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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한국 가요 100년을 집대성한 30년의 노작!
20세기 우리 민족의 삶과 애환의 노래들을 한데 모은 근현대 문화사 연구
『한국 가요사』. 한국의 가요 역사는 단순한 가요사가 아니다. 근현대 민중이 불러온 노래를 시대의 흐름과 함께 서술해 놓았다. 20세기 한국 대중가요의 역사를 방대한 자료와 치밀한 고증으로 집대성한 이 책은, 지난 100년 동안 우리 대중가요계를 풍미하며 민중의 삶을 어루만져온 수많은 노래들, 그리고 작곡가, 작사가, 가수, 연주들이 등장한다.
그들의 잘 알려지지 않았던 생애와 음악 세계, 나아가 우리 민족과 그들의 노래가 함께 겪어온 정치 사회적 격동에 대해 풍성하게 그려낸다. 개화기와 갑오농민전쟁, 일제강점과 식민지시대, 해방과 분단, 419혁명과 516쿠데타 등 민중의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을 노래해온 대중가요라는 버스를 타고 우리의 근현대사의 구석구석을 둘러본다.
제1권《가요의 탄생에서 식민지 시대까지 민족의 수난과 저항을 노래하다》은 1894년부터 1945년까지의 우리나라 가요사를 다룬다. 민중의 대표곡 아리랑에서부터 독립운동 속에서 피어난 노래, 조선 근대 음악의 선구자들, 초창기의 가요곡, 목포의 눈물과 나그네 설음 등으로 가요곡의 황금시대를 열어간 시기까지 다양한 음악사가 펼쳐진다. [양장본]
저자 박찬호
재일교포 2세로 1943년 일본 나고야에서 태어났다. 1964년 와세다대학교 문학부 재학 중 재일한국학생동맹(한학동)에 가입했고 1966년 대학 졸업 뒤에는 한청(재일한국청년동맹) 운동, 김대중 구출 운동 등에 참여했다. 1977년 말부터 1984년까지 민족시보사에서 일하며 편집차장, 편집장을 역임했다.현재는 가요사 관련 자료 수집과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조선총독부 정보과 편찬의 『新しき朝鮮』(風濤社, 1982년)을 복각 출판하였고, 송건호의 『한국현대사론』(風濤社, 1984년)을 일본어로 공역 출판했다. 저서로는 『한국가요사』1,2권이 있다.
출판서평
「한국 가요사」는 식민지 시대 전체를 충실하게 포괄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주요 작품과 인물에 대한 정보가 그 이전의 어떤 글들과도 비교할 수 없는 사료적 충실성을 획득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분단을 통해 왜곡된 사실을 최대한 바로잡으려는 태도를 지니고 있어, 여태껏 남한 내에서는 거론하지 않았거나 잘못 거론되었던 사실에 대해 사실 그대로 언급한 최초의 기록으로서도 의미가 있다.
이영미(「한국 대중가요사」 저자)
노래라는 벽돌 하나하나를 쌓아올려 지은 한국 근현대 문화사
일제 치하 설움 많던 민중의 상처를 애달픈 곡조로 달래준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한국전쟁과 피난의 기억을 애절하게 노래한 남인수의 <이별의 부산 정거장>, 군사 정권의 폭압에 대한 견결한 저항의 상징이었던 김민기의 <아침 이슬>…….
20세기 한국 대중가요의 역사를 방대한 자료와 치밀한 고증으로 집대성한 역작 「한국 가요사」 1, 2권이 ‘미지북스’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지난 100년 동안 우리 대중가요계를 풍미하며 민중의 삶을 어루만져온 수많은 노래들, 그리고 작곡가, 작사가, 가수, 연주자 들의 잘 알려지지 않았던 생애와 음악 세계, 나아가 우리 민족과 그들의 노래가 함께 겪어온 정치 사회적 격동에 대해 더할 수 없이 풍성하고 생생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개화기와 갑오농민전쟁, 일제강점과 식민지시대, 해방과 분단, 4·19혁명과 5·16쿠데타, 산업화와 민주화운동 등 시대의 격랑을 함께 하며 민중의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을 노래해온 대중가요는 우리 민족이 살아온 한 시대의 증언과도 같다. 「한국 가요사」는 대중가요라는 버스를 타고 우리의 근현대사의 구석구석을 둘러보는 매력적인 여행인 셈이다. 이 여행에서 독자들은 그 시대 민중들의 아기자기한 볼거리와 수많은 이야깃거리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한국 가요사」는 진정 20세기 한국 대중가요에 대한 백과사전적 집대성이며, 더불어 근현대 한국 문화사 연구의 소중한 보고(寶庫)인 것이다.
인생을 바친 30여 년의 가요사 연구가 6000매의 노작(勞作)으로 완성되다
「한국 가요사」의 저자 박찬호는 이 책의 집필을 구상하기 시작한 1970년대부터 무려 30여 년에 걸친 각고의 노력을 쏟아왔다. 저자는 재일 한국인으로서 당시 국내에서도 거의 소실된 상태였던 음반, 가사집, 관련 문헌, 사진 등의 소중한 자료들을 차곡차곡 수집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1988년에 해방 이전 시기를 다룬 「한국 가요사」 1권을 일본 현지에서 출간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이후 1992년에 국내에도 번역 출간되어 근현대 한국 대중가요 연구의 폭발적인 부흥에 핵심적인 기여를 한 바 있다.
20여 년의 세월이 흐른 2009년 저자는 1권의 대대적인 수정 증보판과 더불어 해방 이후 시기를 다룬 「한국 가요사」 2권을 새로이 펴내게 되었다. 이로써 민요, 악극, 창가, 창극, 가곡, 오페라, 재즈, 트로트, 록, 소울, 포크, 발라드 등 지난 20세기 우리 노래의 거의 모든 장르를 다루며 그 노래들을 짓고 불렀던 수많은 음악인들의 방대한 역사가 처음으로 완성된 것이다.
「한국 가요사」 1, 2권의 분량은 무려 1400쪽(200자 원고지 약 6000매)이 넘으며, 언급된 노래는 2366곡, 가사가 수록된 곡은 879곡, 음악인은 2084명에 이른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찾아보기 힘든 SP음반들과 당시의 공연 현장의 사진들이 빼곡하게 실려 있어 독자들에게 읽는 재미를 한층 더해줄 것이다.
나라 잃은 설움이 불후의 명곡들을 잉태하다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20세기 대중가요 중 적지 않은 곡들이 일제 식민지 시대에 만들어졌다. 어찌 보면 나라 잃은 설움이 불후의 명곡들을 잉태하게 했던 것이다. <목포의 눈물>은 ‘불멸의 여왕’, ‘엘레지의 여왕’ 이난영이 1935년에 부른 노래이다. ‘목포’는 목화가 많은 항구라는 뜻으로, 식민지 시대 호남의 광대한 평야에서 산출된 쌀과 목화가 일본으로 반출되던 곳이었다. 항구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식량과 물자와는 대조적으로, 한국인들은 헐벗고 굶주렸으며 토지를 잃고 유랑 길에 올라 생이별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목포의 눈물>은 바로 일제의 수탈에 대한 한국인들의 한(恨)이 집약된 노래였다.
‘가요계의 신데렐라’ 장세정이 부른 <연락선은 떠난다> 역시 일제의 수탈과 강제 징용의 시대상을 반영한 노래이다. 당시 수십만 명의 한국인들은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정기적으로 오가던 관부연락선을 타고 일본의 각종 공사현장에 강제로 동원되었다. “쌍고동 울어울어 떠난” 연락선을 타고 일본에 건너간 한국인 노동자들은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혹사당했고 1923년 관동대학살과 같은 참변을 겪어야 했다. <연락선은 떠난다>는 이러한 참담한 현실 속에서 몸이 찢기는 것 같은 이별의 아픔을 노래해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 길”로 시작하는 <나그네 설움>이 지어진 배경도 흥미롭다. 작사가 조경환과 가수 백년설은 어느 날 경기도 경찰서 고등과에 끌려가 혹독한 취조를 당했다. 시말서를 쓰고 풀려난 이들은 광화문 뒷골목 선술집에서 홧술을 마시며 울분을 토해냈다. 이때 두 사람은 몸은 서울에 있어도 마음은 나라에서 쫓겨난 나그네 신세였다. 그날 밤의 종로는 “낯익은 거리다마는 이국보다 차가웠”기 때문이다. 조경환은 문득 떠오른 노랫말을 담뱃갑 뒤에 적어 넣었고, 이로써 훗날 10만 장의 판매고를 올린 <나그네 설움>이 만들어진 것이다.
민중의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을 노래해온 대중가요
해방 이후 레코드로 발매된 최초의 곡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애국가>이다. 1947년 고려레코드는 안익태의 곡과 스코틀랜드 민요 <석별>의 멜로디에 각각 가사를 붙여 두 곡의 애국가를 취입하였다. 당시에는 레코드를 제작하는 데 크고 작은 어려움이 많았다. 자재가 부족했기에 엿장수가 모아오는 고물 SP음반의 표면만 살짝 재생하여 새 음반을 만들곤 했다. 그래서 수십 번 듣고 나면 음반에 원래 녹음되어 있던 일본 노래가 섞여 나오기 일쑤였다고 한다. 녹음실은 삐걱거리는 가정집에 담요를 대강 둘러친 것이 방음장치의 전부였고, 시끄러운 낮 시간을 피해 한밤중에 녹음을 하더라도 새벽의 전차 소리를 피해야만 했다.
오늘날 전국의 어떤 노래방을 가더라도 곡목 리스트 가장 앞부분에 올라 있는 곡은 남인수가 부른 <가거라 삼팔선>이다. 1948년에 발표된 이 노래는 민족 분단과 이산의 슬픔을 눈물어린 목소리로 토로했다. “산이 막혀 못 오는 것도 아니오, 물이 막혀 못 오는 것도” 아닌데, 삼팔선이라는 세 글자 때문에 오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가거라 삼팔선>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북한에서까지 유행했으며, 북진 통일을 기조로 삼았던 이승만 정권에서 금지곡이 되기도 했다.
한국전쟁 시기에는 피난살이의 설움과 가족의 이별을 그린 노래들이 많았다.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는 1·4후퇴 당시 가족을 두고 월남한 피난민의 심정을 노래했다. 남인수의 <이별의 부산정거장>은 전쟁이 끝난 뒤 부산을 떠나는 피난민들의 심경을 그렸다. 노랫말에는 애수가 깃들어 있었지만, 곡조는 새롭게 펼쳐질 앞날에 대한 희망으로 한껏 설레어 있었다.
1960년대까지 트로트가 지배해온 가요계에 1970년대로 들어서면서 록, 소울, 포크, 발라드 등 새로운 장르의 노래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1970년 김추자가 부른 <님은 먼 곳에>는 새로운 가요의 흐름을 상징하는 노래였다. 또한 1971년의 <사랑해>는 “예예예~”라는 후렴구와 함께 통기타, 청바지의 시대인 포크 붐의 막을 열었다. 같은 해 군사정권의 억압에 맞서 저항 정신을 노래했던 김민기의 <아침 이슬>은 대학가에 일대 선풍을 일으켰고 1975년에는 금지곡이 되기도 했다.
「한국 가요사」는 유신 체제의 대중가요 탄압과 이른바 ‘대마초 사건’ 이후 침체되었던 가요계에 신선한 충격과 함께 등장한 산울림에서부터 가요계의 제왕으로 군림했던 조용필에 이르기까지 우리 가요사를 일별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국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재일한국인 음악인들에 대한 정리로 끝을 맺는다.
격동의 시대, 그 거센 풍랑 속에서 살아온 음악인들
식민지 시대, 나라 잃은 민족의 설움과 가난과 이별의 한을 노래했던 음악인들은 전쟁 말미에 이르러 일제의 강제 동원 정책에 따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작곡가들은 ‘충실한 황국 신민’ 양성을 위한 노래들을 지어야만 했고, 남인수, 김용환, 백년설, 이화자 등의 기라성 같은 가수들조차도 <반도의용대가>, <아들의 혈서>, <결사대의 아내>와 같은 선혈 낭자한 ‘군국 가요’를 불러야 했다. 이제껏 우리 음악사에서 한번도 제대로 연구되거나 반성되지 못했던 군국 가요 문제는 「한국 가요사」에서 처음으로 그 씁쓸한 실체를 드러낸다. 물론 해방과 함께 가장 먼저 거리로 뛰쳐나와 그 북받치는 감격을 노래했던 사람들 역시 음악인들이었다.
해방 이후 음악인들은 더욱 변화무쌍한 정치적 풍랑에 휩쓸려야만 했다. 1960년 4월 혁명이 터지자 <4·19 행진곡>, <4월의 깃발>과 같은 혁명의 노래들을 불렀던 음악인들은 5·16쿠데타 이후에는 <아 어찌 일어서지 않으리>, <나가자 5·16혁명의 길로> 등의 노래를 쏟아냈다. 일례로 한국의 대표적인 작사가 반야월은 <4월의 깃발>에서 “4월의 깃발이여 잊지 못할 그날이여, 하늘이 무너져라 외치던 민주주권……”이라고 부르짖다가, 곧이어 “아 5월 16일 잠을 깨라 외치며 악의 씨를 뽑았네”라며 쿠데타를 찬양하는 <겨레의 영광>을 썼다.
한편 유신 시대에 들어 자유 또는 민주주의에 대한 민중의 열망을 직간접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던 대중가요는 극심한 정치적인 탄압에 직면하기도 했다. 1975년 유신 정권은 무려 222곡의 대중가요를 금지하는 이른바 ‘가요 대학살’을 자행한다. 이때 <거짓말이야>, <미인>, <아침 이슬>, <고래 사냥> 등의 노래가 금지곡으로 지정되었으며, 밥 딜런이나 존 바에즈 등의 외국 곡들도 차례로 금지되었다. 유신 정권은 단지 노래를 금지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대마초 일제 단속을 구실로 수많은 음악인들을 잡아가두기도 했다. 이처럼 한국의 음악인들은 역사의 전환기마다 때로는 저항과 도전으로, 때로는 체념과 굴복으로 대응하며 자신들의 재능과 의지를 펼쳤던 것이다.
성실과 애정으로 쌓아올린 공든 탑
이영미(「한국 대중가요사」저자) 선생의 발문 중에서
한동안 절판되어 구할 수 없었던 「한국 가요사??가 재출간된다니 기쁘기 이를 데 없는데, 게다가 해방 후 부분을 새로 집필하여 전 2권으로 완간한다는 소식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17년 전 한국어판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부터 이 책은 꽤나 놀라웠고, 그 후 지금까지 몇 번이나 놀라움을 준다.
우선 한국어판을 처음 받아보았을 때, 가요사의 구체적 사실(史實)들을 꼼꼼하게 정리해놓은 점이 무척이나 놀라웠다. 나 역시 대학원 석사과정 학생이던 시절 「일제시대의 대중가요」(「노래」 1집, 실천문학사, 1984)라는 보잘 것 없는 글을 하나 쓰느라고 그 시대의 자료를 찾고 정리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잘 아는 터였다. 식민지시대라는 결코 짧지 않은 시기의 1차 자료(음반과 가사지 등)를 모으는 일이 불가능했던 때였으므로 2차 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는데, 겨우 참고할 수 있는 것은 대중가요계 원로들이 서술한 몇 편의 글이 대중가요 악보집이나 전집음반 해설집에 실려 있는 것뿐이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에 이르러서야 겨우 황문평, 반야월 등 그 시기를 경험했던 원로들의 글이 묶여 책으로 출간되었다. 하지만 가요계 원로들의 글은, 타인이 범접할 수 없는 구체성을 획득하고 있는 반면, 통사적 체계로 서술되어 있지 않거나 서술이 일관되지 않고 들쭉날쭉하며, 자신의 기억이나 남에게 들은 이야기에 의존하는 부분이 많아 사실 확인의 엄밀성이 상당히 떨어지는 단점이 있었다.
그러나 「한국 가요사」는 매우 달랐다. 식민지시대 전체를 충실하게 포괄하고 있는 것은 물론, 주요 작품과 인물에 대한 정보가 그 이전의 어떤 글들과도 비교할 수 없는 사료적 충실성을 획득하고 있었다(게다가 자료를 수집하기가 쉽지 않은 일본에서 이런 작업을 했다는 것 역시 놀라운 지점이었다). 이러한 사료적 충실함은, 대중가요계 원로들이 보여주는 체험적 구체성과는 다른 것으로, 가능한 한 1차 자료를 확인하고 여타 체험적 기록들은 교차 점검하여 비교적 정확한 사실에 접근하고자 한 노력이 충분히 느껴졌다. 또한 당대의 중요한 인물과 작품을 포괄적으로 다루려는 균형감을 갖추고 있었고, 그럼으로써 시대를 넘나들며 들쭉날쭉 동어반복을 한 글들과는 다른 차원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도 분단을 통해 왜곡된 사실을 최대한 바로잡으려는 태도를 지니고 있어, 여태껏 남한 내에서는 거론하지 않았거나 잘못 거론되었던 사실에 대해 사실 그대로 언급한 최초의 기록으로서도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사료적 충실함과 정확성은 수집자들에게서 발견되는 특징인바, 「한국 가요사」를 기점으로 하여 한국 대중가요사 서술이 체험자들의 시대로부터 수집자들의 시대로 접어들기 시작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한국 가요사」가 나온 이후 10여 년간 수집자들이 내놓은 책과 전집음반 등이, 이후 한국 대중가요에 대한 학술적 연구로 나아가는 가장 중요한 발판이 되었음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우선 나부터도 「한국 대중가요사」(시공사, 1998)를 쓰면서 식민지시대 부분은 「한국 가요사」에서 밝혀놓은 사실을 바탕으로 연구를 진행했으니 말이다. 다른 책들과 달리, 이 책에서 밝히고 있는 연도와 음반 관련 사항, 인물에 대한 정보 등에 대해서는 큰 의구심 없이 신뢰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몇 년 전 저자인 박찬호 선생을 직접 만나서 두 번째로 놀랐다. 그가 생업을 따로 가지고 있는 분이며 상당한 고령의 어르신이라는 사실임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하긴 이것은 그리 짐작하기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수집자들은 생계를 위한 직업을 따로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돈과 시간을 쪼개어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경우가 보통이기 때문이다. 또한 식민지시대의 대중가요 수집자들이 대부분 그 시기 노래에 취향을 지닌 고령자이므로, 저자의 역시 그리 특별한 경우는 아니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오히려 나의 놀라움은, 저자가 은퇴 상태도 아니고 현업을 유지하고 있으면서 그처럼 방대한 자료를 정리하고 책을 썼다는 것에 기인했던 것 같다. 국내에도 대중가요 수집자는 많지만 박찬호 선생처럼 정돈된 책을 써내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책을 쓰는 일이란 수집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일로, 일정한 시간 동안 책상머리 앞에 붙어 앉아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이는 대중가요에 대해 수집자들이 지니고 있는 애정만으로는 안 되는 것이며, 끈질기고 성실한 노력이 뒷받침되어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몇 년 후, 나는 박찬호 선생이 「한국 가요사」의 두 번째 책을 써서 출간하려 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다시 크게 놀랐다. 이 소식을 듣자마자 나는, “우리 젊은 연구자들, 모두 무릎 꿇어야 돼.”라고 중얼거렸다. 해방 후 대중가요에 대한 자료를 구하기가 일본보다 훨씬 쉬운 한국 땅에서, 인터넷 검색 등으로 자료를 모으며 쉽게 글을 쓰는, 오로지 연구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 전업 연구자들조차 감히 해내지 못하는 일이 아니던가. 그 성실함에 고개가 숙여질 뿐이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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