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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문학 아카데미 금요포럼 : 시인론 발표(2019년 2월 1일)
망향과 귀향의식의 노래
-함동선론
조 명 제
1. 자연, 그리고 망향과 귀향의식의 여정
서정주의 추천을 받아 1958, 9년도에 등단한 함동선은 등단 6년 만에 첫 시집을 낸다. 함동선의 첫 시집 『雨後開花우후개화』(한림각, 1965)는 자연에 대한 인식을 토대로 자연 그대로의 자연을 추구한 작품과, 여행을 하면서 얻은 경험적 인상을 형상한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함동선 시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이 ‘자연의 문제는 분단현실과 실향민 의식의 근원을 자극하며 장차 망향과 귀향의식의 정서로 확산된다.
맞다/ 니 말이 맞다/ 여러 개의 층층계를 올라 새날로 가는/ 여러 개의 돌문을 여닫는 소리 층 층이 올라와/ 저대도록 물이 밭은 세월을 지고/ 저대도록 물이 밭은 세월을 지고/ 밝아 오는 가 장자리만큼/ 보내고 보내도 따라오는 어디가 타는지/ 한켠 하늘이 더 넓게 물들어/ 살 닿듯 물 들어/ 저승 다 알고 왔다/ 이러한 때 걱정 다 알고 왔다
-「꽃」 전문
「꽃」은 꽃의 개화현상과 사물의 존재론적 인식을 노래한 시다. 우선 이 시는 대상 ‘꽃’과 화자의 인식적 상호관계로부터 출발한다. 화자는 대뜸 “맞다/ 니 말이 맞다”라는 표현으로 작품의 허두를 나타내고 있다. 꽃은 말한 적이 없고, 말한 적이 없으나 화자는 ‘니 말’이라고 하면서 말한 것이나 다름없는 현실로 받아들인다. 화자는 그 말 없음의 언어를 알아듣고 응답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이 시는 꽃의 ‘무언의 언어’에 대한 전적인 동감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다. ‘니 말이 맞다’는 것은 꽃의 무언의 발화에 대한 작자 또는 화자의 긍정적 응답이다. 이 시의 내용은 말하자면 그 응답 으로 채워져 있는데, 그 응답은 무언의 언어를 직관적으로 파악하고, 그렇게 파악한 내용을 응답 의 형식으로 구성한 것이다. 흔히 ‘자연과의 교감’이라는 말을 하는데, 비단 이 작품뿐만 아니라 자연을 제재로 한 그의 모든 시가 자연과의 교감, 그 유대의 추구가 내면적으로 얼마나 치열한 것인거를 말해 준다.
문덕수 시인의 분석처럼 ‘자연과의 교감’과 그 유대의 치열한 추구가 자연을 제재로 한 함동선 시의 특질일 것이다. ‘무언의 언어’에 대한 인지(認知)는 자연의 소리에 대한 깨달음, 직관적 교감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진실의 가치는 인위(人爲)가 아니라 자연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함동선의 ‘꽃’이 보여주는 개화 과정은, “꽃이여, 네가 입김으로/ 대낮에 불을 밝히면/ 환히 금빛으로 열리는 가장자리,”로 시작하는 김춘수의 「꽃의 소묘」와 더불어 탁월한 표현의 사례로 꼽힌다. “여러 개의 층층계를 올라 새날로 가는/ 여러 개의 돌문을 여닫는 소리의 층층이 올라와” 피어나는 꽃의 이미저리는 시인의 내면적 인식과 고뇌의 극치를 보여준다.
물은 생명의 원천이지만 그것이 결핍되었을 때의 고통과 고난은 형언하기 어렵다. 꽃 피어남은 거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난한 과정과 불안 속에서 한 송이의 꽃은 피어날 수 있는 것이다. 곧 “저대도록 물이 밭은 세월을 지고”, 다시 말하면 물 가뭄의 곡절 많은 세월을 견디고 넘기고서야 마침내 한 단계 한 단게의 상승으로 “밝아오는 가장자리”의 개화를 실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개화, 곧 세계의 열림은 늘 한계에 부딪히고, “한켠 하늘이 더 넓게 물들어” 미지의 세계와 맞닥뜨린다. 그리하여 “저승 알고 왔다/ 이러한 때 걱정 다 알고 왔다”는 개화의 마지막 단계에까지 이른다. 문덕수 시인은 “개화의 오묘한 신비성을 풀 수 없는 상징적 의문으로 남겨 두고 있다”면서, “이승은 물론이요, 저승까지 다 알고 온 그 내용은 신비로운 세계, 불가지의 세계가 아닌가 생각된다”라고 해석한다.
함동선은 자연의 시적 추구를 통해 자연과 인간의 하나되는 관계를 통찰하고, 자연의 질서와 인간사회의 현실적 리얼리티를 통합하려는 의지를 암시한 것으로 보인다.
황해 물 퍼낸 숲으로 무성만 하라고/ 불암산 배밭에 섬으로 열린/ 유둣날 뻐꾸기 울음은/
보리이삭 가슬대며 가슬거리는/ 여름 빛깔로/ 칡꽃의 소리돼/ 골짜기 덮네
-「유둣날 뻐꾸기 울음」 전문
유둣날은 음 6월 15일 ‘유월유두(六月流頭)’를 이르는 말로, 우리의 옛 조상들의 피서와 보양의 풍속을 뜻하는 것이다. 단오가 지나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는 6월[*양력 7월]은 삼복(三伏)이 들어 있어 발병하기 쉬운 때이다. 더위에 지치기 쉬운 철에 건강을 위하여 동(東)으로 흐르는 냇물에 머리를 감고[東流水頭沐浴], 폭포수 아래에서 물맞이를 하여 청결을 꾀함과 아울러, 보양탕 같은 자양분이 많은 음식으로 몸을 보(補)하였다. 한편 유두 무렵은 과일이 나고 곡식이 여물어 가는 시기이기도 해서 조상과 농신(農神)에게 유두맞이 고사를 지내거나 굿을 하였으며, 절에 가서 치성을 드리기도 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한데 모여 액막이 술을 마시는 유두연(流頭宴)을 열기도 했다.
그러니까 유둣날은 칡꽃이 피고 뻐꾸기가 울어대는 한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철이고, 하곡인 밀과 보리가 익어 수확하게 되는 시절인 것이다. 시인은 서울 도봉구 쌍문동에 거주하면서, 불암산 인근의 배밭에서 뻐꾸기 울음을 듣는다. 그 뻐꾸기 ‘울음[소리]’은 보리이삭 가슬거리는 ‘여름 빛깔’로, 그 빛깔은 다시 ‘칡꽃의 소리’로 굴절한다. 이 모든 유둣날 무렵의 풍경은 “황해 물 퍼낸 숲으로 무성만 하라”는 듯 골짜기를 덮은 뻐꾸기 울음소리로 집중되어 있다. 그런데 왜 하필 ‘황해물 퍼낸 숲’인가, 함동선 시인에게 있어서 ‘황해물 퍼낸 숲’의 ‘황해’는 예사로운 이름이 아니다.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황해도 연백(延白) 태생인 시인의 고향 바다이며 향수(鄕愁)의 바다가 황해인 것이다. 고향 상실의 절절한 실향민 의식이 그 ‘황해[황해물]’에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시인의 고향 황해도 연백군은 8․ 15 광복 당시 그어진, 이른바 38선 이남에 속했으나, 한국전쟁 휴전 이후 북한에 편입된, 곡절 많은 땅이었다. 6․25전쟁 때 월남한 시인은 일생을 망향의식으로 살며 시를 써 왔다. “내 이마에는/ 고향을 떠나던 달구지 길이 나 있어/ 어머님 생각이 날 때마다”(「내 이마에는」) 고향을 그리고, 마음은 기차를 타고, 갈 수 없는 고향 땅을 향해 달린다. 우리의 아픈 역사가 가로막고 있는 북녘 ‘황해도 연백군 해월면 해월리 664번지’는 꿈에도 잊지 못하는 시인의 고향 집 자리다. “어릴 때 문지방에서 키 재던 눈금이/ 지금쯤은 빨랫줄처럼 늘어져/ 바지랑대로 받친 걸 볼 수” 있을 것 같은(「여행기」) 고향집은 세월 속에 묻혀져 꿈길에서만 만날 수 있다. 그 꿈길 속에서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 한 줄기/ 차창에 부우연 내 얼굴이 겹쳐 오는데/ 그 어머니의 얼굴에서 빗방울이 흘러내리는데”(「여행기」) 눈물 너머로 그리운 고향 그리운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지워지지 않는다.
시인의 고향 황해도 연백군은 예성강 유역의 연백평야를 끼고 있는데, 이곳의 쌀은 기름져 밥맛 좋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고 한다. 북녘에 고향을 두고 떠나와야 했던 시인은 초기 시집 『우후개화』, 『꽃이 있던 자리』부터 자연과 향수의 망향의식을 주제로 시의 세계를 전개해 가기 시작하였다. 향수의 망향의식은 분단시의 확대와 분단의식의 극복 같은 주제로 변주되기도 하지만, 시인의 시적 담론은 결국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귀향의식’으로 요약된다고 할 수 있다.
분단조국의 현실을 살고 있는 시인은 휴전선 철조망 너머 북녘 땅에 두고 온 고향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어머니, 고향 집, 고향 마을에 대한 시인의 그리움은 오히려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깊어져 “불을 끈 방에/ 달이 뜨면/ 고향의 초가도 보이는/ 달구지 길도 보이는/ 귀뚜라미 소리가 들린다”(「그리움」). 흰 머리칼의 주름진 세월에 그리움은 “화살짓듯 한 밤기차를 타고/ 이 외딴 집을 또 그냥 지나”갈 때, 달이 뜬 한가위 보름달은 그리운 어머니의 얼굴로 떠오른다.
보름마다/ 어머니의 가벼운 몸무게로/ 강물에 떠오른 달을 두 손으로 뜬다/흰 머리카락 사이로/
고향 떠날 때 어머니 나이가 된/ 내 새치를 확인한다/ 오늘은 어머니보다 먼저/ 달맞이꽃이 핀 간선 둑이/ 어릴 적 그대로 걸어온다/ 다 바랜 부적 주머니를 사타구니에서 꺼내자/ 너 그걸 아 직 가졌구나/ 하시는 말씀에 눈물을 닦으려 하자/ 달은 동구 밖 질경이 꽃으로 조르르 굴러가/ 이슬이 된다
-「어머니의 달」 전문
달마다 보름 때가 되면 환히 떠오르는 밤하늘의 만월, 그 보름달은 우리가 흔히 ‘두둥실’이라는 말로 그 떠오름을 묘사하였듯 가볍게, 그렇게 가벼운 어머니의 몸무게로 떠오른다. 어머니의 얼굴, 보름달은 그대로 강물로 투영되어 떠오르고, 화자는 보름달이 뜨고 강물에 비치는 날이면 두 손으로 물속의 달을 뜬다. 물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려도 어머니의 얼굴은 옛날 그 시절 그대로이다. “고향 떠날 때 어머니 나이가 된” 화자는 새치를 확인하며 분단 세월의 무상함을 절감한다.
달맞이꽃 핀 둑방을 보며 옛 시절을 기억하고, 부적 주머니를 달아 주시던 어머니가 살아 곁에 와 계신 듯 생생하여 그리움의 눈물을 훔쳐낸다.
분단 70년의 세월 속에서 북녘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어느 한두 가지 사연 때문만은 아닐 것이지일 것이다. 시「형님은 언제나 서른네 살」은, 어머니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과 함께 시인의 심저에 깔려 있는 또 하나의 절절한 그리움의 대상으로 ‘형님’을 떠올리며 형상한 작품이다. “쌀가마니 탄약상자 부상병이 탄 달구지”에 놀란 까치들이 날아갈 때, “후퇴하는 인민군 총부리에 떠밀려/ 서낭당에 절하고 또 절하던 형님은/ 그 후에 다신 돌아오지 못했다”는 비극적 사연이 숙연케 한다. 절에 가서 천도재를 지내고 돌아오는 식구들의 풀섶 길에는 풀벌레 소리만 처량하다.
노목(老木)의 나무껍질이 일러 주는 세월은 화자의 얼굴에도 버짐의 시간을 새겨 넣고 있지만, 저수지에 돌을 던져 물수제비 뜨던 추억의 여름은 끝내 형님을 거기에 그대로 묶어 놓고 있다. 잊혀지지 않고 잊을 수도 없는 형님에 대한 그리움의 사무침이 추억의 순간들을 이렇게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6.25전쟁 발발 65년, 시인의 고향 강 예성은 사람들의 애환을 퇴적시키며 변함없이 황해로 흘러들고 있을 것이다.
2. 순수서정과 적요(寂寥)의 체계
향수와 귀향의식을 바탕으로 한 함동선 시의 세계에는 주지적 순수서정과 역사적 현장 및 산사(山寺) 기행의 정조(情調)를 형상한 작품이 많은 편이다. 순수서정과 기행[산행] 혹은 역사적 유적에 대한 서정적 표현은 대체로 결합적 형태로 나타나는 게 예사이다.
첫눈 오는 날/ 아끼고 아낀 봉숭아 물든 손톱이/ 이렇게 먼 산에까지 비치니/나는 아내의 가구인 가/ 강굽이를 돌아 솔바람을 일으킨 기차는/ 오백 리를 달려왔는데/ 이불장 여닫는 소리 희미하 게 들려온다
-「첫눈 오는 날」 전반부
어느 첫눈 내리는 날, 그 옛날 봉숭아 물든 손톱이 산야에 비치듯 떠오른다. 내리는 눈발로 흐려진 백색 산야에 발그레한 봉숭아꽃 물빛이 은은한 대조를 이루며, 추억의 시간을 불러낸다. 강굽이를 돌고 솔바람을 일으키며 오백 리를 달려온 기차처럼, 아내와 함께 지나온 먼 길, 그것은 이불장 여닫는 소리로 기억된다. 어둠 속에서도 눈은 내리고, 아직도 가야 할 길(그리움)은 먼데, 밤의 어둠은 나무의 키를 넘고, 골짜기에 쌓여만 간다. “아직도 몇 날을 더 가야 하는” 길은 가슴 속에 응어리진 그리움이 남아 있음을 의미한다. 첫눈 오는 날의 적막이 깊어지는 만큼, 그리움 또한 증폭되어 간다.
가을 햇살이 한 뼘쯤 기어든 창가에/ 낡은 소파가 마주 놓여 있다/ 벽에 걸린 세한도의 솔잎에 부는 바람이/ 낮잠을 깨웠는지 신발 끄는 소리가 들려온다/ 칠이 벗겨진 탁자 위에 먹다 남은 녹 차 잔에는/ 낮 두 점을 치는 뻐꾸기 소리가 넘친다/ 펼쳐 놓은 시집에 ‘단풍이 든 판소리 가락이 / 낮게 떨려 나오는 동구 밖’ 그 동구 밖 지나서까지/ 담을 따라 핀 코스모스의 키가/ 자꾸 작아 진다
-「오후」 전문
시각과 청각 이미지의 조합과 혼융으로 햇살 좋은 가을날의 정경이 손에 잡힐 듯 감각적이고, 아름답다. 화가의 구도처럼 입체적 감각으로 잘 짜여진 세트의 한낮 풍경이 낮잠 직후의 쓸쓸함을 자아낸다. 가을 햇살, 창가, 낡은 소파, 벽에 걸린 세한도, 칠이 벗겨진 탁자 위의 찻잔, 뻐꾸기시계, 펼쳐 놓은 시집의 시구(詩句)가 가리키는 동구 밖 지나서까지 담을 따라 핀 코스모스, 이 모든 이미지들이 한가로운 가을날의 적요한 한낮 풍경을 여실히 그려 준다.
정적을 깨우는 솔바람 소리나 뻐꾸기시계 소리도 한낮의 쓸쓸한 내면 풍경을 흩트리지는 못한다. 더욱이 “신발 끄는 소리”마저도 적요한 시간의 풍경 속으로 스며들고 만다. ‘신발 끄는 소리’ 곧 ‘예리성(曳履聲)’은 옛 시가에도 중요한 시적 감각의 언어로 씌었다. 그것은 주로 기다림에 지친 화자의 예민해진 감각과 그리움의 증폭을 환기하는 경우에 씌었다. 시 「오후」에서는 오히려 ‘신발 끄는 소리’가 적요의 상황을 고조시키는 구실을 한다. 그림의 화룡점정(畵龍點睛) 같은 것이기도 하다.
는개로/ 골짜기 물소리 속옷 벗더니/ 눈 속의 복수초 꽃망울 터트린다/작년 층층나무 꽃 빈 방 숲/ 그 빈 방에서/ 뱀이 눈을 뜨고/ 산기슭의 생강나무꽃 들판의 산수유꽃/ 마을 지킨 개나리 앞 세우고/ 오는 봄/ 노란 색깔을 입는다
-「봄은 동사다」 전문
는개, 골짜기의 물소리, 눈 속에서 꽃망울 틔우는 복수초, 겨울잠에서 깨어나 눈 뜨는 뱀, 생강나무 산수유 개나리 노란 꽃들 ― 이런 새 봄의 특징적 전령들이 유기적 질서의 구조 속에서 역동하는 봄의 기운을 형상하고 있다. “는개로/ 골짜기 물소리 속옷 벗더니”라는 감각적 표현의 미학은 텍스트가 드러내는 봄의 역동성을 지배한다.
시인은 「봄은 동사다」에서, 피어나는 새 봄의 색채 이미지를 노랑으로 집약하였다. 복수초, 생강나무꽃, 산수유꽃 모두가 노란 색들이다. 그러니까 이른 봄을 알리는, 가장 앞선 꽃들이 노란색인 것이다. 이 꽃들의 뒤를 이어서야 분홍이나 다홍의 꽃들이 피어난다. 시인은 이런 초봄의 이미지를 유념하여 설계하고 형상한 것이다. 앞의「오후」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작품에서도 “작년 층층나무 꽃 빈방 많았던 숲/ 그 빈방에서/ 뱀은 눈을 뜨고”라는 텍스트의 허리 부분이 봄의 기운, 곧 시(詩)의 기운을 살려낸다. 봄은 뱀이 눈 뜨는 계절이다. 땅 속에서 동면하고 지상(地上)으로 뜬눈을 내미는 뱀, 어두운 계절도 겨울잠에서 깨어나 봄으로 소생하고, 노란 꽃들을 앞세워 봄을 피워낸다.
새가 옮긴 씨앗/ 잎 두 장 달고 나온다/ 광합성 첫 수업 있는 날/ 숲의 원로들/ 햇볕 향해 달음 박질치는 법 가르친다// 나무들/ 어려서 싸우지 않고 잘 지낸다/ 나이 티 나게 수다 떨다 어깨 부딪치면/ 누군 떠나야 하는 걸 아는 것처럼/ 자기 솎음 한다
-「밤섬의 숲 · 3」 전반부
제8시집 『밤섬의 숲』의 제1부는 서울의 허파인 ‘밤섬’을 주재(主材)로 한 생태 환경시로 편집되어 있다. 자연 사랑과 산행을 운명처럼 받아들인 시인으로서 자연스러운 관심이며, 그것은 시적 연장(延長)과 확산이라고 하겠다.
3. 길 위에서의 삶과 여행의 시화(詩化)
함동선의 시는 귀향의식과 함께 그와 뗄 수 없는 관계의 것이 길 위에서 쓴 시다. 시인은 어디에 안주함이 없이 길 위에 있고, 길 위에서 삶이 시로 결실됨을 보여준다. 이 같은 떠돎의 운명적 특성은 실향의 땅을 밟듯 일찍이 시비(詩碑)를 찾아 전국의 구석구석을 누비며 탁본(拓本)을 했던 이력(履歷)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비 오는 날의 기차여행은/ 안개가/ 너 지우고 그 자리에 너 그리며/ 휙 가는 것은/ 가을 겨울 봄 여름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 기러기 날아가는 산기슭의 단풍/ 줄기가 잎에게/ ‘이젠 헤어져야지’ 하는 귀뜸에/ 몸 태우는 불집이다/ 추풍령 넘어 호흡 잠시 고르고/ 사진 한 장에 들어갈 간이역/ 너 떠난 자리에 나는 왜 돌아오는가
-「간이역 ·3」전문
‘떠남과 돌아옴’은 이미 시인의 불가피한 운명이다. 회자정리(會者定離)요 이자정회(離者定會)라고나 할까. 그는 기러기 날아가는 가을, 산기슭의 단풍나무 줄기나 잎새에게 ‘이젠 헤어져야지’하는 귀띔에 (단풍나무 가지는) 온몸을 불태우듯 붉게 타오르는 불집 같은 풍경을 이룬다. 가지와 잎사귀의 이별, 그것은 떠남과 돌아옴의 순환과 일치한다. 비둘기호, 통일호가 사라진 이후 간이역은 이제 추억과 역사 속의 공간으로 존재할 뿐, 어쩌다가 더러 레일바이크 운영의 관광물로 전용(轉用), 유지되고 있는 실정이다. “추풍령 넘어 호흡 잠시 고르고/ 사진 한 장에 들어갈 간이역/ 너 떠난 자리에 나는 왜 돌아오는가”라고 시인은 쓴다. 기다림과 그리움의 간이역은 우리들 추억의 갈피 속에 고이 자리잡혀 있을 것이다.
물어 물어서/ 백 리 길을 구십 리 왔건만/ 나머지 십 리 길이 천 리 같은 걸/ 길 떠나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거다/ 철원 땅 월정리역에 와서/ 기차표를 끊지 않는 것은/ 니가 내 안에 있지 않아 서가 아니라/ 오늘도 니가 나의 하루를 차지하고 있어/ 기차표를 끊을 수 없다/ 6월 25일이 무 슨 날인지 모르는/ 들꽃만이 핀 월정리역에서
-「월정리역」 전문
시인에게 간이역(기차역)은 또 다른 상상의 세계로 인도한다. 철원의 월정리역은 민족상잔의 격전의 상징처럼 남아 있다. 녹슨 기차와 철모가 6.25 전쟁의 상흔을 말해 주는 월정리역 일대는 시인의 고향 황해도 연백과 먼 편이지만 위도상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는 곳이다. 달려야 할 기차가 멈추어 있는 월정리역에서 체감하는 민족과 국토의 분단은 시인으로 하여금 가장 가슴 아픈 현실로 인식되고, 형언하기 어려운 쓸쓸함과 그리움을 가중시킨다. 낯설고 불편한 곳이 되어버린 월정리역을 물어 물어서 90여 리를 왔지만, 백 리 길의 나머지 십 리 길은 이념으로 가로막혀 넘을 수 없는 땅을 가리킴일 것이다. 시인은 녹슨 월정리역에서 무심한 들꽃들을 본다. 6월 25일이 무슨 날인지, 피비린 전쟁의 역사를 알 리 없는 들꽃송이들은 비극의 역사적 현장과 대비되어 쓸쓸함의 상황을 한껏 부각시킨다.
시인의 기행은 산과 고개, 바닷가 등 가리지 않고 이어진다. 「거문도 편지」, 「추풍령」, 「백령도」 같은 작품을 비롯해서, 「단종의 말」, 「김삿갓 시인의 어느 하루」, 「독도의 봄」처럼 역사적 사건과 관련된 곳을 적잖이 답사하고 쓰기도 하였다.
삼도봉 민주지산에서 허리 낮춘 백두대간은/ 우두령 황악산 지나 꽉 편 손가락 사이로/ 산골마을 논밭 과수원 무덤을 가꾼다/ 사람과 산이 함께 늙고 죽는 야산의/ 여름 숲은/ 걸어온 험준한 암 릉 생각할 수 있게/ 동네 뒷산의 산딸기가 무릎을 간질인다
-「추풍령」 부분
추풍령은 서울에서 하행할 때, 충북 영동을 거쳐 경북의 김천, 대구로 가는 기찻길과, 버스의 고속도로상에서 필연코 거치게 되는, 경부선 중의 최고점 고개이다. 그러니까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과 경상북도 김천 사이, 소백산맥의 안부(鞍部)에 있는 재로, 옛날로 말하면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갈 때 조령(문경새재), 죽령과 더불어 추풍령은 3대 고개로 유명한 곳이다. 백두대간이 흘러내리다가 허리를 낮춘 지점의 삼도봉은 민주지산의 한 봉우리로, 충북 영동군과 전북 무주군, 경북 김천시와의 경계에 있다. 충북, 전북, 경북의 3개의 도(道)가 맞물린 곳에 있다 하여 삼도봉이라 불리게 된 것인데, 우두령 황악산을 지나 펼쳐진 골짜기마다 산골 마을, 논밭, 과수원, 무덤 들이 소박한 풍경을 이루고 있다.
‘사람과 산이 함께 늙고 죽어가는’ 산자락의 풍경은 문명을 떠나 있는 듯 그것대로 하나의 세상을 이루고 있다. 여느 산촌의 풍경처럼 “무당벌레가 진딧물을 먹는 텃밭에/ 고승들이 가부좌한 낮은 산그늘이” 일찍 드리워지고, 손톱달이 뜬다. 나그네가 묵는 방의 적막 속에는 촉(蜀)나라 망제(望帝)의 원혼이 귀촉(歸蜀)을 소원하며 울어대듯, 떠나온 집을 그리워하는 나그네(화자)의 심경이 손톱달의 밤하늘에 새겨지고 있다.
닭 우는 소리 들릴 것 같은 장산곶/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해안포가 감추어져 있다고 파도는 말한다/ 아버지 눈 뜨게/ 심청이 몸 던진 인당수 빠른 물살이/ 만 년 동안 두무진 바위 깎고 다 듬은 비경 보아라/ 누가 신의 작품이라 했는가/ 사곶냉면의 ‘반냉’ 먹고 찾은/ 하늬해변에 박은 용치 쇠기둥이/ 노을을 끌어당기자 번쩍이는 창이요 칼이요/ 온종일 서해 5도 돌며 경계 근무한/ 가마우지와 갈매기 그 끝에 날개 접는다
-「백령도」 부분
백령도는 시인의 고향인 황해도 연백과도 위도상 가까운, 서해 북방 한계선에 위치해 있다. 심청이 몸 던진 인당수를 비롯한 백령도 일대의 바다는 파도 사납기로 유명하다. 그 센 물결이 깎아 세운 두무진(頭武津) 바위섬들, 그 비경이 일품이지만 군사분계선과 맞물린 곳의 긴장은 늘 팽팽하다. “닭 우는 소리 들릴” 지경에 있는 장산곶엔 북한군의 해안포가 감추어져 있고, 남한은 하늬해변에 용의 이빨을 닮았대서 붙여진 이름의 용치(龍齒)라는 쇠기둥을 촘촘히 박아 놓았다. 용치는 적의 해상 침략을 막기 위해 해병대가 바닷가에 박아 넣은 수백 개의 쇠기둥들인데, 세월이 흘러 해삼, 굴, 전복 등의 서식지가 되고, 석양 어스름에는 갈매기, 가마우지들이 한 기둥씩 차고 앉아 지친 몸을 가누기도 한다. ‘빼어난 자연경관과 국가 안보의 당위가 만나 그려낸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아름다운 풍경’으로 설명된다.
“참호 속에서/ 숨죽인 채 북방 한계선 꽉 잡고 있는 해병과의/ 눈맞춤”, 그 삼엄한 경계의 상황에 압도된 시인은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지 못하고 돌아선다. 고향 연백을 가까이 두고 남북의 군사적 대치의 긴장된 상황적 현실이 너무도 가슴 아픈 사실로 체감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시인이 전국의 시비(詩碑)를 찾아 탁본 기행을 하고, 문인산악회를 이끈 전력(前歷)도 있거니와, 등산가로서 국토의 산하를 누빈 것은 여전히 가 볼 수 없는 북녘 고향 땅에 대한 그리움의 발로이며, 분단과 이민족의 국토 침탈(「독도의 봄」)을 노리고 있는 현실에서 국토에 대한 뼈아픈 연민 때문일 것이다.
4. 산사와 인연의 비밀
떠도는 시인의 발길은 산에서 스님을 만나기도 하고(「산에서 만난 스님의 말씀」), 운주사, 선운사 같은 사찰을 찾아 들어 인연과 윤회사상의 비밀에 마음을 기대기도 한다.
전라도 화순 땅/ 순하지만 허하게 생긴 돌부처가/ 설치미술처럼 눕거나 기대어 있다/ 바람 불고 비 내린 천년을 돌아보면서/ 하루 종일 무엇인가 생각한다/ 들일 하다 허리 편 남도 사람처럼/ 정 있는 얼굴이 있는가 하면/ 내 어릴 적 기억의 벽에 발톱 세우고/ 그 벽 긁던 장나꾸러기도 있 다/ 아니 어느 말사에서 만난/ 사미승의 동안은 피가 통하는 것 같고/ 바람마저 빠져 나간다
-「운주사」부분
전라도 화순 땅의 운주사는 천 불 천 탑으로 유명한 곳이다. 편안한 얼굴 표정의 대형 와불 한 쌍을 비롯해서, 야산과 분지 여기 저기 자리잡고 있는 탑과, 서로 다른 표정이 순박하게 생긴 돌부처들이 친근하게 나그네를 맞이한다. 자연스럽게 놓일 데 놓인 돌부처들은 마치 “설치미술처럼 눕거나 기대어 있다”는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천 년의 세월을 이고 있는 돌부처들은 “들일 하다 허리 편 남도 사람들처럼/ 정 있는 얼굴이 있는가 하면”, 발톱을 세워 벽을 긁던 유년시절의 장난꾸러기 같은 표정도 있다. 심지어 “어느 말사(末寺)에서 만난/ 사미승의 동안(童顔)”같이 피가 도는 듯한 돌부처도 있다. 천불천탑이라 했으니, 천 불의 그 다양한 표정들의 개성은 불심도 조각한 이의 마음도 다 감당해 내진 못하였을 것이다. 쌓이고 쌓인 시간의 더께 속에서 운주사의 수많은 돌부처들은 “세상은 그래도 살 만하다는 듯 웃기만 한다”는 것이 천불석상에 대한 시인의 표정 읽기라고 하겠다. 절망과 좌절만 있다면 이 세상을 살아가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꾸밈없는 돌부처의 미소 같은 긍정이 그래도 이 아픈 세상을 견디고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일 것이다.
전국의 산하를 여행하는 시인은 명산의 명당 터에 자리잡고 있는 절간을 많이 찾는 편이다. 그것은 불교적 연기설과 인연설에 깊은 관심을 보여 온 시인으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시인은 「선운사 골짜기」의 첫 머리에서부터 미당(서정주)의 여운을 내비치고 있다. 선운사하면 미당의 시 「선운사 동구(洞口)」로 밀착된 곳이니 그럴 만도 하다.
시인은 어느 흥결에 기차를 타고 가다가 마음 내키는 역에서 내려 단풍 지는 선운사를 찾아 든다. “국화꽃 향기와 판소리 가락 어디쯤에서 흥이 났는지”라는 문장이 선운사 탐방을 작품화한 「선운사 골짜기」의 첫 행이다. 미당의「국화 옆에서」,「선운사 동구」, 그리고 분위기의 흥취에 능한 성정(性情)의 이미지가 이 첫 행에 함축되어 있다. 텍스트에 배치된 미당의 이미지들은 시인의 내면과 회억, 그리고 연상작용에 의해 떠오른 것들이다. 1950년대 말 미당의 추천을 받아 등단한 시인으로서 미당에 대한 친화적 정조(情調)를 적실하게 표현한 경우이라고 하겠다. “그날 밤 미당은 물속을 걸어가는 그믐달이었다가/ 기다렸다는 듯이 사라진다”, “도솔암 마애불 앞에서 손 모으니/ 이미 마애불과 미당은 참선 중이다”, “… / 나 보름달 맞이 채비해야 하니/ 어서 떠나시게” 같은 대목들은 미당의 정서와 토운(tone)을 재현해 놓은 듯하다.
경주 천마총의/ 구름 밟고 달리는 천마도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잠시 어느 말사에 머물었다/ 바 람이 없는데도 도량엔 낙엽이 쌓인다/ 낙엽은 떨어지는 소리도 없으니/ 지난여름의 영화를 돌아 보는 나처럼 가볍기만 하다/ 아니 몸의 무게뿐만 아니라 욕심까지 놓아 버린 것 같다/ 동승이 누 가 밟기 전에 낙엽을 쓸기 시작한다/ 비질을 할 때마다 나비가 날아오고/ 매미소리가 요란하다/ 쓸어 내도 쓸어 내도 따스한 추억은/ 비질을 한 자리를 덮고 또 덮는다/ 그건 살아오는 동안/ 지 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인연인 것이다
-「인연설」 전문
경주 천마총의 천마도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잠시 들러 머문 어느 말사(末寺)에서 시인은 낙엽의 상황과 이미지에 주목한다. 고즈넉한 도량엔 바람이 없는데도 낙엽이 쌓이고, 떨어지는 소리도 없는 낙엽은 “몸의 무게뿐만 아니라 욕심까지 놓아 버린 것” 같음을 본다. 세속을 떠난 고요의 은밀한 경지가 탐욕으로부터의 초월과 겸허의 세계를 느끼게 해 준다. 박철희 교수는 이 「인연설」, 「님은요」 등에 대해 “조용한 일상에서 삶의 실존적 한계와 그 초극이라는 근원적인 것의 탐색에 그의 인식론은 움직이고 있다” 라고 해설한 바 있다.
낙엽을 쓰는 동승이 비질할 때마다 나비가 날아오르고, 매미소리가 요란한 환상을 보고 듣는 것은 모든 사물과 시간 사이의 지울 수 없는 인연의 고리를 암시해 주는 것이다. “쓸어 내도 쓸어 내도 따스한 추억은/ 비질을 한 자리를 덮고 또 덮는다”라는 낙엽의 노래에서 시인은 “살아오는 동안/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인연”의 고리와 함수관계를 발견한다. “인연이란/ 시작할 때보다 끝이 날 때라는 말이/ 더 대견하다구요/ 이제 마지막이란/ 늘 마지막 다음에 찾아오는 것이라 믿으니까요”라는「님은요」의 한 대목도 그런 점을 잘 말해 준다.
쓸어 내도 쓸어 내도 비질한 자리에 또 낙엽이 쌓이곤 하듯이,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인간관계의 따스한 추억 역시 빈자리를 덮고 또 덮는다. 인연은 그렇게 이어지고 쌓이는 것이다.
5. 마무리
고향이 황해도 연백인 함동선 시인은 민족과 국토의 분단을 가장 뼈아픈 현실로 겪고 있는 까닭에, 실향민의 비극적 인식을 줄기차게 노래해 왔다. 어머니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바탕으로 한 망향과 귀향의식의 시적 형상은 이념에 휩쓸림이 없이 주지적 서정성의 순수를 지켜 낸 드문 사례로 꼽힌다.
지금까지 함동선의 생애는 ‘길 위의 인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분단의 역사적 현장과 문화 유적지, 방방곡곡의 문학비, 절간과 명산, 간이역과 한지(閑地) 등을 찾아 떠돈 삶이었던 것이다. 떠돎이 운명적 특성이 되어 그의 발이 닿은 곳마다 맺어진 인연과 사연들은 곧 시 작품으로 피어났다. 시인이 실향의 땅을 밟듯 국토의 산하를 누빈 것은 여전히 갈 수 없는 북녘의 고향 땅에 대한 그리움의 발현이며, 떠돎의 운명적 내력에는 고향 땅의 한 자락을 밟아 본다는 심리적 보상이 작용했을 것이다.
분단의 비극적 역사와 이산의 고통, 뼈에 사무친 망향과 귀향의식의 시편들은 이제 그것대로 석비(石碑)같이 단단한, 한 시대의 역사가 되고 있는 것이다.*
-------------------------------------2019. 1. 30. 완성 / 겹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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