등에 비친 태양, 이제 온 세상이 칼라다. 멀리 마을이 보인다.
중심에는 성당 타워가 세워져 있다. 포장도로가 나온다.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밀밭 언덕 위의 마을이 참 멋지다. 화려한 조명이 마을을 비춰준다. 그림자도 길다. 나바라 주 산솔(Sansol) 마을 입구다.
원래 산 소일로 수도원(Monasterio de San Zoilo)의 영지였다. 마을과 수도원, 성당의 이름은 순교한 코르도바 출신의 성인 산 소일로(San Zoilo)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의 유해는 현재 까리온 데 로스 꼰데스 수도원에 보관되어 있다.
로스 아르꼬스와 산솔 사이의 까미노 오른쪽에는 성 그레고리오 오스띠엔세 성당(Basílica San Gregorio Ostiense)이 있다. 교황 요한 17세는 로마 사람인 그레고리오를 메뚜기 떼의 재앙을 겪고 있던 이 마을로 보냈다.
그레고리오는 마을 사람들에게 기도하며 참회하라고 전하고, 성물을 들고 행진을 한 후 메뚜기들을 한 곳으로 모았다. 그러자 기둥 모양으로 모인 메뚜기들은 하늘로 날아가 사라진 뒤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얼마 후 그레고리오는 병에 걸려 로그로뇨 근처에서 죽었다. 그의 시신을 싣고 가던 노새가 한 곳에서 멈췄으며 이곳에 성당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이 성당에 은으로 만든 함에 보관한 성인의 두 개골이 있으며 매년 5월에 성인의 두 개골 위에 물을 흐르게 한다. 이 물을 들에 뿌리면 메뚜기 떼의 재앙을 겪지 않는다고 한다. 알베르게, 교회, 약국, 카페가 그려진 마을지도가 우리를 안내한다.
산 소일로(Iglesia de San Zoilo) 성당이 보인다. Tienda-Colmado 카페에 들어가서 주스 한 잔(1.5유로)을 마셨다. 한적한 길, 버스 정류장이 예쁘다.
산 소일로 성당은 17세기 후기 바로크 시대의 석조 건물로 아름다운 로마네스크 양식의 십자가상과 합창단 석에 위치한 거대한 성 베드로 상이 있다. 이 조각상은 지금은 사라진, 성 베드로에게 봉헌된 수도원에 있던 것이다.
성당의 외부에는 사각형의 높은 기둥과 종이 있는 날씬한 탑이 돋보인다. 성당을 뒤로 하고 가파른 계곡으로 내려간다. 로그로뇨 20.7km, Ermita del Poyo 3.3km, Viana 11.2km라는 이정표가 나온다. 내리막 시골길은 햇살이 가득하다.
리나레스 강에 놓인 돌다리를 건너면 토레스 델 리오(Torres del Rio) 마을로 들어선다. 언덕 기슭에 위치한 또레스 델 리오에는, 그림 같은 풍경과 아름다운 전망이 숨어있다.
또레스 델 리오는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함락되었다가 10세기 초반 산초 가르세스 1세가 몬하르딘에 이어 탈환했다고 한다. 토레스 델 리오(Torres del Rio)에 있는 성묘 성당(Iglesia del Santo Sepulcro)은 12세기에 템플 기사단이 예루살렘의 성묘 성당과 유사하게 만든 팔각형 평면의 성당이다.
스페인 로마네스크 양식의 걸작으로 나바라의 후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특징이 잘 나타나며, 팔각형 평면에 건물 동쪽에는 단순한 반원형 소 성당, 서쪽에는 원통형 탑이 있다.
8각형 평면은 템플 기사단의 특징이며, 성묘 성당의 쿠폴라 정탑은 ‘죽은 이들의 정탑’이라고 불렸다. 그 이유는 이 탑이 길을 잃은 순례자들을 이끄는 역할을 했고 순례자가 죽으면 불을 켜서 알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카미노 길을 따라 있는 성당에는 여러 가지의 문화가 조화롭게 섞여 있다. 이곳은 순례자들이 휴식을 취하며 머물면서 이곳에서 나오는 포도주의 풍성함을 맛볼 수 있는 매력적인 곳이다. 그림자를 잃어버린 순례자 이야기가 전해진다.
어느 날 지치고 굶주린 상태에서 또레스 델 리오의 언덕을 넘던 순례자에게 화려하게 꾸민 어떤 사람이 다가왔다. 그는 악의에 찬 눈빛으로 순례자를 바라보며 죽을 때 영혼과 몸을 자신에게 넘기면 자기처럼 부유하게 해주겠다고 제의했다.
순례자는 그 남자가 악마라는 것을 알아채고는 “몸은 영혼에, 영혼은 하느님께 속해 있다. 그러므로 내 것이 아닌 것을 넘겨줄 수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악마가 순례자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순례자가 펄쩍 뛰어 공격하는 악마에게 그림자를 드리우자 악마는 그림자와 싸우다가 순례자의 그림자를 훔쳐 사라져버렸다. 순례자는 그림자를 잃었으나 영혼은 구한 것이다. 좁은 길에는 파사드에 문장이 장식된 바로크 양식의 집이 가득하다.
십자가 깃발을 걸어 놓은 집도 있다. 마을 골목길을 걷는다. 구부러진 경작지 길로 접어든다. 좁은 언덕을 오른다. 멀리 돌산이 보이고 풍력 발전기들이 서있다. 카미노 표시도 찾아본다. 오른쪽 도로와 함께 좁고 긴 길을 같이 간다.
길가에 세워진 나뭇가지에는 여러 가지 표시가 걸려있다. 리본을 비롯해 소원을 적은 글, 조개, 별 모양도 걸려있다. 옆에는 돌무더기도 있다. 들판가운데 낮은 건물 성당이 보인다. 도로와 카미노 길이 엉켜있다. 길이 멀다. 도로와 같이 간다.
에르미타 데 포요 지역이다. 에르미타(Ermita)는 수도자의 은신처, 암자를 뜻한다. Logrono 16.7km, Viana 7.4km, La Rioja 12.7km 라는 이정표가 잡목 숲과 이어진다. 짐을 가득 멘 순례자들이 보인다. 손수레를 지고 가는 순례자도 있다.
오른발에 붕대를 감고 간다. 힘들어 보인다. 소나무 잡목 숲길을 간다. 언덕을 돌아올라 부지런히 걸어간다. 메마른 포도밭이 더욱 힘들게 한다. 숲길에 차가 한 대 서 있고 탁자가 펼쳐져 있고 음료수와 커피를 팔고 있다. 간이 휴게소다.
파란 하늘, 햇살 가득, 초록 밀밭이 이어진다. 포도밭 언덕 사이로 길이 이어진다. 수줍게 핀 하얀 봄꽃이 반갑다. 키 큰 소나무들이 모여 있는 쉼터를 만났다. 벤치도 있다. 잠시 쉬어간다. 잔디에 주저앉은 이도 있다. 다시 가던 길을 간다.
폐허로 무너져 있는 석조 건축물이 보인다. 노란 꽃밭 길을 걷는다. 하얀 꽃나무는 아마도 아몬드 나무인 것 같다. Logrono 13.3km 이정표가 반갑다. 아마도 여기가 에르미타 데 누에스트라 세뇨라 델 포요(Poyo)지역인 것 같다.
도로의 가장 높은 지점에 위태롭게 자리 잡고 있다. 포요(Poyo)란 높게 솟은 강단이나 지휘대를 의미한다. 여기서는 비아나와 로그로뇨가 있는 평원의 멋진 경치가 한 눈에 들어온다. 비아나 3km, 로그로뇨 11.5km 이정표를 만났다.
넓은 아스팔트길이 나타난다. 자전거도 달린다. 시원하게 트인 시야가 좋다. 멀리 마을도 보인다. 이내 시골길로 접어든다. 카미노 표시도 있다. 험한 골짜기 쪽으로 가파르게 내리막길이다. 걷다보니 이제 포장도로가 나온다. 왼쪽으로 걸어간다.
마을이 보인다. 성당이 중심에 우뚝 서 있다. 절개지 산 아래 포도밭이 펼쳐져 있다. 오토바이들이 달려온다. 제법 큰 마을이다. 비포장 농로길을 걸어 마을로 간다. 포도밭과 밀밭 사이길이다. 언덕 아래 마을 입구 길에는 순례자들이 보인다.
마을에 들어섰다. 비아나(Viana) 마을이다. 비아나에는, 오래된 성벽이 보존되어 있으며 도시의 평면도는 사각형 모양이다. 카스티야와 가깝다는 점 때문에 산초 7세가 기존의 성벽을 합쳐서 비아나의 성벽을 만들었다.
로그로뇨 법령에도 등장한 비아나는 카미노 순례자들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며 발전했다. 마을의 유서 깊은 중심부를 카미노가 통과한다. 순례자들이 이 오래된 거리를 계속 지나가면서 조금씩 변화를 겪었지만, 마을에는 많은 건축 유산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스페인 국기가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우선 스페인의 국기는 빨->노->빨 순서로 되어 있는데, 빨간색은 국토를 지킨 피 라고 하고 노란색은 국토라고 한다. 그리고 문장 안에 있는 무늬들은 각자 의미를 갖고 있다.
첫번째(왼쪽 위)에는 카스티야 왕국을, 두번째(오른쪽 위)에는 레온왕국을 세번째(왼쪽 아래 )에는 아라곤 왕국을 네번째(오른쪽 아래)에는 나라바 왕국을 나타낸다고 한다.
석류꽃은 그라나다를, 세 개의 나리꽃은 현재의 왕실인 부르봉 가문을 뜻하며, 방패 문양 위의 왕관은 왕실의 관으로 왼쪽 기둥 위에도 있으며, 오른쪽 기둥 위의 왕관은 황제의 관을 나타낸다.
양쪽에 있는 기둥은 소위 헤라클레스의 기둥으로 지브롤터와 세우타를 뜻하며, 여기에 감겨 있는 두루마리에는 ‘보다 먼 세계로’라는 뜻의 '플루스 울트라’라는 표어가 쓰여 있다. 골목길을 걷다보니 약국에 오전 11시 30분, 영상 16℃를 보여주고 있다.
골목길이 정답다. 테라스에 빨래들이 펄럭인다. 작은 광장이 나온다. 관공서가 있다. 농구대를 중심으로 꼬마와 아빠가 놀고 있다. 좀 더 걸어가니 성당이 나온다. 산타 마리아 성당 (Iglesia de Santa Maria)이다. 아름다운 벽감 현관이 있는 13세기 교회다.
앞쪽에는 이 근처에서 살해당한 악명 높은 케사르 보르자의 무덤이 있다. 처음엔 교회 안에 묻혀 있었지만 무덤이 누군가에 의해 훼손된 뒤 바깥에 재매장 되었다.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성당 내부에는 황금빛 제단이 있고 성 야고보의 오래된 조각상이 있다. 견고해 보인다. 성당의 정식 입구는 중앙광장인 푸에로스 광장쪽에 있다. 성당 앞에는 카페가 있는데 제법 사람이 많다.
성당 입구 바닥에서 보르자의 무덤을 찾았다. 군주론의 주인공, 보르자의 무덤이다. 비아나의 산타 마리아 성당의 반석 아래에는 르네상스 시대의 유명한 인물이 묻혀 있다.
바로 교황 알렉산더 6세(로드리고 보르자)의 사생아인 케사르 보르자(Cesar Borgia)다. 그는 16세에 팜플로나의 주교, 19세에는 추기경, 22세에 교황군의 장군이었고 24세엔 나바라 왕의 처남이 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군사 전략가로 활동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형성을 도와준 마키아벨리를 후원했다. 그는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쓸 때 영감을 준 사람으로 군주론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보르자의 강렬한 인상은 레오나르도 같은 그 시대의 예술가들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의 가장 널리 알려진 이미지 모델로 사용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바라의 총수’ 라고 불렸던 보르자는 1507년 레린백작과의 전투에서 사망하여 비아나에 묻혔다.
그의 무덤에는 비아나와 발렌시아 (보르자는 스페인 발렌시아의 보르하 가문 출신)의 흙이 함께 뿌려졌고, 아직까지도 그의 무덤 위에는 남녀 어린이가 두 지역의 꽃을 걸어놓는 전통이 전해져 오고 있다. 성당 정면으로 간다. 중앙광장이다.
광장에는 분수와 카페, 바들이 있다. 시청의 외관은 아름답게 조각이 되어있고 주랑이 있다. 내부엔 관광안내소가 있다. Al Auroro라는 동상이 보인다. 카페에 씌어 진 글씨 문양이 예쁘다. 견고하게 버티고 있는 유적 건물이 보인다.
출입구도 있다. 점심식사를 한다. 삼성급 호텔인 Palaco Pujadas 호텔 식당으로 들어갔다. 오래된 호텔 같다. 계란 후라이가 들어간 빵과 커피를 주문했다. 3.1유로다. 배도 채우고 잠시 쉬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골목길을 돌아간다.
로마 시대의 건축물 같은 성채가 나온다. 산 페드로 수도원이란다. 둥근 원이 무너진 벽에 남아있다. 산초 7세를 기리는 기념비가 사각형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마을은 조용하고, 햇살은 가득하다. 순례자들만 보인다.
걷는 이, 쉬는 이, 커피 마시는 분위기가 좋다. 고양이 한 마리가 조용히 마을을 지키고 있다. 비아나에서 로그로뇨까지 11.7km라고 기록된 지도가 보인다. 아직 갈 길이 멀었다고 생각된다. 골목 구석에는 버려진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왜 버려졌는지 살펴보니 밑창이 떨어졌다. 순례자의 채취가 느껴지는 신발이다. 언덕을 내려간다. 등 뒤로 마을을 두고 간다. 갈대가 자라는 밭을 지나간다. 뒤 돌아보면 언덕위에 구멍 뚫린 산 페드로 수도원이 보인다.
새로 지어진 건물들과 조화를 이루며 세월을 지탱하고 있는 것 같다. 하얀 꽃이 핀 나무는 사과나무가 아니고 아몬드 나무 같다. 반 고흐의 그림 <꽃 피는 아몬드 나무>가 생각난다. 붉은 벽돌담을 지난다. 보라색 꽃잎이 5장이다. 벽에 낙서가 보인다.
Buen Camino라는 글이 눈에 들어온다. 뜨거워지는 카미노 길이다. 포도밭을 지난다. 미루나무가 서 있는 오솔길을 간다. 정원을 갖고 있는 낮은 현대식 건물의 성당이 보인다. 성당 벽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동화속 이야기 같은 환상적인 모습이다.
동물들이 나온다. 창세기의 아담과 이브의 모습도 보인다. 순례자들의 모습도 그려 놓았다. 성당(Ermita de la Virgen de Cuevas) 하나가 보인다. 로그로뇨 6.8km, La Rioja 2.8km라는 이정표도 있다. 계속 길을 간다.
앞서 가는 순례자들의 모습이 건강해 보인다. 젊은 순례자들이다. 흰색 꽃이 피어있는데 중간에 붉은 양귀비꽃들이 자라고 있고 노란 꽃들이 이어져 자란다. 화려한 꽃밭이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시골길이다. 순례들을 위한 길이다.
밀밭 길도 나오고 포도밭 길도 이어진다. 로그로뇨 5km 남았다. 도로 건너편에 풍력발전기들이 멀리 보인다. 소나무 숲길을 간다. 잠시 그늘에 누워서 쉰다. 배낭을 베고 누웠다. 긴 통나무에 걸터앉았다. 통증이 있는 다리가 잠잠하다.
나무로 만들어진 육교를 넘어간다. 마을로 향해 도로가 직선으로 뻗어있다. 마을 끝에는 성당이 올려다 보인다. 소나무 잡목 숲을 다시 걷는다. 화강암에 표시된 카미노 표시가 새롭다. 하얀 플라타너스 가로수 길이 양쪽에 길게 이어진다.
자전거 순례자들이 보인다. 언덕을 올라간다. 도로 아래 만들어진 터널을 지나간다. 다시 올라가는 길은 포장도로다. 모두 침묵하며 발걸음만 옮긴다. 세상이 조용하다. 가끔 새들의 소리만 들려온다. 언덕에 올라서니 드디어 마을이 내려다보인다.
마을이 제법 크다. 포도밭을 끼고 다시 내려간다. 이미 그림자는 거의 발밑에만 있다. 화강암 카미노 표시가 예쁘다. 유채 밭 사이로 내려간다. 마을 입구에 예쁜 집이 있다. 집 앞에서 작은 장신구와 기념품을 팔고 있다.
뺏지와 손목걸이, 목걸이, 모자, 카드 등이다. 구경을 하면서 하나씩 산다. 용설란이 커다랗게 양귀비와 자라고 있다. 더위가 느껴진다. 키프로스 나무가 가로수다. 공원(San Antonio Park)이 나타난다. 공원묘지도 보인다.
기둥을 여러 개 기념물로 세워놓았다. 드디어 로그로뇨로 들어가는 삐에드라 다리를 건너간다. 그 아래는 제법 넓게 흐르는 에브로 강이 있다. 강물은 고요히 흐른다. 다리 위로 걸어가니 여러 개의 다리가 보인다. 강변은 숲으로 이어진다.
낚시꾼도 보인다. 숲 뒤로 교회 종탑들이 보인다. 숙소를 찾아간다. Logrono의 카미노 표시는 멋지다. 우리 숙소는 알베르게 알바스(Albergue Albas)다. 도심 동쪽에 있다. 산 프란시스코 거리를 걸어간다. 힘들게 알베르게를 찾았다. 철재 침대다.
담요도 있고 깨끗하다. 40여명이 한 공간에 머물게 되었다. 침대 번호는 아래층 20번이다. 대충 짐을 풀어놓고 동네 한바퀴를 하러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