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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리에게 임한 성령(2251.2024.5.26.)
고후13:5
할렐루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임재하셔서 우리 예배를 받으십니다. 오늘도 주의 전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하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혹시라도 삶의 현장에서 상처와 상한 마음을 가지고 오셨으면 말씀 듣다가 위로와 치유함을 받으시고 질병과 싸우는 중이라면 여호와 라파 치료의 하나님을 만나서 치료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삶이 힘들고 지쳐서 오셨다면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은 새 힘을 얻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무엇인가 계획하고 기도중에 있는 것이 있다면 응답받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삶이 해결되고 성령이 충만하여 기쁨과 감사와 웃음이 넘쳐나는 유쾌한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지난주일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 성령이 마가의 다락방에 임했던 것을 기념하는 ‘성령강림주일’입니다. 그래서 성령강림절에 교회는 성령의 불길을 상징하는 붉은색을 사용합니다. 부활절 후 50일째 마가의 다락방에 있는 제자들에게 성령께서 오신 것, 강림한 것을 기념하는 것이 성령강림절입니다. 당시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모든 두려움을 극복하고 예수님을 통해 이루신 하나님의 위대한 일들을 선포했고 그 결과 교회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성탄절, 부활절, 맥추감사절, 추수감사절’ 등과 함께 ‘성령강림절’을 중요한 절기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탄절과 부활절은 대단한 명절로 경축하지만, 성령강림절은 그렇지 못한 채 지나가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마 상주감리교회 성도들 중에도 성령강림절이 무엇인지 모르는 분도 있을리라고 봅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신 성탄절이 중요한 절기이듯이, 성령이 강림한 성령 강림절도 중요한 절기입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심으로 전 인류를 위한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었고,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의의 최후 승리와 영생에 대한 찬송이 시작되었다면, 성령이 강림하심으로써 지상의 교회가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눅24:49절에 보면,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승천하시면 성령을 보내신다는 약속입니다. 그러면 예수께서 보낸다고 약속하신 성령은 무엇입니까? 약속하신 성령은 언제 오셨습니까?
행2장에는 오순절 날입니다. 오순절 날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던 제자들에게 강림하셨습니다. 갑자기 세찬 바람이 부는 것과 같은 소리가 하늘에서 나더니, 제자들이 앉아있는 온 집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리고 불길이 솟아오르는 것과 같은 혀들이 갈래갈래 갈라지면서 나타나더니,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모두 성령으로 충만해져서,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각각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오순절 날 마가의 다락방에서 되어진 일입니다.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게 되니 놀라운 일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전 세계 감리교회가 지키는 존 웨슬리 목사의 회심 기념주일입니다. 우리가 매년 이 회심기념 주일을 지키는 이유는 존 웨슬리의 회심체험이 감리교회를 탄생시켰기 때문입니다. 현재 전 세계 개신교 중에서 가장 많은 신도수를 자랑하는 감리교회는 1739년 영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8세기 영국 사회는 위로는 국왕으로부터, 아래로는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극도로 부패하고 타락했습니다. 몇몇 영국 역사가들이 지적한 데로 영국 사회가 커다란 위기를 맞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때에 영국 사회를 건짐과 동시에, 죄와 사망에서 허덕이는 전 인류에게 참된 생명과 자유를 던져준 것이 바로 존 웨슬리에 의해 시작된 감리회 운동이었습니다.
‘역사상의 그리스도교’란 책을 저술한 버틀러는 말하기를 ‘감리회 운동의 정신은 프랑스 혁명을 고취한 정신과 같다. 이 운동은 프랑스 혁명이 성취한 여러 가지 점을 영국에서 성취하였다. 그리하여 이 운동은 영국의 모든 사회 개력 운동의 추진력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영국 수상을 역임했던 로이드 죠지는 말하기를 ‘웨슬리는 앵글로 색슨족이 낳은 최대의 종교적 지도자이다. …그의 종교 운동은 …종교개혁 이상의 영향을 끼쳤다. 웨슬리는 전 인류사회에 새로운 정신적 생명을 넣어 주었다’고 했습니다. 또 다른 영국 수상이었던 스탠리 볼드윈은 말하기를 ‘존 웨슬리는 파산한 18세기의 영국을 구하는데 유일한 배역을 맡은 위대한 영국인이었다’고 했습니다.
스코틀랜드의 작가 토마스 칼라일은 말하기를 ‘웨슬리의 정신 운동은 영국을 폭력 혁명에서 건졌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여러 사람들의 말은, 존 웨슬리에 의해 시작된 감리회 운동이 18세기 영국의 부패하고 무력하여진 종교와 도덕을 혁신하여, 영국을 정신적 파산에서 건져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 여파는 다시 전 세계 각국에 전파되어, 인간 내심의 변혁과 사회 개혁에 위대한 원동력이 되고 있다는 점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놀라운 결과를 가져온 감리회 운동을 시작하게 만든 것은, 바로 오늘 우리가 기념주일로 지키는 존 웨슬리의 회심이었습니다.
지금부터 286년 전인 1738년 5월 24일(수)에, 참된 믿음과 성령의 내적 증거를 갖지 못해 고민하던 웨슬리는,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런던시 올더스케잍가에서 성경연구와 기도를 목적으로 몇 사람의 신앙 동지가 모이는 모라비안 교도들의 작은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사회를 보는 사람이 루터가 쓴 로마서 주석 서문을 읽을 때에, 그의 마음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웨슬리는 그가 쓴 일기에 그 때의 상황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오후 9시 15분전, 그 사람이 그 서문에서 하나님께서 예수를 믿는 자의 마음에 일으키시는 변화를 논하는 부분을 읽을 때에, 나는 나의 마음이 이상스럽게도 뜨거워짐을 느꼈다. 나는 그리스도, 오직 그리스도만을 나의 구주로 신뢰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리고 그가 내 죄, 나 자신의 죄를 가져가시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구원하셨다는 확신을 내게 주셨다. 그 후에 나는 나를 모욕하고 핍박하던 자를 위하여 정성껏 기도하였다. 그리고 나는 거기 모인 사람들에게 내가 새로이 얻은 내심의 경험을 다 말하였다’이것이 그가 그날 밤 일에 대해 일기에 기록한 내용입니다. 바로 그날 밤의 그 경험이, 그 체험이 웨슬리를 거듭나게 하고, 이 땅에 감리회를 탄생시킨 회심 사건이었습니다.
회심이란 어떤 입장이나 신념에서 다른 입장이나 신념으로 돌아서는 것을 뜻하는데, 성서에서는 인간이 진정으로 하나님께 돌아간다고 말할 때에 씁니다. 그러므로 웨슬리의 마음을 완전히 하나님께 돌리게 한 올드스케잍가의 체험은, 웨슬리에게 있어서 분명한 회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회심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돌발적으로 일어난 일은 아니었습니다. 웨슬리의 이 회심체험은 긴 점진적 변화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이제 그러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그의 성장 과정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웨슬리는 1703년 6월 17일에 웹워드라고 하는 영국의 한 작은 마을에서 아버지 사무엘 목사와 어머니 수산나 사이의 15번째 아이로 태어났습니다. 수산나는 19명의 자녀를 낳았는데, 이 중 9명의 자녀를 키웠습니다. 수산나는 웨슬리 형제들을 어렸을 때부터 혹독한 신앙 훈련으로 양육했습니다. 출세와 성공의 원리가 아닌, 신앙적인 원리로 교육을 했습니다. 수산나는 아이들로 하여금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있어서 규칙적인 생활을 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순종과 자제력을 길러주고, 항상 경건한 생활을 하도록 했습니다. 이러한 수산나의 교육은 웨슬리 형제들로 하여금 모든 삶에서 하나님의 실재를 직접적으로 강하게 느낄 수 있게 했습니다. 그리고 매사에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데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웨슬리는 10살 6개월이 되었을 때에, 가정을 떠나 런던에 있는 소년 공민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 때 이 학교의 풍기는 대단히 문란하여서, 식사 때 마다 나이 많은 학생들은 어린 학생들에게 분배된 좋은 음식물을 빼앗아 먹는 일이 흔히 있었다고 합니다. 웨슬리도 가정에서와 같은 속박이 없었기 때문에 다소 태만해졌지만, 가정에서와 마찬가지로 매일 성경을 읽고, 아침저녁으로 기도를 드리면서, 경건의 생활에 힘썼습니다. 17살 때에 웨슬리는 옥스퍼드의 그리스도교회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이 때 영국사회의 부패와 맥을 같이하여, 옥스퍼드 대학의 교수나 학생까지도 공부는 뒷전으로 물리고, 주색으로 세월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러나 웨슬리는 주어진 자유를 즐기며, 좀 경박한 행동을 하기는 했으나, 어려서부터 가정교육으로 몸에 베인 경건한 생활 습관 때문에 스스로 학문에 열중하면서도 경건훈련을 계속했습니다.
1725년 웨슬리의 나이 22세 때, 부친이 웨슬리에게 성직에 몸담도록 강권하였습니다. 웨슬리는 아버지의 말씀에 따라 목사가 되기로 결심하면서, 서서히 소명의식을 형성하는 것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웨슬리는 이때부터 부모와 친구들과 서신 왕래를 시작하면서, 기독교 교리와 기독교인의 실행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 서적을 많이 읽으며, 종교적인 명상을 자주했습니다. 아울러 말에나 행동에 있어 죄를 짓지 않으려 경계하고 조심했으며, 내적인 거룩함을 목표로 삼고 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웨슬리는 자기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세밀한 데까지 통제하려 하였고, 자신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간형으로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해 9월 19일에, 웨슬리는 집사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1728년에 장로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1729년 웨슬리가 26세가 되었을 때에, 그는 성서를 진리의 유일한 표준과 순수한 종교의 유일한 귀감으로 삼고 열심히 읽으며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동시에 ‘그리스도의 마음’을 지니고, ‘그리스도가 걸어가신 것처럼 걷는 것’이, 신앙생활에 있어서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이를 이루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같은 해, 웨슬리는 옥스퍼드 대학의 조교로 일하게 되었고, 동시에 신성 클럽의 지도자로 추대되었습니다. 이 클럽의 회원들은 내적으로는 경건연습과 영적 수양을 목표로 하고, 외적으로는 복음 운동에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래서 모여서 기도하고, 성경을 공부할 뿐만 아니라, 감옥을 방문하며, 구제하는 생활에도 힘썼습니다.
1735년 4월 25일, 아버지 사무엘 목사가 72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임종 시에 그는 존 웨슬리에게 ‘내심의 증거! 아들아, 내심의 증거! 이것은 그리스도교의 유일의 실재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유언은 웨슬리의 마음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같은 해 10월, 웨슬리는 미국 조지아주 선교사로 가게 되었습니다. ‘시몬즈’라는 배를 타고 8주간 항해하게 되었는데, 이 항해가 웨슬리에게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특히 그는 선객들 중에 독일 경건파 신자들인 모라비아 교도들과 친근한 교제를 하면서, 그들의 굳건한 신앙과 용기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항해가 계속되던 어느 날 저녁, 모든 선객이 다함께 모여 기도회를 하는 중에 폭풍이 일어났습니다. 큰 돛이 찢어지고, 파도가 갑판 위로 넘쳐 들어와서, 배가 곧 침몰될 것 같은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웨슬리도 공포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라비아 교도들만은 여전히 시편을 계속해서 읽고 있었습니다. 폭풍이 지나간 후에, 웨슬리는 한 모라비아 교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들은 두렵지 않았습니까’그러나 그 교인은 대답하기를 ‘하나님께 감사한 일입니다마는 별로 두렵지 않았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웨슬리는 그들이 지닌 믿음의 확신으로 인해 큰 감동을 받으면서, 자신에게는 그 같은 믿음의 확신이 없음을 발견했습니다. 이듬해 2월 6일, 웨슬리 일행이 탄 배는 조지아에 도착했습니다. 이 후 웨슬리는 모라비아 교도들의 목사인 스팽겐 베르크라는 사람을 알게 되어,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와의 대화중에 이런 문답이 있었습니다. 스팽겐 베르크 목사가 묻기를 ‘웨슬리 선생! 나는 형님에게 몇 말씀 묻고자 합니다. 형님은 형님의 마음속에 형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성령이 증언하신다는 확신이 있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순간 웨슬리는 당황했습니다. 무슨 말로 대답할지 몰라 주저했습니다. 그 때 스팽겐 베르크 목사는 웨슬리의 주저하는 모습을 보며, 다시 질문하기를 ‘그럼 형님!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 아십니까’라고 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웨슬리는 대답하기를 ‘예, 내가 압니다. 그는 세상의 구주십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대답을 들은 스팽겐 베르크 목사는 다시 묻기를 ‘그것은 사실입니다마는, 형님은 예수께서 형님 자신의 구주이심을 아십니까’라고 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웨슬리는 대답하기를 ‘그렇다면 오죽이나 좋을까요’라고 했습니다. 이 문답으로 인해, 웨슬리는 심각하게 자신의 신앙을 성찰하게 되었습니다. 웨슬리는 그 날 일기에, 자기는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자신을 위해 죽으셨다는 진리를 확신하지 못하고 있음을 고백했습니다. 결국 이러한 신앙 상태에서 행해진 조지아 선교사의 일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고, 2년 후인 1737년 12월 2일에 웨슬리는 귀국길에 올랐습니다.
영국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쓴 일기에, 웨슬리는 자신의 심정을 잘 기록해 주었는데,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아메리카인을 회개시키려고 갔다. 그러나 나를 회개시킬 자는 누구인가? 나를 이 불신앙의 죄악 된 마음에서 건질 자는 누구일까? 나는 외관상으로는 훌륭한 신자이다. 위험이 없을 때는 설교도 잘하고, 믿음도 좋다. 그러나 죽음이 그 무서운 입을 벌리고 나를 엄습할 때에, 불안과 공포에 어찌할 바를 모른다’영국으로 돌아 온 후에 쓴 웨슬리의 일기에도, 그의 내적 상태는 잘 나타나 있습니다. 거기에는 ‘나는 이런 믿음 즉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가 내 속에 산다는 믿음과 …성령이 나의 신으로 더불어 내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거 하는 믿음을 가지고자 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그가 상당히 깊은 내적 고민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웨슬리는 이러한 내적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피터 뵐러라는 모라비아 교인과 더불어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 결과 자신이 로마서 1:17에 기록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때까지 선행으로 의를 얻는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후 웨슬리는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신앙을 갖기 위해 기도하며, 더 깊은 대화를 여러 사람과 나누었습니다. 이러한 고민 중에 올드 스케잍가의 작은 집회에서 회심체험을 하고,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온전한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회심체험 후에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는 진리를 힘 있게 진파하면서, 수많은 사람을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오게 하여, 영국사회를 구원했습니다. 이처럼 웨슬리의 회심은 어느 날 갑자기 돌발적으로 일어난 일은 아니었습니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자신의 신앙에 대한 심각한 성찰과 고민, 그리고 문제의 발견과 그 해결을 위한 수많은 대화와 기도를 통해 회심체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그러한 고민 속에서도 끝까지 신앙의 길에서 떠나지 않도록 해 준 가정에서의 경건 훈련과 가족들의 신앙적인 권면, 그리고 친구들과의 대화와 신앙 서적들의 영향도 회심 체험을 가능하게 한 요인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회심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자신이 믿음 안에 있는지 점검해 볼 것을 요청합니다. 정말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가운데 계심을 믿고 있는지 성찰해 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더 높은 경지의 신앙으로 인도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신앙 성장과 확신을 위해, 각자 자신의 신앙에 대한 심각한 성찰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신앙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정확하게 발견하고,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해 기도와 신앙적인 대화를 힘써야 합니다.
사랑하는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자신의 신앙에 대해 성찰해 보십니까? 자신의 신앙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점검해 보십니까? 문제의 해결을 위해 기도와 신앙적인 대화를 나누십니까? 여러분 모두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그것이 더 높은 경지의 신앙으로 여러분을 인도합니다. 오늘 존 웨슬리 회심 기념 주일을 맞아, 여러분 모두 자신의 신앙에 대한 성찰을 통해, 더 높은 경지의 신앙에 이르는 성도가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존 웨슬리 목사에게 마음을 뜨겁게 하여 회개하고 회심할 수 있도록 역사하신 성령은 지금도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누구의 마음을 움직일지 아무도 모르지만 성령은 지금도 강하게 역사하고 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중에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면 인정하시고 그 성령을 받아 들이십시오. 그리고 자기의 믿음을 성찰해 보십시오. 놀라운 일들이 생겨날 것입니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내렸던 성령은 오늘 상주감리교회에서 예배드리는 우리들 가운데 역사하고 있습니다.
요한웨슬리에게 임한 성령이 오늘 상주감리교회 모든 성도들에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성령은 왜 오셨습니까? 한마디로 보혜사가 되어 주려고 오셨습니다. 요14:26절‘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이 보혜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보혜사라는 말은 우리말인데도 어려운 말입니다. 희랍어로 보혜사는 ‘파라클레토스’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곁에’ 라고 하는 뜻을 지닌 ‘파라’ 라는 단어와 ‘부르심’ 이라는 뜻을 지닌 ‘클레토스’ 라는 단어의 합성어 인데, 그 뜻은 ‘위로 자’ 또는 ‘도우시는 이’ 입니다. 따라서 보혜사로 설명되어진 성령은 예수님 대신 항상 함께 하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예수님이 성령을 통해서 항상 믿는 자들과 함께 하시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도우신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제자들을 도우신 첫 번째 일은 제자들이 담대해지도록 하신 것입니다. 행3:14절에 의하면, 성령 강림 후 제자들이 가장 먼저 한 것은 거리로 나와서 소리를 높여 외친 일입니다.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혀서 마가의 다락방에 숨어 있던 제자들이 예루살렘 거리를 활보하며 담대히 복음을 전하게 된 것은 오직 성령의 도우심 때문이었습니다. 성령이 제자들을 담대한 용사들로 변화시킨 것입니다.
행4장에 보면,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어선 일 때문에, 베드로와 요한이 유대 종교 지도자들 앞에 잡혀 갔습니다. 대제사장들이 두 사도를 가운데 세우고 묻기를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고 했습니다. 그들은 두 사도가 무식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머리를 굽히며 용서를 빌 줄 알고 그렇게 물었습니다. 그러나 뜻밖의 일이 일어났습니다.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고 담대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할 말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두 사도에게 경계하기를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두 사도는 다시 담대하게 말하기를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결국 대제사장들은 두 사도를 벌할 방도가 없어서, 다시 위협만 하고 놓아 보냈습니다. 두 사도가 대제사장들의 위협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은 성령의 도우심 때문이었습니다. 사도들이 성령이 충만하였기 때문에 담대해 진 것입니다.
성령께서 제자들을 도우신 두 번째 일은 제자들이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행5:42절에 의하며, 성령 강림 후에 제자들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가르치는 것과 전도하는 것을 쉬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제자들이 예수님이 주신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게 된 것은, 오직 성령의 도우심 때문이었습니다. 성령이 제자들로 하여금 사명을 감당하도록 도우신 것입니다. 행1:8절에 보면,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바로 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고 증인이 된다는 말씀은, 증인의 사명을 감당 할 수 있도록 성령을 통해 권능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강림의 결과는 사명 감당을 위한 전도 운동으로 나타났습니다.
성령께서 제자들을 도우신 세 번째 일은 제자들이 서로 사랑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행2:44-46절 까지 있는 말씀에 의하면, 제자들은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나누어 가졌으며, 한 마음으로 빵을 떼며 기쁘게 음식을 먹었습니다. 제자들이 이렇게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게 된 것은 오직 성령의 도우심 때문이었습니다. 성령이 제자들로 하여금 서로 사랑하도록 도우신 것입니다.
행4:34-35절에 의하면, 그 당시 믿는 자들 가운데는 가난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밭이나 집을 가진 사람들이 그것을 팔아서, 그 판돈을 사도들에게 가져왔고, 사도들은 그 돈을 각 사람에게 필요에 따라 나누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4:36절에 보면, 구체적으로 바나바라는 사람이 거명하며, 그가 자기가 가지고 있던 밭을 팔아서, 그 돈을 사도들에게 가져왔다고 했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에 이 같은 일은 불가능합니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도 소유에 대한 욕망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도 이기심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도 미래에 대한 염려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도 부의 대물림으로 자식들을 편안하게 해 주고 싶어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놀라운 모습이 나올 수 있단 말입니까? 해답은 역시 성령의 도우심입니다. 성령께서 제자들이 서로 사랑하도록 도우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제자들은 보혜사로 오신 성령의 도우심으로 담대해 질 수 있었고, 증인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으며, 서로 사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성령이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모든 것을 삶에 실천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감사한 것은 지금도 보혜사로 오신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지금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삶 속에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성령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은혜 받는 자리에 참여하여, 성령과 교제함으로써 가능합니다. 예배와 기도와 찬송과 말씀과 선교와 봉사와 친교를 통해 성령의 충만함을 입을 때에 성령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보혜사로 오신 성령의 도우심 속에 살고 있습니까? 성령은 바로 여러분을 도우시기 위해 보혜사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성령의 충만함 속에서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며 사셔야 합니다. 예배와 기도와 찬송과 말씀과 선교와 봉사와 친교를 통해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사셔야 합니다.
요한웨슬리 목사님이 회심의 사건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가르쳐주는 진리가 있습니다. 회심의 사건이 없으면 우리도 마찬가지로 불안과 공포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우리의 신앙이 진짜인지 정검하기 위해서 너희 믿음을 시험해보라고 하십니다.‘나의 신앙생활이 이정도면 충분하지’하고 안일하게 생각했다가는‘버리운 자가’될 수있다는 것입니다.
지옥에 다녀온 사람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지옥에도 목사들이 많다라고 합니다. 그럴때마다 정신이 번쩍 듭니다. 얼마나 두려운지 모릅니다. 주님과 동행하지 않으면 버리운 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지금 주님과 동행하고 있는지 정검하고 나중에 버림받지 말자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우리를 도울테니 그 성령을 받아들이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나의믿음이, 나의 신앙이 지금 어느 지경이 있는지 스스로 정검하시고 혹시라도 주님과 멀리 떨어져 가고 있다면, 다른 길로 걸어가고 있다면, 다른 길로 가려고 생각한다면 오늘 정검을 아주 잘한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주님과 오늘부터 힘써 동행하면 됩니다. 주님과 동행길로 들어서서 성령충만하여 넉넉하게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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