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회 중봉조헌문학상 시부문 당선작] 박위훈 이규성
대상
나비, 날갯짓은 그래비티다 / 박위훈
사과를 잊었다 뻔뻔하게
사직, 다한 소용이라는 말이
당신 흉중에 나비효과를 일으킨다
요설妖舌로 신음하는 봄은
나비가 속독할 그래비티다
조롱 속 앵무가 회피한 것은 변명,
그러나 설마가 몰고 온 것은 폭풍이다
괜찮다고 반나마 접힌 허리를 단칼로 자르는
개똥이, 언년이, 돌쇠는
이름도 걸림돌이라는 의병이다
우화는 주저의 떨림을 털어내는 것
함께 벼랑을 타는 돌쇠, 언년이, 개똥이
그래비티 험지 어디에서 다리쉼 멈췄을까
삭은 삼베로 미투리를 엮고
허기쯤이야 주검에게 양보할 수 있다
백두대간의 늑골이 으스러질 때
사금파리가 모여 각을 맞춘다
깨진 달이 장항아리에서 다시 떠올랐다
윤사월 돌무덤은 외전外傳이다
끝내 호명되지 않는 내일을 산다
발치에 뭉개진 들꽃이
사과를 잊은 사과나무를 에우고
나는 당신을 앓는 중이다
우수상
뒤울이 / 이규성
윤슬 읽는 안목은 왜가리의 전통이다
왔다 갔다 문맥 손보는 파랑波浪 지우개를 따라
가느다란 맨발 하나를 들었다 내렸다 한다
잿빛 두 날개를 점잖게 붙인 채
기다란 목을 오래도록 빼고 있다
주어를 찾는지 목적어를 찾는지
개펄 페이지에 숨은 품사들은 쉽지 않다
바다비오리가 물갈퀴를 젓는다
푸른 동심원이 팽창하다가
꽁지가 열 시를 가리킨다
새끼들 몇 마리는 자맥질하거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원을 그린다
하루를 시계처럼 도는 것들은 나무에 앉기보다
몸을 적셔 휘젓는 쪽이다
나는 요새 부쩍 부리가 자란다
오거리 점방을 닫은 후
아직 윤슬도 모르고 물갈퀴도 저을 수 없는데
몸 여기저기 깃털이 무성하다
다시 찰랑찰랑 가게를 열 수 있을지
방향을 놓친 새가 거꾸로 향방을 바꾸듯
급하면 어떤 기항지라도 좋다
내일 기류는 조금 빠른 이동성 고기압
나는 공기주머니에 바람을 잔뜩 넣고
오랜만에 활짝 돛부터 올려 출항한다
어떤 간절곶을 향해 서서히
<심사평>
올해 제17회 중봉조헌문학상에 접수된 작품은 시 663편(132명), 수필 133편(66명). 모두 198명 문사(文士)들이 796편의 작품으로 참여했다. 작년과 비교하면 참여 인원과 작품 수가 다소 증가한 수치로 중봉 조헌 선생의 삶과 사상을 형상화한 것과 일반적인 작품들이 골고루 응모되었다. (사)중봉조헌선생선양회는 국내뿐 아니라 미국과 호주 등에서도 참가할 정도로 중봉조헌문학상이 경향 각지의 관심을 받은 지 오래라며, “당초 문학상을 제정하면서 우리 생활의 일부분이 되고, 이를 계기로 중봉 조헌 선생이라는 역사인물과 그의 활동이 우리 삶과 역사에 자연스레 스며들게 하겠다는 목표가 어느 순간 이루어져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감사를 전했다.
중봉조헌문학상 최종심은 지난 5월 27일 심사위원으로 이하준 수필가(가톨릭대학교 명예교수, (사)중봉조헌선생선양회 이사장)과 홍성식 평론가(인천재능대학교 교수)가 참여해 진행됐다. 심사위원들은 “응모작품들은 아주 순수하게 치열하고 예술적으로 날이 바짝 서 있다. 다 나름의 매력을 지닌 채 다르고 신선하다. 이 매력적인 작품들을 모두 소개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라는 심사평을 내놓았다.
예심을 거쳐 본선에 올라온 작품은 시와 수필 각 4편이었다. 시에서는 박위훈의 <나비, 날갯짓은 그래비티다>, 이규성의 <뒤울이>, 김희숙의 <연도일기를 읽는 밤>, 윤빛나의 <끈> 등, 수필에서는 김춘기의 <통증을 스캔하다>, 정은아의 <만들어진 가족>, 김세정의 <등나무의 죽음>, 서희정의 <의롭게 살다간 중봉 조헌> 등이다.
박위훈의 시 <나비, 날갯짓은 그래비티다>는 역사를 소환하는 방식이 매우 새롭고 신선하다. 각각 분산된 것 같은 혹은 분명하게 설명할 수 없는 상상력은 결국 ‘이름도 걸림돌이라는 의병’에 수렴된다. 역사는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것도 무게와 의미를 담을 수 있지만, 하나의 이미지로 보여주는 것도 그것에 다르게 다가간다는 점에서 새롭다. 박위훈의 시는 과거를 소환하고 현재와 이어가는 방식에서 참신한 해석과 상상력을 보여줘 대상으로 선정하였다.
이규성의 시 <뒤울이>는 신선한 이미지와 긴장감을 자아내는 비유가 절묘한 작품이다. 어떤 면에서는 아침녘 바닷가 햇살을 받아 퍼지는 익숙한 풍경을 형상화하고 있는 듯하지만, ‘뒤울이’와 ‘윤슬’ 등 우리 말 시어의 적절한 활용이 이미지를 새롭게 하고 있다. 거기에 속도감 있는 비유가 긴장감을 꾸준히 유지하게 한다는 점에서 우수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