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제23회 대회가 코앞까지 다가온 날이었다. 어느 동호회에도 등록하지 않은 상황이라 이곳저곳에 이름을 넣어줄 수 있는지 물었지만 분명한 답을 얻지 못했다. 부득이 연합회에 전화를 하게 되었고 방문하기에 이르렀다. 다녀와서 운영진 공통 카톡 방에 다음과 같이 글을 남겼다.
“ 환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랫동안 동호인으로 활동하면서 연합회를 만들고 섬겨오신 분들이 어떤 분들일까 궁금했습니다. 먼발치에서 보다가 이렇게 연합회를 방문해 함께 땀 흘리고 운동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탁구를 쉰 지 1년이 넘었고 최근 들어 일주일에 한 번 군포 원탁구장을 방문해 운동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금번 23회 동호인 연합회장배 탁구 대회에 참가하려다보니 부득이 민정근 이사님께 부탁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이사님께서는 연합회로 들어올 것을 제안해 주셨습니다.
저도 여러 이사님들과 함께 수요일마다 모여 운동하고 즐거운 시간을 가지고 싶습니다. 그러나 저에겐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저희 집 아이들이 어리고 더 많은 시간을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것입니다. 그것이 저에겐 행복입니다.
또한 24년 2월 후기 글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저는 열린교회에서 중등부 교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곳에 작은 탁구 모임이 결성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아직 탁구를 칠 줄 모르는 중학생들이고 걸음마 수준의 실력이지만 조금씩 나아질 것이고 언젠가 열탁모(열린교회 탁구 모임)란 이름표를 달고 동호인 연합회 일원으로 여러분들께 보여 드릴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연합회원으로 매주 수탁에 모여 활동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5월 11일 개최하는 제23회 대회는 개인 단식과 단체전에 참가하고 싶습니다. 기회를 주셨으면 합니다. 동호인들과 함께 운동하고 땀 흘리는 것은 무엇보다 감사한 일입니다. 이런 멋진 운동장을 만드는 일 또한 감히 누구도 할 수 없는 귀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탁구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 연합회를 응원하겠습니다. 시합이 끝나면 후기 글을 정리하는 것으로 연합회와 함께 하겠습니다. 귀한 일에 함께 하지 못해 아쉽습니다. 감사합니다.” [2024년 4월 18일 윤유원 올림]
글을 보내고 공동 카톡 방에서 나왔는데 5월 8일 민정근 이사님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대회 전날 한 시간 작업하게 되는데 도와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늪에 빠져들었다. 시합 전날인 5월 10일 금요일 7시에 동호인 대표단과 운영진이 호계체육관에 모였다. 다음 날 대회를 위해 탁구대를 배치했다. 호계체육관 3층 탁구장을 5열로 8대씩 총 40탁을 배열하고 오와 열을 맞추었다. 중간중간 칸막이를 설치해 공이 넘어가지 않도록 했다. 1시간 정도 작업해 모든 일을 마무리했다.
대회 당일 나는 대회장 선수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선수들의 시합 장면, 대기하는 모습, 경품행사, 시상식 장면도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0~4부 결승전은 영상에 담아 간단히 편집했다. 분주히 움직이며 제23회 대회가 아무 문제 없이 진행되도록 이곳저곳 빈 공간을 메워나갔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아침이 저녁이 되었고 어둑 어둑 밤이 찾아왔다. 아침은 맑음 오후부터는 비 저녁에는 장대 같은 비가 내렸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에 관심할 수 없었다. 한가한 토요일 하루를 어느 때보다 바쁘게 보냈다.
제23회 대회는 끝났다. 언어를 “한 가지만 아는 사람은 그 한 가지도 제대로 모른다”라고 괴테는 말했다. 나는 중국에서도 일본에서도 1년씩 생활하면서 언어 공부를 했다. 다양한 삶을 경험하고 싶었고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을 좋아했다. 한때는 산악자전거에 미쳐 부산 시청에서 서울시청까지 480킬로를 무박으로 완주한 경험도 있고 백두대간을 1년간 걸쳐 한 달에 한 번씩 동호인들과 다녀온 적도 있다. 그 후 독서에 빠져 미친 듯이 책을 읽고 글쓰기를 했다. 탁구도 그중에 하나이다. 탁구를 2013년에 시작했으니 벌써 10년이 넘었다. 요즘처럼 정치 경제가 무너진 상황에서 한 가지만 아는 사람은 그 한 가지도 제대로 모른다는 이 말이 예사롭지 않다. 금번 대회는 5부에서 4부로 승급하고 싶었다.
72회 ‘올탁구나 토요리그’를 시작으로 최근 76회 리그전까지 5번의 리그전을 참석하며 몸만들기에 집중했다. 덕분에 체력도 순발력도 어느 정도 올라왔다. 동호인 연합회를 2주 앞두고는 핌플러버에 대한 대응력을 높이기 위해 원 포인트 레슨도 받았다. 실전에서는 얼마나 통할지 알 수 없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대회 수일 전 예선전 편성표가 탁구왕에 올라왔다. 탁세권 양희춘 , 용탁 정성균 , J. M. C의 이인규선수와 본선전을 준비하는 예선 멤버로 결정되었다. 가장 어려운 상대는 원탁에서 같이 운동했던 양희춘 선수 였다.갑장인 그는 민러버에 롱핌플을 장착해 매번 나를 가지고 놀았다. 단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상대였다. 예선전은 탈락이 없지만 상대가 핌플이었기에 나는 반드시 이기고 싶었다.
예선전 첫 상대는 정성균 선수, 그는 내가 구미호라 부르는 백미정 선수의 낭군님이다. 미호 정(백미정)선수를 이번 대회에서는 만나지 않았지만 2022년 제18회 동호인 연합회 대회 본선 2차전 상대로 만나 5세트 풀세트로 싸워서 아쉽게 졌던 기억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기회가 된다면 그때의 후기가 동호인 연합회 카페에 있으니 읽어보기 바란다.) 미정 선수에게 지면 성균 선수에게 되갚아 주곤 했는데 오늘도 그랬다.
두 번째 상대는 양희춘 선수였다. 나와 매번 같이 운동하는 김대원도 승리를 낙관하지 못했다. 그런 그를 상대로 2세트를 연달아 따왔다. 3세트를 내주고 4세트를 따오면서 3 대 1로 가볍게 이겼다. 레슨을 받은 효과가 나타난 것인지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서비스는 되도록 길게 상대의 백 쪽으로 집중했고 너클과 커트를 섞었고 간헐적으로 횡회전를 걸어 과감하게 보냈다. 너클로 보낸 공은 커트로 돌아왔고 커트로 길게 백 쪽으로 리시브했다. 핌플러버로 다시 돌아온 공은 너클이었기에 과감하게 백 쪽으로 박아 넣었다. 이미 알고 있는 공이었기에 자신감이 붙었다. 커트를 상대의 백 쪽으로 길게 보내면 상대는 핌플로 받을 수밖에 없다. 돌아온 공은 너클이었다. 과감하게 쇼트로 응수하거나 탑스핀을 걸어 제꼈다. 그렇게 강하게 느껴졌던 갑장 양희춘이 고목이 넘어가듯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멀리서 짝지 희정씨가 보고 웃었다. 원탁에 같이 운동하며 레슨을 받았던 이유가 양희춘 선수를 잡기 위한 훈련이 되고 말았다. 그는 제23회 대회에서 만난 유일한 핌플이었다.
세 번째 상대는 이인규 선수였다. 우리 조에서 가장 약한 상대였다. 양희춘과 정성균은 가볍게 이겼지만 나는 서비스에 말리면서 고전했다. 마지막 세트까지 가는 접전이었고 겨우 승리했다. 예선전은 3승을 하면서 무난히 조 1위에 올랐다.
본선전은 잠시 후 바로 시작했다. 예선전은 탈락 없이 순위를 정해 그대로 본선전에 올라갔다. 5부는 38명이었다. 본선전 4차전까지 살아 남으면 결승전에 가게 된다. 버텨야 한다. 이번에는 4강에 가자고 주문을 외웠다.
1차전 상대는 열탁구클럽의 류성태선수였다. 처음 상대해 보는 선수라 서비스를 다양하게 써보았다. 커트와 너클 그리고 횡회전서비스를 적용해 보았고 횡회전서비스에 약한 것을 파악하고 결정구로 정했다. 결정 구는 아껴두었다가 10 대 8로 뒤지고 있을 때 사용해 듀스를 만들었고 승리할 수 있었다.
본선 2차전 상대는 석수 두산 위브의 이은옥 선수였다. 이 선수와는 연합회 대회에서 3번 정도 싸워본 경험이 있었다. 몇 회 대회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단체전에서 붙어 승리했고 진 적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위에서처럼 커트와 너클 횡회전를 섞어가며 시험해 보았는데 돌아오는 공이 낮고 짧았다. 공을 정말 잘 다루어 힘없이 넘어온 것인지 감기약 때문에 힘이 없어서 겨우 넘어온 것인지 공이 네트를 힘겹게 넘어왔고 어떤 공은 네트에 닿아 툭 떨어지기도 했다. 횡회전 서비스는 정확하게 보고 쇼트로 화쪽 깊이 박아 넣었다. 내 서비스에 모두 능숙하게 대응하는 모습에 약간 당황했다. 반면에 상대의 서비스는 약한 듯하면서도 짧게 들어왔고 커트를 하면 약간 뜬 공도 그대로 공격해 들어왔다. 1세트는 듀스 접전 끝에 졌다. 2세트도 6점이나 앞서가다가 뒤집히면서 지고 말았다. 3세트는 2점 차이를 좁히려 노력했지만 좁혀지지 않았다. 그대로 밀고 올라가더니만 게임은 끝나버리고 말았다. 어째 이런 일이! 4부 승급을 목표로 달려왔는데 또 2차전에서 복병을 만나다니!!!!
대회만 나오면 본선 2차전에서 미역국을 마셨다.18회 대회는 2차전에서 구미호를 만나 박살 났고, 19회 대회는 본선 2차전에서 이경록 탁구의 조경순 핌플을 만나면서 아웃 당했다. 20회 21회 22회는 참석하지 않았다. 23회 대회는 생각지도 않았던 이은옥 선수를 만나면서 떡실신 당했다. 왜 모두 여자란 말인가? 누구 말마따나 탁구 치면서 얼굴 보고 친 걸까? 아니야 난 얼굴 본 적 없어 정석대로 친 거야! 그래 실력인거야! 그런 거야!
단체전 예선전에서 석수 두산 위브 이은옥 선수 팀을 또 만났다. 그녀는 나를 보자 반갑다는 듯이 ‘찜’을 외쳤다. 아마도 맛있는 먹잇감을 본 배고픈 사자가 토실 토실 살이 오른 사슴을 보고 눈이 돌아간 모습이랄까!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눈이 맞아버렸다. “그래 갚아줘야지!!!!" 나는 복수의 칼날을 벼리는 심정으로 눈을 맞추었다. 탁구채 라바의 먼지를 닦았다. ”내 승급을 막아버리다니! 용서할 수 없지!“ 대갚음해 주리라 다짐했다.
1세트부터 점수 관리에 들어갔다. 상대와 한번 붙어 본 경험, 3 대 0으로 패한 경험이 있기에 침착해야 했다. 이은옥 선수는 내 침착함보다 더 침착했다. 약기운이 침착함을 만들어 준 것인지 본인이 원래 침착한데 약기운 때문에 침착하게 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한 집에서 몸을 뒤 썩고 사는 정여사의 지랄맞은 성질의 본질을 알지 못하는데 대회에서 만나 네트를 사이에 두고 2.7그램짜리 공으로 만나본 상대를 어떻게 그 성질까지 짐작할 수 있단 말인가. 네트 너머에 있는 은옥을 노려보며 그 깊은 속을 읽어내 이길 방법을 찾아야 했다.
문득, 오래전에 읽었던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가 생각났다. 산티아고란 늙은 어부가 84일 동안 물고기를 잡지 못하다가 먼바다로 나가 굉장히 큰 물고기를 낚는데 성공했다. 물고기가 너무 커서 배 안에 들이지 못하고 배 옆에 묶어 돌아오던 중 상어들의 공격을 받았다. 물고기의 살은 내주고 뼈와 대가리만 가지고 돌아온다는 내용이었다. 이 소설은 노인의 성숙한 모습 초라한 현실이지만 받아들이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시합에서 패하면 나는 산티아고의 어부가 되는 것이었다.
한 점 한 점 실수를 줄이려 노력했다. 힘겹게 1세트를 따왔고 2세트도 따왔다. 이은옥은 할 수 있어 내가 이길 수 있다며 소리쳤다. 3세트를 따내자 이은옥은 힘을 내며 공세를 이어갔다. 4세트에서 승부를 내야 했다. 5세트까지 가면 내가 질 수 있었다.
노인이 또다시 혼잣말을 했다.“ 물고기한테 끌려가고 있으니 내 몸이 마치 밧줄을 비끄러맨 말뚝 신세가 됐군. 줄을 끊어 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할 수 있을 데까지 그냥 붙들고 있으면서 필요하면 줄을 더 풀어 줄 수밖에 없다. 놈이 앞으로 나아갈 뿐 아래로 더 내려가지 않는 것만도 천만다행이다.” [노인과 바다, 느낌이 있는 책, 51쪽]
4세트는 상대의 실수를 최대한 끌어내려 먹잇감을 던졌다. 마지막 서비스는 짧게 너클로 보냈고 돌아온 공을 탑스핀으로 마무리 지었다. 4세트를 따오면서 3 대 1로 ‘승’ 본선 2차전에서 패했던 빚을 갚아주었다.
이은옥 선수는 단식 3차전에서 탁사모의 정재일을 만나 패했고 정재일은 4강에서 탁세권의 이희정을 만나 이기면서 결승전에 올랐다. 5부 결승전에서 탁세권의 임창식을 만나 이기면서 우승을 차지했다.
나에게 쓰디쓴 보약을 선물해 준 이은옥 선수를 만나 즐거웠다. 한 사람을 안다는 것 그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동안 여러 번 시합해 본 사람이었지만 이은옥이란 사람을 다시 보게 된 하루였다. 제2의 구미호를 만난 기분이랄까!
“인생은 한 권의 책과 같다. 어리석은 자는 마구 넘겨버리지만 현명한 자는 열심히 읽는다. 인생은 단 한 번만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장파울의 말이다. 우리는 탁구를 치면서 얼굴을 보지 말자 구질을 보고 공의 성질을 읽자고 늘 말한다. 그러면서도 본선 2차전이 나에게 사선이 되었다. 사선을 넘어 결승을 향해 오늘도 내일도 달려갈 것이다. 또 다른 구미호가 나타나 내 앞길을 막겠지만 나는 내 길을 갈 것이다. 가수 송창식은 지금도 매일 기타의 기본 박자를 연습한다. 연습실 노트북에 박자를 알려주는 프로그램을 깔아놓고 거기에 맞춰서 기타치는 연습을 한다고 했다. 노래를 부르는 것도 아니고 기본 박자를 50년 이상 기타를 친 거장의 말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나는 어떤가? 기본기에 얼마나 충실한가? 돌아보게 하는 대회였다.
모든 대회를 마쳤다. 누군가는 우승을 했고 승급을 했다. 나는 아직 5부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도 최선을 다했다. 노인과 바다에서 산티아고란 늙은 어부는 상어들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뼈와 대가리만 배에 걸고 돌아왔지만 집에 돌아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오늘 나는 산티아고의 노인이 된 심정이다.편안한 집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깊은 잠에 빠져들고 싶다. 내일은 다시 태양이 떠오를 것이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멋지게 사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늘 아글타글하며 삽니다.
응원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