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날씨 : 따스하고 매우 화창한 날
산행 코스 : 용화사 ~ 관음사 ~ 도솔암 ~현금산 ~ 정토봉 ~ 미륵치 ~ 미륵산 ~ 미래사
~ 미륵불 ~띠밭등 ~ 용화사
산행 거리 : 7.57km
산행 시간 : 04시간 30분
사량도 가려고 아침 일찍 일어나 설치고 날리법석을 피웠건만 가오치항에 도착하니 여섯시 오십육분,
바로 표를 구입하려했으나 출항 5분 전 까지만 표구입이 가능하다고 안된단다.
사정을 해도 안된다네.
아홉시 배를 타라는데 좀 기분이,
물론 늦은 내가 잘못이지만 표만 구입한면 승선이 가능한데.
아무도 없고 우리 둘뿐인데,
배위에서 둘어서 회에 매실주 한잔 할거라고 준비도 해왔는데,
하는수없이 미륵산으로 간다.
꿩 대신 닭이라고 용화사에서 도솔암을 지나 현금산에 올라서니 조망이 넘 좋은게 사량도에 가지못한게 억~울~한 생각이 든다.
그래도 조망바위에서 사량도가는 배라 생각하고 회를 먹고 누룽지로 배를 채운다.
현금산에서 정토봉으로 가니 산양면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오고 넘어에 사량도도 보인다.
물론 통영 앞바다도.
통영 넘어 벽방산도.
눈을 저 멀리 돌리니 지리산 천왕봉도 보이는것 같다.
넘 좋은 조망속에 미륵산,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온 많은 사람들이 관광해설사의 설명을 듣고있다.
그속에서 정상석을 차지하고 사진을 한장찍고 워낙에 조망이 좋으니까 여기 저기 둘러보고 미래사로 내려간다.
미래사에 도착하니 49제를 지내는것 같은데 맘에 든다고 끝나면 대웅전에 들어갔다 가야한다고 해서 한참을 기다렸다.
미륵불을 보고 띠밭등을 지나 용화사를 들러보고 산행을 마무리한다.
환상적인 날씨속에 미륵산에서의 조망은 다시 볼수있을지,
아마도 하늘과 바다색이 같은 이런 날은 다시 볼수없겠지.
갈때는 짜증이었는데 돌아올땐 즐거움이 넘치는 산행었다.
용화사 입구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들어선다.
여기서 그냥 관음사쪽으로 간다.
미수등 띠밭등쪽으로 가고 싶었지만...
거북등대
이곳은 제승당 입구 바다 암초위에 거북등대 제작을 위해 원석을 채취한 장소로써 거북등대는 이 충무공께서 세계최초로 만드신
거북선을 기리고 한산만으로 들어오는 배들이 항로를 찾을 수 있도록 1961년 뜻 있는 지역민들의 성금으로 발주하여 1963년 12월 30일 준공하였다.
한산대첩의 배경이자 이 충무공의 충절과 구국의 혼이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에 있는 거북등대를 실물크기의 1/3로 축소 원형에 가깝게 본 조형물을 제작하여 이 충무공의 승전의 상징물로 후세에 전하고자 한다.
관음사
관음사를 나와서 도솔암 가는길.
도솔암 입구
여기서 바로 올라서면 미륵치로 가고 바로 옆이 도솔암이다.
도솔암
고려 태조 26년(943) 도솔선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용화사의 산내암자이다.
도솔암(兜率庵)의 창건에 얽힌 전설 하나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도솔선사는 법호를 방장산인이라 했는데 선사가 참선수도할 때에는 날짐승과 길짐승들도 동화되어
함께 노닐었다. 암자 뒤 바위굴에 호랑이 한 마리가 있었는데 여러해 동안 함께 살았다.
어느 날 호랑이가 밖에 와서 입을 벌리고 쪼그리고 앉아 눈물을 흘리므로 선사가 호랑이의 입안을
들여다보니 목구멍에 비녀가 가로 꽂혀 있었다. 선사가 가엽게 여겨 뽑아 주었더니, 그 후 어느 날
호랑이가 처녀 하나를 업어와서 선사 앞에 내려놓았다.
"네 이놈, 전날 비녀 뽑아준 은혜를 어찌 이처럼 괴이한 방법으로 갚으려 하느냐?" 하고 호랑이를
꾸짖은 후, 혼절한 처녀를 일깨워 물었다.
"낭자는 어디 사는 누구인고?" "소녀는 전라도 보성군 배이방의 딸이옵니다." 선사는 처녀를
보성땅 그녀의 집에 데려다 주었더니 그녀의 부모는 선사의 은혜를 감사하며 3백금을 보내 주었다.
선사는 그 돈으로 암자를 지었다고 한다. 도솔암 윗쪽에는 도솔선사가 호랑이와 함께 기거했다는
바위굴이 지금도 있다. 근대 한국불교선종의 거봉인 효봉선사가 6·25전란 때에 상좌 구산(九山)을
데리고 통영에 와 이 암자에 머물면서 통영땅에 선종의 뿌리를 내렸고, 뒤에 미래사를 지어 옮기자
미래사가 한국불교선종의 산실이 되었다.
도솔암 입구에 우측에 이런 모습이 있다.
오래된것으로 보이는데
얼핏보면은 강아지로 보이기도 하는데.
도솔암에 들어설때 잠깐 짖더니만
슬그머니 우릴 돌아서 뒤에가서 이렇게 앉아있다.
우리가 도솔암에서 나서니 조용히 도솔암으로 들어간다.
도솔암 바로 옆으로 샛길로 올라간다.
TV 난시청 해소를 위한 방송시설
이 시설을 손괴하거나 방송을 방해한 사람은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터한다고 경고문이 부착되어있다.
현금산에 바라본 통영바다.
현금산에서 바라본 통영시내
통영시내 넘어 벽방산이 시원스럽게 보인다.
현금산 조망터에서 바라본 미륵산
현금산 조망터에서 바라본 산양면
정토봉 가는길에 돌탑.
정토봉.
정토봉에 시그널을 하나 걸어둔다.
미륵치 바위 위에서 바라본 미륵산 케이블카.
미륵치 바위 위에서.
미륵치를 떠나며.
미륵산 오르는 길에 바라본 사량도.
사량대교가 선명하게 보인다.
정말 멋진 휴식터다.
이런데서 여럿이 모여서 점심을 먹으면,
"와,맛있겠다"
미륵산 조망터에서
꼭 칼집에 칼을 꽃아놓은 것 같다.
미륵산
미륵도 중앙에 해발 461m로 우뚝 솟은 위풍 당당한 이 산이 100대 명산 중 하나인 미륵산이다.
미륵산(彌勒山)을 용화산(龍華山)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 산에 고찰 용화사가 있어
그렇게 부른다고도 하고, 또 이 산은 미륵존불(彌勒尊佛)이 당래(當來)에 강림하실
용화회상(龍華會上)이라 해서 미륵산과 용화산을 함께 쓴다고도 한다.
미륵산 자락에는 고찰 용화사와 산내암자 관음암, 도솔암이 있고 효봉문중(曉峰門中)의 발상지
미래사(彌來寺)가 있다. 미륵산은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울창한 수림 사이로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있고 갖가지 모양의 기암괴석과 바위굴이 있으며 고찰과 약수, 봄 진달래와 가을 단풍이
빼어나 명산으로서의 덕목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통영 미륵산봉수대(統營 彌勒山 烽燧臺)
남해안 일대와 대마도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통영성 남쪽4km 지점의 미륵산 정상 제2봉(450m)에 위치하고 있다. 현존의 봉수대는 산봉우리의 동남쪽 사면에 높이 5m 정도의 3단으로 된 석축과 북쪽 사면에 약간의 석축 흔적이 남아 있으며, 정상에는 이 석축을 축대로 하여 만들어진 직경 7.5~7.8m 정도의 반원형 터가 바다를 향해 돌출된 형태로 남아 있어 봉수대 또는 망대로서의 기획성이 인정된다. 미륵산 봉수대는 〈경상도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통영지〉등에 거제의 가라산에서 봉수를 받아 현 통영시 도산면에 위치한 우산 봉수대에 전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미래사
미륵산 남쪽 기슭에 자리잡은 미래사는 효봉(曉峰)스님의 상좌였던 구산(九山)스님이
석두(石頭), 효봉 두 큰스님의 안거(安居)를 위해 1954년에 세운 암자였다.
종각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십자팔작누각(十字八作樓閣)이며, 삼층 석탑에는 티베트에서
모셔온 부처님 진신사리 3과가 봉안되어 있다. 미래사는 미륵산 남쪽의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이 절은 효봉 큰스님의 상수제자(上首弟子)인 구산수련대선사(九山秀蓮大禪師)가 6·25전란 직후인
1954년도에 창건하였으며, 주로 효봉 큰스님의 문도들이 주지를 하면서 차츰 키워온 선도량(禪道場)이다.
이 절 주지를 역임한 스님으로는 구산 큰스님, 미산 큰스님, 보성(菩成) 큰스님, 법흥스님,
종욱 스님과 현재의 여진 스님 등이다.
미래사 주위의 편백나무 숲은 전국 사찰임야로써는 유일한 것으로서 70여 년 전 일본인이 심어
가꾸다가 해방이 되어 돌아가자 미래사에서 매입하여 오늘날의 큰 숲으로 가꾸어 온 것이다.
산내에는 효봉 큰스님이 만년에 계셨던 효봉암과 동암(東庵)이 있어 본분납자(本分納子)가 상주하고
있으며, 효봉 큰스님의 스승이신 석두(石頭) 화상과 효봉 큰스님의 부도와 비가 있고 효봉암 뒤에
석조미륵불상을 조성하여 신도들과 이 지역을 찾는 분들의 참배처가 되고 있다.
용화사
신라 선덕여왕시대(632~646)에 은점선사가 미륵산 중턱에 절을 짓고 정수사라 했는데, 고려 원종 원년(1260)에 큰 비로 산사태가 나서 허물어진 것을 3년 뒤 자윤, 성화 두 화상이 옮겨 짓고 천택사라 불렀다. 조선 인조 6년(1628)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영조 28년(1752) 벽담선사가 지금의 자리에 다시 중창하고 사액을 용화사라 고쳐 걸어 오늘에 이른다. 경내에는 보광전을 비롯하여 납석제 미륵좌상을 봉안한 용화전, 좌측 한칸에 효봉영각을 차려 놓은 명부전, 선실인 적묵당, 강당인 탐진당, 문루인 해월루와 요사채가 있고 근래에 조성한 육모정 형태의 종루, 효봉대종사 5층사리탑, 그리고 불사리4사자법륜탑이 있다.
용화사 보광전
석가삼존좌상을 모셔놓은 용화사의 정침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 오량가의 맞배지붕을 한 다포형식의 건물이다. 초석은 자연석 덤벙주초로 되었고, 기둥은 배흘림이 약하고 귀솟음도 약하다
어칸은 협칸보다 넓어서 어칸에는 공간포(空間包)가 2구, 협칸에는 1구가 배치되었고 포(包)의 간격은 어칸과 협칸이 거의 같으나 포벽상부의 간격은 귀포 쪽으로 가면서 간격이 좁아진다. 포작은 내외 2출목으로 같으나 전면과 측면, 그리고 배면의 포 배치는 같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