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동계 인천 대회 휴식기를 맞아 과감하게 숏핌플 여행을 시작했었지요.
저는 평소 탁구 경기에 이기는 것도 즐거운 일이긴 하지만 틈날 때마다 각 전형별 기술을 익혀보는데도 상당한 즐거움을 느끼는 그런 성격이 상당부분 있는데요.
탁구로 먹고사는게 아닌 동호인이기 때문에 가능한 즐거움이겠지요.^^
평면 쪽은 어쨌건 포핸드가 평면이었고 백핸드도 평면으로 3년의 구력이 있었는데다가 트위들링을 통해 수시로 라켓을 돌려서 백핸드도 평면으로 드라이브도 걸고 쇼트나 보스커트도 하고 해왔기 때문에 평면 기술은 포핸드든 백핸드든 따로 시간을 가지고 연마할 필요가 없었습니다만 숏핌플은 그런 기회가 없어서 기술이나 용품의 특성에 대해 확실하게 알고 싶다는 그 열망이 참 컸었지요.
그래서 포핸드의 경우 최근 약 1년간 공포의 양뽕을 쓴다는 비난을 들어가면서도 포핸드에 각종 숏핌플을 써봐서 개념이 잡혔었는데 백핸드의 경우 숏핌플을 써본지가 오래되어서 기술적인 부분들이 아련하게 잊혀져 버렸기도 하고 롱핌플로는 선제 공격이 잘 안 되어서 상대에게 선제 공격을 당하고 그걸 막으며 버티는 상황이 올 때는 뭔가 울컥하는 것도 있고...^^
아무튼 그렇게 숏핌플을 꼭 한 번 써봐야 겠다는 열망이 있었지요.
근데 마침 우리 구장 코치가 또 백핸드가 숏핌플을 쓰는 친구이고 하니 배우기도 좋은데다가 마침 겨울철 인천대회 휴식기도 닥치고 해서 과감하게 작년 12월 익스프레스를 시작으로 숏핌플 여행을 시작했었지요.
닛타쿠의 익스프레스 우리 숏핌플을 사용하는 동호인들에게는 바이블에 가까운 러버지요.
숏을 쓴다고 하면 10에 8명은 익스프레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그래서 일단 익스프레스로 시작해서 1.6mm, 1.3mm 두가지 버전을 써봤는데 깔림 좋고 점착성이라 끌림도 괜찮고 컨트롤도 나쁜 편이 아니고 그렇게 많은 동호인이 쓰는 이유가 있었지요.
하지만 익스프레스의 최대 약점이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한 가지는 명색이 스피드계인데 스피드가 너무 없다는 것이었구요. 좀 심하게 말해서 롱핌플보다 빠를게 없었습니다.^^
또 하나는 블록컨트롤이 매우 어렵다는 겁니다.
롱핌플처럼 누르거나 비비는 블록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전형적인 숏핌플의 드라이브 블록의 기술인 살짝 손목으로 깔짝거리며 쇼트를 해주는 형태는 스피드와 깔림이 지나치게 심한 러버라 매우 어려웠지요.
아무튼 상대의 드라이브에 대한 블록은 상당히 어려운 러버 였습니다.
익스프레스를 가장 잘 쓰는 방법은 항상 내가 먼저 건드려버린다는 자세로 임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습니다.
그 다음으로 써본게 홀마크의 매직핍스 입니다.
익스프레스에서 깔림이 크게 줄어들지 않으면서 스피드가 훨씬 빠른 러버지요.
저의 성향에는 익스프레스보다는 매직핍스가 더 맞았습니다.
스피드가 매우 빠르고 깔림도 익스프레스 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있고 상대의 드라이브에 대한 블록도 롱핌플 식의 비비며 대주는 형태의 블록은 안되었지만 숏핌플의 전형적인 블록 형태인 쇼트는 대단히 좋았습니다.
쇼트 자세에서 손목을 조금만 깔짝거려주면 상대의 드라이브가 그대로 쫙쫙 깔려가서 상대가 다시 연속 드라이브를 거는데 부담을 느끼게 만들 수 있었지요.
하지만 매직핍스에도 또 하나 단점이 있었는데 이건 스폰지도 탑시트도 지나칠 정도로 딱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 딱딱함이 무게감으로 느껴지는 부분도 분명히 있어서 그게 무조건 단점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그 딱딱함은 약간의 이질감을 줄 수 있고 그 느낌이 안 맞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 다음으로 여행을 한 것이 바로 자이안트드래곤의 612터보 입니다.
612터보는 롱핌플에서 숏으로 전향한 사람에게는 최고의 물건 입니다.
숏핌플 이면서도 롱핌플 타법도 가능한 최고의 변화도를 자랑하는 공포의 숏핌플 이지요.
미디움핌플 이면서도 익스프레스보다 훨씬 빠른 스피드까지 가지고 있고 변화는 C7을 능가하며 두께에 따라 변화도에 차이가 없어서 맥스두께를 써도 부담이 없는 굉장한 매력을 가진 러버 입니다.
물론 612도 단점이 있는데 그 것은 컨트롤이 만만치 않다는 겁니다.
수비나 블록 부분에서는 다른 숏핌플에 비하면 발군의 컨트롤을 보여줍니다.
다만 숏핌플은 기본이 공격인데 공격 컨트롤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넘어가면 상대가 움찔 움찔 할만큼 변화가 심한 만큼 내 자신이 공을 넘기는 것도 그 다지 쉽지를 않습니다.
특히, 연속공격이 상당히 어렵습니다.
처음 쓰는 분은 한 번 치고나면 다음은 한번 짤라주는 형태로 강약 조절이 필요할 정도 입니다.
연속적으로 치려고 객기를 부리다가는 미스나올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어쨌거나 롱에서 전향하는 분에게는 가장 적응이 쉬운 러버이고 조금 시간을 두고 적응을 완전히 해서 공 넘기는 것에 문제가 없을 만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된다면 상당히 무서운 무기가 될 것은 틀림 없습니다.
612를 거쳐 짧은 여행 기간 마지막 여행의 러버가 바로 스핀로드의 데구 입니다.
데구는 최근에 나온 회전계 러버로서 현재 회전계 4인방이라고 불리는 모리스토sp, 부스터sa, 엑스텐드po, 블레이즈스핀과 어깨를 겨루어서 전혀 밀리지 않는 성능을 가진 러버 입니다.
특히, 약점착인 데구의 스핀 능력은 4인방에 비해 훨씬 앞서 있으며 컨트롤은 4인방 중에 가장 편한 블레이즈스핀보다 컨트롤이 오히려 더 편한 느낌 입니다.
다만 스피드는 모리스토sp나 부스터sa와 비교하면 덜 빠른 느낌이 있지만 그것도 피부로 느껴질 정도는 아닙니다. 매우 빠른 러버 입니다. 제가 그간 백핸드에 썼던 러버 중에 가장 빠른 스피드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독일제 러버의 특징 답게 캉캉 거리며 나가는 스피드와 평면에 못지않게 철컥 철컥 걸려주는 스핀력 등 매우 매력 있는 러버지요.
회전계 러버들이 모두 포핸드에 썼을 때는 회전 계수는 비록 다르다 해도 일단 드라이브가 잘 걸려 주었지만 백핸드에서는 회전계라고 해도 드라이브가 그렇게 쉽게 걸리지 않았었지요.
아무래도 평면에 비해 표면 마찰계수가 적은만큼 드라이브를 걸려면 그 만큼 임펙트가 더 강하게 주어져야 하는데 포핸드에 비해 백핸드는 아무래도 임펙트가 약하기 때문에 드라이브가 잘 안 걸리죠.
근데 데구는 백드라이브가 어렵지 않게 구사가 되더군요.
또 스핀을 넣지 않고 정통 숏핌플 타법으로 손목스냅으로 탁탁 쳐주었을 경우 수시로 공이 너클로 변하고 의외로 우블링도 발생하는 등 변화도도 제법 있습니다.
소비자가 3만5천원의 가격이 믿어지지 않은 만큼의 성능 좋은 러버 입니다.
데구를 끝으로 그렇게 한 동안 즐거운 숏핌플 여행을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경기력 입니다.
숏핌플로 전향하여 아무리 노력을 하고 연구를 한다고 해도 단 시간에 수년간 써왔던 롱핌플의 승률을 잡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숏핌플로 여행을 하는 동안 저의 승률은 롱핌플을 쓰던 작년까지의 승률의 30%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지는게 습관이 되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한 번 이기기가 정말 힘들었지요.
주위에서의 원성이 정말 장난 아니었습니다.
동호회에서 그다지 존재감이 없는 사람이라면 본인만 즐겁다면 그런 여행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저 같은 경우는 좀 다릅니다.
우리 동호회 시합 출전자를 꾸려서 나가는 사람이고 1부 단체전 정멤버 입니다.
다른 멤버가 늘 이겨주는 것도 아니고 다른 멤버가 질 때 한 번씩은 제가 이겨줘야 됩니다.
근데 최근 제가 숏핌플 여행을 하는 동안은 저는 거의 펑크였습니다.^^
동료들의 원망어린 시선이 피부를 뚫고 들어올 지경이었습니다.^^
또 우리 구장은 거의 매일 저녁 음료수내기 천원빵 단체전을 하는데 저는 항상 우리 중전과 가위바위보를 하고 따로 편을 먹는데 저랑 걸리면 다른 사람들이 우우 거립니다.
우리 중전은 승률이 8할이 넘고 저는 승률이 2할이 안 되는~ ^^
며칠 전에는 우리 구장에서 방귀깨나 뀐다는 임원들이 저한테 따로 심각하게 이야기를 합디다.
꼭 그렇게 숏으로 방황하고 다녀야겠냐고 그냥 롱으로 되돌아가면 안 되겠냐고 금년에 아직도 많은 대회가 남아 있는데 계속 그렇게 승률이 낮으면 구장 입장에서 곤란하지 않느냐고... ㅜ.ㅜ
할 수 없었습니다. 그 들에게 약속을 해줬지요. 조만간 여행을 끝내겠노라고...
사실은 저도 그 동안 그렇게 숏핌플로 전향을 해서 러버 여행을 다니며 러버들을 탐구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지만 전형쪽에서 생각해보면 심각한 문제가 있긴 했습니다.
숏핌플은 기본적으로 스피드 있는 랠리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눈이 빨라야 하고 순발력이 뒷받침 되어야 하고 빠른 발을 가지고 있어야 되지요.
숏핌플은 대부분 깔짝거리듯이 손목스냅으로 톡톡 치며 경기 하는게 필요하고 어떤 공이든 먼저 건드리겠다는 자세를 가지고 임해야 하는데요.
그러려면 빠른 눈으로 공을 따라잡고 빠른 발로 항상 공을 몸 안에서 잡을 수 있어야 됩니다.
요즘 평면러버 제조 기술이 하도 발전해서 공들이 쭉쭉 밀려 옵니다.
숏핌플은 팡팡 나가지만 평면의 경우 그냥 대충 날아오는 것 같아도 내 테이블에 맞고 나면 공끝이 살아서 쭉 밀고 들어오지요.
그걸 잡아서 치려다보면 조금만 내 몸이 반응이 느려버리면 어느새 공이 가슴 앞에까지 밀려와서 효과적으로 칠 수가 없게 되어버리고 상대의 공이 깊으면 내 몸 안에까지 잡으러 가기에는 너무 먼 거리가 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게다가 가장 심각한 문제는 50대 중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제 입장에서는 노안도 큰 문제 중의 하나 입니다.
랠리 중에 공이 순간 순간 안 보일 때가 많습니다.
공이 안 보였다가 갑자기 눈 앞에서 나타나고 그러지요.
롱핌플의 경우 오랫동안 써왔고 무의식적으로 기술들이 나오기 때문에 공이 급하게 나타나도 순간 대처가 가능하고 또 롱핌플 자체가 기본적으로 느린공을 생성하기 때문에 랠리가 급박해지지 않아서 공이 안 보이는 경우 자체가 잘 발생하지를 않아서 문제가 없습니다.
근데 숏핌플의 경우 빠른 랠리가 기본이므로 그런 문제도 매우 심각하더군요.
그래서 숏핌플로 완전히 적응을 한다고 하더라도 롱핌플을 쓸 때에 비해서 승률이 더 좋아질 가능성이 얼마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아무튼 저 자신을 즐거웠으므로 아무런 문제가 안 되었는데 구장 입장에서는 다르잖아요.
저랑 단체전을 나가야 하는 동료들 입장도 생각해야 되고 구장에서 사소한 음료수내기 단체전에서도 저의 1승이 매우 아쉬운 상황이 매일 발생하게 되는 어려움이 있고요.
게다가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일주일 전 숏핌플 전형이던 우리 코치가 평면 전형의 코치로 교체되어 더 이상 제대로 숏핌플 기술을 가르쳐줄 사람이 없게된 심각한 문제도 있습니다.
이차저차 결국 주위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그저께 "내 다시 롱으로 돌아가주마!" 선언을했고 결국 어제 그래스디텍스로 돌아갔습니다.
그렇게 되돌아가서 어제 첫 게임은 그것도 오랫만에 치는지라 좀 헷갈렸습니다만 금방 옛날 기술이 나오기 시작했고 줄줄이 승리를 거두었지요.
사람들이 "거봐라! 저렇게 승률을 낼 수 있으면서 씰데 없이 러버 탐구니 뭐니 왜 난리를 치면서 방황을 하고 지X을 한 것이여!" 이럽니다.^^
그렇네요.
탁구란게 저 혼자 즐거우면 되는게 아니네요.
어쩔 수 없이 즐거웠던 숏핌플 여행을 마치고(하긴 짧은 기간이었지만 각 종류의 숏핌플을 두루 여행했고 특성들을 대부분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어서 손해본 것은 없습니다.)
근데 그렇게 숏핌플 여행을 잠시 떠났다가 되돌아와서 느낀 건데요.
그 기간이 저에게 결코 손해가 아니었다는 겁니다.
롱핌플에 안주하고 있을 때는 저 자신이 생각해도 상당히 발이 느린 느낌이 있었고 플레이가 루즈한 느낌이 있었는데 급박한 랠리의 숏핌플 플레이를 한 동안 하고 났더니 어제 롱핌플 들고 쳐보는데 롱핌플 사용자로서는 진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더라는 거지요.
오히려 한 동안 롱을 치지 않고 숏을 치다 왔는데도 잠시 헷갈렸던 각만 잡고 나니까 훨씬 빨라진 몸과 눈이 저의 전투력을 높여놓은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롱핌플을 쓰시는 분 중 뭔가 한계에 부딪히는 느낌이 있고 더 이상 늘지 않는 느낌이 있으신 분이 계시면 잠시라도 숏핌플 여행을 한 번 해보십시오.
그리고는 다시 롱을 들어보세요.
굉장히 빨라진 몸과 눈으로 경기력이 한층 좋아진 자신을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아무튼 그 동안 즐거웠던 숏핌플 여행을 타의에 의해 강제로 끝내면서 그 간의 즐거웠던 추억을 잠시 더듬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제 다시 전투력을 연마해서 클럽에 기여를 해줘야 겠지요.
다시 즐거운 여행의 기회가 있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